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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perial Chinese Bond ###
1911년에 후베이성과 광둥성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비 마련을 위해 청나라가 발행한 이자율 5%의 국채로 신해혁명을 유발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동안 묻혀있었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인사들이 중국 압박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제안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유튜버들이 이 사안을 흥미위주로 알리는 바람에 많은 사항이 왜곡되어 알려졌다.[1]
2. 청나라의 발행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열강에 그로기 상태였고, 철도부설권 및 채굴권과 같은 여러 이권들을 열강에 빼앗기거나 혹은 헐값에 넘겼다. 뜻있는 관료들은 내정을 개혁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자고 주장했으나, 청나라 말기까지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던 서태후 및 만주족 보수파의 반발로 그때마다 무산되었다. 그리하여 철도같은 인프라도 정부 주도로 건설되지 못하고 대부분 외국자본이나 혹은 민자로 건설되고 있었다.청나라 백성들은 산업기반이 거의 없는 청나라에서 그나마 철도가 유망한 자산이 될 것 같아서 너도나도 이런 민자철도에 투자했다. 청나라의 산업관료였던 성선회는 이를 국유화해서 국가의 감독아래 두려고 했다. 사실 이것은 전국가적인 안목으로 보면 합리적인 조치였지만, 하필이면 청나라의 통치력이 의문을 받고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극심했던 시기가 문제였다. 그렇게 하려면 청나라 조정이 민자의 주식을 모두 회수해야 하는데, 이런 강제 매입도 문제였거니와, 더 문제는 이 매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서 이런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채권의 발단은 이런 청나라의 철도 국유화비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 채권의 종류는 20파운드짜리와 100파운드짜리 두개가 있었다. 채권의 총량은 500만 파운드였다.
하지만 청나라 백성들은 이를 민족자본으로 건설되는 철도를 외국자본에 팔아 넘기려는 것으로 해석했고, 반청감정에 불을 질렀다. 1911년에는 철도국유화를 저지하기 위한 보로운동이 전중국에 확산되었다.
3. 중화민국의 채무승계 거부
청나라의 민자철도 국유화시도는 민중의 엄청난 반발을 불렀고, 결국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됐다.철도 국유화시도는 결국 무산되었지만, 일단 청나라가 채권을 외국에 팔기는 했으므로 이 채권의 변제의무는 청나라의 계승국인 중화민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위안스카이의 전횡과 군벌들의 발호로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져 청나라 채무의 계승은 꿈도 못꾸었다. 이후 베이징에 세워진 세워진 북양정부, 그리고 1927년 북양정부를 북벌로 붕괴시키고 집권한 난징의 국민정부도 모두 채무승계를 거부했다. 일부 유투버들은 마치 장제스의 난징정부가 청나라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하다가 디폴트를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난징정부도 청나라 채무의 승계를 처음부터 거부했다.
그리고 대공황에 접어들면서 중화민국 경제도 붕괴하여 1930년대 이래 중화민국은 자기가 발행한 모든 채권의 디폴트를 선언했는데, 이미 거부했던 청나라 채권은 아예 논할 가치가 없었다.
1911년 발행된 청나라 채권을 보유하면서 그 후계국인 중화민국 정부에 승계를 요구했던 미국 금융기관들은 일본 및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고 있던 중화민국의 사정을 볼 때, 더이상 받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 채권을 손절해 버리고, 골동품 수집상 등에 팔아버렸다.
국공내전이 끝나고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의 모든 국제적 지위를 승계한다고 발표했으나, 채권과 채무의 상속은 모두 포기했다. 중화민국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은 승계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중화민국이 거부한 청나라 채권은 말할 나위도 없다.[2]
사실 중국의 혼란기에 후계정부가 전임정부의 채권에 대해 디폴트 선언한 일은 중화인민공화국만은 아니었다. 중공에 의해 전복된 중화민국의 장제스 정부도 20년전에는 그들이 전복한 북양정부 채권의 채무승계는 거부했다.
4. 미국-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 이후
1979년 미국은 그동안 수교하고 있던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그렇게 되자 1979년 11월 13일 미국에서 해당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300여명의 미국인 채권자가 앨라배마 주에서 집단 소송의 형태로 중국 정부를 상대로 1억 달러 상환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중국 측과 채권단 측의 법정공방이 몇년간 계속되었으나 연방대법원에서는 1987년에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여 최종 패소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즉, 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채권의 지불 이행의무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어 약 40년간 이 채권은 수집용의 가치만을 가지고 각종 수집품 거래상이나 이베이 같은 곳에서 거래되었다.
5.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중국 압박 수단
약 30년간 이 채권은 관심사안이 아니었으나, 미중무역전쟁이 발발하면서 화제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중국이 역대 대미무역에서 거액의 흑자를 보고 그 흑자로 사들인 미국 채권 (약 1.2조달러)[3]이 불공정 무역의 산물이라며, 미중무역전쟁을 일으켰다.이에 편승해 이 청나라 채권을 가지고 있던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중무역갈등에 대한 공격카드 중 하나로 미국에서 100년 된 채권을 쓸 것을 트럼프 정부에 제안했다. 2018년 8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청나라 채권 보유자 재단 이사장 조나 비안코와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 치는 도중 만났으며, 조나 비안코 이사장은 그 후에 상무장관을 만났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채권보유자들에게 1조 6000억 달러(약 1898조 원)[4]어치 이상을 갚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며, 이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1조 1000억 달러와 맞먹는 규모이다.
이들 채권 보유자들은 이걸 중국에 갚으라고 한 것인데, 일부 친트럼프 언론이 이런 주장을 하자, 중국은 "이미 끝난일"이라고 말할 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20년 8월 14일에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청나라 말기에 발행된 채권을 중국이 상환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중국측에 지불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미국 논객들은 중국이 영국에 대해 1987년 홍콩 반환의 조건으로 2350만 파운드(약 352억원)의 1949년 이전에 발행한 청나라 채권을 상환한 바 있는 것을 상기시키며 기사(영문)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이의 지불을 압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 두 상황은 매우 다른데, 이문제가 제기된 2019년 당시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이 매우 사이가 나빴고, 미국은 중국을 미중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양보를 압박하기 위해 이 문제를 카드로 꺼내려고 한 것이지만, 1987년 중국의 채권 상환은 대처 정부와 중국이 매우 화기애애한 상태에서 중국측의 적극적 의지로 지불한 것이다. 그 액수에서 (약 300억원)[5] 보듯이 이것도 전부를 채권의 원리금 전부를 상환한 것이 아니라, 홍콩 인수에 호의를 보인[6]대처 정부를 돕기 위해 상징적인 액수를 낸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마거릿 대처 정부는 중국에 홍콩을 넘겨주지 말라는 반대여론에 시달렸지만, 1987년 총선에서 이렇게 중국에서 받아낸 돈을 홍보하며[7] 반대 여론을 무마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환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옛채권을 받아낼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아니라, 채무를 계승한 자의 적극적 상환 의지가 있어야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한편 중화민국은 청나라를 계승했으므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대만에 남아있는 중화민국 정부가 이 채권을 상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중화민국에서는 2019년에 자신들의 이 채권과 무관하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애당초 1920년대부터 중화민국 정부는 이 채무를 승계하지 않는다고 밝힌바 있다.
5.1. 실효성
한국의 일부 유튜버들이 2020년 당시 이 사안을 마치 미국이 중국에 수조달러를 받아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고[8], 일부 커뮤니티에 이 짤방들이 퍼지면서 비슷하게 알려졌지만, 법률적으로 보면 이미 이 사안은 끝난 사안 (case closed) 이다. 1986년 미국 연방 11순회 항소법원(The 11th U.S. Circuit Court of Appeals)의 판결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채권에 대해 지불 이행 의무가 없고, 미국 정부는 이를 강제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에 불복한 원고(채권자)의 상고를 기각해버렸다.#위의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에 편승해 낸 법률안들도 마찬가지다.[9][10] 정치공세로서나 의미가 있을 뿐이고, 실제로는 의회 표결로 붙여보지도 못하고 그냥 묻혀버렸다. 1930년 대공황 당시 중화민국 정부가 이 채권에 대해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대손상각 처리해서 휴지조각이 되었고, 이 채권의 보유자들도 진지한 투자라기보다는 옛채권 수집품 쯤으로 가지고 있던 것인데, 이것으로 채무이행을 촉구한다는 것은 현재의 경제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1979년까지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었는데, 이런 채권자들이 1930년대 중화민국의 디폴트 후 40년간 이쪽에 전혀 채무변제를 요구하지 않다가[11], 이를 처음부터 거부한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갑자기 이를 요구한 것도 채권자들의 법률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채권자들은 계속 패소했다.[12]
2023년 현재 이 채권은 채권 거래 사이트가 아니라 골동품 거래 사이트에서 1908년 발행한 액면가 20스털링[13]짜리가 $120(15만원) 정도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는데 #, 당시 20파운드의 가치는 2023년 가치로 약 3000파운드에 상당하며 # 현재 원화로 따진다면 약 480만원 (미화로는 약 $3600)이지만, 현 시가를 보면 이 가치와는 거의 무관한 수집용으로서의 가격만 형성된 상태이다. 수집자들도 이걸로 중국으로부터 돈을 받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6. 비슷한 경우
비슷한 경우로, 제정 러시아는 1차대전 참전비용으로 영미프랑스에 약 30억 파운드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었으나, 10월 혁명으로 성립된 소련은 1917년 성립후 러시아 제국의 모든 채권 상환을 거부했다. 이는 1991년 소련 붕괴 당시의 시세로 원금만 수백억달러에 이를 만큼 거대한 것이었고 그 이자까지 따지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소련 붕괴후 러시아 연방은 제정러시아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이 채무에 대한 상환을 상징적으로 이행했으나 실제 갚은 금액은 이론상의 가격인 수천분의 일인 4억 달러 정도였고, 그것으로 제정 러시아의 채권은 종결되었다.청나라 채권뿐만 아니라 이렇게 파산한 국가의 채권은 ebay나 기타 수집사이트에 널려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채권 #일본제국 전시 채권 이런 채권을 후계국에 받아낸다는 시도는 위에서처럼 1987년의 중국과 영국의 사례나, 1992년 러시아 제국의 공식적인 계승을 천명한 러시아 연방처럼 후계국이 적극적이지 않은 이상 사실 거의 성공한 바 없다.
한편 북한의 국채도 1970년대 부도를 낸 후 상환되지 않은 채 수십년이 지나고 있는데, 이 채권도 현재의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휴지라고 생각되지만 청나라 채권과 마찬가지로 일부 논객들은 이것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통일되면 남한이 대신 갚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면서 채무를 승계했는데, 사실 동독의 국채는 그다지 많지도 않았고, 상당수는 서독에게 빌렸던것이라서 서독정부 자산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전범국 독일의 통일을 견제하려던 움직임도 있었기에 딱히 거절할 명분은 없었기에 서독정부가 직접 계승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북한의 국채도 전적으로 이후 통일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 "얘네는 반란으로 성립된 정권이므로 빌려준 사람이 문제고, 우리는 갚을 책임 없음"이라 주장한다면 다른 나라가 딱히 통일정부에 대해 손 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이런 국가채무 때문에 갚으라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전쟁은 극단적인 수단이 되어버렸기에, 채무국이 배째라로 버티면 받아낼 수단은 거의 없다. 여러번 부도낸 북한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가 계속 버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국채규모는 140억 달러로 일개 중견 재벌그룹 1개의 자산 정도인지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기는 하다.
[1] 링크가 걸린 슈카월드의 영상도 마찬가지인데, 앞부분에서는 전혀 가망이 없는 사안을 마치 중국이 엄청나게 물어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은 슈카도 받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2]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대신해 청나라와 영국이 맺은 난징조약을 계승한다고 발표했고, 그 화답으로 영국은 서방국가중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 결과적으로 1997년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영국에게 홍콩을 돌려받았다.[3] 2023년 현재 중국은 미국 채권을 계속 팔고 있다. 2023년초 약 850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트럼프가 이렇게 중국을 공격한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4] 복리로 계산하면 저정도 나온다고 하지만 채권은 복리가 아니다[5] 2023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천억원에 가까운데, 이것은 큰 액수이기는 하지만, 영국이 보유한 청나라 채권의 일부에 불과하다.[6] 이 때문에 영국이 중국이 홍콩에 부과하는 여러 반민주적인 조치(홍콩 국가보안법)에 서방국가들 가운데 가장 분노하는 측면도 있다. 자신들은 중국을 믿고 넘겨주었는데, 중국이 이런 신뢰를 깼다고 보는 것.[7] 6월 8일 상환발표가 있었는데 6월 11일 총선이 있었고, 이런 반대 여론을 잠재우며 선거에서 선방했다.#[8] 이슈를 다루는 유튜버들 상당수가 흥미를 위해 사안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감안하고 보는게 좋다.[9] 이런 미국 의원들의 입법활동의 상당수는 실효성의 유무에 관계없이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2021-2023년도 미국 하원에서 각 회기에 의원이 발의한 법안(bill)이 실효성을 가진 법령으로(act)로 입법화되는 경우는 기껏해야 평균적으로 10% 이하이다. #[10] 이 법안을 발의한 한 사람인 마사 맥샐리 (당시 아리조나 출신 연방 상원의원) 는 2020년 당시에 11월 재선 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반중을 모토로 삼아 재선운동을 벌였다. 경쟁 후보였던 마크 켈리(민주당)가 중국과 커넥션이 있다고도 몰아치면서 # 의회내에서 여러 반중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런 채권상환법 이외에도 코로나 19를 퍼트린 중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맥샐리는 낙선했다.) 중국에 코로나 손해배상을 청구해야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대해서 미국의 보수 잡지인 내셔널 리뷰에서도 "그게 실효성이 있겠냐"고 비웃었다. # 즉, 이 그녀가 발의한 청나라 채권법안도 이렇게 실효성없는 재선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11] 실제로 1979년 당시의 중화민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세계최빈국이 된 중화인민공화국보다 경제력이 훨씬 더 좋았다. 중국은 당시 식량이 부족해 고위당직자를 포함한 전 인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있을 정도였다.[12] 일부 유튜버나 커뮤니티글에서 이 판결을 두고, "미 국무부가 당시 소련에 맞서는 미중관계를 고려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에서 삼권분립은 철저하며, 특히 행정부가 입법부는 몰라도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림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13] 스털링은 영국 파운드화의 다른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