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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4-01 09:44:12

고토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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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 시호[1] 고토쿠 덴노(孝徳 天皇, 효덕 천황)
화풍 시호[2] 아메요로즈토요히노스메라미코토(天万豊日天皇)
카루(輕)
능호 오사카노시나가능(大阪磯長陵)
생몰 596년 - 654년 11월 24일
재위 645년 ~ 654년 11월 24일
연호 다이카(大化)→하쿠치(白雉)
황거 나니와노미야(難波宮)

1. 개요2. 행적3. 가족관계4. 왜곡된 기록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36대 천황. 휘는 카루(輕). 전대 고교쿠 덴노(皇極 天皇)의 남동생이자 사위였다. 불교를 존중하고 (천황임에도 불구하고) 신도를 가볍게 여겼으며 사람됨이 부드러우면서 인자했고 유학자를 존중했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은혜의 말이나 조서를 자주 내렸다. 9년 동안 재위한 후, 고토쿠 덴노가 붕어하자 고교쿠 상황이 사이메이 덴노(斉明 天皇)로 다시 즉위했다. 고토쿠 덴노 시절 처음으로 연호가 등장했는데, 다이카(大化)와 하쿠치(白雉)였다.

2. 행적

644년 다리에 병이 있어서 출사하지 못했으나 이전부터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의 품격과 인품이 범상치 않은 것을 알아보고 그와 친교를 맺었으며, 총비 아베씨(阿倍氏)에게 청소를 하도록 하면서 앉을 때 까는 깔개를 높이 깔아 소홀함이 없게 하면서 특별히 정중하게 대했다고 한다.

645년 나카노오오에 황자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하는 쿠데타인 잇시(을사)의 변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카노오오에 황자의 어머니인 고교쿠 덴노가 화가 나 퇴위했다. 곧바로 나카노오오에 황자에게 황위가 돌아갔지만 그는 카마타리의 조언에 따라 외숙부인 카루 황자에게 양보했다. 카루는 즉위 이후 외조카인 나카노오오에 황자를 황태자로 삼았다.

가을 7월 2일에 조메이 덴노와 고교쿠 덴노 사이의 딸, 즉 외조카인 하시히토(間人) 황녀를 황후로, 아베노 오타라시히메(阿倍小足媛)와 소가노 치노이라츠메(蘇我乳娘)를 비로 삼았다. 7월 14일 신령에게 제사를 올리고 정사를 의논하기 위해, 사람을 미노국(美濃國)에 보내 신령에게 바칠 폐백을 징발하게 했다. 8월 5일에는 국사를 임명해 그들에게 호적을 만들고 논밭의 넓이를 조사하도록 하는 등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646년 1월 1일에 연호를 '다이카'(大化)라 하고, 다이카 개신의 조를 내리기 시작해 개혁을 단행했지만 실권은 나카노오오에 황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허수아비였다. 2월부터 9월까지 개혁을 위한 각종 조를 내렸고, 647년에 7색 13계의 관제를 만들었으며, 648년에는 관위 19계를 만들었다. 649년에 신라 진덕여왕이 사탁부 사찬 김다수(金多遂)를 보냈는데 인질로 삼았으며, 650년에 흰 꿩을 헌상받자 이를 계기로 연호를 '하쿠치'(白雉)로 개원했다.

651년 겨울 12월에 아지후노미야(味経宮)에 승니[3] 2,100여 명을 초청해 경을 읽도록 했다. 652년에도 고구려 승려 혜은(惠隱)에게 《무량수경》을 강의하게 하고, 역시 고구려 승려인 혜자(惠資)를 토론자로 삼아 승려 1,000명을 대상으로 강론회를 열도록 했다. 겨울 12월에도 천하의 승니를 불러 법회를 공양했으며, 653년 여름 5월에 견당사를 보냈고, 고승 민 법사(旻 法師)에게 문병을 갔다. 민 법사가 죽자 사신을 보내 조문했다.

이전에 나니와노미야(難波宮)로 천도했는데, 나카노오오에 황자가 아스카노카와베노카리미야(飛鳥河辺行宮)로 다시 돌아갈 것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신하들이 실권을 가진 나카노오오에 황자를 따라 아스카노카와베노카리미야로 떠나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조카인 나카노오오에가 아스카로 돌아가자고 한 것을 거부하니까, 고교쿠 상황과 나카노오오에 황자 및 조정 신료들이 현직 천황을 버려두고 아스카로 강제 천도를 단행한 것[4][5]이었다. 654년 겨울 10월 1일에 고토쿠 덴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나카노오오에 황자가 황족, 공경들과 함께 나니와노미야로 갔고, 고토쿠 덴노는 10일에 정전에서 붕어했다.

3. 가족관계

4. 왜곡된 기록

일본서기》의 목적인 천황가와 유력 씨족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왜곡된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사신을 주고 받는 등 교류가 여러 차례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당시 일본의 힘으로는 이들에게 조공을 받는 것은 아니었을테고 교류 기사가 후대에 윤색된 걸로 보인다.

5. 대중매체

삼국통일전쟁의 절정기에 백제와 일본이 군사동맹이었으므로 삼국시대 한국 사극에 종종 등장했다.

<삼국기>에서는 홍승일이 연기했다. 역사 그대로 다이카 개신 세력들이 세운 허수아비로 묘사되어 조정 회의에서도 나카노오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바로 옆에서 실질적인 통수권자로 행세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연개소문>에서는 이봉규가 연기했다. 공양왕, 당 고종 등을 한없이 나약하게만 묘사하는 작가의 성향이 무색하게 이상하게 이 인물은 고압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왜국의 조정에 실질적 권력자인 다이카 개신 세력들은 등장하지 않고 이 인물만 나오며 김춘추를 질타하는 걸 혼자서 다 한다.

<대왕의 꿈>에서는 김진국이 연기했다.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고대 일본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 비구(남승)와 비구니(여승)를 동시에 일컫는 말[4] 대왕이 천도를 반대한다고 대왕을 버려둔채 조정 귀족들까지 모두 나카노오오에를 따른 것으로 보아, 전술했듯이 고토쿠 덴노에게는 아무런 실권이 없었던 듯하다.[5] 이 내용은 KBS에서 방영했던 사극 <삼국기>에서 잘 다루고 있다.[6] 이 부분의 경우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을 당하던 신라가 후방의 안전을 위해 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빌미로 일본을 압박하려 했던 정황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기사들과는 다소 속성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