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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시간대 | (UTC+1/+2) | ||||
주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
인문환경 | |||||
면적 | 56.74km² | ||||
인구 | 92,667명(2024년) | ||||
인구밀도 | 1,633명/km² | ||||
정치 | |||||
시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파비안 가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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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9만 2천여명.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북쪽 끝의 발트 해에 딸린 피오르드에 면하며, 덴마크 국경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독일에서 거의 최북단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2. 역사
13세기부터 문헌에 언급되고 자치시로 인가받았으며, 이후 슐레스비히 공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처음에는 덴마크인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후 독일인 상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해당 위치에 도시가 세워진 것은 해당 수역의 높은 청어 어획량과 함부르크-유틀란트간 무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하지만 도시 초기의 역사는 여러모로 수난이 많았는데, 플렌스부르크가 위치한 슐레스비히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권역 밖이었으며 한자 동맹의 일부도 아니었기에 무역에도 어느정도 어려움이 존재했으며 북해의 강풍과 파도는 자주 도시를 손상시켰다고 전해진다.
다만 16세기 이후 한자 동맹의 몰락으로 플렌스부르크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도시들 중 하나로 발전하였고 지중해, 그린란드, 서인도 제도 등지와도 교역하였다. 북해의 청어와 서인도제도의 설탕, 그리고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고래고기가 주로 무역되었고 추후 30년 전쟁 이후에는 플렌스부르크의 설탕 무역은 럼 무역으로까지 발전된다. 이 호황기에 더불어 플렌스부르크는 코펜하겐에 버금가는 덴마크 제2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다만 전술한 30년 전쟁에 한때 타격을 받기도 하였고 북독일 지역의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근세 시기 플렌스부르크 도심은 개신교화와 독일화가 상당수 진행되었다.
19세기 민족주의 발흥으로 슐레스비히 지역의 독일인들과 덴마크인들간 갈등 와중 비화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가 결국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종결되면서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으로 귀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전 이후 1920년, 국제연맹이 덴마크-독일 국경은 주민투표로 조정할 것이며 슐레스비히를 분단시키기로 결정, 주민투표 결과에 의해 플렌스부르크 북부의 구획들을 포함한 북부 슐레스비히는 덴마크로 넘어갔으나, 플렌스부르크 시는 절대다수가 독일 잔류를 지지하여 계속 독일에 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다른 도시들과 달리 폭격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지만 1943년엔 유치원이 폭격당하여 원생 20명이 죽고 전후 무기고 폭발로 피해가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 함락 후 나치 독일의 잔당들의 임시 정부가 이 곳에 들어서 플렌스부르크 정부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 카를 되니츠 제독이 연합국에 항복했다. 따라서 플렌스부르크는 나치 정권의 마지막 수도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전후 베이비붐과 동부 지역[2]에서 추방된 실향민들의 유입에 힘입어 1950년에는 인구가 10만을 넘기기도 했었다. 또한 전후 상당기간동안 플렌스부르크 시정은 친-덴마크계 정당들이 강세를 띄며 남슐레스비히의 덴마크 귀속을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3. 여담
- 덴마크와의 국경에 자리잡았고, 과거 덴마크의 영토였기 때문에 덴마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덴마크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덴마크어도 들을 수 있고, 덴마크어로 된 간판도 많이 볼 수 있다.
- 자서전이자 평전록인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저자이자 독일 국방군의 기갑병과 최연소 대령인 한스 폰 루크가 1911년에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3개국의 여왕이었던 마르그레테 1세가 1412년 플렌스부르크의 항구에 정박된 선박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