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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06:30:12

하워드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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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트 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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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대 제8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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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대 버몬트 주지사
하워드 브러시 딘 3세
Howard Brush Dean III
파일:Howard Dean.jpg
<colbgcolor=#003366><colcolor=#fff> 출생 1948년 11월 17일 ([age(1948-11-17)]세)
미국 뉴욕주 이스트햄튼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재임기간 제79대 버몬트 주지사
1991년 8월 13일 ~ 2003년 1월 8일
배우자 주디스 스타인버그 (1981년 결혼~)
자녀 슬하 2명
학력 예일 대학교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예시바 대학교 (의학박사)
소속 정당

종교 성공회개신교 (회중교회, 냉담자)[1]
약력 버몬트 주하원 의원 (1983~1987)
제77대 버몬트 부지사 (1987~1991)
전국 주지사 협의회장 (1994~1995)
제79대 버몬트 주지사 (1991~2003)
2004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2005~2009)
민주당 전국위원회 명예의장 (2009~현재)[2]
서명
파일:Howard Dean 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여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제79대 버몬트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 미국의 진보주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으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했다가 큰 차이로 낙선했다.

2. 생애

하워드 딘은 뉴욕버몬트를 오가며 생활하던 부유한 주식중개인 아버지와 미술평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부유하게 자라났는데, 뉴욕 고향 마을[3]에서는 중산층 정도의 위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상류층은 아니고 중상류층 정도의 집에서 자란 듯 하다. 그의 아버지는 공화당원이었으나, 록펠러 공화당원이었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딘도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1974년 그의 형이 동남아시아 여행 중 라오스 공산군에 붙잡혀 처형된 것에 충격을 받고 반전주의 성향을 띄게 된다. 하워드 딘은 유대계 부자 학교인 예시바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80년대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딘은 버몬트 주에서 가장 큰 호수인 챔플린 호수가의 콘도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자는 시민운동을 전개해 주 정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1982년, 그 경력을 바탕으로 버몬트 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4] 그는 1986년 주의회 선거에 불출마하고, 체급을 높여 부지사로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던 1991년 현역 주지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는 공석이 된 버몬트 주지사 자리를 승계받았고 1992년 주지사 선거에도 공식으로 출마해 75%를 득표하며 쉽게 당선되었다.

하워드 딘은 인기가 많은 주지사였다. 그는 버몬트 역사상 최장기 주지사가 되었는데, 임기 2년짜리 주지사 자리에 무려 5번이나 당선되어, 총 11년간 주지사로 재임하였다. 딘은 의사 경력을 살려 버몬트 주의 의료 환경을 크게 개선했는데, 십대 임신률이 그의 임기 동안 절반으로 떨어졌고 무보험 가입자도 8%대로 내려갔다. 또 시민결합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딘은 소득세가 높기로 유명한 버몬트 주의 소득세를 두번이나 낮췄고 이로 인해 그는 버몬트 주의회, 특히 버몬트 진보당과 갈등을 빚어 버니 샌더스 하원의원과는 앙숙 사이였다.

2.1.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딘은 전국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자신을 좌익 후보자로 이미지메이킹하며 유력 후보로 떠오르게 된다. 2002년 5월 ABC 뉴스는 그를 민주당 대권 주자 12명 중 4번째로 당선 확률이 낮은 후보로 소개하는 등, 사실상 딘은 스쳐가는 군소 후보 중 하나였고, 유력 후보자는 딘 게파트 상원의원이나 존 케리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터지고 부시가 큰소리 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으며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자, 하워드 딘은 가장 강력하게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 메시지를 내놓으며 주력 후보로 부상하게 된다.

2003년 11월, 한 여론조사에서 하워드 딘은 23%의 지지를 얻어, 21%의 딕 게파트, 14%의 존 케리, 10%의 조 리버만, 5%의 존 에드워즈 등을 제치고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한국 언론은 딘풍(Dean風)이라고 묘사했다. 무명의 주지사가 갑작스럽게 프론트러너로 떠오른 것은 그 옛날의 지미 카터, 빌 클린턴을 연상케했다. 그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 지지층이었다. 그는 청년 지지층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소액 기부금으로 다른 후보자들을 앞지르고 후원금 1위를 기록하며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딘의 지지율은 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딘이 주장한 "진보주의"가 딘이 주지사로서 지낸 행보와 전혀 달랐던 것이 문제였다. 조 리버만은 딘이 버몬트 주지사 시절 두번이나 소득세를 감세했으면서 진보주의자 행세를 한다며 그를 위선자라고 공격했다. 데니스 쿠시니치, 버니 샌더스 등 유력 진보 정치인들도 그를 지지하는 것을 거부했다.[5] 그가 버몬트 주지사로서 지내며 작성한 모든 문건을 퇴임 10년 후까지 개봉할 수 없게 만든 조치도 사생활에 떳떳하지 못한게 아니냐고 비판받았다. NATO 사령관 출신의 웨슬리 클라크 경선 후보는 하워드 딘의 베트남 전쟁 참전 경력을 문제삼았다. 딘은 허리 문제로 군면제를 받았는데, 웨슬리 클라크는 이를 두고 "내가 베트남 전쟁에서 다쳐 병원에 누워있을 때, 딘은 백만장자 부모님 덕분에 군대도 빼고 버몬트에서 신나게 스키를 타고 있었다!"라고 비난했다.

딘의 개인적인 성품도 문제시되었다.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촐싹대고 감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딘은 선거 기간 동안 매우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며 예비선거 상대 후보자를 향해 거침없는 네거티브를 쏟아냈다. 존 케리에게는 보톡스를 맞아 성형수술을 해 유권자들에게 잘보이려 한게 아니냐는 원색적 인신공격을 했는데, 나중에 이 네거티브를 조지 W. 부시가 케리를 공격하는데 그대로 써먹는다. 또한 "민주당 후보로 지명받더라도, 조지 W. 부시와 정책적인 면에서는 아니더라도 인품 면에서는 이웃집 아저씨 대하듯 친근하게 지냈으면 좋겠다"[6]라는 유권자의 말에 "조지 W. 부시는 이웃집 아저씨로서도 최악인 전쟁범죄자, 학살자"라고 대답하며 매정하고 오만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여기에 아이오와 코커스에서의 매우 형편 없는 자금 활용까지 더해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2위도 아니고 3위를 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하워드 딘을 몰락시킨 "딘 비명" (Dean Scream)
하워드 딘은 아이오와 코커스 패배 수용 연설을 하면서 딘 비명(Dean Scream)이라 불리는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캠페인을 그야말로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예상치 못한 패배에 숙연한 대신 흥분하여 자신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구 말을 쏟아붓다가 "이야!"하는 비명을 질렀는데 이는 모든 언론과 인터넷에 도배되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딘은 진지한 대권주자 이미지를 잃고 몰락한다. 나중에는 딘 스스로도 셀프디스했을 정도.. #

"딘 비명"은 여러 연구주제로 남았다. 이 사건은 최초의 인터넷 정치 밈(Meme)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하워드 딘의 비명 소리가 너무 기괴했던 탓에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필수요소로 편집,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주류 언론은 딘의 실패 원인이나 정책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대신 딘의 비명소리만 반복적으로 보도하면서 딘을 조롱하는 데에 주력하는 가차 저널리즘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언론의 "경마식 선거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분석된다. 허나, 결국 딘이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에 밀려 탈락하게 된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실책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2.2. 그 이후

비록 하워드 딘은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눈여겨 보고 선거를 총지휘하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의장의 자리에 딘을 앉힌다. 하워드 딘은 성소수자, 유색인종, 청년, 인텔리 계층을 잇는 광범위한 "진보주의자 계층"을 형성해 소액 기부만으로 엄청난 후원금을 끌어모으는 방식으로 2004년 대선 예비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결국 실패했지만, 과거 로버트 F. 케네디가 처음 시도했고, 조지 맥거번이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조지 맥거번이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패배하면서 이 구상은 한동안 잊혀졌으나, 하워드 딘은 이를 처음으로 체계화하여 21세기에 맞는 "민주당 진보주의자 후원자 계층"을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2006년 미국 중간선거를 총지휘하면서, 조지 W. 부시의 실정에 분노한 다양한 사회 계층을 투표장에 끌어내 1994년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의 가장 큰 승리를 이끌어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는 더욱 체계화되었다. 청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슈퍼팩의 지원 없이 청년층 소액기부만으로 후원금 한도를 채우는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 하워드 딘의 선거 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버락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같은 날 치러진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압승하며 하워드 딘은 민주당 선거전략의 전설이 되었다. 2009년, 그는 DNC 의장에서 물러나 상임고문 직으로 돌아갔는데, 공교롭게도 이후 민주당은 하락세를 타게 된다.

2016년 대선에서 그는 재출마를 고려했으나, 힐러리 클린턴을 예비 선거에서 지지했다. 이는 버니 샌더스와의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82 미국 버몬트주 하원의원 선거 치텐덴 7-4구

596 (66.4%) 당선 (1위) 초선
1984 미국 버몬트주 하원의원 선거 1,092 (98.9%) 재선
1986 미국 버몬트 부지사 선거 버몬트 99,929 (52.54%) 초선
1988 미국 버몬트 부지사 선거 154,660 (66.51%) 재선
1990 미국 버몬트 부지사 선거 120,956 (58.11%) 3선[7]
1992 미국 버몬트 주지사 선거 213,523 (74.73%) 초선
1994 미국 버몬트 주지사 선거 145,661 (68.69%) 재선
1996 미국 버몬트 주지사 선거 179,544 (70.51%) 3선
1998 미국 버몬트 주지사 선거 121,425 (55.67%) 4선
2000 미국 버몬트 주지사 선거 148,059 (50.45%) 5선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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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좌파적 경제관(경제적 진보주의) 한정. 중도우파인 사회적 의제(온건 사회보수주의)는 현대자유주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주의와도 구별된다.
파일:노란색 깃발.svg 자유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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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의 무종교에 가까운 성향이다. 아내와 두 아이는 유대교를 믿지만 딘 자신은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책인 욥기를 신약성서로 착각하는 등(...) 신앙심이 약하다.[2] 상임고문과 비슷한 위치로, 민주당의 공식적인 직책이나 선출직은 아니다. 한마디로 명예직.[3] 미국에서도 상위 1% 부자만 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뉴욕 주 이스트햄튼이다.[4] 연방하원의원이 아니라 한국의 도의원 급에 해당하는 주하원의원이다.[5] 사실 1996년 하원의원 선거에 샌더스가 출마했을 때 딘이 샌더스 지지를 거부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고 볼 수도 있다.[6]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최악의 평가를 받지만, 별개로 조지 W. 부시의 개인적 인품은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7] 1991.8.13. 주지사직 승계[8] 실제로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딘을 좌파포퓰리스트로 분류하고 있다.#[9] 샌더스와 정말 사이가 좋은 민주당의 선대 정치가는 조지 맥거번이었다. 말년의 맥거번은 샌더스가 하원의원이었던 시절 버몬트의 북 콘서트에서 샌더스를 치켜세우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