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fefe01> | 한신 타이거스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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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fefe01><colcolor=#fefe01,#000000> 모기업 관련 정보 | 한신 전기철도 · 한큐한신토호그룹 | |
연고지 관련 정보 | 간사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일대 · 오사카부 오사카시 | |
일본시리즈 우승 ★★ | 1985 · 2023 | |
리그 우승 (10회) | 1937 추계 · 1938 춘계 · 1944 · 1947 · 1962 · 1964 · 1985 · 2003 · 2005 · 2023 | |
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7 · 2008 · 2010 · 2013 · 2014 · 2015 · 2017 · 2019 · 2021 · 2022 · 2023 · 2024 | |
시즌별 요약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2025 | |
구단 상세 정보 | 역사 · 선수단 · 역대 등번호 · 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사건사고 · 한신아재 · 커널 샌더스의 저주 · JFK · 암흑기 | |
주요 인물 | 감독 후지카와 큐지 · 선수회장 나카노 타쿠무 | |
주요 명장면 | 백스크린 3연발 ·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소요 경기 ·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 고의사구 끝내기 안타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 |
경기장 | 1군 한신 고시엔 구장 · 고시엔 기간 교세라 돔 오사카 · 2군 닛테츠코한 SGL스타디움 아마가사키 · 과거 2군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 지방구장 머스캣 스타디움 · 춘계 캠프 기노자촌 야구장 · 추계 캠프 아키 시영구장 | |
홈 중계 채널 | ||
기타 정보 | 한신 본선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 전통의 일전 · 도쿄온도 · 죽음의 원정 | |
틀 문서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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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신 타이거스가 1987년부터 2002년까지 겪은 암흑기에 대해 서술한 문서.2. 상세
한신 타이거스는 2023년 일본시리즈 이전까지 일본시리즈 제패 경력이 1985년 딱 1번뿐이었던 데다[1], 무엇보다 같은 센트럴 리그에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존재감에 가려져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가끔씩 부침을 겪긴 해도 리그에서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는 강팀이지만 이 항목에서 서술할 1987년부터 2002년까진 1992년을 제외하곤 전부 B클래스, 그 중 무려 10시즌이 최하위(6위)라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었다. 지금의 주니치 드래곤즈가 겪는 암흑기의 원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2.1. 1986년 : 3위 - 암흑기의 전조
대망의 첫 일본시리즈 제패를 뒤로 하고 맞이한 1986년은 개막 4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는 것도 모자라 시즌 초반부터 4번 타자 카케후 마사유키가 손가락 골절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 악재 속에서도 2년 연속 타격 삼관왕을 수상하는 랜디 바스와 마유미 아키노부, 오카다 아키노부 등 다른 주축 타자들의 분발 속에서 한때 전반전 막판에 9연승을 기록하는 등 1위 히로시마 토요 카프와의 승차를 3게임차까지 좁히며 우승 경쟁을 향해 달려갔으나, 후반전부터 점차 힘이 빠지더니 8월에 6연패를 당하며 우승 경쟁에서 미끄러졌고 결국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승패마진을 계속 까먹은 끝에 정확히 5할 승률을 기록(60승 60패 10무)하며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타선에선 상술했듯 바스와 마유미, 오카다 등의 활약으로 작년과 같은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어도 팀 타율 1위(.271), 득점 2위(574점)를 기록했으나, 반대로 투수진은 리그에서 유일하게 선발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2] 주축 선발이었던 리치 게일이 5승 10패, 나카다 코지가 7승 12패에 그칠 만큼 허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우승을 했던 지난 해에도 선발진 전원이 평균자책점 4점대에 그쳤던 것을 맹타선과 계투들의 활약으로 메꾼 덕에 우승까지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당시 한신의 선발 투수진 자체가 튼튼하진 않았지만 이 해엔 그 단점이 더 심화된 셈. 그나마 팀 평균자책점 자체는 지난 해보다 낮은 3.69로 리그 3위를 차지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개선되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3. 암흑기
3.1. 1987년 : 6위
작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맞이했던 1987년에도 우승 후보로 손꼽는 여론이 있었으나, 시범경기가 한창이던 3월 22일에 지난 해 손가락 골절로 아쉬운 성적에 그친 카케후 마사유키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대형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5일 후인 3월 27일엔 랜디 바스가 속도 위반으로 검거되며 주포 2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는 추태로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그렇게 뒤숭숭한 상태에서 맞이한 시즌 초반부터 팀은 2번이나 8연패를 당하며 초반부터 일찌감찌 최하위로 처지더니 그대로 추락을 거듭하며 시즌 도중 요시다 감독과 불화를 빚었던 타격코치 보좌 담당 타케노우치 마사시가 중도 퇴단하기까지 했고, 올스타전 직전엔 승패마진이 무려 -35, 5위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와도 10게임차의 압도적인 최하위라는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한신은 전반전을 말아먹은 그대로 후반전에서도 반등하지 못한 채 최종적으로 41승 83패 6무, 승률 .331에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는 무려 37.5게임차의 압도적인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으며, 당해 기록한 승률 .331은 현재까지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승률로 남아있다.
타선에선 랜디 바스가 타율 .320/OPS 1.011 35홈런 79타점으로 맹활약했지만 지난 2년 간의 압도적인 활약과는 거리가 있었던 데다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휘말린 건 물론 부상 후유증까지 겹치며 타격 부진에 허덕인 카케후 마사유키를 비롯한 다른 타자들의 타격 성적이 크게 하락하면서 팀 홈런(140개)은 리그 5위, 팀 타율(.242)과 득점(437점)은 리그 최하위에 그쳤고, 투수진은 11승을 거둔 새 외국인 투수 맷 키오와 나카다 코지가 선발진에서 분투했으나 나머지 투수들이 무너져내리면서 팀 평균자책점도 다시 4점대로 올라가는 등(4.36, 리그 5위) 투타의 전반적인 성적 하락이 팀의 처절한 몰락을 부르고 말았다.
결국 요시다 요시오 감독은 팀의 추락에 책임을 지고 3년 만에 퇴임했으며, 이 시즌부터 본격적인 암흑기가 막을 열었다.
3.2. 1988년 : 6위
1960년대 한신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로써 요시다와 함께 영구결번된 팀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1970~1972년에 선수 겸 감독을 맡았던 무라야마 미노루가 16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무라야마 감독은 취임과 함께 와다 유타카, 오노 히사시, 나카노 사토루 등 일명 소년대[3]라 불리는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리빌딩을 천명했고, 젊은 선수들의 기용이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시즌 초반엔 2위 경쟁을 벌였으나 5월 말부터의 8연패를 시작으로 또 다시 팀 성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시즌 도중인 6월 27일에 랜디 바스가 아들의 치료비 문제를 두고 구단과 불화를 일으켜 중도 퇴단하면서 주포를 잃어버린 타선이 문자 그대로 물방망이로 변해버린 데 이어 한 달 뒤인 7월 19일엔 당시 막 구단 대표로 취임했던 후루야 신고가 바스의 계약 문제로 심한 마음고생을 겪다가 출장지였던 도쿄도 내 호텔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건까지 터지는 등 구단의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결국 성적과 분위기 모두 최악으로 흘러간 한신은 끝내 51승 77패 2무, 승률 .398의 성적으로 우승팀 주니치 드래곤즈와 29.5게임차의 압도적인 2년 연속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바스의 중도 퇴단의 여파로 팀 홈런이 82개로 폭락하며 리그 최하위는 물론 1966년 이래 처음으로 100개 미만에 그쳤고 팀 득점 역시 리그 최하위(444점)를 기록했다.
3.3. 1989년 : 5위
새 외국인 선수로 프린스 필더의 아버지 세실 필더를 영입하며 시작한 1989년 역시 시작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히로시마 토요 카프가 우승 경쟁을 할 동안 나머지 4팀과 하위권에서 치고받는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역시나 오래 버티지 못한 채 6월부터 다시 추락해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와 꼴찌 다툼을 벌이는 신세가 되었고, 그나마 9월 이후엔 17승 15패로 그럭저럭 선등하며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54승 75패 1무 승률 .419, 최종성적 5위로 시즌을 마쳤다.새 외국인 세실 필더가 타율 .302/OPS 1.031 38홈런 81타점으로 바스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꿔줬고, 여기에 야기 히로시가 대두하며 16홈런을 치는 등 팀 홈런은 135홈런(3위)로 바스 없는 아이들 수준이었던 지난 해보다 크게 늘어났으나 타선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팀 득점은 리그 5위에 그쳤고, 투수진도 여전히 심각하게 부족해서 15승을 거둔 맷 키오와 시즌 도중 선발 투수로 전향해 10승을 거둔 나카니시 키요오키 외엔 믿을 만한 투수가 없었던 것이[4] 팀의 발목을 잡았다.
시즌 종료 후 무라야마 미노루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2년 만에 사임했으며, 여기에 세실 필더가 구단과의 계약 문제를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1년 만에 퇴단하며 한신은 기껏 얻은 새 주포를 고작 한 시즌만에 잃게 되고 말았다.
4. 본격적인 암흑기
이렇게 80년대 말을 말아먹으며 1991 시즌까지 B클래스에 처박혀 있다가, 1992 시즌엔 센트럴 리그가 대 혼전의 양상을 띄는 사이 한 때 리그 선두까지 올라가면서 암흑기 탈출을 꿈꾸나 했지만, 마지막에 끝내 무너지면서 교진군과 공동 2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그 시즌 승률은 67승 63패 2무 .515로 상당히 낮았다. 성적은 3665662.여담으로 하마오카 켄지 작가의 출세작인 4학년 1반 차렷!에서는 9권의 마지막 에피소드(131화 '내 인생을 걸고!') 주연 여섯 캐릭터가 1992년 센트럴 리그 순위에 따라 1위 팀을 응원한 사람은 단행본 단독 표지 모델이 되고, 꼴찌 팀을 응원한 사람은 뿌뿌별로 가서 한달 동안 만화 출연 금지 벌칙이 주어지는 내기를 했는데[5], 이때 주인공 카나가와 켄은 한신, 반장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키요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지는 주니치 드래곤즈, 부는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분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응원했다.[6] 결과는 노무라 카츠야 감독의 지도 하에 명포수로 성장한 후루타 아츠야가 맹활약한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완결권인 11권의 단독 표지는 반장이 차지했고, 부가 뿌뿌별로 가는가 싶었는데, 막판 뒤집기로 주니치가 꼴찌가 되면서 코지도 함께 가게 되었다.[7]
5. 1993~1997 시즌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비밀번호인 4466566664가 시작되었다.1993년 4위를 시작으로 한신 최악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1993년 마츠나가 히로미가 들어왔으나, 개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 이탈을 하였고, 결국 먹튀가 되었다. 팀도 4위로 마감. 1994년에는 와다 유타카가 기량이 만개해 타율 .318을 기록하며 분전했고 토마스 오말리도 3할을 치는 등 타선이 나름 열심히 했으나, 투수진이 받쳐주지 못해 4위를 차지했다. 1995년 시즌 전 토마스 오말리가 야쿠르트로 이적, 그 공백이 그대로 드러나며 급격히 팀이 무너졌고 46승만을 거둬 결국 최하위로 추락했으며, 1996년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엔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역대 최악의 먹튀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때는 5위로 마감했다. 문서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때 5위를 안 했으면 8888577이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우습게 보일 수준의 7년 연속 최하위가 가능했을 지경이었다.
6. 1998~2001 시즌
1998~2001 4시즌은 침체기의 절정이었다. 와다 유타카, 야기 히로시는 에이징 커브와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8], 트레이드로 입단한 타이호 야스아키와 야노 아키히로가 중심을 잘 잡아줬지만 그 두 명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1999년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강팀의 반열에 올린 노무라 카츠야가 감독직을 맡았으나, 성적은 666.7. 2002 시즌
2002년,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이 시즌엔 두 계단이나 순위가 올라가서 4위가 됐다.8. 암흑기의 종결, 2003 시즌
2003 시즌을 앞두고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카네모토 토모아키를 FA로 영입했다. 암흑기 기간 동안 모아 둔 유망주들이 한 번에 터지고, 외국인 농사도 나름 성공하였으며, 베테랑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면서, 2003년 9월 15일, 한신 타이거스는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암흑기를 끝냈다.9. 비밀번호 종결 그 이후
2003년 일본시리즈에 진출한 한신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 대결하였으나, 3승 4패로 끝내 일본시리즈 정상을 탈환하지 못했다. 2004년 B클래스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 한신은 2005년엔 타선에서 대폭발한 카네모토 토모아키와 이마오카 마코토의 맹활약 속에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33-4였다.2008, 2010년에도 리그 우승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2008년엔 2위와 13경기 차에서 요미우리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9]하였고, 2010년에도 주니치에 아슬아슬하게 밀려 2위를 차지하면서 체면을 구겼고[10], 2009년과 2011, 2012년에는 B클래스를 기록했다. 2013년에도 2위를 차지하였으나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2경기 모두 내주면서 체면을 구겼다. 2014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넘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니시오카 츠요시가 3피트 라인 위반을 했다. 이후의 역사는 한신 타이거스/역사를 보면 된다.
그래도 2014년 뒤로는 단 2번을 제외하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나오면서 어느 정도 중상위권팀임은 증명이 되었다. 다만 공백이 40년이 임박했기에 이제 똑같이 10자리 비밀번호를 기록한 LG 트윈스처럼 우승이 간절한 상황이였고, 드디어 그 간절한 우승을 하게 되었다.[11][12]
9.1. 비밀번호 기간의 성적
연도 | 정규 시즌 순위 | 경기 수 | 승 | 패 | 무 | 승률 | 비고 |
1993 | 4위/6팀 | 132 | 63 | 67 | 2 | .485 | |
1994 | 4위/6팀 | 130 | 62 | 68 | 0 | .477 | |
1995 | 6위/6팀 | 130 | 46 | 84 | 0 | .354 | 시즌 중 나카무라 카츠히로 감독 사임, 후지타 타이라 대행 |
1996 | 6위/6팀 | 130 | 54 | 76 | 0 | .415 | 시즌 중 후지타 타이라 감독 사임, 시바타 타케시 대행 |
1997 | 5위/6팀 | 136 | 62 | 73 | 1 | .459 | 요시다 요시오 3기 감독 시절 |
1998 | 6위/6팀 | 135 | 52 | 83 | 0 | .385 | |
1999 | 6위/6팀 | 135 | 55 | 80 | 0 | .407 | 노무라 카츠야 감독 부임 |
2000 | 6위/6팀 | 136 | 57 | 78 | 1 | .422 | |
2001 | 6위/6팀 | 140 | 57 | 80 | 3 | .416 | 이 시즌부터 무승부 재경기 제도 폐지 |
2002 | 4위/6팀 | 140 | 66 | 70 | 4 | .485 | 호시노 센이치 감독 부임 |
통산 10시즌 최하위 6회 | 1344 | 574 | 759 | 11 | .431 | 4위 3회, 5위 1회, 6위 6회 |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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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
한신 타이거스/암흑기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암흑기 |
주니치 드래곤즈/암흑기 |
비밀번호에 대한 정보는 비밀번호(스포츠)를 참고 |
[1] 이것도 양대리그 이후의 얘기지, 단일리그 시절엔 4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난카이 호크스와 함께 자이언츠의 독주를 유이하게 저지하던 팀이었다.[2] 그나마 10승 투수는 딱 1명을 배출했는데 이마저도 베테랑 마무리 투수였던 야마모토 카즈유키가 팀내 최다승+최다세이브(11승 15세이브)을 기록한 것이었다. 여담으로 지난 해인 1985년에도 팀내 10승 투수 중 한 명이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나카니시 키요오키(11승 19세이브)였다.[3] 항목에 있는 1980년대 쟈니즈의 유명 아이돌 그룹에 빗댄 별명이다.[4] 그 와중에 마무리 투수를 맡던 나카니시를 시즌 도중 선발 투수로 전향시킨 게 반대로 마무리 투수가 없어서 졸지에 집단 마무리 체제로 시즌을 치르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5] 이 중 뿌뿌별로 가는 벌칙은 완결권인 11권에 수록된 150화에서 결정되었다.[6] 분타는 오사카 출신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신은 아니다'고 생각해서 카프를 응원했다. 그리고 1991 시즌에서 뇌종양 투병 생활을 한 츠다 츠네미를 위해 히로시마 선수들이 일체 단결하여 리그 우승을 거둔 것도 있었고.[7] 리그 최종 순위가 발표되기 직전, 그때까지 꼴찌 팀이었던 타이요를 응원한 부가 뿌뿌별로 갈 거라고 상정하고 원고 작업을 한 바람에 생긴 해프닝. 최종화인 165화에서는 결국 코지도 뿌뿌별로 갔다. 여담으로 리그 최종 순위가 발표된 에피소드는 최종화 직전의 에피소드였다고 하며, 작가는 단행본 11권에 수록된 150화의 에피소드 한줄 평에서 '미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라는 멘트를 남겼다.[8] 그래도 야기 히로시는 전문 대타로 2004년까지 활약했다.[9] 이 때 이승엽에게 많이 두들겨 맞았다.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이 먹튀 치고는 이미지가 좋은 것도 2006 시즌에 사실상 팀을 캐리한 것 외에도 이 시즌 13게임차 역전 우승에 기여한 바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팀도 아니고 숙적 그 자체인 한신에게 일궈낸 역전이니 그럴 만도 하다. KBO 리그로 비유하자면, FA로 비싼 돈을 받고 LG나 두산으로 와서, 다른 팀한테는 부진한데 라이벌 팀에게는 천적 수준으로 강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10] 사실 2010년에는 2위를 한 것보다도 다른 게 체면을 제대로 구겼으니...[11] 같은 해 LG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12] 상술한 서쪽의 줄무늬 팀과 공통점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10년간 이어진 암흑기를 끊어낸 이후엔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가면서 재도약을 착실히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