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0313f><colcolor=#ffffff> 햐쿠타케 하루키치 百武 晴吉|Harukichi Hyakutake | |
출생 | 1888년 5월 25일 |
일본 제국 사가현 | |
사망 | 1947년 3월 10일 (향년 58세) |
일본 도쿄도 | |
소속 | 일본 제국 육군 (1909년 ~ 1945년) |
최종 계급 | 중장 |
학력 | 일본육군사관학교 (21기) |
참전 |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
1. 개요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2. 생애
사가현 출신이며 1904년 육군사관학교 21기에 입교했다. 1909년 9등으로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1] 1921년 육군대학교도 수료했다. 1922년 참모본부의 참모로 복무했으며 폴란드군 얀 코발레프스키에게 암호학을 배웠다. 1925년부터 2년간 폴란드로 유학갔으며 귀국 후 암호반장으로 임명되었다.1928년 중좌로 진급해 관동군 특무기관으로 배치되었다. 1932년 대좌로 진급해 육군통신학교 참모를 지냈다. 1933년 과장으로 영전했으며 1935년 한반도에 배치된 제20사단 제78연대장으로 부임했다. 1년 뒤 제5사단 참모로 배치되었다가 히로시마육군유년학교장에 취임했다.
1937년 소장으로 진급해 통신학교장으로 취임했으며 1939년 제4독립혼성여단장으로 임명되어 중국전선에 투입되었다. 1940년 제18사단장, 1941년 신설된 통신감에 취임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남태평양 전선 제17군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뉴기니 공략을 담당했다. 당시 참모장은 츠지 마사노부였다. 과달카날 전역, 부건빌 전역, 솔로몬 전역에 참가했으나 패배하여 정글 속으로 숨어있었다.
1945년 2월 뇌출혈로 쓰러져 임무수행이 불가능하자 귀국했고 의식이 깨어난 후 얼마 안 가 종전을 맞이했고 저서를 집필했으나 뇌출혈이 재발해 1947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