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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녹십자 GC Biopharma Corporation | ||
설립일 | <colbgcolor=#fff,#191919>1969년 11월 1일 | |
업종명 | 완제 의약품 제조업 | |
대표자 | 허은철 | |
위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이현로30번길 107[1] | |
상장유무 | 유가증권시장 | |
기업규모 | 중견기업 | |
종목코드 | 006280 | |
매출액 | 1조 3,697억원 (2019) | |
영업이익 | 403억원 (2019) # | |
순손실 | -113억원 (2019) # | |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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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약회사. 본사 및 연구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2]에 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읍(오창공장),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음성공장),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화순공장)에 공장이 있다.한일시멘트의 창업주 허채경 회장의 장남 허정섭이 한일시멘트를 이어받고 차남 허영섭이 GC녹십자를 이어받았다. 허채경 회장의 지분투자가 GC녹십자의 시작이었고 차남 허영섭은 이후 입사했으나 허영섭 회장이 실질적 창업주의 역할을 했고 오늘날의 GC녹십자 그룹이 있게한 장본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2009년 작고한 허영섭 회장의 뒤를 이어 그의 동생 허일섭 회장과 허영섭 회장의 삼남 허용준 부사장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핵심 계열사인 녹십자는 허영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2. 사명
국제적십자사라든지, 또는 국제녹십자와 이미지가 비슷하여 비영리 단체나 공기업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이들과는 관계 없는 영리목적의 사기업이다. 처음에는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로 시작해 1971년 지금의 (주)녹십자로 상호변경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으니, 1993년 설립된 국제녹십자와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 녹십자와도 별개 회사지만, 초창기에는 명칭 사용에 대한 양허는 있었고 기술 교류 정도의 관계는 있었다.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2018년 2월 47년만에 새 CI와 브랜드를 발표하였다.[3] 따라서 CI는 녹색 십자가 모양에서 위에 있는 붉은색과 녹색이 조합된 모양으로, 브랜드명은 녹십자에서 GC녹십자로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CI와 브랜드를 10년만에 대대적인 TV 광고도 실시하였다. 다만 회사(법인) 명칭이 변경된 것은 아니고 그대로 (주)녹십자이다.
3. 주요 사업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받은 혈액을 분획 제조한 혈액제제 매출이 가장 크고 백신 매출도 독감 백신 수출 등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판에 버금가는 수출 매출을 기록할만큼 해외 인지도만큼은 셀트리온과 함께 상당한 편. 1979년 대한민국 제약사 최초 수출 1천만 달러 달성했다. 혈액제제로는 글로벌 TOP5 기업으로 전량 수입하던 알부민의 국산화를 1970년대에 이뤄냈다.자사 제품을 해외 50개국 이상에 수출 해외에서 알아주는 한국 제약사.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이 '2010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선정되는 등 상당히 전망 있는 기업. 1983년 세계에서 3번째로 B형간염 백신에 성공했다. 또한 군대에서 맞는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도 세계 최초로 개발, 한국 백신 선도 기업이었으나 SK 그룹 특유의 M&A를 통한 사업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동신제약을 인수해 탄생한 SK 바이오사이언스에 주요 개발자 뺏기고 코로나19 백신 국책사업도 내줬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80년대까지는 학교나 공원 등의 공용 남자 화장실에는 개인 소변기가 없었고, 2020년대 기준으로는 낙후된 군 훈련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멘트 벽을 치고 바닥에 일자로 홈을 파 놓았을 뿐이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녹십자 마크가 붙은 소변을 모으는 플라스틱 통이 놓이기 시작했다. 소변에서 뇌졸중, 심근경색, 혈전색전증 등의 치료제로 쓰이는 혈전용해제인 유로키나제의 원료를 추출하기 위해 수거하는 것이었다. 이 소변 수거통은 1980년대 이후 각종 비뇨의학과 질병과 성병의 유행으로 양질의 소변을 얻기 힘들어지자 사라졌고, 이후 중국 등지에서 소변을 수입하여 제조하다가 2000년에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평양에 '정성녹십자제약센터'를 설립해 북한 측에서 공장 부지와 원료를 공급하고, 녹십자 측에서 생산 설비와 기술을 담당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 생산 설비 추가 제공과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등 지나친 땡깡을 부리자 녹십자가 북한에 파견한 직원들을 철수시켰고, 이후 북한의 기술 부족으로 생산된 약의 품질이 개판이 되면서 2006년에 합작관계가 중단되었다. 이후 해당 공장은 북한 당국에서 제약 공장으로 굴리고 있다고 한다.
2015년 1조원 매출 돌파를 이뤘다. 이전까지 한국의 제약사들은 역사는 제법 길어도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고 내수에만 의존하고 신약 개발은 커녕 복제약도 없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약만 가져다 파는 도매상에 가까워 경쟁력이 영 좋지 않았다. 이런 기형적인 한국 제약산업 구조에서도 녹십자는 1조 매출의 대부분을 자체 개발하고 한국에서 생산하는 바이오 의약품 혈액제제, 백신으로 이뤄낸거라 더 의미가 있다고 평가 받는다. 대신 알약으로 통용되는 경구제 시장에서는 입지가 약했었고 최근 오너가 단독 경영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면서 뒤늦게 만성질환 경구제 시장 제·상품을 도입하고 있다. 현실은 한미약품, 유한양행, 종근당, 대웅제약 등 기존 경구제 우위 업체는 물론 중소제약사에게도 시장점유율에서 밀리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현 경영진은 경영, 연구 출신으로 제네릭 시장 영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꽤나 헤메고 있다는 게 대내외 중론.
2016년부터 제약업 매출 2위로 한국 굴지의 중견기업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통한 일동제약 인수에 실패하며 2015년 3위에 처지기도 했었다.수출과 고가의 원내 혈액제제 제품과 백신 상품 매출 비중이 크고 기존의 TV 광고 없는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에서는 공기업으로 착각할만큼 매출 규모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 그럼에도 업계 2위 매출을 하는 걸 보면 혈액제제와 백신의 독과점 시장을 선점 확실한 캐쉬카우를 확보한 전략이 주요했던 듯.
본격적인 오너가 단독 경영에 돌입하며 기존 과점 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하지면서도 상대적으로 개발이 빠른 경구제 경쟁시장에도 뛰어들어 파이프라인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회사 이미지 광고는 물론 일반의약품 TV 광고도 집행하며 비용이 들더라도 인지도를 높이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정했다.
내부적으로는 공채를 없애고 연공서열을 탈피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시스템 개선에 힘쓰고 있다. 호봉제와 비슷한 유사 연봉제를 유지해왔지만 연봉 자체는 업계에서도 짜다고 소문이 났었고 이에 진짜 능력에 따른 연봉제로 제대로 된 임금을 주겠다며 연봉체계에 칼을 댔다. 신종플루 당시 백신으로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에 걸맞은 시스템 구축은 게을리 하다 이제야 정비하는 중이다.
4. 계열사
- GC
- GC파마
- GC케어
- 유비케어
- GC녹십자웰빙
- GCCell [4]
- GC지놈 [5]
- GC녹십자EM
- GC녹십자인백팜
- GC녹십자엠에스
- GC녹십자메디스
- MOGAM
- 녹십자의료재단
- 녹십자아이메드
- GC China
- GC China Pharm
- GCBT
- GCAM
- GC LabTech
- Curevo
- GCCL[6]
- 진스랩 [7]
- 헥톤프로젝트
5. 인수 합병
- 2003년에 대신증권 계열의 대신생명을 인수 자회사로 녹십자생명을 포함시키며 종합 건강 그룹의 비전을 그렸던 적이 있다.[11]
- 2020년 병의원 EMR 및 헬스케어 솔루션 판매 회사인 유비케어를 인수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으로의 확장 및 녹십자 의료재단 및 자회사들과의 시너지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사업계획 정보 공시가 없는 인수로 어떤 결과를 낼지는 미지수. 녹십자 생명은 매각을 통한 이익을 봐 외부에서는 성공한 인수로 평가받지만 내부에서는 경영 실패 사례로 평가 받는다. 다 같은 헬스케어니까 뭐든 시너지가 나겠지 하는 막연한 인수라면 녹십자 생명의 망테크를 타지 말란 법은 없는 법이다.
- 신약 개발과 자사 의약품 아이비 글로불린의 미국 FDA 허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의료정보 회사의 인수와 활용은 현 CEO의 입지를 가를 매우 중요한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6. 오너일가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기업 가문 문서의 한일시멘트그룹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 사건 사고
7.1. 에이즈 사건
1991~1993년 사이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보균자의 혈액을 이용해서 만든 혈우병 환자 약이 시중에 유통되어 혈우병 환자 20여명 이상이 에이즈에 걸려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다행히 2013년 11월에 합의를 보는 것으로 해결되었다.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일본의 녹십자(미도리쥬지)도 10년 전인 1980년대에 같은 사고를 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일본의 경우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 생체실험 정황이 밝혀져 일본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짓을 주동한 인간들이 구 731부대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항목 참조. 당연하지만 한국 GC녹십자와는 관련없는 사건인데, 가끔 일본 녹십자와 한국 녹십자를 착각해서 뻘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현재도 가끔 있다(...)
7.2. 백신 구매 입찰 담합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는 1개 백신제조사〔㈜글락소스미스클라인〕, 6개 백신총판〔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행위에 대하여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 원(잠정금액)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8. 여담
- 코로나 19 혈장치료제 상용화를 확신하는 CEO의 발언이 나왔다. 혈장치료제 개발로 2009년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이어 또 한번의 퀀텀점프를 이룰 수 있을 지 기대된다.
- 2020년 1분기 셀트리온에 이어 한국 바이오 매출 2위를 기록했다. 2020년 한국 바이오 매출에서 유한양행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 의견에 따라 3강 중 누가 대권을 차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기업 계열사지만 바이오 업계에서는 아직 1조 돌파도 못한 기업으로 한국콜마,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보다 못한 상태다.
- 2021년 6월 5일, 코로나19 혈장치료제에 대한 허가신청을 스스로 취소했다.
[1] 본사 주변 부지를 계속 매입 중으로 녹십자 랜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제약회사 본사 부지 중에는 최대 면적을 자랑하고 자회사 녹십자EM을 통해 최근 셀센터를 완성지으며 경부고속도로에서도 녹십자의 위엄을 느끼게끔 유도함.[2] 용인플랫폼시티 부지 내에 위치한다. 다만 GC녹십자가 용인플랫폼시티 내로 이전해 온 것은 아니고, 용인플랫폼시티 계획 전부터 GC녹십자가 위치해 있던 것이다.[3] 기존 CI가 미국 내 마리화나 판매점과 비슷해 좋지 않은 방문이 이어지고 있고 몇몇 국가에선 병원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이유(실제로도 대부분의 병원들이 저런 심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로 사용을 금하여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모임원이 해명(?)하기도 했다.[4] 2021년 11월 GC녹십자랩셀과 GC녹십자셀 합병[5] 2022년 3월에 사명이 GC녹십자지놈에서 GC지놈으로 변경되었다.# 왜 변경되었는지는 기존 사명을 발음해보면 알 수 있다.[6] 2019년 GC녹십자랩셀이 임상시험 수탁기관과 손잡고 임상시험 검체분석 전문기관을 설립했다.[7] 분자진단회사로 2021년 GC녹십자 홀딩스에서 인수하였다[8] 이 회사도 GC녹십자와 같은 시기에 설립되었으며 자회사는 자동차 관련 용품을 생산한 상아앤드참을 보유하고 있었다.[9] 현 녹십자 음성공장이 옛 상아제약의 공장이었다.[10] 인수 이후 상아제약은 건강기능식품, 다이어트 및 미용 제품, 의료기기 제품 판매 및 개발에 주력하게 된다.[11] 이후 녹십자생명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여 2012년에 현대라이프를 거쳐 2018년 9월 대만의 푸본금융그룹에 인수되면서 현재의 명칭인 푸본현대생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