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J. 심슨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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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브라운 (워싱턴 레드스킨스) | → | O. J. 심슨 (버팔로 빌스) | → | 켄 스테이블러 (오클랜드 레이더스) |
O. J. Simpson O. J. 심슨 | |
<colbgcolor=#000000,#000000> 이름 | 오렌설 제임스 심슨 (Orenthal James Simpson) |
출생 | 1947년 7월 9일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 |
사망 | 2024년 4월 10일 (향년 76세) |
미국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배우자 | 마거리트 휘틀리 (1967년 결혼 / 1979년 이혼) 니콜 브라운 심슨 (1985년 결혼 / 1992년 이혼)[1] |
자녀 | 장녀 아넬 휘틀리 심슨 (1968년생) 장남 제이슨 라마르 심슨 (1970년생) 차녀 아렌 심슨 (1977 ~ 1979) 3녀 시드니 브룩 심슨 (1985년생) 차남 저스틴 라이언 심슨 (1988년생) |
학력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
신체 | 185cm, 96kg |
포지션 | 러닝백 |
프로 입단 | 196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버팔로 빌스) |
소속 팀 | 버팔로 빌스 (1969~1977)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978~1979)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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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미식축구 선수. 별명은 전류를 뜻하는 'Juice'이다.[2]2. 생애
2.1. 선수 경력
미식축구 명문인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하기 전부터 미식축구의 러닝백과 단거리 육상 선수로서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고,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하이즈먼 트로피를 1968년 수상했고, NFL 버펄로 빌스에서 9시즌,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2시즌 도합 11년 동안 뛰었다. 프로 커리어의 중요 타이틀은 버펄로에서 주로 이뤄냈다. 최전성기인 72~76년 5년동안 4번의 리그 러싱야드 1위, 2번의 러싱 TD 1위를 기록했고, 5년 연속 프로보울과 AP 퍼스트팀 선정 1973년 AP 선정 시즌 MVP, OPOY포함 top 5 투표에 들어가는 등 70년대 최고의 러닝백이자 최고의 미식축구 슈퍼스타였다. 당시만 해도 그가 은퇴할 때 올타임 러싱야드에서 그 위에 있던 선수는 역대 최고의 러닝백으로 칭송받는 짐 브라운뿐이었으며, 당시 정규리그는 14경기만 치렀음에도 처음으로 시즌 2,000 야드를 돌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 누구도 14게임 2000야드는 다시 깨지 못했다. 1973년도의 게임당 143.7 야드 기록은 아직도 누구도 깨지 못한 기록이다. 또한 미식축구 PER에 따르면 심슨의 1975년 시즌은 모든 프로 미식축구선수 역사상 최고 시즌으로 꼽힌다. 운동선수로의 위상만 놓고 본다면 OJ 심슨은 분명히 NFL 한 시대를 대표할 역대 최고의 러닝백들에 거론될 수준의 레전드이고, 하술할 사건과 추문이 없었다면 사실 버펄로 빌스의 역사에 남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손색이 없는 선수였다.그때만 해도 NBA가 전국적인 스포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구와 미식축구 위주로 즐기던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NFL 미식축구의 아이콘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 70년대 미국 최고의 흑인 스포츠 스타 중 1명이었다. 1985년에는 NFL 명예의 전당 입당 자격이 생기자 마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끼가 넘쳐서 쇼호스트나 예능, 버라이어티 쇼도 많이 출연했음은 당연지사다. 대학 시절인 1968년부터 배우로 활동했고 프로선수로 활동할 때도 비시즌엔 배우로 TV나 영화에 출연했다. 1977년엔 아예 영화사를 차리고 자기가 직접 주연한 TV 영화까지 찍게된다. 타워링이나 카산드라 크로싱에서는 소방관이라든지 수사관 같은 정의로운 인물로 나와 영화상에서 많은 사람을 구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주연 중 하나로 활약한 1988년작 총알탄 사나이는 당해 북미 최고 히트작이자 역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 중 하나로 극찬을 받았고 북미의 가장 저명한 필름 전문가인 로저 이버트가 꼽은 1988년 최고의 영화로까지 꼽혔다. 이후 이 영화의 속편에도 계속 개근출연하여 1994년에 마지막 시리즈인 3탄까지 등장했다. 때문에 미식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총알탄 사나이를 재밌게 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많다.
심슨은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결혼해 3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이중 셋째이자 차녀었던 아렌이 두 살 생일 때 자기 집 수영장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불행이 찾아온다. 이미 이 무렵에 이혼 과정에 있었지만 이 충격으로 심슨은 첫 부인과 사이가 완전히 갈라지면서 이혼하게 되었고, 이 사건 이후로 2년 뒤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당시 18세였던 니콜 브라운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하고, 2명의 아이를 낳게 된다. 이후 심슨은 두 번째 부인인 니콜 브라운과도 1992년에 이혼한다.
2.2. O. J. 심슨 사건
자세한 내용은 O. J. 심슨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1994년 니콜 브라운이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론 골드만과 함께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O.J 심슨은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고 재판에 기소되었지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 문제, 대스타의 범행 혐의, 확률과 통계의 함정 및 미국 배심원제도에 대한 논쟁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 판결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법정판결로 손꼽힐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났다.
2.3. 이후
비록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들에게 엄청난 수임료를 준 탓에 출소 후의 그는 알거지가 되었고, 명성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사실상 선수 시절의 명예는 거의 잃어버린지 오래다.[3]출소 직후 1995년에는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I Want to Tell You: My Responses to Your Letters, Your messages, Your Questions》라는 책을 출간했다.
1997년 피해자 니콜과 론 골드만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소 판결을 받고 배상금으로 총 3,350만 달러(한화 약 370억 원)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4]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온갖 재산을 빼돌리는 등 법의 함정들을 이용하여서 O. J. 심슨으로부터 2017년 8월까지 유가족들은 100만 달러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O. J. 심슨은 진짜로 돈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백 달러 규모의 세금도 못내서 탈세혐의로 수감되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2007년 O. J. 심슨은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만약 내가 했다면》(If I Did It)이라는 책을 고스트라이터를 통해 출판한다. 이 책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작업으로 출판되었으나, 이 책이 출판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극도의 반발로 출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 때 이미 찍혔던 40만부의 책이 파기되었고, 사업계획들도 무산됐다.
이 책은 나중에는 《만약 내가 했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으로 제목을 바꾸어 발행됐다. 그런데 이 책의 출판 과정에서, O. J. 심슨의 가장 큰 채권자인 론 골드만의 유가족은 사전에 책을 검토한 후, 'If'를 아주 작게 만들도록 해서 언뜻 보면 책의 제목이 《I Did It》처럼 보인다.[5]
2007년에는 강도질을 하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어 33년형을 선고받았다. 네바다 교정청에서 복역하다 2017년 10월 2일 가석방되어 출소했다. 기사
2019년 6월 15일 트위터를 개설했으며 주로 NFL 관련 영상을 올리고 있다.
2024년 2월 9일 라스베이거스 지역 뉴스에서 그가 전립선암을 진단 받아 화학요법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OJ 심슨, 암투병 끝 사망…'세기의 재판' 역사 속으로 / JTBC 뉴스룸 |
3. 기타
- 제임스 카메론은 원래 아놀드 슈워제네거 대신 이 사람을 <터미네이터>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사하게된 이유는 O. J. 심슨이 사람을 냉정하게 죽이는 살인 기계를 맡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워 보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은 동갑인데다 근육질 스포츠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O.J 심슨의 소속팀이었던 버팔로 빌스는 심슨의 은퇴 이후 유니폼 넘버인 32번을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사실상 영구결번이었던 셈. 그러다가, 2019년에 빌스와 계약한 러닝백인 서노리스 페리(Senorise Perry)에게 32번을 부여하면서 42년만에 암묵의 룰을 깼다.
- 킴 카다시안의 친 아버지인 로버트 카다시안이 이 사람과 절친으로 유명하다.[6] 사건이 터졌을 당시 로버트는 O.J.의 변호인단에 합류해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킴이 자신을 처음 소개할때 아버지가 O.J.를 담당한 변호사이고 삼촌으로 여겼다고 언급할 정도. 하지만 이후 로버트가 O.J.의 무죄에 의혹을 가진 발언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소송까지 주고받는 사이로 악화되었다. 두 사람은 3살 차이이다.
- 헐크 호건이 과거 전처와 그녀의 내연남 때문에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여러차례 입은 후 한 인터뷰에서 O. J. 심슨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는 옹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심슨이 살인을 저지른 게 맞다는 가정 하에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을 만큼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상당히 크게 입었다는 것이다. 허나 그가 유죄였건 아니건 이런 옹호발언 자체는 논란이 있다.[7]
- 이름 때문에 패러디나 공식이나 심슨 가족의 심슨 일가와 엮인 적이 있다. 참고로, 작중에서는 방송 속 에릭 카트맨을 살해하는 살수로 묘사되었으며, 심슨 일가와는 '화산 이씨와 경주 이씨' 정도의 남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촌수로 묘사되었다.[8] 당사자인 o.j의 반응은 밝혀진 바는 없다.
- 디즈니+에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 시리즈로 스트리밍중이다.
[1] 1994년 6월 12일 사망.[2] 또한 미국 영어에선 오렌지 쥬스를 OJ(Orange Juice)라고 줄여 부른다. 일종의 언어유희를 노리고 본명을 줄인 OJ를 밀은 듯 하다.[3] 언론에서는 이를 '상처뿐인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4] 민사와 형사 재판 결과가 달라진 것은 민사에서는 대립하는 당사자 중 더 우세한 쪽이 승소하지만 형사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을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유죄가 되기 때문이다. 두 재판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으로 심슨이 아내를 죽였다는 게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죽였을 가능성이 아닐 가능성보다는 높다는 걸로 정리된다.[5] 자세히 보면 I 안에 if가 회색 글씨로 아주 작게 들어가 있다.[6] 공교롭게도 로버트의 전처인 크리스 제너는 사망한 니콜과 절친한 사이였다. 이 때문에 크리스는 남편이 O.J.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크리스는 O.J.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 다만 O.J.의 재판 당시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크리스는 육상 선수인 브루스 제너(現 케이틀린 제너)와 재혼했다.[7] 다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옹호발언이라기보다는 그저 헐크 호건의 자조적 발언에 가깝다. 만약 옹호발언이었다면 심슨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해야 맞다. 어쨌든 간에 심슨은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8] 작 중 심슨 성씨를 가진 인물들은 종종 호머에 의해 농담대상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