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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3:21:19

가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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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216호
칠곡 가산산성
漆谷 架山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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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면적 293\,793㎡
지정연도 1971년 3월 26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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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칠곡 가산산성.jpg
<colbgcolor=#344c3c> 가산산성 남문
파일:Chilgok-map_1872.jpg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칠곡지도》.[1] 칠곡도호부 관아가 현재의 북구 읍내동 주민센터 자리에 있을 때 제작되었다.
1. 개요2. 상세3. 외부 링크4. 사적 제2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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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해발 901m의 가산에 쌓은 산성으로, 조선 시대 때 외적 방어용으로 건립되었으며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진 3중성이다. 팔공산과 더불어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인근에는 가산산성 야영장이 있다.

가산산성은 1971년 사적 제216호로 지정됐다.

2. 상세

병자호란 이후 인조 17년(1639)에 혹시나 또 있을지 모를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내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든 내성의 규모는 상당했는데, 성벽의 둘레가 약 4 km에 성문은 세 곳, 소문도 여덟 개가 있었다. 또한 산성 안에 우물이 수십 개, 도 부근의 송림사를 비롯하여 넷이나 있는 등 시설도 상당했다.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칠곡도호부의 관아도 가산산성 안에 설치되면서 여러 창고와 기지도 이와 함께 들어왔다.[2]

이후 숙종 26년(1700)에 병자호란 방어 목적으로 왕명에 의해 외성을 추가로 축성했으며, 영조 17년(1741)에는 중성이 만들어졌다. 특이하게도 4년 뒤 영조 21년(1745)에는 중성 안에 빙고를 축조하기도 하였다.[3]

입지가 훌륭하여 천혜의 요새이며 전략적 요충지인지라, 현대에 들어서도 한국 전쟁 중 가산산성에서 국군과 인민군 간에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 국군이 패퇴하였다고 한다.

웅장한 외관과 규모 덕에 가산산성은 이 당시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성을 무리하게 건설하면서 주변 민심은 바닥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여러 행정 관청과 시설들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주둔해 있어서 미군과 한국군이 무진장 폭격을 하여 남아 있는 것은 없다.

3. 외부 링크

4. 사적 제216호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두어 항상 수호케 하였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며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내에 있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으며, 칠곡도호부가 이 안에 있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이 크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서 쌓았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때 절터가 많이 남아있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윗쪽의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가산산성 → 칠곡 가산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지도 아랫부분 3분의 1정도까지가 현재의 칠곡지역이며, 오른쪽 윗부분부터 오른쪽 중앙 부분까지 가산산성 지역이 크게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자세히 보면 성곽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칠곡지역 부분(지도 아랫부분 중 왼쪽)에는 관아, 객사, 감옥, 내아, 관청, 향교, 사직단 등 도호부의 관청 및 시설물이 군집을 이루어 표기되어 있고, 현대에도 사용되는 지명인 구수산이 있다. 지도에서의 칠곡지역 범위는 구수산~나박산으로 둘러싸인 관아일대와 그 오른쪽의 퇴천면, 금호강과 인접한 문주면이다.[2] 하지만 관아가 산꼭대기에 있어서 접근성이 대단히 떨어졌기에 순조 19년(1819)에 칠곡도호부 관아를 산 아래로 옮기고, 가산산성에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만 별도로 두었다.[3]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8 팔공산 자락 - 가산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