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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분산성 金海 盆山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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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면적 | 53,191㎡ |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제작시기 | 가야, 삼국시대 | |
위치 |
|
<colbgcolor=#344c3c> 분산성 |
[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에 있는 2.63km 규모의 가야시대의 산성. 사적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2. 역사
|
<colbgcolor=#344c3c> 김해 분산성 항공사진 |
지금의 성벽은 칼 같이 반듯하게 되어있는데 현대에 다시 보강한 것이다.
|
<colbgcolor=#344c3c> 1990년대 이전의 모습을 남긴 흔적 |
2020년 봄부터 성 중앙에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3. 외부 링크
4. 사적 제66호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의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박위(朴蔿)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에 이르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 하다. 현재 성 안에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성 주변에는 가야 무덤들과 수로왕비릉,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구지봉이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분산성 → 김해 분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박위(朴蔿)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에 이르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 하다. 현재 성 안에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성 주변에는 가야 무덤들과 수로왕비릉,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구지봉이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분산성 → 김해 분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마치 관리 부족으로 허물어진 것 같지만 저 구간을 자세히 보면 작은 표지판에 성곽 보존 구간이라고 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