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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릉

신라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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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선덕여왕릉
慶州 善德女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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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산79-2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면적 1,559㎡
지정연도 1969년 8월 27일
제작시기 신라 선덕여왕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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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여담4. 주변 볼거리5. 버스노선6. 외부 링크7. 사적 제182호

[clearfix]

1. 개요

善德女王陵

신라 27대 왕 선덕여왕의 무덤.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산79-2 소재.

경주에 있는 왕릉 가운데 비정이 들어맞는 몇 안되는 능이다.

2. 상세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에 써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신하들이 유언을 듣고 도대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낭산이라고 대답하여 그대로 낭산에 장사지냈는데, 후에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밑에 사천왕사를 세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 자기실현적 예언일 수도 있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거대한 수미산이 있다. 수미산은 정상이 정사각형 모양이고 산체(山體)는 정육면체, 또는 뒤집어놓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고 한다.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이 거주하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정상에는 제석천과 다른 신들이 사는 도리천(忉利天)이 있다. 사천왕사가 낭산의 밑에 있으니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꼭대기는 당연히 수미산의 정상, 즉 도리천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불상을 모신 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데, 부처를 수미산의 정상에 모신다는 상징적인 뜻이다. 만약 삼국유사에 나온 일화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 선덕여왕은 자신을 도리천에 거주하는 신, 또는 부처에 비긴 셈이다.

비석과 같은 명문이 기록으로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열왕릉이나 흥덕왕릉과는 달리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서 비교적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덤이다.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에 사천왕사에서 밀교적 의례를 행했다 하고, 에 이를 숨기고자 세웠다는 망덕사[1]가 실제 유적으로도 확인되어 사천왕사와 망덕사지도 비교적 선명해졌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무덤의 위치도 지금처럼 파악할 수 있었다.

참고로 지금의 선덕여왕릉은 과거 수해를 입어 무너졌었으며 근세, 근대에 들어서 무너진 부분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즉, 지금의 선덕여왕릉의 돌 기단은 당시의 것이 아니다.

선덕여왕릉은 1968년 12월에 도굴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로 끝난 일이 있었다.출처

경주 시가지에서 가깝고 바로 옆을 지나는 도로가 불국사, 울산 가는 길목이라 비교적 찾아가기 쉬운 신라 왕릉이기도 하다. 주인 선덕여왕이 한국사 최초의 여왕으로 유명한 데다 한때는 2009년 대히트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영향으로 관람객이 상당히 많아진 적도 있었다.[2] 그러다 드라마 종영 후 10여 년이 지난 2019년 기준으로는 다시 예전처럼 한적해졌다.

사실 유명세에 비해 왕릉 자체만 놓고 보면 무덤이 신라 왕릉답게 봉분이 큰 것 외에는, 비교적 초창기 양식 왕릉이기 때문에 근처의 신문왕릉, 원성왕릉 등에 비교해서도 따로 석상이나 장식 같은 것도 없고 훨씬 간소해 따로 볼 것은 없는 편이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영험한 산으로 알려진 낭산의 빽빽한 소나무 한가운데에 있어 왕릉까지 가는 길이 꽤나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다.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w_%EC%84%A0%EB%8D%95%EC%97%AC%EC%99%95%EB%A6%8903(%EB%B4%89%EB%B6%84)_%EB%8F%84%EB%A1%9D206P.jpg
하늘 위에서 보면 딱 왕릉 부분만 하늘이 트여 있어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3. 여담

유튜브 영상에서(윤시원 Lost) 前 고고학자(월령의 로스트히스토리참고영상)가 진짜 선덕여왕릉은 현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거라며 해당 채널 운영 유튜버와 함께 진짜 선덕여왕릉을 찾아 탐사하는 영상이 있다. 영상에서 현재 위치(낭산)가 아니라 명활산의 서쪽 부분이 진짜 낭산이고 그곳에 선덕여왕릉이 석실묘 또는 적석목곽묘로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영상이다.[3]8분 7초부터

그러나 이 주장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 기록인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릉은 '도리천'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근처에는 사천왕사망덕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불교 우주론에 따르면 도리천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이고, 사천왕천은 도리천의 아래에 있다. 현대에 '선덕여왕릉'이라고 불리는 무덤은 낭산이라고 하는 야산의 정상에 있고, 남쪽 아래에는 사천왕사와 망덕사로 추정되는 거대한 절 터가 분명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명활산 서쪽에는 그러한 절 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신라시대 낭산이 진짜로 오늘날 명활산의 서쪽 일부를 가리킨다면, 도대체 진짜 사천왕사와 망덕사는 어디에 있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곳에 진짜 사천왕사와 망덕사가 있다 치면, 지금 두 절로 알려진 절터의 정체도 문제가 될 것이다. 두 절터 모두 남아있는 주춧돌과 녹유신장상 같은 유물들만 봐도 신라시대의 크고 대단히 중요한 절인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사천왕사지에 남은 귀부(비석의 거북이 받침)가 현존하는 문무왕릉비의 아래 크기와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현재 사천왕사로 알려진 절 터가 진짜 사천왕사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만약 사천왕사가 아니라면,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버지의 행적을 담은 비를 그 절에 세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오늘날 명활산의 서쪽 부분이 신라시대 낭산이라면, 무슨 이유로 낭산이 '도리천'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훨씬 거대한 산(명활산)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라고 해도 낭산이 바로 수미산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4. 주변 볼거리

근처에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능지 탑, 황복사지, 진평왕릉, 신문왕릉, 국립경주박물관, 동궁과 월지 등이 있다.

5. 버스노선

6. 외부 링크

7. 사적 제182호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狼山)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신라선덕여왕릉 → 경주 선덕여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2] 물론 이 많다는 게 첨성대대릉원같이 정말 경주의 유명 관광지들처럼 우글우글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왕릉들 중에서는 그나마 많다는 것.(...)[3] 신빙성 있고 믿을 만한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책에 나온 위치와 현재 위치간 방향, 거리 등을 비교하여 설명하는데 거의 일치한다.[4] 화랑교육원삼거리 정류장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