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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경주 헌덕왕릉 慶州 憲德王陵 Tomb of King Heondeok\, Gyeongju | ||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80번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수량/면적 | 18,007㎡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
소유단체 | 국가유산청 | |
관리단체 | 경주시 | }}}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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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헌덕왕의 왕릉 헌덕왕릉 憲德王陵 | |
| |
매장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80번지 |
조성형태 | 단릉(單陵) |
매장자 | 헌덕왕 (825년 10월 사망) |
조성시기 | 통일신라시대 |
홈페이지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헌덕왕릉(憲德王陵) 전경 |
2. 상세
많은 신라왕릉이 비정이 잘못됐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이지만 헌덕왕릉은 이근직 교수를 비롯해 현대 학계에서도 실제 헌덕왕의 왕릉이 확실하다고 대체로 인정받는 신라왕릉들 중 하나다. 신라 왕릉의 묘제를 연구한 이근직에 따르면 신라 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써 그 위치 비정이 전승과 실제가 동일한 여덟 기[1]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장지가 정확히 일치(천림사泉林寺 북쪽)하고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 능묘조에도 헌덕왕릉이 부의 동쪽인 천림리(泉林里)에 있다고 기록되어 교차검증이 된다.[2]<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
헌덕왕릉(憲德王陵)의 난간석과 병풍석 |
강 건너편 경주고등학교 교정에는 헌덕왕릉의 호인상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석상의 '상반신 일부'가 남아있다. 북천의 범람에 하도 시달렸는지 마모가 많이 되어서 얼핏 보면 그냥 커다란 돌하르방 상반신 같이 생기긴 했지만, 원성왕릉의 석상을 본 뒤에 이걸 보면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3. 사적 제29호
경주 북천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넙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신라헌덕왕릉 → 경주 헌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넙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신라헌덕왕릉 → 경주 헌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나머지 일곱 기는 선덕여왕릉, 태종무열왕릉, 문무대왕릉(대왕암), 성덕왕릉, 원성왕릉(괘릉), 흥덕왕릉, 경순왕릉.[2] 다만 이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진평왕릉이 실제 헌덕왕릉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