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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3:50:46

경주시/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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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광문화재
2.1. 경주시 주요 유적지(관광지)2.2. 조선시대 주요 유적지
2.2.1. 양반의 고장
2.2.1.1. 경주 북부2.2.1.2. 경주 시내 및 남부
2.3. 현대 관광지2.4. 세계문화유산2.5. 복원 계획2.6. 도시 개발의 어려움2.7. 무덤
3. 문화행사4. 특산물과 음식5. 여담6. 같이 보기

1. 개요

경주시의 관광에 대해서 서술한 문서이다.

2. 관광문화재

파일:hEgtBOyW_400x400_nobg.png 경주시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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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765> 경주 시내 경주읍성동궁과 월지국립경주박물관(성덕대왕신종)첨성대& 동부 사적지대, ‧ 대릉원(천마총, 황남대총) ‧ 노서 ‧ 노동동 고분군(봉황대,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 경주 월성분황사월정교일정교황룡사지황리단길 ‧ 경리단길 ‧ 계림 ‧ 교촌마을 ‧ 최씨고택 ‧ 금장대
북부 유교문화권 양동마을옥산서원 ‧ 운곡서원
송화산 김유신장군묘태종무열왕릉 ‧ 서악동 고분군
소금강산 백률사소금강산탈해왕릉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남산 남산나정망덕사지배동 삼릉오릉포석정서출지배동 삼릉용장사곡 삼층석탑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지암곡삼층석탑 ‧ 탑곡마애조상군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 미륵곡석불좌상
낭산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 ‧ 능지탑지 ‧ 최지원 독서당 ‧ 황복사지 3층석탑
토함산 토함산불국사(다보탑, 석가탑)석굴암원성왕릉(괘릉) ‧ 토함산자연휴양림
배반동 효공왕릉수오재 동해안 감은사지‧ 봉길대왕암해변‧ 문무대왕릉이견대경주 양남 주상절리 ‧ 나정고운모래해변 ‧ 오류고아라해변
보문관광단지 보문관광단지경주월드(캘리포니아 비치) ‧ 신라밀레니엄파크경주세계문화엑스포(경주타워, 중도타워, 솔거미술관) ‧ 강동리조트강동워터파크경주화백컨벤션센터 (HICO)‧ 명활성보문호반길 ‧ 경주동궁원 ‧ 경주버드파크 ‧ 힐튼호텔 경주
교통 경주역경주고속버스터미널경주시외버스터미널
기타 골굴사기림사 ‧ 화랑의 언덕 ‧ 흥덕왕릉진덕여왕릉진평왕릉 ‧ 장항리 사지
※ 관광객들이 명소로 많이 찾는 곳은 밑줄 표시. }}}}}}}}}

경주는 광역시도 아니고 공업도시도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관광 도시로, 인지도는 단연 탑이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 효도 관광, 수학여행, 신혼여행 등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이상쯤은 가 본 경험이 있는 곳이다. 신라 천년의 수도이자 조선 시대 영남 남인의 구심지답게 각종 불교 유산과 유교 유산이 공존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로마처럼 땅만 파면 유적이 그냥 나와 도시 개발이 매우 어렵다고.[1] 심지어 가짜 이강석 사건 때에도 첫 번째 타깃이 경주였고, 당시 경주군수 등은 가짜 이강석을 데리고 경주 시내를 구경시켜주며 기념품까지 선물했다.

주요 불교 유산 관광지로는 국립경주박물관, 분황사,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중도타워, 첨성대, 대릉원, 남산, 동궁과 월지 등이 있다. 불국사ㆍ석굴암ㆍ분황사의 경우 입장료가 있었지만, 2023년 5월 4일부터 모두 폐지되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주차 요금은 따로 징수한다.

주요 유교 유산 관광지로는 안강과 강동의 양동마을, 옥산서원, 독락당, 교동 최부자댁, 경주 월암종택, 이요당 등이 있다. 일단 경주시민은 문화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다.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답게 전국 최초로 안내책자 무료 발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안내책자 발송에는 약 일주일 정도 걸린다. 또 평일에는 각 주요 유적지 16곳에 문화 해설사가 근무하고 있다. 문화재를 관람하려고 할 때 돈을 내야 하는 곳이라도 굳이 안 내고 봐도 되는 곳도 많다.[2]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강타하면서 소금강산의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 토사에 파묻히는 등 많은 문화재가 피해를 입었다. #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도시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적극적인 경주 개발로 천마총, 보문관광단지 등이 개발되었고, 이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져 1978년엔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 돌파에 성공했다. 이 경주 개발을 발판 삼아 제주도, 설악산, 한려수도 등 다양한 관광지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3년 인천을 제치고 국내 여행 인기 지역 5위에 뽑혔다.#

한국의 또 다른 관광도시인 전주와 경주를 비교분석한 영상이 있다.#

숙박업은 대형 유스호스텔이 있던 불국사 주변은 몰락하고 여유가 있다면 보문단지로 가거나, 아니라면 황리단길이나 구 경주역 주변의 숙박업소로 가는 추세로 바뀌었다. 즉, 예전의 단체관광 메타에서 개인 ~ 가족 관광으로 변하는 추세로, 의외로 혼자 여행하기 나쁜 편은 아니다.

2.1. 경주시 주요 유적지(관광지)

2.1.1. 삼국시대

2.1.2. 통일신라시대

2.2. 조선시대 주요 유적지

2.2.1. 양반의 고장

안동시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조선 시대 안동과 함께 영남 남인의 양대 거읍으로서 '양반의 도시'였다. 양반 문서에서 설명하듯, 1910년 전국 호구조사에 따르면 총 군현을 단위로 양반이 많았던 고을 1위가 경상북도 경주군(2,599호)이었다.
2.2.1.1. 경주 북부
2.2.1.2. 경주 시내 및 남부

2.3. 현대 관광지

2.4. 세계문화유산

역사적인 가치로 봤을 때 일본교토나라[11]와 비슷한 위치에 있으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 면적은 교토와 나라를 합친 것보다 넓다(1324.05㎢ > 827.9㎢+276.84㎢). 실제로 시 단위로 면적은 전국 3위[12]이고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5위에 해당한다. 감이 안 온다면 대충 서울 면적의 2배보다 약간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성군의 읍면과 통합한 경주시의 면적이라 동 지역 부분만 따지면 경주의 면적은 222.63㎢이다. 일본의 행정구역 체제하에서는 도농복합제가 없기 때문에 동 지역 면적으로 비교하는 게 좀 더 적합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 천지라 남산과 토함산을 포함하는 경주 시내 유적지구들이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국보와 보물이 넘쳐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불국사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13], 양동마을[14], 옥산서원[15]까지 도합 네 번 지정되었다.[16] 경주역사지구 설명에서는 문화재의 밀도나 품질로 보면 교토나라보다 뛰어나다는 극찬도 받았다.

전술했듯이 경주는 서울보다 면적이 두 배 넓고 지하철이 없다. 그리고 산속에 숨어 있는 문화재들도 꽤 많다 보니 경주를 정말 제대로 살펴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자가용을 사용한다면 2박 3일 만에 경주의 문화유적들을 볼 수 있다.

2.5. 복원 계획

한국 역사 찾기의 첫 단추 "예산 1조…신라왕경 복원정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던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을 수립하였고, 무엇보다 방폐장 유치에 대한 보상으로 예산폭탄급의 막대한 자금을 얻은 경주시가 문화재 복원에 폭풍처럼 매진하면서 지금 경주는 유적복원이 매우 활발하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복원 문서를 참조.

2.6. 도시 개발의 어려움

파일:1bakyumul.jpg
[17]
경주 시민들이나 경주 출신 인물들이 흔히 "경주는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라고 농담 삼아 말을 하는데, 이게 마냥 농담이 아니라 반 정도는 진담이라는 것이 특징. 밭 한 가운데에서 유물이 튀어나오질 않나 경주 시내를 도보로 여행하다 보면 그 시기가 언제든 간에 발굴 현장 한두 개쯤은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시골 주택가 한가운데서도 발굴 현장을 볼 수도 있다. 이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가 '지우지는 않아도 좋으나 절대 웹에 업로드하지 말아달라'는 눈물나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도굴꾼이 웹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올라오기가 무섭게 찾아와서 도굴해가기 때문.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돌 줍기 하면 상당한 분량의 돌이 깨진 연적이나 그릇 등 토기 조각이었다. 1980년대에는 친구들과 비석치기 할 때 "어? 여기 이 돌엔 귀신얼굴 그려져 있다, 부수자" 하고 비석치기 했다고. 또 초등학교 공사 중 유물이 나오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미 한 번 파해친 곳[18]이라거나, 심지어는 하수도 공사를 하다가도 유물이 발견되고 잊을만하면 경주에서 유물 발굴로 인해 공사가 지연된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다.

황성동 지역 아파트 개발 공사, 경주 시내 kt 신사옥 건설 공사, 동천동 우방 아파트 공사 등등 공사하면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 때문에 공사가 2-3년 넘게 지연된 경우가 매우 많다.[19] 다만 이것은 과거 신라 왕경 근처에 한정된 것으로 구 신라 왕경(현재 경주 시가지가 아니라 옛 신라 경주 기준)을 벗어나면 남산 등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까지 많은 유물이 출토되지는 않는다. 물론 경주시 손곡동-(천북면)물천리 경주 경마장 공사장 문화재 발굴[20], 경주시 동방동 아파트 공사장 문화재 발굴[21] 등 오늘날 경주 시가지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지역에서도 공사 중 대량의 문화재가 발굴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손곡동-물천리, 동방동 모두 육부촌 중 두 촌락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신라의 1000년 수도였던지라 매장된 유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22] 공사를 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는 곳이기도 하다. 일단 문화재가 발굴되면 공사를 다 멈추고 유물부터 발굴해야 하며 이 비용 또한 문화재법에 따라 사비로 내야 한다고 하니 이쯤되면 경주 사람들은 유물이 발견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신축공사를 하면서 신라의 도로 유적이 발견되자 아예 도로 터를 감싸서 건물을 짓고 바닥에 투명 아크릴을 박은 적도 있으며, 2009년쯤엔 경주시내에 있는 태종로에서 지중화 공사를 하던 중 또(!) 유물이 발견되어서 공사가 길어졌다.[23]

덕분에 시가지 내에서 "문화재특별법 폐지" "고층건물 제한 완화" 같은 내용이 써진 플랜카드를 늘 볼 수 있다. 고층건물 제한 탓에 10층 이상 넘어가는 건물은 북천 이남 도심에선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경주 원도심의 경우 고도제한이 7-8층 정도로, 경주역 부근에는 7층 정도 되는 건물이 몇 채 있다. 대신 북천 이북의 황성, 용강, 동천의 택지 개발 지역이나 서쪽의 충효동에는 15층이 넘는 고층 건물이 많다. 2010년에 세워진 경주 예술의 전당은 황성동,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은 형산강(서천) 건너편이라서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있었고 고층 아파트 단지도 여럿 있다. 다만 구 도심 일대는 4층 이하의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홈플러스 경주점도 1층이다.[24]

동해선 철도가 시 외곽으로 이설되는 것도 문화재 보존의 일환이라 하며 다른 곳도 아닌 유네스코의 권고 사항이다.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게, 기존 철도가 동궁과 월지사천왕사지를 밟고 지나가는 코스[25]라 이설을 안 할 수가 없었다.[26] 게다가 2016년 경주 지진[27]으로 인해 설계상의 허들이 올라가는 악재가 겹치기도 했다.

2.7. 무덤

굳이 땅을 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내 곳곳에 엄청난 크기의 고분이 언덕처럼 솟아 있다. 학교 안에 고분이 있는 곳도 있다. 또한 금관총, 천마총 같은 경우는 고분 내부를 전시실처럼 만들어 놓고,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주시민은 거의 무덤과 함께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나 유적지구 근처는 층수 제한으로 인해 높은 건물은 못 봐도 높은 무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같은 경우, 고분의 높이도 높은 편이고, 바로 옆이 시내이고 주택이라서, 이런 게 된다. 시가지에서부터, 척추라고 볼 수 있는 위치에 봉황대가 위치하고 있다. 근처 대릉원은 아예 공원 같은 느낌으로 조성되어 있어 아침에 조깅하면서 보는 게 몇십 개의 능들이다. 그 때문에 무덤도시, 네크로폴리스라는 소리도 간간이 나온다. 옛날에는 겨울에 가끔씩 눈이 내리면 꼭 포대 한 자루 가지고 고분으로 올라가는 초딩들이 있곤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없다.[28][29]

여담으로 원래 한민족은 무덤을 가족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보이도록 지었다. 죽은 조상이나 가족이 함께 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무덤이 도시 외곽이나 먼 산에 위치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이며 일제가 조선인들의 땅을 쉽게 점유하기 위해 묘지 문화까지 바꿨다는 설이 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고인에게 입히는 삼베옷. 원래는 비단 옷이나, 고인이 살아 있을 때 가장 좋아하던 옷을 입혔는데 일제에 의해 거친 삼베옷으로 바뀌었다고.

결론적으로 무덤 도시라는 것은 오히려 경주가 그나마 전통 문화가 잘 살아 있다는 방증이며, 신라 고도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의 고분군은 6곳 정도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시내 안에 있는 노서동 고분군과 노동동 고분군[30], 시내에서 가까운 대릉원[31], 내물왕릉 주변 고분군, 오릉, 삼릉 일대가 그것이다. 규모상으로는 대릉원과 노서동 고분군이 가장 크다. 그 밖에도 외곽에 따로, 단독으로 위치한 왕릉도 무지 많으며[32], 주인 모를 큰 무덤들도 곳곳에 있다.

심지어 황성동에는 공동묘지가 주택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었다. 이 공동묘지는 현재 무덤이 모두 이장되었고 그 자리에는 공영주차장이 들어섰다. # 또한 용강동 대신아파트와 동천동 우방아파트 사이에도 고분이 있다.

3. 문화행사

4. 특산물과 음식

파일:황남빵.jpg
경주빵으로 알려진 황남빵이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식 과자인데, 어찌어찌하다 경주의 대표 명물이 되었다. 갓 만들어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 대표적인 가게는 세 곳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인 최영화의 제조 기술을 이어받은 큰며느리가 운영하는 『최영화빵』, 차남이 뒤늦게 뛰어들어 가게를 크게 키운 『황남빵』이 있고, 최영화로부터 황남빵 간판을 허락받았던 수제자 이상복의 『이상복명과』가 있다. 유사품으로 '경주빵'이 존재한다. 그리고 찰보리빵도 유명해졌다. 2002년 서영석이 개발한 것으로, '단석가'가 원조다. 황남빵은 본점 하나와 분점 하나에 끽해야 역에 판매소 하나 있는 정도인 반면, 경주빵과 찰보리빵은 둘을 묶어 판매하는 점포가 거의 한 블럭에 한 점포 꼴로 있는 서울의 편의점 밀집도와 맞먹는다(시내 한정). 이제는 신라미소빵, 주령구빵[34], 첨성호두빵 등 종류가 꽤 많아지고 있고 가끔 짝퉁 경주빵집에서 계피빵도 판다. 2020년대 부터는 경주 황리단길에서 유래한 십원빵이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뒤 일본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주빵 이외에도 일반 빵집 등이 늘어났는데, 캄파뉴 등 프랑스식 빵도 들어왔다.

짬뽕 불고기 또한 유명하다. 경주에서는 짬뽕이라고 줄여 불러도 통하는데, 낙지돼지고기의 불고기를 뜻한다. 석거돈이라고도 불린다.

팔우정 로타리 쪽의 해장국, 특히 해장국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묵과 멸치 육수에 잘게 썬 김치를 푼 국물의 조합(+콩나물, 모자반)이 괜찮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처음 먹는 경우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원래부터 있던 지역 음식은 아니고, 20세기 중반 전라도에서 온 아줌마가 시장통에서 팔던 장터국밥이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 향토음식이 되었다. 현재는 건물이 모조리 철거되고 한두 곳만 남은 상황.

의외로 한우가 특산물이다. 경주 천년한우라는 브랜드가 있으며, 사실 우리나라의 한우 전국 최대 생산지가 경주다. 기초지방자치단체급에서 축산과가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경우가 서너 곳 정도로 드문데, 그 가운데 한 곳이 경주이며 현재는 농림축산해양국 축산정책과로 되어 있다. 다만 도축은 울산이나 영천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편. 경주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할 때 등심에 소주 한 잔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서울보단 확실히 소고기 값이 싸다. 서울의 삼겹살 가격의 1.5~2배 가격에 소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농협 같은 곳에 가면 더 싸다. 잘 찾아보면 특A급 고기를 괜찮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숱한 광고에 속지 말고 잘 찾아보자. 자신이 없다면 천년한우 직판장이 용강동 5일장 구역에 있으므로 싸고 확실한 품질로 구할 수 있고 직판 식당도 근처에 존재하므로 편하다.

삼릉 인근에는 우리밀 칼국수 가게들이 모여 있다. 인근에서 직접 재배한 국산 밀과 각종 곡물 위주의 칼국수로, 국물 맛이 꽤나 독특한데 바지락 칼국수나 명동 칼국수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들깨 칼국수라고 불리는 것이 이쪽과 비슷하다.

먹거리 골목으로 해장국(국밥) 골목, 황남빵(경주빵) 골목, 분식 골목, 쌈밥 골목 등이 있다. 쉽게 말해서 구 시청 청사 인근 지역[35]이라고 보면 된다. 구 청사가 대릉원을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바로 좌측에 황남빵과 경주빵, 좌측 도로를 타고 가면 해장국 골목이고, 분식 골목은 좌측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쌈밥 골목은 경주빵 옆의 샘물 지구 인근에 있다.

정식류(한정식, 쌈밥 정식)의 경우에는 그래도 아직 유명한 한정식 집이 몇 군데 있고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는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편이다. 참고로 경주에 한정식이 '약간' 발달한 까닭은 경주 최부자댁 덕분이다. 비교적 나중까지 조선 후기의 양반 음식 문화를 잘 보존해서, 그 영향으로 괜찮은 한정식 후발 주자들이 생길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한정식 집들은 최부자댁과 전혀 상관없다. 또한 '요석궁'이라 불린 요정의 음식이 매우 유명했었고 나름 주변 큰 도시에서도 중요 인물을 대접할 때 오는 곳이었지만, 한정식 집으로 재개장한 뒤 주인이 바뀌면서 음식 맛이 폭망했다.

경주가 조선 후기 이후에는 '비교적'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사실 경주만의 음식이나 식문화라고 남아 있는 건 명확히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주 자체가 땅덩어리가 큰 만큼[36] 바다, 강, 평야, 산을 모두 두루 갖추었으며 여름/겨울의 차이도 명확해서 다양한 해산물, 농산물, 축산물이 풍부한 편이라, 여러가지를 값싸게 경험하기는 좋다.

부산과 가까워서인지 돼지국밥이나 순댓국을 하는 식당도 많다. 밀면 또한 나름 유명하다. 시내와 불국동 쪽에 유명한 맛집이 몇 곳 있으니 먹어본 적이 없다면 한번 가서 먹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경주 사람도 잘 모르는데 체리전국 최대 생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7~80%가 경주에서 나온다. 경주역(KTX) 인근 과수원에서 거의 모든 양이 나오는데, 2022년 기준 1kg 한 통에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사이 정도의 가격에 팔린다.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 아주 짧게 나오므로 과일을 좋아한다면 한번 먹어보는 걸 추천. 과수원에서 체리를 바로 구매할 수도 있고, 체리 따기 체험 신청 후 직접 수확해 볼 수도 있다. 수입 체리에 비해 씨알은 작으나 당도가 상당히 높다. 야채 종류로는 버섯부추가 상당히 많이 난다. 버섯의 경우, 전국 생산량의 25%, 경북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해산물로는 참가자미 회가 유명하다. 아직까지 양식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상도 제수 음식의 상징인 돔배기도 많이 판다.

대구와 더불어 육개장도 유명하다.

5. 여담

6. 같이 보기


[1] 그리고 이런 수준의 유적 밀집도가 전국적인 국가로 이집트가 있다. 거의 경주의 100배 정도의 유적이 전국적으로 밀집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2] 첨성대가 그렇다. 그런데 애초에 탁 트인 곳에 커다랗게 우두커니 있는 데다,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크게 다르지도 않다. 90년대 후반까지 첨성대에는 표 사는 곳 자체가 없었다! 2014년 1월 1일부로 첨성대는 관람료가 무료가 되었다.[3] 경주시는 2035년까지 3조 2,800억여 원을 들여 황룡사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다만 의견이 분분하다. 자세한 내용은 황룡사 문서를 참조.[4] 그야말로 문화재의 보고. 거의 모든 등산길에 10분마다 절터와 유적지가 분포해 있다.[5] 1998년 최초 엑스포 개최 당시의 출품작이다.#[6] 그런데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가 터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학교 수련회 폐지론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더 가열차게 불붙어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행사를 취소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수학여행은 학생들에게 견문을 넓혀준다는 취지라도 있으나, 수련회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가며 그냥 쓸데없는 고생만 시키는 꼴이라 더더욱 그렇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2014년 1학기 수학여행 및 수련회 계획을 전면 보류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수학여행은 있어도 학교 수련회는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단체로 항명을 하면 학교 측도 곤혹스러워질 테니까. 물론 전국의 수학여행 방문객들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발길이 끊겼다.[7] 콘텐츠코리아의 기사[8] 그러나 흔히 먹는 김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비싸고 불친절한 얘기도 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다면 그냥 황성동에 있는 교리김밥 매장에 가는 것이 낫다. 위치 자체가 관광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 단지 앞 상가 쪽에 있어서 경주 현지인들이 아닌 이상 잘 찾아가지 않는다.[9]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이라는 시내 역사관광의 필수코스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니 술집에 복덕방이 고작이던 쇠락한 주택가에서의 시도가 대성공을 거뒀고 초창기 거품이 빠진 뒤로도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므로 오래가는 것이다.[10] 원래는 별도의 보행로가 전혀없어 보행자들이 갓길로 이동하는 형식이었다.[11] 밑에 적혀 있지만 실제로 나라와는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신기할 정도로 나라와 경주의 도시 구조는 비슷하다. 그 이유는 두 도시가 모두 당나라의 장안(長安)을 모방하여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장안은 도시계획의 모범 답안 같은 위치에 있었다. 장안의 현재 이름은 시안이다.[12] 2023년 6월 30일까지는 2위였다.[13] 남산지구, 월성지구, 황룡사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를 묶어서 지정했다. 사실 이 지구들과 불국사, 석굴암을 포함하면 경주시 전체나 다름없다. 더불어 국립공원의 범위이기도 하다.[14] 하회마을과 같이 한국 기준 2010년 8월 1일에 등재되었다.[15] 2019년 7월 6일 등재.[16] 각 지정 세계유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소개를 참조하기 바란다. #.[17] 강호동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경주 자랑하라고 하자 나온 말이다.[18] 보도블록이 깔려 있다.[19] 그리고 앞에서 예시로 든 공사 모두 유물을 발굴한 뒤 흙을 다시 덮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워낙 심하다 보니 예전에는 공사 중 땅 파서 뭐가 나왔을 때 신고하면 건설이 중단되므로 모두 깨버리고 그냥 지었다고 한다..[20] 손곡동과 천북면 물천리는 경주 동북쪽 외곽이다. 보문호반 북쪽 도로 구간 중 언덕에서 크게 드리프트 하는 곡선 주로가 있는데 거기서 북쪽으로 보이는 평야지역이다. 문화재 발굴 때문에 결국 경마장은 공사 시작도 하지 못하고 취소되었다.[21] 동방'동'이나 경주 시가지에서 5-6km 떨어진 곳이다. 그 사이에는 물론 논이 펼쳐져 있다. 경주 시가지와 불국사 중간.[22] 옛날에는 경주에서 우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만큼 인구가 밀집되어 처마 사이로만 다녀도 될 정도였다는 소리. 좀 더 과장하면 경주에서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에도 이야기가 서려 있다고 하기도.[23] 이곳은 구 신라왕경의 한가운데쯤 되는 곳이니 유물 출토가 안 되는 게 이변이다.[24] 경주 홈플러스가 단층 건물이 된 까닭은 건물을 높게 지으려면 지하에도 더 깊이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나 전술한대로 경주의 역사적 특성상 공사하다가 유물이 나오면 유물부터 파야 다시 공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층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25] 일제강점기 때 지어졌다. 이 시기에는 유적이고 뭐고 터만 남은 폐허나 다름없었던 즉...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6] 더 뒷목 잡는 것은 그걸 다 고려해 경주역(당시 신경주역) 터를 건천에 놓았음에도 동해남부선 건설 중 온갖 고분군과 기와 굽던 가마터까지 발견됐다는 것이다(...). 천년 넘게 단단하게 구워진 가마는 경주역 건물 내 별도의 전시관에 옮겨져 전시 중이다.[27] 7년 넘게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28] 고분도 국가가 정한 문화재이므로 고분을 언덕 삼아 내려가는 행위도 경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고분에 올라가는 애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고분까지 올라가기 귀찮아서 아니면 눈이 잘 안 와서일지도 모른다.[29] 1990년대만 해도 고분에서 올라가서 탈 수 있었다. 눈이 안 와도 아침에 타면 이슬 때문에 잘 미끄러졌다. 어린이 기준으로 올라가기도 쉽기 때문에 많이 좋아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자 관리인이 생기고 이를 제지하기 시작했다.[30] 노서동 고분군 바로 옆에 위치한다.[31] 유명한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이 위치한다.[32] 그 가운데 경덕왕릉의 경우, 보존 상태는 좋은데 위치가 경주 시내를 한참 벗어난 외진 야산에 위치해 구경하러 가기 뭣하다.[33] 황성공원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리는데, 공원 일대인 황성동과 동천동이 학원도시라 불릴 정도로 학원이 많은데 음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콘서트 보러 갈까 하루 종일 갈등하거나 이미 콘서트장에 가 있거나 한 경우가 많다.[34] 신라의 유물 중 하나인 목제 주령구를 본떠 만든 빵.[35] 구 시청 건물은 해체 후 현재 발굴 조사를 거쳐 전 지역을 주차장으로 바꿨다. 그러나 여행객이 몰리는 날에는 항상 만차가 되는 만큼 여기보다는 중심상가의 공영주차장이 추천된다.[36] 한국에 여섯 번째로 면적이 넓은(1,324.95㎢) 행정구역이다. # 서울시보다 두 배 이상 넓다.[37] 다 했는데 완주를 안 해줄 수도...[38] 문복산은 청도군 관할이지만 정상부근이 경주시와 경계이다. 게다가 등산로도 청도군쪽 보단 경주시쪽이 거리도 가까울 뿐더러 정비도 그나마 잘 되어 있어 등산객이 경주시 쪽으로 몰리다 보니 주차문제로 민원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