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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05

고죠 사토루/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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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파일:고죠 사토루 원작.png고죠 사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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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행적 · 능력 · 평가 · 무하한

1. 개요2. 주술사로서3. 선생으로서
3.1. 부실한 학생관리와 일부 학생 편애3.2. 공감 결여
4. 비판
4.1. 캐릭터성
4.1.1. 반론
4.2. 작중 취급
5. 총평

1. 개요

주술회전의 주역인 고죠 사토루에 대한 평가 및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주술사로서

고죠 사토루가 사라지면 주술계도, 인간 사회도 뒤집힌다.
얼티밋 메카마루
이제 그 사람이라면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만약 봉인이 사실이라면, 끝장입니다. 이 나라의 인간들 모두 말이죠.
나나미 켄토
위의 대사들은 고죠 사토루의 강함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군의 전력이 고죠 사토루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고 있었다는 문제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작품 전개에 있어서 고죠의 강함은 본작의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다른 주역들의 성장에 방해 요소이기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술사로서는 분명히 강함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덕분에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작품 내 캐릭터들은 물론 외적으로 그를 지켜본 팬들도 자타공인 최강의 주술사로 평가한다. 실제로 주술회전에서 호평 받는 전투씬은 대부분 고죠 사토루가 연관되어 있다.[1]

다만 이러한 강력한 능력 덕분에 오히려 작품에 악영향을 끼친 거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가 애초에 알기 쉬운 강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만든 게 고죠 사토루인데, 정작 너무 강하게 만든 바람에 어떻게든 개연성을 부여해서 고죠를 전투에서 제외하는 상황을 설정했어야 했다. 백귀야행 당시에는 미겔과 대치 시켜 게토 스구루로부터 떨어뜨려 둬야했고, 어린 물고기와 역별, 주태대천 당시에는 옷코츠 유타를 만나러 해외출장을 간 상태였다. 교류회 때는 고죠 사토루만을 거부하는 장막, 거기에 고죠는 주저사 생포를 우선 했기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거기에 시부야 사변은 그 개막의 원인부터가 고죠를 봉인하기 위함이었던 만큼 초반에 봉인된 이 후 사멸회유 마지막에 봉인에서 풀려날 때까지 활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고죠가 모든 전투에서 전면에 서게 되면 다른 등장인물의 활약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어떻게든 고죠를 메인이 되는 전장에서 떨어뜨려 놓아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까지 고죠를 떨어뜨려 놨음에도 작중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시부야 사변과 사멸회유에서 주술사 측의 주된 목적은 고죠 사토루를 봉인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고죠가 없으면 고전 측 전력은 급감하게 되어 주령 및 주저사들과의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이는 켄자쿠가 말했듯이 또 다른 특급인 옷코츠 조차 고죠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주술사들이 많다한들 고죠 사토루가 없으면 나라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고죠 한 사람에게 모두가 기대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되어 버렸다.

그렇게 워낙 강한 능력을 가진 바람에 좋든 싫든 고죠에게만 매달리게 되는 시스템은 고죠가 봉인된 뒤, 노바라, 이누마키, 마키를 포함한 제자들은 생사불명이 되거나 몸에 큰 부상을 입어 장애가 생겼고, 후배인 나나미는 결국 주령에게 죽는 최후를 맞이했다. 그 외에도 고죠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타도리 유지는 주인공임에도 활약하지 못하며, 이는 서브 캐릭터인 후시구로 메구미를 포함한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

결국 시부야 사변 편에서 봉인되어 이타도리를 포함한 다른 캐릭터들이 겨우 활약하는 듯했으나[2] 봉인이 풀린 뒤 스쿠나와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또다시 그저 지켜만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주인공 일행이 활약하기 위해서는 선역 측에 속하지만 너무 강한 힘을 가진 탓에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리타이어를 당함으로써 물러나야 하는 상황을 억지로라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는 사멸회유,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 후반 전개에 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스쿠나와의 전투가 끝난 뒤에는, 사멸회유에서부터 등장한 타카바 후미히코히구루마 히로미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데 각각 작가와 스쿠나의 입을 빌려 고죠 사토루에 버금가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하면서 팬들에게 고죠 사토루의 강함과 존재 자체는 기존캐들은 활약 못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도움도 안됐으면서 얼마 등장하지 않은 신캐들을 지나치게 띄워주는 일종의 전투력 측정기 역할인 거냐며 까이게 된다.

고죠의 강함은 본래 다른 주역들에게 목표가 되어 성장하는 요소가 되어야 했지만 작가는 고죠만 지나치게 띄워주기만 했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쨌든 다른 주역들을 방치해버려 성장하는 모습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거나 다뤘어도 미미하게 연출했고, 일부 캐릭터들은 퇴보한 모습만 보이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결국 작가가 고죠를 감당 못해서 스토리상 필요하다 해도 결국 호불호가 갈리는 마무리로 결말을 내버리는 식으로 유기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죠의 행보는 현재 대결의 승자인 료멘스쿠나가 그대로 적용 받아 따라가고 있는데, 그렇게 고죠의 캐릭터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띄어준 스쿠나도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3] 오히려 최종보스인만큼 플롯 아머를 너무 지나치게 받아서 상대적으로 작가의 보정을 받지 않았던 고죠의 평가가 역으로 올라가는 지경이다.

결국 결말에서 고죠가 떠난 후, 뒤이어 남은 이타도리를 비롯한 후배들이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을 기대한다는 그의 대사로 끝이 나게 된다.

3. 선생으로서

파일:당신에게 고죠사토루란.gif
다들 좋아해, 외롭지는 않았어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사람으로서 라기보단 생물로서 선을 그어왔던 것 같아.
꽃을 피우게 하는 것도, 싹을 틔우게 하는 것도 가능해.
하지만 이 자신을 알아줄 것 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
사후세계에서 밝히는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 [4]

3.1. 부실한 학생관리와 일부 학생 편애

Q. 옷코츠나 이타도리와 같은 문제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이유가 뭔가요?
A. 강하면 된 거 아냐? 라고 여기는 구석이 있어서.
Q. 토우지한테 듣고 '후시구로 메구미'를 만나러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수한 인재를 찾아서.
팬북에서 밝힌 고죠에 대한 Q & A. 고죠가 학생들을 힘을 기준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교사보다는 보호자 혹은 코치, 교수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교사로서는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이는 주술고전이라는 학교 자체의 특수성[5]과 작중 주술 설정[6]상 교사로서 해줄수 있는 것이 적은 것 또한 작용한다.

제자들을 확실히 챙겨주고 보호하는 좋은 보호자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7] 워낙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제자들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했다. 이타도리는 자신이 바쁠 때 나나미를 붙여서 가르치긴 했으나 정작 본인은 유지, 유타, 메구미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에게는 잘 신경을 쓰지 않는 등[8]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만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했던 제자들도 옷코츠 유타, 하카리 킨지, 교토 쪽의 토도 아오이 같은 특출난 학생들을 제외하면 다른 제자들은 점점 강해지는 주령과 주저사들을 상대하기도 벅차다. 사실상 고죠가 가르치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충고하는 등 교사다운 모습을 보인 건 이타도리 유지, 후시구로 메구미, 옷코츠 유타 정도로 이들은 늦게 등장하는 하카리를 제외하면 고죠가 자신만큼 강해질 거라 예상한 학생들이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면 고죠는 이 셋만 기대하며 편애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심하게 말하면 인원 채우기용으로 모으기만 했을 뿐 제대로 봐주지 않으면서 사실상 내다 버렸다는 뜻이 된다.

이타도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묘사도 극초반부의 '완성도가 극단인 영화 보여주기'라는, 본인이 직접 뭘 해주는 것보다는 문제를 던져주고 알아서 풀어보라는 식의 연출 외에는 부각되지 않는 것도 교사로서 훌륭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9]

사실 이 부분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지인과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편애했는데 단적으로 게토와 쇼코에 대한 태도도 같은 생활한 동기인데도 불구하고 게토를 유독 절친으로 대하는 비해서 쇼코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써주지 않은 느낌이 강한 편이다. 실제로 이에이리가 이에 대해서 독백으로 서운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에이리는 임무에 잘 나가지 않았다고도 했었고, 임무를 함께 수행하고 교류가 많았던 것은 게토 쪽이었기에 고죠 입장에선 게토를 더 가깝게 생각할 만 하긴 했다. 또한 고죠의 과거편에서는 고죠와 게토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오기도 했고 이에이리는 사실상 두 사람을 관망하는 포지션에 가까웠다. 그리고 고죠의 서사 중심이나 지금 하고 있는 교사 일 역시 전부 게토에게 영향을 받아서 하고 있는 것이여서 고죠에게 있어서 게토가 갖고 있는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기에 이에이리와 게토를 동일선상에 두는 것은 맞지 않다.[10] 하지만 고죠도 이에이리를 신뢰하며 게토만큼은 아니지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가끔 보여주긴 했다. 고죠와 이에이리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지 않은 게 문제여서 나온 비판점이다.

다만 메구미, 유타, 유지 3인이 기대감을 가질만한 원석이면서 동시에 신경을 써줘야 하는 편인 것도 감안해야된다는 반론도 있다. 유타, 유지는 사형 예정이었고 메구미는 젠인가라는 고죠가와 관계가 험하면서도 3대 주술가로 권력을 가진 집안과 귀찮은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고죠 사토루 본인이기에 저 3명을 케어하는 것에 가깝다. 그나마 유타의 경우 주술계 상부도 죽이고 싶었지만 사형집행인이 리카에게 죽어버리며 죽일 방법이 없었고 이후 리카를 1년만에 해주하고도 특급으로 3개월만에 복귀하는 재능의 끝을 보여주며 사토루 본인이 시부야 이후 상황에 대리를 맡길 정도로 성장했지만 나머지는 작 중 후반으로 가서도 고죠의 그늘이 필요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나머지 학생들을 내버려둬도 되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유타를 미겔, 유지한테는 나나미한테 맡겼듯이 나머지 학생들도 각자의 능력에 맞는 상급 주술사들에게 맡아서 가르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했는데 세 명한테 해준 것만큼 나머지 학생들한테는 그러지도 않았기에 고죠가 학생들 관리를 못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262화에서 실제로 고죠는 2학년 아이들 중에서 유타한테만 유독 신경썼다는 게 밝혀지며 이러한 편애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즉, 고죠는 자신의 절친으로 게토만을 생각하고, 학생들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다른 학생들보다 재능이 많았던 유타, 유지, 메구미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등 종합해서 보면 고죠의 인간관계는 재능과 강함이 우선되어야 그 다음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강함과 상관없이 그를 생각해주거나 신뢰했던 그 외의 사람들한테는 다소 야속하게 보이거나 신뢰를 배신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죠를 좋아하는 일부 팬들도 비판하기도 한다. 고죠 자신이 말이든 행동이든 주변 사람들을 신뢰한다고 표현했으면서 이유야 어쨌든 결론적으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은 주저사로 활동했던 게토와 비슷했다. 게토도 인간관계를 주술사(또는 주저사)와 비술사로 극과 극으로 나누었다면 고죠는 같은 주술사와 제자들을 의도치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급을 나누었다. 그나마 같은 주술사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게토와 비교하면 고죠의 인간관계는 고죠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는 이상 더 삭막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고죠 쪽에서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가 제자들을 믿고 터놓고 얘기하며 친밀도를 쌓거나 그게 안된다면 고죠 자신을 잘 아는 주변인(주로 이에이리, 나나미 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중재자로서 고죠와 제자들의 사이를 조율할 수 있게끔 했으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겠지만 고죠는 물론 게토도 결국 주변인들을 믿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했기에 문제만 커지고 실질적인 건 해결되지 않아 도리어 기회를 노리던 켄자쿠, 특급주령들 등 적들의 계획에 놀아난 결과만 낳았다.[11] 켄자쿠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시부야 사변 이전까지는 죠고, 하나미, 마히토 등의 특급주령들이 주술고전이나 주술사들을 계속 습격했기에 켄자쿠의 존재를 눈치 못 챘어도 분명 그 위험성은 감지하기에 충분했다. 고죠 자신은 유지와 메구미를 중심으로, 나머지 학생들은 각각의 능력과 맞는 다른 상급 주술사한테 맡겨서 학생들이 가진 능력을 더 이끄는 등의 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고죠 본인의 오만함이 담긴 교육관으로 편애했던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의 능력치가 크게 벌어졌고 결국 솔로 플레이를 강조하는 주술사의 기본 마인드까지 합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학생들은 생사불명이 되거나 큰 부상을 입는 등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본인이 아예 나는 교사 같은 걸 할 사람이 못 된다며 언급했기에 이 부분 대해서는 큰 논란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다면 우수한 학생들을 길러서 주술계를 개혁하겠다는 본인의 포부는 앞뒤도 안 맞을 뿐더러 처음부터 안 하느니만도 못하게 되었다. 교사가 된 것도 다른 사람이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이 교사가 되겠다고 선택해놓고 나는 교사 같은 걸 할 사람이 못 된다며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 못한다며 사실상 자기 만족은 다 해놓고 푸념을 늘어놓는 꼴이 된 것이다.

268화에서는 기존 3인방, 특히 후시구로 메구미쿠기사키 노바라와의 유대가 부족하다는 것을 작가도 인식했는지 이들 셋에 대해 함께 언급한다. 고죠가 두 사람에게 편지를 따로 남겨놓았는데 노바라에게는 실종된 어머니를 찾았다는 것을, 후시구로 메구미에게는 자신이 네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백했지만 노바라는 그 딴 걸 왜 신경 쓰냐며 구겨버렸고 메구미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넘어갔다. 이를 통해 그래도 메구미와 노바라도 따로 챙겨주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문제는 노바라의 어머니는 실종되었다는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이번 에피소드에서 처음 언급된 거라[12] 노바라와도 사이가 좋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뜬금없이 억지로 추가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해당 에피소드가 특별히 잘못 된 게 아니니 못 넣을 것도 없지만 작중 내내 서로 잘 모르겠다며 언급했으면서 결말에 와서야 억지로 훈훈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 같아 보는 독자들한테는 또다시 갑작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작품 초반에 노바라가 보고 싶다고 언급된 사오리를 찾았다고 했으면 그래도 갑작스러울 수 있겠지만 노바라의 어머니와 달리 존재 자체가 언급이 됐기에 고죠가 노바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개연성 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시부야 사변까지의 행적만 보면 주역인 1학년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실질적인 담임 역할은 나나미 켄토가 했으며 1학년들도 나나미를 진심으로 따랐다. 반면, 고죠와 1학년들과의 유대감은 나나미와 1학년들의 사이만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나마 고죠가 챙겨줬다고 할 수 있는 유지와 메구미도 사실상 자신의 개혁을 이룰 도구로서 생각했다는 정황이 있기에 이들 사이에 정말로 유대감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는 평가도 종종 보인다.[13]

최종화에서 유지에게 이전의 식물 발언과 다르게 제대로 선생님 같은 모습을 보였기에 식물 발언은 사실상 무의미한 발언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다른 학생들은 제대로 신경 써주지 않았으면서 유지한테만 또 편애한다'고 누군가가 지적을 하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어찌 보면 고죠가 일부 학생들, 특히 유지를 편애했다는 주장만 더 강화시키는 장면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종종 보인다.

3.2. 공감 결여

결국 스쿠나와 대결에서 패배한 뒤, 저승으로 보이는 곳에서 친구인 게토한테 스쿠나에게 공감하며 자신과 달리 진심으로 싸우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제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고 단언해 고죠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게 되었다. 여러가지 변호나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선역으로서 '공감 가능한' 모습과는 동떨어지는 만큼 평가 하락이 일어났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신 화의 대사와 그간의 행적이 모순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분명 스쿠나와 싸우기 직전에 이지치, 우타히메, 가쿠간지에게 협력도 구했고, 고죠 자신이 직접 등을 가리키자 제자들은 기쁘게 등을 때리며 응원을 했다. 그리고 스쿠나와 마주하자 제자들이 보고 있다며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여과없이 보여줬는데 스쿠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자 스쿠나나 켄쟈쿠에게 목숨을 위협받거나 뒷감당을 해야 할 제자들과 지인들에 대한 걱정은커녕 갑자기 거리감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14] 거기다 켄쟈쿠는 자신의 절친의 몸을 사용해 자신은 물론 지인들을 위험에 빠뜨렸기에 스쿠나와의 싸움에서 패해도 고죠 자신이 누구보다 치를 떨며 켄쟈쿠를 없애지 못한 것에 원통해야 하는데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물론 “회옥·옥절 사건을 통해 심경의 변화가 있었고 뭐가 중요한 것인지 머리 속으로는 알았기에 교사를 택했으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본성은 계속 남아 있었기에 그걸 감추고 있었던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고죠가 속마음을 털어놓자 나나미와 하이바라는 "당신이 자기 만족을 위해 주술을 사용하는 변태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고 있었다"라고 대답하고, 그걸 들은 고죠는 굉장히 당황한다. 이 장면들을 보면 최소한 고죠가 자신의 이상성을 자각하고 어느 정도 감추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맞다.

다만 이런 고죠의 속마음이 전혀 암시되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고죠의 선악 개념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었는데, 회옥·옥절 편에서도 고죠는 주술사의 책무에 대해 설교하는 게토에게 "힘에 책임이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약자의 논리고, 나는 강자이므로 그런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반박한다. 즉, 고죠가 주술사로서 활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책임감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만족이라는 말이다. 본성이 사악한 건 아니었기에 힘을 마음대로 휘둘러 누군가를 해치려 하진 않았지만, 결국 본질적인 행동 원리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고 나나미가 지적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또한 아마나이 리코의 호위를 위해 몸까지 축내면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고 아마나이가 원한다면 주술계와 척을 져서도 신변을 보호하려는 생각까지 했음에도 아마나이를 죽인 토우지와 싸우면서 나는 리코의 죽음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강해진 것이) 기분이 좋다고 스스로 인정한다.[15] 0권에서도 고죠는 판다와 이누마키가 게토를 상대로 시간 끌기 밖에 되지 않을 것이며, 도리여 죽기 직전까지 가겠지만 주저사가 된 게토가 어린 주술사를 직접 죽이진 않을 것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추측으로 옷코츠의 기폭제로 삼기 위해 일부러 두 사람을 보냈는데, 사실 이것도 엄청난 하라구로짓이다.[16]

시부야 사변에서도 민간인이 죽는 것을 수도 없이 눈 앞에서 보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사실 이것도 정신력이 강하다기보다는 아예 감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다는 묘사에 가까웠다. 특히 하나미를 압사시킬 때에는 죠고가 히나미를 구하기 위해 술식으로 비술사를 위협하였으나[17] 고죠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하나미를 죽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아무리 상대가 주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하나미가 무하한에 압사당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는데, 주령을 상대하며 웃는 모습이 나온 현대 주술사는 고죠가 유일하다.[18] 여기에 켄자쿠가 자신을 봉인하려고 하자 앞으로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음침한 데다가 조명도 별로라며 할 거면 빨리 하라고 재촉하지를 않나, 옥문강 안에서도 큰일이긴 한데 내 제자들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정작 시부야 사변에서 특급 주령들이 인간적 면모를 많이 보여준 것과 비교된다.

사실 작가 코멘트에도 커다란 암시가 있었다. 작가는 고죠가 과거편에서 반성교 신자를 죽일지 말지 게토에게 물어본 것은 당시의 고죠가 게토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는데, 이걸 반대로 해석하면 고죠 스스로는 선악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즉 고죠는 자신이 평범한 윤리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기에 한 명뿐인 이해자이자 윤리적인 성격을 가진 게토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 평범한 사람이라면 성격이 대단히 의존적이지 않은 이상 누군가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고죠가 그렇게까지 했다는 건 고죠의 성격이 범인의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는데, 작중에서 이런 점이 제대로 해설된 적이 없다보니 그냥 그만큼 둘이 친한 사이였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이해되고 말았던 것.

무엇보다 주술계에는 성격 파탄자가 넘쳐흐른다는 언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술사에게 인간으로서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업계 평균에도 한참 모자라다는 의견이 있다는 자체가 고죠의 성격에 대해 의심이 생길 여지를 준 셈이다. 다른 성격 파탄자들도 고죠에게 학을 뗄 정도면 확실히 성격에 큰 하자가 있다고 생각이 저절로 날 정도로 큰 복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실에서 고죠의 심정 공개 불과 몇 주 전에 회옥•옥절 편이 애니로 방영됐는데 거기선 고죠보다는[19] 게토의 타락에 초점이 맞춰져서 고죠가 훨씬 인간적이고 개념적으로 보였던 탓에 선연재분을 접한 팬들한테 더 큰 비판을 받게 되었다. 작품 외적으론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다. 선연재분을 애니 제작진이 알았다면 회옥•옥절 편에 복선이나 암시를 더 삽입할 여지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20]

본 항목의 "고죠 사토루의 강함에 대한 어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죠 사토루가 다른 이들을 식물처럼 느낀 것처럼 다른 이들도 고죠 사토루를 마치 인간이 아닌 초월자나 종이 다른 생물로 느끼고 있다는 묘사나 언급이 적잖게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더욱 고독함을 느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정리하자면 고죠는 보편적인 윤리 개념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고 실제로 이에 나름 충실하게 행동하지만, 그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지는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중에 주술사로서, 교사로서 책임감이 전혀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게토 스구루와 타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이타도리 유우지와 정반대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

그렇기에 팬덤에서 가장 비판하는 멀쩡한 캐릭터를 정신질환자로 만들어놨다라는 부분은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어딘가 뒤틀린 캐릭터였지만 여태껏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된다. 결국 스쿠나한테 품은 연민과 공감은 고죠 자신도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사고방식을 지녔기에 생긴 발상이다. 쉽게 말하면 네가 악당인 것도 알고 적인 것도 알지만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결핍이 있고 그거에 한해서 동정을 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죠도 이 부분에 한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향한 마음도 “모두가 좋았고 외롭지는 않았다”라고 확실히 고죠가 느끼기에도 긍정적인 관계였음이 보인다. 학생들을 대하는 고죠는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편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이 호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의 본성과는 거리가 먼, 어느 정도 꾸며 낸 모습인 면이 있었고, 옷코츠 정도를 제외하고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고죠가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음은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좋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무언가를 칭찬하거나 좋게 언급할 때는 부정 → 긍정 순으로 얘기를 해야 긍정 쪽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고죠는 긍정 → 부정 순으로 얘기를 했기에 제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가 많다.

다만 어떻게 보면 스쿠나가 왜 주저사이고 성격이 왜 그렇게 사악한지 알 수 있는 대사라고 할 수도 있다. 스쿠나도 고죠 사토루처럼 최강으로 태어나면서 본래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최강으로 계속 군림한 나머지 타인을 공감할 수 없게 되면서 인간성이 점점 사라져 끝내 타락하게 된 게 아닌가는 의견이 있다.[21] 고죠 사토루의 장난 어린 성격도 따지고보면 절대 강자로 궁림하면서 심심한 나머지 건드리는 느낌이 강하다. 어쩌면 고죠 사토루가 그렇게 제자들을 양성하고 아끼는 이유에도 어딘가에 분명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동격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해석도 존재한다. 즉 고죠는 스쿠나와 종이 한장 차이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의 연장선으로 작품 외적인 관점에선 고죠의 해당 심리 묘사가 아이젠 소스케의 오마주라는 추측이 있다. #아이젠전이 끝난 뒤, 아이젠이 고독했다는 것과 사실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봐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온다. 고죠의 이러한 이상한 심리는 아이젠을 오마주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냐는 것. 다만 만약 사실이라면 작가는 캐릭터 묘사를 근본부터 잘못했다는 게 된다. 아이젠이 고독 및 이해자라는 키워드가 마지막에 딱 한 번 언급됐음에도 호평을 받았던 것은 그가 악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악역이기에 애초에 일반인과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될 수 있던 것이다.[22] 선역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설정은 충분히 가능하고 현실에서도 있는 일이나, 문제는 이걸 뒷받침해주는 묘사가 부족해서 독자들이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

어떻게 보면 고죠가 교사로서 평가가 안 좋은 것은 고죠 스스로 변할 생각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방관도 어느 정도 있었고, 이를 방치한 결과가 고죠가 제자들의 청춘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제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와 식물로 비유하면서까지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작가가 조금씩이라도 묘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독자들이 고죠의 236화의 행적과 이전 행적들을 비교하며 추측한 거라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맞든, 아니든 추측할 거리가 있다고 해도 관련 복선도 없이 갑자기 드러낸 건 독자들에게 그다지 좋은 전개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또한 명백한 악으로서 공감 받지 못할 존재가 아닌, 자신과 이념을 공유하는 아군 상대로도 공감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로써 고죠가 존재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아군에게도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과는 격이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은 보통 예시로 든 아이젠과 같은 악역에게나 어울리는 묘사이며 보통은 단점으로 여겨진다. 만약 이 설정을 아군에게 부여한다면 일부러 문제를 만드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 아닌 한 이 성향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거나, 오히려 이를 극복하는 전개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예시로 작중 나나미 켄토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주술사 일에 전력으로 매진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현하며 지금 모은 돈으로 노후에 여유롭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묘사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죽기 직전까지 그저 한 마리라도 더 주령을 처리하다 마지막에는 본인의 평소 성향과는 다른 유언을 남기며 주인공을 고무하는 역할을 맡는다. 캐릭터가 자신의 평소 성향을 극복하고 향후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고죠는 누군가에게 영향받는 일도 없고 역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도 없이 스스로 본인의 서사를 완결시킨다. 단점을 극복하는 것도 아니고, 이를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닌 채 혼자서 끌어안고 끝내니, 이 성격 설정이 과연 필요하냐는 지적이다.

4. 비판

4.1. 캐릭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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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주술회전의 캐릭터 붕괴 및 문제점이 가장 많이 일어난 사례이기도 하다.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 스쿠나와 대결 중 유리하게 흘러갔을 때는 마허라로만 상대하는 스쿠나와 달리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상대해서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스쿠나에게 패배하고 이후 저승으로 보이는 곳에서 게토와 대화를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데, 스쿠나에게는 연민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제자들, 특히 제일 아끼던 수제자 유타와 동창인 쇼코 등 나머지 동료에 대해서는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있긴 한 거냐\'라며 호불호가 갈리게 되었다.

최강이었던 서로가 서로에게 첫 이해자가 되어줌으로써 스쿠나와의 싸움으로 모든 걸 쏟아낼 수 있어서 즐거웠지만 스쿠나는 죽어버린 자신에게 모든 걸 쏟아내지 못했다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겉으로는 선생으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제자들을 챙기고는 있었으나 속으로는 "꽃을 보며 예쁘다곤 생각하지만, 자신을 이해해주기까지 바라진 않는다"며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사후세계에서 나눈 대화들 중 스쿠나를 상대할 동료들을 걱정하기는커녕 제자나 남은 동료들에게 미련이 남았다는 묘사 하나 없었고, 222화에서 스쿠나와 싸우기 전 응원해주던 동료들 사이에 스구루가 없어서 불만족스럽다고 표현한다던가, 저승에서 옛 담임이었던 야가 학장, 후배인 나나미, 하이바라와 밝게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태 사람들이 알아오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236화 공개 후, 고죠의 죽음으로 화제가 된 상황에서 "설정 상 성격이 나쁘다고 묘사되긴 했지만 이 정도 인물일 줄은 몰랐다"며 고죠 사토루라는 인물에 대한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면모를 비판하는 여론도 거세졌다.[23]

거기다 존재 자체부터가 본작의 문제점을 심화시킨 원흉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작가가 강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만든 게 바로 고죠 사토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존재는 그가 사실상 진 주인공 취급을 받게 만듦[24]과 동시에 주인공인 이타도리 유지와 메인 히로인인 쿠기사키 노바라를 포함한 다른 주역들의 비중을 잡아먹게 만들었다.[25]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설계와 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고죠는 그저 강하다는 이유로 욕 먹는 억울한 캐릭터가 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죽은 이후로 독자들이 고죠의 행적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전적이 미묘하다는 점도 재발굴되었다. 0나 회상을 제외하고 작중에서 묘사되는 고죠의 네임드 킬수는 하나미 단 하나로, 그렇게 강하다고 띄어준 것치고는 허전한 수치이다. 죠고나 우라우메 등을 잡을 기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다 처리하지 못했고, 이것이 이후 아군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로 되돌아오면서 고죠가 이때 처리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

또한 고죠의 사망 장면은 워낙 뜬금없어서 논란이 되었다. 료멘스쿠나가 고죠를 피니시하는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 장면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화는 분명 고죠가 이겼다는 대사가 나오며 끝났는데, 다음 화는 갑작스럽게 사후세계에 있는 고죠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이러한 연출에 고개를 갸웃거린 독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작가는 후기 코멘트에 한 페이지를 그리는 걸 깜빡했다는 코멘트를 달며 더더욱 논란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스쿠나의 세계를 베는 참격을 무하한으로 방어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고죠는 육안이라는, 이런 술식에 대응하기 딱 적합한 설정이 있는데도 정작 그대로 죽었기 때문에 설정조차 너프를 먹냐는 반응이 많다.[26]

또 고죠 본인의 평가와는 별개로 고죠의 마지막 장면, 일명 '공항씬'에서 같이 나온 인물들의 평가를 떨어트린 점도 비판 요소다.

마지막까지 자기 목숨을 걸면서 싸운 끝에 이타도리한테 부담을 남기는 것조차 우려한 나나미가 고죠에게 별다른 비판도 안 한다는 점이나, 아마나이나 하이바라 등 작중에서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캐릭터들이 마치 아무런 후회도 안 남겼다는 것처럼 즐겁게 지내는 모습, 게토는 특히 실시간 고인 능욕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점이 겹쳐 본인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평가까지 떨어트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설령 이 모든게 온전히 고죠의 망상이라고 해도 다른 인물들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은 준다는 게 문제다. 즉, 공항 장면은 고죠의 고뇌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표현 미숙으로 당사자인 고죠뿐만 아니라 게토, 나나미 등의 주위 캐릭터들에게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캐릭터 붕괴의 피해를 줬다고 볼 수 있다.

사후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공항 장면도 현재의 모습이 아닌 학창 시절의 모습이었던데다 게토, 나나미, 하이바라, 야가, 리코 등의 학창 시절과 관련된 인물들만 나왔다. 물론 이들 모두 사망했기에 고죠 입장에서는 재회한 거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바람에 고죠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과거 학창 시절만 그리워하며 그 추억에만 머무르고 싶어한 캐릭터로 비춰지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죠를 포함한 작품 등장인물들, 작가, 독자들의 의도와 달리 작중에서의 고죠의 행적은 고죠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상층부들을 닮은 모습을 보였다.

과정은 다르더라도 상층부들의 무능은 과거 편에서는 하이바라의 희생과 게토의 흑화를 가져왔다. 고죠는 자신은 물론 하다 못해 다른 상급 주술사들을 함께 보낼 생각도 하지 않고, 옷코츠 유타의 각성을 위해서 이누마키 토게판다만 보냈다가 학생들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 뻔했다. 물론 상급 주술사까지 보냈으면 게토에 의해 희생자 수만 더 많아졌을테지만 비록 고죠가 유타의 가능성과 어린 주술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게토를 믿었다고는 해도 애초에 게토는 과주원령인 리카를 얻기 위해 유타를 없애는 것도 자신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유타를 포함해 이누마키와 판다, 이미 쓰러뜨린 마키도 아무리 전도유망한 주술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목적에 방해했으니 수틀렸으면 없앴을 가능성도 높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졌으면 차라리 안 보내느니만도 못할 정도로 헛짓을 한 것이기에 고죠는 상층부처럼 인재들만 잃게 만든 악순환을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고죠한테만 의존하는 주술계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상층부는 물론 고죠 자신도 본의 아니게 켄쟈쿠의 계략으로 특급 주령들을 없애지 못하고 봉인당한데다 유지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해 시부야 사변에서 스쿠나가 대다수의 주술사들과 비술사들의 희생을 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본인도 의도치 않게 주술계의 몰락에 가세해버렸다.[27]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 편에서는 이에이리가 회상으로 고죠가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 강한 제자들을 기르겠다며 자신의 결의를 보였고, 싸움을 앞두고 학생들과 서로 격력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스쿠나 앞에서도 제자들이 보고 있다며 교사다운 모습을 보였다가 사후세계에서는 아예 제자들과 동료들에 대한 걱정은커녕 스쿠나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죠한테 말살 당하기 전에 상층부들도 소속된 주술사들 걱정은 하지도 않고, 켄쟈쿠의 꼭두각시가 되어 자신들의 앞날만 걱정했는데, 결국 후반 전개로 고죠는 경우는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상층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버리는 등 비록 왜 이렇게 됐는지는 해석할 여지는 있을지라도 어찌되었든 그동안의 행적과 비교해도 교사로서는 앞뒤가 안 맞는 캐릭터성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고죠가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많다. 만약 고죠가 정말로 공감 능력이 결여된 캐릭터였다면, 게토의 배신에 충격을 받지 않았거나, 리코의 죽음에도 무심했을 것이다. 비록 고죠가 후시구로 토우지와의 대결에서 리코를 위한 복수심보다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인정했지만, 정말로 남들과 다른 수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리코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즉, 작가가 고죠를 처음부터 도덕판단 기준이 다른 캐릭터로 설정했다면, 이러한 장면들이 등장하지 않았어야 한다.

물론 고죠의 행동들이 사회성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공감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아니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지만, 그것은 타인이나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안위 혹은 인정, 소속감보다 자신의 이득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고죠는 가까운 지인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고,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음에도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따라서 고죠가 일관되게 이상행동의 복선을 보여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죠 자체가 주술계의 변혁을 이끌어낼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목적을 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이 죽을 위기에도 스쿠나에게 미안함을 표한 것은 확실히 모순적이며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4.1.1. 반론

당신은 주술을 살기 위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행사해 온 변태였으니까요.
나나미 켄토[28]
나는 말이야... 성격이 나쁘거든. 교사 같은 걸 할 사람이 못 된다고.
본인[29]
고죠를 위선자로서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사실 인간의 본성부터가 내면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걸 생각하면 그리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며 인간의 심리적인 면을 일단은 입체적으로 충실히 반영했다는 의견도 있다.[30]

성격이 좀 특이할 뿐이라는 것도 고죠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고죠는 태어난 순간부터 일반인을 넘어 주술사의 평균치를 압도하고도 남는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렇기에 고죠 입장에선 그 어떤 인간도 주령도 자신에겐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하는 딱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고죠를 동등한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이도, 반대로 고죠가 공감할 만한 이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고죠는 현대 최강의 주술사가 되었다. 실제로도 작중 인간으로서의 고죠 사토루를 동등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인 벗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31] 심지어 그 유일한 친구인 게토마저도 끝내 타락하고 ‘내가 너라면 내 이상도 이룰 수 있을 텐데’란 말을 남기며 그와 선을 그었다.

다른 이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고죠에게는 손가락 한 번 튕기면 끝나는 장난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극초반에도 죠고에게 약하다며 장난스럽게 도발한 고죠와 달리 옆에 있는 이타도리는 여태까지 만난 모든 주령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괴물이라며 공포에 질렸으며, 고죠가 특급 주령 두마리에게 습격받았다고 언급한 것에 가쿠간지가 큰일이었겠다고 하자 나에겐 그저 길거리에서 앙케이트 받은 정도의 해프닝 밖에 안된다며 여유를 부렸다. 즉 고죠의 강함을 보여준 동시에, 다른 주술사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고죠에게는 그냥 귀찮고 곤란할 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는 입장 차이를 잘 보여준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3년간의 청춘을 그리워한 것도 모두가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최강으로 대하는 현재와 달리 힘들면 등을 맡길 수 있고 자신을 같은 인간으로 대해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사후세계에서 고죠가 고백한 대로 모두에게 선을 긋고 있었던 이유는 타인은 물론 심지어 친구마저도 그에게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리고 '생물로서 선을 긋고 있었다' 라는 것은 고죠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암시가 깔려있었다. 초반의 이타도리의 경우 죠고와 고죠의 대결을 보고 '생물로서 격이 달라!'라고 생각했었고, 시부야 사변에서도 나레이션으로 캐릭터들의 술식을 설명할 때 '고죠 제외하고 가장~' 이라는 묘사를 넣어서 다른 인물들과 선을 긋는 듯한 연출을 했다. 그리고 고죠가 스쿠나와 싸우고 있을 때 다른 동료들은 전부 개입하려 하지 않고 TV로 상황을 보며 중계를 하고 있는 연출역시 암시라고 볼수 있다. 마치 TV속의 히어로를 보듯 벽을 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 그리고 그 대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고죠는 우리와는 격이 다른 생물이다' 라는 생각이 제자와 동료들에게 아예 당연하게 기반으로 깔려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연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32]

고죠가 제자들을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일단 고죠는 말 그대로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고 본심을 털어낸 것도 이미 생사를 마감한, 고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개인적인 미련을 털어내는 것 뿐인 상황이었다.[33] 최소한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 인간성을 마다하지 않고 지키려고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거기다 현실성을 생각하면 역으로 이해가 가는 성격이다. 내면을 감추고 살아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고, 인간으로서는 재앙에 가까운 위험도 고죠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34]

또한 이러한 사토루를 지도할 정신적 멘토가 부재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되었다. 작중에 사토루가 최강자로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직접 케어하는 겸 정신적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해당 작중에 고죠가 사망할 때까지도 끝내 없었다. 작중에 워낙 재능이 특출나고 고죠가 당주로서 집안의 힘이 막강해 유일하게 부패한 상층부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고죠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을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많은데다가[35] 특유의 제멋대로인 면이 워낙 강해서 누군가가 선뜻 나서서 정신적 멘토를 자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36] 즉 선천적 결함과 환경이 맞물리면서 끝내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상태에서도 선행을 자처하고 제자들을 최대한 신경 쓴 편이었다. 오히려 친구인 게토가 비술사의 언더도그마에 질려서 타락한 마당에도 동조하긴커녕 인간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37] 마지막까지도 인간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편이다.[38]

선생이라는 입지로 보았을 때도 괴짜인 점을 제외하면 충분히 덕장이다. 제자들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보지 않았던 것도 나쁜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닌 순전히 본인이 인간적으로 가까히 다가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기 비판에 가깝다. 고죠는 이타도리의 사형을 강행했던 상층부를 극도로 싫어하며 제자들의 청춘을 빼앗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고죠가 백귀야행 편에서 자신은 물론 하다 못해 다른 상급 주술사들을 함께 보낼 생각도 하지 않고, 옷코츠 유타의 각성을 위해서 이누마키 토게와 판다만 보냈다가 학생들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어서 인재를 잃어버릴 뻔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우선 당시 게토가 따로 파놓은 함정으로 인해서 신주쿠와 교토에 있는 수많은 주령들과 주저사들을 처리하고 상대하느라 매우 바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고죠가 직접 가세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주쿠와 교토 상황을 재빨리 수습하기 힘든 상황인데[39][40] 여기에 상급 주술사까지 따로 유타 쪽으로 보내면 전력이 분산이 되어서 더욱 지체되면서 더욱 주술사들 피해가 커질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었다.[41] 즉 어쩔 수 없이 유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각성시켜야 했기 때문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하라구로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고죠의 냉철한 판단을 보여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고죠도 토게와 판다만 보낸 것에 대해서 맘이 편치 못했는지 신경을 굉장히 곤두세웠었다.[42]

그리고 고죠가 본인을 의존하는 시스템을 개선하지도 못한 채 주술계의 몰락에 가세했다는 의견도 엄밀히 따지고보면 고죠가 가세한 게 아니라 변수가 너무 많아 고죠조차 대응하지 못했다는 쪽에 더 가깝다. 실제로 고죠가 그동안 인재를 발굴하여 제자를 삼아서 기르는 것도 자신을 의존하는 주술계 시스템을 바꾸려는 이유에 포함되어 있었고[43] 실제로도 인재를 발굴하여 시스템을 개혁하는 게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타도리를 살려준 것도 자신의 강함을 믿고 안일한 것도 있지만 료멘스쿠나의 손가락을 여러 번 먹은 이후에도 멀쩡할 정도로 잘 통제하고 있었기에 당장 큰 문제는 없었다. 여기에 주술계 상층부를 제외한 대부분 인물들이 이에 대해 이의제기 하지 않으며 고죠를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은 편이었다.

문제는 갑자기 여러 변수가 일어나서 상황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되면서 고죠조차 수습이 불가능에 이르렀다는 점. 즉 예측이 불가능했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생긴 비극이자 저주인거지 고죠가 주술계 몰락을 부추겼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44]

그리고 강한 제자들을 기르겠다며 자신의 결의를 보였고, 싸움을 앞두고 학생들과 서로 격력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스쿠나 앞에서도 제자들이 보고 있다며 교사다운 모습을 보였다가 사후세계에서는 아예 제자들과 동료들에 대한 걱정은커녕 스쿠나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으로는 보인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미 스쿠나와 싸우고 죽고 끝난 뒤 그동안 담아놓았던 푸념과 생각을 풀어두었다는 게 가깝다. 실제 고죠는 비록 타인를 꽃으로 바라보았고 선을 긋었다고 하지만 다들 좋아했고 외롭지는 않았다며 게토에게 언급했다. 즉 동료들과 제자들을 나름대로 생각해주는 것은 맞다. 무엇보다 애초에 고죠는 원래부터 무리는 하지 않는 편이라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지난 일이나 제 손을 떠난 일을 되새김질하며 고민하지 않으며 설사 일이 잘 안 풀려도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 없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다. 즉 죽음 뒤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45]

특히 위에서 고죠가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많으며 리코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며 사과한다던가 게토의 타락을 보고 충격을 받은 장면을 들며 연출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한 고죠의 공감 결여는 일반인은 몰론 다른 주술사들 비하면 상대적으로 공감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지 아예 공감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공감 능력이 아예 없었다면 진작부터 스쿠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학살하거나 켄자쿠처럼 자기 쾌락만을 위해 온갓 악행을 저질렸을 것이다. 그나마 공감력이 편린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선인으로 계속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본인의 천성과 인생사를 고려하면 타락하지 않고 선인으로서 인간성을 잘 지켜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관점을 봤을 고죠가 선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게 가히 기적이라고 볼 정도다.[46]

4.2. 작중 취급

고죠 본인의 문제가 아닌 작중에서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공항을 통해 고죠 본인의 서사는 완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 본인이 만족한다는 결론을 보여준 만큼 이후의 묘사는 말 그대로 사족이라 할 수 있으며, 굳이 본편 내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여운을 남기는 연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작에서 고죠는 사망 이후에도 생전 인터뷰 같은 방식으로 온갖 설정을 해설하는 등 회상 장면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며 이러한 여운을 깨버린다. 특히 이 회상 장면이 작중 내 고죠에 대한 취급을 애매하게 만든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스쿠나와 대결 직전 다 같이 고죠의 등을 밀어주는 묘사에서 나오듯이, 본인의 속내는 어떻든 간에 작중 고죠는 아군에게 있어 믿음직한 동료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대결 중 개입하지 말라는 본인의 부탁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누구도 고죠가 위험한 상황에 도와주러 가지 않으며 잠시나마 도와주러 가려 했던 옷코츠조차 결국 고죠가 죽는 순간까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고죠가 죽고 나서 그 누구도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나 반성도 없이 그저 싸움만이 이어질 뿐이다.

옷코츠가 고죠의 시체를 이용하기 직전 관련 회상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내용도 "고죠를 죽게 만들 수 없다 "가 아니라 "고죠가 죽고, (나도 한번 당한다면) 그 다음에는 내가 그 시체를 이용해 나서겠다"라는 것이라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 포지션의 옷코츠가 사실상 고죠의 죽음을 미리 상정하고 있었으며, 이를 막기 보다는 횔용하려고 했다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설령 본인의 허가가 있었다고 해도 본인의 원수의 술식을 이용해 자기 시체를 재활용한다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고인모독이라 여겨질 행위를 제안하고 이것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고죠 본인에 대한 모욕이라 여기는 반응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스쿠나와의 싸움이 끝난 후 변명을 하는 회차였다. 이 에피소드는 작중 인물들이 독자들의 지적을 의식한 것인지 스쿠나를 좀 더 쉽게 쓰러트릴 수 있지 않았겠냐며 후회하는 내용인데, 정작 고죠의 사망에 관한 언급은 전무하다. 토도의 부기우기, 라루의 하트캐치, 토게의 녹음기 주언, 쿠기사키의 술식 그리고 시간제한은 있지만 이 모든 걸 카피해서 활용할 수 있는 옷코츠의 술식 등 직접 싸움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고죠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고 이로 인해 고죠도 생존한 채 이길 수 있었는데도 그 누구도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으며, 최소한 그가 죽어서 안타깝다는 반응조차 나타내지 않는다.[47] 최강자인 고죠를 서포트하는 것이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후시구로가 츠미키의 무덤을 참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도 고죠의 무덤은 나오지 않는다.[48]

고죠 본인의 생각이 주변인들에게 전부 알려진 게 아닌 만큼 당연히 작중인물들에게 고죠는 성격 문제는 있을지언정 믿음직한 동료였고, 최강자로서 열심히 활동한 인물로 보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죽기 전까지만 해도 동료들과 서로 신뢰하는 장면이 그려졌던 인물이, 마치 타인과의 거리감을 느끼던 본인의 심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른 캐릭터들도 고죠에 대한 태도에서 거리감을 두게 되는 모순이 생겨난다. 결국 고죠라는 한 명의 캐릭터는 물론, 그 캐릭터를 둘러싼 다른 캐릭터들의 묘사까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 화 쯤 가면 이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고죠 본인이 직접 자기 따위 잊어도 좋지 않냐는 말을 하는 회상이 나오는데, 이걸 들은 사람이 아타도리 혼자에 정작 그 이타도리는 죽기 직전까지는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솔선해서 등을 떠미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이후로는 그 이타도리조차 고죠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묘사가 사라진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고죠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묘사만 남은 것.

5. 총평

이런 논란이 터진 이유는 작가가 설정한 고죠와 팬덤에서 인식한 고죠가 달랐기 때문이다. 팬덤에선 "본인 말대로 성격 나쁘고 괴짜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개념은 갖추고 있는 인물"로 인식했으나, 작가는 "현대인의 상식을 벗어난 사고방식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설정했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팬들은 성격 나쁘지만 본성은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였지만 작가는 성격 나쁘고 본성도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49]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죠의 캐릭터 붕괴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탓이다. 그동안은 고죠의 이상 행동이 그냥 성격이 좀 안 좋거나 장난기가 많은 정도로만 이해되어 왔지만, 사실은 사고방식부터가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달랐다는 언급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그간의 내용과 상충하게 되었기 때문. 캐릭터 붕괴가 아니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는 것이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여지일 뿐 정말로 작가가 고죠를 그런 캐릭터로 설정한 것이었다면 고죠의 심리 묘사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반전이라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복선이 부족한 것은 여전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묘사가 호평을 받으려면 복선이 두세 개쯤은 깔려있어야 하고, 실제로 고죠의 사고방식이 평범하지 않다는 단서는 여러 번 등장하나[50], 작중에선 처음부터 장난기 넘치고 말투가 가벼운 캐릭터로 묘사된 탓에 고죠가 하는 말이 농담인 건지 진담인 건지 독자들조차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51]

그나마 옹호하는 측에선 지나가듯 나온 장면들이 알고 보니 전부 복선이었다는 반전을 의도했을 거라는 의견을 내긴 한다. 다만 이게 사실이라 해도 연출에 부족함은 남는다. 이런 식으로 복선을 삽입했을 경우 반전이 공개됐을 때 작품 안에서 복선들을 되돌아보며 독자들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설명을 해주는데[52], 주술회전의 경우엔 독자들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고죠가 처음부터 매우 가볍고 장난기가 넘치는 나머지 고죠가 진담인지 농담인지 종잡을 수 없어서 별도로 설명은 필요한데도 그러지 않은 채 자신의 본성이 밝혀지자 주변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고 대답하고 바로 넘어가면서 그야말로 독자는 모르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작가가 설정한 고죠의 캐릭터를 본편에서 제대로 다뤘다면 독자들도 이해하고 넘어갔겠지만, 애초에 본편에서 고죠에 관해 다룬 건 그의 강함과 제자들의 청춘을 생각해주는 책임감 있는 모습이 강조됐지 고죠의 그 외 가치관이나 개인적 생각이 드러난 건 회옥/옥절 편을 제외하고 없다시피하다. 그조차도 고죠가 다른 캐릭터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건 팬북에서의 작가의 답변이나 단편인 주술회전 0에서 유타의 각성을 위해 게토가 있는 주술고전에 아직 학생인 이누마키와 판다만 보낸 것과 초반에 메구미의 부상을 방관하며 즐기고, 아군이 죽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면서 주령들과 적들을 없애는 등 해석할 여지는 있었지만 이조차도 바로 알아챈 게 아니라 236화의 고죠의 발언으로 독자들이 이전 행적들을 돌아보고 겨우 알아챈 경우가 많다. 이것도 좋은 방식으로 연출되어야 나중에 찾아볼 때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지, 그렇지 않으면 '고죠는 원래 이런 캐릭터였는데 그것도 몰랐냐?'라며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독자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작가가 그렇게 중요하게 언급한 '강함', '고독', '사랑' 등의 키워드 중 고죠는 '강함'만 강조됐지, 나머지는 고죠에게 적재적소에 넣지 않거나 넣지 않으니만 못할 정도로 미미하게 연출된 채 연재를 진행했고, 이러한 불완전한 요소는 236화에서 기어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이 생긴 건 적 캐릭터인 료멘스쿠나를 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악역이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고죠와 그 뒤를 이은 카시모 하지메의 캐릭터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고죠와 카시모의 희생은 작품에 전혀 도움이 안 됐고, 다른 캐릭터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작가가 띄워주려 했던 스쿠나도 매력적이게 보이기는커녕 조롱거리가 되어 팬들에게 비웃음만 당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격도 본성도 이상하지만 기본적으로 선한 인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실제로 생애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고도 악행을 저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약간 겉돌기는 했지만 어째든 자신이 할 수 있는대로 머리로나마 도덕을 이해하며 나름 충실하게 이행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변함없다.[53] 적어도 자기 만족을 위해 타인을 거리낌없이 희생시키는 스쿠나와 켄자쿠 같은 인물상과는 다르다. 이런 고죠의 이상성을 모두가 대충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나미나 게토, 쇼코와 같은 주변인이 그런 고죠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설령 평범한 사람들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지언정 결코 악인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54] 그리고 공감이 결여되어 있어도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한다.[55]

요지는 고죠가 그저 맥락 없이 강하기만 했는데, 봉인당한 사이에는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원래도 무책임하긴 했지만 상식관이 다른 인물들과 다르다는 점은 성격 좋은 이타도리나 옷코츠마저 완전히 고죠의 기행을 납득하지 않는 선에서도 얼마든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고죠가 최종적으로는 스쿠나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건 그 모든 걸 쏟아붓고도 스쿠나를 전투 불능 상태까지 못 만든 시점에서 가늠할 수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봉인이 풀린 직후 자신이 이긴다고 선언해 놓고는 이렇게 어이없이 죽어버린 뒤 "나는 만족했어"라고 한 마디만 하고는 스스로 끝을 내버리는, 무책임을 넘어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스쿠나는 여전히 멀쩡하고 다른 수단도 가지고 있으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지금껏 본인의 인생 역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다. 작가가 고죠라는 캐릭터에 대해 표현을 제대로 못한 바람에 일부 팬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대해 입으로만 떠들고, 실천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친구랑 함께했던 추억만은 그리워했던, 심하게 말하면 입만 산 허세 캐릭터이자 정신적으로 성장하지도 않은 어른이 캐릭터인 것처럼 비춰보이고 만 것이다.[56]

결국 본작의 캐릭터들 중에서 작가에게 가장 큰 수혜를 받아 큰 인기를 받은 캐릭터이지만, 반대로 작가에 의해 그동안 이끌었던 서사와 설정도 무색하게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캐릭터 붕괴를 당했다고 느낄 정도로 (비록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적들에게는 확실히 두려움을 주는 강한 캐릭터였어도, 아군에게는 자신한테만 의존하게 만들어놓고는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일만 더 키우고 가는 느낌을 주었다. 설령 그것이 전개에 필요했더라도 과정이 좋지 못하니 팬들에게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즉 가만히 내버려뒀어도 큰 비판을 받지 않았을 캐릭터를 작가가 스쿠나와의 서사를 위해 '강함', '사랑', '고독' 등의 키워드를 적재적소에 넣지 않고, 안 좋은 방식으로 넣은 바람에 고죠의 이전까지의 행적이 비판을 받게 된 것은 물론 비장한 상황인데도 으로도 만들어지며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즉 종합적으로 여러 이유를 들며 변호를 했지만 결국 작가가 표현한 고죠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만족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한 인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무책임한 최강자라는 평가가 작품 내에서도 작품 밖에서도 유의미한 셈. 그나마 이런 평가를 뒤집을 여지가 있다면 고죠가 인외마경이 신주쿠 결전이 시작되기 전, 즉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완전히 묘사되지 않은 만큼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에 달렸다. 그러나 남은 등장인물들 대부분도 애매한 전개와 어색한 표현에 비판받거나 조롱거리가 되고 있기에 완결까지 고죠의 안 좋은 평가를 뒤집기에는 늦었다거나 시도해도 어렵겠다는 비관적인 의견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후 전개되는 스토리에서 이러한 예측은 결국 들어맞고 말았다.

사실상 고죠는 작품 외적으로도 작품의 인기와 유명세를 올려준 일등공신 캐릭터이지만, 작가에게 있어 고죠는 작가 자신이 공들여 만든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식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고죠가 하나의 캐릭터로서 활약하는 것은 회옥•옥절 편에만 그치고 이후로는 무대 장치 정도의 취급만 받았다. 결국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에서 고죠 이상으로 피해를 입은 후시구로 메구미를 제외한 비판받는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해도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캐릭터들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후 마지막화 회상에서 고죠가 이타도리와 대화할 때의 대사를 보면 무엇 때문에 식물 대사를 넣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지경이다. 고죠 이상으로 큰 피해를 받은 후시구로 메구미조차도 최후반에 작가가 어떻게해서든 수습하려고 노력한 반면 고죠는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작가가 수습조차 할 생각이 없으니 작품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캐릭터가 되었다.


[1] 죠고와의 첫 전투, 시부야 사변에서 주령들과의 전투, 극장판 애니메이션 한정해서 미겔과의 전투도 포함된다.[2] 그러나 이타도리 유지사멸회유 편 내내 제대로 힘을 키우지 못한 채 활약하지 못하다가 흐지부지 끝났다.[3] 고죠가 주역들에게 성장해야 하는 계기면, 스쿠나는 주역들이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주역들의 성장에 있어 필요한 목표인 건 같았다. 거기다 둘 다 작가가 다른 인물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내레이션이든,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든 어쨌든 띄워주려한 것도 같다. 다만 고죠는 작가가 다른 주역들의 성장을 방치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이지만, 스쿠나는 그 주역들의 능력을 깎아내리거나 캐릭터 붕괴까지 일으키면서까지 띄워주려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4] 우스갯소리로 교수가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 줄수도 있고 대학원생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내 수업을 이해해줄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식으로.[5] 극소수 정예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업보다 학생들을 실전에 투입하며 현장 경험을 익히게 하는 걸 우선함.[6] 재능과 스스로의 깨달음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며 수련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은 극히 적은 것.[7] 옷코츠 유타이타도리 유지의 사형을 늦추기 위해 상층부를 설득한 건 고죠였으며, 젠인가에 거두어줘서 불행하게 살 뻔한 후시구로 메구미도 고죠가 직접 나서서 그를 키웠다.[8] 아예 주역 3인방 중 하나인 노바라는 고죠에 대해 "나는 그 녀석에 대해 잘 모르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말해 고죠와의 교류가 적은 것을 대놓고 언급했다.[9] 나나미에게 부탁해서 이타도리의 정신적 케어를 해주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긴 했는데, 결국 본인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맡긴 모습이라 스스로의 자질 부족을 보여준다. 거기다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이타도리한테는 이렇게라도 챙겨주기라도 했지 다른 학생들에 대해서는 아예 방관한 것에 가까울 정도로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10] 실제로 주술회전0의 소설판에서도 고죠는 게토를 단순하게 고전 동기였다는 틀에 가둘수 없다는 야가의 독백이 있었기에 고죠는 게토를 동기 이상으로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있다.[11] 게토는 주술사들만의 낙원을 만들겠다면서 도리어 주술사들을 대다수 죽게 만들어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고죠는 주술계를 개혁한다고 나섰지만 결국 개인플레이를 강조하는 주술계 특성상 본인 포함 주술사 동료들과 제자들 모두 하나로 뭉치지 못했기에 상층부와 켄자쿠, 스쿠나, 특급주령들에게 농락만 당했다.[12] 팬북에서는 노바라의 어머니는 노바라가 이전까지 살고 있던 시골을 마음에 안 들어한다는 것과 자신의 어머니와 딸이 주술사로 활동한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 언급되긴 했다. 다만 팬북에서만 언급된 거지 본편에서 나오지 않은 건 변함 없다.[13] 처음에는 도구로 생각했지만 후에는 진심으로 생각해줬다는 묘사를 넣었으나 후반 전개로 이러한 묘사가 묻혀졌다.[14] 다만 고죠가 스쿠나와 싸우기 전에 해 두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스쿠나와의 결전까지의 약 한 달 간 공백 기간 중 자신의 스쿠나에게 패사할 가능성을 상정해 제자들과 지인들을 위해 어느 정도 손을 써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자신이 비호하고 있는 주술사들을 걸핏하면 사형시키는 총감부를 몰살하고 가쿠간지에게 차기 총감부의 리더를 맡기는 듯한 대사를 했으며, 원래라면 자신이 직접 전달했어야 할 후시구로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쇼코에게 미리 전달한 것, 그리고 이전에도 아프리카까지 찾아가 옷코츠에게 혹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1,2학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해 둔 것을 보면 스쿠나에게 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혹시라도 져서 사망할 경우 곤란해질 사람들에 대한 대처는 해 두었다는 말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회상 등으로 풀릴 떡밥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15] 작중에 반전술식으로 다시 일어날 때도 토우지를 원망하기는 커넝 오히려 좋아 죽는 모습도 따지고 보면 복선이었던 셈이다. 토우지는 기사회생한 덕분에 흥분된 상태로 해석했으나, 따지고 보면 죽음의 문턱에서 주력의 핵심을 깨닫고 반전 술식까지 습득하여 한 단계 더 성장하자 이에 기뻐 흥분한 모습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16] 이런 점은 마키 성우와 이누마키 성우 역시 '죽지 않을 걸 안다고 해도, 다소 당하는 걸 전제로 보낸 건 좀 너무하지 않아?'라고 하면서 고죠의 행동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17] 오히려 죠고는 철저히 이상과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쿠나한테 너는 주령 주제에 너무 생각이 많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고 스쿠나한테 너는 강하다라는 칭찬을 들으며 리타이어 함으로써 깔끔하게 캐릭터성을 완성하고 박수칠 때 퇴장하였다.[18] 애니에서는 죠고의 팔을 뽑아버리며 하나~둘~♪ 집어던질 때도 웃으며 즐기고 있는 장면이 추가되었는데, 다른 주술사들이 시종일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묘사.[19] 고죠도 푸시를 많이 받기는 했지만, 심리가 아닌 액션 부분에서 받았다.[20] 애니메이션 1기 교류회 야구편에서 오리지널 장면이 추가된 적은 있다. 고죠가 개미들의 행렬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지만 무하한 술식 때문에 개미 행렬이 무사한 장면이 그것이다. 워낙 잠깐 사이에 지나간 장면이기에 놓치기 쉽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불특정 다수에게 최강으로서의 고죠가 취하는 스탠스를 은유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즉 누구나 무심코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는 인간과 비교해 약자라고 볼 수 있는데, 고죠는 이들에게 어떠한 연민이나 공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동시에 존중과 보호의 대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21] 실제로 후시구로의 몸을 빼앗고 쿠루스에게 치명상을 입힌 후 분노하는 이타도리에게 스쿠나는 자신보다 약자, 그러니까 그냥 인류 전부를 혐오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사악한 인물의 인명경시를 나타내는 상투적인 묘사일 수도 있지만, 236화의 고죠의 사상을 본다면 어쩌면 지금까지의 감정을 곱씹기만 하며, 스쿠나를 만날 일 없이 천수를 누린 고죠였다면 말년에 가서는 스쿠나와 같은 감상을 하게 되는 위험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마치 작중에서 고죠가 주령을 얕잡아보고 깔보고 낮잡아보는 것처럼 말이다.[22] 게다가 아이젠은 본인의 가치관이 남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발언들을 직접 했었다. 해당 대사들이 말이 너무 길다, 개똥철학 등의 비판을 받긴 했으나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가치관의 차이가 극단적임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젠은 고죠와 달리 암시도 충분히 됐었다.[23] 작중에선 원래 남 몰래 동료들과 선을 긋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는 묘사가 나와 작중 인물들은 대충 이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고 미루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봐 왔던 고죠 사토루의 쓰레기 같은 성격은 장난기가 많고, 성질을 긁어대며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악동 수준이었기 때문에 해당 대사가 캐릭터 붕괴의 수준으로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다.[24] 주태구상도와 처음 대립한 기수뇌동 편 이후는 사실상 고죠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회옥 • 옥절 편은 고죠와 게토의 학창시절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부아 사변에서 고죠가 옥문강에 봉인된 원인을 암시하는 빌드업을, 사멸회유는 고죠의 봉인을 풀기 위한 여정, 신주쿠 결전 초반은 고죠의 퇴장을 장황하게 묘사했다.[25] 그나마 이타도리는 시부야 사변에서 쵸소우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마히토를 사실상 리타이어시킨 것과 사멸회유에선 히구루마를 설득한 전적이라도 있지, 노바라는 여성 멤버 머릿수 채울려고 넣은 수준으로 비중이 없다.[26] 이후에는 장인과 주사영창을 하고 참격을 쓰는 모습을 보여 육안을 지닌 고죠가 이를 못 대응하는게 오류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는 스쿠나가 팔 하나가 없어 장인을 맺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고죠를 상대로는 속박을 걸어 무조건으로 발동시킨 뒤 생긴 제약으로 밝혀졌다.[27] 특히 팬북에서 고죠가 유지를 살린 이유가 유지를 생각하고, 존중했다기보다는 "강하면 된 거 아냐?"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살린 것이 밝혀졌다. 이게 잘 풀리면 좋았겠지만 후반의 안 좋은 전개로 고죠가 유지를 없애지 않은 판단은 도리어 스쿠나가 날뛰게 만든 결과를 만들어 고죠, 그리고 덩달아 그런 고죠를 따랐던 유지도 주술계의 몰락에 상층부, 후시구로 토우지, 게토 스구루와 함께 거든 격이 되어버렸다. 즉 너무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서 상황을 안일하게 본 셈이다.[28] 평소 유쾌하게 넘기던 사토루가 작중 처음으로 정통을 찔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매우 당황한 것을 보면 고죠 사토루가 어떤 인물인지 잘 요약한 정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기에 하이바라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 뿐이라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이에 사토루는 "잠깐 하이바라 네 쪽이 더 빡치는데?"라고 대답.[29] 작중 극초반에 고죠의 자학개그인 동시에 자신의 성격이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대사이기도 한다.[30] '일단은'이라고 강조해서 표기한 것은 그렇다고 작가가 잘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 의도는 좋았었겠지만 결국 고죠의 최후에 와서야 작가가 관련 떡밥을 제대로 뿌리지 않아 표현하지 못한 것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듯이 조사하게 만들어 알아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31] ‘당신에게 고죠 사토루란?’이라는 질문에 답하는 장면에서 제자들은 물론이고 동료 교사들까지 전부 그를 바보, 괴짜, 경박한 사람으로 평했으며 그 마지막에 따르는 말은 항상 최강이었다. 그러나 게토 만이 유일하게 고죠의 겉모습이나 가진 힘이 아닌 그저 ‘내 친구였던 사람’이라고 평했다.[32] 하지만 이러한 중계연출은 고죠가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냥 아무것도 안하면서 TV프로그램 보듯이 태평하게 반응하기만 하고 있었기에 독자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없어진다고 비판하는 반응이 많았다. 결론적으로는 의도치 않게 호불호가 상당히 갈려버린 실패한 연출이다.[33] 애초에 고죠는 옥문강에 봉인되었을 당시 상황이 아주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걱정하기보다는 느긋하게 제자들에게 뒷일을 맡기고 있었다. 아마나이 리코 호위 임무 때에도 이틀 간의 철야를 불사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사건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정신적인 내상이 전혀 없는 듯 평소의 밝은 성격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닥친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려 자신의 힘으로 손 쓸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미련을 버리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34] 시부야 사변 당시 고죠의 전투신에도 (복선은 아니지만)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한다. 역 내의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덮치는 마히토와 쵸소우의 공격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고깃덩이가 되어 죽어나가는데, 고죠는 머리카락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고죠의 무하한은 자기 자신은 완벽하게 보호해주지만, 정작 주변에 있는 인간은 지킬 수 없는 힘이라는 것. 실제로 고죠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도 아마나이 리코게토 스구루도 지키지 못했다.[35] 당장 야가와 유지는 고죠의 도움이 없었으면 진작에 상층부로 인해 죽게 될 운명이었다. 특히 부패한 상층부가 본격적으로 막나가는 시점이 고죠가 봉인당한 후였다.[36] 당장 마히토의 마이페이스 때문에 죠고가 무진장 애를 먹었다. 그나마 정신적 멘토가 되어줄 사람이 유일하게 게토 스구루 뿐이었는데 토우지로 인해 타락해 결국 고죠와 자신의 힘의 차이를 언급하며 선을 그었고, 끝내 고죠에게 살해당했다.[37] 학창시절에 고죠는 어차피 내가 세니까 괜찮겠지, 주력도 못 보는 비술사들을 신경 쓸 필요있냐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그때마다 게토가 약자생존주의를 설파해도 흘러듣는 태도를 보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게토의 말을 새겨듣고 있었던 것. 때문에 게토가 타락했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본성보다는 이성에 따라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38] 현실에서도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대해 자각이 없거나 혹은 있다해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견한 부분이다.[39] 실제로 고죠는 유타와 게토가 결전 이후 해가 저물 쯤에 되어서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게토의 유언을 듣고 처형시킬 수 있었다.[40] 켄자쿠가 만약 게토가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진심으로 유타를 상대했다면 이겼을 것이라며 언급했는데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당시 게토가 백귀야행 때 전에 모아뒀던 엄청난 수의 주령들을 교토와 신주쿠에 풀었다는 뜻이 된다. 괜히 고죠가 있는 주술계 상대로 선전포고한게 아닌 셈이다.[41] 실제로 게토의 백귀야행으로 인해 신주쿠와 교토에서 상당수 주술사들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했다.[42] 실제로 판다와 토게를 보낸 직후 미겔이 고죠에게 내 상대라며 도발하자 지금은 바쁘다며 미겔을 노려보고 있었으며 미겔과 싸우는 도중에 건물만한 주령이 다가오자 방해가 된다면서 다짜고자 혁을 날려서 주변을 초토화시키자 이치지는 고죠씨가 화났다며 경악했을 정도였다.[43] 당장 자신이 총애한 제자들을 보며 앞으로의 세대는 특급 따위의 잣대로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라며 자랑했으며 특히 유타의 경우 켄자쿠에게 3학년 하카리, 2학년 옷코츠. 그들은 나와 맞먹는 주술사라며 자부할 정도였다.[44] 애초에 이 사단이 난 이유가 토우지를 학대한 젠인가 그로 인한 삐뚤어진 토우지의 악행들 여기에 그 틈에 기회를 잡은 켄자쿠 소행으로 인한 스노우볼이다. 괜히 나비효과가 무서운게 아니다.[45] 실제로 메구미가 토우지에게 일말없이 관심이 없었다고 했지만 죄책감도 커넝 너의 아버지는 내가 죽였다 쏘리라고 천성스럽게 편지를 남겼다. 여기에 자신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그리는 낙서까지는 덤. 이에 노바라와 이타도리가 경악해서 후시구로를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후시구로는 기분이 나빠지는 커넝 오히려 그저 웃고 넘어갈 정도로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46] 당장 게토의 타락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나 스쿠나가 시부야 사변에서 그야말로 대학살을 일으킨 것을 생각하면 만약 고죠가 힘에 도취한 나머지 엇나가거나 타락했다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오히려 위선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적 선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자세는 본받을 일인 것은 확실하다.[47] 작중 이것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제시되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고죠가 살아있을 때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지는 문제가 생긴다.[48] 심지어 고죠 뿐만 아니라 시부야 사변에서 죽게 된 나나미나 야가의 무덤도 따로 나오지 않는다. 츠미키의 무덤에는 후시구로와 함께 쇼코도 있었는데, 쇼코 입장에서는 동기, 후배, 은사였던 인물들은 참배하는 묘사도 생략되는데 잘 아는 사이는 아닌 학생의 누나에게는 참배하는 괴상한 장면인 셈.[49] 사실 엄밀히 말하면 고죠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도, 작가가 설정한 부분도 단면만 다르지 모두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있다.[50] 대표적으로 0권에서부터 판다와 이누마키를 희생양으로 삼을 작정으로 게토에게 보낸 것, 그리고 게토를 죽이자마자 옷코츠에게 나타나 농담을 던진 것 등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언행이 자주 등장한다.[51] 예를 들어 유지가 부활한 것을 보고 아무튼 일단 스쿠나를 죽이고 메구미를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게 단순히 스쿠나와 트래시 토크를 주고받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메구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52] 작가들 중에선 독자한테 복선을 전부 공개하는 게 “사실 이렇게 복선 많았으니까 이상한 거 아니예요”라고 구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연출상의 의도로 일부러 복선을 일부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독자들한테 맡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놓는다.[53] 단 한 명 뿐인 친구가 모든 비주술사를 죽인다는 자신의 이상을 이야기하자 본인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칼에 말이 되냐며 거절했다. 적성에 썩 맞지 않는 교사 일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려고 노력했고,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내몰았던 철전지 원수인 토우지의 유언을 들어주며 제 가문과 적대적인 젠인 가의 상전 술식을 지닌 그의 아들 메구미가 가문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주었으며 의붓딸인 츠미키의 안위까지 보장하여 현재까지 살뜰히 돌봐주었고 시부야 사변에서 민간인들이 주령들에게 죽어나갈 때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독백이나마 진지하게 유감을 표하며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며 민간인들에게 사과를 했다. 결정적으로 주변에도 인간 고죠 사토루를 싫어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지만 동업자로서의 주술사 고죠 사토루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즉 타인에게는 교사로서도, 주술사로서도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내팽겨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54] 당장 후배인 나나미가 당신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주술을 사용한다는 변태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는 발언에 본인만 빼고 주변인들은 딱히 놀라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주변 인물들은 고죠가 어떤 인물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이바라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 뿐이라며 설명까지 했다. 그럼에도 고죠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나미의 지적에 고죠의 찔린 듯한 표정을 보면 적어도 본인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고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55] 작중에 게토가 왜 타락했는지 이해하려는 모습과 이타도리의 멘탈을 위해 나나미에게 부탁하려는 장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술사로서 더러운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나나미를 위해 나름대로의 진지한 위로를 했다. 이때 나나미는 고죠는 농담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농담을 반대로 하지 않을 때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이때 고죠는 매우 진지하게 위로했다고 언급했다.[56] 엄밀히 말하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제자들을 양성하고 시부야 사변에서도 어떻게든 비주술사들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는 등 최선을 다했으며, 원래부터 고죠는 극단적 마이페이스와 나르시스트 캐릭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시부야 사변 편까지는 극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인외마경 편에서는 이러한 캐릭터를 안 좋은 방식으로 연출한 바람에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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