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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17:16:25

국립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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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국립 4.19 민주묘지2.2. 국립 3.15 민주묘지2.3. 국립 5.18 민주묘지

1. 개요

국립민주묘지(國立民主墓地)는, 대한민국에서 운영하는 국립묘지 중, 민주화 운동으로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시설이다. 현재 국립민주묘지는 3개소가 운영중이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당시 활동/사망한 민주열사들을 안장하였으며, 이 세 운동을 알리기 위한 기념관, 탑 등의 시설이 부설로 설치되어 있다.

1962년, 4.19 혁명 당시 사망자를 안장하기 위한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해 1963년 9월 20일 완공한 것이 최초이며, 이후 1967년에는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당시의 열사들을 안장하기 위해 마산에 새로이 묘지를 조성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 열사들을 안장하기 위해 1997년 새로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참배시간 및 봉사활동 시간은 각각 다르다.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참배 및 참배, 봉사활동 신청이 가능하며 봉사활동은 비석을 닦고 잡초를 뽑는 등의 환경정화활동을 한다. 묘지이기 때문에 복장에 주의를 요한다. 또한 광장 및 조형물과 기념관이 있어 휴양 및 교육시설로써의 기능도 있다.

2. 목록

2.1. 국립 4.19 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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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961년, 제2공화국 내각회의에서 4.19 기념묘지 조성을 의결하여 최초로 공원묘지 조성이 결정되었다. 직후 집권한 군사정권이 이를 추진하여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62년서울 북한산 기슭에 부지를 마련, 착공하였고 1963년 9월 20일 완공했다. 이후 문민정부 시기에 들어와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어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1993년 10월 20일 착공해 1995년 4월 17일 완공했으며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2006년에 제정된 시행령으로 국립4.19묘지’에서 국립4.19민주묘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소재. 4개 묘역이 있으며 안장능력은 585기. 2017년 8월 20일 현재 404기가 안장되어 있다. 제1묘역은 4.19 혁명 당시 사망자, 1묘역 일부와 제2묘역은 당시 부상자, 제3묘역부터는 4.19 혁명 유공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광장 등 휴양시설의 비율이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높다.

원래 소유권은 서울특별시에서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5년 성역화공사 완공에 맞추어 국가보훈처에 관리를 이전했고, 2015년 소유권을 국가보훈처로 양도했다.

평일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참배가 가능하며 국경일과 공휴일에는 쉰다. 봉사활동은 9시 반부터 오후 1시 반,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총 4시간씩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고려대학교에서는 4.19혁명을 촉발한 계기가 된 4.18의거를 기념하기위해 매년 4월 18일에 고려대에서 4.19민주묘지까지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경우 인근에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이 있으며, 버스로는 104번, 1119번, 1126번. 강북01번이 묘지 앞에 정차한다.

2.2. 국립 3.15 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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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968년 조성했다. 본래는 추모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정식명칭 또한 3.15 성역공원이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성역화 공사를 시작해 2003년 3월 15일 완공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앞서 2002년 대통령령에 의해 민주묘지로 승격했다. 마산시 구암동에 있었으나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하면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소재가 되었다.

시설은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조촐하다. 안장능력부터가 채 100기를 넘지 않으며(물론 3.15 의거 관련자가 많지 않았고 통계 등 자료 또한 빈약했던 데 이유가 있지만) 그마저도 안장기수는 2017년 8월 20일 현재 32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념관, 기념사비가 있으며 광장은 다른 민주묘지에 비해 얼마 없다. 여러 특성으로 3.15 및 4.19 유공자 중 창원권 관련자들이 안장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그 외 지역 출신인 경우에는 수유리 4.19 묘지에 안장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참배시간은 국립 4.19 민주묘지와 같으며 봉사활동은 9시부터 오후 1시, 1시부터 5시까지 총 4시간씩 할 수 있다. 4.19 민주묘지와 봉사활동 시간이 30분 차가 난다.

대중교통으로는 창원역에서 212번, 260번, 마을버스 8번을 이용하거나, 마산역에서 162번, 262번, 263번을 이용하여 유성아파트 정류장에 내리면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2.3. 국립 5.18 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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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소재 국립민주묘지. 1994년 11월 1일 착공해 1997년 5월 13일 완공했다.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전두환, 노태우 등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을 비롯하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진상규명 등이 이루어지자 희생자들을 기념할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조성되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13일에 김영삼 대통령이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을 살펴보면 "망월동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으며 이후 실제로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로 희생자들이 이장되었다.[1]

다만 국립민주묘지로의 승격은 완공 이후인 2000년 제2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기념식장을 찾아 기념식을 진행하면서 약속을 했고 2002년 국민의 정부 말기가 돼서야 이루어졌다. 이 묘지를 만든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7년 5월 22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처음으로 5·18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참배했다.[2]

애초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은 망월묘지공원 제3묘역[3]에 묻혀 있었다. 진압 후 군부에서 사태를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거치지 않고 청소차에 시신을 실어서 매장시킨 것이다. 이후 망월동 공원묘지 옆에 새로 민주묘지를 조성하며 신원미상의 유골을 제외한 제3묘역의 유골 대부분을 이장했다. 당시 사망자를 매장했던 망월동 공원묘지 제3묘역은 이한열 열사 등 6월 민주 항쟁 사망자 및 기타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다. 이 망월동 때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이 5.18 묘지를 '망월동 묘지'로 부르거나 묘지가 망월동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바로 옆이기에 지금도 여전히 망월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건 외지인 뿐만 아니라 광주 현지 주민들도 마찬가지.

추모탑 뒤 묘역 중 제1묘역은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제2묘역부터는 민주화운동 이후 사망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제10묘역은 민주화운동 당시 실종자들을 위한 가묘가 있다고 한다. 총 782기를 안장할 수 있는데, 포화 상태라 후문 쪽에 새로운 묘역을 조성한다는 듯하다. 2017년 8월 20일 기준 775기가 안장되어 있다. 2022년 국가보훈처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이하 5·18묘지)의 국립묘지 승격 20년을 맞아 새 청사진 마련에 나섰다.#

묘지 앞에는 추모탑과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매년 5월 18일에 이 곳에서[4]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정부 주관의 추모행사를 연다.

봉사활동은 다른 민주묘지 홈피처럼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능하며, 시간은 4시간인 듯하다. 참배는 연중무휴이다. 대중교통은 518번[5]이 묘지 앞 정류장에 정차한다.

여담으로 국립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부지자체는 광주광역시의 시유지였다. 그러나, 2009년경 광주시가 새로운 야구장 건설을 계획하면서 국유지였던 무등경기장 부지와 5.18 민주묘지 부지를 교환해서 부지도 국유지로 넘어갔다.

추모탑은 40m 높이로서 당간지주와 부활하는 생명을 받든 손을 형상화했다.# 민주화의 도시로 유명한 광주의 랜드마크로써 개표방송이나 지역뉴스 전환 시퀀스 등에 거의 반드시 나온다. 하나원큐 K리그1 2021, 하나은행 K리그1 2024 공식 인트로에 광주 FC를 상징하는것중 하나로 이곳의 추모탑이 등장했었다.

이곳에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원이 2023년 3월 31일 할아버지잘못을 사죄하러 참배했다.

[1] #[2] #[3]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모두 일곱 차례 이곳을 찾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93년 3월 18일에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이곳 묘역 참배를 시도했다. 다만 대학생들의 5·18 묘역 점거 시위로 무산됐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광주와 전남을 순시하는 내내 서운해했다. 이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DJ-YS 후보 단일화 무산과 3당 합당 등으로 그에게 애증을 가진 광주·전남지역 시·도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4] 2020년에 열린 제40주년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더하기 위해 옛 전라남도청 앞 광장에서 행사가 열렸다.[5] 특히 이 노선은 노선 번호에서도 드러나듯 5.18 기념공원, 옛 전남도청, 금남로 등 5.18 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주요 사적들을 지나간다. 심지어 운수사인 대창운수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존재했던 회사로, 이 회사 소속 차량 수 대가 시위에 차출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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