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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1:41:25

깨달음

1. 개요2. 동양철학의 개념3. 깨달음의 대중화4. 비판
4.1. 반론
5. 무협 소설 용어

1. 개요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알게 되는 것. 동사형은 "깨달다", "깨닿다" 등이 아니라 "깨닫다"이다.

"깨닳음"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깨도"라는 말도 같은 뜻인데 이쪽은 잘 안 쓰인다.

지식적 또는 학문적으로 어떤 것의 원리나 비법 등등을 알았다고 할 때도 깨달음이란 말을 쓰지만 (e.g. 유레카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가 지른 함성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주로 마음의 평화니 번뇌에서의 해방이니 하는 동양종교 특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깨달음이라고 많이 부른다. 실은 앞에서 말한 학문적인 깨달음도, 궁금증 때문에 번뇌가 일었다가 일순간에 깨달음이 와서 번뇌가 풀리는 감정적 상태를 의미하는 감이 있다.

제프리 마틴 박사는 경험을 언어화하려는 기존의 경향성이 줄어들면서 자아 감각에 전이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 내적 행복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지속적 비상징 경험(persistent non-symbolic experience, PSNE)'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2. 동양철학의 개념

불교에서도 쓰이며 여기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특히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자아관념이나 절대적 진리를 알려는 욕심 등의 전도된 몽상에서 벗어나서 번뇌의 불길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더 나아가 12연기를 통찰해 번뇌의 불길을 완전히 꺼트려서 다시는 불씨가 타오르게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1] 산스크리트어로 बोधि(Bodhi, 보디)라고 쓴다. 한자로 菩提(보제)로 옮겨졌는데, 한국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보리로 바꾸었다는 이 있다. 링크

돈오돈수도 이 깨달음과 관련된 개념.

선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자신과 세계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다.

3. 깨달음의 대중화

유튜버나 재가법사 중 자신의 깨달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가르침을 펴는 일들이 많아진다. 대부분 허구로서의 자아, 현성공안, 유심론을 주장한다는 면에서 조사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4. 비판

기존 깨달음의 관념에 대한 비판이 재가 수행자나, 불교 소장 스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종곡스님은 '견성이란 어떤 상태인가'에서 이를 비판하였다. 김영식은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이라는 책과 블로그에서 본인이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김영식은 깨달음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과 신화를 뇌과학과 유물론점 관점에서 해체하고 있다. 설지는 '무력한 깨달음'과 '묵조선에 대한 변명'에서 깨달음 자체로는 라면하나도 끓여먹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깨달음에서 도덕이나 여타의 것들을 기대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루퍼트 스피라도 영화 스크린의 비유를 통해 깨달음은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이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영성가들은 모든 분별을 버리고 생각의 경계를 만들지 말 것을 요구한다.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욕심이며 유위법이다. 이미 모든 것이 진리로서 현현하고 있기에[2] 분별하는 마음만 버리면 본래면목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사람마다 표현법이 다르지만 이 경지를 '즉심', '무심', '부처도 없다'와 같은 용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면 사라진 것을 아는 그 마음은 무엇인가? 모든 생각과 느낌, 인식이 분별에 불과하다고 아는 것조차 또 하나의 생각이고 분별이 아닌가? 정말로 모든 욕망이 공하고, 자아가 허구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 또한 타인의 수긍을 기대하는 욕망이 낳은 유아론적 행위가 아닌가? 깨달음의 논리구조에 숨어 있는 본질적 자기모순에 관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구하기는 어렵다.

크리스 나이바우어에 따르면, 불교를 위시한 동양의 영적 전통에서 깨달음의 의미는 자아에 대한 집착, 범주화 등 분별적 사고 등 '좌뇌의 독재'를 인식하고 이에 속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좌뇌를 사용한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의 좌뇌는 또다시 그것을 하나의 '성과'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관념화를 시도하므로 다시 있지도 않은 에고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영적 성취와 계발의 개념은 자가당착으로 허구에 가깝다. 깨달음은 '무엇'이 아닌 '어떻게'이며 명사가 아닌 동사,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도 분명하게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U. G. 크리슈나무르티는 불교 포함 인도에 뿌리를 둔 종교적 수행 및 체험에 대해서 내부자로서 가장 가혹한 비판을 남겼다.

4.1. 반론

깨달음은 통찰의 시작이며, 그 자체만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하나의 통찰은 다른 통찰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삶을 깨닫기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이나마 바꿔 나갈 잠재력을 갖게 되거나, 실제로 다른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 수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마음챙김이나 DBT(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3] 등의 방법론이 심리치유 및 중독 치유 용도로 활용되어 큰 성과를 거두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를 보면 깨달음만으로는 라면을 끓여먹지는 못하더라도, 라면만을 편식하거나 폭식하는 등의 중독적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나, 면치기 여부를 두고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며 싸우는 등의 미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무협 소설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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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협소설이나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 소설에서 무공오의를 깨닫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로 흔히 쓰인다. 깨달음을 얻으면 무공의 수준이 일취월장하여 이전과는 격이 다르게 세진다. 조금이라도 격이 높은 무공을 깊게 익히려면 단순히 단련만 해가지곤 안 되며, 거의 대부분 이 깨달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래는 동양 사상이다.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은 무협소설에서 파워 인플레가 계속 벌어지면서 무협소설의 무공대결 묘사가 내공에 바탕을 둔 힘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에 반발하여 생겨난 움직임이다. 그런데 사실 깨달음이 있어야 내공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60년 수련해야 1갑자 운운하는 건, 대부분 기본심법으로 무식하게 노가다 뛰었을 때의 일인 듯.

현실의 스포츠에서도 감이 계속 안 오다가 감이 오는 지점이 있는데, 이것이 깨달음과 비슷하다. 물론 유지하려면 계속 트레이닝해야 한다. 그리고 학습심리학에 따르면 학습에 있어서도 그러한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습의 성취가 계단식 곡선을 그린다고 한다.

깨달음은 얻으려면 그 얻으려는 의도자체도 버려야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며 덕분에 각종 인물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절치부심하다가 우연히 누군가가 던진 화두 혹은 어떤 상황에 의해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게 장면도 많이 나온다. 주인공의 경우는 이런경우도 있지만 중반부에 졸라 킹왕짱 높은 깨달음을 얻으려다가 조연들의 방해로 다시 무의식 저편에 묻히는 클리셰도 있다.

무협소설 용어 가운데서는 참 드물게도 순우리말이다. 사실 본래 중국무술 용어에서는 내공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1] 전자는 대승 불교선종에서 추구하는 깨달음, 후자는 상좌부 불교에서 추구하는 깨달음에 가깝다. 홍창성 교수는 전자를 '철학적 깨달음', 후자를 '열반적 깨달음'이라고 표현했다.[2] 현성공안이라고 한다[3] 기존의 행동주의 치료에 더해, 일본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이 요법의 핵심은 상반되는 두 개의 진실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