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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6대 천황 닌토쿠 천황 仁德天皇 | |||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출생 | 290년 | ||
사망 | 399년 2월 7일 (향년 108-109세) | ||
능묘 | 모즈노미미하라노나카릉 (百舌鳥耳原南陵) | ||
재위기간 | 제16대 천황 | ||
313년 2월 14일 ~ 399년 2월 7일 (85년 35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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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 시호 | 닌토쿠 천황(仁德天皇, 인덕 천황) | ||
화풍 시호 | 오오사자키노미코토(大鷦鷯尊, 大雀命)[1] 오오사자키노스메라미코토(大鷦鷯天皇)[2] 나니와 덴노(難波天皇)[3] | ||
부모 | 부친 오진 천황(応神天皇) 모친 나카쓰히메노미코토(仲姫命) | ||
배우자 | 가쓰라기노 이와노히메(葛城磐之媛) 야타 황녀(矢田皇女) | ||
자녀 | 리추 천황(履中天皇) 스미노에노나카쓰 황자(住吉仲皇子) 한제이 천황(反正天皇) 인교 천황(允恭天皇) 오오쿠사카 황자(大草香皇子) 구사카노하타비노히메 황녀(草香幡梭姫皇女) | ||
황거 | 나니와노타카츠노미야(難波高津宮)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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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제16대 천황.당시의 황태자였던 이복동생 우지노와키이라쓰코 황자와 서로 천황의 자리를 양보했지만 나중에 황태자가 자살한 까닭에 천황의 지위에 올랐다. 오사카의 다카쓰궁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오사카 일대에 하천과 제방 공사, 둔창의 설치 등 많은 토목공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 세금 면제를 하도록 해 성군으로 추앙받았다. 일본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인 다이센릉 고분(大仙陵古墳)이 바로 그의 능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 행적
닌토쿠 천황은 '인덕'(仁德)이라는 이름 그대로 어질고 덕이 있는 천황으로 전승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저녁 무렵 밥을 지을 때가 되어서도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을 지켜본 닌토쿠 천황은 백성의 곤궁함을 알고 3년간 세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해 백성들로부터 성제 · 성군이라고 칭송되었다. 또한 나니와(오사카)의 인공하천 공사, 간규 지역의 대규모 도랑 공사, 만다 지역의 제방 건설과 둔창의 설치, 요코미 제방의 축조 등 오사카 평야의 대대적인 개발과 농업 발전에 관련된 많은 전승을 남기고 있다.한편으로, 닌토쿠 덴노에게는 성군의 이미지 이외에도 또 다른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오토리 황녀에 대한 구혼이 이와노히메노미코토 황후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고, 황후의 심한 질투로 인해 고민하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닌토쿠 덴노와 관련된 성군 전설은 허구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거대한 고분을 조영한 전제군주였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이 밖에 닌토쿠 천황을 왜5왕 가운데 찬(讚) 왕 또는 진(珍) 왕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으며, 닌토쿠 왕조의 개조(開祖)로 보는 설, 오진 덴노와 닌토쿠 덴노를 동일 인물로 보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3. 실존성
재위 기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 실존성을 의심할 수도 있으나 그의 시호는 제26대 게이타이 천황의 시호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시호이며, 전해지는 여러 내용들로 보아 실존인물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게다가 후임인 리추 천황부터 갑자기 재위기간이 현실적으로 짧아지기에 닌토쿠 천황도 실존인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보통 실존인물로는 보이는데 수명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기록된 고대 군주의 경우에는, 후대에 왕실 족보 정리 과정에서 정통성 강화를 위해 혈통이 다르다던지 여러 군주들의 기록을 제거하고 한 군주에게 기록을 몰아줘서 수명이 매우 길게 왜곡된걸로 추정하는게 일반적이다.오사카 지역과 관련된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그의 능이 오사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볼 때 오사카 일대 출신으로 추측된다.
4. 다이센 고분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큰 고분인 다이센 고분(大仙古墳/大仙陵古墳)은 닌토쿠 천황의 무덤으로 여겨진다.[4] 닌토쿠 천황의 부인인 이와노히메 황후의 무덤은 나라시의 사키초(佐紀町)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 고분의 특징은 열쇠구멍 모양을 했고, 물로 채운 해자로 둘러싸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덤을 전방후원분이라고 한다.
천황의 무덤은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관할하는 궁내청에서 관리한다. 궁내청에 따르면 천황의 무덤은 단순히 역사적인 유물이 묻힌 장소가 아니라 신성한 종교적 장소이다. 궁내청은 각각의 무덤들을 조상들의 영혼을 위한 성역으로 해석한다.
2020년 12월 기준 다이센료 고분의 모습. 고분 내부로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원길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다이센 고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모즈·후루이치 고분군의 일부이기도 하다.
5. 실제 재위기간과 왜5왕과의 관계
오진 덴노부터 부레쓰 덴노까지 이어지는 야마토 제2왕조기 오오키미(大王)들의 재위기간은 일본서기, 고사기, 송서의 기록이 모두 달라 논란이 되나 재위 간격 자체는 현실적인 편인데, 닌토쿠 덴노만 혼자 99년 재위라는 누가 봐도 심하게 과장된 재위기간을 갖고 있다. 야마토 제2왕조에서 혼자 기년 조작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인물이다. 이주갑인상이 행해진 제2왕조의 시조 오진 덴노도 재위 간격이 30년으로 나와 정상적인 걸 고려하면 혼자 비정상적으로 두드러진다.카츠라기노 소츠히코 항목에 따르면 닌토쿠 41년(353) 백제 왕족을 소츠히코가 왜로 압송해간 사건 당시는 이주갑인상이 아니라 1갑자만 인하된 413년이 현실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닌토쿠 덴노의 재위기간은 1갑자(60년) 인하라 가정할 수 있고 313~399년에서 1갑자를 인하하면 373~459년이 된다. 421년 이전을 기점으로 일본서기, 고사기, 송서에서 20여 년간의 오차는 있으나 리추 덴노~유랴쿠 덴노/왜5왕의 치세임이 확인되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기록을 종합하면 421년 이전에 닌토쿠 덴노에서 리추 덴노 치세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며, 닌토쿠의 99년 재위기에서 1갑자(60년)를 삭제해 39년이라 가정하고 373년에서 39년을 더하면 412년이 된다. 이 경우 닌토쿠 덴노의 재위기간은 373~412년으로 현실적으로 변하며 413년부터 등장하는 왜5왕의 재위기간과도 맞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닌토쿠는 290년생으로 313년 즉위했을 당시 23세였다. 젊은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39년 즉위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23세에 즉위해 39년 재위했다면 사망 당시 만 61~62세가 되며, 세는 나이로 63세가 된다.[5] 닌토쿠의 생몰년을 1갑자 인하하면 350~412년이 된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이 39년이 내내 대왕위라는 보장은 없고, 나니와 왕의 기간까지 합쳐 39년이고 대왕 기간만 따지면 훨씬 짧았을 가능성은 배제 못한다.[6]
재위기간을 99년으로 부풀린 만큼, 재위기간 60년을 삭제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리추, 한제이, 인교 덴노의 재위기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아 있다. 사실 야마토 제2왕조는 너무 부풀려서 문제인 제1왕조와 닌토쿠 덴노를 제외하면 반대로 지나치게 재위기간이 짧거나 늘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 리추 덴노 400~405년(일본서기)/427년~432년(고사기) - 재위 5년
- 한제이 덴노 406~410년(일본서기)/433년~437년(고사기) - 재위 4년
- 인교 덴노 412년~453년(일본서기)/439년~481년(고사기) - 재위 41년
- 안코 덴노 454년~456년(일본서기)/481년~483년(고사기) - 재위 2년
- 유랴쿠 덴노 456년~479년(일본서기)/483년~506년(고사기) - 재위 23년
- 세이네이 덴노 480년~484년(일본서기)/삭제(고사기) - 재위 4년
- 겐조 덴노 485년~487년(일본서기)/삭제(고사기) - 재위 2년
- 닌켄 덴노 488년~498년(일본서기)/삭제(고사기) - 재위 10년
- 부레쓰 덴노 498년~507년(일본서기)/유랴쿠 덴노와 동일인물(고사기) - 재위 9년[7]
보면 알겠지만 척 봐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북이스라엘 왕조나 웅진백제 시절처럼 왕들이 늘 살해당한 것도 아니고 5-4-41-2-23-4-2-10이 사망을 통한 정상적인 상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고사기에는 리추의 사망을 일본서기보다 27년 뒤로 잡아서 세이네이~부레쓰까지의 재위기간이 사라져 있으며, 이들은 실제로 실존 여부에 논란이 있고 특히 세이네이와 부레쓰가 실존 논란이 크며, 타시라카 황녀[8] 때문에 실존 가능성이 있는 닌켄은 실존했더라도 야마토 대왕이 아니라 당대 야마토에 소재한 많은 호족(왕)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송서로 확인되는 왜5왕의 즉위기간은 이렇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리추-한제이-인교가 형제(닌토쿠 아들)고 안코-유랴쿠가 형제인데(인교 아들)인데 송서의 왜5왕은 찬-진 형제, 제-흥&무 아들임이 확인되기 때문에 즉위 년도에 차이가 있어도 왜5왕은 대체로 리추~유랴쿠로 여겨진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심각한 기년 왜곡을 감안하면 송서에 나오는 재위기간이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은데, 고대 중국 기록이 한반도 왕의 가족관계에 오류 낸 적은 많아도 기년은 정확한 편이기 때문이다.[9]
- 왜왕 찬(贊): 421년 이전~438년(재위 17년 이상)[10] - 리추 덴노 5년
- 왜왕 진(珍): 438년~443년(재위 5년) - 한제이 덴노 4년
- 왜왕 제(濟): 443년~462년(재위 19년) - 인교 덴노 41년
- 왜왕 흥(興): 462년~477년(재위 15년) - 안코 덴노 2년
- 왜왕 무(武): 477년~502년 이후(재위 25년 이상) - 유랴쿠 덴노 23년/32년
5세기로 접어들면 기년 인상이 이주갑인상, 1주갑인상이 아니라 20여 년을 단위로 대왕들의 재위기간이 '구겨져' 들어가 있기 때문에 중국 기록을 비교하면서 기년을 맞춰야 한다. 먼저 닌토쿠 덴노의 재위기간 313~399년을 1갑자 인하해 373~459년이 되고, 닌토쿠 재위기간에서 60년을 삭제해 39년으로 만들면 373~412년이 된다. 따라서 닌토쿠 재위기간에서 1갑자 인하해 413~459년까지는 닌토쿠가 아니라 다른 대왕이라 볼 수 있는데, 459년까지 왜왕 찬-진-제의 치세를 거쳤기 때문에 리추, 한제이, 인교의 치세라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313년부터 506년까지는 왜5왕의 재위기간에 맞춰 사건을 조정하면 된다.
5세기 대왕들의 재위기간을 상고하기 어려운 것은 일본서기와 고사기 기록이 워낙 난잡하게 되어 있어 조정하기 힘들고, 세이네이, 겐조, 닌켄이 대왕이 못 되었을 뿐 왕으로서 동시대에 왜5왕과 함께 실존한 것이 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라가 박씨-석씨-김씨 왕조를 별개로 존재한 것마냥 200년의 기년 인상을 저질러 왜곡했지만 가족관계를 자세히 남겨둔 덕분에 세대를 상고해서 박씨-석씨, 석씨-김씨 왕조가 신라 초기 6부 체제 속에서 동시대에 병존했다는 것이 밝혀졌듯 세이네이, 겐조, 닌켄 또한 초기 신라의 석씨 왕조마냥 제2왕조 주류인 왜5왕과 별개로 동시대에 병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세기 야마토 대왕위는 당대 신라 왕이 6부 간(干)의 대표였듯 당대 키나이(畿內) 일대를 중심으로 소재하던 호족(왕)들의 대표였다. 또 박씨-석씨-김씨 왕조도 단일화된 게 아니라 3세기 초~6세기 초까지 한 씨족 안에서도 여러 분파로 나뉘어 여러 간들이 동시에 병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야마토 제2왕조 또한 내부적으로 여러 분파로 나뉘어 동시에 왕들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신찬성씨록 항목에도 나오는 사항인데, 고대 일본의 씨족 개념은 실제 혈연관계보다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시조로부터 비롯된 직무의 세습을 바탕으로 결합했으며, 중국식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고려 이후 한국의 족보와 같은 부계 족보 관념은 일본 고대 사회에서 통하지 않았다. 씨족 수장의 지위가 반드시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지 않았으며, 방계 친족 혹은 사위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일본 고대 성씨의 중요한 기능은 직위와 직능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고대 일본의 씨족 개념은 초기 신라, 가야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야마토의 명칭법이 고구려, 백제보다 신라, 가야의 명칭법에 훨씬 가까운 것에서도 드러난다.
신라에서는 혁거세 거서간의 부계 후손인 박씨 왕조뿐만 아니라 모계 후손인 석씨 왕조와 김씨 왕조도 스스로를 혁거세의 후손으로 인지하며 혁거세의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김씨 왕조는 석씨 왕조의 모계 후손으로서 탈해 이사금의 제사도 지냈다. 고대 일본의 씨족 관념과 인칭법은 백제보다는 신라, 가야와 더 유사한데, 신라 3왕성(王姓)의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제1왕조(스진 덴노~스이닌 덴노)[11], 제2왕조(오진 덴노~유랴쿠 덴노), 제3왕조(게이타이 덴노~현대)까지의 만세일계가 사서에 나온 대로 부계 후손이라 보장할 수 없고 양자, 사위, 외손, 봉사손 등이 후세에 만세일계로 묶는 과정에서 아들로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12]
제2왕조의 시조인 오진의 부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친부모가 누구든 오진은 대체로 실재한 것으로 여겨지며 오진은 제1왕조와 다른 가계로서 대왕위에 올라 제2왕조를 열었다. 사서에 따르면 오진의 아들이 닌토쿠이며, 게이타이의 5대조이기도 하다.[13] 그런데 닌토쿠가 정말 오진의 아들이 맞는지 의문이 있다. 닌토쿠는 나카츠히메노미코토(仲姫命)의 아들로 나니와(難波)를 근거지로 둔 인물이며, 본명인 오호사자키(大鷦鷯)가 시호에 그대로 쓰이는 등 별도의 시호가 없는 인물이다.[14]
닌토쿠의 동복동생인 네토리 황자(根鳥皇子)는 오토히메노미코토(弟日賣命)의 딸인 아와지노미하라노히메미코(淡路御原皇女)와 결혼했고, 오토히메노미코토는 나카츠히메노미코토의 여동생이라 전해진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따르면 미야누시야카히메(宮主宅媛)의 아들인 우지노와키이라츠코 황자(菟道稚郎子皇子)가 오진 천황의 황태자라고 하며, 동복동생인 야타노히메미코(矢田皇女)가 닌토쿠의 왕후가 되었다. 또 미야누시야카히메의 여동생인 오나베히메(小甂媛)가 오진과의 사이에서 낳은 우지노와키이라쓰히메노히메미코(菟道稚郎女皇女)는 닌토쿠의 부인이기도 하다.
원래 닌토쿠의 왕후는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로 리추, 스미노에나카 왕자(住吉仲王子), 한제이, 인교의 어머니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와노히메노미코토가 쿠마노에 놀러간 사이 닌토쿠가 야타노히메미코를 입궁시키자 분노해 별거하고 그곳에서 죽었으며, 이와노히메노미코토 사후 야타노히메미코가 닌토쿠의 왕후가 되었다. 또 닌토쿠와 이와노히메노미코토의 장남인 리추는 오진과 히무카노이즈미노나가히메(日向泉長媛)의 딸인 하타비노와카이라쓰메(幡日之若郎女)를 왕후로 삼았다.
닌토쿠가 나니와를 근거지로 두고 강력한 세를 누린 대호족이었다는 점과 이런 족보를 감안하면, 닌토쿠는 오진의 아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5세기 왜의 대왕위는 초기 신라가 그러했듯 왜 호족(왕)들의 대표이기 때문에, 닌토쿠가 오진의 아들이 아니라도 나니와에서 누린 권세를 기반으로 대왕위에 오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정황을 보아 오진의 후계자는 우지노와키이라츠코 왕자지만 권세 높은 대호족이었던 닌토쿠에 밀려 대왕위에 못 올랐고, 닌토쿠는 오진의 사위 신분으로 대왕위에 올랐을 수도 있다.[15]
미야누시야카히메의 아들이 오진의 태자로 불린 것과 그 동복 여동생이 닌토쿠의 왕후가 된 걸 고려하면 오진의 진짜 왕후는 미야누시야카히메로 보인다. 다만 닌토쿠의 동복동생이 오진의 딸이라 기록된 이종사촌과 결혼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오토히메노미코토는 오진의 부인이 맞고 닌토쿠는 오진의 처조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니와의 왕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된 오호사자키 왕(닌토쿠)가 오진의 태자보다 대왕위(야마토 호족 대표)에서 우위를 점하고, 오진의 사위가 됨으로써 대왕위 집권에 정당성을 보탰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닌토쿠의 재위기간 39년도 나니와 왕과 야마토 대왕의 재위기간을 포함한 것이며, 대왕위 재위기간은 훨씬 짧았을 수도 있다.
한제이와 인교의 왕후는 가계를 파악할 수 없으나, 닌토쿠의 장남 리추가 오진의 딸 하타비노와카이라츠메를 왕후로 삼은 걸 고려하면 리추는 닌토쿠의 아들보다 오진의 사위이자 닌토쿠의 동서라는 점이 대왕위 즉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며, 닌토쿠-리추 모두 오진의 사위라는 점이 강조되는 점에서도 닌토쿠와 리추가 오진의 아들-손자가 아니라는 점에 가능성을 실어준다.
6. 기타
금관가야와 고대 야마토 왕권의 관계를 추적한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에서도 인덕(닌토쿠)릉이 등장한다. 최인호에 따르면 해당 무덤은 메이지 시대인 1872년 9월 7일에 불어닥친 폭풍우로 봉분 토사가 붕괴되어 묻혀 있었던 석관이며 부장된 유물들이 바깥으로 노출되었으며, 그때 궁내청 소속의 화가가 사카이 현령의 명령을 받아 당시 노출된 석관과 출토된 유물들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다.나온 유물 중에는 갑주나 무기는 물론 페르시아산 유리잔도 있었다고 한다. 나온 유물들은 조사 뒤에 다시 원래 봉분 안에 넣었는데, 그 와중에 환두대도, 삼환령, 칠자경 등 유물 4점이 유출되어 1906~07년 사이에 오카쿠라라는 일본인 손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해당 유물들의 사진이 사카이 박물관에 걸렸는데 '전(傳) 인덕릉 출토품'이라는 표제가 붙었다고 한다.
위 설명은 마치 최인호의 소설에 쓰였으니 근거 없는 창작인 양 설명했지만, 실제로 2007년 KBS <제4의 제국 가야>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인호가 보스턴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여 환두대도, 삼환령, 칠자경, 청동거울을 확인하여 영상기록으로도 남겼다.
그리고 위에서 1872년 폭풍우가 불어닥쳐 유물들이 노출되었고 오카쿠라라는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한 내용은 최인호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보스턴 박물관의 Joe Earle이라는 미국인이 직접 설명한 부분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 모두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뿐입니다. 1872년에 인덕천황의 무덤에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지역을 건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즉 1,400년 동안 무덤은 거의 어떤 이의 손도 타지 않았다가 갑자기 1872년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산사태가 발생했고 이틈을 타서 몇 개의 유물들이 무덤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다시 무덤 안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개의 유물들은 밖으로 유출되었고, 오카쿠라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카쿠라는 돈을 주고 일본, 중국 특별 기금을 이용해 1906년 후반 1907년 초반에 이 유물들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전문)
또
'인덕의 조야릉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석관의 개석(蓋石)이 사카이 만도코로(政所) 정원의 답석으로 쓰이고 있었다.'
는 에도 시대의 아라이 하쿠세키의 전집 기록을 제시하며, 이전에 무덤은 한 번 도굴당했던 적이 있으며 범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추정했다.[16]7. 가족관계
- 황후: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 - 342년 쿠마노에 놀러간 사이, 닌토쿠 천황이 야타노히메미코(矢田皇女)를 입궁시킨 일에 격노해 천황과 별거해 버리고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별거까지 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황후치고는 드물게 질투심이 강한 부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 황후: 야타노히메미코(矢田王女) - 오진 천황과 미야누시야카히메 사이의 왕녀로 이와노히메노미코토 황후가 죽은 뒤 황후가 되었다고 한다. 즉 오호사자키와는 형제다.
- 비: 히무카노카미나가히메(日向髪長媛)
- 오오쿠사카노미코(大草香王子, ?~454)
- 쿠사카노하타비노히메미코(草香幡梭王女) - 유라쿠 천황의 황후
- 비: 우지노와키이라츠메(宇遅之若郎女) - 오진 천황의 딸로 오호사자키와 형제다.
- 비: 쿠로히메(黒日売)
==# 천황 계보 #==
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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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대 | 제83대 | 제84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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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대 | 제90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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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대 | 제95대 | 제94대 | 제96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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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 제3대 | 북조 제4대 | 제98대 | 제99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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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대 | ||||||||||||||||||||||
[1] 《고사기》.[2] 《일본서기》.[3] 《만엽집》.[4] 닌토쿠 천황의 고분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의 토착 세력의 고분이라는 추측도 있다.[5] 당시로서는 환갑을 넘으면 장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세는 나이 63세면 장수가 맞다.[6] 이 문제는 제3왕조의 시조인 게이타이 덴노에게도 나타난다. 게이타이는 507~531/527년 재위했다고 하며 게이타이 대부터 기년이 정상화되기 때문에 대체로 사실로 보지만, 대부분은 오미 왕으로서의 기간이고 대왕위에 오른 건 야마토(大倭)에 도읍한 시기인 526년으로 추정된다. 대왕위 기간만 따지면 1~5년밖에 안 된다.[7] 부레쓰가 유랴쿠와 동일인물설이 강하게 제기되기 때문에 부레쓰가 유랴쿠와 동일인물일 경우 유랴쿠의 재위기간은 32년이 된다.[8] 게이타이 덴노의 왕후로 닌켄의 딸이자 유랴쿠의 외손녀라 전해진다.[9] 물론 중국 기록이라고 오류가 없는 건 아니라 가끔 오류가 나기도 하는데, 고대 한국사 이상으로 정확한 모습도 많고 특히 왜 기록으로 가면 게이타이 이전은 그냥 답이 없는 수준이다. 이주갑인상이라는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한반도 관련 기록과 대조되는 경우지 1갑자만 인하하거나 5세기 국내 기록으로 가면 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들어간 경우가 허다하다.[10] 413년 조공한 정체불명의 왜왕도 찬일 경우 25년 이상이 된다.[11] 게이코, 세이무, 주아이는 실존 논란이 있으며, 특히 주아이가 실존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진다. 다만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게이코, 세이무는 대왕이 아니었을 뿐 왕으로서 실재했을 가능성은 있다.[12] 비슷한 사례가 백제에 있는데, 초기 백제 왕조는 초고왕계와 고이왕계가 별개로 존재했고 근초고왕 대에 와서야 초고왕계로 일원화되었음에도 두 가계를 친부자, 친형제 등으로 하나로 묶어 왜곡했다. 아예 남은 아니고 고구려 시조 추모왕과 소서노의 후손이 온조-초고왕계고, 부여 시조 해부루의 후손인 우태와 소서노의 후손이 비류-고이왕계라 초고왕계와 고이왕계는 먼 친족이지만,(고구려 시조 추모왕이 부여 시조 동명왕의 후손이다. 즉, 이들은 부여 해씨 왕조로부터 부계 조상을 공유하는 친족이다) 초기 백제 사서에 나오는 초고왕계, 고이왕계를 묶어 친부자나 친형제로 나오는 건 왜곡이 맞다.[13] 게이타이가 정말 오진의 5대손이 맞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게이타이의 5대조모로 기록된 오키나가마와카나카츠히메(息長真若中比賣)의 오키나가(息長) 일대가 게이타이의 출신지인 오미(近江)에 속하며 게이타이의 5번째 부인인 오미노이라츠메(麻績娘子)가 오키나가노마테 왕(息長真手王)의 딸로 오키나가 출신임을 고려하면 오진과 게이타이 일족이 모종의 관련이 있던 건 맞는 모양이다.[14] 제2왕조에서 시호가 없다시피한 인물은 닌토쿠와 안코 덴노뿐이다. 닌토쿠가 나니와 고분 때문에 실존인물로 여겨지고, 안코가 왜왕 흥과 동일인물로 여겨지며 송서에 15년 재위했다고 기록된 걸 고려하면 특이한 사항이다. 가공인물설이 있는 세이네이 덴노와 부레쓰 덴노도 독자적인 시호가 있다.[15] 이와노히메노미코토가 야타노히메미코 입궁에 분노해 별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서에 따르면 야타노히메미코와 우지노와키이라쓰히메노히메미코는 자식이 아예 없어 최종적으로 이와노히메미코의 아들이 즉위했지만 이와노히메노미코토 입장에서는 정실 자리에서 밀려나고 아들이 후계자가 못 된다고 여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16] 소설에서는 1684년 사카이에서 발간된 가장 오래된 지리지라는 《계감》(堺鑑)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따금 이 능에 들러서 대규모의 사냥을 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과 다회(茶會)를 베풀었다."라는 기록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