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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4:56

미라이 공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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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사
2.1. 직업 안정성2.2. 무능하다고 무시당할 걱정2.3. 유능한데 억압당할 걱정2.4. 임금 및 정규직 보장2.5. 엄격한 채용 심사 없음2.6. 노동시간
3. 장난스러운 사내 분위기4. 아이디어
4.1. 아이디어 상품의 예4.2. 경영에 적용되는 아이디어의 예4.3. 아이디어를 어떻게 모집하는가
5. 근무환경
5.1. 상명하복 없음5.2. 직무교육5.3. 개인행동 통제 없음5.4. 상식에 도전하여 절약5.5. 고객 서비스
6. 직제와 각 부서의 운영
6.1. R&D6.2. 영업 / 마케팅6.3. 전략
7. 기업가정신
7.1. 사장의 유능함7.2. 상식에 반대되는 경영을 하는 이유
8. 특이점
8.1. 설비 투자8.2. 직원 복리후생8.3. 사회공헌
9. 견학 & 모방 가능성
9.1. 한국

1. 개요

미라이 공업의 경영을 보면 과연 이윤을 내는 것이 목적인지 놀자판이 되는 것이 목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정책도 있다. 복리후생은 한국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대기업을 꺾고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높은 연봉을 준다.

단순히 직원들이 행복한 유토피아만은 아니다. 잘 살펴보면 기업의 이득들은 확실히 존재한다.

아래에도 잘 나와 있지만, 미라이 공업은 직원들의 작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혁신을 하여,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잘 해주는 것이다. 즉, 직원 복지를 통해 제품혁신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근본적으로 대기업과는 월급, 근무환경, 사내복지를 겨룰 수 없다. '시골의 중소기업'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문제와 그로인한 인재 유출, 직원들의 불만, 효율 낮음은 회사에 지속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미라이 공업은 유토피아 경영을 통해 인재유출을 방지해냈다. 유토피아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근무환경이 좋기에, 중소기업들이 겪는 인재 유출 등을 효과적으로 방지해냈으며, 애사심과 직원의 사기가 높기에 전반적인 회사의 서비스가 우수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도 한번쯤 볼 필요가 있는 셈.

2. 인사

2.1. 직업 안정성

2006년에 60세에서 70세로 정년을 늘려서 정년 이전에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나이 때문에 사표를 쓰라는 압력을 받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로 인해 71세 생일 전날까지 종신고용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길다. 아사이 게이지(淺中敬二) 씨는 2017년 당시 68세의 최고령자며 공장에서 전기스위치박스 조립작업을 하는데 22세(1971년)에 입사했다.

임금피크제도 안 한다. 60세부터 70세까지는 임금 인상은 없지만 60세와 같은 월급을 계속 지급한다.[1] 이런 조치는 나이든 직원을 잘라냄으로써 생기는 생산성 향상보다 정년 보장으로 인한 충성도 향상이 더 크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20년 후에 직원이 모두 60대만 남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자, 야마다 아키오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래된 사람이 일을 잘 하지 않겠냐" 하며 응수했다.

야마다 마사히로는 60세 이상의 베테랑 직원이 퇴직하면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퇴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퇴직하는 날은 직원 개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내일부터 그만둔다'라고 해버리면 사장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회사가 어려워져도 정리해고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버블경제가 꺼진 직후에도 신규채용을 줄였으면 줄였지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전기요금을 낭비하면서 사원을 치사하게 정리해고하기보다는, 전기요금을 치사하게 아끼면서 정리해고를 안 하는 쪽이 좋지 않겠는가?"
야마다 아키오

2.2. 무능하다고 무시당할 걱정

"사람을 다룰 때는 당근과 채찍 2가지 전략이 있다. 그런데 어떤 경영학 책에도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라고는 나와 있지 않다. 우리는 당근만 쓴다."
야마다 아키오

인사고과가 나쁠 때의 불이익은 없다. 실무자 사이에서 능력별 대우를 하는 것, 성과급(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야마다 아키오에 따르면 회사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 20%와 평균인 사람 60%, 못하거나 안하는 사람 20%로 이뤄져 있다.[2] 못하거나 안 하는 실무자라고 해서 해고시키거나 월급을 짜게 주지 않는다.

정확한 기준을 정해서 제시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라는 식이 되어 버리면 불평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야마다 아키오의 생각이었다. 가령, A씨가 있고 A씨에게 100명의 상사가 평가한다고 하자. 100명 모두 'A씨는 90점의 평가가 타당하다'라고 생각하더라도, 하필이면 그 평가를 한 상사 B가 A씨를 싫어하는 상사였다면 A씨는 "나는 100점을 맞을 수 있었는데 B상사가 나를 트집잡아서 90점밖에 받지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즉, 인사고과는 실무자/중간관리직/오너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면 안 되는데, 그런 기준을 만드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차피 그런 기준 만들 수 없으니까 연공서열로 해버리자"라는 게 결론이었다.

승진이 제 때 안 되면 이직을 알아봐야 할 걱정 : 실무자 간에는 직급의 고하가 없으며, 입사 후 10년이 지나도 그냥 실무자이며 호봉에 따라 연봉이 점점 상승하고 퇴직금이 누적된다. 과장(한국어의 파트장)급의 경우 승진은 100% 상부에서 지명한다.

정리해고 없고, 똥군기 때문에 갈굼을 당하고 비웃음당하면서 억지로 표정관리 해야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다 한다. 이 때문에 이직하는 사람은 1천여명 중에 매년 몇 명 이내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라이 공업의 사원들은 "이렇게 나를 좋게 대우해주며 먹여살려주는 매우 좋은 회사인데 절대로 망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식이 전체적으로 퍼져 있기에 오히려 젊은 사원들측이 라인근무 교대가 번거롭다는 진정서를 제출할 정도로 4일제 근무제도를 반대하여 폐지시켜버렸다.

2.3. 유능한데 억압당할 걱정

2.4. 임금 및 정규직 보장

연봉은 업무성과나 인사고과와 관계없이 연공서열에 따라 매년 올라가며 2019년 기준 평균연봉 664만엔(한화로는 7천만원 수준)이며, 2016년 4월 현재 전문대졸 월 167,300 엔, 대졸 월 197,300 엔, 석사졸 월 202,700 엔이다. (수당 제외)[5] 한국 물가와 비교하면 세전 3천만원부터 시작해서 세전 8천만원 정도까지 올라가는 셈이다. 65세의 한 직원은 연봉이 7,000만원이라고 한다. 기후현에서 중소기업의 규모로는 꽤 높은 급여를 주고 있다. 임금을 적게 주더라도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굳이 나고야시에 있는 대기업만큼 주며 기후현에서 복무하는 공무원들보다 임금이 많다.

모든 사원들은 사회에 있기 때문에 동종이나 이웃기업의 상황을 듣는다. 한마디로 “우리회사는 천당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한다. 반대로, 친구들에게 월급을 물어봤는데 자신의 것이 가장 적다면 '착취당하고 있다'는 분개가 생기거나 이직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경제학에서 효율성 임금 이론 (1988)이 연구되기 훨씬 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규직 전환이 안 되고 쫓겨날 걱정도 없다. 비정규직, 파견직은 1,100여명 중 0명. 직원 모두 종신고용이다. 뽑으면서 3개월 수습 제도도 없다. 이 때문에 회사 규모에 비해 채용을 적게 하며, 매년 10~15명 정도만 뽑는다.
야마다 아키오 : “몇년 전 일본의 대기업 한 곳에서 납품한 원자력발전소 터빈의 날개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방사능이 샜다면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사고였다. 그 회사는 아마 일본에서 박사급 연구원이 가장 많은 회사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불량품이 나왔을까? 90년대 10년간의 불황기 동안 그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사람이 2만명이다. 그 자리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은 절반, 보너스는 10분의 1만 받는데, 어떻게 신이 나서 일할 수 있겠는가? 비용 아끼겠다고 비정규직 쓰는 건 결국 회사가 돈 못버는 지름길이다.
직원의 행복도 측면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두 사람에게 시키면서 A는 월 300만원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B는 월 150만원에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면, B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 사원이 행복하지 못하면 기껏 해외여행이나 똥군기 제거 등을 통해 올려놓은 행복도가 다시 떨어지므로 헛수고가 된다.

그리고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회사에 애착을 갖지 않고 언제든지 다른 회사의 정규직으로 들어가기만을 바라는 상황에서, 회사에 충성을 다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는, 직원들의 높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태만한 일처리로 인해 불량품이 나와 치명적인 사고를 냈다고 야마다 아키오는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저런 식의 행태가 직원들의 행복도를 떨군다는 것은, 한국의 중소기업 구인난,[6] 비정상적일 정도의 공무원 선호도 등의 사례로 증명할 수 있다.

인륜 측면에서도 옳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야마다 아키오는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많이 고용하고 저임금을 주는 것은 일종의 착취이며,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인건비를 깎은 뒤 그 돈을 착취해서 사장 자신의 배만 불리는 것은 올바른 경영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2.5. 엄격한 채용 심사 없음

야마다 아키오 생전에는 채용 기준이 없었다.
기자 : 직원을 뽑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야마다 아키오 : “없다. 아무나 뽑는다. 우리 직원은 다 바보, 멍청이들이다.”
기자 : 바보라고? 아무나 뽑나? 사람 잘못 뽑아 손해볼 수도 있는데?
야마다 아키오 :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직원들이 생각을 많이 하게끔 만들어주면 결국 플러스 결과가 나온다. 바보들일지언정 한 데 모아 신이 나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게 진짜 사장 일이지.”

2007년 방송을 본 후 한국인으로 이 회사에 입사한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의 증언이 또 걸작이다.
일본어는 중급 정도 되는 이 사람. 서류를 넣고 어찌어찌 기회가 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너 합격."
"네?"
"네가 제일 멀리서 왔으니까. 합격."

실화라고 한다. 그리고 후계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은 채용을 각 부서의 권한으로 맡겨두고 있기 때문에 면접장에 나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채용 기준 자체는 있을 수 있지만 사장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야마다 아키오 사망 이후에는 미라이 공업에 입사하기 쉽지 않다. 1990년대 버블 경제까지는 사람을 많이 뽑았지만,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버티느라 그 이후에는 사람을 많이 뽑지 않는다. 당시에는 매년 20%씩 매출이 상승하는 등 미라이 공업에 좋은 시절이었지만, 지금도 그런 식으로 사원을 많이 뽑으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16년 기준 평균 연령은 만 46세이며, 20대 사원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2016년 채용 인원은 개발, 제조, 영업을 통틀어 11~15명 정도에 불과했다.

생산직의 경우 입사하기 쉽지 않다. 취재기자(일본어)에 따르면, 공장에서 결원이 나왔기 때문에 3교대 생산직 사원을 2명 모집했는데 5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7] 이게 왜 놀라운 것이냐면 일본의 중소기업은 경기불황으로 인해 역대 최악의 구인난을 겪고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면접에 나오기만 해도 합격시키는 경우가 보통인데 깡촌에 있는 생산직의 경쟁률이 250:1이라는 것은 일본 내에서는 대단히 높은 것이며, 이를 보면 한일 양국 공통으로 왜 중소기업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나온다.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500명 중에 450명은 공장 근무 경험이 없어서 탈락시키고, 50명 중에서도 3교대 근무 경험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는 등의 방식으로 뽑았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3교대 경험이 없는 사원이 졸음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즉, 많은 지원자가 있어도 정작 회사가 필요로 하는 '3교대 생산직 경험자'는 드물어서 다 떨어뜨리고 시작한 것이다.

영업은 20대 후반에서 30세 정도의 경력직 위주로 뽑는다. 미라이 공업은 경력직 사원들이 모여 이전 회사에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반입해 성장해 온 회사이기 때문에 경력직 위주로 뽑는다. 필요로 하는 경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생산직만큼의 구인난은 겪지 않는다고 한다.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은 새로운 사람을 채용할 때의 포인트는 '미라이 공업의 분위기에 친숙해질 수 있는가'라고 했다. 경력직은 이전 직장과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교육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난항을 겪는다고 한다.

2.6. 노동시간

근로시간은 7시간 15분 (8시 30분~4시 45분/연평균 225일 근무 140일 휴무/연간 노동시간 : 1,640여 시간), 실제 4시 45분에 맞춰서 퇴근하는 것은 아니고, 순차적으로 퇴근한다. 주 5일제(104일), 4월말 골든위크 (주중 휴가 5일, 주말을 합치면 9일), 8월말 오봉[8] (주중 휴가 5일, 주말을 합치면 9일), 12월말 연말연시 (주중 휴가 13일, 주말을 합치면 19일), 그 외에 일본 공휴일이 10일 가량인데 그때에도 샌드위치데이 몰아쉬기를 한다. 여기까지 합치면 140일 휴무가 된다. 거기다 개인별 연월차휴가가 적게는 20일에서 많게는 40일로, 신입사원은 연간 200일, 경력사원은 연간 180일 정도를 일하게 된다.[9]

이게 왜 대단한 것이냐 하면, 일본의 건축업계는 연말이 가장 바쁜 게 정상이다. 연말까지 새 집을 짓는 걸 마치고 새해에 새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 입주자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 때문에 연말에 전기 공사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 와중에 미라이 공업 혼자 '휴가를 가니까 못 팔겠다'고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망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야근, 잔업, 휴일근무도 없다. 저녁 6시에는 가족과 매일 식사를 같이 할 수 있게 한다. 야마다 아키오가 직접 "빨리 귀가하지 않으면 전기요금을 징수하겠다"라고 소리치며 직원들 보고 빨리 귀가하라고 독려한다.[10] 거기다 잔업을 폐지할 당시 월급을 깎은 것도 아니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잔업을 시키지만 잔업 비용은 주지 않는' 방식을 시행했지만, 미라이 공업에서는 정반대로 '잔업은 시키지 않지만 잔업 비용은 2시간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다만,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은 바쁠 때는 '야근 금지'를 꼭 준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고객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은 2005년부터 3년, 그 전에는 2년이었다. 애가 몇 명이든 상관없으므로 3명이면 9년인 셈이다. 반년간은 유급이고, 반년 이상을 쉬려면 무급 휴가이다. [11]

창업 초기부터 이렇게 휴일이 많고 노동시간이 짧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공짜로 얻어진 결과는 아니다. 일이 늦어져서 고객이 화를 내더라도 쉬게 해준다.
총무부 총무과 사카모토 마코토 과장 ; "회사가 이익을 내기 위해 우리는 노동 시간에서 접근했다. 같은 가격의 상품이라면 브랜드 파워가 있어야 고객이 온다. 다른 회사에는 없는 부가가치를 지닌 제품을 내놓아 승부하려면 직원을 소중히 함으로서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의욕적으로 일해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미라이 공업은 중소기업이므로 대기업 수준의 월급은 지불 할 수 없다. 그럼 노동시간으로 승부를 보자 하고 된 것이다."
다키가와 히치로 사장 (2007년) : 회사입장에서 보면 법규상 잔업은 25%, 심야근무는 50%의 잔업비용이 발생합니다. 잔업을 해서 만든 제품이라 하여 더 비싸게 팔 수도 없습니다. 또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잔업은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야마다 아키오 : 시간외 근무가 필요할 것 같으면 차라리 정직원을 한 명 더 고용한다.

옛날에는 8시에서 5시까지였다. 하지만 ‘출근시간을 좀 늦춰 주면 아침 가사가 편해지는데….’ ‘끝나는 시간이 좀 빨라지면 전철이 혼잡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는데…’라는 사원들의 불평을 하나 둘씩 들어주다 보니 작업 시간이 단축되었고 조금씩 휴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냥 놀면서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미라이 공업 직원들은 근무 시간이 짧은 만큼 그 시간만큼은 미친 듯이 일한다. 잡담 인터넷 이런 거 할 틈이 없다. 인간답게 살면서도 회사가 잘 되게 만들려면 퇴근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12] 그리고 점심 시간도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오카키 영업소 업무과 K 씨 : 근무시간이 짧고 시간외근무가 금지라고 해서 일이 편한 건 아니다. 시간 내에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생각하고 있다. 일이 쌓인 사람이나 안 끝날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그 사람을 도와 시간 내에 끝나도록 팀워크로 일하고 있다.

3. 장난스러운 사내 분위기

4. 아이디어

4.1. 아이디어 상품의 예

미라이 공업은 아무 기술력 없이 만든 제조업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1965년 처음 만드는 순간부터 혁신경영으로 먹고 살아온 기업이다. 그 당시 스위치 박스는 대기업'마츠시타 전기공업'에서 이미 만들고 있었다. 미라이 공업에서 내놓은 첫 제품은 나사를 끼울 때 나사가 지나치게 쉽게 흐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사 구멍을 꺼끌꺼끌하게 만든 것이었다.[16] 이런 아이디어 상품이 없었다면 미라이 공업은 60년대 말에 이미 도산했을 것이다. 혁신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첫번째 제품은 성공적이었으나, 반응이 괜찮자 경쟁사에서 복제를 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제품은 일반적으로 동그란 형태의 조인트 박스를 네모나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또 성공적이었지만 경쟁사에 복제를 당했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까지 미라이 공업에서 팔아 본 제품은 1만 8천여종인데, 이 중 90% 정도가 특허 상품이다. 대부분 사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기존에 없었던 것이다. 전기 콘덴서 박스 시장의 80%, 전기 공사용 나이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전기설비 제품은 워낙 규제가 많아서 구멍을 몇 개 뚫어야 하고 (치수) 나사를 무얼 써야 하는지 (재료)도 규제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이 공업 사원들은 똑같이 만들어서는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기존과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사람들이 제품을 쓰는 형태를 분석하고 조사했다.

전기 콘덴서 박스는 대표적인 직원 아이디어 상품이다. 과거 벽이나 기둥 안에 부착시켰던 콘덴서는 PVC가 주요 재질이라서, 고장난 뒤에 콘덴서 위치를 찾으려면 벽면을 뜯어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미라이 제품은 콘덴서 박스의 위 아래 부분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둘러 휴대용 금속탐지기에도 쉽게 잡히도록 고안했고 이는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 번은 “천장은 흰색인데, 왜 전깃줄은 옛날부터 온통 회색일까”라는 생각을 해냈다. 미라이공업이 내놓은 ‘흰색’ 전깃줄은 이내 시장을 장악했다.

물론 경쟁사에서 일부 좋은 아이디어를 베껴서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나오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완전히 벤치마킹할 수도 없고, 한 번 쓰기 시작한 제품은 큰 이유가 없는 한 바꾸지 않기 때문에 선점에서 얻는 이익이 크다.

4.2. 경영에 적용되는 아이디어의 예

상품에 대해서만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영업 사원이 '인터넷을 통해 상품을 주문할 때 프로세스 개선안' (2007년)을 내놓고 3천엔을 받아갔다. 점심식사가 맛없으면 '점심식사에서 무슨 무슨 메뉴는 뺐으면 한다'고 쪽지를 넣고, 식당에 장식이 없어 허전하다면 '꽃병이나 장식을 놓아보자'라고 써넣으면 개선될 뿐만 아니라 용돈도 받는 식이다. 단순히 업무만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불만이 있을 때 찍어누르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들어 준다는 것만으로 사내 윤리 위원회나 사내 심리 상담 센터 등이 필요없어지고 우수 사원의 이직을 줄임으로써 위계질서 하에서의 형식적인 아이디어 공모에 비해 상당한 예산 절감을 얻는다.

회사 견학 역시 아이디어의 대상이다. 연간 1만명의 관광객이 오고 1명당 2,000엔을 받고 있다. 총무과장 다나까 씨 (2008년)는 화단 옆에 무궁화나무를 심고 한국인이 방문할 때마다 태극기를 회사 입구에 내걸어서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여기다가 '미라이 센베이'이라고 된장 조림 전병을 준다. 본사가 전병과 아무 관계 없는 전기 공업 회사이기는 하지만, 맛있게 먹는 관광객 입장에서도 기쁘고 센베이 가게에서도 기뻐한다.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이 야마가타 공장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대기업의 현지 자회사에서 전직 해 온 여성이 "어떤 일을 제안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두 개의 제안서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공장 3교대를 할 때 화장실 청소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되는가 하는 제안이었고,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속있는 제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저는 배구부이기 때문에 체육관을 만들어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개선이라기보다는 사측에 대한 요구사항이다. 미라이에서는 둘 다 허용된다. 아이디어 중에는 쓸모없는 것도 많지만, 일단 집어넣으면 500엔을 준다. ㅇ나 ㅁ 등 낙서를 해서 집어넣고 돈을 받은 사례가 자주 발생했지만 항상 돈을 지급했다고 한다.[17]

4.3. 아이디어를 어떻게 모집하는가

야마다 아키오는 "상식이나 현상을 의심하라, 항상 생각하라, 왜?왜?왜?" 하고 말했으며, 회사 안 모든 곳에 표어를 써붙여 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말한 뒤 그것을 처벌의 수단으로 삼기나 해서는 절대로 아이디어가 모이지 않는다. 일부러 욕 먹고 괘씸죄에 당하고 싶은 하급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이들은 아이디어를 제안받을 때 문자 그대로 무슨 아이디어든 간에 거절하지 않으며, 아이디어를 읽어보기도 전에 건당 500엔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특히 채택되면 더 많은 포상금을 준다. 제출 500엔, 5급 1000엔, 4급 5000엔, 3급 1만엔, 2급 3만엔, 1급 5만엔을 지급한다. 잘못되더라도 책임은 없고 잘 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수가 지원한다. 상식이든, 다른 회사의 관행이든, 불문율이든, 예절이든, 당연한 이치이든, 이들에게 회사 이익과 충돌한다면 그러한 것은 필요없다.

일반적인 일본 기업은 제안서를 확인하고 검토한 뒤 등급을 매겨 1만엔에서 3만엔 정도를 지불한다. 10만원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면 다른 회사에서는 아예 받지 않는다. 하지만 미라이에서는 무조건 적어 내게 한다. 500엔은 동기 부여를 위한 비용이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다 보면 훌륭한 제품기획서가 나오게 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 속담 : `포수가 총을 쏘다 보면 언젠가 참새를 잡는다`

이 아이디어는 한 달에 한 번씩 월례 행사로써 심사한다. 8명의 심사자가 전문서적을 참고해 가며 심사한다.

2007년에는 783명이 매년 9천여건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중 266명이 매년 20건 이상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2009년에는 13,300여건 정도였다. 1년에 232건을 낸 직원도 있다고 한다. [18]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가령 연간 200건 이상을 제출하는 사람은 채택 정도에 상관없이 15만엔을 지급한다.
오카키 영업소 업무과 S 씨 : 한 해의 목표를 ‘제안서 50건 내기’로 스스로 정해서 실천한 적이 있다. 제안서를 쓰는 일이 아주 즐겁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의 기쁨은 뭐라 말할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상사가 명령조로 ‘당장 이렇게’라는 지시가 없다.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실행하고 스스로 결과를 실감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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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양식. 현재 상황과 개선안을 비교하고, 요구되는 결과를 생산성/이익 등에 대해 수치로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미라이 공업의 연구개발 예산은 연평균 2억1600만 엔. 매출액 대비 0.92%로 불과 1%도 되지 않는다. 개발부 인력은 40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년 시장에 내놓은 신제품 수는 200에서 300종류에 달한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금 자체가 사실상의 추가적인 연구개발 예산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보상금 총액이 연간 얼마 정도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연간 1만건 중 1만엔짜리 10%, 5천엔짜리 10%, 1000엔짜리 40%, 500엔짜리 40%로 추측[19]해 보더라도 2억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사원 4명을 고용해서 아이디어 6천건 이상을 얻어내는 것과 같은데, 아무리 똑똑한 사람을 고용하더라도 1년에 200여건이 한계이니만큼 엄청난 것이다.

5. 근무환경

미라이 공업은 생산직이 대부분이어서 결국 어떻게 포장하든 노가다의 일종이다. 방송국이나 여행사처럼 다니면서 일 자체에서 자아실현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직종이 아니다. 거기다 시골 깡촌에 박혀 있어 놀 거리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20] 월급 또한 대기업처럼 엄청난 고액을 줄 수도 없다.

중소기업적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휴일을 많이 줄 것, 불필요한 제약을 없앨 것을 통해 직원들에게 회사 다니는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사장의 시도이다. 인터뷰를 한 60대 여직원은 '집에서 노는 것보다 회사에 나와서 일하는 게 더 즐겁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왜 직원 감동에 신경쓰냐면, 회사가 성장하려면 고객이 만족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미라이 공업의 제품을 설치하면 매우 쉽게 설치할 수 있다. 공사가 빠르게 끝난다. 비용이 싸다. 깨끗하다.' 이런 장점이 있어야 타사 제품을 사지 않고 미라이 공업의 제품을 산다. 그런데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장 1명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힘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스트레스 덜 받고 점점 행복해지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육아 휴직을 거부하고 임신한 직원에게 눈치를 주어 괴롭히거나 휴가를 쓰려는 직원에게 눈치를 주어 못 쓰게 하거나, 강제적으로 아침에 일찍 나와서 저녁에 늦게까지 야근을 시키고 주말에도 불러내어 하기 싫은 특별근무를 시키거나 하는 식이면 직원들 사이에 분노가 치솟아오르게 되는 것 불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막고 있다.

5.1. 상명하복 없음

신입사원다운 긴장, 상명하복, 위아래 사이에 잡힌 질서, 상급자에 대한 예절, 시키지 않은 일 하지 마라, 시킨 일만 해라, 그딴 거 없다. 창업자가 생전에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 똥군기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야마다 아키오 : 우리 회사에 5년쯤 근무했던 사람이 상사와 싸우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몇 년이 지나서 그 친구가 미라이공업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총무부 사람은 처음에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총무부장을 설득했다. 그 친구는 미라이공업을 5년이나 근무했기 때문에 베테랑에 속할 것이다. 일을 가르칠 필요도 없다. 다시 돌아온 사원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역시 여기밖에 없구나"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내에서 점점 더 공을 세우더니 지금은 미라이운수라는 계열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다. 그때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회사에서는 부하가 실패하면 상사는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면서 꾸짖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미라이 공업에서는 이것을 '책임 전가'에 불과하며 관리자 실격으로 간주한다. 상사의 일이라는 것은 '어떡하면 부하의 의욕을 최대한 이끌어낼 것인가'이기 때문에, 갈굼으로 위축시키는 것은 실격이다.
미라이에는 '부하에게 명령을 한다' = '중간관리직 실격'의 공식이 있다. 다른 기업처럼 상사가 부하에게 위계질서를 내세우며 명령하는 것은 간단한데, 다른 회사의 관리직들은 권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지 않아도 억지로 시키면 되고, 부하는 상사의 명령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시킨 그대로 수행하면 된다. 다른 회사처럼 하급자가 시키는 것만 기다리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문제이고, 하급자 스스로 내놓는 아이디어를 말살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런 '혁신 말살'은 경영방침인 '항상 생각하라'에 위배된다. 평상시에 지시를 대기한답시고 서서 기다리는 시간, 부장이 일 마칠 때를 맞춰서 찾아가느라 여러 번 헛걸음하는 시간을 비교해보면 호렌소가 없는 쪽이 훨씬 빠르다. 야마다 아키오는 사원이 '부장님께 올라가는 보고서를 어떻게 꾸미면 예쁘게 보일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망조가 든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급자가 좋은 것만 보고할 경우 상급자의 결정이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고, 그 결과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야마다 아키오는 이 예로 '공장 2개를 연결해 재고를 최소화한다'라는 발상의 예를 들었다.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계열사의 사장은 생산운영관리에 대한 첨단 지식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마다 아키오가 해당 발상에 드는 비용과 수익을 분석할 것을 지시하자, 기존 방식이 더 낫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계열사 사장은 2번 비슷한 제안을 하다가 사원으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상급자가 하급자를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합리한 명령'이라고 생각되는데도 수행하게 되고, 그 명령이 실제로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면 회사의 성과와 부하의 행복도가 함께 떨어지는 것도 문제이다.
상급자는 하급자의 행동을 항상 관찰한다. 보고를 올리도록 요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지켜보거나 물어볼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일의 방향이 거꾸로 갈 때만 현장 상황에 참여해서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지 말고 중단해라' 등을 지시할 수 있다. [24] 이런 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은 "다들 성인이므로, 직원들은 사익을 챙기기보다 회사에 이익을 주려고 노력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관리직은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동기 부여를 잘 할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은 미라이 공업의 매출이 늘지 않더라도 "명령하지 않는다"라는 규칙은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없어지면 미라이 공업은 더 이상 없다고까지 한다. 단순히 월급을 주고 업무시간을 당기고 복리후생을 주고 해외여행을 보내주기 때문에 '좋은 회사 독특한 회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점들이 실제로도 직장생활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미라이 공업에서는 최말단 영업사원이라 해도 가격을 결정할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상사에게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할인을 해서 팔아도 괜찮다. 이게 너무 특이해서 고객 쪽에서 "(관리자도 아닌데) 마음대로 결정해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하는 걱정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보통의 일본 회사라면 '회사에 가져가 위에 보고한 후 상의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부하의 의견과 상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관리직의 권력으로 찍어눌러서 상사의 의견을 관철한다. 명령형 기업에게는 이런 '찍어누르기'가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미라이 공업의 최대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책임감이 늘어나고 의욕이 생긴다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그래도 회사란 조직이고 질서가 필요한데, 윗사람이 통제하지 않는다면 위기상황에서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1995년에는 일본에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때 본사와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도 지사 차원에서 부상자 파악, 복구 작업 등을 아무 지시 없이 자체적으로 해냈고, 전기기기 제조업체에 복구 자재를 제공했다. 아무리 기존에 매뉴얼을 잘 만들어 놓더라도 갑작스러운 대지진 같은 것까지 예측하고 매뉴얼에 실어놓고 그런 상황에는 사장에게 연락하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사장이 설사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기후와 고베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재빠른 지시를 해 낼 수는 없다. 호렌소를 없애는 것은 이런 위기 상황이나 급변하는 상황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5.2. 직무교육

일괄적인 신입연수가 없다. 사원이 오면 옆 사원이 가르치기는 하나, 필요한 최소한만 교육한 뒤 나머지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새 제품을 만들려면 비용과 제원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것은 교육한다.
여기까지는 특이한 것은 아니고 중소기업으로서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내부에서 교육할 만한 역량이 없으니 간단한 생산직만 신입을 뽑고 복잡한 영업직은 경력을 뽑는다. 그런 점에서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은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미라이 공업에서는 교육이라 하더라도 군기를 잡고 서열을 잡기 위한 교육은 없다.[30]

5.3. 개인행동 통제 없음

위기 극복을 위한 위기의식 함양, 개인주의를 버리고 큰 집단 속에서 큰 흐름을 따르기, 회사에는 따뜻함과 함께 엄격함이 존재해야 한다, 성실성이 잔꾀보다 중요하다, 개인의 편리보다는 회사 질서를 확립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신입 주제에 미쳤느냐. 상사에게 죽고 싶느냐. 직장이 애들 장난처럼 보여서 네 생각대로 제멋대로 하는 것이냐. 회사가 놀이터도 아니고 질서도 필요하지 않겠냐. - 한국의 기성 직장인들의 인터뷰에서.

그딴 것도 없다. 회사에 이익만 내 주면 OK다. 다른 회사에서는 미라이 공업의 정책에 대해 위와 같이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평가하지만, 야마다 아키오 창업자는 '해보지도 않았으니 안 된다고만 생각한다'고 응수하였다. 오히려 기존의 관행을 지키다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람들이 사장에게 갈굼을 당한다. 미라이 공업의 정책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제약하려고만 하면 직원들이 그따위 회사를 위해 노력하려는 생각이 일어나겠냐?" 이다. 이 때문에 회사 이익을 내주는 것이 확실한 제약이 아닌 한 최대한 제거한다.

1. 휴가를 통제하지 않는다.
블랙기업 사원 : 이번에 .....한 사정이 있어서 휴가를 써도 되겠습니까?
블랙기업 과장 : 연말이 가장 바쁜 시기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안 돼. 지금은 바쁘니까 이번에는 나와라. 다음에 덜 바쁠 때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블랙기업 사원 : 여름이 가까워오는데 이번에는 휴가를 써도 되겠습니까?
블랙기업 과장 : 어디 감히 상사에게 상의가 아닌 통보를 하는 건가! 건방지네
이런 식으로 직원의 권리인 휴가를 통제하고 빼앗는 곳이 많으며, 법정 휴가조차 채울 수 없는 곳이 많다. 이것은 열심히 직원의 발목을 잡아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미라이 공업 사원 : 휴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써야겠습니다.
미라이 공업 과장 : 아, 그래요.

2. 근태 관리를 하지 않는다 : 일본에서는 이를 '타임카드'라 하는데, 80년대 중반에 폐지했다. 지각을 해도 업무만 제대로 해내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출퇴근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모두 기각한다. 출퇴근 타임 레코드를 만드는 데 돈이 들고, 개인별 출퇴근 시간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이 들기 때문에 폐지한 것이다. 단, 일본 노동법에서는 출근부의 보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출근부는 스스로 기입하게 한다. 또 잔업이 있을 경우 자기신고제로, 잔업시간을 본인 스스로 신고하게 한다.

3. 정해진 제복이 없다 : 특히, 생산직의 경우 어느 나라이든 제복을 강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라이 공업에서는 생산직조차도 제복을 폐지했다. 자기가 원한다면 양복 입고 공장에 와도 된다.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이와 체형이 사람마다 달라서 제복을 입으려니 불편하다'라는 이의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복을 정해놓는 이유가 보통은 '불순한 외부인이 들어오면 발견해내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인데, 훔쳐갈 물건이 없고 기존 직원들은 누가 본사에 근무하는지 알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폐지했다. 야구 모자에다 MIRAI라고 써 놓고 제복을 대신한다. 제복 대신 피복비 명목으로 연 1만엔을 주지만, 이 돈으로 제복을 사 입지 않고 음식을 사먹더라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제복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복도 마련해 두었다.
야마다 아키오 :
“피부색도 다르고 체형도 다른 사원, 흰색을 좋아하는 사원,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원, 십인십색의 사원에게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히게 되면 개성을 살릴 수가 없다”
다른 일본 회사에 물어 보니, 복장규정을 엄격히 하지 않으면 여직원들 사이에서 옷차림에만 경쟁적으로 신경써서 업무성과가 엉망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복장규정 없이도 다들 열심히 일했다. 해 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이었다.

4. 근무태도 : 근무 중에 과자를 먹어도 좋고, 휴대전화를 해도 자유롭다. 이런 걸 가지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뭐든지 OK다.

5. 근무시간 외에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된다. 기후 현에는 온천이 많기 때문에, 연말 휴가 때 근처 온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목욕탕 주인이 야마다 아키오에게 '일을 잘 해서 좋다, 휴가를 더 늘려줄 생각은 없느냐'라고 농담을 하더라고 한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원래 월급은 꼬박꼬박 이중으로 들어온다. 일본 기업에서도 대개 아르바이트 금지이다. 야마다 아키오는 '중소기업이 이런 것까지 통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취업규칙 표준안에 적혀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준용하는 거 아니냐, 근무 시간 중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휴일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까지 우리 회사가 통제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6.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규정이 없다. 다른 회사에서는 외부 침입자가 들어올까봐 그런 규정을 만들었는데, 미라이에서는 도둑맞을 것도 없고 사원들끼리 얼굴을 아니까 괜찮다는 이유로 시행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하면, 여러가지 도덕적 해이나 컴플라이언스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경리과장이 돈을 횡령한다든지, 가짜 수당을 신청해 타먹는다든지 하는 사건사고들이다. 하지만, 미라이 공업에서는 사원들을 믿고 그냥 맡겨버린다. 가끔씩 조사했을 때 악용하는 사례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5.4. 상식에 도전하여 절약

미라이 공업에서는 상식에 도전하여 절약을 한다. 이 때문에 외부인 입장에서 볼 때는 어안이벙벙하고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운 정책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식이란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 외부인 앞에서 지켜야 할 예의, 겉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것, 다른 회사에서도 관행적으로 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이런 절약 정책은 대부분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얻은 것이다.

낮에는 복도에 불을 켜지 않는다. 이 때문에 회사 전체가 어두컴컴하다.[31] 큰 사무실에도 형광등 2개 정도로 최대한 커버하는데, 형광등마다 줄을 매달아 거기다 책임을 질 담당자 이름표를 붙여 관리한다.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은 항상 불을 꺼야 한다. 화장실에는 갈 때마다 불을 직접 켜고 나갈 때마다 직접 끈다. 이들의 신념에 따르면 복도가 밝아야 한다는 것 역시 선입견일 뿐 이치에 맞지 않는 불평이라고 한다.

본사에 330명이 일하고 있는데 본사에 있는 복사기는 4층 건물을 통틀어 1대뿐이다. 같은 원고 50장 이상은 윤전기 사용.[32]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복사하지 않으려고 들게 된다. 프린터, 스캐너 등 기타 사무 용품도 비슷비슷하다.[33]

한여름에도 에어컨 설정온도는 27도인데, 이 조치는 사장실 포함 시행된다![34] 야마다 아키오는 여름에는 팬티, 런닝, 쓰레빠 차림으로 근무했다. 밑의 남자 직원이 같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냉방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에어컨을 쓰기는 쓰지만, 에어컨 밑에 커다란 박스 종이 같은 것을 달아 놓아서, 에어컨 바로 밑의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시원하게 쓸 수 있도록 한다. 보기에는 아주 멋이 없고 찌질해 보이지만, 냉방이 효율적이라 모두들 만족한다.

직원 식당은 있지만, 인쇄비가 아까워 식권도 발행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기 스스로 한 달에 몇 끼를 먹었는지 자진 신고를 한다. 적게 먹었다고 거짓말을 해버리면 적게 돈을 낼 수 있지만, 조사 결과 단 한 명도 사측을 속이지 않았다. 직원 식당은 2009년 기준 한끼 380엔으로 200엔은 회사에서 지원하고 200엔은 자비로 낸다. 직원 식당은 외주를 주고 있다.

2009년 기준 회사에서는 외근 나간 직원 휴대폰에 회사 전화로 전화거는 것을 절대 금지했다. 집 전화로 거는 것보다 통화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만약 걸었을 경우 그 요금은 직원들 돈에서 낸다.

메모 용지는 이면지를 사용한다. 사장에게 올라가는 내용이든 총무부장에게 올라가는 내용이든 뭐든 간에 이면지로 한다. 다른 회사에서 온 홍보성 편지나 광고전단 역시 보고문에 자주 사용된다.

서류봉투는 50번 재활용한다. 날짜/발신인/수신인에 대한 표를 봉투에다 붙여 놓고 재활용한다.

회사 건물에 경비원이 없고 세콤 같은 보안 협력업체도 없다. 비싼 돈을 주고 경비원을 고용할 바에는 차라리 경비원 없이 도둑맞는 게 비용이 절감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low-tech 전기공업 회사의 특성상 가능한 일인데, 원자재가 대부분 플라스틱이라 훔쳐가봤자 팔아먹을 곳이 변변찮다. 그나마 훔쳐갈 만한 것이 있다면 컴퓨터이지만, 대부분 구형이라 훔쳐가봤자 새 것을 사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비밀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서 산업 스파이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35] 단, 도둑에 대해 분노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공장 부지를 사들이면서 시민들이 먹으라고 밤나무 1,000그루를 베지 않고 유지했는데, 밤에 트럭을 몰고 밤 도둑이 와서 따가는 바람에 직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냈다고 한다.

1974년부터 미라이 공업은 사원여행을 실시했다. 2000년대에는 여행 기간 중에도 거래처를 위해 영업 창구를 열어 놓고 있지만, 옛날에는 사원 여행 기간에는 회사 문을 닫았다. 영업부 사원들은 이런 사원여행이 거래처에 피해를 줄까봐 걱정했다. 야마다 아키오 사장은 창고 열쇠 3,000개를 만들어 모든 거래처에 배포했다. 제품을 필요한 만큼 알아서 갖다 쓰라는 것이다. 거래처들은 굉장히 황당해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5.5. 고객 서비스

고객이 필요로 한다 싶은 것과, 고객이 필요로 하지는 않는데 관행적으로 하는 것을 구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객에게 명절 선물,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다. "선물 같은 것 보내지 않아도 우리 제품이 좋으면 사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다. 바이어 접대는 380엔짜리 사내 식당에서 한다.[36]

고객의 휴대폰에는 직접 전화를 걸기보다 고객이 걸어오도록 유도한다.

싸게 팔지 않는 대신 고급 제품으로 승부한다. 가격인하로 출혈경쟁을 하면 수익을 얻을 곳은 직원을 괴롭히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 직제와 각 부서의 운영

직제 역시 일반적이지 않으며 아이디어와 비용 절감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2009년 기준 직원은 780명이다.

1. 본사 경영지원 조직이 다른 회사에 비해 매우 작다. 경영기획과 4명, 총무과 6명, 경리과 7명, 정보시스템과 5명이 끝이다. 전체의 2.2% (22명)에 불과한 것이다. 채용을 선착순으로 하고 인사고과 제도나 연봉협상 제도가 없기 때문에 인사 부서가 필요없다. 구매를 각 부서에서 알아서 하기 때문에 구매 부서도 필요없다.

2. 생산직 기술직 사원은 430명 정도였다. '제조 2과' 등의 명칭을 쓴다.

6.1. R&D

개발부는 30~40여명에 불과하다. 연구개발비도 21억원에 지나지 않으며 매출액의 0.92%이다. 연구개발인력을 많이 채용하는 대신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기 때문에 신제품은 매년 200~300건이 나온다.

2014년경 개발부의 키시 겐지(岸玄二)씨를 인터뷰하였다. 개발부에서 전기 설비 자재의 설계를 담당하고, 연간 5~6개의 신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제안한 제품의 출하량을 확인하고 커피를 마시며, 나머지 시간은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산책을 하거나 실제 물건을 손에 보거나 하기도 한다. 매일 오후 4시에 퇴근한다. 퇴근 후에는 태권도 사범으로서 자신이 경영하는 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데, 주 7회 실시하며 학생 수는 400여명이다. 그 외에 일본 ITF 태권도 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선수로서 전일본 ITF 태권도 대회 우승을 했고 세계 ITF대회에서도 3위를 했다.
이까지만 보면 놀고 먹으면서 월급을 도둑질하는 것 같다. 하지만 키시 겐지 씨가 제안한 제품의 2013년 매출은 약 1억 4000만엔이다. 미라이의 경상이익율을 생각하면 2100만엔의 이익을 회사에 안겨주고 있다. 월급의 3배를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
키시 겐지 : "노력한 곳에서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고객의 눈에 띄지도 않고,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도 이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미라이 공업의 기술이 고도로 뛰어난 것은 아니다. 2014년 기준으로 정밀 기계라고 하면 1/1000mm 정도의 정밀도가 요구되나 미라이 공업의 것은 1/100 mm 정도의 정확도로, 누구라도 따라서 만들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하면 서로간에 피를 보다가 도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야마다 아키오는 '가격 경쟁에 참여하지 말라, 비싸다고 팔리지 않는다면 아예 팔지 마라'라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비싸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줄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미라이에서 개발부는 영업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경영진 회의, 영업, 마케팅, 기술개발의 연관을 보면, 보통 회사의 경우 경영진이 기술개발 부서에 잘 팔릴 만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한다. 기술개발 부서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마케팅 부서에 상품성이 있는지 물어본다. '무슨 정보가 필요하니 보내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답을 얻기 힘들고, 마케팅 부서와 기술개발 부서 사이에 동기/선후배 등의 이유로 서로 친한 사람이 있어야 정보를 원활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영업일지는 영업부 중간관리직들이나 읽는 것이지 연구개발부서에서 함부로 간섭하다가 뭐라도 터지면 큰일이므로 보내지 않는다. 뭔가 만들어져도 마케팅 부서는 이런 것은 기술자들이나 좋아하는 것이지 팔리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고, 기술개발 부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며 비난하는 식으로 부서 이기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미라이 공업은 영업일지를 개발부 사원이 직접 즉시 읽을 수 있다. IT 그룹웨어를 통해 공유가 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회사 질서'를 이유로 제약하지 않는다. 개발부 사원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평가, 제품 판매 등 모든 과정에 종사할 수 있다.

6.2. 영업 / 마케팅

영업 사원이 매우 많으며 운송 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영업 사원은 258명 (33%)이고 연평균 운임이 142억원이다. 미라이 공업은 원칙적으로 1차 도매상과 거래하지 않으며, 귀찮더라도 2차~3차 도매상(3천여 곳)과 직접 거래한다.

이것은 영업부서가 좁은 의미의 영업에 치중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미라이 공업의 영업부는 고객에게 찾아가 제품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문의하고 보고서로 작성해 개발부로 전달하는 역할 (개발 기획), 판매 (영업), 물류 부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37] 2차~3차 도매상은 말이 도매상이지, 사실상 공사현장 직전 단계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거기서 듣는 이야기는 현장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건축업자들에게 물어보는 것과 동일하다. 영업사원들은 물건을 팔 목적으로 현장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듣고 매일 영업일지를 작성하는 게 주 업무다. 영업사원들이 작성한 영업일지를 본사의 개발부에서 모아서 신제품 개발에 활용된다. 야마다 창업자는 창업 초기부터 '개발 기획' 목적의 영업일지 작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영업일지를 작성할 때는 절대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많은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얻은 정보나 요구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무심코 낙서한 것까지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수집하기 위해서다. 2012년 즈음 당시 사장이 전국 영업소에서 83대의 PC를 없애 버렸다. '영업 사원이 이메일 교환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고객과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더불어 2010년쯤부터는 그룹웨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동창업자 시미즈가 제안한 것인데, '사이보즈'[38]의 제품을 사용해 전국 영업소에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사장이나 최고 경영진부터 영업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야마다 아키오는 '사장 겸 오키나와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는 워낙 멀어서 현지에 영업소를 설립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야마다 아키오는 영업을 할 때에 상대의 관심사를 파악해야 한다고 추천했다. 상대를 만나고 처음 1~2시간 동안은 물건 팔 생각은 않고 이야기에만 열중한다. 오키나와의 예능, 무용, 민요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뒤 이야기하면 그것 자체가 영업이 된다. 야마다 아키오 역시 진심으로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다, 듣고 있는 오키나와 현지인 입장에서도 친척이나 친구 중 한두명 쯤은 전통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이어진다.

'영업 1부'라 하여 '여성 전용 사무실'을 만들어놓고, 외부에서 걸려 오는 전화는 무조건 이곳에서 받게 하고 있다. 왜 여성인가 하면, 전기공업 회사의 특성상 고객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 고객이 짜증을 내며 전화를 했는데 여성이 받으면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한다. 이 때문에 외부 전화는 여성만 받게 한다. 고도의 기술적 문제를 제외하면 누구에게 문의하지 않더라도 논스톱으로 모든 걸 대답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손님이 짜증내며 기다릴 필요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1차 도매상과 거래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하청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1965년 창업할때부터 나머지 3명을 향해 '절대 하청 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손님에게 직접 팔면 이익을 더 크게 남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접대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술상무술 강요 같은 것도 없고, 거래처에 선물조차도 보내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새해에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나 연하장조차도 돈이 아깝다고 보내지 않는다. 일본의 비즈니스 관행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라이 공업에서는 '안 해봐도 매출이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신념 하에 접대나 선물을 안 하고 있다.

6.3. 전략

가격 책정은 다품종 소량 생산 (+ 적자)을 통해 해결한다. 스위치박스를 보면 경쟁사는 4종류 정도를 생산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2009년 기준 미라이공업은 64종류를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는 판매량의 99.9% (약 400만개)가 주력 4종류에서 나오고 0.1% (수천개)만이 나머지 60종류에서 팔린다. 이 때문에 60종류는 무조건 적자가 나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일본 대기업이라면 적자가 나는 상품을 모두 단종시켜 버릴 것이다. 하지만 미라이 공업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특수 부품까지 생산하여 회사의 신뢰도와 인지도를 높인 뒤 그것이 주력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높여 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주력 제품은 타사보다 30% 가까이 가격이 높은 경우도 있는데도 잘 팔린다. 이 때문에 전체 64종류를 모두 합치면 4종류만 생산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 남게 된다.
여기서 무서운 점은, 미라이 공업의 이런 전략은 1970년대부터 사용된 것이다. 롱테일 효과 (2004)라는 용어가 나오기 한참 전의 일이다.

7. 기업가정신

야마다 아키오 창업자는 여름에는 팬티에 런닝 바람으로 근무한다. 회사 소유의 승용차도 없고, 자기 소유의 고급 외제차 같은 것도 없고, 운전기사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다. 한 달에 절반 정도는 출퇴근 시 직원들 차를 얻어타고 다닌다. 별도의 비서도 없고 돈 관리는 총무과 여직원이 전담한다. 사무실에는 장식이나 비싼 골동품 같은 거 없다.[39] 연극 포스터가 벽에 가득히 붙어 있는데, 그것을 붙이고 감상하는 게 사장의 유일한 취미이자 일거리이다.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다. 2007년 기준 한 달 수입이 2억원이 넘었는데도 창업자 가족의 생활비는 월 200만원 이하였다.
야마다 아키오: "보통, 회사에서 가장 급여가 적은 사람은 신입 여직원이야. 그 여직원도 자동차는 자기 돈으로 사. 그게 당연하지. '우리 회사는 급여가 적으니까 직원에게 차 한 대씩 사주자'고 생각하는 사장은 없어. 나는 수백명의 사장을 알고 있지만, 모두 회사의 돈으로 자기 자동차를 사. 그래도 세법상 OK라고 하더군. 1000만원~2000만원쯤 하는 소형 차라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건방지게도 여직원의 것보다 훨씬 비싼 고급 차를 사. 그리고 회사 돈으로 기름을 넣고 회사 돈으로 자동차 보험을 들고 그 차를 사적인 곳에도 써. 그런 사장의 모습을 본 직원이 과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까? 돈을 많이 못 버는 중소기업 사장이 회사 돈으로 고급 차를 사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러지 말고 사장도 자기 돈으로 형편에 맞는 차를 사면 그것만으로도 직원은 감동해."

7.1. 사장의 유능함

세상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휴대폰도 관심 없고 개인 소유의 컴퓨터도 없다. 그냥신문만 2~3종류를 보고 있다.

열정적인 업무 관여도 안 한다. 아침 10시가 되어야 출근한다.[40] 일본 전국에 30여군데의 공장과 영업소가 있지만 70평생 직접 가 본 곳은 방문에도 돈이 들기 때문에 5군데 뿐이다. 다만 사장이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재무영업 쪽은 자신이 직접 챙긴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는 관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기술 전문성과 경영학에 대한 관심도 없다. 원대한 비전도 없다고.
야마다 아키오: 당신이 여기 온 건 서울에 있는 사장이 명령해서 온 게 아니지? 일본 신문을 읽고 스스로 오겠다고 생각했겠지. 신문 읽고 안 와도 그만이고 월급은 받잖아. 하지만 일부러 열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이야기를 듣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졌으니 여기 왔겠지. 모든 사장은 사원들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해. 사장이 사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뿐만이 아니야.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 역시 함께 줘야 해. 당신이 명령을 받아서 마지못해 여기 왔다면 '이런 건 싫다'라고 생각하면서 취재할 거야. 그러면 좋은 기사를 못 쓸 것이고, 그러면 신문이 안 팔릴 것이고, 그러면 돈을 못 벌어. 신문이 좋은 기사를 써야 하듯이, 제조업은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기분을 줘야 해. 그러려면 명령해서는 안 돼. 명령 금지!
기자: 정말 40년 동안 명령한 적 없어요?
야마다: 정년 늘린 게 명령이라면 모를까, 다른 건 없어.
기자: 그건 명령이라기보다는 경영전략이지요.
야마다: 경영자는 전략을 명령할 뿐이야. 전술은 명령하지 않아. 현장이 가장 현장을 잘 아는 법이지. 무지한 상사가 말하면 뭐 하나? "많이 판다, 비싸게 판다'와 같은 것은 전술로 사원이 하는 일이야.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갈 곳을 찾는 게 기자(사원)의 일이듯이.
동아일보 인터뷰 中
어떻게 하면 직원이 감동받을까 그거 하나만 생각하라. 경영자가 할 일은 그게 전부이다. 생각 자체엔 노하우가 있을 수 없다. 끝없이 생각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리더십이다. 사실은 그래야 진짜 돈도 잘 벌 수 있다.
야마다 아키오, 한겨레 인터뷰 中

7.2. 상식에 반대되는 경영을 하는 이유

경쟁자인 마쓰시타 전기공업은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대량으로 구매하니까 원재료를 싸게 살 수 있다. [41] 하지만 우리 회사는 막 시작한 4명짜리 소기업이니까 절대 싸게 원재료를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뭔가 하나라도 달라야, 품질이 대기업보다 더 좋아야 고객들이 살 게 아닌가?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그 고집은 조직 경영 철학에도 고스란히 담았다. 휴가를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이 주는 이유. 동종 업계의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연봉을 주는 이유. 조금 더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이유. 육아 휴직을 조금 더 길게 주는 이유. 그렇게 무언가 차이를 만들어 나갔다. 조직 내부에서 차이를 만들지 못하면, 바깥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무슨 차이를 만들겠는가?
97%의 회사는 겨우 4,000만엔[42]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회사는 돈을 별로 못 번다는 이야기다. 만약 여러분이 회사를 경영하거나 창업을 생각한다면, 그런 '돈 못버는 회사'와 같은 일을 해봤자 돈을 벌 리 만무하다.

8. 특이점

8.1. 설비 투자

설비 투자의 결정은 대체로 현장 판단에 일임한다. 아끼는 것에만 몰두하다가 돈을 벌지 못 하면 안 된다는 판단, 직원들은 회사를 생각하고 사장보다 더 잘 판단할 것이라는 믿음,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사기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43]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장도 모르는 새에 임원들끼리 의논해서 새 사무소를 만들거나 공장을 짓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8.2. 직원 복리후생

5년마다 전 직원 해외여행, 회사 경비가 20억원 이상 소요된다. 딱 5년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시행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종업계에서는 회사에서 이런 여행을 주선할 때는 50:50으로 회사:직원이 부담하는 게 보통이나, 미라이 공업은 비 상식적으로 경영하기 때문에 100% 회사에서 부담한다.
제멋대로인 느낌도 있지만, 이제 직원의 동기 부여가 올라 주면 된다.
야마다 마사히로

8.3. 사회공헌

사회책임경영이라는 말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이렇게 경영하고 있었다.

1. 고베 대지진(1995년)때 거래처 채권 1억 6천만 엔 포기. 전기공업자에게 복구자재 무상 제공. 도호쿠 대지진 (2011년)에는 이집트 여행을 취소하고 그 비용 1억엔 기부.
2. 야마다 전 사장은 많은 돈을 연극 후원에 쓰고 있다. 2009년 기준 매년 1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연극 후원을 위해 20억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었으며, 그 외에 자신의 주식에서도 돈을 내고 있다.
3. 왕성한 메세나(기업 문화 지원) 활동. 매회 수억 원을 들여 지역주민을 무료로 초대한다. 거의 2년에 한 회 꼴이다.

야마다 전 사장은 연극에 온 힘을 쏟느라 자기 아버지 회사에서도 잘린 인물이다. 이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 역시 연극 위주로 한다.

9. 견학 & 모방 가능성

야마다 아키오: 미라이 공업은 인수합병에 대한 대책은 없어도 됩니다.
증권사 직원: 왜죠?
야마다 아키오: 이렇게 남다른 회사를 빼앗아 봤자,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니케이정보전략, 2007 (일본어)
내 강의를 듣고 실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하나같이 우리 회사는 특성이 달라서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럴 거면 뭐하러 나한테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하나? 내가 무슨 만담가인가?
대기업은 다를 수도 있지만[44], 중소기업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라이 식으로 하면 다 성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해본 것처럼 당연하게 말하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다. 공연한 위축감에 자신은 어떤 새로운 일을 해봤자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 회사에서 19일 간 정월(연말) 휴가를 주고 있다고 말하면, 그런 것은 자신들 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말은 경험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정월 휴가 19일제는 실행한 적도 없을 것이다. 기껏 해봐야 일주일 연휴 정도 줬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으므로 당연히 긴 휴가 때문에 고객이 도망친 경험도 없다.
야마다 아키오의 2009년과 2011년 인터뷰.

야마다 아키오는 2000년 이후 회사 일을 접고 계속해서 강연만 다녔다.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상당히 깨는 평생 고용 같은 기상천외한 경영 철학을 일단 거부하고 보는 기존 사업자들에게 "왜 하려고 하지도 않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내게 강의나 설명은 자꾸 부탁하느냐? 해 보긴 해봤냐?"식의 일침을 가한다.[45]

기존의 첨예한 기업 경영 방식을 대놓고 부정하는 '직원들에게 대놓고 막 퍼주는' 경영, 경영을 하는 것인지 소일거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기업가 정신, 무엇보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놀라운 성과가 극적이라 인지도가 높고 이를 다른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만약 실현만 된다면 소비자도 해피, 직원들도 해피, 기업도 해피한 최고의 윈윈 관계가 되기 때문.

하지만 기업 경영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닌지라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가들의 관점을 떠나 미라이 공업의 경영은 상식적으로도 완전히 어긋난 경영이라 혹시 '허무맹랑한 소리에 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이성적인 거부감을 일으킨다. 막대한 자금을 들이는 일이고 벤치마킹의 대상인 미라이 공업과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턱없이 낮다. 기업의 설립 연도부터가 60년대로 나름 역사를 가졌고 그동안 쌓아놓은 기업 정신과 경험이 있는 곳이다. 한국 기업과 비교하면 오뚜기보다 오래됐다.

이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인데, 창업 도전 서적들에서는 항상 거대한 대기업들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면서 무조건 혁신해라, 그럼 당신도 그들처럼 성공할 것이다라는 말만 써놓은 서적들이 태반이고, 이 서적들의 공통점은 무조건 대기업으로 빠르게 올라가라고 수익 위주의 경영전략을 따를것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모든 창업자가 대기업을 원하는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절대로 모든 기업이 대기업이 될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스티브 잡스나 정주영 같은 판단능력을 가진게 아니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고 회사를 잘 운영하는것은 책에 써진 대로 해도 크게 이상이 없겠지만, 회사를 키우는것은 어디에 투자를 하고 어느 상품이 잘 팔릴것인가라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때를 위해서 잉여금을 잘 모아둬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회사들은 중견/중소기업으로 남아야 하는것이 순리이며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고 나면 대부분 대표라도 잘 살기 위해 밑의 직원들을 갈군다.

하지만 그런 능력없는 사람들이 목표를 무조건 대기업으로 잡고 무조건 수익과 매출 위주의 경영전략을 세워 직원들을 야근과 휴가를 짤라가며 고혈을 짜내면서 복지는 개차반으로 해놓은 주제에 수익과 매출과는 하등 상관없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잉여금을 까먹어 악영향만 주는 회사돈으로 사장 전용 차량이나 임원 전용 차량 구매 같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따라하기'에 흥청망청 써대고, 안일한 안목으로 투자를 실패해 그대로 망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이러한 직원 복지를 외면한 결과는 중소기업에 구직자들이 몰리지 않는 현상으로 한일 양국 공통으로 제대로 값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미라이 공업은 대기업이 되겠다라는 목표는 커녕 창업주가 쫒겨나 먹고 살아야 하니 창업해 '다 같이 먹고 살자'라는 현상유지를 목표로 잡고 쓸모없는 부분을 전부 쳐내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발전한 결과는 최고의 직원 복지로 다른 중소기업이 사람이 없다고 호소할때 미라이 공업은 경쟁률이 미어터지고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확실히 미라이 공업은 대기업을 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영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성장 할 수 있는데에는 그야말로 최적화된 경영전략임을 알수 있다. 물론 기존과는 너무나도 다른 경영전략이라 위의 경영진들처럼 '안된다'라고만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만드는게 안되는 것이지 중소기업을 만들고 키우는 것에는 충분히 된다는 것을 미라이 공업 스스로가 잘 증명하고 있다.

사실, 간섭이 없고 돈 많이 주는 조직문화란 구글, 밸브 코퍼레이션,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IT 기업에서만 적용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미라이 공업은 제조업, 그것도 첨단은 커녕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낮은 기술을 가진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휴가 팍팍 주고 인건비를 많이 쓰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특이해보이지만 스타트업 회사와 유사하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어서 아이디어로 승부 한다는 점이랑 이를 위해 최대한 유연한 조직운영이 이를 말한다. 단순히 돈과 자유를 많이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9.1. 한국

한국에서의 인기도 높다. 2008년 한국에서의 취재진이 방문하였는데, 이 날 잡힌 일정만 '한국의 철강회사, 경영컨설팅회사, 언론사, 일본의 투자자문사' 4개였다. 1주일에 평균 2~3일 한국에서 견학 팀이 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외국인 손님이 오면 그 때마다 그 나라 국기를 게양하고 플래카드도 붙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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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의 CEO들에게 미라이 공업식 경영을 도입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안 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 중심의 구조와 하청 문제로 유토피아 경영을 시도하기 어렵긴 하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제품을 판매할 상대는 대기업이 되기 쉽고, 대기업은 여러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하청화하거나 횡포(기술 유출, 주요 직원 빼내기, 인맥을 활용한 방해 등)를 부릴 수 있다. 단순 하청인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필요한 것만 생산하므로 창의성은 필요없으며, 원가절감(=인건비 감소)만이 중요시 되기 쉽다. 대기업이 하청을 바꾸면 하청기업은 바로 망하기에, 장기적인 인재 육성과 유지 또한 매리트가 없다.

[1] 2006년 당시 '고령자 고용안정법'이 시행되면서 토요타에서도 정년 연장 조치를 했으나, 65세로 늘렸을 뿐이다. 일본 정부의 정책은 60세 이후로는 돈은 절반만 줘도 좋으니 65세까지 정년을 늘려달라는 것이었다.[2] 잭 웰치 역시 GE 경영에 있어서 일을 잘하는 사람 20%, 평균인 사람 70%,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 10%로 이뤄져 있다고 평가했다.[3] 그러나 후술하듯이 오히려 이게 더 효율적이다.[4] 대다수의 일본 기업에서는 이럴 경우 밑의 직원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리더십에 대해 조사할 생각을 안 한다.[5]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하고 퇴직금을 제외한 세전 수입을 연봉이라 할 때, 2013년 일본 닛케이 225개사 평균이 745만 엔이었다. 평균 근속 년수는 17.7년이었다.출처. 한국 기준에서는 초봉이 적은 것 같지만 일본 기업들은 대체로 한국보다 초봉이 낮은 편인데, 연공서열제가 한국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저 정도 규모의 한국 중소기업은 평균연봉이 3,000~4,500만원 정도가 대부분이다.[6] 들어가기도 싫어하지만, 들어가면 경력을 쌓아 더 나은 회사에 경력직으로 들어가려 하며, 비정규직들도 돈이 필요하니 마지못해 하다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이 생기면 주저없이 이직한다.[7] 현대자동차 정규직 생산직도 경쟁률 240:1 정도가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의 평균연봉은 세전 9,400만원 정도로 미라이공업보다 훨씬 높다. 생산규모를 비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현대가 크지만[8] 일본의 명절으로, 추석과 비슷한 개념이다.[9] 한국 공무원의 경우 연평균 250일 근무이며, 9급 공무원 문서를 보면 널널한 부서라 해도 250일 정상근무 + 270시간 초과근무로 2,270시간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요양병원 간호사 등 열악한 환경의 경우 연간 300일 정도 일하며, 주5일제가 완벽하게 지켜지고 주말 출근이 없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경우 3년차 235일, 20년차 225일 정도이다. 일반적인 일본 기업의 경우 주5일제와 공휴일을 포함해서 연 125일 정도 휴무가 있고, 거기에 10일 정도의 연차를 사용하면 135일 정도 있다.[10] 이런 조치가 없으면 중간관리직의 과잉충성으로 '사장님이 겉으로는 집에 가라고 하지만 그 말대로 사장님 말을 따랐다간 내 손에 죽는다' 같은 경우가 생긴다.[11] 참고로 한국 기업의 경우 획일적인 공공기관은 1년, 자유로운 공공기관은 2년 정도이며, 사기업의 경우 6개월 미만인 경우가 상당수이다. 간호사 문서를 보면, 일부 직장에서는 임신을 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면서 갈굼을 하거나 잘리는 곳도 있다.[12] 경영컨설팅 펌 'E&Y'에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직장인 3,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이 하루 근무시간 중 1시간 54분을 인터넷 검색 등 개인적인 활동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3] 미라이 공업의 직급은 사원-계장-과장-부장-이사-전무-사장으로 구성된다. 대장성의 요구를 보듯, 일본어 직급에서 과장은 7~10명급 중간관리직을 가리킨다. 한국어의 8~13년차 실무자를 가리키는 직급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14]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런 상황이 오면 그 동안 업무성과를 많이 낸 사람을 뽑아서 승진시킬 것이다.[15] Pluchino, Alessandro; Rapisarda, Andrea; Garofalo, Cesare (2009). "The Peter Principle Revisited: A Computational Study". 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 389 (3): 467–472. 연구 과정은 160명 규모의 가상 기업에서 다음의 세 모델의 승진을 도입해 향후 기업의 변화를 보았다. 1.실적에 따른 승진 2.완전 랜덤 승진 3.실적이 좋은 직원과 나쁜 직원이 번갈아 승진. 결과는 2-3-1 순으로 좋았다. 특히 1은 실적이 악화됐다.[16] 당시 야마다 아키오는 영업을 하러 갈 때 넥타이를 보여주면서 "사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굶어죽습니다. 그럴 바에는 이 넥타이로 목을 매겠습니다"라고 애원하였다고 한다.[17] 다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여러 회 장난을 하는 것은 부끄러우니까 500엔을 받으려고 계속 넣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18] 삼성전자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나, 10만명이 매년 1만건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그쳤다. 그 중 우수 아이디어로 채택된 것이 70건이며, 실제 사업화 또는 특허 출원 진행 중인 것은 30여건에 불과하다[19] 2007년 TV 보도에서 아이디어 제안으로 상을 받은 사람이 여러 제안을 한 끝에 이 비율로 상금을 받아냈다.[20] 술집에 가려고 해도 30분 걸려서 시내로 나가야 한다.[21]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중소기업 중 퇴사자를 다시 받아주는 곳은 극히 드물다. 특히 제조업은 더더욱.[22] norma, 소련 시절의 노동 할당량 제도[23] 호렌소란 일본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3요소, '호코쿠(報告)' '렌라쿠(連絡)' '소우담(相談)'이다. 다만, 한국어에서 상담이라고 하면 '어려운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에 가까워 불합리한 점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위키에 쓸 때는 '상의'로 바꾸었다. 그리고 원래 의미는 시금치이다.[24] 이는 독일군임무형지휘와 유사하다. 이 체계 역시 '일의 방향이 거꾸로 갈 때만 간섭할 수 있고, 상급자는 하급자의 대부분의 행동에는 간섭할 수 없다.[25] 평범한 일본 기업에서 압존법은 지독하다. '스즈키 과장'이라는 사람을 사원이 불러야 할 때, '과장, 스즈키, 과장인 스즈키(課長の鈴木は)' 중 본인에게 부르는지, 사장 앞에서 부르는지, 거래처 앞에서 부르는지에 따라 용어가 달라질 정도이다. 일본인조차도 이런 비즈니스 압존법을 어려워할 정도이며, 혹시라도 잘못 불렀다가는 일본 기업에서는 괘씸죄에 의해서 직장생활 쫑날 가능성이 높다.[26] 한국 회사에서는 상무쯤 되면 큰 책상이 나오고, 전무쯤 되면 개인 사무실이 나오기 시작한다.[27] 한국 관공서의 경우 1급 공무원(관리관)부터는 대개 관용차를 주고 거기다가 운전직공무원이 지원되고, 한국 대기업의 경우 전무급 임원부터는 업무용 차량과 수행기사가 지원된다.[28] 한국 공공기관에서는 부장급 (5급 공무원에 상당) 쯤 되면 명패도 멋진 것, 개인 사무실 가구도 멋진 것으로 달아준다. 이런 의전에만 한 사람당 1년에 300만원 이상 나간다고 보면 된다.[29] 한국 회사에서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공장장이 있다면 선반을 나르는 따위의 일은 과장급 정도만 되도 절대 하지 않으려 들고 밑에다 시킨다. 만일 공장장이 선반을 나르고 있는 것을 부장이 발견했다면 차장-과장 순서로 내리갈굼을 당하고 사원~대리 급에서는 괘씸죄로 엄청난 후폭풍을 치르게 된다.[30] 대개의 조직에서는 업무능력 향상이 아니라 합숙, 통제, 애사심 유발 등의 목적으로 긴 신입연수를 한다. 한국 공무원 조직의 경우, 하급직을 채용할 때는 2~4개월의 기나긴 신입연수를 하고 합숙 중에 휴가와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상급직을 채용할 때는 9~12개월의 기나긴 신입연수를 하지만, 의사, 약사를 채용할 때는 고작 3일간 신입연수를 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한다. 신입연수가 직무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위계질서를 잡기위한 똥군기 조형틀임을 바로 알수 있다. 신입연수가 이모양이니 애사심 유발은 커녕 이직 고려를 하게 된다.[31] 사실, 외부에서 볼 때는 껐다 켰다 하는 게 전기료 더 들 수도 있다. 개중에는 사무실 침침하게 하면서 절약하기보다 환하게 해 놓고 덜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32] 한국 관공서의 경우 20명당 2대 정도를 사용하며, 대부분의 시간에는 복사기가 놀고 있다. 윤전기 사용은 같은 원고가 200장은 넘어야 시행한다.[33] 한국 관공서의 경우 20명당 10대 이상의 프린터와 4대 이상의 스캐너를 사용한다.[34] 한국에서도 에어컨을 적게 틀자고 할 수는 있겠지만, 과장~부장 선에서 냉방비 절약을 결의해 놓고 임원에게 가서 전기세를 아껴야 하니 끄자고 배짱좋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에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전기 절약을 위해 에어콘 사용을 줄입시다!" 라고 해놓고 국회의사당이나 대통령실은 그런거 없이 마음대로 에어콘 켜는게 현실이다.[35] 그 '비밀'이라 할 만한 것은 회사가 돌아가는 운영방식과 리더십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있다고 해봤자 거래처 목록 정도인데, 일선 사원들이 만드는 것이라서 훔쳐가도 금방 복원이 가능하다고 한다.[36] 일본 비즈니스 문화에서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 것은 대개 절교 선언과 동일하다.[37] 단순히 비용을 아끼고 싶으면 1차 도매상에게 물건을 다 넘기고 영업부서의 인원을 줄여야 한다.[38] 일본에서 유명한 그룹웨어 솔루션 회사[39] 어지간한 기업이었다면, 상무급 이상 사무실에는 젊고 예쁜 여자비서가 있고 당연히 비싼 골동품같은 물건들이 있었을 확률이 높다.[40] 참고로 일반 사원의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다.[41] 파나소닉은 1918년 창업했다. 1965년 시점에는 상대방은 이미 47년 업력을 쌓은 업계의 공룡이다. 파나소닉의 브랜드 '내쇼날'을 이기는 것은 당시 미라이 공업의 최대의 과제였다.[42] 2000년 즈음 일본 정부가 세금을 매길 때 이런 자료를 내놓았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간이과세자' 기준 같은 것이다. 실제로 2024년 엔화 폭락사태에도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거의 20%에 달하는 기업이 간신히 대출이자를 갚고 있는 좀비기업인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43] 매우 중요하다. 설비투자가 실제 큰 돈이 오갈 수 있는 일이고, 견물생심이라고 그런 큰 돈이 오가는 걸 보면서 유혹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라이 공업은 슬쩍해서 얻는 이득보다 회사가 존속되어서 얻는 이득이 더 높을 것이라고 유토피아 경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44] 그러나 미라이 공업은 1990년 이후로는 사실상 대기업으로 보는 게 옳다.[45] 결은 다르지만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역시 '당신 해봤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걸로 유명하다. 물론 미라이공업과 다르게 현대는 매우매우 빡센 사내규율과 엄격한 상명하복으로 유명한 회사다(...)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46] 다만 이 대표는 이후 미라이 공업을 실제로 방문한 뒤 감격하여 직원 복지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투자하였고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47] 삼성그룹은 이 말을 한 몇 년 후 자율출근제와 주 52시간 이상 근무 금지를 도입했다.. 애초부터 자본주의 시장으로 기업을 굴리고 있는 일본이 공산주의 국가인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베트남이나 중국에서도 시장경제 체제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실상 사유재산을 인정한다.[48] 대표가 이 말을 하고 나서 2~3년쯤 지나서 회사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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