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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7:11:24

박종훈(1959)/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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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코치 시절
2.1. LG 시절2.2. 현대 시절2.3. SK 시절2.4. 두산 시절
3. LG 트윈스 감독 시절
3.1. 2010 시즌3.2. 2011 시즌3.3. 대반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3.4. 박종훈 감독의 별명3.5. 그 일 이 일어난 뒤3.6. 감독으로서의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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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종훈의 지도자 경력을 다룬 문서.

2. 코치 시절

2.1. LG 시절

은퇴 후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귀국한 박종훈은 1994년부터 LG 트윈스의 2군 타격 코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는 OB 시절 감독인 이광환과의 인연으로 추정된다.

특히 신바람 야구의 절정이던 LG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 2군에서 유망주들을 육성했다. 다만 1996 시즌 후 감독 교체의 여파로 LG에서 재계악이 불발되었다.

2.2. 현대 시절

1997년부터 현대 유니콘스로 옮겨 1999년까지 2군 수비 - 타격코치를 맡았고, 2000년에 1군으로 올라와 1군 수비코치를 맡았다.

특히 2000년에는 현대 유니콘스가 압도적 성적을 올려 리그를 제패했는데 당시 탄탄한 수비를 완성했다. 또한 2군 투수코치였던 최계훈과 친분이 생겼는데, 후일 최계훈은 야구계에서 유일한 박종훈 라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2.3. SK 시절

과거 OB 시절 팀 선배였던 조범현이 2003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부름을 받고 SK로 자리를 옮겼다. 당초 2군 감독으로 영입됐다가 2003년 시즌 중 1군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2006년까지 조범현 감독을 옆에서 보좌했다. SK 수석코치 시절에는 1루 주루코치도 겸직했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이 2006년 시즌 후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고,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이 박종훈에게 1군 타격코치를 맡기자[1] 이를 거절하고 SK에 사표를 제출한 뒤, 친정 팀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 인해 2007년 SK에 입단한 아들 박윤과는 같은 팀에서 함께하기 일보 직전에 엇갈리게 된다.

조범현 감독과 함께 3년 동안 감독 & 코치로 함께한 인연 덕에, 2010년부터는 LG와 KIA 선수 간 벤치 클리어링이 사라진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니냐는 말도 있긴 하다.

2.4. 두산 시절

김경문과의 인연으로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 2007년에 부임한다. 2009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을 역임하며 두산 특유의 화수분 야구의 뿌리로서 큰 역할을 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LG의 1군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2009년 말에 물러났다.

2009년 7월 4일 구리구장에서 있었던 LG 2군과의 경기에서 두산 선발투수인 김명제에게 벌투를 시켰다. 그 결과는 8이닝 21피안타 18실점 완투패. 김명제의 불성실한 태도로 가해진 벌투였으며 경기가 끝난 뒤에도 김명제는 경기 뒤 버스에 오르지도 못하고 잠실 야구장까지 뛰어올 것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라는 훈련은 안 하고,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등 장난질이나 하던 김명제를 목격한 박종훈 감독은 슬슬 스팀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날 선발로 나선 김명제가 팔이 아프다고 꾀병을 뿌리자, 결국 개빡쳐버린 박종훈은 김명제를 끝까지 마운드에 내리지 않고, 완투하게 했다고..

3. LG 트윈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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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로 남은 LG 트윈스의 감독 시절

3.1. 2010 시즌

3년 계약이 만료된 김재박의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구단에서는 무려 5년[2] 계약을 맺으면서 나름의 기대를 품었다.[3][4]

새 감독인 박종훈은 나름대로 LG의 허술한 훈련 체계 등을 바로잡으며 노력하고 있지만, 전년도에 팀의 4번 타자를 맡으며 좋은 모습을 보였던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 방출 건으로 욕을 먹었다. 필요한 건 마운드 보강이라 용병 투수를 써야겠는데, 그러려면 페타지니를 방출할 수 밖에 없긴 했다. 그러나 페타지니에 대한 팬들의 지지도가 높고, 실제로 성적도 준수했기 때문에[5] 페타지니를 좋아하는 강경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아직 한 경기도 안 치렀는데.

게다가 38억원 + 2군 선수 2명을 히어로즈에 내주면서 단행한 이택근 영입, 자매 구단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강력추천을 해준 오카모토 신야 건으로도 까였는데, '유망주를 키우겠다'라는 태도에서 '이택근을 영입해준 구단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찾던 그 투수다'로 말을 바꾸기도 하는 등 어째 LG 프런트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는 스타급 플레이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사실이지만, 유망주를 토대로 했던 박종훈 감독의 스타일을 봤을 땐 모순.

시즌 초반 각종 악재[6]를 극복해내고 4월 26일 기준으로 LG는 3위를 기록한다. 신예 내야수 오지환의 꾸준한 기용, 봉중근의 2군행으로 보인 선수단에 대한 일침, 개막 전부터 키 플레이어로 꼽은 조인성의 대 활약[7] 등. 좋은 성적 덕분이라지만 LG팬들로부터 찬양을 받고 있다. 확실히 시즌 초반에는 어느 정도 선전하고 있던 터라 욕과 비판이 전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교체 타이밍과 대타 타이밍은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으며, 지나치게 팀 케미를 혼자서 뜯어 고치려는 독불장군식 운영을 보이고 있어 팀을 구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LG팬들이 회의감을 표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시즌 중반에 터진 항명 사건 및 임의 탈퇴 사건으로 그와 팀의 이미지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즌 성적 6위라는 그리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둔 상황. 그나마 몇몇 좋은 유망주를 건졌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겠지만 과거에도 이대형, 박용택, 우규민 등이 있었지만 지금 LG가 어떠한가? 사실 LG가 근 몇 년동안 보여왔던 행보를 본다면 마냥 위안으로만 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11년이 최대 고비가 될 듯.

나름대로 선수 보는 눈썰미는 확실히 있는 듯. 이형종에게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했었는데 잘 들여다보면 그의 인내심 부족을 지적한 발언. 그게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덧붙이자면 2010년 KBO 8개 구단 감독 중 유일한 외야수 출신이다.

외야수 출신 감독들이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징크스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이건 한미일 공통이고 더불어 외야수 출신 감독들이 전술 운용에서 상당히 기계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인 탓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당시 감독이었던 아키야마 코지 감독도 명 외야수 출신이지만 언론으로부터 '외야수 출신 초보감독이 팀을 잘 이끌어갈것인가?'하면서 떡밥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외야수 출신 감독은 논란이 많다. 포지션 특성상 외야수는 운동 능력이 중요시되는 포지션이고 상대적으로 머리 쓰는 일은 좀 적은 포지션이다보니 그런 게 아닌가도 싶다.

그래도 오지환을 주전으로 발돋움시켰고 작은 이병규의 포텐도 터뜨렸고 중간계투진 모양새를 정립한 성과도 있었으니 지켜보자는 소리도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잘 어필하였다.

2010년 두산과의 경기 중 심판에게 항의하면서 꽁꽁권을 구사하다가 다른 심판에게 밀쳐지면서 넘어질 뻔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심판들이 대단히 욕을 먹었다. 하지만 박종훈 감독도 초보감독인데다 너무 순한 성격이라 심판들이 만만하게 봤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생각 외로 많다. 전 니혼햄 감독이었던 곤도 사다오 감독이 땅볼아웃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는데, 계속 항의하다가 들어가려는 찰나에 주심이 쓸데없이 곤도 감독을 확 밀치는 바람에 니혼햄 VS 심판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진 일이 있었다. 박종훈 감독처럼 꽁꽁권을 구사한 것도 아니고 말로만 그러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주심이 오바한 경우다. 이것 때문에 주심도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일본 심판들도 호시노 센이치 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렸다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급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일본프로팀과의 평가전 때 일본팀 감독이 노골적으로 한국 심판 안 빼면 경기 안 한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KBO 심판을 편들면서 강하게 항의한 감독이 바로 박종훈 감독이라는 점이다. 기사 참조

3.2.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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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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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3일자 최훈 카툰.[8]

2011년 신년 하례식에서 리빌딩하라고 데려왔는데 성적에 올인하겠다는 말을 했고 10시즌이 끝나고부터 11시즌 시작 전까지 LG선수들을 맹훈련시켰다고 했다. LG 트윈스의 비밀번호가 끝을 안 보이는 상황이고 팬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감독 입장에서 성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9]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6월 12일 군산 기아전까지 2위를 유지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었으나…

망했다. 그냥 망한 것이 아니라 예능수비+예능주루+예능타격+예능작전 4박자가 골고루 맞아 떨어지면서 응원하던 LG팬들이 뒷목을 잡고 감독을 욕하면서 쓰러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꼽히고 있는데 크게 나누자면...

물론 작전을 잘 내면 승리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박종훈의 경우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주자가 누구든 타자가 누구든 시도 때도없이 치고 달리기를 걸어서 타자가 엉뚱한 공에 스윙하게 만들고, 뛰던 주자는 횡사하게 만들고, 결국 궁지에 몰린 타자가 '될대로 돼라'식 타격을 하면서 너무나도 손쉽게 아웃 되는 패턴을 거의 모든 경기 동안 보여준다.

거기에 번트 또한 시도 때도 없이 걸어대서 마치 이 분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는데, 그 정도가 어땠냐면 조인성이 한창 잘 쳐댔을 때도 2회 무사주자 1루라는 이유만으로 번트를 대게 할 정도였다(2010년 8월 3일 경기). 그렇게 해서 점수라도 났냐면 난 경우보다는 안 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플래툰에 집착했는데, 예를 들자면 2011년 4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맹타를 휘둘렀던 박용택과 큰 이병규를 다음날 선발이 차우찬이라는 이유로 뺐을 정도였으며 그날 경기도 졌다. 좌투수가 나온다는 이유로 타격감이 좋았던 좌타자들을 빼고 기량미달인 우타자들(윤진호, 정병곤, 정의윤, 이학준)등에게 계속 기회를 줬는데 정작 기회를 받는 이들은 기량 미달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한참 동안 플래툰 돌리다 다시 그만뒀을 때는 잘 치던 타자들의 타격감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모습을 재임 기간 내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돌종훈 이라는 별명으로 신랄하게 비난받았다. 반대로 그 후임인 김기태 감독은 플래툰을 하더라도 기회가 오면 바로 대타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로 2012 시즌부터 LG의 좌투수 상대 성적이 개선된 것도 닥치고 좌우놀이가 아닌 상황에 따른 맞춰가는 전술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왜 중요하냐면 어처구니 없는 작전으로 말아 먹은 후 인터뷰를 보면 구구절절 멋드러진 말솜씨로 반성한다고 늘 말한다. 좌우 놀이에 대한 비판에도 겸허히 수용하고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이렇게 음유시인 뺨치는 멋진 대사를 날리고 → 팬들은 이제 더이상 이런일 없겠구나 기대를 했는데 → 그리고 다음날 좌우 놀이&닥치고 번트…. 이런 식을 재임 기간 내내 보여줬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발전이 없다는 것이 뭣 인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경기 외적으로도 일례로 전지 훈련시 선수들에게 쇼핑 금지령을 내려놓고 정작 본인은 신나게 쇼핑을 하고 다닌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고 선수들이 이러한 감독을 신뢰하고 잘 따랐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면모가 남아있으니…

10시즌 잘 던졌던 계투들인 김광수, 김기표, 오상민, 이동현, 이상열을 정말로 밑도 끝도 없이 굴렸고, 그 결과 11 시즌 그럭저럭 던지는 이상열과 불미스러운 일로 시즌 초에 은퇴한 오상민을 제외한다면 김기표는 결국 전반기 끝날 즈음부터 뻗어서 11시즌까지 소식을 잘 들을 수 없으며[10] 11시즌 마무리로 활약하리라 기대를 했던 김광수와 이동현은 불만 지르는 투수들이 되었다. 하지만 10시즌은 1군감독 첫 해이기도 하고 당시 선발들도 봉중근을 빼면 처참한 수준이라 어느정도 변호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문제는 박 모씨, 벤자민 주키치, 레다메스 리즈라는 준수한 선발들을 보유하게 된 11시즌에도 10시즌에서 배운 것은 없다는 듯이 계투들을 또 밑도 끝도 없이 굴려댔다는 것이다. 그의 투수 혹사는 주로 단기 집중형으로 일어났는데 잘 던진다 싶은 투수는 페이스 배분이고 뭐고 생각지 않고 무조건 내보내다 보니 일어났다. 2010년의 그 혹사에도 살아남았던 이상열, 5~6월에 상당히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다가 미친 듯이 구르고 맛이 간 뒤 2013년 후반기 들어 간신히 다시 불펜의 주축으로 등장한 김선규, 8월부터 잘 던지니 상황 관계없이 다 등판하는 한희, 무엇보다도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소리가 나오는 1차 지명으로 입단한 19세의 신인 투수 임찬규를 정말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굴려댔다.[11] 안 그래도 정찬헌이라는 선례를 봤던 LG팬들이 박종훈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이런 혹사는 계투들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라서, 잘 던지는 박현준, 주키치, 리즈를 잘 던진다고 휴식일도 제대로 안 주면서 선발 등판을 시켰다. 당연한 일이지만 혹사를 하다 보면 망가지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5월까지 잘 던지던 박현준은 6월 들어 페이스가 급강하하다가 어깨 통증이 발생했고, 리즈도 어깨 통증이 발생했으며, 주키치도 시즌 초반의 구위를 상실했다. 그런데 풀타임 첫 해를 맞이한 박현준이 결국 페이스가 급강하 하는데도 계속 휴식일을 제대로 안 주며 한다는 소리가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된다. 류현진, 윤석민 등 국가대표급 에이스도 페이스가 떨어지면 2군으로 내려가 휴식하거나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는 등의 휴식이 보장되었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박종훈의 혹사는 투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경수는 부상으로 빠진 것을 제외하면 거의 매 경기를 2루수와 유격수를 번갈아가며 봤는데, 그나마 나았던 수비 실력과 선구안이 급강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인 이병규는 외야에서 수비 부담이 가장 큰 중견수로 나올 정도. 게다가 10시즌 풀타임을 뛰었으며 운동선수로서 이제는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만 36세의 조인성을 매 경기에, 그것도 중심 타선에 출장시켜 댔는데[12] 6월 초부터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한 조인성은 결국 누구에게나 스윙이 확연하게 퍼지는 것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조인성을 2군으로 보내면서 한다는 소리가 프로라면 결과를 보여야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물론 성적 부진이 감독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위의 모습들을 보면 감독의 책임이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박종훈 감독을 데려온 이유가 리빌딩을 위해서였는데 LG의 센터라인을 본다면 조인성은 나이가 36세인데 그 대체자가 없으며[13], 권용관, 박경수, 박용근이 빠진 유격수의 자리엔 수비에서나 타격에서나 매우 안 좋은 오지환이 있었으며 감독이 수비가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왔던 백창수를 제끼고 밀어대었던 윤진호는 수비도 안되는 개쩌리였음이 드러났다. 중견수의 자리에는 발 빠른 것 빼고는 장점이 없었는데 이제는 도루도 못하는 이대형이 있고 그 뒤를 받칠 선수는 나이가 가장 많은 이병규 정도밖에 없다. 거기에 3루수의 자리엔 체력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정성훈의 뒤를 받칠 수 있는 선수는 그보다 겨우 한 살 어린 김태완 정도일 뿐이다. 결국 리빌딩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으며 성적 역시 망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실패한 셈이다.

결론을 내린다면 답이 없다 고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보여줬다. 이미 LG트윈스의 팬들에겐 이순철, 김재박의 뒤를 잇는 흑역사 3호이다. 거기에 8월 14일 성적부진에 의한 청문회가 열렸을 때 뒷문으로 도망치는 졸렬하기 그지없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으니 하루빨리 감독에서 물러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지 않을런가 싶을정도.

상기된 박종훈의 문제점이 모두 이전 감독들도 보여왔던 문제라는 반론이 있다. 그 근거로 잦은 작전 기용과 플래툰이 LG 타자들에게 약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들기도 하는데,[14] 문제는 그런 타자들의 약점을 고치기 전에 성적에 올인하겠다고 한 것도 박종훈이고, 21세기 들어서 최고의 선발진을 보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이든 계투든 가리지 않고 혹사시켜 미래가 보이지 않게 만든 것도 박종훈이고, 무엇보다 팀의 주전들이 나이가 많아져서 리빌딩이 진짜로 필요한 시점인데도 성적 운운하다 다 말아먹은 것도 바로 박종훈이라는 것.

다만 박종훈의 5년 계약이 실은 2+3 형식이다라는 소문이 꽤 널리 퍼져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일의 진정한 원흉은 바로 LG 트윈스의 프런트라고 할 수 있겠다. 완전한 5년 계약이었다면 굳이 계약 기간의 절반도 안 되는 2년차에 선수를 혹사시키겠는가라는 소리다.

결국 박종훈은 2011시즌 후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었고, 이전부터 쌓인 똥과 그가 싸지른 똥들은 김기태가 1시즌을 말아먹으면서 어느 정도 정리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3 시즌 대폭발하면서 가을 잔치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김기태의 선수단 구성은 박종훈과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버리는 경기는 철저하게 버리고 이기는 경기에 집중하며 체력안배 차원에서 백업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인터넷 야구커뮤니티의 엘빠들은 이구동성으로 박종훈 감독의 해임을 촉구하였다. 이 와중에 LG팬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LG팬들이 각종 썰 놀이로 서로 위안을 삼았다. 물론 그 썰 중에 믿을 건 한 개도 없었지만 마음의 위안 삼아 퍼뜨리는 썰.

2011년 9월 19일자 기사에서 박종훈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기사 내용으로 보아 구단에서 해임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성적이건 리빌딩이건 뭔가 개선을 해 줘야 하는데 2011시즌에도 9월 24일 SK 와이번스전 패배로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는 등 비밀번호를 계속 찍게 된 점으로 볼 때 김재박 전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적도, 리빌딩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LG팬들의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인데 LG팬들은 '재계약을 하거나 다시 초보 감독을 데려올 경우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박종훈 감독의 투수운영에 반발해 싸이질로 감독디스까지 했던 이형종 & 서승화는 재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표현 방식이 하극상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지만 불만 원인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터라 박종훈감독의 안티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이형종 & 서승화에 대한 동정 여론이 적지 않았다.

10월 6일, 결국 팀 성적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진 사퇴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나 다름이 없다는 분석이 많은데, 특히 두산과의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하면서 7위까지 떨어진것 때문에 구단주와 상층부가 싸늘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자진 사퇴가 발표된 6일 경기장 라커 룸에서 용병투수 레다메스 리즈의 생일파티[15]를 벌이는 LG 선수들 때문에 동정론이 일고 있다. 그리고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는데...

3.3. 대반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2011년 10월 12일에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179회, 프런트가 죽어야 LG가 산다?'에서 LG 트윈스의 개판 5분 전 분위기를 신랄하게 꼬집으면서 박종훈 감독에 대한 동정 여론이 불었다.

특히 당시 LG 담당 기자였던 이재국[17]이 LG의 프런트를 매우 까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상적인 팀 운영은 커녕, 선수는 대놓고 감독을 안 따르고 프런트는 감독을 무시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팀을 이끌어나간 셈이었다. 정말로 멘탈이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정말 박종훈은 멘탈로 야구했다. 멘탈을 괜히 계속해서 언급한 게 아닌 듯. 김기태가 후임 감독이 되자 LG 프런트와 김기태를 비난하는 여론이 조성됐고, 박종훈도 비난 일색이 아닌 다소 동정 여론이 생겨났다. 위의 멘탈드립에 대한 재평가 덕인지 '야성(野聖)'이란 새 별명도 생겼을 정도. 하지만,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면서 선수들이 대놓고 따르지 않은 원인은 박종훈이 감독 생활을 하면서 보여준 각종 무능함과 내로남불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크게 깎아먹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야성이란 별명도 아주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3.4. 박종훈 감독의 별명

선수 시절의 별명은 소설(정확히는 미국 드라마) 뿌리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 온 쿤타 킨테.

감독이 된 뒤로 김태균, 박용택에 못지않게 별명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대부분 좋지 않은 별명으로만 불리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감독계의 김별명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까지 나온 별명들을 보면

그 외에 외교종훈, 상인종훈, 무역종훈, 틀드종훈 등등이 있다.

3.5. 그 일 이 일어난 뒤

2011 시즌 한창 잘 나갔을 때는 야황이란 별명이 붙었었다. 야구의 황제라는 뜻이 아니라 야구의 교황이라는 뜻(구느님을 섬기는 LG교의 수장…). 하지만 물론 성적이 추락하면서 이 별명은 사라졌으며, LG가 DTD를 시전하고 부터는 부정적인 별명인 돌종훈, 암종훈, 야석이라 부르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물론 욕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시즌 중 박종훈 감독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나빴지를 말해주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감독 교체 후엔 현 프런트와 감독이 그 어그로를 다 가져간 것. 그리고 옐로우카드로 반전이 일어나면서 동정성 별명도 생기게 되었다.

그런 판국에 조작범이 있었다. 더욱 불쌍해진다.

다른 한 명은 넥센 시절에 했으니 제외하고 싶지만, 물론 그걸 알고 데려왔을 리는 없지만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트레이드의 결과를 보면...

38억원과 2군 선수 2명을 주고 데려왔다라는 이택근은 LG시절 부상&스탯질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 50억을 받았으며, 심수창 + 박병호 + 15억원으로 교환한 송신영 + 김모씨의 경우 송신영은 2달 뛰고 마음으로 다가와 준 팀으로 떠나버렸고 김모씨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나마 성공 사례로 불렸던 최동수 + 권용관 + 이재영 + 안치용박모씨, 김선규, 윤요섭 트레이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김선규는 LG와서 2011년 초중반에는 잘 하나 했지만 후반기에는 그냥 패전처리조나 하였고 윤요섭은 박종훈의 좌우놀이 덕인지 2할짜리가 되고 말았다. 다만 김광수유원상 + 양승진과 바꾼 트레이드 결과는 유원상이 좀 하면서 대박을 치긴 했다.

그의 트레이드&영입의 결과물을 보자면 아래와 같으니, 판단은 알아서들.

3.6. 감독으로서의 총평

매우 좋지 못하다. 당시 LG 구단 사상 21세기 들어 최강 전력을 구축한 팀으로 유례 없는 DTD를 시전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라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까방권도 통하지 않는다.[23] 자신의 전전임 감독인 이순철이 LG팬들에게 최악의 금지어지만 이순철 때 야구를 보지 않은 베이징 뉴비 시대에 유입된 LG팬에게는 박종훈이 이순철 못지 않게 최악의 금지어로 남아있다.

선수 혹사, 좌우 놀이, 작전 남발 등등 경기를 운용하는 능력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최악이었다. 특히 선수 혹사는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만드는 치명타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 참사는 박종훈을 감독으로 들여오면서 4강을 가겠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 아니었느냐는 반론이 존재한다. 초보 감독을 데려 왔으면서 성적을 내라고 압박을 하니 이런 저런 무리수가 탄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이 외에도 선수단을 친화보다는 지나치게 휘어잡으려는 것 또한 문제점으로 작용했다.[24] 대표적인 예가 2010 시즌 초반에 있었던 이형종, 봉중근과의 갈등. 후술했듯 은퇴한 몆몇 선수들에 의해 폭로된 감독 시절 여러 구설수로 미루어볼 때 2011 시즌 LG의 DTD의 책임에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고려대 동문 후배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팽당한 뒤 태평양 돌핀스의 에이스였던 양상문 감독이 양배추 겸 양파고 모드로 세대교체 이후 두 번의 포스트 시즌을 올린걸 보면 더하다.

그나마 선수 육성에 있어서 그가 꾸준히 밀어 준 이병규가 팀의 주축으로 떠오른 점 하나만은 긍정적으로 봐 줄만하다. 서동욱의 경우도 있지만 일단 수비가 안정되지 못하고 타격에서도 풀 타임으로 쓸 만큼 꾸준한 기량을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프런트로서의 행적까지 종합해 볼 때, 프런트나 2군 감독에게 필요한 요소인 선수보는 안목과 육성엔 일가견이 있지만, 1군 감독에게 요구되는 시즌 운영능력이나 승부사적 기질, 팀 장악능력은 매우 부족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 김성근 감독이 이만수 수석코치를 임명한 것으로 서술되었는데 사실 이만수 수석코치는 김성근 감독이 아니라 구단에서 차기 감독으로 키우려고 데려온 사람에 가깝다.[2] 사실은 2+3년 계약이라는 것이 정설.[3] 그러나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박종훈이 오기 전부터 이종욱, 손시헌, 고영민 등을 발굴해내며 이미 잘 돌아가고 있었고, 박종훈이 떠난 이후로도 아무런 지장 없이 계속 좋은 선수들을 1군에 공급해 주고 있다. 결국 박종훈이 두산의 화수분을 일궈냈다는 평가도 과대평가된 감이 크고 거기 현혹돼서 박종훈을 데려온 LG 프런트가 설레발친 삽질이었단 소리.[4] 과대평가의 사례 중, 주박백정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주전감은 박건우, 백업은 정수빈의 줄임말로, 2009년 2군 감독을 맡았을 때 입단 동기였던 두 선수를 평가한 말이다. 2015년까지는 정수빈의 맹활약과 박건우의 기대이하의 성적으로 선수보는 안목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2016년 박건우는 김현수가 볼티모어로 이적한 후 주전 외야수가 되어 3할+20홈런과 싸이클링 히트까지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정수빈은 정수증(정수빈+영수증)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백업으로 밀렸고 결국 군 입대를 하며 둘의 엇갈린 활약으로 재평가를 받는 중.[5] 2009년 39세의 나이에도 타율 0.332, 26개의 홈런과 출루율 1위, 그리고 OPS 리그 2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데다가 나이를 감안하면 리그 최고급 용병 수준이다.[6] 2군 투수들의 감독 디스, 2군으로 내려간 봉중근 아내의 감독 디스, 팀 레전드 이상훈의 프런트 디스 등등[7] 주전포수였던 조인성이 그 전 해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생각해보자. 후배 투수랑 마운드에서 싸움이나 하던 철밥통 주전포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졌던 선수가 1년 만에 리그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이미지가 바뀌었다.[8] 이날 LG는 넥센에게 스코어 5:6으로 패배했다.[9] 물론 구단도 최계훈을 영입해주었다....라곤 하는데 그게 끝이었다.[10] 그 뒤로도 재기에 실패해 2014년 LG를 떠났고, KT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이어갔다만 그 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11] 2011년 82이닝을 등판했는데 이것도 한 달 가량 쉬고 기록한 이닝이다. 한 달을 쉬지 않았다면 정말로 100닝을 넘길 수도 있었다. 결국 신인 시절 느릿느릿 베짱을 부리면서도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던 임찬규는 젊은 나이에 팔이 망가지고 140 중반도 겨우 나오는 평범한 구속의 투수로 전락하고 만다.[12] 특히 조인성의 성적이 5번에서 가장 안 좋았는데 무조건 5번타자로 출장시켰다.[13] 2군에 김태군, 유강남이 있지만 둘 다 신인급 유망주였고, 베테랑 심광호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빠따질이 안 되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조인성보다 겨우 2살 연하이다.[14] 실제 11시즌 LG의 팀 타격 팀 홈런은 상위권인데도 불구하고 팀 득점은 전체 6위에 불구하다.[15] 경기 당일이 레다메스 리즈의 만 28세가 되는 생일이었다.[16] 삼성과 LG 두 팀은 2012년 3:3 트레이드를 하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서로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다.[17] 당시 스포츠동아 기자. 현재는 SPOTV에서 기자와 해설위원을 겸임하고 있다.[18] 올스타 브레이크 시절 LG는 4위였지만 DTD의 조짐이 보였다.[19] 송신영이나 이택근으로 추정되었는데, 이후 이택근이 4년 50억에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면서 거의 이택근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 다만 송신영도 프런트 담당자가 욕설까지 하면서 홀대를 했고, 결국 백순길 단장이 사과까지 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서 한화로 이적해버렸다.[20] 물론 구단 관계자라 하더라도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 팀의 감독한테 반말로 막 대하는게 말도 안되는 일이다.[21] 최동수를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1억원을 주고 다시 데려왔으므로 이 또한 손해[22] 이장석에 의하면 15억 원의 언더 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사사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박감독은 박병호를 높게 평가해서인지 적어도 손승락은 받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물론 프런트에서는 강제로 시행했고 결과는….[23] 2011년 LG 덕분에 한국 야구에서 페넌트레이스 30승에 선착한 팀이 4강 진출에 성공할 확률이 100%가 아니게 됐다. 1999년에는 20승에 선착하고도 가을 야구에 못간 최초의 기록을 세웠는데?[24] 그가 자진사퇴를 빙자한 경질을 당했다는 기사가 뜬 당일, LG 선수들은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자기들끼리 모여 외국인 선수인 레다메스 리즈의 생일축하를 열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이후에도 전 현직 선수들에 의해 치부가 알려지거나 마찰을 빚는 등 인망은 커녕 미담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박종훈을 선수들이 어찌 여겼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유일하게 박종훈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좋게 말한 사람이 바로 박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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