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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9:11

박철우(배구)/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박철우(배구)

1. 개요2. 현대캐피탈 시절3. 삼성화재 시절4. 한국전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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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배구 선수 박철우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현대캐피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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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1]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2]

데뷔 시절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3]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렬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다. 고참들은 쉬쉬했지만, 일부 젊은 선수들이 자신을 도와준 덕분에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렬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다만 이상렬은 지도자로서는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2012년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여담으로 국가대표팀도 트레이너였던 차상현 트레이너가 감독대행으로써 3위를 차지하는 등의 재발견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현대캐피탈 시절에는 경기당 20~30점을 올려주며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 원체 센터진이 좋았던 팀에 2000년대 들어 뭔가 아쉬웠던 날개 공격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 주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3. 삼성화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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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아버님!!!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태웅을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최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이 레프트[4]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단순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반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반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순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박철우는 단순히 가빈 체력보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무, 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게다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라운드에서 다시 LIG를 만났는데 이 때 그가 얻은 점수는 1점! 3억 연봉을 받는 선수가 한 경기에서 이런 점수를 낸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배구 FA 최초의 먹튀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 말고 할 말이 없다. 주전 라이트가 4세트 내내 뛰었음에도 공격시도가 고작 5번에, 그마저도 블로킹으로만 3번을 차단당했다(...). 다이렉트 킬 1번이 있어서 공격성공률은 20%였지만, 사실상 0이나 다름 없는 셈. 2011년 1월 25일 열린 우리캐피탈전에서도 또 한 번 1경기 1점을 올렸다. 정규 시즌에 1점을 기록한 경기가 두 번이 되었다. 이거 해결사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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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5]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장인어른한테 주야장천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불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6]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7]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8]

또한 소속 팀에서의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9]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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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결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깨끗하게 막아내는 장면.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 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10]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2015-2016 시즌, 세계 최고 소리를 듣던 괴르기 그로저가 라이트 자리에서 뛰면서 폼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자 역시 다시 박철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세계 최고의 아포짓이라는 그로저의 명성에 비해 기대치가 안 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몇 경기만에 득점 1위를 할 정도로 점유율도 높고, 공격 성공률 또한 용병 중 3위정도를 할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서브는 현재 1위를 기록 중.

그가 입대한 후 장인은 시즌을 마치고 팀의 단장으로 인사이동하면서, 소집 해제 후에는 더 이상 장인과 경기에 나서지 않게 됐다.

그리고 2016년 11월 27일 소집 해제되어 소속 팀에 복귀하였으며 12월 2일 대한항공전부터 출전할 예정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현저히 떨어진 경기 감각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소집해제 이후 출전하는 경기마다 조금씩 기량을 끌어올리더니 17년 3월 7일 현재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소집해제 후 같은 팀 날개 공격수 타이스의 높은 공격율의 분담을 첫 목적으로 하였는데 이제야 본격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있다.).

그러나 결국 신치용식 몰빵배구의 대안을 찾지 못한 팀은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8-2019 시즌부터 본인 스파이크서브 동작 시 토스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올리고 있다.[11]

2019년 3월 5일 OK저축은행을 상대했는데, 센터로 출전했다. 잔여 경기에서도 센터로 나선다고 한다.

6월 21일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남자배구대표팀 도쿄올림픽 대륙간 예선전 최종 엔트리에 같은 팀인 지태환과 함께 발탁되었다. 2014년 이후로 5년 만의 대표팀 발탁으로, 그 동안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서재덕이 병역 문제 때문에 빠지게 된 데에 따른 대체 발탁의 성격이 강하다.

2019-2020 시즌엔 라이트 산탄젤로의 영입으로 레프트나 센터로도 경기를 서게 되었지만, 산탄젤로의 부진으로 라이트로 출장하는 횟수가 더욱 많아졌으며 공격권도 박철우한테 몰빵되고 있다... 가빈화재-레오화재-그로저화재-철우화재

이번 시즌을 마치고 다시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박철우도 이제 30 중반에 접어드는 노장 선수이고 삼성에서 오랜 공헌을 한 팀 간판 선수이기에 이때까지만 해도무난히 삼성화재에 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4. 한국전력 시절

예상을 뒤엎고 4월 18일 한국전력 이적이 발표되면서 배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충격의 이적 이틀 전 동아일보의 황규인 기자가 블로그에 박철우가 삼성화재를 떠날 거라고 쓰는 등# 이적한다는 소리가 알음알음 있긴 했지만 진짜 소수였는데, 결국 실현되고 말았다. 박철우를 영입한 한국전력 프런트에 따르면 권영민 수석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하며, 삼성에서도 박철우가 권영민 코치를 그 정도까지 신뢰할 줄은 몰랐다는 구단 관계자의 발언이 있었다.

이후 본인 피셜에 의하면 한국전력의 오퍼가 들어온 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삼성화재를 떠나기에는 지난 10년간의 삼화 생활에 너무 정들어 떠나기에는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장인이 '뭘 하든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고 한국전력 이적을 결심했다고 한다.[12] 박철우ᆞ신혜인 부부 MBC 인터뷰

4월 20일 세부 내용이 공개되었다. 연봉 5억 5,000만원 옵션 1억 5,000만원을 3년동안 보장해 총 3년 21억으로, 이는 한국전력 역대 최고 대우 금액이다. 그동안 샐캡 소진이 안 돼서 벌금까지 물 뻔했던 한전이 간만에 돈을 썼다. 인식과는 달리 삼성화재도 섭섭하지 않은 계약을 제시했지만, 한국전력이 엄청 세게 부르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보상선수로는 이호건이 지명되어 삼성화재로 가게 되었다.[13]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서재덕이 2020-21 시즌 종료 후에나 복귀하기 때문에, 2020-21 시즌 그의 활약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컵대회 우승을 이끌며 기분줗은 출발을 했다.

20-21시즌을 앞두고 방출된 신으뜸을 대신하여 주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21시즌 1라운드에서 팀이 전패를 당하면서 박철우 영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철우가 라이트로 뛰면서 원래 라이트로 뛰던 카일 러셀을 레프트로 영입했는데 리시브가 많이 흔들리는 중. 러셀은 리시브하랴 공격하랴 정신이 없는데 정작 라이트인 박철우가 러셀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공격점유율을 보여주면서 러셀을 라이트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레프트 남은 한 자리에 러셀의 부족한 수비를 보완해 줄 이시몬이 주전으로 계속 출장하면서 국내 젊은 레프트들이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난항 속에 한전 팬들은 6연패가 박철우의 책임인지 세터 김명관의 기량 탓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고, 와중에 감독 장병철은 애꿎은 러셀 탓만 하는 중. 못한다고 까내릴 스탯은 아니지만 아포짓에 연봉이 7억이나 되는 선수로서는 걸맞은 활약은 아니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박철우를 팔게 된 삼성화재는 리빌딩이 한결 수월해졌는데, 삼성화재가 이호건을 받아서 우리카드와 대규모 트레이드를 성사시켰고, 연패 중인 한국전력에 백업 세터 김광국을 보내면서 젊은 선수를 무려 세 명이나 데려왔다. 박철우 까는거 맞다

한편 2월 들어 배구판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과거에 이상렬에게 폭행당한 그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었다. 그런데 이상렬이 자기 전과는 생각도 안 하고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얘기를 하는 바람에 화난 박철우가 인스타에다 피꺼솟이라고 글을 올렸고, 다음날 OK금융그룹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이상렬이 그 사태 이후로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작심하고 폭로했다.

사과는 필요없으니 이상렬 감독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이상렬은 핀트를 못 잡고 계속 사과하겠다고만 하였고, KB 구단은 6시간의 회의 끝에 '박철우 선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이상렬 감독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결론을 내리며 사과를 안 받아주는 박철우 탓으로 은근슬쩍 몰아갔다.[14]

결국 이상렬은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남은 경기 출장정지를 선언했다.[15] 이렇게 논란은 일시적으로 봉합이 되었지만, 정작 박철우도 상황이 썩 좋지는 못하다. 기본적으로 외국인 라이트에 비해 공격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고, 수비쪽에서 빈틈을 메꾸기 위해 수비형 레프트 이시몬을 쓰다보니 공격과 수비 다 해야하는 러셀에게 엄청난 부담이 가해진다. 이거 해결하려고 리시빙 센터 전술에 4인 리시브에 고의 포폴에 가까운 꼼수까지 쓰고 있지만 박철우가 말리는 날에는 여전히 답이 안나온다. 다만 잘되는 날이면 혼자서 고공폭격을 하고, 워낙 신장이 있고 블로킹이 좋기 때문에 아쉽기도 하다.

박철우가 외국인 라이트만큼의 점유율과 득점을 못 가져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 삼성화재에서 했던대로 라이트 자리에 박철우와 러셀을 돌려가면서 써도 충분한데, 장병철 감독은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그런지 팀을 다 갈아엎으면서까지 박철우 풀타임을 돌리려고 시도했다.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조차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며 한국전력은 간발의 차이로 준플행 티켓도 못 따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20-21시즌 박철우는 596득점으로 선수기간중 가장 많은 득점을 뽑아냈으나 공격성공률은 선수기간중 처음으로 50% 밑을 찍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쌩쌩한것 같다

2021년에는 외국인 선수로 라이트가 오게 되었고[16], 감독이 박철우 센터도 고려한다는 언급을 했다.

시즌 전 심장수술을 받아 다소 복귀가 늦어질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시즌 개막전 합류를 했다 장병철 감독에 따르면 일단 컨디션을 찾을때까지 세트 중간중간에 넣을 예정이라고 한다.

시즌 개막 이후에는 거의 다우디의 백업으로만 출장하고 있다. 당초 언급되게도 했던 센터 자리에서는 신영석과 함께 박찬웅의 기량이 이번 시즌부터 눈에 띄게 성장해 감독이 센터 출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10월 23일 KB손해보험전에서 2세트 교체출장해 그 세트에서만 10득점을 기록하며 1세트를 패했던 팀의 3-1 역전승에 기여했다.

2라운드 우리카드전에서 교체로 들어왔으나 벽치기와 홈런을 난사하면서 1득점에 공효 -40%로 꼴찌팀에게 승점 3점을 선물하는데 아주 큰 공을 세웠다. 다우디가 썩 만족스럽지 못함에도 출장 기회조차 잘 못 잡으며 제대로 먹튀길을 걷고 있다.

이후 조금씩 얼굴만 비치다 3라운드 대한항공전에서 다우디가 안 풀리자 드디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우디랑 같이 역적짓만 했다. 다우디는 경기라도 계속 소화하지 박철우는 놀다가 한두세트씩 마실 나오면서 말아드시는건 똑같으니 특유의 벽치기로 상대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말고는 존재감이 없다.

4라운드 현캐 원정에서 교체로 출전하였다. 3세트에는 블로킹만 뜨다 들어갔으나 5세트에는 6공격 0득(3벽치기) 2범실을 기록하였고, 거기다 홈런 후 특유의 우기기 스킬 발동으로 비디오판독까지 날려먹으며 역전패의 일등공신이 되었다.[17] 스탯세탁 기회마저 다 날리며 감독이랑 같이 까이고 있다.

5라운드 우리카드전을 기점으로 결국 시즌통산 공격성공률이 39.66%로 결국 40% 아래로 내려갔다. 심지어 벽치기도 여전히 많아 공격효율은 11.73%로 웬만한 여자배구 선수보다도 낮은 처참한 상황.

6라운드 대한항공전에서 이날 오전 욕실에서 미끄러져 치아 부상을 당한 다우디 대신 라이트로 선발출장, 이번 시즌 들어 가장 좋은 경기력으로 양 팀 최다 20득점(성공률 51.6%)을 기록하면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활약을 했다. 레프트의 임성진과 이시몬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며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기고 봄 배구를 향한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그리고 KB손해보점전에서 팀 최다 22득점에 공격성공률 55.6%를 기록하면서 3-1로 승리하면서 팀을 준PO를 확정지은 일등공신이 되었다.

시즌 내내 욕이란 욕을 다 먹다가 후반기에 활약해주어서 결국 준플레이오프에서 14득점 하여 우리카드를 꺾는데 큰 공을 세우고 팡팡플레이어까지 받았다. 우리카드가 한국전력과는 천적관계 수준이라 당연히 우리카드가 이길줄 알았던 경기를 뒤집어버린것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준플레이오프 승리에 나름 큰 공헌을 했지만 21-22시즌 코로나에 의한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4세트 20-15 상황에서 서브범실 -> 4연속 벽치기로 연계하면서 내리 5점을 주고 경기를 내줬다.[18] 그리고 경기 중 간간히 나와 범실을 하고 벽치기도 하기도 했다. 말그대로 역대급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전력의 플레이오프 탈락에 큰 공헌을 하였고 덕분에 신나게 까였다.

이후 2022-23 시즌에는 백업으로 간간히 나왔으며, FA 자격을 얻으며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한국전력과의 동행을 선택했고 연봉도 1억5100만원으로 기존 7억원에서 대폭 삭감되었다. 또한 포지션을 미들 블로커로 완전히 전향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23-24시즌 올스타전에서 KBS N SPORTS 객원 해설위원으로 나왔다. 또한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택하고 해설위원으로 전향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SNS에 은퇴를 발표하면서 20년의 프로생활을 마무리, 원년 V-리그 남자부 선수들이 모두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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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2]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3]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4]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5]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6]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7]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8]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9]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10]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11] 원래 곽승석도 2016년까지 왼손으로 올렸으나 2017년부터 오른손으로 올리고 있다.[12] 여담으로 신치용 역시 현역 시절 한국전력 소속으로 뛰었고 코치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했다.[13] 이호건은 다시 3:4 트레이드로 우리카드로 이적했다.[14]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상렬은 숫기가 없어서 대면사과를 하지 못했다, '어쨌든 어른이 다 잘못한 거죠', '(누군가)다리를 놓아 준다면 저는 충분히 사과할 용의가 있어요'라며 사건을 계속 가볍게 보는 듯한 언행으로 마구 까였다[15] 정규시즌이 6경기 남은 이 시점에 본인이 찾아가 제대로 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는 커녕 '시즌 아웃'이라는 말로 과장해가며 잠시 경기에서 물러나는 핑계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배구팬들의 주 여론이다. 애초에 감독에 선임될 때부터 솜방망이 징계마저 무력화 시키는 거 아니냐는 말이 대단히 많았었고. 뿐만 아니라 후속 보도에 의해 이 '자진 출장정지'라는 것이 계약 기간 잔여 연봉을 보존 받기 위한 이상렬의 최후의 꼼수라는 것이 밝혀지며 끝까지 비겁한 '가해자' 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16] 당초 바르디아 사닷에서 이후 다우디로 교체[17] 판정은 둘째치고 블로커를 뚫어놓고 홈런을 쳤다. 이 범실로 분위기가 그대로 넘어가버렸다.[18] 즉 20-15에서 박철우 혼자 5실점을 하고 경기에서 패한 셈이다...[19] 여자부는 황연주, 임명옥이 유이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