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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1:19:29

베스널 그린 지하철역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베스널 그린 추모 명패.jpg
베스널 그린 역에 걸린 추모 명패

1. 개요

Bethnal Green Tube Disaster
1943년 3월 3일 영국 런던 베스널그린역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

2. 사고 당시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 런던 지하철역은 독일 공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로 활용됐다. 개인이 대피소를 만들어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지하로 깊고 튼튼한 지하철역은 훌륭한 대피소였다. 아예 대피한 사람들을 위한 화장실과 침대, 심지어 교회와 도서관, 학교까지 들어섰다. 대피소에 들어설 땐 뛰어선 안됐고, 사람들을 밀어도 안됐다.

당시엔 아직 공사가 덜 끝났던 베스널 그린역도 그렇게 사용됐다. 역에는 최대 1만여명의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었고, 평소에는 7천여명의 사람들이 안으로 대피했었다. 30m 길이의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했는데, 가운데에 계단을 두 구역으로 나누는 난간 겸 손잡이가 없어서, 뛰어내려가긴 다소 힘들었다.

3월 3일, 독일 공군이 다시 런던 공습에 나섰다. 오후 8시 17분 경, 긴급 경고 사이렌이 울렸고, 사람들은 급히 지하철 대피소로 달려갔다. 길거리를 지나던 버스들도 멈췄고, 안의 승객과 기사들도 모두 지하철 대피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달려간 대피소 중엔 베스널 그린 지하철역도 있었다. 10여분이 지나고 공습 경고 사이렌이 그치자 사람들은 지하철 대피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은 인근 빅토리아 공원에 대공미사일이 설치되어 발사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시민들은 몰랐고, 대공 미사일의 소리를 폭격, 공습으로 착각한 나머지 다시 급히 뛰어 들어갔고, 그러다 아기를 안고 있던 한 사람이 넘어지며 앞의 노인을 밀어 넘어뜨렸고, 그 사람에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계단에 쌓였고, 최대 19명의 사람이 한 곳에 쌓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단을 막고있던 시신을 한쪽으로 치웠다. 공습이 끝나고, 다음날 7시,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와 사망자들은 압사 사고 당시 신발이 벗겨졌었다. 오후 11시 40분이 되어서야, 시신들이 모두 정리되고 사람들 사이에 깔린 사람들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고로 173명이 사망했고, 최소 6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27명이 남성, 84명이 여성, 62명이 어린이었다.

3. 사고 이후

하필이면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이 사고는 당시까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에는 폭격으로 인한 사망이라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2006년에 사고 생존자들의 모금이 진행된 끝에, 사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추모비의 이름은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Stairway to heaven)". 거꾸로 된 나무 계단에 사망자 173명을 뜻하는 구멍 173개가 뚫려있다.# 베스널 그린 역에도 사망자를 기리는 명패가 설치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