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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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Zagreb mid-air collision
Trčenje nad Vrbovcem 1976
(Trčenje v zraku Vrbovcem leta 1976)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1976년 9월 10일 |
유형 | 관제탑 과실, 공중충돌 |
발생 위치 | [[세르비아| ]][[틀:국기| ]][[틀:국기| ]] [[크로아티아| ]][[틀:국기| ]][[틀:국기| ]]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 자그레브 |
탑승인원 | BA476: 승객 54명, 승무원 9명 |
JP550: 승객 108명, 승무원 5명 | |
사망자 | 두 기체 탑승객 176명 전원 사망 |
기종 | Hawker Siddeley Trident 3B[1] 맥도넬 더글라스 DC-9-32 |
항공사 | 영국항공 이넥스 아드리아 항공[2] |
기체 등록번호 | G-AWZT, YU-AJR |
출발지 | G-AWZT: [[영국| ]][[틀:국기| ]][[틀:국기| ]]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 YU-AJR: [[크로아티아| ]][[틀:국기| ]][[틀:국기| ]]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 스플리트 국제공항 |
도착지 | G-AWZT: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YU-AJR: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쾰른, 쾰른-본 국제공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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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476편(British Airways Flight 476)의 사고 3개월 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진 |
JP550편(Inex-Adria Avioprometa, let 550)의 사고 6개월 전에 찍힌 사진.[3] |
1. 개요
영국항공 476편과 아드리아 항공 550편이 자그레브 상공에서 충돌한 사고로 두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176명 전원이 사망하였다.2. 사고 진행
2.1. 비행기
런던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영국항공 476편이 승객 54명, 승무원 9명을 태우고 UTC 8시 32분에 이륙했다.해당편의 기장인 데니스 탠(Dennis Tann, 1938년생)은 10,781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기장이었고 브라이언 헬름(Brian Helm. 29세) 부기장과 교대기장인 마틴 플린트(Martin Flint. 24세)이 조종을 하였다.
또한 스플리트에서 쾰른으로 가는 이넥스 아드리아 550편이 승객 108명, 승무원 5명을 태우고 UTC 10시 48분에 이륙했다.
JP550편은 요제 크룸파크(Jože Krumpak, 1925년생)기장도 10,157시간을 비행한 베테랑이었다. 부기장은 두샨 이바누시(Dušan Ivanuš. 29세)이었다.
2.2. 자그레브 항공 관제 시스템
1970년대 당시에는 자그레브 항공 관제는 부족한 인원과 열악한 장비를 가진 혼잡한 항공로였다. 당시 관제는 어퍼 섹터는 28세의 글라디미르 타시치(Gradimir Tasić)와 믈라덴 호크버거(Mladen Hochberger)가 맡았다. 타시치는 하루에 12시간이나 일하는 등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들 섹터는 글라디미르 펠린(Gradimir Pelin)과 보얀 어여벡(Bojan Erjavec)이 맡았다.2.3. 전개
11시 4분, 영국항공 476편 파일럿은 자그레브 항공 관제 구역에 들어서면서 글라디미르 타시치와 첫 교신을 했다. 당시 고도는 33,000피트였다. 예정대로면 14분에 자그레브를 지날 예정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른 채 신문을 읽고, 십자말풀이를 하는 등 잠시 딴 짓을 하고 있었다.이넥스 아드리아 항공 550편은 관제탑에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갈수 있게 해달라 요구했다. 이들은 35,000피트 까지 상승하도록 허가받았다.
믈라덴은 시간이 다되어 퇴근하느라 자리를 떴고, 타시치 혼자서 비행기 여러대를 관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서 어여벡이 550편을 타시치가 관제 중이던 어퍼 섹터로 올려보냈다. 타시치는 한번에 4대의 항공기를 상대해야 했다.
2.4. 결말
아드리아 항공 550편은 35000피트로 상승하다 영국항공 476편의 경로와 경로가 겹쳤다. 관제사가 충돌위험을 급히 알렸으나, 영어가 아닌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알려주는 바람에 알아듣지 못한 영국항공 476편은 회피기동을 취하지 못하였고[4] 비행기를 찾던 아드리아 550편은 충돌할 때 까지 비행기를 찾지 못하였고 결국 오전 11시 14분 41초 영국항공 476편이 아드리아 550편의 좌측날개와 충돌한다.기수부분이 파괴되어 폭발적인 감압이 일어난 영국항공 476편은 추락한다. 한편 좌측 날개의 1/3이 날아간 아드리아 550편은 기수부터 하강, 추락하였다.
사고지점에서 동쪽으로 15마일[5]떨어진 곳에서 루프트한자의 보잉 737기의 부기장이 불빛과 추락하는 2대의 비행기를 보고 관제탑에 알렸다.
두 비행기는 자그레브에서 32km 가량 떨어진 버보베크(Vrbobec)에 추락했다. 현장에 처음 온 경찰관에 증언에 의하면 한 아기가 살아있었으나 구급차가 왔을 때는 사망하였다고 한다.
3. 사고 원인
자그레브 항공 관제사의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관제 시스템도 부정확하고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4. 사고 이후
관제사들은 심문을 받고 타시치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석방되었다.1977년 4월 11일 자그레브 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모든 관제사들은 유고슬라비아 형법 제 271-72조에 따라 "철도, 해상 또는 항공 교통을 위험에 빠뜨려 사람이나 재산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이라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타시치 뿐이었다. 그는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공 관제사가 청원을 하였고, 타시치는 피해자로 판결이 났고 2년 7개월 만인 1978년 11월 29일에 석방되었다.
5. 그 외
유튜브 등지에서 AP가 보도한 것이 있으나 시신들이 모자이크가 되어있지 않아 있어 사건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시청을 권하지 않는다.Collision Course#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개봉하였다.
[1] 보잉 727과 Tu-154 비슷한 3발기.[2] 슬로베니아의 항공사이다. 후에 아드리아 항공으로 계승되었지만 2019년 말에 파산해서 없어졌다.[3] 당시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구성국이였다. 공산권이였지만 미국제 DC-9을 운항했는데, 이는 당시 유고 연방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제3세계를 이끌며 중립외교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방권과도 사이가 원만했지만 반대로 소련과는 스탈린 시절엔 스탈린이 티토를 싫어해 몇 번 암살단을 보냈었고 사후엔 화해는 했지만 사이가 좋지 못했다.[4] 설사 알아들었다 하여도 햇빛때문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5] 약 2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