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fff> 힐스버러 참사 Hillsborough disaster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1989년 4월 15일 | |
발생 위치 |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 힐스버러 스타디움 | |
유형 | 붕괴 / 압사 | |
원인 | 경기장의 허용 인원을 초과한 인원 입장 | |
인명 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fff> 사망 | 97명 |
부상 | 76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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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9년 4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1]에서 관람객 94명이 압사한 후 3명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건.[2] [3]과다 인원을 입장시켜 압사 사고가 일어났고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큰 희생이 발생했으며 관공서의 대처 미흡으로 사망자가 늘고 경찰과 정부와 언론이 책임 회피, 은폐 축소를 꾀했던 것이 사건 이후 수십 년간 파헤쳐졌다.
2. 전개
당시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이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리버풀의 팬들은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단체로 버스를 대여해 경기장으로 향했지만 교통사고로 도로가 정체되었다.리버풀 팬들은 시합 시작 직전에 도착하여 서둘러 경기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는데 리버풀 팬들이 들어가기로 되어 있던 곳의 출입문은 회전식이라 한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었다. 결국 장외에서 군중이 몰려 사고가 나는 것을 우려한 영국 경찰은 출구를 포함한 모든 출입구를 개방하여 사람을 들여보냈다. 그 덕에 외부 게이트에서의 입장은 순조로웠으나 문제는 경기장 안으로 통하는 좁은 복도를 통과하면서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찰의 실수로 정원이 1600명 남짓한 입식 관중석에 약 3천 ~ 5천명에 달하는 인파가 입장해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경기장 진행요원들은 계속해서 해당 입석으로 관중을 유도했고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안에 이미 들어갔던 사람을 밀게 됐다.
사람에 눌려 압사 직전에 이른 사람들이 2층으로 기어올라가고 펜스 쪽 사람들은 펜스를 넘어 경기장으로 대피하는 지경이 되었다. 경기를 촬영하던 카메라맨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채고 카메라를 관중석으로 돌렸다. 사람들은 당시 리버풀 골키퍼로 경기장에 있던 브루스 그로벨라에게 '사람들 때문에 죽어간다.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브루스는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 했지만 사람들에 눌려 펜스에 밀린 사람들을 보고 경악했으며 사람들이 쉽게 대피하도록 인근 문을 열어 달라고 경기장 직원에게 부탁했으나 그 직원은 열쇠가 없었다.
결국 훌리건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둔 보호철망으로 사람들이 밀려 경기 시작 5분 만에 철망이 무너져내리자 진행 측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경기를 중단한 후 구급차들이 급히 출동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구급차조차 경기장 안에 들어오기 힘들었다. 구급차 42대가 출동했으나 경기장 안에는 겨우 3대만 들어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광고판을 떼어서 임시 들것으로 활용해 사람들을 구급차로 옮겼고 숨을 못 쉬는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경기장 전체가 아닌 한 쪽에서만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경기 당시 다른 곳에선 갑자기 경기장에 사람들이 들어오다가 중단되는 모습을 보고 훌리건이 경기장 안에 들어와 사고를 친 탓에 중단됐다고 착각한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후 집에서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사고 발생 당시 94명이 압사했고 부상자는 766명이었는데 그 중 300여 명이 입원했으며 이후 사고 후유증으로 3명이 사망함으로써 전체 사망자는 97명이 되었다. 이 사고는 기존의 1971 아이브록스 참사를 넘어 영국에서 축구 관련 사고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4]
이후 리버풀은 모든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경기를 치르지 않겠다고 FA에 통보했다. 당시 수많은 축구 클럽의 애도가 이어졌고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 에버튼은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스카프를 내걸었으며[5] 윔블던 FC는 애도에 동참하는 의미로 FA의 승점삭감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의 합의 하에 아스날과의 참사 직후 리그 경기를 취소했고 FA에 비난 여론이 일자 FA는 윔블던과 아스날 승점을 삭감하지 않았다.
4월 19일의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 CF간의 유로피언 컵 준결승 경기에선 킥오프 전 묵념시간이 반쯤 지났을 무렵 AC 밀란의 팬들이 리버풀의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을 노래했다. 사건 이후 리버풀의 첫 경기는 성금 마련을 위한 셀틱과의 친선 경기[6]였다.
리버풀은 5월에 미룬 잔여 경기를 치렀으며 마지막 경기는 리그 챔피언을 결정짓는 아스날과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아스날 선수들은 꽃을 들고 입장해 리버풀 팬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스날의 우승을 위해선 2점차 승리가 필요했던 이 경기는 아스날의 2-0 승리로 끝나 아스날이 리그 1위, 리버풀이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했으며 리버풀 팬들은 우승한 아스날 선수들에게 기립박수를 쳐 주었다는 훈훈한 내용으로 닉 혼비의 저서 '피버 피치'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후 아스날은 구단 차원에서 3만 파운드를 힐스보로 재난 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3. 사고 이후
참사 20주기를 맞이해서 영국 정부에 의해 2009년에 재해 및 그 여파에 대한 문서 보고서 작성을 위해 독립적인 패널을 구성하였으며 23년만인 2012년 9월 12일에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힐스버러 인디펜던트 패널이 내놓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장에 예전부터 도사리던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고 경찰이 팬들에게 조직적인 책임 전가 시도를 했으며 응급구조대의 초기 대응에도 문제가 있어서 구할 수 있었던 이들을 못 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하원에서 연설하며 피해 유가족들에게 끼친 두번의 불의(Double Injustice)에 대해 사죄했고 FA 역시 사과문을 발표했다. # 당시 경찰은 진술 164건 중 116건을 바꾸거나 삭제하여 비난의 대상을 리버풀 팬들에게 돌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었는데 이들은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통제와 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팬들을 술에 취한 폭도로 표현하며 티켓을 구입하지 않고 입장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피해자 59명이 추가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당시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경찰들을 싸고돌았기 때문에 리버풀 팬들에게 대처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는데 마거릿 대처가 죽으면 파티를 열 거야!라는 응원가[7]가 있을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마가렛 대처가 리버풀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했기 때문에 리버풀에서는 마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대처 목숨 하루씩 깎이니까(죽음에 하루씩 다가가니까) 좋다고 까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대처가 죽은 후 리버풀, 스코틀랜드 등지에선 "그 망할 마녀가 드디어 죽었다!" 라면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파티와 행사가 벌어졌으며 심지어 응원가는 영국의 음악 차트의 순위에도 오르는 상황이 일어났다.
헤이젤 참사와 함께 잉글랜드 전역, 특히 축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잉글랜드는 이 사건 이후 축구장의 입석을 모두 없애고 좌석으로 교체했으며 직접적으로 사상자를 내게 된 보호철망을 철거하는 등 경기장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8] 즉,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기존의 풋볼 리그에서 분리된 프리미어 리그를 새롭게 출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당시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케니 달글리시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안고 매일같이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었는데 당시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달글리쉬 감독은 유족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진심으로 슬퍼하였다고 하며 원래 리버풀의 레전드였지만 더욱 리버풀의 레전드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참사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 쉬지 않고 불철주야 바쁘게 돌아다닌 탓인지 달글리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한 상태에 빠지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결국 1991년 초에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현지 시각 2016년 4월 26일 영국 법원 판결에 따르면 조사 내용 17개 전부 경찰의 과실로 인정되면서 리버풀 서포터들은 다소의 잘못밖에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희생자 97명에 대한 일부 결백함이 27년 만에 밝혀졌다. # 경찰이 경계태만으로 인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 증거 날조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렸음이 어느 정도 판명되었다.
2016년 5월 8일 BBC에서 방영한 힐스버러 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나기 며칠 전에 경찰서장이 바뀌었고 그 사람은 축구에 관하여 거의 모르는 상태였으며 처음으로 한 기자회견에서도 노팅엄 포레스트를 노팅엄셔로 말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영국 경찰이 34년 만인 2023년 1월 31일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며 윤리 규정 재검토 등을 약속했다.#
4. 추모
안필드의 힐스버러 추모비 |
이외에도 리버풀 대성당 내부의 꺼지지 않는 불꽃, 메모리얼 벤치, 힐스버러 추모 기념관과 추모 동상을 세워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으며 리버풀 FC는 구단 엠블럼까지 변화를 주며 라이버 버드 양 옆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넣었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유니폼 뒷쪽에 희생자 수인 96을 새겨 놓았는데 2022-23 시즌부터는 앞서 언급된 앤드류 데빈까지 포함된 수인 97로 표기한다.
5. 여담
- 이 사고로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의 사촌 존-폴 길훌리가 사망했는데 당시 10살로 가장 어린 사망자였다고 한다. 당시 제라드는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비석에 사촌 형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볼 때마다 매우 큰 고통을 받았다고 전했다.
- 참사 이후 《더 선》에서 '사건 당시 리버풀 훌리건들이 사망자들의 주머니를 뒤져서 물건을 훔치고 경찰을 폭행했다며 당시 참사의 책임이 리버풀 훌리건들에게만 있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서 상당한 논란이 됐는데 이 때문에 현지 리버풀 팬들은 더 선을 읽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증오한다. 결국 진상규명이 완료된 뒤인 2017년부터 리버풀은 구단 차원에서 더 선의 취재와 안필드에서의 더 선 판매를 금지했으며 2017년 축구 서포터 연맹(FSF)에서 발의한 더 선 보이콧 운동이 만장일치로 결의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첼시를 비롯한 약 70개 구단의 팬들이 동참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더 선》 문서 참고.
- 리버풀의 최대 라이벌 맨유의 감독이던 알렉스 퍼거슨은 참사 이후 가장 먼저 안필드를 방문해 조용히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돌아갔다고 한다.
- 노팅엄 포레스트는 2022년 2월 7일에 열린 FA컵 16강에서 허더스필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면서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이후 33년 만에 FA컵 8강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는데 3월 21일 FA컵 8강전의 상대는 바로 힐스버러 참사의 피해자였던 리버풀이었다. 그렇게 1988-89 시즌 FA컵 준결승전에서의 힐스버러 참사 이후 33년만에 FA컵 8강전에서 다시 만나 디오구 조타에게 극적으로 골을 허용하며 0-1로 아깝게 패배했다. 하지만 노팅엄 포레스트는 시즌 4위에 오른 뒤 승격 플레이오프를 승리하면서 23년 만에 1부 리그 승격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렇게 노팅엄 포레스트는 23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다시 복귀해 2022-23 시즌부터 리버풀과 정면 승부를 할 수 있게 됐으며 첫 번째 맞대결에서 타이워 아워니이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 참사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경우 입석을 폐지했으나 2021-22 시즌 중반부터 일부 구단에 한해 세이프 스탠딩 시험 도입으로 부활했다. 기사
- 힐스버러 참사 생존자이자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재난 관리 전문 사회학자가 된 앤 에이어(당시 25세)는 영국의 재난참사 피해자 연대 '참사 행동(Disaster Action)'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내용
6. 둘러보기
역대 영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word-break: keep-all; min-width: 100px; min-height:2em" {{{#!folding [ 2020년대 ] {{{#!wiki style="margin:-5px 0" | 발생일 | <colcolor=#000>사망 | 사건명 |
-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2019년 10월 23일39 영국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사건 2017년 6월 14일72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2017년 5월 22일23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2005년 7월 7일56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2004년 2월 7일23 모어캠 만 참사 2002년 10월 12일204 23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2001년 9월 11일2,996 67 9.11 테러 2000년 6월 18일58 2000년 도버항 밀입국 참사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217 21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9년 10월 5일31 라드브로크 그로브 열차 충돌사고 1999년 9월 28일26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국 관광객 버스 사고 1999년 9월 28일29 오마 폭탄 테러 1994년 6월 2일29 1994년 RAF 치누크 추락 사고 1992년 9월 28일167 36 파키스탄 국제항공 268편 추락 사고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89년 8월 20일51 마치오네스호 참사 1989년 4월 15일97 힐스버러 참사 1989년 1월 8일47 브리티시 미들랜드 국제항공 92편 추락 사고 1988년 12월 21일270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1988년 12월 12일35 클래펌 정션 열차 충돌사고 1988년 7월 6일167 파이퍼 알파 화재 사고 1987년 11월 18일31 런던 킹스 크로스 역 화재사건 1987년 3월 6일193 해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참사 1986년 11월 6일45 1986년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헬리콥터 치누크 추락 사고 1985년 6월 23일329 27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1985년 5월 11일56 브래드포드 시티 구장 화재 1985년 8월 22일55 영국항공 투어 328편 화재 사고 1985년 2월 11일21 랑겐브루크 버스 사고 1983년 7월 16일20 영국 항공 헬리콥터 S-61 추락 사고 1980년 9월 9일44 더비셔호 침몰 사고 1980년 8월 16일37 덴마크 플레이스 방화 사건 1980년 4월 25일146 단 에어 1008편 추락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78년 2월 11일42 퍼시픽 웨스턴 항공 314편 추락 사고 1976년 9월 10일176 자그레브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5년 5월 27일32 디블스 다리 버스 추락 사고 1975년 2월 28일43 무어게이트역 지하철 충돌사고 1974년 11월 21일21 브링엄 펍 폭탄 테러 1974년 6월 1일28 플릭스버러 폭발사고 1974년 3월 3일346 177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8월 2일50 서머랜드 참사 1973년 4월 10일108 인빅타 국제항공 435편 추락 사고 1972년 7월 5일30 콜드 하버 병원 화재 1972년 6월 18일118 브리티쉬 유러피언 항공 548편 추락 사고 1971년 11월 9일52 영국 공군 허큘리스 추락사고 1971년 10월 21일21 ~ 22 클락스턴 폭발 사고 1971년 1월 2일66 1971 아이브록스 참사 1970년 7월 3일112 단 에어 1903편 추락 사고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69년 1월 5일50 아리아나 아프간 항공 701편 추락 사고 1968년 11월 18일22 제임스 와트 스트리트 화재 1968년 11월 5일49 히서 그린 열차 탈선 사고 1967년 2월 26일21 셀턴 병원 화재 1967년 11월 4일37 이베리아 항공 062편 추락 사고 1967년 6월 4일72 스톡포트 비행기 추락 참사 1966년 10월 21일144 애버밴 참사 1966년 7월 31일31 다윈호 침몰 사고 1965년 10월 17일36 브리티시 유러피언 에어워이즈 비커스 951 추락 사고 1965년 7월 4일41 영국 공군 C.1A 추락 사고 1965년 5월 17일31 1965년 캠브리안 광산 참사 1965년 4월 14일26 BUA DC-3 추락 사고 1960년 6월 28일45 식스 벨즈 광산 폭발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8년 8월 14일99 KLM 607-E편 추락 사고 1958년 2월 27일35 윈터힐 비행기 참사 1958년 2월 6일23 뮌헨 비행기 참사 1957년 12월 4일90 루이섬 열차 충돌사고 1957년 11월 5일45 아퀼라 항공 S.45 추락 사고 1957년 5월 1일34 이글 항공 비커스 비스카운트 추락 사고 1957년 3월 14일20 브리티시 유러피안 항공 비커스 701 추락 사고 1957년 3월 5일20 영국 공군 베버리 C.1 추락 사고 1954년 12월 25일28 영국해외항공 보잉 377 추락 사고 1954년 1월 10일35 영국해외항공 781편 공중분해 사고 1953년 5월 2일43 BOAC 783편 추락 사고 1953년 1월 31일154 프린세스 빅토리아 호 침몰사고 1953년 1월 5일27 1953년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비커스 610 추락 사고 1952년 12월 5일 ~ 9일4000+ 1952년 런던 그레이트스모그 1952년 10월 2일112 해로우 앤 윌드스톤 열차 추돌사고 1952년 9월 6일31 판버러 에어쇼 추락 사고 1952년 1월 10일23 에어 링구스 C-47 추락 사고 1951년 12월 4일24 질링엄 버스 참사 1951년 4월 16일75 어프레이 호 침몰 사고 1950년 10월 31일28 1950년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비커스 610 추락 사고 1950년 10월 17일28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C-47 추락 사고 1950년 3월 12일80 랜드로우 항공 참사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49년 8월 19일24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DC-3 추락 사고 1949년 1월 17일20 미 공군 B-29 추락 사고 1948년 10월 20일40 KLS L-049 추락 사고 1948년 7월 4일39 노스우드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48년 4월 17일24 윈스포드 열차 충돌 사고 1948년 3월 2일20 사베나 DC-3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6일28 고스윅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10월 24일32 사우스 크로이던 열차 충돌 사고 1947년 4월 23일39 샘탬파호 침몰 사고 1946년 3월 9일33 번든 파크 참사 1946년 1월 1일20 리치필드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9월 30일43 본 엔드 열차 탈선 사고 1945년 9월 14일21 볼벤터 영국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6월 15일27 처치 노웰 미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5월 6일31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45년 4월 23일31 맨 섬 미 공군 B-17 추락 사고 1945년 4월 22일21 풀벡 영국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2월 19일20+ 질스 다코다 3 추락 사고 1945년 1월 10일22 밸리 마카렛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1월 27일70 영국 공군 창고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61 프렉턴 항공기 참사 1944년 7월 27일22 미 공군 DC-3 추락 사고 1944년 2월 19일20 미 공군 DC-4 추락 사고 1943년 7월 3일20 영국 공군 포커 FXII 추락 사고 1943년 3월 27일379 대셔호 폭발 사고 1943년 3월 3일173 베스널 그린 지하철역 참사 1943년 2월 24일37 반달호 침몰 사고 1942년 10월 2일239 큐라소호 침몰 사고 1942년 4월 13일25 임버 민간인 오사 사건 1942년 1월 1일57 스네이드 광산 참사 1941년 12월 30일23 에클스 열차 충돌 사고 1941년 10월 31일49 허더스 필드 공장 화재 1940년 11월 4일27 노턴 피츠워렌 열차 사고
- [ 193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39년 12월 12일136 두체스호 침몰사고 1939년 10월 28일35 밸리필드 광산 참사 1939년 6월 1일99 테티스호 침몰사고 1937년 12월 10일35 캐슬커리 열차 충돌 사고 1937년 7월 2일30 홀디치 광산 참사 1936년 8월 6일30 완클리프 우드무어 광산 참사 1934년 9월 22일266 그레스포드 참사 1932년 1월 26일60 M2호 침몰 사고 1931년 11월 20일45 벤틀리 광산 붕괴 사고 1931년 1월 29일27 1931년 헤이그 광산 폭발 사고 1930년 10월 5일48 R101호 추락사고
- [ 192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29년 12월 31일72 글렌 극장 참사 1928년 6월 27일25 달링턴 열차 충돌 사고 1923년 9월 25일40 레딩 광산 침수 사고 1922년 9월 5일39 1922년 헤이그 광산 폭발 사고 1921년 10월 9일22 로완호 침몰 사고 1921년 8월 23일28 R38급 비행선 추락 사고
- [ 19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19년 10월 20일31 레벤트 광산 사고 1919년 1월 1일201 ~ 205 로라일호 침몰 사고 1918년 9월 25일470 오틀란토호 침몰 사고 1918년 7월 14일37 UB-65 침몰 사고 1918년 10월 24일364 프린세스 소피아호 침몰 사고 1918년 9월 16일79 글래턴호 폭발 사고 1918년 7월 1일134 칠웰 탄약 공장 폭발 사고 1918년 2월 24일94 플로리젤호 침몰 사고 1918년 1월 31일 ~ 2월 1일105 메이 섬 전투 1918년 1월 12일155 민니 광산 참사 1918년 1월 12일188 오팔호 침몰 사고 1917년 7월 9일843 뱅가드호 폭발 사고 1917년 6월 13일43 애쉬톤 언더 라인 폭발 사고 1917년 2월 21일650+ 멘디호 침몰 사고 1917년 1월 29일32 K13 침몰 사고 1917년 1월 19일73 실버타운 폭발 사고 1917년 1월 19일30 E36호 침몰 사고 1916년 12월 5일35 번보우 탄약 공장 사고 1916년 8월 21일 ~ 24일40 로우 무어 폭발 사고 1916년 4월 2일115 파버샴 공장 참사 1915년 6월 22일226 퀸틴스힐 철도 참사 1915년 5월 27일352 프린세스 이레네호 침몰 사고 1915년 5월 7일119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4년 10월 30일83 로힐라호 침몰 사고 1914년 10월 14일439 셍헤니드 탄광 참사 1914년 5월 29일1014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사고 1914년 1월 16일58 A7호 침몰 사고 1912년 7월 9일91 카데비 광산 참사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1514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0년 10월 21일344 프레토리아 광산 참사
- [ 1900년대 이전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09년 2월 16일168 웨스트 스탠리 광산 참사 1908년 10월 27일29 야머스호 침몰 사고 1906년 12월 28일22 엘리엇 정션 열차 충돌 사고 1906년 7월 1일43 세일스버리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11월 19일39 왓슨 스트리트 하숙집 화재 1905년 7월 27일20 홀로드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3월 10일33 1905년 캠브리안 광산 참사 1903년 1월 27일52 코니 병원 화재 1902년 4월 5일25 1902 아이브록스 참사 1898년 6월 21일34 알비온호 진수식 참사 1896년 4월 30일82 펙필드 광산 참사 1892년 8월 26일112 파크 슬립 광산 참사 1888년 9월 5일63 모리스우드 광산 참사 1887년 9월 5일186 엑세터 극장 화재 1887년 2월 13일39 와트슨 광산 참사 1887년 5월 23일73 우드스톤 광산 참사 1885년 12월 23일81 마디 광산 폭발 사고 1884년 7월 16일24 불하우스 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883년 7월 3일124 다프네호 참사 1883년 6월 16일183 빅토리아홀 참사 1882년 2월 16일63 트림돈 그랜지 광산 참사 1881년 10월 14일189 아이마우스 참사 1879년 12월 28일59 테이 브리지 붕괴 사고 1878년 9월 11일268 애버컨 광산 참사 1878년 6월 7일189 우드핏 광산 폭발 사고 1878년 9월 3일600+ SS 프린세스 앨리스 침몰 사고 1877년 10월 22일207 블랜타이어 광산 참사 1874년 12월 24일34 쉬프톤 처웰 열차 탈선 사고 1874년 9월 10일25 소프 열차 충돌 사고 1873년 3월 20일535 SS 아틀란틱 침몰 사고 1871년 2월 24일38 펜터 광산 폭발 사고 1868년 12월 26일26 퀸핏 광산 폭발 사고 1867년 1월 15일40 리진트 공원 참사 1866년 12월 12일361 오크스 폭발 사고 1866년 1월 11일220 런던호 침몰 사고 1865년 3월 15일20 벨 스트리트 홀 화재 1865년 1월 16일20 던디 압사 사고 1864년 10월 6일 ~ 7일53 뉴캐슬 대화재 1864년 3월 11일244 데일 디크 저수지 붕괴 사고 1861년 8월 25일23 클레이턴 터널 열차 충돌 사고 1853년 10월 20일30 하트레이크 참사 1852년 2월 26일444 ~ 450 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1850년 3월 30일150+ 로얄 애들레이드호 침몰 사고 1849년 2월 19일70 로얄 극장 참사 1848년 8월 18일100+ 모레이 어선 참사 1846년 7월 9일39 이스트 휠 로스 광산 참사 1845년 5월 2일79 그레이트 야머스 대교 붕괴사고 1844년 9월 28일95 해스웰 광산 폭발 사고 1838년 7월 4일26 휴스카 광산 참사 1812년 5월 25일92 펠링 광산 참사 1808년 9월 20일23 로얄 오페라 하우스 화재 1807년 11월 19일400+ 로치데일호 프린스 오브 웨일스호 충돌 사고 1807년 4월 18일60 ~ 90 하위치 페리 참사 1807년 2월 23일27 ~ 34 1807년 뉴게이트 참사 1806년 12월 25일22 스톳필드 어선 참사 1806년 3월 16일400+ 인빈시블호 침몰 사고 1800년 5월 17일673 퀸 샬롯호 화재 1727년 9월 8일80 번웰 인형극 극장 화재 1707년 10월 22일1400+ 실리 영국 해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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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셰필드 웬즈데이 FC의 홈구장.[2] 본래 2명이었으나 사고 당시 만 22세였던 앤드류 데빈(Andrew Devine)이 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후 32년간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21년에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만 55세로 사망하면서 3명으로 늘었다.[3] 리버풀의 유니폼 뒤에 써있는 번호 '97' 도 그 이유다. 힐스버러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을 추모한다는 의미이다.[4] 축구 경기 도중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압사로 숨진 사례는 아크라 스타디움 참사와 칸주루한 스타디움 참사, 리마 축구 폭동뿐이지만 다른 사고들은 전부 폭력사태와 연관되어 일어난 참사였고 폭력사태와 관련 없는 압사 사고의 사망자 수는 힐스버러 참사가 가장 많다.[5] 두 팀 간의 더비 경기가 프렌들리 더비라고 불리는 만큼 리버풀 팬들 중에는 에버튼 팬의 친인척이 많다.[6] 두 팀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응원가로 사용하는 팀들이기도 하다.[7] 가사 전부가 "매기 대처가 죽으면 파티를 열 거야(When Maggie Thatcher dies, we're gonna have a party)"의 반복이다.[8] 이 영향으로 인해 현재의 축구장은 보호철망이 없어진 대신 관중석 앞에 난입방지용 해저드를 파는 형태로 설계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