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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 국장[2] | |
위치[3] | ||
1867년 8월 18일 ~ 1871년 1월 18일 | ||
성립 이전 | 남부 합병 이후 | |
독일 연방 | 독일 제국 | |
역사 | ||
1866년 북독일 연방조약 1867년 연방 헌법 제정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1년 독일 통일 | ||
지리 | ||
위치 | 중부 유럽 | |
수도 | 베를린 | |
인문환경 | ||
언어 | 독일어 | |
종교 | 개신교, 가톨릭 | |
민족 | 독일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의회 연방제 | |
국가원수 | 연방의장[4] (빌헬름 1세) | |
수상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
경제 | ||
통화 | 페라인스탈러(Vereinstha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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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끝난 1866년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난 1871년까지 북독일 지역에 존속했던 연방 국가. 독일 제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북독일 연방은 편의상 '연방'이라고 번역하고는 있으나 사실은 연방 국가(federation)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까운 존재였다. 후신인 독일 제국은 완전한 연방 국가로 통일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전신인 북독일 연방 단계에서는 아직 국가연합에 가까웠다. 한국어에서 연방으로 번역되는 정치체(政治體, polity) 중에 실제로는 연방 국가가 아닌 경우가 꽤 많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와도 인연이 없지는 않은 나라인데 오페르트 도굴 사건 당시가 이 시기였다.
2. 역사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를 제외시키고 독일을 통일한다는 소독일주의에 근거하여, 기존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주도의 느슨했던 독일 연방을 해체시키고, 엄연한 연방국가로서 북독일 연방을 출범시켰다. 이후 북독일 연방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 남독일의 4개국[5]을 포함한 독일 제국을 선포하면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3. 정치
명목상으로는 구성국 모두 동등한 주권을 행사하게 되어있지만 전체 영토의 대부분이 프로이센 왕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북독일 연방에서 프로이센의 위치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6] 프로이센의 인구는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주변 외국과 인구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연방의 의장은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군 통수권과 법률 선포권, 연방 수상임명권을 가지게 된다. 법률에 관해선 모든 연방법률의 위에는 북독일 헌법이 있으며, 입법권은 연방 가맹국의 대표인 참의원과 보통선거 및 평등선거로 선출된 의회가 행사한다.물론 제도상으로는 위와 같지만, 실제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보수 세력과 비스마르크의 독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난 것은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이 성공한 것과 같았다. 위상이 올라가면서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현실과 타협하였다. 이는 전쟁 직후 치러진 선거의 결과가 대변한다. 전체 의석 중 진보당의 의석이 247석에서 148석으로 100석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북독일 연방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의도에 따라 흘러갔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7]
헌법은 4년 뒤 선포되는 독일 제국의 헌법과 대동소이하다. 북독일 연방에 속해있지 않던 남부 독일 4개국이 가입하고, 이들의 일부 권리[8]를 보장한다는 부분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법률상으로는 프로이센과 여러 소국의 주권은 동등했다.
4. 구성국
사진에서 붉은 부분이 북독일 연방이다. 그 남쪽의 주황색 부분은 독일 제국 성립 때 추가된 영역으로, 남독일 4개국[9]이다. 그리고 왼쪽 하단 연노란색 부분은 프랑스에서 탈환한 엘자스-로트링겐이다. 주황색 영역 한가운데에 콕 박힌 붉은 부분은 프로이센 왕실인 호엔촐레른 가문의 선산 격인 호엔촐레른 지역.[10] 영토의 대부분을 프로이센 왕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프로이센의 이중구조는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까지 지속되었다.
북독일 연방 가맹국들은 다음과 같다.
5. 관련 인물
왼쪽 연도는 직위에서의 재임기간, 오른쪽 연도는 생몰년이다.5.1. 역대 의장
빌헬름 1세 | 1867년 8월 18일 ~ 1871년 1월 18일 | 1797년 3월 22일 ~ 1888년 3월 9일(향년 90세) |
5.2. 역대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 1867년 8월 18일 ~ 1871년 1월 18일 | 1815년 ~ 1898년 |
[1] 각 색상의 의미는 프로이센 왕국의 검은색과 한자동맹 자유시(함부르크, 브레멘, 뤼베크)의 붉은색, 그리고 그 둘이 공유하는 흰색으로 북독일 연방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었는지가 명확해진다. 특히나 빨간색과 하얀색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 중 하나였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을 상징하는 색깔으로 빌헬름 1세가 아주 만족했다고 전해지며 후신인 독일 제국에서도 별다른 변경 없이 이 깃발을 그대로 사용했다.[2] 독일 통일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게르만족의 민족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3] 초록색 부분. 남부지방에 있는 초록색은 프로이센 왕국 호엔촐레른 가문의 선산인 호엔촐레른 지역이다.[4] 분데스프레지디움(Bundespräsidium). 프로이센 왕국 국왕이 북독일 연방의 의장직을 겸했다.[5]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남부 지역), 바덴 대공국,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6]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 영국에서 잉글랜드의 위치와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압도적이었다. 인구의 80%를 프로이센이 차지했으니까.[7] 비스마르크는 세금을 내는 부르주아는 당연히 무시했고, 군부와 융커들의 이해관계조차 무시했다.[8] 바이에른의 교황청 대사 파견 권한과 일부 관세권 우표 발행권 등 자잘한 권리를 보장했고, 뷔르템베르크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에 평시 군 지휘권과 군 부대 명명권을 하사하는 특권을 준 정도다.[9]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이에른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중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남부영토[10] 원래는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 슈바벤 계통의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이 있었으나, 1850년 프로이센 왕실인 프랑켄계에 영토를 양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