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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틱 | ||||||
센트럴 | ||||||
사우스이스트 | ||||||
서부 | ||||||
사우스웨스트 | ||||||
노스웨스트 | ||||||
퍼시픽 |
<colbgcolor=#00788c><colcolor=#fff> 샬럿 호네츠 | ||||||
Charlotte Hornets | ||||||
창단 | 1988년([age(1988-01-01)]주년) | |||||
연고지 |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 | |||||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1989~1990) 동부 컨퍼런스 (1988~1989, 1990~2002, 2004~) | |||||
디비전 | 애틀랜틱 디비전 (1988~1989) 미드웨스트 디비전 (1989~1990) 센트럴 디비전 (1990~2002)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2004~) | |||||
연고지 변천 | 샬럿 (1988~) | |||||
구단명 변천 | 샬럿 호네츠 (1988~2002) 샬럿 밥캣츠 (2004~2014) 샬럿 호네츠 (2014~) | |||||
홈 경기장 | 샬럿 콜리세움 (Charlotte Coliseum, 1988~2002, 2004~2005) 스펙트럼 센터 (Spectrum Center, 2005~) | |||||
저지 스폰서 | MrBeast Feastables | |||||
구단주 | 마이클 조던 (2010~2023) 릭 슈날 (Rick Schnall), 게이브 플롯킨 (2023~)[1][2] | |||||
사장 | 미치 컵책 (Mitch Kupchak) | |||||
단장 | ||||||
감독 | 찰스 리 (Charles Lee) | |||||
G 리그 제휴 | 그린즈버러 스웜 (Greensboro Swarm) | |||||
로컬 경기 중계 | Bally Sports Southeast | |||||
약칭 | CHA | |||||
| | | | | ||||||
프랜차이즈 팀 기록 | ||||||
최고 승률 | .659 - (1996-97시즌, 82경기 54승 28패) | |||||
최저 승률 | .106 - (2011-12시즌, 66경기 7승 59패) | |||||
최다 승 | 54승 - (1996-97시즌, 82경기 54승 28패) | |||||
최다 패 | 64패 - (2004-05시즌, 82경기 18승 64패) | |||||
최고 계약 | $205,900,000 - 2023년 라멜로 볼 | |||||
팀 컬러 / 유니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1f2023,#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팀 컬러 | |||||
청록색■ 다크 퍼플■ 은색■ 흰색□ | ||||||
유니폼 | ||||||
Association | Icon | Statement | City |
[clearfix]
1. 개요
샬럿 호네츠의 엠블럼 변천 | |||
1988/89 | 1989/90 ~ 2001/02 | 2004/05 ~ 2007/08 | 2008/09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
서부에 새크라멘토 킹스가 있다면 동부에는 이 팀이 있을 정도로, NBA에서 쌍벽을 이루는 최약체 프랜차이즈로 꼽히고 있다. 아래 역대 성적 면에서 드러나 있듯 NBA 파이널은 고사하고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조차 한 번도 없고, 마지막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는 16년 연속 PO 실패 기록을 작성한 새크라멘토 킹스보다도 오래된 2001-2002 시즌이다.
팀명인 '호네츠'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 찰스 콘월리스가 조지 3세에게 보낸 캐롤라이나 전투에 관한 보고 편지에서 "덤불 속에서 일어난 말벌 떼 같다"고 한 것에서 유래됐다. 1990년대에는 관련 문헌이나 농구팬들 사이에서 '샤롯트 호네츠'라고도 했다.
사실 원래 이 동네에 있던 호네츠 구단은 인기가 제법 많은 팀이었다.[3] 그런데 고비에서 결국 우승 도전에 실패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구단주인 조지 신의 성추문으로 지역에서 평판이 떨어진 것이 컸다. 이 때문에 새 구장 건립에 실패하자, 빡쳐서 그냥 뉴올리언스로 날라 버렸다. 졸지에 NBA 팀을 잃어버린 샬럿 주민들은 "우리의 NBA 팀을 돌려줘" 라고 징징댔고, 결국 NBA 사무국이 서른 번째 팀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팀의 연고지를 샬럿으로 못박으면서 팀이 생기게 되었다.
팀의 특징은 초대 구단주가 사상 최초의 흑인 구단주였다는 점. 그리고 예전에는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이니[4], 이 전통은 이어져 오는 셈이다. 샬럿 주민들도 새 팀을 맞으면서 과거 호네츠가 떠나는 한 원인이었던 새 구장에 대한 건립 약속을 지켜서 2005년 새 구장을 지어줬다.
샬럿에 위치했던 최초의 프로농구팀은 ABA의 캐롤라이나 쿠거스(1969~1974)다. [5]
캐롤라이나 쿠거스 | |
Carolina Cougars |
2. 역사
2.1. 1기 호네츠
샬럿 호네츠 |
Charlotte Hornets |
1988/89 ~ 2001/02 |
호네츠의 원년 시즌 당시를 다룬 하이라이트 비디오 (1989). 팀의 창단 과정과 당시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은 전통의 농구 라이벌 UNC[6]와 듀크[7], NC 스테잇[8], 웨이크 포레스트[9] 등 4대 천왕이 밀집할 정도로 농구 열기가 좋은 곳[10][11]인데 정작 NBA 팀은 없었다. 다만 ABA가 존속했던 1969년에 휴스턴 매버릭스가 그린스보로로 연고이전해 '캐롤라이나 쿠거스'로 바꿔 활동했으나, 1974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전했다.
이에 착안한 향토 자선사업가 조지 쉰은 NBA 팀을 창단하고자 노력했고, 몇몇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팀 유치를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1985년 NBA 프랜차이즈 확장 정책에서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마이애미, 올랜도와 공동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986년 11월에 팀명 공모전을 열어 '스피리츠'로 하려 했으나, 1987년 4월 1일 창단 발표 후 6월에 팀명을 '호네츠'로 결정했다. 1988년에 신설구장 샬럿 콜로세움을 홈구장으로 하여 팀이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 운영부사장에 샘 루소, 단장에 덴버 너기츠 단장을 10년간 지낸 칼 시어(Carl Scheer, 1936~2019), 감독은 베테랑 지도자 딕 하터(1930~2012), 코치는 에드 배저와 진 리틀스로 했고, 선수는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조연이던 커트 램비스, 160cm짜리 최단신 선수 먹시 보그스, 리키 그린, 로버트 리드, 델 커리, 렉스 챕맨, 얼 큐어튼, 그렉 카이트, 켈리 트리퓨카 등이었다.[12]
창단 초기에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선 NBA팀이라는 점 때문에 제법 인기를 모았으며, 팀도 나름 괜찮은 전력을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하위권을 전전해 오다가 1990년에 전 덴버 너기츠 코치 앨런 브리스토우(Alan Bristow)가 부사장 겸 단장으로 들어와 팀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부임 첫 해에는 드래프트에서 전체 5위로 일리노이대 출신에 운동능력이 뛰어난 슈팅가드 켄달 길을 뽑은 후, 1991년에는 감독까지 맡아 UNLV 출신인 래리 존슨을 드래프트 1위로 영입하고 나서 정규시즌에서 처음으로 30승을 돌파했다.
199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위로 알론조 모닝을 뽑아 기존 멤버인 보그스, 델 커리와 융합되어 팀 전력은 점차 상승했다. 브리스토우 감독은 덴버에서 배운 런앤건 포메이션과 올 코트 프레스를 팀에 이식시킨 후 화끈한 공격 농구를 선보여 1992/93 시즌 때 득점률 2위를 찍으며 44승 38패를 달성, 마침내 창단 5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버드-맥헤일-패리시가 포진한 전통의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4전 3승으로 이겨 파란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마스코트 인형과 유니폼이 시카고 불스보다 더 많이 팔리는 기현상을 보여줬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매 해마다 팀의 득점력은 나아지기는 했으나, 스피디한 공격 중심 플레이로 일관한 탓에 슛 성공률이 낮아져 실점만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었다.
1993/94 시즌 때 켄달 길이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떠나고, 알론조 모닝과 래리 존슨이 부상을 당하자 41승 41패에 그쳐 플레이오프는 못 갔다. 그나마 커리가 올해의 식스맨 상을 받은 게 위안이었다. 1994/95 시즌에는 모닝-존슨이 건강을 회복해 50승 32패로 플옵에서 시카고 불스와 맞붙었는데, 당시 마이클 조던이 야구하다 막 돌아온 터라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팀은 불스에게 1승 3패로 무너졌다.
당시 팀은 매 시즌 20-10을 해주는 엘리트 센터 알론조 모닝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 했고, 홈구장 앞에 무려 동상까지 세워주면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95-96시즌을 앞두고 존슨이 모닝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자, 두 선수가 격렬히 싸웠으나 구단은 결국 존슨을 택했다. 이에 모닝은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트레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로 갔고,[13] 존슨도 등 부상이 심해져 1996년에 뉴욕 닉스로 떠났다.
대신 비교적 전력을 공백을 빠르게 메운 편이었는데, 전년도에 모닝과 맞바꾼 히트의 1옵션이자 3점슛 달인인 글렌 라이스를 축으로 한 짜임새 있는 농구로 변신했고, 1996년에 존슨과 맞바꾼 앤서니 메이슨, LA 레이커스에서 온 블라디 디박 등 기량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팀 역사상 최초로 1996/97 및 1997/98 시즌 두 차례에 걸쳐 정규시즌 50승을 연속으로 기록했고, 1997년 올스타전 때 라이스가 팀 선수로서 최초로 MVP를 땄다.
2000/01 시즌에는 메이슨과 에디 존스를 마이애미 히트에 내주는 대신, 터프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자말 매쉬번과 P.J. 브라운을 사오며 배런 데이비스, 엘든 캠벨, 데이빗 웨슬리 등과 짝을 이루어 조직력있는 농구를 보여줬으나, 그 이전인 2000년 1월에 바비 필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배런 데이비스의 체중이 오르는가 하면, 매쉬번도 결장을 많이 해서 팀은 플레이오프급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호네츠의 문제는 팀 전력에 있지 않았다. 꾸준히 팀을 갈아 엎으면서도 매번 일정 이상 전력은 만들어 냈지만, 정작 그들의 적은 외부에 있었다. 지역 사회에서 덕망이 높았던 조지 쉰 구단주가 1999년에 2년 전부터 치어리더와 사업담당 등 여직원 2명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실토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초반에는 쉰의 주장이 완고했으나, 이후 피해 여성들이 차례로 입을 열면서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했다. 그는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이미지 하락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조지 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고, 2001년에는 시 당국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새로운 구장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같은 시기 NHL 팀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 NFL 팀 캐롤라이나 팬서스까지 생기면서 즐길 거리가 늘어나 흥행에서 열세가 겹치는 등으로 인해 새 구장 건설도 어려워지고, 데이비드 스턴 총재마저도 팀을 팔라고 종용할 정도였다. 마침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지분의 49%를 사들이려다 쉰 구단주에게 거부당해 팬들의 분노가 더 커져서 마지막 시즌인 2001/02 시즌 기준으로 평균 관중이 11,312명에 그쳤다. 자신들에 대한 분위기가 썩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한 호네츠는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단행해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되었다. 그러나 샬럿의 농구 열기 자체가 죽은 건 아니어서, 결국 10년이 지나기 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2.2. 밥캣츠 시절
샬럿 밥캣츠 |
Charlotte Bobcats |
2003년에 케이블채널 'BET[14]' 창업주 로버트 L. 존슨이 마이클 조던과 래퍼 Nelly 등 투자자들을 모아 샬럿에 NBA 팀을 다시 만들기로 하여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창단을 승인받았고, 2004년에 6개월 간의 공모전을 통해 팀명을 '들고양이'를 의미하는 '밥캣츠'로 정했으며, "활력 넘치고 용맹하며 열심히 일하자"는 의미로 팀 로고 역시 날카롭게 만들었다.
존슨 구단주는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덴버 너기츠, 워싱턴 위저즈에서 감독을 지낸 바 있는 베테랑 지도자 버니 비커스태프를 초대 단장 겸 감독으로 모셨고, 선수진은 코리 알렉산더, 에메카 오카포, 'G-포스' 제럴드 월러스, 말릭 앨런, 키스 보건스, 프리모즈 브레젝, 카림 러시, 멜빈 엘리 등으로 짰다.
그러나 성적은 전형적인 신생팀의 한계를 못 벗어난 약체였고, 팀 컬러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중계 때마다 작전타임에 임하는 선수들보다 조던 구단주가 카메라에 많이 비치는가 하면, 나이 40대 넘은 구단주가 현역 선수들을 이기는 동영상도 인터넷에 나돌 정도이다.
초창기엔 여느 신생팀들처럼 부진한 나날을 보내다 2007년에 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부단장 로드 히긴스가 단장으로 부임했고, 구장을 샬럿 콜로세움에서 타임워너 케이블 아레나로 이전했다. 2008년에 야인이던 명장 래리 브라운을 모셔다가 올스타 포워드 제럴드 월러스를 앞세워 2009-10 시즌에 팀 역사상 첫 위닝 시즌(44승 38패)과 PO 진출을 이룩했다. 그러나 PO에서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에게 0:4 떡실신. 그리고 브라운 감독이 떠나고, 이듬해에 월러스도 리빌딩을 이유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트레이드시키면서 다시 긴 리빌딩에 들어갔다.
오히려 앞에서도 언급한 그 분이 구단주라는 점이 더 큰 화제거리고, 밥캣츠 시절을 기억하는 농구 팬들은 이 팀에 어느 선수가 있는지는 잘 몰라도 조던이 구단주라는 사실은 안다. 2004년 창단 시부터 주주였다가 2010년부터 대주주 로버트 존슨 등으로부터 지분을 사서 단독 구단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던은 팀을 구하지 못했다. 마사장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인 콰미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드래프트 삽질이 밥캐츠에서도 재현되었고, 신인들이나 중견급 선수나 하나같이 헤맸다.
2011년 오프시즌 때 조던 구단주는 히긴스 단장을 운영부문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단장 리치 초(Rich Cho)[15]를 선임해 자신만의 리빌딩을 시도하려 했으나, 2011/12 시즌 들어 팀은 NBA 역사상 최악의 팀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파업으로 인한 직장 폐쇄로 66경기만 치러진 2011-12 시즌에서 7승 59패라는 희대의 성적을 기록, 0.106의 승률로 NBA 역대 단일 시즌 최저 승률 기록 경신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16][17][18] 이미 언론에서는 2012년 NCAA 토너먼트 우승팀 켄터키 대학교와 붙을 경우, 샬럿이 진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조던도 열이 잔뜩 받았는지 이대로라면 팀 팔거라고 협박했다.
이 팀이 재건에 성공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드래프트 1순위를 뽑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높은 확률은 가지고도 2순위가 되었다. 2012년 드래프트가 인재가 많다고 해도 1위 유망주인 앤서니 데이비스와 2위 그룹간의 격차가 매우 컸기 때문에 사실상 리빌딩 시간은 최소 반년 이상 길어졌다고 봐야 한다.
결국, 2012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 켄터키 대학 출신의 스몰포워드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를 골랐으나[19], 2012-13 시즌의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시즌 내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 탈꼴찌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2012년 11월 27일에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50점차까지 벌어지며 떡실신당했고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2012-13 시즌도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에 조금씩 승을 챙겼고 같은 최하위 팀인 올랜도가 연패를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꼴찌를 면했다.
2.2.1. 2013-14 시즌
2014 드래프트 대어들을 위해 로스터를 약화시키면서 탱킹을 노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으나 구단주님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반대 노선을 걷는다고 선언, 유타에서 공격력이 좋은 센터 알 제퍼슨을 영입하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작년 전체 2픽이었던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와 올해 4픽이었던 코디 젤러는 아직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었지만 알젭은 동부 컨퍼런스 유일의 20득점-10리바운드 빅맨으로 활약하고 2011년 드래프티인 켐바 워커가 잘 성장해줌과 동시에 수비에 총력을 기울여 승점자판기 신세에서 탈출, 43승 39패로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그러나 상대는 시즌 전적 0승 4패에 사우스비치에 머물고 있는 큰 재능에게 61점을 허용했던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가 빅 3를 결성한 이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완벽한 천적이었다.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팀의 핵심인 알 제퍼슨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플옵 진출 팀들중 유일하게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 탈락 후 밥캣츠 홈페이지 대문.
2.3. 2기 호네츠: 켐바 워커의 시대
2013 시즌 이후부터 원조였던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자, 이 팀이 과거의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샬럿 호네츠가 훨씬 인지도가 높은게 원인.[20] 구단주 마이클 조던도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NBA 구단주 전체 회의에서 호네츠 이름 사용이 허가되어, 2014-15 시즌부터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으로 시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호네츠의 프랜차이즈였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협의를 통해 현 호네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를 가져가고,[21] 원래 호네츠 프랜차이즈였던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의 역사만을 가져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개족보가 될 뻔한 관계를 어느 정도 교통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알리는 샬럿 호네츠 트위터2.3.1. 2014-15 시즌
2014년 드래프트 순위 추첨식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픽을 차지하면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9픽으로 밀려났는데, 이 픽은 2012년 벤 고든과 코리 메거티 트레이드 당시 8픽까지라면 디트로이트가 그대로 쓰지만 9픽 이하부터는 샬럿이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샬럿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2014년 드래프트에서 9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거저 얻은 9번픽으로 최소 8픽 안, 매체에 따라서는 5픽 안쪽으로도 예상했던 인사이더 노아 본레를 뽑으면서 2014 드래프트 최고의 승자로 거듭나게 되었다.[23]가드 포지션의 보강이 필요했기에 유타 재즈의 제한적 FA 고든 헤이워드에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맥시멈을[24] 질러서 욕을 먹었는데 헤이워드를 놓치기 싫었던 유타가 울며 겨자먹기로 샬럿의 제안에 매치하면서[25]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시 등 대형 FA들에게 가려 관심밖이었던 준척급 FA들이 너도나도 맥시멈을 부르면서 에어컨 리그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3년 $27.5M 이라는 싼 가격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젊은 슈팅가드 랜스 스티븐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팬덤에선 남의 팀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알짜영입을 한 마갈량을 찬양하는 분위기.
야심차게 시작한 2014-15 시즌이었지만 첫 20경기 성적은 5승 15패로 상당히 실망스럽다. 켐바 워커와 랜스 스티븐슨이 둘 다 볼을 가지고 플레이해야 하는 선수라 모아놓고 보니 그다지 좋지 않은 조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외곽슈팅과 볼배급능력이 좋았던 조시 맥로버츠의 이탈 때문에 알젭의 위력이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국 플레이오프권에는 들어갈거라는 시즌 전 예상하고는 달리 33승 49패로 동부 11위에 그치고 말았다.
2.3.2. 2015-16 시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랜스 스티븐슨을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드래프트 9픽으로는 위스콘신 대학교의 4학년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를 선택했다.[26] 그리고 포틀랜드의 주전 스몰포워드 니콜라스 바툼과 썬더의 벤치 멤버였던 제레미 램을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FA가 된 제레미 린을 영입했다.개막 전부터 MKG가 어깨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을 당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슈팅가드로 전업에 성공한 바툼과 벤치멤버인 제레미 콤비의 선전에 힘입어 동부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가는 듯 했지만 주포 알젭의 부상이 길어지면서 12월과 1월에 접어들면서 연패가 길어져 10위 밖으로 내려앉아버렸다.
그나마 2월 시점에서 호재인것은 시즌아웃인줄 알았던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2월에 복귀했다는 것과 부상 전력이었던 알 제퍼슨, 코디 젤러등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 복귀후 선전으로 5할을 맞춰 플레이오프 가시권에 다시 들었는데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시즌 아웃되었다. 다시 부상 악재로 고생하게된 셈.
골든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샬럿 호네츠의 레전드이자 스테픈 커리의 아버지인 델 커리[27]를 위해 Dell Curry's Night 행사를 열어 그의 팀을 위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스테판 커리는 아버지의 행사로 들뜬 샬럿을 초토화 시키면서 골든스테이트의 연승을 이어나갔다.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 마이클 조던은 이 행사를 계기로 델 커리의 호네츠 구단내에서의 비중을 점점 늘려갈 생각인 듯 하다. 국내 농구팬들은 마사장이 스테픈 커리를 포섭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아닌가라며 반농담조로 추측하는 중.
3월 5일까지 좋은 성적으로 팀순위가 6위까지 올라갔다!! 다만 9위 시카고와 경기차가 2.5경기차 이기에 안심하기엔 이르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8승 34패. 동부에서 3~6번시드 다툼을 하던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 애틀란타 호크스가 모두 똑같은 성적을 거두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타이브레이커에서 밀려 6번시드가 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3번시드 마이애미 히트. 상대전적은 동률이지만 마이애미가 디비전 리더자격으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간다.
원정 1,2차전을 압도당하며 플레이오프 연패기록이 12연패로 늘어났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부터 신예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의 기용, 제레미 린이 잘해주면서 내리 3,4,5차전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6차전 홈에서 끝낼 분위기였다. 하지만 부상을 달고 뛰던 니콜라스 바툼이 6차전 경기 도중 다시 부상이 악화되어 경기를 전부 뛸수 없었고, 켐바 워커와 알 제퍼슨이 잘해줬지만 제레미 린이 부진에 빠졌으며 드웨인 웨이드의 클러치 샷이 연속으로 작렬하는 바람에 7차전 원정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7차전에서 완패하며 아쉽게 2라운드 진출에 대한 꿈을 접어야했다.
이 경기에서 드웨인 웨이드는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오프 블록 기록을 그의 눈 앞에서 갱신했고, 7차전 도중 조던이 깊게 화가난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오프시즌에는 니콜라스 바툼과 5년 1억 2000만 달러 재계약을 맺었고, 제레미 린과 알 제퍼슨이 각각 브루클린 네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한다.
2.3.3. 2016-17 시즌
켐바가 완전히 올스타급 포인트가드로 성장했고 전반적인 조율을 담당하는 바툼과 눈에 띄는 선수는 없어도 실속있는 프론트코트 조합, 새크라멘토에서 죽을 썼지만 샬럿에 와서 반등한 마르코 벨리넬리 등 안정감있는 전력으로 2016년까지 19승 15패를 기록했다. 린과 알젭의 공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모습.그러나 최근 13경기에서는 7연패와 5연패를 포함해 고작 1승 12패에 그치고, 원정에서는 최근 12연패를 당하는 등 현재 성적은 24승 33패. 2017년 성적은 고작 5승 19패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최근 모습으로만 보면 브루클린 못지 않은 2017년 최악의 팀 중 하나다. 빅맨 코디 젤러와 마일스 플럼리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빅맨진은 전멸. 캠바 워커의 분전 만이 빛나고 있지만, 이전에 샬럿을 대표하는 칭호였던 "4쿼터 안방 극장"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결국 올해도 창단 후 최초로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시즌 최종성적은 36승 46패로 동부 11위를 차지했다.
2.3.4. 2017-18 시즌
드와이트 하워드를 데려왔으나 시즌 절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성적은 이번에도 중하위권을 전전하는 중. 15-16 시즌의 선전을 전후해 맺은 베테랑들과의 재계약이 악성계약으로 변했으며, 특히 니콜라스 바툼은 너무나도 빠르게 기량이 떡락하면서 팀에 거대한 짐덩이가 되었다. 에이스인 켐바 워커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트레이드 블록에 올리며 판을 다시 짤 의향도 보였으나 실패했고, 리치 조 단장은 프랜차이즈 최고 스타 켐바를 푸대접한 것에 대한 욕만 더럽게 먹었다.켐바를 제외하면 미흡한 팀 전력, 베테랑들이 포진한 팀인데도 형편없던 클러치 상황에서의 집중력, 스티브 클리포드 감독의 보수적인 선수 기용, 무리한 재계약으로 전력 유지를 꾀했던 리치 조 단장의 실패 등 총체적인 실패였던 시즌이었다. 하워드는 개인의 스탯만 따지자면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여전히 본인 위주의 게임을 했고 이타적인 팀플레이에서 미흡함을 드러냈다. 특히 샬럿은 켐바를 위한 스크린 세팅이 공격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팀이기에 그런 결점은 더욱 뼈아프게 작용했다.
최종 성적은 작년과 똑같은 36승 46패.
2.3.5. 2018-19 시즌
결국 2018년 5월 9일 스티븐 클리포드 감독과 결별한 후 제임스 보레고 前 샌안토니오 스퍼스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다. 신임 단장으로는 과거 레이커스를 이끌었던 미치 컵책이 전격 선임되었다.저니맨이 되어버린 하워드는 1시즌만에 워싱턴으로 떠났고, 샌안토니오에서 토니 파커를 데려왔다. 켐바 워커는 트레이드 소문이 많았는데 팀에 남았다.
10월 17일 홈 개막전에서 클래식 코트+클래식 져지를 착용하고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도 112 : 113으로 패했다. 마지막에 니콜라스 바툼이 오픈 3점슛을 놓친 것이 꽤나 아쉬울 듯.
10월 19일 올랜도 매직 원정에서 120 : 88로 무려 32점차 대승을 거뒀다! 1쿼터부터 몰아붙이더니 결국 4쿼터는 무난한 가비지 타임으로 마무리.
10월 20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30점 가까이 가져갔던 리드를 추월당하는 추한 경기력을 보이기도 했으나 켐바 워커의 하드캐리로 재역전에 성공, 결국 113 : 112로 승리를 거뒀다. 켐바 워커가 이 경기로 통산 10000득점을 달성한 것은 덤.
10월 22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127 : 106으로 대패했다, 패배도 패배지만 니콜라스 바툼의 부진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점점 높아지는 중.
켐바가 득점왕급 폭발력을 선보이며 대활약하고 있지만, 그를 도와줄만한 2옵션 득점원의 부재가 뼈아프다.
12월 2일 기준, 11승 11패로 5할 승률을 기록중인데, 5할이 넘어가면 연패하고 5할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연승을 달리며 어떻게든 5할을 딱 맞추는 기행을 보여주고 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에 말릭 몽크+만기계약선수+1라운드 지명권으로 마크 가솔을 데려온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결국 마크 가솔은 토론토 랩터스로 가버렸다. 빅맨의 영입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였는데 다들 아쉽다는 평.[28]
2월 11일, 애틀란타에서 웨이버 공시된 쉘빈 맥을 데려왔다. 전반기 성적은 27승 30패로 동부 7위.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 팀이 부진에 빠지고, 시즌 막판에는 서부 원정 3연전에서 전패하며 사실상 플레이오프행이 좌절되나 싶었지만, 이후 잔여경기를 연승하며 시즌 최종전까지 동부 9위로 플레이오프행 가능성을 이어갔다. 최종전에서 8위 디트로이트가 패배하고 샬럿이 홈에서 올랜도에게 승리하면 디트로이트와의 상대전적이 우월한 샬럿이 8위를 차지하게 되지만 디트로이트의 상대가 전체 꼴찌 뉴욕인지라 쉽지 않은 상황.
아니나다를까 동시간대에 펼쳐진 최종전에서 뉴욕이 디트로이트에게 홈에서 시종일관 끌려다니다 115-89로 떡발렸고, 이에 샬럿도 의욕을 잃은 것인지 올랜도에게 122-114로 패배하며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었다.
2.4. 리빌딩
2.4.1. 2019-20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12픽으로 파워포워드 PJ 워싱턴을 지명했다. "무난하게 잘 뽑았다는 반응"과 "또 켄터키 출신 망픽 아니냐?" 라며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극히 갈리고 있다. 더 실링이 높은 유망주에게 도박을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명문 대학팀 출신에, 좋은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는 최근 샬럿의 드래프트 철학과 부합하는 지명이다.6월 30일 켐바 워커가 보스턴 셀틱스와 계약하겠다고 통보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며 샬럿 팬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제시 금액은 슈퍼 맥스는 커녕 맥스[29]조차도 안됐다고 한다, 물론 스몰 마켓에 속하는 구단의 특성상 슈퍼 맥스까지는 무리였어도 구단에 남은 유일한 프랜차이즈 스타한테 맥스 계약조차 안 준 건 말도 안된다는게 샬럿 팬들의 반응.
그 외에도 지난 시즌 2옵션으로 활약한 제레미 램, 시즌 막판 부활의 여지를 보였던 프랭크 카민스키가 좋은 조건으로 각각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피닉스 선즈로 FA 이적했다. 토니 파커는 은퇴. 이전에 비해 전력이 확연히 약화된 셈이다.
켐바의 대체자로 보스턴 셀틱스에서 활약한 가드 테리 로지어를 3년 57M의 금액으로 영입했다. 로지어는 셀틱스의 17-18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대활약을 펼쳤으나, 전반적인 활약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만큼 오버페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FA 시장 최악의 계약이라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향후 2시즌간은 탱킹 전력이기에 로지어의 활약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는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관점. 다만 로지어 역시 준수한 수비력과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이고, 컵책이 새롭게 팀을 리빌딩해 가는 과정에서 어울리는 영입이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로지어는 코트 위에서는 1옵션, 코트 밖에서는 라커룸 리더(마빈 윌리엄스와 함께)의 역할을 맡을 예정.
0-82 시즌을 달성할 유력후보라던 세간의 평가와 달리, 5할승률도 찍어보는 등 생각보다 순항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작년 드래프트 2라운더인 디본테 그레이엄의 MIP급 활약이 돋보이는 중.
- 1월 26일 기준으로 8연패와 함께 12위까지 떨어져있다. 다시 탱킹 레이스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중. 이후 올랜도 버블에도 초대받지못하며 23승 42패, 최종순위 10위를 기록했다.
한편 드래프트 추첨에서는 예상 밖 행운이 터지며 3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라멜로 볼과 제임스 와이즈먼 중 누구를 지명할지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중.
그리고 라멜로 볼을 지명했다. 앞서 1라운드 2픽을 가지고 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픽다운 없이 그대로 지명권을 행사해 와이즈먼을 선택한 탓에 고민할거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후, 옵트아웃을 행사하고 FA가 된 고든 헤이워드와 4년 계약을 맺었다. 2013년 알 제퍼슨 이후 구단 첫 FA 영입.
2.4.2. 2020-21 시즌
초반에는 2승 5패로 부진하면서 역시나 했지만, FA 고든 헤이워드와 신인 라멜로 볼의 활약으로 4연승의 상승 궤도를 타기 시작했다.2월 27일 기준 으로 라멜로 볼과 고든 헤이워드가 팀에 거의 완벽히 녹아들면서 팀 조직력이 꽤 괜찮아졌고 그외 선수들도 제몫을 해주고 팀도 순항중이다. 특히 저번 크리스 폴이 건재한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원정에서 신승을 거둔것으로 경쟁력이 있다는것을 증명.
17승 18패로 동부 7위로 전반기를 마감하면서 플레이오프를 가시권에 두게 되었다.
시즌 전 하위권으로 분류되었으나 라멜로 볼 - 로지어 - 헤이워드 - 워싱턴 - 비욤보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나름 괜찮은 시너지 효과를 보이며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즌 도중 라멜로 볼이 부상을 당하더니 4월 3일 인디애나와의 경기에서 헤이워드마저 부상을 당하게 되어 큰 위기에 놓였다.
결국 8위로 곤두박질치며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피하기 위해 얻어야하는 순위 6위에 있는 보스턴 셀틱스와의 승차도 꽤나 벌어졌다. 바로 뒤에서 승차 1경기 차의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쫓아오고 있고, 최근 10경기 전적이 9승 1패인 워싱턴 위저즈가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나마 편하게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할 수 있게끔 8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끝내 마지막 경기에서 워싱턴에 패배하며 8위를 뺐겼을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경기에 승리함에 10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플레이-인 토너먼트가 도입되어 샬럿도 기회가 생겼으나 정규시즌 막바지에 5연패 타격을 입은 샬럿 입장에서 인디애나를 잡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러나 결국 인디애나와의 9-10위 대결에서 144-117로 27점이나 차이가 나는 처참한 스코어로 패배하면서 탈락하게 되었다.
불안했던 말벌의 비행은 워싱턴, 인디애나에 의해 결국 실패했다.
정규시즌 종료이후 라멜로 볼이 신인왕을 수상했다.
2.4.3. 2021-22시즌
드래프트로 제임스 부크나이트,카이 존스(to Knicks),JT 토르(To Pistons), 스코티 루이스를 선정했다. 이외로 라멜로 볼의 작은 형 리안젤로가 샬럿에 입단했다. 그러나 이후 리안젤로는 트레이닝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동부에서는 6~8위를 다툴 것이라는 예상과 별개로 시즌 개막 이후에 인디애나-클리블랜드-브루클린을 모두 잡아내며 3연승을 기록하면서 심상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득점력이 굉장히 좋으며 그만큼 실점도 많이 하는 젊은 팀의 모습.
NBA를 덮친 코로나 프로토콜의 연발로 전력을 풀로 가동하는 경기가 적지만 공격력은 누가 나와도 괜찮고 수비는 누가 나와도 안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딱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고든 헤이워드가 부상으로 장기간 아웃되자 가뜩이나 빅맨이 없어서인지 공격은 죽어라하는데 수비가 마구 뚫려서 패배하는 경기가 늘어났고 어느덧 7연패로 9위까지 밀려나자 버논 캐리, 이쉬 스미스와 2라운드픽으로 워싱턴 위저즈에서 노스캐롤라이나 홈타운 선수인 몬트레즈 해럴을 데려왔다. 일단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빅맨을 구한터라 좋은 트레이드로 평가받지만 클리퍼스-위저즈에서 연이어 라커룸 이슈를 일으킨 선수이고, 샬럿은 젊은 선수들밖에 없고 주장인 헤이워드는 코트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해럴이 더욱 깽판을 칠 가능성도 있다. 현역에서 물러났어도 무서운 거로는 여전히 TOP인 마사장이 있는지라 걱정이 없다는 의견도 있고, 마사장 휘하에서도 라커룸 이슈를 일으키면 진짜 또라이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의견도 있다.
해럴 영입 후 첫 경기인 디트로이트전에서 3쿼터 중반에 100득점을 돌파하면서 141점을 냈다. 해럴이 오니 골 밑 공격이 꽤 편해졌다.
아이재아 토마스와 10일 계약했다. 수비를 버리고 공격에 올인하는 팀 다운 무브. 이 후 10일 계약을 한 번 더 한 후에 잔여시즌 경기를 모두 뛰는 것으로 연장계약했다.
플인권에는 머무르면서 진출이 유력하다. 다만 수비가 워낙 허술해서 상위권팀들이 조금만 빡겜을 해도 술술 실점하는게 단점. 아무래도 이번 시즌도 플인이 한계일 듯 싶다.
43승 39패, 동부 10위로 시즌을 마쳤는데 승률이 5할을 훌쩍 넘었다. 서부에서 이 성적이면 8위가 가능했다는 점을 볼 때 오랜만에 찾아온 동고서저에 피해를 본 셈.
완전히 소속팀을 말아먹은 러셀 웨스트브룩의 트레이드 대상팀으로 갑자기 기사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초조해진 레이커스 측에서 흘린 루머라고 추측된다.
많은 이들의 예상 그대로 플인 9-10위 결정전에서 애틀랜타에게 29점차 가비지 대패를 당하면서 가장 먼저 짐을 싸는 팀이 되었다. 브리지스가 퇴장하는 도중에 퇴장에 환호하는 관객에게 마우스피스를 던지다가 옆에 있던 어린이 관객이 마우스피스에 맞아 6천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2.4.4. 2022-23시즌
시즌 시작 전부터 영 좋지 않다. 당초 골든스테이트의 코치인 케니 엣킨슨 코치와 4년 계약으로 구두 합의를 했었지만 엣킨슨이 이 계약을 파기하고 골든스테이트에 잔류를 선언하면서 시즌 전부터 구상이 붕 떴고 결국 전전임 감독인 스티브 클리퍼드가 선임됐다. 문제는, 클리퍼드가 현재 샬럿의 성향과 맞지 않다는 점과 또 다른 최종 후보였던 마이크 댄토니와 테리 스토츠를 내치고 클리퍼드를 선임했다는 점이다.국내 언론인 점프볼에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 마이클 조던을 까는 기사를 작성했다.
여기에 6월 29일에는 마일스 브리지스가 부인을 폭행해 가정폭력으로 인한 중범죄로 기소됐다 보석으로 풀려났단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날인 6월 30일에는 부인인 미셸 존슨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해 그의 폭행을 폭로했다. 폭행의 정도와 가정폭력이라는 혐의를 감안하면 장기간의 출장 정지가 포함된 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샬럿 측은 FA 신분이었던 브리지스를 그냥 내보내 버렸다. 뭐 맥스 계약 이야기도 나와서 붙잡는 게 어려웠겠지만 여하튼 샬럿 입장에선 상당히 우울한 에어컨 리그를 보내는 중이다. 라멜로는 계속해서 브리지스와 대화는 나누고 있는 듯 하다. QO도 철회한지라 브리지스는 FA로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딱히 영입 소식도 없는 와중에 라바 볼의 아들 중에서 유일하게 NBA에 진출을 못했던 차남 리안젤로 볼과 1년 비보장 계약을 채결했다. 예전에도 비시즌에는 계속 샬럿 호네츠 근처에서 맴돌던 선수였던지라 결국 진출을 하게 되었다. 데니스 스미스 주니어와도 계약했다.
브리지스 사건으로 구단이 멘탈이 나간 듯 하며, 무너진 수비를 보강하기 위한 영입을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겨우 플인권까지는 팀을 끌어올렸으나 이번 시즌은 그만큼의 모습도 보여주기 어려울 전망.
그리고 프리시즌 동안 플럼리, 라멜로도 부상을 당했다보니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 그리고 그 예상대로 거의 최하위권을 달리고 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클리퍼스의 레지 잭슨+2라운드 픽과 플럼리를 교환하고 레지 잭슨을 바이아웃했다. 결국 커리어 하이를 찍던 플럼리를 2라운드 픽과 바꾼 셈.
이후에는 플럼리의 트레이드로 출전시간이 확보된 마크 윌리엄스가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플레이오프 막차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구성되던 팀이 마일스 브리지스의 가정폭력 사태로 어이없이 다시 무너져버린 것에 회의감을 느꼈는지 마이클 조던 구단주가 적극적으로 구단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구단주로서 조던의 능력이 선수시절만큼이 아니어서 꾸준히 팀을 팔라는 얘기를 들어왔고, 병적인 경쟁심리를 가진 그가 은퇴하고서 이렇게 팀을 운영하며 고통받는 모습에 나이도 있으니 이제 쉬면 어떻겠느냐며 골수팬들도 안타까워하던 상황이라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
주목할만한 점은 없던 시즌이었으나 시즌 막판 댈러스를 원정-홈 2연전에서 모두 잡아내면서 멸망시키며 돈치치가 언해피를 띄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이클 조던이 호네츠를 매각했다. 다만 2023-24 비시즌 FA와 2023 드래프트까지는 팀에서 업무를 하고, 그 후에 다음 구단주에게 양도된다는 듯 하다.
2.4.5. 2023-24 시즌
5월 17일 드래프트 순위결정식에서 전체 2픽을 얻었다. 그런데 1픽을 얻지 못해 위로받는 분위기이다. 전체 2픽을 얻은 횟수가 이번으로 4번째인데 당시 1순위 픽이 샤킬 오닐, 드와이트 하워드, 앤서니 데이비스였고 샬럿은 알론조 모닝, 에메카 오카포, 마이클 길크리스트를 뽑았기 때문이다.[30] 2023년 드래프트에서는 빅터 웸반야마 대신에 스쿳 헨더슨이 유력했지만 마이클 조던 구단주는 브랜든 밀러를 픽했다.이 외에도 마일스 브리지스가 호네츠가 제시한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이면서 호네츠로 복귀했다.
2023년 7월 23일, NBA 이사회에서 투표 결과 29-1로 새 구단주 그룹의 샬럿 호네츠 인수가 승인되었다. 이 날 기준으로 1~2주 내에 인수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 될 예정이다. 참고로,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뉴욕 닉스의 구단주인 제임스 돌란이다. 이후 8월 3일을 끝으로 마이클 조던의 구단주 임기가 공식 종료됐다.
라멜로 볼 - 테리 로지어 - 브랜든 밀러 - 마크 윌리엄스 등 로스터의 구색은 갖추게 되었다. 일단 구단이 멘탈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댈러스에서 프랭크 닐리키나를 영입했다.
FA 시장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P.J. 워싱턴이 3년 4,800만 달러에 잔류했다. 밀러가 데뷔하고 마일스 브리지스가 복귀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금액과 구단이 원하는 금액에 차이가 있었는데 잔류를 선택했다.
오스틴 리버스가 라멜로를 중심으로 사고 치는 젊은 선수들 말고 제대로 된 로스터를 구축하라면서 쓴소리를 날리자 다른 사람도 아닌 브리지스가(...) '이번 시즌 결과를 두고봐라'라면서 리그 퇴출까지 갔었던 주제에 또 분노 조절을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후 카이 존스가 마약에 취한 상태로 인스타그램 동영상을 올렸다는 논란이 일고, 선수단들 사이에서 카이 존스를 언팔하는 등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어 팀에서 내부 처분을 고심하고 있다고 하면서 오스틴 리버스가 1승을 올렸다.
90년대의 짧은 전성기 외에는 화려한 기간이 없던 팀이지만 35주년을 전후하여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챙기려는 듯, G-포스 제럴드 월러스[31]와 배산적 배런 데이비스[32]의 초청이 예정되어 있다.
2.4.6. 2024-25 시즌
3. 현재 선수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788c><tablebgcolor=#00788c> | 샬럿 호네츠 2024-25 시즌 선수단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d1160,#ddd | <colbgcolor=#00788c><colcolor=#fff> 감독 | 찰스 리 | |
코치 | 렉스 월터스 · 말론 가넷 · 밥 베어 · 타이 코빈 · 놈 리차드슨 · 브루스 크루저 · 닉 프리드먼 | ||
가드 | 1 라멜로 볼 · 8 닉 스미스 Jr. · 21 아이재아 웡TW · 22 바실리예 미치치 · 25 KJ 심슨TW · 23 트레 맨 · 30 세스 커리 | ||
가드-포워드 | 3 데이콴 제프리스 · 10 조쉬 그린 | ||
포워드 | 0 마일스 브리지스 · 2 그랜트 윌리엄스 · 11 코디 마틴 · 24 브랜든 밀러 · 31 티잔 살룬 | ||
포워드-센터 | 14 무사 디아바테TW · 67 타지 깁슨 | ||
센터 | 4 닉 리처즈 · 5 마크 윌리엄스 | ||
* TW : 투웨이 계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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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구결번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778b> | 샬럿 호네츠 영구 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ccac00> No. 13 |
<rowcolor=#ffffff> 바비 필스 (Bobby Phills) |
샬럿 호네츠 영구결번 |
No. 13 바비 필스 |
- 6. 빌 러셀 (Bill Russell): 전 구단 영구결번.
- 13. 바비 필스 (Bobby Phils) (1997-2000) : 전 구단 영구결번인 빌 러셀을 제외하면 현재로선 호네츠의 유일한 영구결번. 샬럿 호네츠의 캡틴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사망.[33] 불과 3년 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더십과 활발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으로 모두의 귀감을 받는 그야말로 진정한 캡틴이었다. 사후 영구결번됐으며, "Michael, WHO?"
구단주라는 도발로도 유명하다. 또한 대학 시절에는 에이버리 존슨과 선후배 사이였다.
필스의 영구결번 배너는 2002년 호네츠가 뉴올리언스로 떠나면서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영구결번이 되어 2002년 연고이전 시즌에 영구결번된 피트 마라비치와 함께 스무디 킹 센터에 걸렸는데, 2014년 새로 창단 된 샬럿 밥캣츠가 호네츠의 이름을 다시 쓰게 되고, 1988~2002년의 역사를 뉴올리언스 호네츠 구단이 샬럿 호네츠에게 돌려주면서 필스의 배너도 다시 샬럿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5. 기록
샬럿 호네츠(1988~2002 역사 포함)/밥캣츠를 거쳐간 선수 중에 NBA 50주년 TOP 50선수로는 로버트 패리시가 선정되었고, NBA 75주년 선수로는 로버트 패리시[34], 알론조 모닝[35], 감독으로 래리 브라운이 선정되었다.5.1. 명예의 전당자
샬럿 호네츠의 명예의 전당자들 | |||||
선수 | |||||
이름 | 소속년도 | 헌액년도 | |||
로버트 패리시 | 1994년-1996년 | 2013년 | |||
블라디 디박[36] | 1996년-1998년 | 2019년 | |||
알론조 모닝 | 1992년-1995년 | 2014년 | |||
감독 | |||||
이름 | 소속년도 | 헌액년도 | |||
데이브 코웬스 | 1996년-1999년 | 1991년 | |||
래리 브라운 | 2008년-2010년 | 2002년 |
호네츠의 30주년 기념팀 10인
1. 알론조 모닝 (1992~1995)
2. 델 커리 (1988~1998)
3. 켐바 워커 (2011~2019)[37]
4. 래리 존슨 (1991~1996)
5. 먹시 보그스 (1988~1997)
6. 글렌 라이스 (1995~1999)
7. 배런 데이비스 (1999~2002)[38]
8. 제럴드 월러스 (2004~2011)[39]
9. 켄달 길 (1990~1993, 1995~1996)
10. 알 제퍼슨 (2013~2016)[40]
5.2. 올스타전
샬럿 호네츠 기록 | |
올스타전 출전선수 | |
1992-1993 | 래리 존슨 |
1993-1994 | 알론조 모닝 |
1994-1995 | 래리 존슨, 알론조 모닝 |
1995-1996 | 글렌 라이스 |
1996-1997 MVP | |
1997-1998 | |
1999-2000 | 에디 존스 |
2001-2002 | 배런 데이비스 |
2009-2010 | 제럴드 월러스 |
2016-2017 | 켐바 워커 |
2017-2018 | |
2018-2019 샬럿 개최 | |
2021-2022 | 라멜로 볼 |
- 1991년 MVP 올스타전은 샬럿에서 개최되었으나 호네츠 선수가 올스타에 진출하지 못 함.
- 배런 데이비스는 '샬럿 호네츠'와 '뉴올리언스 호네츠'에서 올스타전에 진출한 유일한 선수.
- 제럴드 월러스는 유일하게 밥캣츠 이름으로 올스타전 진출한 선수.
샬럿 호네츠 기록 | ||
프랜차이즈 리더 | ||
출장경기수 | 델 커리 | 701 |
출장시간 | 켐바 워커 | 20607 |
득점 | 켐바 워커 | 12009 |
자유투 | 켐바 워커 | 2398 |
리바운드 | 에메카 오카포 | 3516 |
어시스트 | 먹시 보그스 | 5557 |
스틸 | 먹시 보그스 | 1067 |
블록 | 알론조 모닝 | 684 |
턴오버 | 켐바 워커 | 1317 |
- 득점 TOP 10
2. 델 커리 9839
3. 제럴드 월레스 7437
4. 래리 존슨 7405
5. 글렌 라이스 5651
6. 먹시 보그스 5531
7. 레이몬드 펠튼 5311
8. 데이비드 웨슬리 5241
9. 제럴드 핸더슨 4701
10. 에메카 오카포 4630
6. 역대 올스타 출장 선수
샬럿 호네츠의 올스타전 출전 선수들 | |||||
선수 | 출전 년도 | ||||
래리 존슨 | 1993년 NBA 올스타전 | ||||
알론조 모닝 | 1994년 NBA 올스타전 | ||||
래리 존슨 알론조 모닝 | 1995년 NBA 올스타전 | ||||
글렌 라이스 | 1996년 NBA 올스타전 | ||||
글렌 라이스 | 1997년 NBA 올스타전 | ||||
글렌 라이스 | 1998년 NBA 올스타전 | ||||
에디 존스 | 2000년 NBA 올스타전 | ||||
배런 데이비스[41] | 2002년 NBA 올스타전 | ||||
제럴드 월러스[42] | 2010년 NBA 올스타전 | ||||
켐바 워커 | 2017년 NBA 올스타전 | ||||
켐바 워커 | 2018년 NBA 올스타전 | ||||
켐바 워커 | 2019년 NBA 올스타전 | ||||
라멜로 볼 | 2022년 NBA 올스타전 |
7. 마스코트
휴고 (1988~2002, 2014~) | 루퍼스 (2004~2014) |
1988년 창단 당시부터 사용된 마스코트는 청록색의 벌 휴고로.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큰 틀은 변함없었다. 2002년 샬럿 호네츠가 뉴올리언스로 이전하면서 휴고도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마스코트로 10년 동안 재적하다가 샬럿 밥캣츠가 호네츠로 이름을 바꾸면서 다시 샬럿으로 돌아왔다.
밥캣츠 시절의 마스코트는 루퍼스.
2023 드래프트에서 스쿳 헨더슨을 거르고 브랜든 밀러를 뽑자 휴고가 좌절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G리그 그린스브로 스웜의 마스코트는 캡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서전트 스웜(Sergeant Swarm)이 있었으나 현재는 스워미(Swarmy)라는 털이 복슬복슬한 꿀벌이다.
8. 시티 에디션
2017-2018 | 2018-2019 | 2019-2020 | 2020-2021 | 2021-2022 | 2022-2023 |
BUZZ CITY | BUZZ CITY 2 | BEE HIVE[43] | BUZZ CITY MINT[44] | 믹스 테이프[45] | GOLD RUSH[46] |
9. 기타
-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의 팀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들과 인연이 있는 팀이다. 마이클 조던이 2010년부터 13년 동안 대주주로 있었고,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패트릭 유잉이 코치로 재직했으며, 과거 전신 호네츠 시절 코비 브라이언트를 드래프트에서 선택했었고[47],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 델 커리가 오래도록 뛴 팀이기도 하다. [48][49]
- 크리스마스에 경기를 하지 못한 유일한 팀이다.
- 팀보다 구단주가 더 유명한 팀으로 유명하다. 신인 선수가 샬럿에 드래프트로 뽑히면 마이클 조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꼭 받는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1순위로 뽑힌 말릭 몽크[50]는 자신이 낮은 순번으로 드래프트된 실망보다 조던이 있는 팀으로 드래프트되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며 싱글벙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부터 나이키에서 NBA 스폰서쉽 계약을 맺으면서 유니폼에 나이키 로고가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샬럿은 구단주 빨로 나이키 로고가 아닌 조던의 상징인 점프맨 로고를 새겼다. 그러나 조던의 구단주로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선수에 대한 안목이 부족해서 좋은 픽을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밥캐츠 시절부터 2020시즌까지도 좋은 신인선수를 뽑지 못하거나, 좋은 선수를 뽑아놓고도 빠르게 트레이드해서 재미를 못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1] 그래도 2021년 신인왕인 라멜로 볼을 뽑으면서 좋은 드래프트를 했다. 라멜로 볼의 활약에 힘입어 처참한 인기를 자랑하는 과거와 달리 점차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 사이 좋던 마이클 조던과 찰스 바클리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바클리가 조던의 호네츠 경영이 엉망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인 것으로 유명하다.
- 뭐니뭐니 해도 샬럿 호네츠의 명물은 지역 캐스터 에릭 콜린스(Eric Collins). 내일이 없는 수준의 엄청난 텐션으로 콜을 부른다. 특히 팀 내 최고 덩커 마일스 브릿지스의 토마호크 덩크가 터질때마다 목청이 찢어져라 울부짖는게 백미.
주 수혜자로는 앞서 언급한 마일스 브릿지스, 테리 로지어, 라멜로 볼. 이 캐스터의 미친 텐션 덕분에 샬럿 유입팬은 물론 딱히 샬럿 팬은 아니어도 샬럿의 중계진에 호감을 표하는 팬들이 많다. 과장 좀 보태 현 NBA의 간판 캐스터인 마이크 브린과 케빈 할렌의 뒤를 잇는 차세대 간판 캐스터라고 부를만한 인기를 모으는 중.
인기에 힘입어 콜린스 본인도 ESPN과 인터뷰를 가졌었다.
인기에 힘입어 콜린스 본인도 ESPN과 인터뷰를 가졌었다.
- 2024년,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경기를 보러온 13세 소년 관객에게 게임기를 줬다가, 카메라가 꺼지자 게임기을 빼앗아서 유니폼을 대신 줘서 논란이 됐다. 결국 사과하고는 게임기를 다시 줬다고. #
10. 역대 성적
| 우승 |
| 준우승 |
| 플레이오프 진출 |
플레이오프 탈락 |
연도[52] | 정규시즌 순위[53] | 플레이오프 | 컨퍼런스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승률 |
1988-89 | 6위/6팀 | 탈락 | 동부 컨퍼런스 | 샬럿 호네츠 | 82 | 20 | 62 | .244 |
1989-90 | 7위/7팀 | 탈락 | 82 | 19 | 63 | .232 | ||
1990-91 | 7위/7팀 | 탈락 | 82 | 26 | 56 | .317 | ||
1991-92 | 7위/7팀 | 탈락 | 82 | 31 | 51 | .378 | ||
1992-93 | 3위/7팀 | 2라운드 진출 | 82 | 44 | 38 | .537 | ||
1993-94 | 5위/7팀 | 탈락 | 82 | 41 | 41 | .500 | ||
1994-95 | 2위/7팀 | 1라운드 진출 | 82 | 50 | 32 | .610 | ||
1995-96 | 6위/8팀 | 탈락 | 82 | 41 | 41 | .500 | ||
1996-97 | 4위/8팀 | 1라운드 진출 | 82 | 54 | 28 | .659 | ||
1997-98 | 3위/8팀 | 2라운드 진출 | 82 | 51 | 31 | .622 | ||
1998-99 | 5위/8팀 | 탈락 | 50 | 26 | 24 | .520 | ||
1999-00 | 2위/8팀 | 1라운드 진출 | 82 | 49 | 33 | .598 | ||
2000-01 | 3위/8팀 | 2라운드 진출 | 82 | 46 | 36 | .561 | ||
2001-02 | 2위/8팀 | 2라운드 진출 | 82 | 44 | 38 | .537 | ||
2004-05 | 4위/5팀 | 탈락 | 샬럿 밥캣츠 | 82 | 18 | 64 | .220 | |
2005-06 | 4위/5팀 | 탈락 | 82 | 26 | 56 | .317 | ||
2006-07 | 4위/5팀 | 탈락 | 82 | 33 | 49 | .402 | ||
2007-08 | 4위/5팀 | 탈락 | 82 | 32 | 50 | .390 | ||
2008-09 | 4위/5팀 | 탈락 | 82 | 35 | 47 | .427 | ||
2009-10 | 4위/5팀 | 1라운드 진출 | 82 | 44 | 38 | .537 | ||
2010-11 | 4위/5팀 | 탈락 | 82 | 34 | 48 | .415 | ||
2011-12 | 5위/5팀 | 탈락 | 66 | 7 | 59 | .106 | ||
2012-13 | 4위/5팀 | 탈락 | 82 | 21 | 61 | .256 | ||
2013-14 | 3위/5팀 | 1라운드 진출 | 82 | 43 | 39 | .524 | ||
2014-15 | 4위/5팀 | 탈락 | 샬럿 호네츠 | 82 | 33 | 49 | .402 | |
2015-16 | 6위/15팀 | 1라운드 진출 | 82 | 48 | 34 | .585 | ||
2016-17 | 11위/15팀 | 탈락 | 82 | 36 | 46 | .439 | ||
2017-18 | 10위/15팀 | 탈락 | 82 | 36 | 46 | .439 | ||
2018-19 | 9위/15팀 | 탈락 | 82 | 39 | 43 | .476 | ||
2019-20 | 10위/15팀 | 탈락 | 65 | 23 | 42 | .354 | ||
2020-21 | 10위/15팀 | 플레이 인 토너먼트 진출[54] | 72 | 33 | 39 | .458 | ||
2021-22 | 10위/15팀 | 플레이 인 토너먼트 진출 | 82 | 43 | 39 | .524 | ||
2022-23 | 14위/15팀 | 탈락 | 82 | 27 | 55 | .329 | ||
2023-24 | 13위/15팀 | 탈락 | 82 | 21 | 61 | .256 | ||
<rowcolor=#373a3c> NBA 통산 34시즌 | V0 | 2713 | 1174 | 1539 | .433 |
11. G 리그 산하팀
그린즈브로 스웜 | |
Greensboro Swarm | |
설립년도 | 2016년([age(2016-01-01)]주년) |
역사 | 그린즈브로 스웜 (2016~) |
연고지 |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브로 |
컨퍼런스 | 동부 컨퍼런스 |
디비전 |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
홈구장 | 그린스브로 콜리시엄 파빌리온 |
12. 참고 자료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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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이나 팬서스 | 샬럿 호네츠 |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 | |
MLS | NWSL | MLR | |
샬럿 FC |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 | 안템 럭비 캐롤라이나 |
[1] 2명의 공동 구단주 및 소수 지분의 구단주들로 구성된다. 릭 슈날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소액투자자 출신이고 게이브 플롯킨은 정식 인수 이전에도 샬럿의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2]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구단주는 이 두 사람이며 슈날과 플롯킨이 5년 주기로 구단주직을 행사할 예정이다. 이 두명 이외에도 투자자 댄 선드하임, 래퍼 제이 콜, 컨트리 가수 에릭 처치가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구단주인 마이클 조던 역시 소수 지분을 남겨뒀다.[3] 원래 노스캐롤라이나는 농구열기가 대단한 곳이다. 현재는 NBA가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인기가 많은 농구리그이지만 NBA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은 80년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부터이다. 그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대학농구였으며, 현재도 NCAA1부리그는 NBA에 버금가는 인기리그이고, 토너먼트 한정으론 NBA플레이오프조차 뛰어넘는다. 어쨌거나 이런 대학농구에서 전통의 강호이자 라이벌들이 바로 더럼에 위치한 듀크 대학의 블루 데빌스, 롤리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울프팩, 마지막으로 마이클 조던의 모교로 유명한 채플 힐즈의 노스캐롤라이나 타 힐스였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는 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된 구조가 아니었고 가장 큰 도시인 샬럿도 인구가 백만명이 안되는데다가 대학농구가 워낙 꽉 잡고 있어 프로구단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기에 농구열기에 비해 비교적 프로구단이 늦게 생겨난 편이다.[4] 여담으로 마이클 조던은 태어나긴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지만 도중에 노스캐롤라이나에 이주하여 대학까지 나왔고, 고조부부터 부친까지 모두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살아온 내력이 있는 토박이이다. 물론 그가 자란 윌밍턴은 주 동부해안쪽이라 샬럿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선수 시절 주로 시카고에서 거주했으나 현재 조던은 시카고와 유타에 있는 집 두채는 팔려고 내놓은 상태고, 샬럿 부근에 있는 저택과 샬럿 내부의 고급 아파트 한채, 그리고 플로리다에 골프 코스 주변에 있는 집 한채에서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5] 쿠거스는 휴스턴 매버릭스(1967~1969) -> 캐롤라이나 쿠거스(1969~1974) ->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 (1974~1976)의 순서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해체된 팀. 명장 래리 브라운이 감독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2011-12시즌에 NBA구단들이 ABA리그 구단들의 클래식 유니폼을 입은 적이 있는데 호네츠(당시 밥캣츠)도 쿠거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6] 구단주 조던이 나온 대학교이다.[7] 엘튼 브랜드, 루올 뎅 등의 모교.[8] '스카이워커' 데이비드 톰슨, 썰 베일리 등의 모교.[9] 팀 던컨과 크리스 폴이 나온 대학교이다.[10] 단, 이들 대학은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주도 롤리와 채플힐, 더럼, 윈스턴-세일럼 등에 위치해 있다. 샬럿에도 UNC 샬럿 캠퍼스 농구부(샬럿 포티나이너스)가 있으며 1977년에는 세드릭 맥스웰을 축으로 NCAA 전국대회 4강까지 든 이력이 있으나, 인지도는 그 대학들보다 떨어진다.[11] 2000년대 후반부터 데이비슨 칼리지도 스테판 커리를 배출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갔다.[12] 트리퓨카는 1959년 뉴저지 주 글렌릿지에서 태어나 노터데임 대학교를 나왔으며, 198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2번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입단했다. 80년대 당시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꽤나 두각을 나타내는 A급 선수' 중 하나였는데, 득점력이 뛰어났던 그는 아직 우승권으로 도약하기 전 피스톤즈에서 주 득점원 중 하나로 활약하며 두 차례 올스타에 선정된 좋은 선수였다. 그는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샬럿의 원년 시즌에 램비스 등과 더불어 몇 안되는 베테랑으로서, 22.6점을 올려주며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다. 다만 선수생명이 전반적으로 짧던 80년대 선수라 30대에 접어든 89-90시즌부터 급격한 기량저하를 보이며 샬럿에서 세 시즌만 뛰고 NBA 무대를 떠났고, 1991년 프랑스 리모주 CSP를 끝으로 농구화를 벗었다. 여담이지만 폴란드계 백인이던 그는 수염을 기르고 다녔을 당시 프레디 머큐리와 닮은 외모로도 꽤 유명했다.[13] 94-95시즌을 앞두고 샬럿은 팀 건물 벽에 향후 팀의 미래가 될 거라 생각한 모닝-존슨-보그스의 벽화를 큼지막하게 그려놨다. 그런데 한 시즌만에 모닝이 떠나버린 것. 결국 그 위로 다시 그릴 선수를 정하기 위해 팬투표를 했는데 정해진 것은 선수가 아닌 팀 마스코트. "마스코트가 팀을 떠날리는 없으니까"란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 10년도 못되어 도시 자체를 팀과 함께 떠나버렸다.샬럿 주민들은 어처구니 없게 가슴에 커다란 대못이 두개나 박혔다(…)[14] Black Entertainment Television의 준말이다.[15] NBA 최초의 아시안계 출신 단장으로, 1968년 미얀마 양곤에서 태어나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젊은 시절 워싱턴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0년부터 5년간 보잉 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페퍼다인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마치고 시애틀 슈퍼소닉스 인턴으로 입사했다. 이곳에서 1997년 농구 업무부장을 지내다가 2000년부터 8년간 부단장을 지냈고,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재창단 때 초대 부단장이었다. 이름을 봐선 언뜻 재미교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얀마계 이민 2세다.[16] 종전 기록은 1972-73 시즌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9승 73패 승률 0.110[17] 역대 최저승수는 1947-48 시즌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가 기록한 6승으로 11-12 시즌 샬럿도 간발의 차이로 이 기록만큼은 깨지 못했다. 참고로 이시즌 프로비던스는 6승 42패로 승률은 0.125였다.[18] 오히려 단축시즌이 아니었으면 승률 1할 아래로 내려갔을 뻔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나올 정도였다.[19] 3순위 브래들리 빌/6순위 데미안 릴라드/9순위 안드레 드러먼드/35순위 드레이먼드 그린/39순위 크리스 미들턴[20] 단순히 인지도 외에 '샬럿 호네츠'에 대한 팬들의 향수가 크게 작용했다. NBA처럼 오직 팬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프로스포츠 리그에선 팬들의 의향이 굉장히 중시되며, 당연히 팬들은 스포츠 팀의 역사를 소중히 한다. 일례로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로 재창단하면서 '슈퍼소닉스'란 팀의 뿌리는 현재 NBA에서 사라졌지만, 소닉스의 역사와 브랜드는 사라지지 않고 시애틀 시로 연계되었으며 향후 시애틀에 창단하는 팀에게 이를 물려줄 권리 역시 시애틀 시에 있다. 마찬가지로 샬럿 시민들 역시 (비록 우승권팀까진 아니었지만) 십년 넘게 인기팀이었던 호네츠에 대한 향수가 깊었기 때문에 어차피 기존의 호네츠였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이름을 버린 마당에 호네츠란 브랜드를 승계한 것. 실제로 현지의 NBA팬들은 (선수 위주로 팬덤이 주로 형성되는 국내와 달리) 프랜차이즈 위주로 팬덤이 형성되고 몇대를 걸쳐서 한 팀을 응원하는 경우도 꽤 많은데 기존 호네츠 팬들은 응원하던 팀이 증발해버린 꼴이다. 이런 상황이니 호네츠가 부활하길 원했던 것.[21] 따라서 밥캣츠 창단도 신생창단이 아니라 재가입으로 인정되며, 구 호네츠도 현 호네츠의 전신으로 인정된다.[22] 이 세 팀이 있는 NHL과 MLB는 해체 후 재창단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며, 동명팀의 이전 역사는 순서대로 애리조나 카이오츠, 뉴욕 양키스, 미네소타 트윈스가 갖고 있다.[23] 하지만 노아 본레는 1시즌만에 니콜라 바툼과 트레이드되었고, 진정한 승자는 41순위로 니콜라 요키치를 뽑은 덴버 너기츠였다.[24] NBA는 연차별로 연봉 한도가 정해져 있는데 각 연차별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연봉액을 맥시멈이라 칭한다.[25] 제한적 FA는 타 구단이 제시한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현 소속 구단에서 매치하면 현 소속팀에 남는 제도이다.[26] 13순위 데빈 부커[27] 전국적인 스타는 되지 못했지만 선수변동이 심했던 90년대의 샬럿에서 가장 오랫동안 뛰었고, 팀 내 득점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현재도 샬럿에 머무르면서 중계 등을 통해 구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28] 더군다나 AD 영입에 실패했던 레이커스처럼 팀 분위기도 깨졌다.[29] 4년 1억 4100만 달러, 실제로 보스턴과도 이 금액으로 계약 예정.[30] 알론조 모닝은 샬럿에서 이름을 날렸으나 재계약 불발 때문에 마이애미에서 대성했다. 오카포는 좋은 실력을 보여주며 나름 대접받긴 했으나 저니맨이 되었고 유망주시절 기대치에 비하면 당시 재창단한 샬럿의 사정 때문에 평가절하당했기에 대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길크리스트는 프랜차이즈 선수로 오래 뛰었지만 루키 시즌 이외에는 칭찬받지 못한 선수였다.[31] 샬럿 밥캣츠 시절의 팀의 거의 유일한 스타였다.[32] 샬럿과 더불어 뉴올리언스 연고이전 직후의 호네츠(현재의 펠리컨스)에서도 활약했지만 더 이상 호네츠에서 뛰기 싫어서 태업을 했었기 때문에 뉴올리언스에서 챙겨주기 애매하다.[33] 이게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이 교통사고가 하필이면 불법 자동차 레이싱(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그 자동차 경주를 생각하면 된다.)을 하다가 사망하게 된것이다. 원래 필스는 사생활이 깨끗한 선수로써 이런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당시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주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공동주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웨슬리가 레이싱을 제안했을 때 안타깝게도 필스는 수락하고 말았고, 결국 이 일로 필스에게 자동차 경주를 제안했던 웨슬리 본인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34] 74위. 다만 대표팀은 보스턴 셀틱스다.[35] 69위. 샬럿 시절도 전성기였으나 최전성기는 마이애미 히트로 인식된다.[36] 2010년 FIBA(국제농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가 2019년에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도 뒤늦게 헌액되었다.[37] 밥캣츠+호네츠[38] 뉴올리언스 호네츠 (아직 호네츠 역사를 소유하고 있을 당시) 시절까지 포함하면 (1999~2005)[39] 선정 선수 중에 유일하게 밥캣츠 유니폼만 입은 선수.[40] 밥캣츠+호네츠[41] 베런 데이비스는 과거 샬럿 호네츠가 뉴올리언스로 연고이전했을 때 2004년 한 번 더 올스타전에 출장했었다.[42] 밥캣츠의 이름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한 유일한 선수[43] 옆구리에 벌집 문양을 넣었다.[44] 민트색과 더불어 황금색의 세로선은 캐롤라이나주의 골드 러쉬를 의미한다.[45] 팀의 역대 유니폼에서 특징들을 한 가지씩 가져와서 유니폼을 재디자인했다. 세로선 중의 한 색깔이 진한 녹색인 것은 90년대 유니폼의 특징.[46] 캐롤라이나주의 골드 러시를 상징화했다. CLT는 샬럿시의 항공코드[47] 드래프트 이후 바로 LA 레이커스의 디박과 트레이드 되었다. 코비가 호네츠의 모자를 쓴 드래프트 당시의 사진들은 남아있다.[48] 델 커리가 스테판 커리가 어린 시절 샬럿에서 오래 머물러서 스테판 커리의 고향은 보통 샬럿으로 표기된다.[49] 23-24 시즌 2월 8일 데드라인에 델 커리의 아들 중 하나인 세스 커리가 샬럿 호네츠로 트레이드가 되면서 아버지가 뛰었던 팀에 뛰게 됐다.[50] 가드 포지션으로 시즌 중반 현재 평균 5.5점 1.4어시스트 1.0리바운드로 벤치멤버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51] 그렇다고 트레이드를 잘하거나, FA영입을 잘 한 것도 아니다.[52] NBA 참가 연도부터 기재.[53]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54] 플레이 인 토너먼트는 정식 플레이오프에 포함되지 않는다.
[6] 구단주 조던이 나온 대학교이다.[7] 엘튼 브랜드, 루올 뎅 등의 모교.[8] '스카이워커' 데이비드 톰슨, 썰 베일리 등의 모교.[9] 팀 던컨과 크리스 폴이 나온 대학교이다.[10] 단, 이들 대학은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주도 롤리와 채플힐, 더럼, 윈스턴-세일럼 등에 위치해 있다. 샬럿에도 UNC 샬럿 캠퍼스 농구부(샬럿 포티나이너스)가 있으며 1977년에는 세드릭 맥스웰을 축으로 NCAA 전국대회 4강까지 든 이력이 있으나, 인지도는 그 대학들보다 떨어진다.[11] 2000년대 후반부터 데이비슨 칼리지도 스테판 커리를 배출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갔다.[12] 트리퓨카는 1959년 뉴저지 주 글렌릿지에서 태어나 노터데임 대학교를 나왔으며, 198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2번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입단했다. 80년대 당시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꽤나 두각을 나타내는 A급 선수' 중 하나였는데, 득점력이 뛰어났던 그는 아직 우승권으로 도약하기 전 피스톤즈에서 주 득점원 중 하나로 활약하며 두 차례 올스타에 선정된 좋은 선수였다. 그는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샬럿의 원년 시즌에 램비스 등과 더불어 몇 안되는 베테랑으로서, 22.6점을 올려주며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다. 다만 선수생명이 전반적으로 짧던 80년대 선수라 30대에 접어든 89-90시즌부터 급격한 기량저하를 보이며 샬럿에서 세 시즌만 뛰고 NBA 무대를 떠났고, 1991년 프랑스 리모주 CSP를 끝으로 농구화를 벗었다. 여담이지만 폴란드계 백인이던 그는 수염을 기르고 다녔을 당시 프레디 머큐리와 닮은 외모로도 꽤 유명했다.[13] 94-95시즌을 앞두고 샬럿은 팀 건물 벽에 향후 팀의 미래가 될 거라 생각한 모닝-존슨-보그스의 벽화를 큼지막하게 그려놨다. 그런데 한 시즌만에 모닝이 떠나버린 것. 결국 그 위로 다시 그릴 선수를 정하기 위해 팬투표를 했는데 정해진 것은 선수가 아닌 팀 마스코트. "마스코트가 팀을 떠날리는 없으니까"란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 10년도 못되어 도시 자체를 팀과 함께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