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후궁 [[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ackground: #ffd400; border-radius: 3px; font-size: .8em"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이자춘|{{{#!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400; font-size: .7em"]] [[덕종(조선)|{{{#!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400; font-size: .7em"]] | |||
}}}}}}}}}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정종의 후궁 숙의 지씨 | 淑儀 池氏 | |
본관 | 충주(忠州) |
부모 | 부친 - 지윤(池奫, ? ~ 1377) 모친 - 순흥 안씨 |
형제자매 | |
배우자 | 정종 |
자녀 | |
봉작 | 숙의(淑儀) |
능묘 | 황해도 개풍군 광덕산 |
[clearfix]
1. 개요
조선 정종의 후궁. 아버지는 고려 말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지윤(池奫)이며, 어머니는 순흥 안씨이다.지윤의 세 딸은 모두 태조 이성계의 자식들과 혼인하였는데, 맏딸은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 이방우와 혼인하여 삼한국대부인이 되었고, 둘째 딸과 막내딸이 정종의 후궁이 되었다. 바로 성빈 지씨와 숙의 지씨이다.[2]
슬하에 의평군 이원생, 선성군 이무생, 임성군 이호생과 함양옹주를 낳아 3남 1녀를 두었다.
2. 생애
숙의 지씨가 언제 어떻게 정종의 후궁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한 것에 비해 그녀는 정종의 자식들 15남 8녀 중 서장자 의평군을 낳았다는 점, 그리고 가장 먼저 봉작된 점으로 보아 일찍 정종과 혼인하여 자식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효령군(孝寧君)ㆍ충녕군(忠寧君)을 진봉(進封)하여 대군(大君)으로 삼고, 상왕(上王)의 궁인(宮人)의 아들 이원생(李元生)ㆍ이군생(李群生)을 봉하여 부정윤(副正尹)으로 삼았다.
《태종실록》 태종 12년 5월 3일
《태종실록》 태종 12년 5월 3일
1419년(세종 1) 정종이 승하하자 아들 의평군이 섭상주(攝喪主)가 되어 장례를 주관하였다.[3][4]
3. 대중 매체
-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 자세한 것은 숙의 지씨(송경별곡)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