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빨
신치용 감독은 크게 1기와 2기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김세진, 신진식, 신영철, 김상우 등 우수한 선수들이 있었던 슈퍼리그 시기와 몰빵배구(프로배구 초중반~현재)시기로 나뉠 수 있다.1기는 사실상 삼성화재의 역사와도 그 궤를 같이하며, 삼성화재의 스카우트 비판에 대부분의 내용이 다 나와있기 때문에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과정을 단장의 책임으로 돌릴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현장의 총책임은 신치용 감독이며 이런 막장 스카우트 행보는 신치용 감독 본인의 요구와 계획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여튼 이런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 타팀의 선수 영입까지 방해)하는데 성공한 삼성화재는 당연하듯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 누구도 삼성화재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막았던 건 후인정이 있었던 현대자동차였지만 그 후인정도 김세진-신진식 콤비를 넘어서진 못하고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후인정은 숀 루니가 와 뒷받침을 해주면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절 삼성화재에게 무슨 작전이 필요하겠냐며 신치용의 능력을 의심하는 편이 많다.
특히 이것을 심화시킨 것이 바로 국가대표 감독으로 출전한 2000 시드니 올림픽인데, 국내 최강 삼성화재 전력의 대부분을 그대로 데려갔지만 정작 현대캐피탈에서 줄곧 라이트로 쓰던 후인정을 센터로 고집하고, 김세진이 컨디션이 엉망이었는데도 기용을 고집하다가 최하위로 떨어졌고 팀내 내분은 물론 당시 중계팀으로 갔던 이세호와 멱살잡이까지 하는 등 신치용 감독 커리어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가 시드니 올림픽.
상대 | 결과 | 득실 |
유고슬라비아 (금메달) | 2:3패 | 26-24, 20-25, 23-25, 25-19, 8-15 |
러시아 (은메달) | 2:3패 | 22-25, 25-22, 25-20, 27-29, 15-17 |
이탈리아 (동메달) | 0:3패 | 25-27, 23-25, 18-25 |
아르헨티나 (4위) | 1:3패 | 23-25, 25-17, 28-30, 21-25 |
미국 | 3:2승 | 25-20, 25-27, 26-24, 21-25, 15-13 |
다만 결과적으로는 1승 4패로 B조 5위 전체 12팀 중 공동 9위에 그치긴 했으나, B조에 대회 1~4위팀이 몰려 있던 최악의 조편성이었으며 금메달의 유고슬라비아와 은메달의 러시아에게는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는 등 마냥 흑역사라고 하기에는 경기 내용적으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선수빨 논란은 KBO 리그에서 과거 해태왕조를 이끈 김응용 감독이나 현대왕조를 이끈 김재박 감독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두 사람은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를 이끌며 비밀번호를 찍으니 결국 혹독한 재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신치용 감독이 딱히 삼성화재 외의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않는 한 이러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1]
2.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의 선수 선발
대한민국의 스포츠에서 군면제를 받는 대회인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 선수 선발은 당연히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2002년 당시 신치용 감독은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감독을 맡게 되는데 이 때 신치용 감독은 논란의 선수 선발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아래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선수들과 소속팀(당시 기준)이다.- 레프트 - 신진식(삼성화재), 석진욱(삼성화재), 이경수(LG화재)[2]
- 라이트 - 김세진(삼성화재), 장병철(삼성화재)
- 센터 - 김상우(삼성화재), 신선호(삼성화재), 박재한(경기대-삼성화재), 방신봉(현대캐피탈)
- 세터 - 최태웅(삼성화재), 권영민(현대캐피탈)
- 리베로 - 여오현(삼성화재)
12명의 선수 멤버 중 무려 8명이 삼성화재 선수들이다. 그 중에서 박재한은 당시에는 경기대 소속이었지만 졸업 후 삼성화재로 입단이 확정된 상태라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선수가 9명이나 뽑히는 너무나도 편애적인 선발이었다. 게다가 타팀 선수들 선발을 배제하기 위해 이미 병역이 해결된 김세진 김상우 방신봉 등을 집어 넣었다.[3] 이에 따라 삼성화재의 선수들이 대부분 병역특례를 받는 동안 타 팀의 선수들은 공익이나 상무를 가게 되어 전력이 약화되었고,[4] 이것은 실업시절 삼성화재가 자랑하는 77연승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신치용의 태도는 이렇다.
삼성화재의 200승 자축 만찬이 열린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치용 감독은 "내가 삼성화재 감독인 이상 난 구단을 위해 일할 뿐”이라며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리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 우승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우승으로 삼성화재 선수 6명이 병역 혜택을 받았고, 이것은 그 뒤 삼성화재의 연속 우승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아시안게임 상황 자체도 문제인데, 당시 부산 아시안게임은 최고권위 대회인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대회와 일정이 겹쳤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남자선수들의 병역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대한배구협회에서는 국제배구연맹(FIVB)에 세계선수권대회 불참 통보를 해버린 상태였다. 만약 배구협회가 정상적인 마인드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했다면 A팀·B팀으로 나눠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 각각 파견하여 이와 같은 사달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5] 그리고 실제로 같은 아시안게임 참가국인 중국과 일본,카자흐스탄 3개국은 1진을 세계선수권으로 보내고 2진을 아시안 게임으로 보냈다. FIVB는 세계선수권 참가국 전체에 당시 지역예선에 출전한 선수중 9명 이상이 참가한 A대표팀을 보낼 것을 지시했고 아예 불참한 한국은 FIVB 1년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후 대한배구협회의 로비로 간신히 경감되긴 했지만 배구협회의 대표팀 운영이 이런 파행적인 선수선발을 불러온 원인으로 배제되지는 못할 것이다.[6]
3. 대한민국 배구의 파행
2020년대 현재 신치용에 대한 비판은 이 한 마디로 충분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다 못해 회복불능 상태로 퇴행시켜버린 원흉이자 장본인이다.어떤 프로리그 감독이건 1패, 1패가 밥줄의 위협이기 때문에 위기일수록 안전한 선택을 하게 마련인데, 신치용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한국전력이라는 최약체팀에서 오로지 수비와 변칙으로만 살아남던 1960~70년대 아시아식 배구를 감독 은퇴까지 세세한 레파토리만 살짝 바꿔가며 써왔다. 근본적으로 쿠세에 능한 신영철,
슈퍼리그 시기만 해도 김세진, 신진식이라는 국내 최고의 공격수 둘을 데리고 있으며 둘 다 용병급 기량이라 공격 부분에서 쉽게 해소가 되었지만, 그들이 노장이 되고 프로화되어 외국인선수가 들어오면서 흐름이 바뀌었고, 본인의 배구스타일을 바꿀 수 없던 신치용 감독은 결국 용병에게 몰빵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기계적인 해결책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신치용 감독도 용병과의 조합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삼성화재의 첫 용병 레안드로 다 실바의 실패와 더불어, 대체용병이었던 윌리엄 프리디가 선수 본인의 좋은 기량에도 신치용 시스템에 맞지 않아 실패했기 때문. 이때문에 신치용 감독은 "국내리그에선 키 크고 타점 높은 선수가 우선이다."라는 말과 함께 208cm의 레안드로를 데려왔고, 아쉽게 준우승하긴 했지만 다음해 안젤코 추크로 우승을 거두면서 용병에 의한 몰빵 배구라는 삼성화재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말았다(...).
사실 이 몰빵배구는 신치용 감독이 창시한 것도 아니고, 어떤 팀이건 팀이 잘 안풀릴 땐 잘 되는 한명에게 몰빵하는 건 당연한 해결책 중 하나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나 축구의 리오넬 메시처럼 리그 최상급의 에이스가 있는 팀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신치용이 문제가 되는건 슈퍼리그 시절의 삼성화재는 명백히 대학 최고의 선수들을 싹쓸이해 온 스타군단이었음에도 김세진, 신진식에 몰빵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국내 선수들의 발전에 정체가 왔음에도 용병으로 사람만 바꾸어서 강행했던 것이다.
이 시스템 때문에 그의 눈밖에 난 세터들이 피해를 매우 봤는데, 삼성화재의 실업리그 시기에는 전형적인 쿠세형 세터를 중용했기 때문에 1998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고관절 부상으로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한 신영철(現 우리카드 감독)을 플레잉코치라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스카웃해온 뒤 전년도 주전세터 방지섭은 그대로 처박혀버렸고[8] 1998년 성균관대학교 3학년 중퇴자로 입단했던 195cm의 장신세터 신선호는 대학시절 세터로 뛰지 않으면 은퇴하겠다는 강수를 뒀음에도 입단과 동시에 센터로 전환하고 만다. 시대가 바뀌면서 더 이상 쿠세형 세터를 쓸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세터가 수싸움을 이용한 빠른 토스웍이나 현대 배구가 요구하는 빠른 C퀵토스 사방에 뿌리는 스피드 배구를 따르는 게 아니라 용병한테 넣을때까지 닥치고 올려줄 오픈토스 하나만 잘 올리게 개조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한때 최태웅의 후계자였던 유광우는 완전히 대학시절의 현란한 플레이스타일을 잃어버리고 오픈토스를 넣는 기계가 되었다.[9]
물론 삼성화재 경기의 박스스코어를 자세히 보면, 적어도 세트 플레이 상황에선 무작정 몰빵하진 않는다. 리시브가 잘되고 경기가 잘 풀리는 날엔 원래 신치용 본인의 수싸움과 속공, 시간차를 섞어쓰는 예전 시스템을 활용한다. 애초에 제대로 돌아가는 신치용 배구의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데다 전술 요구치가 많아서 타 팀에서 온 선수들이 적응하는게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삼성화재가 계속 우승하면서 드래프트 순위가 낮아지니까 A급 유망주들이 오는 일은 없고, 검증된 주전들만 굴리다보니 노쇠화 이후 신인들이 적응을 못해 도태되니 경기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그래서 더욱 용병에게 몰빵할 일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람의 변화에 따른 세세한 디테일과 레파토리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치용 배구는 40년 전 아시아에서나 통하던 쿠세와 수비 중심의 거북이 배구에서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완전히 세계배구의 흐름에 동떨어진 1980년대~1990년대 거북이 배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팀이 리그를 지배하는 상황이 되어서 8년이나 리그를 독주하는 리그 최강팀이 국가대표는 없는[10] 이상한 국내 최강 팀이 되어버렸고, 2000년부터 V-리그가 출범한 2005년까지 보기에도 심심한 닥치고 수비와 주포 한명 몰빵식 팀으로 한국 배구의 지독한 흥행 암흑기를 겪게된 원인을 제공했다.[11] 이는 현대캐피탈이 김호철과 숀 루니를 앞세워 우승하면서 '삼성화재 = 우승공식'이 깨지면서 팬들의 관심을 다시 끌 때까지 계속되었다. 2014-15 시즌 V-리그의 흥행 약진은 삼성화재가 팀보다 위대한 배선수 때문에 최소한 정규시즌에는 압도적 1위를 못 했다는 점이 흥행에 호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치용식 배구는 삼성화재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세계무대와는 동떨어진 구시대적 배구가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까지 넓게 성행하여 국내 선수들의 기량 정체를 가속화하고 국제경쟁력을 심각하게 퇴보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상당히 크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는 2000 시드니 올림픽 진출 이후 치러진 5번의 올림픽에 전혀 나서지 못한 상황이고, 그간 아시아권에서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이란이 박기원이 감독직을 맡아 스피드 배구를 도입한 이후 2000년대 중후반 아시아 1위를 달성한 이후로는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그 정도가 너무도 처참하여,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이후 아시아권에서도 일본과 중국에 밀려 아시아 2~3위도 보장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다. 당장에 신치용이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던 2010 FIVB 월드리그 조별라운드에서 기록한 12경기 전패 승점 0의 수모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12] 이 때문에 2011년 대표팀 리빌딩 당시, 비록 V-리그에서는 처참히 무너졌지만 이란 대표팀을 아시아 제일로 이끈 박기원을 감독으로 영입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신치용의 애재자 중 하나인 유광우가 국가대표로 차출되지 못하고 매번 한선수가 나갔는지 생각해보자.[13]
2014-15시즌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 1등공신이 세계에서 순위급 공격수인 시몬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배구의 일면을 보여준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인데 현대캐피탈이나 LIG손보, 대한항공 역시 리버맨 아가메즈나 토마스 패트릭 에드가[14], 산체스 같은 공격수 용병에게 주로 몰빵을 해주고 있다.[15] 이러한 행태의 시초인 신치용 감독이 결코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처음에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들여온 이유는 명목상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과 부대끼며 국내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실제 이유는 삼성화재가 매우 압도적이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삼성화재의 협잡질로 인해 다른 팀이 따라잡지 못하므로 일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신치용 감독이 비판을 받는 것은 단순히 몰빵을 해서가 아니라 국제대회 출장정지를 받아가며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 그 상황까지 만든 것의 시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해서 국제경쟁력이 피지컬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란의 선수층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아래는 2014년 세계선수권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뛴 이란대표팀 선수들의 신장이다.
이름 | 포지션/신장 |
마루프 | S, 189cm |
가푸르 | R, 202cm |
골라미 | C, 195cm |
무사비 | C, 203cm |
가에미 | L, 197cm |
미르자잔푸르 | L, 195cm |
자리프 | Li, 165cm |
한국대표팀보다는 피지컬이 좋지만 유럽팀에 비하면 열위다. 특히 이란 주전멤버들은 세선 상대팀들보다 피지컬에서 우위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스피드와 전술을 접목시켜 강팀들을 이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삼성팬들이 외치는 국제경쟁력이 후진 건 국내선수의 피지컬이 딸려서지 몰빵배구의 탓을 하지마라. 삼성의 몰빵배구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귀결이다.라는 주장을 뒤집어 말하자면 한국배구가 망하든 말든 실업시절부터 선수들을 강탈하여 부당이득을 가져간 삼성화재의 추한 자기변명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피지컬에서 우월했던 한국 배구팀이 일본에게 진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4. 쇼트트랙 선수단 퇴촌명령 논란
2019년 6월 17일 쇼트트랙 선수 임효준이 황대현 선수의 바지+팬티를 내린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황대현은 암벽등반을 하는중이라 자신의 엉덩이가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 주변엔 여성선수들까지 있어서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를 기강 해이로 본 신치용 선수촌장은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남자 8명, 여자 8명 등 대표 선수 16명 전원을 한 달간 선수촌에서 쫓아내기로 24일 결정했다.이에 대해서 "가해자만 처벌하면 될것을 왜 피해자를 포함한 주변인물들까지 다 처벌하냐?"라는 식의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신치용은 6월 26일에 입장을 밝혔는데 "이번 징계가 강력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 선수만 징계해도 되지 않냐는 여론도 있지만, 팀은 문화가 중요하다.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으면 팀은 의미가 없고,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된다. 대표팀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판단해 조치했다." 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각 언론들에서 전원 퇴촌의 자세한 내막이 나왔다. 최근 쇼트트랙 대표팀이 남자 선수의 여자 선수 숙소 무단 침입, 무단 외박, 훈련 기간 중 규정 위반 음주, 책임 의식 결여, 지도자 무시, 다른 종목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시끄럽게 웃고 떠들다 항의까지 받는 등 선수촌 내에서 기강을 무너뜨리는 크고 작은 사건을 잇달아 일으킨 적이 있어 그동안 누적된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한 모양새이다.기사1 기사2 기사3 기사4
[1] 사실 김응용-김재박과 신치용의 선수빨은 그 수준이 다르다. 분명 해태왕조와 현대왕조의 선수단이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신치용의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처럼 다른 팀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난 레벨은 절대 아니었다. 또한 리그를 망칠 정도의 마구잡이 스카웃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지역 연고 팜이었고, 해태가 마구잡이로 선수를 사올 만큼 자금이 넉넉한 팀도 아니었지만.[2] 소속만 LG화재고 드래프트 불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실상 무소속.[3] 이 때 가장 피해를 입었던 선수는 한양대 돌풍을 일으켰고 꾸준히 국가대표로도 차출된 LG화재의 라이트 손석범이었다.[4] 이동훈, 윤관열, 손석범, 신경수, 이영택 등[5] 1994년에 이와 똑같은 상황이 있었는데, 당시 대표팀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A팀을, 세계선수권대회에 B팀을 보냈다. 결과는 아시안 게임 동메달, 세계선수권대회 8강. 오히려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이 더 호성적인지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6] 다만 당시 배구팬들도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의 중요성을 알기때문에 이해한다는 분위기이긴 했다.[7] 단, 최태웅의 경우는 최태웅에게는 조금은 억울한 것이, 비록 삼성화재가 2010년 박철우를 FA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에게 넘어가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신치용과의 방향성이 달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태웅이 감독이 된 이후로는 삼성화재 출신임에도 지도자 체계에서 신치용계로는 분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8] 192cm의 장신세터이며 1995-96시즌 성균관대학교 슈퍼리그 4강 때의 주전멤버였는데 신영철에게 밀린 다음해인 1999년부터는 최태웅이 들어왔다. 문제는 1998년 신영철 주전세터인 삼성화재는 김세진, 신진식에게 제대로 된 높이의 토스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신영철의 몸상태와 토스가 엉망이었음에도 신영철을 억지로 기용하는 바람에 슈퍼리그 역사상 경기력이 가장 나쁜 시즌을 보냈다.[9] 허나 유광우의 플레이스타일 전환은 본인의 발목부상 문제가 더 크긴 했다. 똑같은 나잇대에 똑같은 부상을 당해 오픈토스 구질이 맛이 가버린 최태웅만큼 심각했던 수준. 그 때문에 입단 후 초반 두 시즌을 수술 및 재활로 보내야 했고 복귀 후에도 STC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햐 하는 상태다. FA가 된 후에 삼성화재와 재계약한 데에는 이런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10] 2013년에 현실화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2013-14 시즌 뒤에는 사위 박철우가 국가대표로 차출되긴 했지만.[11] 당시 농구대잔치가 프로화가 된 KBL이 겨울철 스포츠 중 최고의 흥행을 달리던 시절이었기도 했다. 삼성화재의 독주는 배구팬들을 농구장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12] 2010 FIVB 월드리그 때 같은 조였던 팀이 브라질, 불가리아, 네덜란드였다. 그 중 하락세에 있던 네덜란드를 뺀 브라질, 불가리아 이 둘을 상대로 승리를 따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지더라도 세트를 최대한 많이 따내고 져야 하는데, 당시 대한민국 팀은 5세트 득/36세트 실(세트득실률 0.139)에 승점 0을 기록하여 이 대회 최하위(16위)를 기록했다. 차등승점제였기 때문에 파이널 세트까지만 갔으면 졌어도 승점 1점은 딸 수 있었는데 풀세트조차 한번을 가지 못한 최악의 성적이었다.[13] 유광우가 심각한 유리발목이라 제대로 뛰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박기원 감독이 스피드배구를 구사하고 장신의 외국인선수들에게 점수를 내려면 그나마 빠른 속도의 토스를 쓰는 한선수가 통하니까 쓰는 것이다. 물론 그 한선수마저도 다른 각국의 세터의 토스의 질과 비교해 보자면 형편없는 건 피차일반이지만...[14] 다만 에드가의 경우는 국내 최고의 레프트 거포 중 한명인 김요한이 있기 때문에 2014-15 시즌 다른 몰빵 용병들에 비해 공격점유율이 40% 언저리로 현격하게 낮아졌다.물론 김요한이 부진하면 그딴거 없다.[15] 한국전력과 우리카드는 비교적 덜한 편이다. 우리카드는 2013-14 시즌에 숀 루니의 부진으로 신영석-최홍석-김정환의 삼각편대가 잘 돌아갔었고, 2014-15 시즌은 기껏 팀을 인수해 놓은 우리금융 쪽에서 또 매각하겠다는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외국인 선수 덕을 못 보고 있다. 한국전력의 경우는 전광인, 서재덕이라는 용병급 토종 공격수가 있어 외국인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타팀에 비해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