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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 Sintra | |||||
<colbgcolor=#0D6938><colcolor=#fff>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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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포르투갈 리스본 지방 리스보아현 | ||||
면적 | 319.23km2 | ||||
인구 | 385,606명[1] | ||||
시간대 | UTC0 (WET) | ||||
링크 | 공식홈페이지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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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국어 | 신트라 문화 경관 |
영어 | Cultural Landscape of Sintra | |
포르투갈어 | Paisagem Cultural de Sintra | |
프랑스어 | Paysage Culturel de Sintra | |
국가·위치 | 포르투갈 리스보아 현 신트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5년 | |
등재기준 | (ii)[2], (iv)[3], (v)[4] | |
지정번호 | 723 |
1. 개요
포르투갈의 도시. 동부로는 리스본이 남부로는 카스카이스가 있다. 신트라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 자치 단체 겸 가장 큰 외국인 거주 지역이다.2. 역사
원래 신트라가 있는 리비에라 강 일대는 투르둘리족이 살았다. 그러나 로마가 히스파니아를 속주로 삼았고 기원전 30년에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가 도시의 지위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로마 쇠락하자 신트라는 고트족들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무어인들이 쳐들어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 세력권에 있었을 때에 리스본 다음으로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기록에 언급되었다. 당시 명칭은 Xintara 또는 Shantara로 적혀져있다. 아 시기인 8세기경 무어성이 지어졌다. 그러나 1093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하고 알폰소 6세가 이 지역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곧 이어 무라비트 왕조가 다시 정복했다. 1109년, 엔히크 드 보르고냐가 재점령을 했으나 1147년 아폰수 1세기 이끄는 레콩키스타가 리스본을 수복하고 나서야 신트라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 1154년, 도시의 지위를 얻었다. 1350년, 흑사병으로 인해 5명의 서기가 사망했다. 도시의 기후 특성상 흑사병으로 인해 피해가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흑사병이 끝나고 신트라는 포르투갈 왕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다. 특히 마누엘 1세는 서늘한 기후와 풍부한 자연환경과 좋은 사냥터 때문에 신트라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1755년, 대지진이 발생해 피해를 입었고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복구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1854년, 리스본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건설 계약이 체결되었고 여러 차례 연기된 이후 1887년 4월 2일에 완공되었다. 그로인해 신트라는 귀족과 백만장자들이 찾는 여름 휴양지로 발전함과 동시에 예술가들에게도 특권적인 장소가 되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들 대부분 신트라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 나치 독일의 패전이 눈에 보이자 비시 프랑스의 총리 피에르 라발이 프랑코 정권 치하의 스페인으로 도주했고 신트라에 저택을 임대 계약을 해 이 곳을 도주할 계획이 있었으나 결국 프랑스로 송환되었다.
3. 관광
리스본 근교에 위치해 당일치기로도 여행이 가능하다. 기차를 타면 40분 안에 신트라에 도착이 가능하다.- 무어인의 성 (Castelo dos Mouros) : 8세기 경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무어인들이 지은 성으로 신트라 산맥 정상에 위치해 신트라 시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 페나 궁전 (Palácio da Pena) : 성모 마리아를 기리던 예배당 위에 세워진 19세기 낭만주의 양식의 성으로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인 아멜리 도를레앙이 망명을 가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 신트라 왕궁 (Palácio Nacional de Sintra) : 8세기 경 무어인들이 지은 성에 포르투갈의 국왕인 후앙 1세와 마누엘 1세가 증개축하였다. 긴 세월에 거쳐 증개축을 하서 무데하르, 고딕, 르네상스, 마누엘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 헤갈레이라 별장 (Quinta da Regaleira) : 19세기에 커피 판매로 큰 돈을 번 브라질 출신 사업가 카르발료 몬테이루가 지은 여름 별장으로 5층 짜리 궁전이기도하다. 원래는 개인 소유였으나 1995년 신트라 시가 인수하였다.
- 카푸초스 수도원 (Convento dos Capuchos)) : 1560년에 만들어진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으로 수도원 내부의 벽과 천장이 코르크 나무 껍질이라서 코르크 수도원이라고도 불린다.
- 쿠엘루즈 궁전 (Palácio de Queluz) : 18세기 주제 1세가 자신의 조카인 마리아 1세의 남편을 위해 지어준 별장으로 현재 포르투갈의 공식 국빈관으로 쓰이고 있다.
- 몬세라트 궁전 (Parque e Palácio de Monserrate) : 1790년 성모 성당이 있던 자리에 영국 상인 제라드 드 비스메가 지은 건물로 내부에 위치한 공원과 2헥타르의 농장이 유명하다.
- 비에스터 궁전 (Palácio Biester) : 리스본 출신의 부유한 극작가 에르네스토 비에스터가 지은 궁전으로 넓게 펼쳐진 이국적인 정원이 유명하다.
- 세테아스 궁전 (Palácio de Seteais) : 1783~1787년 사이 네덜란드 출신 다이아몬드 사업가 다니엘 길미에스터가 지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으로 현재 고급 호텔로 쓰이고 있다.
- 에들라 백작부인의 샬레와 정원 (Chalet e Jardim da Condessa d'Edla) : 포르투갈의 여왕인 마리아 2세의 남편이자 공동 국왕인 페르난두 2세가 자신의 아내가 사망한 후 사랑에 빠진 스위스 태생의 오페라 가수 에들라 백작부인을 위해 지은 궁전이다.
4. 자매 도시
기니비사우 비사우
모로코 아실라
모로코 엘자디다
모잠비크 나마차
모잠비크 베이라
미국 호놀룰루
브라질 페트로폴리스
상투메 프린시페 트린다드
스페인 오비에도
앙골라 로비투
일본 오무라시
카보베르데 노바신트라
쿠바 아바나
프랑스 구생빌
프랑스 퐁텐블로
[1] 2021년 기준.[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