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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7 22:37:44

안나 베소노바

<colbgcolor=#45c08a><colcolor=#ffffff> 안나 베소노바
Ганна Безсонова | Anna Bessonova
파일:안나 베소노바.jpg
본명 안나 볼로디미리우나 베소노바
Ганна Володимирівна Безсонова
Anna Vladimirovna Bessonova
출생 1984년 7월 29일 ([age(1984-07-29)]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
국적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49kg
종목 리듬체조
코치 알비나 데리우기나, 이리나 데리우기나
소속 데리우기나 스쿨
은퇴 2010년
가족 아버지 볼로디미르 베소노프, 어머니 빅토리아 베소노바, 배우자, 슬하 1남(2020년생, [age(2020-11-04)]세)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브콘탁테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평가4. 비판5. 수상 기록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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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며 2번의 올림픽(2004, 2008) 동메달리스트, 2007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이다. 2005 세계선수권에서 전종목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역대 2연속 리듬체조 올림픽 메달리스트 5명 중 유일한 비러시안이다. 선수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신체적 한계 및 국가별로 2명만 대표로 선발된다는 규정 때문에 리듬체조에서 근 10년 간 선수로 활동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베소노바는 10년 간 매트 위에서 여신으로 군림하면서 리듬체조의 역사를 세운 인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전설의 선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베소노바의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 경력은 2007년 단 한 차례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베소노바를 리듬체조계의 레전드 중 하나로 꼽는다. 베소노바만의 극적인 표현력과 뛰어난 예술성, 매트 위에서의 카리스마로 현재까지 회자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다. 빼어난 미모로도 유명해서 역대 리듬체조 선수들 중 최고의 미녀를 꼽으라면 늘 순위권에 오른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우크라이나 체육계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가 우크라이나에서 유명한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볼로디미르 베소노프이다.[1] 어머니인 빅토리아 역시 리듬체조 선수였으며 두 차례 세계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했다. 빅토리아는 선수 시절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다. 베소노바의 첫 리듬체조 코치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파일:안나 베소노바1.jpg
맨 오른쪽이 빅토리아 베소노바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모녀 사이는 정말 좋다. 잠깐씩 보여주는 경기 영상 속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이드 스플릿 턴이나 아치턴 실시는 적절히 무시하자.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있는 체조학교인 데리우기나 스쿨에서 훈련을 받았고,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그 딸인 이리나 데리우기나의 코칭을 받았다. 베소노바의 주니어 시절 루틴들을 보면, 베소노바만의 인상적인 스타일이 그 당시부터 이미 상당 부분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2. 1999년

15살이었던 1999 세계선수권 단체전에 참가하여 동메달을 땄다.

2.3. 2001년

2001 세계선수권에서 알리나 카바예바이리나 차시나가 약물 복용[2]으로 개인종합 메달이 박탈되어 개인종합 5위였던 그녀가 동메달을 받게 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4. 2002년

백조의 호수 음악을 쓴 후프 루틴을 들고 나오는데 이 루틴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 루틴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연기로 베소노바는 우크라이나의 백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아직까지도 베소노바의 대표적인 루틴으로 꼽힌다. 이 루틴이 워낙 평가가 좋았던지라 2004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그러니까 무려 3시즌 동안을 그대로 썼다.

2.5. 2003년

대체로 이 시기를 베소노바의 리즈시절로 보는데 당시 나이가 10대 후반으로 신체적으로 가장 기량이 좋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유럽선수권이나 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종합 우승과 거리가 멀었는데 동시대에 알리나 카바예바이리나 차시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2.6. 2004년

파일:external/farm6.staticflickr.com/5302642480_42c157a221_z.jpg
2004 아테네 올림픽
처음으로 출전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카바예바와 차시나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땄다.

후프는 세 시즌 연속으로 사용한 백조의 호수였고 곤봉도 전 시즌에 사용한 매트릭스 OST였다. 공은 스파르타쿠스라는 음악을 활용해 새로운 루틴을 선보였고 리본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나 시즌 중반에 들어 도로 지난 시즌 루틴을 재탕하였다. 특히 후프는 가끔씩 차시나의 프로그램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안무가 뛰어났는데, 유감스럽게도올림픽 결선에서는 작은 실수를 2번 하였다. 공에서도 약간의 실수가 있었으나 곤봉에선 실수없이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안정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베소노바가 구채점제의 리듬체조를 구사하고 있었음에도 수구를 다루는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걸 확인할 수 있다.(특히 후프와 곤봉의 조작력이 우수하다.) 이 날 경기는 이리나 차시나와 알리나 카바예바 간의 금메달 쟁탈전이 이뤄진 경기였고 금메달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했지, 팬들 입장에서 동메달의 주인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안나 베소노바의 라이벌은 알리야 유수포바밖에 없었고 이미 3점 가량 점수 차가 벌어졌기에 정말 아무런 탈 없이 베소노바가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2.7. 2005년

여러 메이저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에 근접했다가도 번번이 부족한 신체 난도로 발목을 잡혀 개인종합 은메달 내지는 동메달에 머물러야 했다. 조금 이색적이라면 이 시즌 한정으로 백스플릿 피봇을 선보였다. 애티튜드-백스플릿 피봇이라는 컴비네이션 피봇인데 이로써 2005년 리본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피봇들의 향연이었다. 베소노바의 팬이라면 한번쯤 봐볼만 하다. 당시엔 안나가 아직 유연성이나 신체의 힘도 좋았던 시기이니 더욱 시너지효과가 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시즌 이후엔 백스플릿 피봇은 선보이지 않다가 2008년에 록산느의 탱고로 리본 루틴을 선보일 때 다시 등장했다. 물론 시즌 중반에 우크라이나 민요로 루틴을 바꾸면서 없어졌다.

2.8. 2006년

이리나 차시나가 은퇴하고 당시 카바예바는 한 물 간 퇴물이었으니 베소노바로서는 드디어 자기 세상이 오는 줄 알았지만 정작 베라 세시나올가 카프라노바와의 경쟁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거의 셋이서 나눠먹기 식이었다. 줄에서 베소노바가 금메달을 가져간다면 카프라노바가 공과 곤봉에서 금메달을 가져가고 세시나가 리본에서 금메달을 가져가는 식이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보통 리듬체조의 춘추전국시대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만 2명의 러시아 선수들이 다른 시기에 비해 유독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다.[3] 베소노바의 입장에선 이 시기가 금메달을 노려볼만한 최적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빈번히 놓쳤다.

2.9. 2007년

월드컵 시리즈에서 베소노바의 앞을 가로막았던 유일한 선수가 있었으니 이제 막 시니어 국제 무대에 등장했던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였다. 그렇게 이번에도 세계선수권 우승은 물 건너가나 싶었는데, 드디어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이 금메달이 베소노바의 유일한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이 될 것이라고는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 이 대회는 카나예바가 단체전으로 참가해서 둘의 맞다이가 성사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다이빙 점프를 동반한 리스크를 모든 종목에 포함 시켰다. 그리고 후프와 곤봉 루틴이 워낙 잘 뽑은 작품이라 기술배치만 조금 바꿔서 2008년까지 가져갔다.

여담으로 베소노바는 2007 세계선수권 종목별 결선 금메달을 모두 놓쳤다.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올가 카프라노바가 줄과 후프에서 큰 실수를 해서 날려먹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러시아 대모인 이리나 비녜르베라 세시나가 안나 베소노바에게 밀려 2위가 된 것에 격분하여 심판진에게 항의하다 자청해서, 2008년을 끝으로 난도 심판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10. 2008년

각성한 카나예바가 국제 대회에서 무쌍을 펼치더니 2008 유럽선수권에서 베소노바는 카나예바에게 밀려 또 개인종합 은메달에 머물렀다.
파일:예브게니야 카나예바5.jpg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다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물론 이 때도 비화가 있었다. 세계선수권이 당시엔 2년에 한 번 꼴로 주최되었는데 2005년에는 올가 카프라노바, 2007년에는 안나 베소노바가 개인종합에서 우승하면서 팬들의 관심사는 둘 중에 누가 은메달을 차지하느냐였다. 왜니하면 금메달은 누가 봐도 카나예바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예선전에서는 카프라노바가 2위, 베소노바가 3위였다.

그러나 베소노바가 결선에서 컨디션이 좋지 못한 탓인지 첫 졸목인 줄부터 실수를 보이면서 불안하게 시작했다. 줄을 다리에 감아 축회전을 하며 밸런스를 하던 도중 줄을 놓쳐 뒤에 안무를 놓치고 마지막 리스크에선 타이밍이 안 맞아 어정쩡한 포즈로 루틴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종목인 후프에서는 그야말로 위기의 난관에 봉착했는데 바로 마지막에 후프를 던진 후 점프하여 되받고 백스플릿 밸런스를 하는 동작에서 수구 조작을 못했다. 수구 조작이 이뤄지지 않은 밸런스는 난도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그야말로 점수를 날려버린 것이다. 반면 카프라노바는 첫 세션 줄에선 엔딩이 딜레이되면서 음악과 맞추지 못해 감점을 받았지만 후프에선 인생경기를 펼치면서 18.5점이라는 고득점으로 무난히 앞서나가고 있었다.

세 번째 종목인 곤봉부터 대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카프라노바가 첫 밸런스부터 넘어지더니 나중에는 곤봉을 던진 후 캐치를 못해 매트 위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벌였다. 16점대의 점수를 받아 쭉 미끄러졌으니 베소노바의 입장에선 예선전 만큼만 해도 어느 정도 점수 차이를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곤봉은 안나가 자신 있어하는 수구였고 당시 루틴은 역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첫 슬로우턴부터 hop을 크게 해버려서 시작부터 점수를 잃었다. 점수는 17.8점으로 메달을 딸래야 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생중계에선 베소노바가 잔뜩 화나고 울먹이는 표정으로 심판진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쏘는 광경이 포착되었고 코치 또한 점수 이의제기를 하였다. 다행히 난도점수가 올라갔고 올가 카프라노바와 동점이 되었다. 즉 리본 점수에 따라 바로 동메달리스트가 결정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다음 경기를 치러야했다.

마지막 종목인 리본에선 올가가 먼저 경기를 치렀고 무난하게 18점을 받았다. 카프라노바 입장에서는 당일 경기 때 베소노바가 앞의 세 종목에서 18점대의 점수를 하나도 받지 못했고 리본이 베소노바의 강점이 아닌걸 알고 있었을테니 별다른 불만 없이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그런데 베소노바가 그날 리본에서 인생경기를 펼쳤다. 물론 피봇의 실시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되었으나, 음악과 안무의 싱크로도 딱딱 맞고 분위기가 경쾌하다 보니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점수 결과가 유난히 늦어지고 있는 와중에서 관중석에선 일제히 베소노바를 외쳤고 심판들도 결국 베소노바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 경기의 특이점은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올림픽 금메달과 은메달리스트는 러시아 선수가 차지하고, 나머지 선수들끼리 남은 동메달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식이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은메달 자리를 두고 두 선수가 치열히 경쟁하다가 둘다 실수로 미끄러져 동메달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별 주목을 못받던 인나 주코바가 어부지리 격으로 은메달을 말 그대로 그냥 주워갔다는 것이다. 이 날 경기는 특히 선수들 간의 라인업이 쟁쟁했는데, 그 예시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4위를 한 알리야 가라예바가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8위였다. 또한 시상식에 비러시아 국가 선수 2명이 포디움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는 주목할 일이다. 왜나하면 메이저 대회에서 비러시아 선수 2명이 포디움에 오른것은 이 대회 이후 2018년이 돼서야 가능해졌다. 그것도 개인종합이 아니라 종목별 결선에서 이뤄진 것이니 2008 베이징 올림픽 리듬체조 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다. 당시 팬들에겐 그야말로 세상 둘도 없는 재미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어쨌건 이로서 안나 베소노바는 2연속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라는 명예를 안게 되었다.

2.11. 2009년

카나예바만도 벅찬데 여기에 다리아 콘다코바까지 개인전으로 올라왔다! 시즌 말,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제대로 독기를 품고 경기에 임했다. 이 대회 경기에서 베소노바의 표현력이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된다. 네 종목의 루틴들 모두 상당한 명프로그램이었는데다 현지 일본 관중들의 반응도 좋아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팬들이 일반인들에게 베소노바를 소개할 때 주로 권하는 영상들도 이 대회 영상들이다. 대표적으로 베소노바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라 불리는 리본 루틴 <Carmina burana>가 있다. 그러나 카나예바와 콘다코바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고 개인종합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베소노바는 다른 선수들보다도 유난히 무겁고 웅장한 음악을 잘 소화해냈는데, 이 시즌은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루틴들이 많았다. 초창기 줄, 후프, 볼이 웅장한 음악이었고 특히 후프는 백조의 호수 이미지가 만연했던 이전의 후프와는 전혀 색다른 이미지의 루틴이었다. 베소노바에게 공과 리본에서는 그렇다할 만한 명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이 시즌에서 화룡점정을 찍을 역작이 등장했다. 공은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결선에서 유일하게 28점을 돌파했으며[4] 지금까지 베소노바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리본의 경우 지난 시즌 음악을 재탕한 것이었으나 별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자 과감하게 루틴을 통째로 바꿨다. 그것이 바로 위 문단에서 언급한 리체 역사상에 남을 대 역작 카르미나 부라나다. 제 아무리 카나예바라 해도 소화할 수 없고 오직 안나만이 가능한, 베소노바를 위한 프로그램들이었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로서 2009년 루틴들은 죄다 무거운 음악만 남게 되었고 결국 줄을 우크라이나 후크 송으로 바꿔 밝은 이미지의 루틴으로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초창기 줄도 꽤나 잘 뽑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선보일 일이 없어졌다.

25살이 되면서 신체적 기량저하가 눈에 띄게 부쩍 늘어난 시기기도 했다. 수구를 놓치는 실수가 빈번해지면서 좀처럼 없었던 안무 삭제나 안무 수정이 많이 이뤄졌다. 특히 후프에서 수구 조작을 두 개 정도 생략하고 쉬운 기술로 대체하고 실시에 문제가 있던 백 스케일 턴을 전면 제외하고 포에테나 백일루젼으로 대체했다. 개인종합결선에선 자신의 장기인 줄에서 수구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26점이라는 다소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종목별로 27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보고 앞으로 후배들에게 순위로 밀릴 것이 예상되니 은퇴를 확실하게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

파일:베소노바 흑조.jpg
데리우기나 스쿨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다만 베소노바는 우크라이나 스타일을 베이스로 여기에 선수 자신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더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다른 우크라이나 선수들과 베소노바의 경기를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의미로 베소노바의 연기는 베소노바가 해야 통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베소노바 이후 데리우기나와 베소노바가 기른 후배들이 베소노바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못 보이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표현력의 여제라는 별명대로 표현력이 정말 뛰어났던 선수이다. 웅장하면서도 빵빵 터지는 음악과 그에 완벽하게 싱크되는 드라마틱한 안무, 베소노바의 카리스마와 표정 연기가 더해져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음악 해석 능력이 뛰어나며, 이 점은 경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던 갈라 루틴에서 확실히 부각되는 부분이다. 또 매트 위 존재감이 정말 대단한 선수로, 그야말로 베소노바가 연기하는 1분 30초 동안은 경기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소노바의 연기 스타일을 대중 친화적인 스타일로 평하는 시선도 있는데, 베소노바를 좋아했던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가 현장에서 관중을 순식간에 자기 편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연기 스타일이 리듬체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어필하는지라 2000년대 초중반 한국 팬들에게 베소노바는 리듬체조 입문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퇴하고 꽤 시간이 흐른 아직까지도 대중들은 물론 리듬체조 덕후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편이다. 베소노바 이후로 우크라이나 후배들이 힘겹게 명맥을 잊고 있지만, 베소노바 특유의 극적이면서 관중을 사로잡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지라 더욱 베소노바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있다. 은퇴한 후에도 좀처럼 잘 안 잊혀지는 선수다.

다만 리듬체조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볼 때도 신체 난도와 유연성이 매우 딸렸다. 괜히 베소노바가 메이저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 근처에만 머물렀던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은 그녀가 왜 2인자나 콩라인으로 분류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굳건한 1인자가 있어서 2위에 머무른 게 아니라 애초에 심판들이 보기에는 은메달이나 동메달 밖에 안 될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낮은 기술 점수에 반비례하는 높은 예술점수가 선수 생활 내내 지속되었는데 이 기술점수와 예술점수의 갭이 리체팬들의 일반적 상식과는 어긋날 정도로 컸다. 이러다보니 베소노바의 팬들은 그녀의 점수가 짜다고 주장하고 안티들은 너무 후하다고 주장했으며 이 논란은 그녀가 은퇴한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제삼자 입장에서 베소노바의 경기를 본다면, 이 갭이 절묘하게 납득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마디로 기술 점수는 낮을 만해서 낮았고 예술 점수는 높을 만하니까 높았다는 얘기다. 제일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예술점수는 난도점수에 비례해서 매겨진다. 난도는 턱없이 낮은데 예술은 높은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실제로 거의 없다. 베소노바는 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술점수가 조금 높은것으로 당장 카나예바와 비교해도 난도 점수 차이가 큰 만큼 예술점수도 카나예바가 더 높게 받는다. 무엇보다도 2009년 이전에는 예술점수가 전체점수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리고 리듬체조에선 선수의 이름값도 한 몫 한다. 피겨스케이팅에서도 이름값 있는 선수가 PCS점수로 순위구제를 받는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전성기가 지나 기술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올림픽을 앞두고 있거나 그 직후 시즌에선 적당히 순위권안에 들 수 있게 점수를 어느 정도 뻥튀기해준다. 베소노바도 마찬가지고 리체팬들 내에서 말이 있었던 손연재도 해당된다.

선수 생활이 20대 중반까지 지속되면서 실시는 더욱 구려졌지만 반대로 표현력은 정점을 찍었으며, 이 괴리는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중들은 물 오른 연기를 극찬했지만 팡세와 포에테, 가장 난도가 낮은 빠세에서도 축다리가 흔들리는 등 실시에 대해서는 쉴드를 치지 못할 수준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시즌에 쓴 루틴들 모두 상당한 명프로그램으로 꼽히며 베소노바를 알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추천하는 영상들이다. 좋든 나쁘든 베소노바의 장단점을 모두 볼 수 있는 영상들이다.

신체 요소와 결합한 수구 난도, 특히 점프와 결합한 수구 조작과 길쭉길쭉한 몸 위로 수구를 굴리고 연결하는 데에 있어서는 역대 어느 선수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장기인 턴립에 가려져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이 수구와 마스터리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 수구를 놓치지 않는다면 실시의 교본으로 볼 수 있다. 가채점시 실시에서 미스/페일 판정을 받는 피봇으로 점수 편차가 컸는데 2006-7년경 강화된 리스크[5] 난도에서는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외로 오리지널리티 등재를 했어도 좋을 수구 마스터리들이 많다. 첫째로 수평축회전을 하면서 볼을 굴리는 난도, 둘째로 수구를 던지고 점프와 축회전을 하여 받는 리스크 등은 실패도 적고 키가 크며 점프 폭이 넓어서 그런지 단연 돋보이는 기술이었다. 2007 세계선수권에서 종목별 우승은 전부 놓쳤지만 개인종합 우승을 한 것도 이러한 기술로 인한 점수 획득 덕이 크다. 리본에서는 안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등재되어있다. 리본을 던진후 떨어지는 리본대를 발로 차서 날린 후 리본 끝을 잡고 당겨 리본대를 되받는 기술이다. 부메랑 기술을 응용한것으로 선수생활 내내 리본루틴에서 빠짐없이 구사했다. 단 2009년 카르미나 부라나 루틴에선 포함되어있지 않다.

종합하자면 베소노바는, 데리우기나식 스타일을 극대화한 결과 순전히 베소노바만의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기술면에선 빈약한 유연성(신체난도)과 독창적인 수구 조작이 있다.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단점을 고치기 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면으로 나간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녀의 스타일이 주니어 시절에도 이미 상당부분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그니처 기술들 중 하나로 3단 점프가 있다. 스플릿 점프가 특기로, 점프시 다리 각도가 엄청나고 체공시간이 제법 되는데다 다리가 길어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갈라에서는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 점프와 표정연기 위주로 꾸민다. 댄스, 리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다. 발레, 체조, 모던댄스, 컨템포러리, 마임, 연극적인 스텝 등 대부분의 몸 쓰는 부분에서 모자람이 없다[6] 이러한 선수들은 은퇴 후에도 갈라에서 큰 인기를 얻는 편이다. 한국에 왔을 때는 말춤도 잘 췄다.

한때 한국의 리듬체조 유망주들이 존경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기술은 카나예바를 닮고 싶고 표현력은 베소노바를 닮고 싶다' 는 것이 주요 멘트였다. 그런데 꼭 한국의 리듬체조 선수들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망주 레벨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다리아 콘다코바 선수는 좋아하는 선수로 베소노바를 꼽은 바가 있다.[7]

사족이지만 카나예바와 베소노바의 연기 스타일은 상당히 달라 비교 자체가 힘든데, 이는 두 선수의 스타일이 예술로 비유하면 장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로 말하자면 오페라뮤지컬처럼 장르가 다른 둘을 억지로 갖다 붙여 비교하는 식이다. 베소노바와 카나예바 둘 다 리듬체조라는 스포츠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선수들로, 예술성 레벨로는 두 사람 모두 이 분야의 전설들이다.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어느 선수의 연기 스타일이 더 내 취향이다 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객관적인 비교 우열을 따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지금 보면 베소노바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댄스 스텝처럼 음악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요소도 없었고 경기에서 보여줘야하는 기술의 가짓수가 많았다. 단연 극적인 연기를 펼친다는건 더 어려웠을테니 그런 지점들을 감안하면 선수가 음악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알 수 있다. 표정연기는 물론이고 음악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거나 수구를 다루면서 관중으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시키게 하는 연출을 한다는 건 선수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난도를 심사하는 심판진이 보기엔 시큰둥할수밖에 없는 루틴이기도 했다. 2009 세계선수권에서 제일 큰 논란이 된게 리본 종목별 결선이었는데 카나예바가 하필 리본이 몸에 감긴다던가 놓치는 의외의 실수를 저질렀다. 딱 28.0점이 나왔는데 독한 베소노바는 그 절호의 기회를 당연히 안놓치고 클린경기를 펼쳤다. 채점결과상 난도와 실시는 딱 줄만큼 줬는데 논란이 된게 예술성 부문 점수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전 채점제에선 예술점수가 있으나마나한 점수였는데, 2009년부터 난도, 예술, 실시 각각 10점으로 총점 30으로 평가가 이뤄짐에 따라 예술점수가 실질적인 비중을 갖게 되었다. 즉 예술성 점수로 순위가 크게 갈릴수도 있게 되었다. 하필 카나예바보다 딱 0.1점 모자라게 27.9점을 받게 함으로써 예술점수부문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예술점수가 9.4였는데 9.5를 줘도 이상할게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땐 베소노바가 정말 리본 종목 금메달을 가져갔어야했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이 예술부문 평가는 논란이 되어왔으며 그 이후 2013년부터는 예술부문이 아예 실시와 통폐합되면서 없어졌다.

4. 비판

5~6위권 선수한테도 밀릴 만한 실시와 난도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메달은 다 챙기니 안티들 사이에서는 음악빨과 얼굴빨, 국가빨[8]포디엄에 선다는 평을 들었다.[9]

리듬체조 선수로서는 유연성[10]이 많이 떨어진 편이었다. 백벤드가 애매하다. 점프할 때 보여주는 다리 각도를 보면 오버스플릿은 잘 되는 모양인데 팡셰할 때 다리 각도를 보면 그것도 아니다. 응? 팡셰 동작이 지금에야 흔히 사용되는 피봇이지만 구체제 리듬체조에서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피봇이었다. 당연히 구체제 리듬체조 난도를 구사하는 베소노바에겐 생소한 피봇이다. 백스케일턴 사이드스케일턴 팡셰턴 모두 남들이 다 하나씩은 넣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베소노바도 루틴에 포함시킨 피봇들이다.

한때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를 저격한 인터뷰로 한국에서는 안티들을 떼로 긁어모았다. 아예 '베이비'라고 직접 겨냥했다. 뭐, 그 당시 리체 선수로서는 환갑뻘 나이였던 베소노바가 보기에는 십대의 풋풋한 차세대 여왕이었던 카나예바가 애기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베소노바의 코치인 이리나 데리우기나 역시 인터뷰에서 카나예바에 대해 '우아함이 보이지 않는 선수' 라는 쉽사리 동의하기 힘든 표현을 쓰며 독설을 내뱉은 바 있다. 그런데 사실 데리우기나가 카나예바에 대해서는 나름 말을 얌전하게 한 편이었는데, 같은 인터뷰에서 인나 주코바에 대해서는 막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대놓고 깠다. 이 인터뷰에 대한 후일담으로, 카나예바는 나중에 두 사람의 인터뷰를 읽었다고 밝혔는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는 등 대인배적인 반응을 보여 베소노바의 소인배스러움이 더욱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11] 다만 이는 러시아에게 수많은 시간동안 제국주의적 착취와 설움 온갖 피해를 겪어온 우크라이나의 역사의식과도 연결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일본에게 알게 모르게 역사적인 이유로 더 안좋은 인식을 갖는것처럼 말이다. 가뜩이나 베소노바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부로 올가카프라노바와 자신을 동점으로 만들어서 메달권으로부터 밀어내려고 시도한 심판진에게 분노를 느꼈을테니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 인터뷰발언을 보면 금메달을 딴 카나예바보다도 리듬체조 전반에의 비녜르의 개입에 대한 불만이나 문제제기가 더 많았다.

은퇴 후에는 파이터의 면모는 보이지 않는 듯 했으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나고 수구를 떨어뜨리고 은메달을 딴 야나 쿠드랍체바의 점수가 부당하다고 인터뷰를 해서 역시 성격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건 사실 베소노바나 비슷한 인터뷰를 한 안나 리잣디노바만 비판하기 보다는 이들을 어릴때부터 오랜기간 옆에서 세뇌시킨 헤드코치 이리나 데리우기나의 탓이 크다. 애초에 본인 의견에 반대하는 선수는 바로 나가리라서 말 잘듣는 선수만 밑에 남게 된다.

그 외에도 국제 체조연맹이 올림픽 이후 항상 점수표와 경기 동영상을 대조해서 각 선수의 점수가 올바른지 재체점을 하지만 이 결과가 올림픽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고 이 재채점 점수표나 올림픽 심판들의 점수표는 절대 공개하지 않기에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한편, 류보프 차카시나도 체조연맹에서 공정성을 위하여 올림픽 심판들은 시즌 내내 선수들의 루틴을 본 적이 거의 없고 심판 경험이 적으며 메달리스트 후보자들의 출신 국가와 관계가 없는 나라 출신의, 한마디로 경험이 일천한 초보 심판들을 기용한다고 한 인터뷰를 함으로서 올림픽 결과와는 상관없이 올림픽 심판진 자체에 문제가 있기는 하다는 것을 팬들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차카시나는 심판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도 말하였고 자국의 멜리티나 스타니우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음으로서, 공정함을 지킨 것에 비해 베소노바는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을 했음에도[12] 올림픽 심판들과 야나 쿠드랍체바, 러시아 리듬체조 팀을 저격하는 모두까기를 시전함으로서 욕을 먹었다. 한편으로는 쿠드랍체바의 점수가 덜 깎이기는 했다는 의견도[13] 겹치며 팬들끼리 싸웠다.

5.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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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colbgcolor=#ffe970> 0 <colbgcolor=#c0c0c0> 0 <colbgcolor=#d7995b> 2
세계선수권 5 15 7
유럽선수권 3 12 9
유럽 팀선수권 0 2 0
그랑프리 파이널 5 7 6
월드컵 파이널 3 4 3
월드 게임 1 4 1
유니버시아드 10 8 1
합계 27 52 29

올림픽
동메달 2004 아테네 종합
동메달 2008 베이징 종합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1 마드리드 단체전
금메달 2002 뉴올리언스 5리본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곤봉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후프
금메달 2007 파트라스 종합
은메달 2001 마드리드
은메달 2001 마드리드 후프
은메달 2003 부다페스트 단체전
은메달 2003 부다페스트 종합
은메달 2003 부다페스트
은메달 2003 부다페스트 리본
은메달 2005 바쿠 단체전
은메달 2005 바쿠 종합
은메달 2005 바쿠 곤봉
은메달 2005 바쿠
은메달 2005 바쿠 리본
은메달 2005 바쿠
은메달 2007 파트라스 곤봉
은메달 2007 파트라스 리본
은메달 2009 미에 리본
동메달 1999 오사카 단체전
동메달 2001 마드리드 종합
동메달 2001 마드리드
동메달 2007 파트라스 후프
동메달 2009 미에 종합
동메달 2009 미에
동메달 2009 미에
유럽선수권
금메달 2003 리자 곤봉
금메달 2003 리자 리본
금메달 2003 리자 후프
은메달 2002 그라나다 단체전
은메달 2003 리자
은메달 2004 키예프 단체전
은메달 2004 키예프 종합
은메달 2005 모스크바 단체전
은메달 2005 모스크바
은메달 2005 모스크바 리본
은메달 2007 바쿠 단체전
은메달 2007 바쿠 리본
은메달 2007 바쿠 후프
은메달 2008 토리노 종합
은메달 2009 바쿠
동메달 2002 그라나다 종합
동메달 2005 모스크바 곤봉
동메달 2005 모스크바
동메달 2006 모스크바 종합
동메달 2007 바쿠 곤봉
동메달 2009 바쿠 단체전
동메달 2009 바쿠 리본
동메달 2009 바쿠
동메달 2009 바쿠 후프
유럽 팀선수권
은메달 2001 리자 단체전
은메달 2003 모스크바 단체전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03 인스브루크 종합
금메달 2003 인스브루크 리본
금메달 2003 인스브루크 후프
금메달 2004 데벤테르 곤봉
금메달 2004 데벤테르 후프
은메달 2002 인스브루크 종합
은메달 2002 인스브루크
은메달 2003 인스브루크 곤봉
은메달 2003 인스브루크
은메달 2004 데벤테르 리본
은메달 2005 베를린 종합
은메달 2006 베를린
동메달 2000 데벤테르 후프
동메달 2002 인스브루크 곤봉
동메달 2002 인스브루크 후프
동메달 2004 데벤테르 종합
동메달 2004 데벤테르
동메달 2005 베를린 리본
월드컵 파이널
금메달 2002 슈투트가르트 곤봉
금메달 2002 슈투트가르트
금메달 2002 슈투트가르트
은메달 2002 슈투트가르트 후프
은메달 2008 베니도름 곤봉
은메달 2008 베니도름 리본
은메달 2008 베니도름 후프
동메달 2006 미에
동메달 2006 미에 리본
동메달 2006 미에
월드 게임
금메달 2005 뒤스부르크
은메달 2005 뒤스부르크
은메달 2009 가오슝
은메달 2009 가오슝 리본
은메달 2009 가오슝
동메달 2005 뒤스부르크 리본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3 대구 리본
금메달 2005 이즈미르 종합
금메달 2005 이즈미르 곤봉
금메달 2005 이즈미르
금메달 2005 이즈미르
금메달 2007 방콕 종합
금메달 2007 방콕 곤봉
금메달 2007 방콕 리본
금메달 2007 방콕
금메달 2007 방콕 후프
은메달 2003 대구 종합
은메달 2003 대구 곤봉
은메달 2003 대구 후프
은메달 2009 베오그라드 종합
은메달 2009 베오그라드
은메달 2009 베오그라드 리본
은메달 2009 베오그라드
동메달 2005 이즈미르 리본

6. 기타


[1] 디나모 키예프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소련 올림픽 팀 멤버로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땄다.[2] 먹던 다이어트 약에서 금지된 약물이 검출되었다(...)[3] 2000-2004 쿼터까지는 카바예바와 차시나, 2008-2012 쿼터에는 카나예바와 콘다코바, 2013-2016 쿼터에는 마문과 쿠드랍체바, 2017-2020 쿼터에는 아베리나 쌍둥이들이 버티고 있는 등 러시아의 철옹성은 견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베소노바의 은퇴 이후 비러시아권에서 그렇다 할만한 스타 선수들이 안 나타나고 있다는 문제도 크다. 2017-2020 쿼터에선 리노이 아시람이 은메달 자리를 놓고 러시안 선수를 위협했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4] 다만 메달을 따게 해주기 위한 심판진의 배려였다는 말이 있었다.[5] 일명 RISK이며, 현재는 DER 난도이다.[6] 그래서 리체팬들 중에서는 베소노바가 리듬체조 선수가 아니라 댄서가 되었더라면 그 분야에서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다.[7] 콘다코바는 러시아 선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소위 우크라이나식 연기를 구사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콘다코바에 대해서 엄밀히 말해 전형적인 러시아 스타일이 아니다고 표현하는 것 정도가 맞을 것이다. 러시아쪽 리듬체조만 보는 사람들은 다이나믹하고 속도감 있는 연기를 흔히들 '우크라이나식'이란 단어 하나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콘다코바의 연기는 데리우기나 스쿨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우크라이나식 연기라 보기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냥 콘다코바는 다른 러시아 선수들과 구분되는 본인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하나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8]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다음 가는 리듬체조 강국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배출한 국가이다. 애초에 소련 시절 리듬체조 선수들을 양성했던 중심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곳에 있었다.[9] 오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실시가 갈수록 안좋아진건 사실이나 수없이 흔들리는 피봇을 제외하고는 실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즉, 피봇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물론 루틴에서 구성하는 난도가 당시 리듬체조판에서 진작 유행이 지난 것들이였다.[10] 특히 허리 유연성이 다리 유연성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아치턴이나 백스플릿 피봇 등 허리 유연성을 필요로하는 동작들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11] 카나예바는 원래도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성격 좋기로 유명한 선수이다.[12] 매번 있었던 불투명한 채점 과정에 대한 비판이었다. 2012년에는 요아나 미트로시의 오버스코어와 덩썬웨멜리티나 스타니우타의 언더스코어, 2016년에는 역시 동네북스타니우타와 예선에서 탈락한 로라 젱의 언더스코어 등이 포함된다.[13] 올림픽 내내 러시아 선수들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점수가 평소보다 낮았다. 만약 쿠드랍체바가 실수가 없었다면 1.6점을 더 받아서 19점대 중반이 나와야 하는데 실수가 없었던 예선에서조차 곤봉에서 그 점수는 안 나왔기 때문에 채점 과정에 문제가 있긴 하다는 의견이 있다.이 모든 것은 채점표를 공개하지 않는 국제체조연맹의 탓이다.[14] 카나예바와 콘다코바가 등장한 그 이후 세대에겐 어쩔 수 없이 밀렸다.[15] 우크라이나 체조 선수들 중에서는 이렇게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마른 체형인 선수들이 많다. 이는 데리우기나가 체형을 중시하여 애초에 타고나길 키가 크고 살이 잘 찌지 않는 선수 위주로 뽑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 시절에는 부모의 체형까지 보고 결정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데리우기나가 아꼈던 전직 선수들인 베소노바, 카트리나 세레브리얀스카야, 옥사나 스칼디나까지 지금도 하나같이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선수들 어머니들도 하나같이 전직 리체 선수였으니 우월한 몸매는 기본이다. 우크라이나와 비슷하게 부모의 체형까지 보고 선수 발탁을 결정하는 나라로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서는 중국이 그렇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보통 러시아가 그렇다. 정작 비녜르는 타고난 체형이 통통해도 독하게 관리만 잘한다면 선수로 잘 뽑는다는 점에서 러시아 빙상관계자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