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브첸코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전 킥복서와 무에타이 선수이자 현 UFC 소속 종합격투기선수에 대한 내용은 발렌티나 셰브첸코 문서, 19세기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가 겸 시인에 대한 내용은 타라스 셰우첸코 문서
참고하십시오. 안드리 셰브첸코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대표팀 | ||||
18대 | ||||
클럽 | ||||
123대 |
안드리 셰브첸코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1998-99 · 2005-06 | |||
| 1999-00 · 2003-04 | |||
| | |||
베스트팀 | ||||
| 2004 · 2005 | |||
| 1999-00 · 2003-04 · 2004-05 | |||
|
1999 Ballond'or | ||
수상 히바우두 | 2위 데이비드 베컴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2000 Ballond'or | ||
수상 루이스 피구 | 2위 지네딘 지단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2004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호나우지뉴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Player of the Year 1999 | ||
수상 히바우두 | 2위 데이비드 베컴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Player of the Year 2000 | ||
수상 루이스 피구 | 2위 지네딘 지단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Player of the Year 2004 | ||
수상 호나우지뉴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안드리 셰브첸코의 기타 정보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 ||||
2005년 마이클 에시엔 (3800만 €) | ▶ | 2006년 안드리 셰브첸코 (4390만 €) | ▶ | 2007년 페르난도 토레스 (3800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135deg, #00008B 20%, #00008B 80%, #9400D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000000,#e5e5e5 | 순서[1] | 선수 이름 / 참가 클럽[2] | 출전 횟수[3] | 국적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ffffdd,#000>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유벤투스 FC | <colbgcolor=#eeeeef,#191919> 183회 | ★★★★★ 5회 | |||
2 | 이케르 카시야스 (Iker Casillas) | 레알 마드리드 CF FC 포르투 | 177회 | ★★★ 3회 | |||
3 |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 FC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맹 FC | 163회 | ★★★★ 4회 | |||
4 | 카림 벤제마 (Karim Benzema) | 올랭피크 리옹 레알 마드리드 CF | 152회 | ★★★★★ 5회 | |||
5 | 사비 에르난데스 (Xavi Hernández) | FC 바르셀로나 | 151회 | ★★★★ 4회 | |||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 FC 바이에른 뮌헨 | ★★ 2회 | |||||
토니 크로스 (Toni Kroos) | FC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CF | ★★★★★★ 6회 | |||||
8 | 라울 곤살레스 (Raúl González) | FC 샬케 04 레알 마드리드 CF | 142회 | ★★★ 3회 | |||
세르히오 라모스 (Sergio Ramos) | 레알 마드리드 CF 파리 생제르맹 FC 세비야 FC | ★★★★ 4회 | |||||
10 | 라이언 긱스 (Ryan Giggs)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41회 | ★★ 2회 | |||
11 |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FC 샬케 04 FC 바이에른 뮌헨 | 140회 | ★★ 2회 | |||
12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Andrés Iniesta) | FC 바르셀로나 | 130회 | ★★★★ 4회 | |||
13 | 세르히오 부스케츠 (Sergio Busquets) | FC 바르셀로나 | 129회 | ★★★ 3회 | |||
14 | 제라르 피케 (Gerard Piqué)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르셀로나 | 128회 | ★★★★ 4회 | |||
루카 모드리치 (Luka Modrić) | 토트넘 홋스퍼 FC 레알 마드리드 CF | ★★★★★★ 6회 | |||||
16 | 클라렌스 세도르프 (Clarence Seedorf) | AFC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 | 125회 | ★★★★ 4회 | |||
17 | 폴 스콜스 (Paul Scholes)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24회 | ★★ 2회 | |||
잔루이지 부폰 (Gianluigi Buffon) | 파르마 칼초 1913 유벤투스 FC 파리 생제르맹 FC | 0회 |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Zlatan Ibrahimović) | AFC 아약스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0회 | |||||
20 | 호베르투 카를루스 (Roberto Carlos) | 레알 마드리드 CF 페네르바흐체 SK | 120회 | ★★★ 3회 | |||
페페 (PePe) | FC 포르투 레알 마드리드 CF 베식타스 JK | ★★★ 3회 |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Robert Lewandowski)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바이에른 뮌헨 FC 바르셀로나 | ★ 1회 | |||||
23 | 샤비 알론소 (Xabi Alonso) | 레알 소시에다드 리버풀 FC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 119회 | ★★ 2회 | |||
24 | 데이비드 알라바 (David Alaba) | FC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CF | 117회 | ★★★★ 4회 | |||
25 | 카를레스 푸욜 (Carles Puyol) | FC 바르셀로나 | 115회 | ★★★ 3회 | |||
26 |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 AS 모나코 FC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 112회 | ★ 1회 | |||
필립 람 (Philipp Lahm) | FC 바이에른 뮌헨 VfB 슈투트가르트 | ★ 1회 | |||||
28 | 페트르 체흐 (Petr Čech) | AC 스파르타 프라하 첼시 FC 아스날 FC | 111회 | ★ 1회 | |||
다니 알베스 (Dani Alves) | 세비야 FC FC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FC 파리 생제르맹 FC | ★★★ 3회 | |||||
30 | 아르연 로번 (Arjen Robben) | PSV 에인트호번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 110회 | ★ 1회 | |||
31 | 파올로 말디니 (Paolo Maldini) | AC 밀란 | 109회 | ★★★★★ 5회 | |||
게리 네빌 (Gary Neville)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 2회 | |||||
존 테리 (John Terry) | 첼시 FC | ★ 1회 | |||||
34 | 안드레아 피를로 (Andrea Pirlo)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C 밀란 유벤투스 FC | 108회 | ★★ 2회 | |||
애슐리 콜 (Ashley Cole) | 아스날 FC 첼시 FC AS 로마 | ★ 1회 | |||||
파트리스 에브라 (Patrice Evra) | AS 모나코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벤투스 FC | ★ 1회 | |||||
37 |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 107회 | ★ 1회 | |||
앙헬 디 마리아 (Ángel Di María) | SL 벤피카 레알 마드리드 CF 파리 생제르맹 FC 유벤투스 FC | ★ 1회 | |||||
39 | 빅토르 발데스 (Víctor Valdés) | FC 바르셀로나 | 106회 | ★★★ 3회 | |||
40 |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 105회 | ★ 1회 | |||
티아고 실바 (Thiago Silva) |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첼시 FC | ★ 1회 | |||||
42 | 세스크 파브레가스 (Cesc Fàbregas) |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 104회 | 0회 | |||
43 | 올리버 칸 (Oliver Kahn) | FC 바이에른 뮌헨 | 103회 | ★ 1회 | |||
루이스 피구 (Luís Figo) |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 1회 | |||||
페르난지뉴 (Fernandinho) | 샤흐타르 도네츠크 맨체스터 시티 FC | 0회 | |||||
46 | 마르셀루 (Marcelo) | 레알 마드리드 CF | 102회 | ★★★★★ 5회 | |||
47 | 안드리 셰브첸코 (Andriy Shevchenko) | FC 디나모 키이우 AC 밀란 첼시 FC | 100회 | ★ 1회 | |||
| |||||||
※ 현재 기록은 2023-24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종료 후 기준이고 매 경기가 종료될 때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4d622 0%, #f4d622 20%, #f4d622 80%, #f4d622)"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4d622> |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4d62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18489d> 순서 | 선수 이름 | 출전 횟수 | 첫 경기 | 마지막 경기 |
| | | | | |
1 | 안드리 야르몰렌코 | 121회 | 2009.9.5 | 2024.6.21 | |
2 | 안드리 셰브첸코 | 111회 | 1995.3.25 | 2012.6.19 | |
3 | 안드리 퍄토우 | 102회 | 2007.8.22 | 2022.6.11 | |
4 | 루슬란 로탄 | 100회 | 2003.2.12 | 2018.3.27 | |
[1] 2022년 3월 9일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서 제명되면서 국가대표 출전·득점 기록이 모두 삭제 |
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득점 순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08b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순위 | 선수 | 득점 | 출장 | 비율 | 클럽 | 국적 | ||||||
1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140 | 183 | 0.77 | 맨 유나이티드(21) 레알 마드리드(105) 유벤투스(14) | 포르투갈 | |||||||
2 | 리오넬 메시 | 129 | 163 | 0.79 | 바르셀로나(120) 파리(9) | 아르헨티나 | |||||||
3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 94 | 118 | 0.80 | 도르트문트(17) 바이에른(69) 바르셀로나(7) | 폴란드 | |||||||
4 | 카림 벤제마 | 90 | 152 | 0.59 | 리옹(12) 레알 마드리드(78) | 프랑스 | |||||||
5 | 라울 곤살레스 | 71 | 142 | 0.50 | 레알 마드리드(66) 샬케(5) | 스페인 | |||||||
6 | 뤼트 판니스텔로이 | 56 | 73 | 0.77 | PSV(8) 맨 유나이티드(35) 레알 마드리드(13) | 네덜란드 | |||||||
7 | 토마스 뮐러 * | 54 | 149 | 0.36 | 바이에른(54) | 독일 | |||||||
8 | 티에리 앙리 | 50 | 112 | 0.45 | 모나코(7) 아스날(35) 바르셀로나(8) | 프랑스 | |||||||
9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49 | 58 | 0.84 | 레알 마드리드(49) | 스페인 | |||||||
10 | 안드리 셰브첸코 | 48 | 100 | 0.48 | 디나모 키이우(15) 밀란(29) 첼시(4) | 우크라이나 | |||||||
10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48 | 124 | 0.39 | 아약스(6) 유벤투스(3) 인테르(6) 바르셀로나(4) 밀란(9) 파리(20) | 스웨덴 | |||||||
10 | 킬리안 음바페 * | 48 | 71 | 0.68 | 모나코(6) 파리(42) | 프랑스 | |||||||
출처 http://www.worldfootball.net/alltime_goalgetter/champions-league/tore/1/ | |||||||||||||
* 본선 경기 기록 한정. | |||||||||||||
* * 표시는 2023-2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 대상자. | |||||||||||||
* UEFA 챔피언스 리그 공식 홈페이지의 기록(#)은 조금 다른데, 본선 조별 리그가 진행되기 이전의 예선 경기 기록이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 |
}}} ||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 | ||
Українська асоціація футболу | ||
<colbgcolor=#f4d622> 이름 | 안드리 셰브첸코 Андрі́й Шевче́нко | Andriy Shevchenko | |
본명 | 안드리 미콜라요비치 셰브첸코 Андрі́й Микола́йович Шевче́нко[1] Andriy Mykolayovych Shevchenko | |
출생 | 1976년 9월 29일 ([age(1976-09-29)]세) | |
소련 우크라이나 SSR 키이우 야호틴구 드비르키우시나 | ||
국적 | [[우크라이나|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 체중 73kg | |
주발 | 오른발 (양발)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 |
소속 | <colbgcolor=#f4d622> 선수 | FC 디나모 키이우 (1993~1999) AC 밀란 (1999~2006) 첼시 FC (2006~2009) → AC 밀란 (2008~2009 / 임대) FC 디나모 키이우 (2009~2012) |
감독 | 우크라이나 대표팀 (2016 / 코치) 우크라이나 대표팀 (2016~2021) 제노아 CFC (2021~2022)[2] | |
행정 |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 (2024~ / 회장) | |
국가대표 | 111경기 48골[3] (우크라이나 / 1995~2012) | |
통산 득점 | 394골 | |
수훈 내역 | 우크라이나 영웅 | |
SNS | | |
[clearfix]
1. 개요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별명은 '무결점 스트라이커'.디나모 키이우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2000년대 초반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함께 세계 4대 스트라이커로 불리며 발롱도르까지 수상한 2000년대를 풍미했던 스트라이커이다. 애칭은 이름을 줄인 셰바(Sheva).
그는 조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축구선수를 넘어 자국을 대표하는 위인으로서 우크라이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웅칭호인 우크라이나 영웅을 수훈하기도 했다. 2024년 1월 25일,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안드리 셰브첸코/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젊은 시절에는 탁월한 운동 능력을 활용한 폭발적인 돌파가 돋보였다. 다만 이 점이 잘못 전해져 투박하다고 표현되기도 하나, 투박하다고 하면 떠오를 '우당탕탕' 스타일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보폭이 크고 볼터치가 카카나 호나우지뉴처럼 섬세하진 않아 투박해 보이는 것이고, 자신의 신체를 믿고 스피드와 에너지를 앞세운 플레이를 펼쳤던 선수였을 뿐.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전성기의 루이스 수아레스처럼 테크닉도 훌륭하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극대화시키는 타입이었다.[4][5][6]특히 그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다재다능한 득점 도구들이다. 우선 슈팅에 있어서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골대 바로 앞부터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까지 득점 가능한 범위도 넓다. 그의 100골 비디오 클립을 보면 머리로만 정확히 25골을 득점하기도 한다. SS 라치오와 경기에선 머리, 오른발, 왼발의 퍼펙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즉, 어느 부위로든 골로 넣을 수 있었고 동유럽의 호나우두라 불릴만큼 단독 돌파력도 뛰어났으며 여기에 준수한 프리킥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중장거리 프리킥을 맡아 차기도 했다.[7]
이러한 다양한 무기들을 바탕으로 난전 상황에서 우당탕탕 골, 세트피스에서 헤딩, 중장거리슛, 주워먹기, 열린 공간에서 치달, 좁은 공간에서 밀집수비 깨기 등등 거의 모든 상황에서 온갖 방식으로 득점을 해냈고 때문에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는 영광스런 칭호로 불리었다. 중앙 공격수 항목에서 컴플리트 포워드 부분을 보면 사실 컴플리트 포워드의 요소 중에 1~2개가 부족하거나, 육각형이긴 한데 월클 기준에서는 작은 육각형(...)인 이들이 많이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나무위키 특성상 약간 개나소나 적혀있는 면이 있는데, 그러나 세브첸코는 컴플리트 포워드의 요소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몇 안되는 선수였다.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플레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동료와 협업 플레이를 중시했던 그는 위치를 가리지 않고 뛰었으며 골 욕심이 크지도 않았다. 실제 1:1 찬스를 동료인 인자기에 넘기는 장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당시 그의 인터뷰는 "인자기가 컨디션이 좋아서"였다.
무결점 스트라이커라 불리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멀티 포지션 능력과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다. 소련 축구계의 명장인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감독에 의해 육성된 셰브첸코는 10대 시절부터 다양한 위치에서 포지션 소화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공격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플레이를 수준급으로 해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원톱과 투톱 모두 능숙하게 뛸 수 있었고,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와 보다 공격적인 파트너를 뒤에서 지원하는 처진 스트라이커 모두 가능했으며, 심지어 준수한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고속 스피드를 이용한 선수들이 종종 당하는 무릎 부상은 그도 피해갈 수 없었다.
2001-02 시즌 리그 14골, 부상의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2002-03 시즌 리그 5골은 많은 팬들의 우려를 낳는 결과였다.[8] 그러나 2002-03 시즌 챔스 4강에서 만난 밀라노 더비에서 과거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골을 성공시켰고, 다음 해인 2003-04 시즌 세리에 A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해 팬들의 불안을 불식시켰다.
그는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득점을 양산했는데, 이는 과거처럼 뛰어난 신체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1선과 2선을 오가며 패스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이쯤 영입된 카카가 역습시 팀 스피드를 더해 과거보다 셰브첸코의 스피드 부담이 줄었다.
리그에서는 꾸준히 20골 언저리를 기록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첼시로 건너가기 전 그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그의 기술적인 완성도와 반비례하는 피지컬 하락이다.
밀란은 멤버 서로가 서로의 특성을 잘 알아 손발이 맞고, 리그 적응도 필요 없다. 팀 내에서 확고한 위치에 있는 만큼 주전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러나 첼시는 당장 성과를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전 경쟁이 기본이었다. 젊었을 때라면 몰라도 부상을 당하고 나이를 먹으며 과거처럼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없게 된 셰브첸코에게 과격한 몸싸움이 난무하는 프리미어리그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더군다나 그는 당시에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동료들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부진과 부상, 적응 실패. 그리고 자신감 상실. 그의 이름과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그의 플레이가 수식되었고, 그는 잉글랜드에서 침몰했다.
4. 은퇴 이후
2012년 7월 은퇴 이후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 전진!' 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면서 일단 정계 진출은 무산되었다.또한 골프 선수로 전향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을 꿈꾸며 2013년 9월 12일 우크라이나 카르코프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 챌린지 투어 카르코프 슈퍼리어컵에서 데뷔전을 치뤘으나 셰브첸코는 참가 선수 중 최하위권인 공동 118위에 머물렀다.
5. 지도자 경력
2016년 2월 16일, 우크라이나 대표팀 코치로 임명되었다.5.1. 우크라이나 대표팀
유로 2016이 끝난 후 7월 16일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와 크로아티아에 덜미를 잡혀 결국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 실패했다. 그래도 경질되지는 않았고 계속 대표팀을 이끌았다.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리그 B 조별리그 1조에 체코, 슬로바키아와 한 조가 되었다. 그리고 3전 전승으로 조국을 UEFA 네이션스 리그 A로 12위안에 승격시켰다.
유로 2020 예선에서 2019년 11월 현재 5승 1무를 거두며 포르투갈과 세르비아를 제치고 조 1위로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첼시의 차기 감독이 토마스 투헬로 결정되면서 셰브첸코는 계속 우크라이나 대표팀 감독으로 남았다.
유로 2020 조별 리그에서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 패하고 북마케도니아에 승리하여 1승 2패로 조3위를 기록했으나, 조별리그 마지막 날 스페인이 슬로바키아에 대승을 거두면서 극적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진 16강 스웨덴과의 경기도 연장 후반 종료직전 아르템 도우비크의 헤딩골로 승리, 선수로서는 유로 첫 승을 따내고, 감독으로는 토너먼트 돌파에 이어 8강까지 보내는 기염을 토했다.[9] 비록 8강에서 잉글랜드한테 4:0으로 대패하며 대회를 마치긴 했지만, 그래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것만 해도 충분히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후 2021년 8월 1일,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 만료로 2016년 7월 공식 사령탑 부임 이후 5년 만에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대표팀 감독에서 퇴임한 이후에 야인으로 지내다가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셀틱의 감독 후보로 이름이 올랐다.#
5.2. 제노아 CFC
디마르지오에 따르면, 다비데 발라르디니의 후임으로 세리에 A의 제노아의 감독직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후 2024년 6월 30일까지의 감독 계약 오피셜이 나왔다.부임 후 첫 경기에서 주제 무리뉴의 AS 로마에게 2:0으로 패하며 첫 시작이 좋지 않더니 결국 첫 승을 거두지 못하고 무만 캐다 전반기를 마쳤다. 후반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리그에서 첫 승을 거두지 못하고, 제노아는 어느새 19등의 강등권으로 떨어지며 경질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선임됐지만 리그에서 아직 첫 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희망은 코파 이탈리아에서 결과를 내는 것이지만, 상대가 리그 2위팀인 AC 밀란, 심지어 원정 경기란게 문제였다.
2022년 1월 14일 열린 코파 이탈리아 16강전에서 밀란을 만나 분투했지만 테오 에르난데스와 하파엘 레앙의 캐리를 막지 못하고 1:3으로 패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이튿날인 1월 15일, 제노아는 3개월만에 셰브첸코를 경질했다. 통산 11경기 1승 3무 7패 리그에선 3무 6패를 기록하며 첫 클럽팀 감독 경력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발롱도르 수상 등 그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밀란 팬들은 오랜만에 산 시로를 찾은 셰브첸코를 환영하며 걸개까지 걸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밀란과의 경기가 그를 다시 야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6. 행정가 경력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 우크라이나 축구협회에서 일하던 그는 2024년 1월 25일, 우크라이나 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되었다.7. 기록
7.1. 대회 기록
- FC 디나모 키이우 (1993~1999, 2009~2012)
-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1994-95, 1995-96, 1996-97, 1997-98, 1998-99
- 우크라이나컵: 1995-96, 1997-98, 1998-99
- 우크라이나 슈퍼컵: 2011
- CIS컵: 1996, 1997, 1998
- AC 밀란 (1999~2006, 2008~2009)
- 세리에 A: 2003-04
- 코파 이탈리아: 2002-0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4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2-03
- UEFA 슈퍼컵: 2003
7.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004; 3위: 1999, 2000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04
- UEFA 올해의 공격수: 1998-99
- FIFPro 월드 XI: 2005
- UEFA 올해의 팀: 2004, 2005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1998-99, 2005-06
- UEFA 슈퍼컵 MOTM: 2003
-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1996-97
-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1998-99
- 세리에 A 득점왕: 1999-00, 2003-04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9-00
- 세리에 A 올해의 골: 2003-04
- 우크라이나컵 득점왕: 1994-95, 1997-98
- 우크라이나 올해의 축구 선수: 1997, 1999, 2000, 2001, 2004, 2005
- CIS컵 득점왕: 1997
- CIS컵 베스트 XI: 1997
- 팔로네 디아르젠토: 2003-04
- 독립국가연합 올해의 축구 선수: 2004, 2005
- FIFA 100: 2004
- ESM 올해의 팀: 1999-00, 2003-04, 2004-05
- 레키프 올해의 팀: 2004, 2005
- 골든풋: 2005
- AC 밀란 명예의 전당
- IFFHS 올타임 우크라이나 드림팀: 2022
7.3. 수훈
- 우크라이나 영웅: 2004
- Commendatore dell'Ordine della Stella d'Italia: 2018
8. 셰브첸코에 대한 헌사
모든 스트라이커들에게는 각각의 특징과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셰브첸코는 모든 걸 지니고 있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다.
동유럽의 호나우두? 호나우두가 남미의 셰브첸코입니다.
발레리 로바노브스키[10]
동유럽의 호나우두? 호나우두가 남미의 셰브첸코입니다.
발레리 로바노브스키[10]
우리는 오로지 1명에게 당했다.
루이스 피구
루이스 피구
그가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상대팀에게는 공포다.
루디 푈러
루디 푈러
우크라이나의 최고의 선수는 셰브첸코다.
안드리 야르몰렌코
안드리 야르몰렌코
9. 여담
- 첼시 시절 존 테리를 응급처치로 살려준 것 때문에 "의대 지망생이었다.[13] 20살 때부터 축구를 했다"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셰브첸코는 10살의 나이로 디나모 키이우의 유스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18살에 프로 데뷔를 한 선수다, 월간 포포투 2010년 10월호에 셰브첸코의 인터뷰에서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셰브첸코는 키이우 대학에 입학하려 했지만, 테스트에서 떨어지자 전차부대 대령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길 고민했다고 한다, 2달 뒤 디나모 키이우의 1군 선수가 되자 테스트를 보지도 않고 입학시켜 줬다고 한다.[14]
-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더불어 2000년대 초반 국내 해축팬들에게 일명 '4대 스트라이커'로 통했다. 이 넷 중 누가 제일 뛰어나냐는 떡밥이 종종 던져지지만 보통은 호나우두를 맨 앞에, 반니를 맨 뒤에 놓고 앙리와 셰브첸코 중 누가 나은지는 키배로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 앙리와 셰브첸코가 각각 아스날, 밀란에서 뛰던 시기까지는 서로 동급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였으나, 일단 가진 툴이 앙리가 더 많았고, 커리어적으로도 앙리가 아스날에서 리그를 정복하고 말년에 바르셀로나에서도 트레블 멤버로 수준급 활약을 펼친 반면, 셰브첸코는 밀란 시절까지는 앙리에게 밀리지 않지만 30세에 첼시에서 급격히 몰락하고 후에 밀란으로 복귀해서도 재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발롱도르 수상자임에도 전문가, 비전문가를 통틀어 앙리보다 다소 낮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디나모 키이우에서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빅클럽들을 상대로 선보인 활약과 챔스 득점왕 2회(1998-99, 2005-06 시즌) 등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퍼포먼스면에선 앙리보다 셰브첸코를 위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 첼시의 이른바 "고액 이적료로 첼시에 온 180cm 이상의 잘생긴 백인 공격수는 망한다"는 징크스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선수 시절엔 외모로도 나름 유명했다. 다만 2022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M자 탈모가 진행중인 것이 밝혀졌다.
주륵 - 어깨에 한자 정자체로 '大龍'이라는 문신을 새겼다. 셰브첸코가 태어난 해인 1976년이 용의 해라 새겼다고 한다.
- 한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부정하게 이탈리아를 꺾었다며 한국을 비난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인터뷰에서 해명했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는 안정환에 대해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안정환에게 굴욕아닌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15]
- 셰브첸코의 모국어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이고 이탈리아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한 탓에 이탈리아어도 잘 사용했지만 영어는 잘 못했다.[16] 우크라이나어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서 기자회견에서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아직 서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어를 중점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식석상에서 러시아어보다 우크라이나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언어들을 계속 공부하면서 선수 시절과는 달리 영어에도 꽤 능숙해졌다.
- 첼시로 이적한 2006년부터 가족과 함께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2006년에 첼시에 이적하고 태어난 둘째 아들이 첼시 유스에 입단했다고 한다. 셰브첸코의 아들이 장성하여 국가대표로 발탁될 실력을 갖춘다면 아버지의 나라인 우크라이나, 어머니의 나라 미국, 자신이 나고 자란 잉글랜드[17] 중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 추후 밝혀진 사항으로 이름은 크리스티안 셰브첸코이며, 야야 투레가 감독으로 재직 중인 토트넘 홋스퍼 산하 유스로 옮겼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18]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런던에 거주 중이기 때문에 아직은 영국에 있으며, 트라팔가 광장에서 있었던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였다.우크라이나는 내 조국이다. 항상 내 민족과 조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30년 동안 하나의 국가를 이뤘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의 나라,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승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 한때 친러 성향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지지자였고, 셰브첸코 본인도 친러 성향이 강했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전쟁 반대 성명을 내고 친러 성향도 버렸다.
-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15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피난처를 제공하고 난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
-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머니와 누나가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누구보다 소망하고 있다. 멀리 런던에서도 조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 반전 시위 등도 거리낌 없이 참여하고 있다. 조국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 우크라이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 전쟁이 끝날때까지 축구계로 복귀할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 우크라이나 정부가 세운 우크라이나 재건 펀드 UNITED 24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선수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우크라이나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나톨리 티모슈크처럼 유명세를 떨칠 당시 우크라이나어 표기법이 정립되지 않아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발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만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한민국 언론들에 우크라이나 지명들을 러시아어식 표기에서 우크라이나어식 표기로 교체해달라고 제안했고, 국립국어원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 자료를 누리집에 게재하면서 셰브첸코의 공식표기도 우크라이나어 발음에 더 가까운 '안드리 셰우첸코'로 확정될 가능성이 생겼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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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군나르 노르달 | Gunnar Nordahl | 221 | ||
2 | 안드리 셰브첸코 | Andriy Shevchenko | 175 | ||
3 | 잔니 리베라 | Gianni Rivera | 164 | ||
4 | 조제 알타피니 | José Altafini | 161 | ||
5 | 알도 보피 | Aldo Boffi | 136 | ||
6 | 필리포 인자기 | Filippo Inzaghi | 126 | ||
7 | 마르코 반 바스텐 | Marco van Basten | 125 | ||
8 | 주세페 산타고스티노 | Giuseppe Santagostino | 106 | ||
9 | 카카 | Kaká | 104 | ||
10 | 피에리노 프라티 | Pierino Prati | 102 |
[1] 우크라이나어 발음은 /(ɐnˈdrij mɪkoˈlɑjowɪtʃ ʃeu̯ˈtʃɛnko)/. 러시아어로는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솁첸코(Андре́й Никола́евич Шевче́нко)'가 된다.[2] 2022년 1월 15일 자 중도 경질.[3]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2위, 역대 최다 득점자.[4]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셰브첸코가 수아레스보다 신체 능력에 더 많이 의존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아레스는 33세~34세 시즌에도 아틀레티코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리그 MVP를 수상할만큼 상대적으로 기량 유지를 잘했지만 셰브첸코는 30세가 채 되기 전에 첼시로 이적했는데도 그대로 몰락해버렸다.[5] 셰브첸코와 비슷하게 운동 능력을 활용한 테크니션이었으나 운동 능력을 잃고 기량이 급격히 하락하며 전성기 시절의 절륜한 테크닉조차 투박했던 것으로 절하되는 케이스가 밀란 시절 동료였던 카카다. 다만 테크닉 대 테크닉으로 비교하자면 카카가 훨씬 화려하고 정교하기는 했다.[6] 요약하자면 세브첸코의 단독 돌파 능력은 테크닉은 적당히 준수하되 21세기 탑티어 테크니션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대신 엄청난 피지컬의 힘으로 동유럽의 호나우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돌파력을 보여줬다.[7] 단거리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찼다.[8] 이 때 당시 그는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부상도 그를 괴롭혔지만 그의 은사이자 정신적 지주인 발레리 로바노브스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9] 토너먼트 8강은 선수 시절 독일 월드컵에서 조국을 8강에 보낸 이후 두 번째이다.[10] 셰브첸코를 10대 때부터 지도하고 성장시킨 은사로 세브첸코의 축구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11] 위에 언급한 내용을 대변하듯이 다비즈는 셰브첸코가 가진 운동 능력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12] 아이러니한 것은 요한 크루이프가 셰브첸코의 급격한 폼 하락을 예언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13] 정작 의사 출신 축구 선수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황금의 사중주의 주장이었던 소크라치스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비적 실리축구 사조인 빌라르디즘의 카를로스 빌라르도도 의대 다니면서 축구 선수를 했다.[14] 입학 테스트에서 코치 몇명이 자신의 드리블과 다른 몇가지가 마음에 안들어 떨어졌다고 한다. 이 부분만 봐도 의대를 지망했다 라는것은 거짓임을 알 수있고, 어려서부터 복싱, 레슬링, 아이스하키도 할 정도로 스포츠 중독이었다고 한다.[15] 한국 기자가 "당신이 했던 비하는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었던 건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고, 당시 AC 페루자 칼초에서 뛰던 이류선수 안정환의 골로 이탈리아가 탈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라고 하자 셰브첸코는 "저는 안정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라고 했다.[16] 영어를 잘 못한 것이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부진에 일정 부분을 차지했지만 안드리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카를로스 테베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을 기록했었다.[17] 영국은 자국에서 태어난 뒤 10년 간 거주하고, 그 기간에 해외체류 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으면 국적을 부여한다. 2006년 이후로 줄곧 런던에서 거주하였다면 이 기준에 부합하여 세브첸코의 둘째 아들은 잉글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2000년에 영국 리즈에서 태어난 엘링 홀란은 6살이 되던 2006년에 영국을 떠나 노르웨이로 귀국하여 2019년까지 거주하였으므로 영국(잉글랜드) 국적이 없다.[18] 2월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총동원령에 의거 신체적, 정신적으로 군복무가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18~60세 남성이 병역특례 등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징집대상이 된다. 다만 해외거주자들은 개인 사정이 있기 때문에 안드리 루닌처럼 팀에서 비주전 혹은 전력외로 분류된 선수들은 바로 귀국절차를 밟고 있으나, 진첸코처럼 주전급 선수들은 좀 더 기다리는 모양새이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되면 결국 이들도 모두 귀국해야 한다곤 하는데 세계대전인 상황에서도 끝내 귀국 안 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본인이 귀국을 거부하고 버티면 안 갈 수도 있다.[19] 국립국어원의 결정과 별개로 피파 온라인 4는 런칭 이후 '안드리 셰브첸코'를 인게임에 사용했다가 우크라이나어 발음법을 인게임에 적용하면서 '안드리 셰우첸코'로 이름 표기를 변경했다.
분류
- 1976년 출생
- 키이우주 출신 인물
- 우크라이나의 남자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우크라이나의 남자 축구 감독
- FC 디나모 키이우/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첼시 FC/은퇴, 이적
- 우크라이나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제노아 CFC/역대 감독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우크라이나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12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발롱도르 수상자
- UEFA 유로 2020 참가 감독
-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
- 우크라이나 영웅
- 1994년 데뷔
- 2012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