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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르 전쟁 Angmar War | ||
시기 | T.A. 1356 - 1974년 | |
장소 | 에리아도르 전역 | |
교전 세력 | 아르세다인 카르돌란 깊은골 린돈 로슬로리엔 곤도르 | 앙마르 루다우르 |
지휘관 | 아르겔레브 1세† 아르벨레그 1세† 아라발 아라포르 아르베두이 에아르누르 프룸가르 키르단 엘론드 글로르핀델 | 앙마르의 마술사왕 |
병력 | 아르노르 군인 곤도르 군인 에오세오드 족 깊은골의 요정 린돈의 요정 갈라드림 호빗 | 앙마르의 군대 |
결과 | 자유민들의 승리 아르노르의 멸망 앙마르의 멸망 북부의 두네다인이 순찰자가 됨 에오세오드족의 안두인 대하 상류 정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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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시대 중반, 앙마르와 아르노르의 후계 세력들[1] 사이의 전쟁으로 600년 넘게 이어졌다. 이 전쟁으로 아르노르가 멸망했다.2. 전개
제3시대 1300년경, 1,000년 넘게 조용하던 마술사왕은 최전성기였던 남왕국 곤도르는 일단 놔두고, 분열되고 쇠약해진 북왕국 아르노르의 두네다인을 멸망시키기 위해 에리아도르의 최동북단 지역으로 이동하여, 카른 둠을 수도로 삼고, 안개산맥 동•서에 걸친 앙마르 왕국을 세운 뒤, 많은 사악한 인간과 오르크들을 앙마르로 불러 모았다.1349년, 아르세다인 왕국의 제6대 왕 말베길이 승하하고 아들 아르겔레브 1세가 제7대 왕위에 올랐다. 이 시대에 루다우르 왕국과 카르돌란 왕국에서는 이실두르의 후계자가 남아있지 않았음으로 루다우르의 지배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두네다인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루다우르에서는 앙마르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은 언덕인 영주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아르겔레브 1세는 바람마루를 요새화시켰다.
그러나 1356년,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앙마르와 루다우르 동맹군이 아르세다인으로 쳐들어 왔고, 아르겔레브 1세는 아몬 술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들 아르벨레그 1세가 제8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카르돌란과 린돈의 도움으로 앙마르-루다우르 동맹군을 격퇴하고, 바람마루를 수복할 수 있었다. 이후 수년 동안,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은 함께 바람마루, 동서로, 회색수원강 등의 국경지대를 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냈다.
2.1. 카르돌란과 루다우르의 멸망
하지만 1409년, 마술사왕이 이끄는 대규모의 앙마르군이 재차 아몬 술을 습격했고 이에 제8대 왕인 아르벨레그 1세가 전사했다[2] 아몬 술의 탑은 점령당한 뒤 방화되어 파괴되었으나, 그곳에 있었던 팔란티르는 안전하게 포르노스트로 옮겨질 수 있었다.루다우르는 앙마르를 추종하는 사악한 인간들에게 점령당하고, 남아있었던 두네다인은 모두 학살당하거나 서쪽으로 달아났다. 카르돌란 또한 앙마르에게 완전히 유린당했고 남은 두네다인들은 마술사왕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를 주조하여 서쪽 고분들의 언덕에서 저항했다. 그리고 오랜숲에 피난처를 세웠지만 마지막 대공마저 고분구릉에서 전사하고 묻히게 되었다.[3]
전사한 아르벨레그 1세의 아들 아라포르는 아르세다인 왕국의 제9대 왕이 되어 린돈, 깊은골(임라드리스), 로슬로리엔(린도리난드)의 요정들과 함께 북부 언덕과 포르노스트에서 앙마르를 몰아낼 수 있었고, 다시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1636년, 대역병은 마침내 백색산맥 남쪽의 곤도르를 거쳐 북쪽의 카르돌란까지 퍼졌다. 이 여파로 카르돌란의 마지막 두네다인은 씨가 마르게 되었다. 남북로는 오가는 사람이 뜸해지면서, 풀이 너무 자라 '푸른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역병은 진정되어 북부 아르세다인 지역은 피해를 덜입게 되었다. 마술사왕은 카르돌란의 부활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앙마르와 루다우르의 악령들을 보내어 살게 했다.
1851년, 앙마르가 다시 아르세다인으로 쳐들어왔으나, 린돈의 키르단과 깊은골의 엘론드가 보낸 지원군으로 앙마르를 물리칠 수 있었다. 아르세다인 왕국은 두네다인이 완전히 사라진 옛 카르돌란 지역을 회복하려 했지만, 앙마르의 악령들로 인해 실패했다[4].
2.2. 아르세다인의 멸망
1940년, 아르세다인과 곤도르는 오랜 단절을 깨고 관계를 회복하여, 아르노르의 아르베두이와 곤도르의 피리엘 공주의 결혼동맹까지 맺었다.[5] 두 왕국은 앙마르나 전차몰이족이나 모두 어떤 공통된 이의 조종에 의해 누메노르의 생존자들을 절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한 뒤 힘을 합쳐 대응하기로 했다.1945년, 곤도르에서 대전쟁이 일어났고, 직계 혈통이 끊기게 되었다. 이에 아르세다인의 왕자인 아르베두이가 곤도르의 왕권을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그 이유는 직접 왕권을 요구한 아르베두이의 병크도 있었지만 엄연히 방계 혈족이 존재했고, 또다른 동족 분쟁을 우려한 집사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곤도르 항목 참조.[6]
1973년, 아르베두이는 위기를 감지하고 앙마르의 침공에 대비하여 곤도르의 에아르닐 2세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이에 에아르닐 2세는 아들 에아르누르를 사령관으로 삼은 대함대를 린돈의 회색항구로 파견했다. 그러나 얼마 전 동부인들과의 전투에서 온도헤르 왕과 왕자가 모두 죽는 등 곤도르의 북부군 주력이 소멸하는 심각한 대참사가 있었기에 지원군은 늦어졌다.
1974년, 한겨울에 마술사왕의 앙마르군이 대규모로 쳐들어왔다. 샤이어의 호빗들까지 궁병으로 참전하여 싸웠지만 모두 패배했고, 마술사왕은 마지막 심장부인 포르노스트로 진격했다. 아르세다인 최후의 군대가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결국 성문은 뚫렸고 골목마다 시체가 쌓이는 시가전이 벌어졌다. 아라나르스 왕자[7]와 시민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남은 병력과 근위대는 끝까지 남아 최대한 적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대부분이 전사했지만 그래도 상당수가 룬 강까지 피신할 수 있었다. 한편 끝까지 남아 저항하던 아르베두이는 결국 퇴로가 막혀 린돈으로 향하지 못하고 북서쪽의 한대 지방인 포로켈 빙만으로 달아났다. 그곳에 사는 롯소스인들은 앙마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달갑지 않았지만 왕을 불쌍히 여겨 먹을 것과 머물 곳을 마련해주었다.
이로써 북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마지막 후계 국가인 아르세다인의 멸망으로 에리아도르에서 두네다인은 극히 소수가 되었고, 전체 인구도 크게 줄어들었다.
1975년 3월, 키르단은 자신에게 도망쳐온 아라나르스로부터 소식을 듣고 아르베두이를 구출하기 위해 배를 보냈지만 아르베두이가 탄 배는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다. 원래 배가 떠나기 전 포로켈인들은 여름까지 기다린 후 떠나라고 조언했었다. 결국 아르베두이가 탄 배는 빙산과 부딪쳐 침몰했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포르노스트와 아몬 술의 팔란티르도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2.3. 포르노스트 전투
1년 후인 1975년에 벌어진 포르노스트 전투때 곤도르의 대규모 원군이 도착했고 곤도르+아르노르 잔여병력+린돈의 요정+호빗 궁병의 조합은 북부 평원으로 나온 마술사왕의 군대를 말 그대로 개박살내버렸다. 이 한번의 전투로 악의 왕국 앙마르는 멸망했다.전투 후 연합군에게 수복되었지만 이미 잿더미가 되었고, 이 지역, 즉 에리아도르의 두네다인의 힘도 크게 쇠락했기 때문에 결국 버려져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3. 이후
아르베두이의 아들이었던 아라나르스가 제1대 족장이 되었다. 이들 순찰자들은 대부분 경계지역[8]에 거주하면서, 갈색과 녹색의 낡은 복장을 하고 순찰자로서 에리아도르의 경찰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의 족장은 이실두르의 후계자여야 했으며, 그 아들들은 안개산맥의 서쪽에 있는 깊은골에서 엘론드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에리아도르의 대부분은 순찰자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반지전쟁 당시에는 떠돌아 다니는 위험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히 이실두르의 혈통을 잘 지키고 있었고, 마지막 족장이었던 아라고른이 마침내 왕위에 올라 아르노르-곤도르 통합 왕국을 세우게 된다.
[1]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2] 아몬 술의 경우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을 잇는 요충지이자 포르노스트를 지키는 핵심방어구역이었다.[3] 그러나 이 마지막 대공은 카르돌란의 마지막 지도자가 아니었다. 카르돌란은 그 뒤로도 대역병이 오기 직전까지 한참을 더 버텨냈기 때문이다. 대공의 전사 이후 카르돌란의 정치체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톨킨이 써 놓질 않았기 때문에 이 대공이 왜 마지막 대공이라고 불리는 지는 불명으로 남아 있다.[4] 앙마르의 유령이 나오는 고분군은 사르바드와 거리가 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역병에 휩쓸린 카르돌란의 중심지들과 옛 북왕국의 남쪽 지역이 아르세다인과 연결되는 것을 유령들로 막어버렸다는 것이 옳다. 일례로 사르바드는 북왕국의 완전한 멸망 이후 한참 후에야 대홍수로 파괴되었다. 형제 국가의 멸망 및 그 잔여 지역의 회복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로 전쟁이 지속되자 아르세다인의 전쟁 피로도는 급격히 올라가 전쟁수행능력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부터 툭하면 왕이 죽는 등 영좋지 않았다.설사 유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카르돌란 지역을 회복할만한 능력이 있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5] 이로써 아르베두이의 장자이자 훗날 첫 번째 두네다인 족장이 된 아라나르스는 엘렌딜의 아들들인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피가 몸 속에 흐르게 되었다.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피를 이어받은 아라나르스의 피는 먼 훗날 아라고른 2세로 이어지게 된다.[6] 옛 누메노르의 법도를 따라 아내를 여왕으로 올리려 했다면 집사나 그 다음 계승자인 에아르닐이나 반박할 여지가 없었지만 아르베두이는 자신이 직접 왕권을 주장했기 때문에 큰 반발을 부르게 되었다. 엄연히 아나리온 가문 사람인 전쟁 영웅 에아르닐이 살아 있는 마당에 굴러들어온 아르베두이가 국왕이 된다면 제2의 동족 분쟁이 일어나 왕국의 멸망을 불러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집사는 결국 반대하고 에아르닐의 편을 들게 되었다.[7] 아르베두이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였으며, 최초의 두네다인 족장이었다.[8] 옛 루다우르 지역과 파괴된 도시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