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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23:34:22

에드워드 티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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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colcolor=#fff> 에드워드 티치
Edward Teach
파일:501px-Edward_Teach_Commonly_Call'd_Black_Beard_(bw).jpg
별명 검은 수염
Blackbeard
출생 1680년
잉글랜드 왕국 브리스톨 (추정)
사망 1718년 11월 22일 (향년 38세)
노스캐롤라이나 식민지 오크라코크
(現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오크라코크)
직업 해적
활동 1716년 ~ 1718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12px-Pirate_Flag_of_Blackbeard_%28Edward_Teach%29.svg.png
검은 수염의 해적기.[1]

1. 개요2. 특징3. 생애4. 창작물5. 여담
[clearfix]

1. 개요

18세기 초반 카리브 해에서 활동했던 잉글랜드 왕국 출신 해적. 이름보다는 검은 수염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해적의 대명사격 인물이나 정작 그 악명에 비하면 그가 유명해져 날뛴 기간은 해적임을 감안해도 겨우 두 해 밖에 안 된다. 말 그대로 짧고 굵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포브스 지의 보도에 따르면 티치는 해적 생활 동안 2008년 가치로 환산하여 총 1,250만 달러[2] 어치를 털었고 이는 역대 해적 순위에서 10위에 해당한다.

2. 특징

치렁치렁한 검은 수염을 길렀던 것으로 유명하며, 그래서 별명이 검은 수염(Blackbeard)이다. 많은 통속화가들에게 묘사된 티치의 외모는 이후 흉악한 해적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되었으며 이러한 독특한 특성 때문에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적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큰 키와 커다란 덩치였으며 두 개의 검과 6자루의 권총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3] 또한 럼주에 화약을 섞어 마셨다고 전해진다. [4]

다른 해적들과는 다르게 포로를 즐거움이나 재미로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이미지를 위한 것으로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라 불렸으며 티치는 상대방이 싸움 없이 항복하기를 원했고 반항 없이 포기하면 귀중품, 항해 도구만 가져갔으며 도망간다면 추적하여 밤이 되면 급습해 배를 태웠다고 한다.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남기는데 주력했는데, 악마처럼 보이기 위해 적들 앞에서는 불붙인 도화선을 모자 밑에 찔러넣어 등장했다고 한다. 위의 이미지에도 나타나 있다.

3. 생애

잉글랜드 왕국브리스톨에서 태어난 티치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에 프랑스 왕국스페인의 함선을 공격하는 영국 함대에 승선했었으며, 1713년에 전쟁이 끝나자 바다의 해적으로 남아 유명한 해적인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해적선 승무원이 되었다.[5]

1713년부터 해적질을 시작하여 자메이카에서 슬루프형의 배를 지휘했으며 1716년에는 약간의 승무원을 지원받아 작은 배를 공격하거나 선장인 호르니골드를 지원하였으나 1717년부터는 서로 떨어져서 동맹관계를 유지하였다.

1717년 11월에 호르니골드와 함께 26문의 함포가 탑재된 프랑스 국적의 노예 운반선인 콩코드를 나포하고 영국 왕 조지 1세가 모든 해적들에 대해 해적 행위를 중단하라는 특사를 보내어 용서를 조건으로 했지만 티치는 호르니골드와는 달리 이를 거절하고 콩코드를 함포 40문으로 개조하여 기존의 선원 300명을 태우고 배의 이름을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라고 지었다.

자메이카 출신의 해적인 스티드 보넷을 만나 동료로 편입하였으며, 1717년부터 1718년 겨울까지 해적질을 위해 2척의 배를 이끌고 카리브해로 향했다. 미국 동쪽 해안선을 따라 2척의 배를 나포하여 해적 선단에 포함시켜 봄이 되자 4척의 함대를 거느리며 40척이 넘는 배를 약탈했다.

그러나 5월에는 기함인 <앤 여왕의 복수>호가 보포르 해협에서 모래톱에 걸려 좌초되고 이를 끌어내려고 했던 슬루프선까지 잃어버리는데 모래톱에게 고립된 선원들을 보넷에게 부탁하고 전리품과 보석 등을 싣고 가면서 돌아올 것을 약속했으나 배신을 하고 도망간다.

보넷을 내버려두고 도망친 후에는 항해를 계속하다가 노스 캐롤라이나의 지사인 찰스 에덴으로부터 용서를 받지만 또다른 해적인 캘리코 잭이라 불리는 존 래컴을 만나면서 함께 해적행위를 계속하였다. 이에 선박들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버지니아의 지사인 알렉산더 스포츠우드는 더는 묵과할수 없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해 토벌에 나섰다.

1718년 11월 21일에 오크라코크(Ocracock) 해협에서 그를 토벌하러[6] 온 영국의 슬루프형 군함 2척에 의해 포위되어 영국 해군의 로버트 메이나드 중위가 지휘하는 해군에게 습격을 받았으며 여기서 벌어진 전투 때 싸우다가 메이나드와 영국군 수병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7] 이 전투에서 에드워드 티치와 메이나드 중위는 전설적인 둘만의 결투를 벌였다고 전해지는데, 메이너드 중위가 승선했던 진주호의 존슨 선장의 증언을 따르면 '질풍같이 싸워서 25곳에 상처를 입고 죽었는데 다섯 곳은 총상이었다'고 한다.

사망 후 몸은 버려졌고 머리는 메이나드의 슬루프인 '진주호'의 바우스프릿에 대롱대롱 걸어놓았다고 한다. 항복한 티치의 부하 16명은 영국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16명중 2명은 살기위해 어쩔수 없이 해적이 된것이 참작되어 풀려났으나 나머지 14명은 모두 사형이 선고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배인 <앤 여왕의 복수>호는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보퍼트만 근처에서 1996년에 발견되어 미국 국립사적지로 등록되어있다.

4. 창작물

파일:external/cf.geekdo-images.com/pic164665.jpg
보드게임 가운데 해적을 다룬 게임이 있다.

5. 여담

배준식이 부진할 때 수염이 난 뱅의 사진과 함께 검은수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해적 만화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 해적이다.[11] 애초에 그의 사후부터 창작자들이 해적 캐릭터를 만들 때 대부분 티치를 모티브로 다루었기에 창작자들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해적일 수밖에 없다.


[1] 해적기라고 하면 보통 두개골에 뼈를 교차시킨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티치의 해적기처럼 다른 형태의 해적기도 많았다. 졸리 로저 문서 참고.[2] 현대 한화 150억 원[3] 이는 당시 권총의 단점을 알아야 한다. 당시의 권총은 지금처럼 후장식 탄창형 권총이 아니라 머스킷을 줄인 전장식이라 베테랑도 장전에 20초가 소모될 정도로 무지하게 느렸다. 활강식+짧은 총열+떨어지는 화약의 위력+젖으면 못 쏜다+플린트락 특유의 높은 불발률이라는 환장의 콜라보는 덤.(흑색화약은 습기에 취약할 뿐더러 그 스스로도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요즘의 무연화약도 젖으면 그 순간 쓸모없는 가루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당시 권총은 전투 시에는 사실상 한 발 밖에 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비단 티치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로 웬만하면 권총을 여러 정 차고 다녔다. 심지어 리볼버가 발명되고 나서도 여전히 장전이 느린 전장식 리볼버라(콜트 M1851을 예로 들자면 우선 6개의 약실에 화약과 탄환을 따로 채워준 후 꽂을대로 꼬박꼬박 탄환을 눌러담고, 약실 뒤에 퍼커션 캡을 하나씩 채워줘야 한다. 당연히 장전이 느릴 수밖에.)리볼버의 주 사용 원인 장교나 기병들은 여전히 총을 여러 정 차고 다녔다. 진짜로 병사와 장교들이 권총을 한 자루씩 들고 다니는 시점은 후장식구조와 탄피, 더 나아가 탄창이 권총에 적용될 시점부터다.[4] 다만, 럼주에 화약을 섞어 마시는 행태는 남미에서는 상당히 흔하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전선으로 보내질 칠레군 병사들에게 흑색화약과 럼주를 섞은 술을 배급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일종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음료로 널리 애용되었다고 한다. 이걸 먹어본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위로 게워냈다거나, 사흘간 아래로 게워냈다는 이야기만 기록했고, 맛 이야기는 도무지 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정말 화약이 폭발하듯 속이 뒤집어진다나? 그런데, 자주 먹어서 익숙해진 거친 병사들은 잘 먹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기록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장교로 징병된 사람이 평소 가족이나 연인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써 줘서 병사들에게 인망을 얻었는데, 전선으로 투입되기 직전에 병사들이 비리비리하고 남자답지 못한 화이트칼라 장교가 전쟁터에서 죽을까봐 걱정된다고 '남자를 만드는' 화약 섞은 럼주를 먹였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 장교는 설사하다가 체력이 떨어져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바리에이션으로 "소금 대신 화약을 친 고기"가 있다. 화약에 짠 맛이 나는 질산칼륨이 포함되어 있기에 소금 대신 쳐서 먹는 것이다. 선상에서 고기란 염장고기와 동의어였으니 해적들이 이렇게 먹진 않았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동원된 프랑스 병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동사한 말의 살점에 화약을 쳐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런 고기를 먹은 사람치고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패주하던 프랑스군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단락.[5] 티치의 경력이 특이한게 아니라 당시 유럽의 뱃사람들 대부분이 이랬다. 지난번엔 군함에서 총들고 전쟁하던 군인이 이번엔 해적선에서 약탈을 하고 다음번엔 여객선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식.[6] 산채로 잡거나 죽이라는 명령이었다고 한다.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토벌하라는 것이다.[7] 이때 티치의 부하 12명도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메이나드의 영국 해군도 전사자가 8명에 부상자가 20명이 나왔는데 이들중 3명이 장교였으며 메이나드의 함선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더이상 군함으로 쓸수없을 정도였다.[8] 배심원들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한데, 베네딕트 아놀드, 리지 보든, 존 윌크스 부스, 존 딜린저, 리처드 닉슨[9] 호머가 마지와 결혼하면서 "사랑하는 마지, 결혼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가 당신한테 줄 수 있는 것은 내 영혼 뿐. 내 영혼은 영원히 당신 거야."라고 써서 준 쪽지인데, 악마 편을 들려던 배심원들은 이 쪽지를 보고는 만장일치로 호머 심슨의 영혼은 마지 심슨의 소유물임을 확신한다고 선언해버렸다.[10] 플레이어가 정부측인 식민지 총독이고 직접 통제하므로 정확히는 사략행위를 하기에 사략선이 더 알맞다.[11] 등장인물 중 에드워드 뉴게이트, 삿치, 마샬 D. 티치 등이 에드워드 티치를 의식한 캐릭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