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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3137E><colcolor=#fff> 이은하 李銀河 | Lee Eun-ha | |
출생 | 1961년[2] 3월 29일 ([age(1961-03-29)]세)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B형 |
데뷔 | 1973년 노래 '님 마중' (데뷔일로부터 [age(1973-01-01)]주년) |
가족 | 사촌동생 김정은 |
종교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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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2. 가수 활동
1973년에 '님마중'으로 데뷔하였다. 브라운관에는 1975년 동양방송에서 그 해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는데, 그 전에는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이 엄격해서 억지로 나이를 올려서 출연한 것이다. 첫 데뷔곡이 방송을 타지 못했고, 이은하 본인도 밤무대에서만 부를 수밖에 없어 그닥 유행세를 타지 못한 데 비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방송을 타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당시에 한영애를 제외하고 보기 드문 허스키한 보이스로 내지르는 시원한 가창력에 연예계가 집중했다. 방송 풍조상 TBC 전속[3]으로 활동했지만, 이후 1977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처음 10대 가수에 들고 1985년까지 들면서 10년 연속 10대 가수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4] 이 시기 함께 10대 가수에 든 혜은이와 쌍벽을 이루며 여자 가수의 양대 산맥으로 활동했고, 비교적 다른 노래 스타일과 분위기로 둘이서 70년대 말을 풍미했다.이후, 같은 해 1976년 '최진사댁 셋째딸'[5]과 1977년 '밤차'[6],1978년 ‘겨울장미’, 1979년 '아리송해', '봄비', '당신께만'이 연속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70년대 말에 TV든 라디오든 어느 채널이라도 틀었다 하면 이은하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TBC는 당시 한국 방송계에서는 따라잡을 주자가 없을 정도로 쇼 오락 프로그램 부문에서는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던 곳이었고, MBC에서도 일본의 후지 테레비와 제휴하며 맹추격을 하고 있었다. 이 두 곳의 예능계를 확 잡고 있었으니,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획책한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980년 11월의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양방송과 동아방송이 한국방송공사에 강제로 통합되면서 이은하의 가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오는데, 방송국이 하나의 소속사를 겸하던 당시 풍조상 이은하에게 소속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는 현실은 크나큰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그 밖에 최진희, 한혜경, 정윤희, 이순재, 사미자, 송해 등 TBC 소속의 유명 연예인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을 기해 동양방송은 송출 종료 후 모든 사업이 KBS로 이관되었고, 이날 밤 고별 특집 방송으로 편성된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통해 소속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은하는 이 자리에서 방송 데뷔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이 메여 노래를 완창하지 못했다. 당시에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거나 연말 가요제에서 가수왕으로 뽑혔을 때 터져나오는 특별한 감정 상황을 제외한다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제법 큰 방송사고였다. 그 결과로 보안사령부로부터 찍히는 바람에 3개월간 방송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어 다음 날인 12월 1일에 KBS에서 진행한 통합 기념 특집 방송에서는 출연이 제외되었다.[7][8]
출연이 재개된 이후에는 ’네가 좋아‘, '바람에 구름 가듯'을 통해 당당히 등장했는데, 1982년 조사된 연예인 인기 랭킹에 따르면 이은하는 남궁옥분에 이어 2위로, 이미자, 혜은이보다 순위가 높았다. 이후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해 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 1984년 방송가 가요대상을 휩쓸고, KBS 가요대상까지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기 이른다. 이후 1985년 김창남이 작곡한 슬로우 팝 형식의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와 장덕이 작곡해 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긴 곡명으로 유명세를 탄 데다가, 팝 발라드 형식에 이은하의 시원한 가창이 가미되어 기록적인 대히트를 기록하며 연예계 커리어의 정점을 기록했다. 70년대에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조금 미숙함의 탁성이였다면, 80년대에 들어서는 조금 더 안정되고 파워풀한 허스키 보이스로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다.
1986년에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발매했지만 당시 공포의 외인구단 OST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정수라의 '난 너에게'에 밀려 10관왕에 실패하게 되었다.
1989년, 이은하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돌이키지마'로 마지막 부흥을 끌어올렸다. 전영록이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로 선물해준 곡이라고 한다.[9][10]
1990년대 초에 건설 회사 사장이던 아버지가 빚 보증을 이은하의 명의로 서서 그로 인해 20억 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되었다. 이때문에 90년대 당시 시세가 8억 원에 달하던 서울 자택까지 다 넘어가게 되었지만 밤무대까지 뛰며 아버지의 빚 20억을 모두 갚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1992년에는 탈출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기를, 노래를 하는 시간만큼은 빚을 갚고 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 현실과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의미에서 이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이 앨범은 그닥 히트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희귀반이 되어 현재도 시중에 돌아다니는 앨범 현물이 거의 없고, 있어도 비매품이나, 굉장히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번에는 2015년에 다시 사업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그것도 잘 안되어서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아 면책 절차를 밟았고, 결국 2020년이 되어서야 모든 빚을 다 갚게 된다. #
가수들은 원래 무대에서 자주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며 부상을 당한 뒤 회복되기까지 충분한 휴식과 치료를 해주면 금세 회복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가수 활동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쉴 수 없는 상황인지라 수술 대신 스테로이드[11]를 계속 맞았는데,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쿠싱 증후군이 생겨 살이 30kg 이상 쪄 상단의 사진처럼 180도 다른 모습이 되었다. 이 때문인지 이 시기에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를 휩쓸던 대가수의 위상이 무색하게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
다행히 2020년에 들어서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가창력 역시 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그해 4월 25일 불후의 명곡 가요톱10 골든컵 특집에 출연[12]하였는데, 비록 투병으로 인해 외모는 과거와 달라졌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보여주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 날 그녀가 부른 곡은 임희숙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이후 2020년 10월 10일에 가요톱10 골든컵 특집 2편에 출연하였다.
2021년에는 다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고 경기도의 사찰에 머물며 요양 중이다.
2022년에는 쿠싱 증후군의 원인인 스테로이드는 모두 빠져나갔다고 하며[13], 체중 조절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서 살만 빼면 된다고 했었지만 후유증으로 양쪽 무릎의 연골이 심하게 마모되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이때문에 거동이 쉽지 않아서 다이어트는 잠시 중단했었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강행했던 2023년 초 활동영상과 휴식기 이후 연말 활동영상에 몸 상태 차이가 크다.
2023년부터는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으며 하반기에 예정되어있던 데뷔 50주년 콘서트 대신 팬미팅을 진행했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 정신력과 의지에 있어서는 일반인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면모를 보여준다.
3. 대표곡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1976) (1982년 12월 31일,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14] |
당신께만 (1979) (1981년 12월 30일, 1981년 KBS 가요대상) |
아리송해 (1979) (1980년 3월 3일, KBS 공사창립특집기념 봄이 왔네)[15] |
한순간 (1981) (1981년 12월 31일, 1981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
네가 좋아 (1982) (1982년 12월 30일, 1982년 KBS 가요대상) |
바람에 구름 가듯 (1983) (1983년 12월 30일, 1983년 KBS 가요대상) |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1984) (1984년 12월 30일, 1984년 KBS 가요대상)[16] |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1985) (1985년 12월 30일, 1985년 KBS 가요대상)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1986) (1987년 4월 11일, KBS 쇼특급) |
돌이키지마 (1989) (1990년 12월 30일, KBS 가요톱10) |
- 1973년 님마중 - 데뷔곡
- 1976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위에서 언급한 대로 1980년 11월 30일 동양방송 고별방송 때 이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려서 3개월 동안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 1976년 최 진사댁 셋째 딸
- 1977년 밤차
- 1978년 겨울장미
- 1979년 아리송해
- 1979년 봄비 - 당시 희대의 히트곡이었지만, 작곡가가 MBC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었기에 당시 KBS에선 방송금지였으며, 이듬해 1980년부터 방송되었다.
- 1979년 당신께만
- 1981년 한 순간
- 1982년 네가 좋아
- 1983년 바람에 구름 가듯
- 1984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 1985년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 1986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1987년 안녕! 여보세요 -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언급되며 극중에서 엔딩곡으로도 활용되면서 큰 여운과 반향을 남기고 있다.
- 1988년 청춘 - 김창완 작곡. 1984년 16집에 같은 노래가 실어져 있는데 산울림의 '청춘'을 리메이크한 노래이다.
- 1989년 돌이키지 마
- 1992년 탈출
4. 정규 음반
- 1973년 1집 나의 별
- 1973년 2집 알다가도 모를 일
- 1975년 3집 고향
- 1976년 4집 아카시아 꽃 필 때
- 1976년 5집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1977년 6집 안 오면 싫어
- 1977년 7집 그 어느 날 밤
- 1978년 8집 복순이
- 1978년 9집 밤차
- 1979년 10집 아리송해
- 1980년 11집 초혼
- 1980년 12집 사랑의 그림자
- 1981년 13집 한 순간
- 1982년 14집 네가 좋아
- 1983년 15집 바람에 구름 가듯
- 1984년 16집 사랑도 못해 본 사람은 - 해당 곡은 김창완의 작품집으로, 타이틀곡 전주에 '긴기라기니' 표절 시비가 있어서 89년 베스트에 등장할 때는 재편곡된 트랙을 수록했다.
- 1985년 17집 잊자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 1986년 18집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장덕 작곡
- 1987년 19집 여심
- 1988년 20집 청춘
- 1989년 21집 돌이키지 마 - 전영록 작사, 작곡
- 1992년 22집 탈출
- 1997년 23집 내게 미소를
- 2007년 24집 드라마
- 2012년 25집 내 노래
5. 출연작
5.1. 영화
- 1982년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
- 1990년 영심이
- 1991년 돈키호테 형래와 산쵸 특공대
5.2. 드라마
- 2013년 KBS 드라마 스페셜 - 불침번을 서라
- 2013년-2014년 KBS 사랑은 노래를 타고 - 고은하 역
- 2014년 KBS 트로트의 연인
5.3. 예능
- 2020년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가요톱10 골든컵 특집
- 2021년 사랑의 콜센타
- 2022년 화요일은 밤이 좋아
- 2022년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5.3.1.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rowcolor=#fff> ▲ 불티 | ▲ Change | ▲ 아름다운 강산 |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힌 뒤에는 "섭외 연락은 작년부터 계속해서 받아왔는데, 떨어질까봐 출연을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고 출연을 했다고 밝혔다. 가왕의 노래를 바로 옆에서 들으니 테크닉이 너무 좋고 노래를 너무 잘한다. '이런 후배가 있었네?'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다" 라는 소감을 남겼다. 이에 이어서 "저 아직 목소리 살아있다고 알려드리기 위해서 출연했다" 라며 출연하게 된 계기를 밝혔으며, "10년 정도 더 목소리 관리를 꾸준히 하면서 현재 목상태를 잘 유지해서 콘서트를 하고 싶다. 저는 할게 노래밖에 없다" 라는 열정과 진심이 담긴 소망을 전했다. 그 이후 특별 무대로 자신의 히트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부르고 퇴장했다.[17]
에메랄드는 단발성 가왕! 나는 장기 가왕~ 단발머리 소녀 | ||||||
<rowcolor=#fff> EP. | 방송 날짜 | 곡명 | 원곡자 | VS. | 득표수 | 환산 |
155-1 | 2021년 5월 30일 | 불티 | 전영록 | 긴 생머리 그녀~ 눈 감아도 생각나네! 긴 생머리 아가씨 | 20 | 94 |
155-2 | 2021년 6월 6일 | Change | 조장혁 | 귀엽다고 방심은 금물! 황금가면 앞에선 사나워집니다! 개조심 | 18 | 85 |
155-3 | 아름다운 강산 | 신중현 | 저는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18 | 85 | |
155-K | 탄생석 받고 가왕석으로! 5월의 에메랄드 | 10 | 47 |
5.4. OST
5.5. CF
6. 수상 경력
- 1977~1985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 1978~1979년 KBS 인기가수 청백전 10대 가수
- 1978년 TBC 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상
- 1979년 TBC 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상
- 1979년 KBS 인기가수 청백전 최고 인기 가수상
- 1979년 자랑스러운 성북 시민상 표창
- 1981년 KBS 세계 가요제 우수 가창상
- 1984년 제2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주제가상
- 1984년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
- 1985년 MBC 우리들의 스타상 인기 부문
- 1996년 미주 한인회 중남부총연합회 감사패
- 1998년 미국 애틀랜타 한인청소년센터 감사패
- 2012년 3회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7.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10회 1위 | |||
<rowcolor=#fff> 날짜 | 방송명 | 곡명 | 비고 |
1981년 | |||
7월 23일 | KBS 가요톱텐 | 한순간 (5회) | |
7월 30일 | |||
8월 6일 | |||
8월 13일 | |||
8월 20일 | 5주 연속[18] | ||
1985년 | |||
1월 13일 | KBS 가요톱텐 |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5회) | |
1월 20일 | |||
1월 27일 | |||
2월 3일 | |||
2월 10일 | 5주 연속 골든컵 |
8. 여담
- 원래 '립스틱 짙게 바르고'도 이은하가 부를 예정이었다고 하며, 임주리가 작곡가 김희갑의 집에 놀러 갔다가 대신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 데뷔 당시 본명은 이효순이었고 예명이 이은하였으나 개명하였다.
- 나이를 속인 탓에 연예인들 간에 족보를 꼬이게 만든 대표 연예인으로 자주 회자된다. 예컨대 1959년생인 이성미는 근 30년 동안 이은하를 언니로 불렀다가 자기보다 연하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꽤 발끈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방송에서 고백했다.[19]
[1] 1981년부터 KBS 가요대상으로 승계[2] 한동안 1958년생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2007년에 1961년생으로 정정했다.[3] 물론 풍조 상이지, 방송국은 전속 가수는 두지 않았다.[4] 11회 이미자, 10회 전영록 다음이며, 연속으로 따지면 10년 연속인 전영록에 이은 2위이다.[5] 민요를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지만, 드럼 특유의 혼신의 박자 쪼개기와 경쾌한 반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는 힙함을 보여주는 곡이다. 조영남이 미국 곡을 번안하여 수입했으나, 민요적 성격 때문에 후에 민요풍으로 편곡되었다. 이은하 외에 많은 가수들이 커버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6] 이 곡에서 선보인 찌르기 춤으로 이은하의 유명세가 한층 강해졌다.[7] 그 밖에 함께 노래를 부른 박경애도 등장하지 못했다. 혜은이의 경우는 오히려 MBC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보복성이라 보기에는 어려우나 축하공연으로는 출연하였다. 이 날 방송은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컬러 방송이 정식 송출되었던 방송이다.[8] 그러나 1981년 1월 1일에 방송된 올스타 민속놀이 청백전에 나와 까투리 사냥을 부른 것으로 보아 출연정지 기간 중 2개월은 면제한 듯하다. 이는 박경애도 마찬가지.[9] 재미있는 부분은 돌이키지마의 후렴이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후렴과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두 곡 다 전영록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이 가장 우세하다.[10] 뿐만 아니라, 이은하의 곡들은 파워풀하고, 음이 생각보다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가수가 아닌 일반인이 자유자재로 부르기에도 쉽지 않고, 또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다면 굉장한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특히나 '돌이키지마'는 곡 전개가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어려운 곡 중 하나이다.[11] 당질 코르티코이드 종류로 염증을 잡아주는 만병통치약이라 불릴 정도로 효능은 좋지만, 부작용이 심한 편이라 절대 남발하면 안 된다.[12] 불후의 명곡에는 주로 아이돌이나 2~30대 가수,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골든컵 특집에는 정수라, 김범룡 등 중견 가수들이 출연하였다.[13] 쿠싱 증후군 특성상 체내 스테로이드가 모두 빠지지 않으면 체중이 감소하지 않는다.[14] 이은하의 방송 데뷔곡, 1980년 TBC 고별방송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울먹거려 출연정지라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15] 1979년 TBC 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상을 수상[16] 1984년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 수상[17] 만약 그녀가 가왕이 되었다면 복면가왕 역사상 최초로 한 가정에서 2명의 가왕을 배출하는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2021년 듀엣대전 특집에서 탄생한 가왕인 형제의 난은 처음부터 남매 팀으로 출연을 했고, 정식 가왕이 아니므로 논외.[18] 이때는 골든컵이 없었다.[19] 예컨대 두시탈출 컬투쇼 2009년 10월 10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