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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21:39:56

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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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형태 '약초 유리온실 야경'[1]

| greenhouse
1. 개요2. 역사3. 대한민국의 온실의 역사4. 온실 안 화초5. 여담

1. 개요

온실()은 난방 장치가 된 공간, 또는 식물이 잘 자라게끔 적합한 기후습도가 맞춰진 공간을 말한다. 염가형 및 개량형으로 비닐하우스가 있다.

2. 역사

환경적으로 통제된 구역에서 인위적으로 온도 등을 조절하여 식물을 기르는 방식은 고대 중국이나 로마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염철론에 따르면 태관(太官)[2]에서는 온실에서 잿불로 온도를 높여가며 생육을 촉진하여 겨울에도 부추, 아욱, 파 등을 재배하였고 이러한 온실 재배는 황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행해졌으며 한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해진다. 한편 고대 로마에서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오이를 1년 내내 기르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화분이 담긴 수레에 오이를 심고 아침에는 밖에서 태양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후, 기름칠한 면섬유인 스페쿨라리아(specularia) 혹은 석고유리로 된 지붕이 있는 집에 보관했다. 중세에는 1619년 무이젠버그가 쓴 책 '온실의 역사(A history of greenhouses)'와 같이 독일에서 다시 구체화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낭만주의자연주의가 유행하면서 식물을 기르는 온실 역시 급속히 발전한다. 큐 왕립 식물원과 같이 식물원을 중심으로 거대 온실 건축물들이 등장하며 기존의 농업용 목적 외에도 다양한 식물을 보여주는 정원으로써의 기능이 더욱 부각된다.

3. 대한민국의 온실의 역사


조선에서도 13세기 부터 토우(土宇)라는 한국 고유의 온실을 운용하였다.[3]

1. 임의의 크기로 온실을 짓되, 삼면을 막고 기름종이를 바른다.
1. 남쪽 면은 전면에 살창을 하고 기름종이를 바른다.[4]
1.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잘 처리하고, 구들(온돌) 위에 한 자 반 정도의 높이로 흙을 쌓고 봄채소를 심는다.
1. 저녁에는 바람이 들지 않게 하며 날씨가 아주 추우면 반드시 두꺼운 비개[5]를 덮어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철거한다.
1. 날마다 을 뿌려주어 이 마르지 않게 한다.
1. 담 밖에 을 걸고 둥글고 긴 통으로 방과 연결한다.
1. 저녁마다 솥에 불을 때서 솥의 수증기로 방을 훈훈하게 해준다.

현대의 온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온실 속 공기의 온도를 올리는 온실과는 다르게 온돌을 통해서 흙의 온도를 높이고 수증기를 유입시켜 공기의 온도도 함께 올리는 것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시기의 문신 이충은 광해군이 좋아하던 잡채 요리를 잘 해서 광해군의 총애를 얻어 호조판서의 자리에 올랐고 우찬성까지 했으며, 죽은 후에는 광해군으로부터 우의정으로 추증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그의 잡채 요리의 비결이 바로 이 옛 온실이었다. 그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겨울철에는 그 안에서 채소를 길러 겨울에 구하기 힘든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광해군에게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세간에서 "잡채판서" 혹은 "잡채상서"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이보다 더 이전인 고려시대 이규보의 〈괴토실설(壞土室說)〉에서도 초겨울인 10월에 이규보의 집안 사람들이 땅을 파서 지하 온실을 만드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다만 이규보 본인이 사계절의 이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노발대발해 그 온실을 헐어버리고 목재는 땔감으로 써버렸다.(…) 꼰대 다만 이규보의 노비들이 만들던 것은 위의 조선시대 온실보다는 움막이나 석빙고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런데 온실 같은 새로운 문물을 싫어하던 이규보같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는지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성종도 온실을 헐어버리라는 명을 내린 적이 있다. 물론 전기나 가스파이프가 없던 당대에는 겨울에 온실을 데우는데 연료비와 손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온실을 운영하는것이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온실을 철거하겠다고 나선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기는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서양식 온실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9년(융희 3년)에 지어진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이다. 지어질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

4. 온실 안 화초

비유적인 표현으로 온실 안 화초(온실 속 화초)라는 말이 있다. 온실처럼 순탄한 환경에서 곱게 자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6] 이들은 대개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성장기를 거쳤기 때문에 좋게 보면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며 귀티나보일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눈치가 없거나 세상 물정에 어둡고, 때로는 남에게 이용당하는 유약한 모습으로 보이거나 또는 철없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온실 안 화초 자체가 그리 긍정적인 표현은 아닌 셈이다. 사실 매우 부정적인 표현이다. 수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도련님, 아가씨 타입의 캐릭터들이 온실 안 화초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5. 여담

따뜻하게 한다고 무작정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어두면 내부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어 광합성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발생하도록 연료를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면 온도와 광합성 효율을 모두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바이오스피어 2가 이런 문제를 겪다가 콘크리트의 흡수능력을 막바지에 알고, 대처하였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기체를 온실에 비유하여 온실가스 또는 온실 기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지구 온난화를 온실 효과라고 비유하여 말하기도 한다.


[1] 출처: 울산매일[2] 황실의 회계를 담당하던 소부 소속의 관청이다.[3] 조선왕조실톡 300화에서도 이 온실에 대해 묘사했다. #[4] 기름종이를 바르는 이유는 햇빛 때문이다. 당시엔 유리를 쓸 수 없었으므로 그나마 햇빛을 투과하는 기름종이를 쓴 것.[5] 오늘날의 멍석과 같은 농사용 도구[6] 가령 자식이 몹시 귀한 집(특히 외동, 맏이 혹은 막내), 혹은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는 등 과잉보호를 받아가며 오냐오냐 귀하게 자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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