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Maundy Thursday[1] | |
<colbgcolor=#b0b3b8,#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 드라마, 범죄 |
작가 | 공지영 |
출판사 | 푸른숲 |
발매일 | 2005. 04. 17. |
쪽수 | 315 |
ISBN | 9788971844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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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지영의 2005년작 소설. 영화화되기도 하였다.2. 줄거리
정윤수는 3명을 살해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이고, 문유정은 3번의 자살 시도를 한 미대 교수이자 전직 대학가요제 출신 유명가수였다. 유정은 3번째 자살 시도 후 실패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 "네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함께 가자"며 찾아온 고모 문 모니카 수녀의 부탁으로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를 만나러 가게 된다.[2]3. 등장인물
3.1. 문유정
30대의 젊은 교수. 3남 1녀 중 막내이다. 부잣집 늦둥이 고명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예쁘고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성숙해서 인기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고, 계속 자살 시도를 한다.오빠들과 달리 공부는 못하는 편이었지만,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미술을 공부했고, 귀국하여 화가 겸 문씨 집안에서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가톨릭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실비아'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려서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고모인 문 모니카 수녀는 무척 좋아하고, 고모도 유정을 각별히 아낀다. 3번째 자살시도도 실패하고 퇴원한 유정을 찾아와 안타까워하던 고모는, 유정이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제안을 하는데…
3.2. 문 모니카 수녀
문유정의 고모.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교도소를 방문하며 재소자들을 만나 교화하고, 또한 범죄피해자 가족들도 만나면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려고 애쓴다.모델은 실존인물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조성애 쟌 마르코 수녀이다. 관련기사 다만 소설에서 문 모니카 수녀는 청파동의 수녀원에 살고 있다는 설정인데, 실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서울관구 본원)은 명동성당 뒤편에 있고, 청파동에 있는 수녀원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이다.
3.3. 정윤수
젊은 사형수. 문유정과 달리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처자식을 때리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 윤수와 은수를 학대하고 방치하다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큰아들 윤수가 학교에 가 있던 사이에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 은수에게도 농약을 먹였는데, 다행히 은수는 살아났지만 시력을 잃었다. 아버지를 잃은 윤수는 은수를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의탁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린 후였다. 어머니는 새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전남편 소생인 윤수와 은수를 학대했고, 새아버지의 아이들만 챙겼다.
결국 윤수와 은수는 새아버지의 집에서도 편히 살 수 없어서 떠났고, 고아원과 길거리를 전전하며 추위와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범죄와 비행에도 휘말리게 되어 소년원까지 가게 된다. 윤수보다 어리고 약한 은수는 더욱 고생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음식을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13살의 어린 나이에 동성 성폭행을 당하는 등 시달린다. 결국 은수는 열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병으로 거리에서 죽고 말았다.
혼자가 된 윤수는 성인이 된 후로도 비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런저런 죄를 지어 감옥에 드나들었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사형을 선고받고 기약없이 죽음만 기다리는 몸이 된다. 그렇게 차갑게 마음을 닫아버린 윤수에게, 매주 목요일마다 문 모니카 수녀가 조카 문유정을 데리고 방문하기 시작한다.
3.4. 문유정의 어머니
부잣집 사모님이며,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인 남편과 시가인 문씨 집안을 은근히 눈 아래로 본다.명문 여자고등학교와 음악대학을 졸업했으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경력이 단절되었다. 세 아들들을 어느정도 키워놓고서는 음악을 다시 시작해볼까 했지만, 늦둥이로 유정이 생기는 바람에 끝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늦은 나이의 뜻하지 않은 임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정의 아버지가 "이 아이는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아이다"라고 설득하여 유정을 낳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유정에게 애정이 별로 없고, 유정과 걸핏하면 충돌한다.시누이인 문 모니카 수녀와는 본래 친구 사이였으나, 어째서인지 언제부터인지 문 수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유정에게 "하는 짓이 꼭 너의 고모를 닮았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유정은 어린 마음에도 '엄마는 고모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재소자들과 범죄 피해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숭고한 일을 하는 문 수녀에 대해서도 "좀 더 편안하고 고상하고 우아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늙어서까지 저렇게 사서 고생한다"고 속물스러운 생각이나 할 뿐이다.
3.5. 문유정의 오빠들
첫째 오빠는 검사, 둘째 오빠는 의사, 셋째 오빠는 교수(경제학과)이다. 여동생 유정과 달리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하고 얌전해서 지금까지 어머니와 무난하게 지내고 있고, 유정과도 고만고만하게 지내지만, 유정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주지는 못한다.3.6. 서영자
문유정의 셋째 올케. 본래 '서리나'라는 예명의 연예인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결혼하여, 그 화려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지금은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큰형님과 의사인 작은형님에 비하여 여러모로 배경[3]이 부족하여 시어머니로부터는 은근히 무시를 당하지만, 성품이 올곧고 따뜻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인물이다. 시고모인 문 모니카 수녀와 비슷한 면이 있다.4. 미디어 믹스
4.1. 영화
자세한 내용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4.2. 코믹스
한국에서는 없었지만, 의외로 일본에서 코믹스화가 되었다. 신쵸샤의 주간 코믹 번치[4]에서 사하라 미즈에 의해 연재되었다. 미정발.5. 비판
작가인 공지영의 사형제 반대의 근거가 사형수는 불쌍한 사람들이므로 사형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비판받았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윤수가 살인을 저지른 주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결국 사형제 논란의 핵심을 빗겨가는 공허한 결론이 된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을 사형해선 안 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정말로 중죄를 저지른 사람을 법적 살인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하지만 사형제 폐지에 대해 다룬 반전 영화인 <데이비드 게일> 역시 '누명을 쓴 사람이 억울한 죽게 될 수 있다'는 근거를 들어서 사형제를 반대했으므로, 윤수가 주범이 아니었다고 해서 작품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형이라는 폭력적 제도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옳은가'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사형의 불가역성을 비판하고자 했을 때, 이러한 설정은 어느 정도 유의미할 수도 있다. 즉, 징역과는 달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벌당한 사람(과 그 유족들)의 한을 해소해 줄 방법이 없다는 점.
그러나 이에 대한 공지영 작가의 반박을 보면 그런 의도였다고도 할수 없다. 공지영 작가가 "윤수는 실제로 살인을 했다. 살해당한 모녀 중 딸을 죽인 것이 윤수. 다만 책 속에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서술 트릭에 가까운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 자체를 나쁘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국 이런 식으로 살인 여부를 너무 모호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정말 살인을 했냐 안했냐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이와 동시에 사형제 자체에 대한 고민이 희석되어 버리는 문제점이 더 컸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반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윤수의 블루노트를 읽어보면, 그의 친구가 칼로 찌른 소녀가 죽지 않고 기어나오는 모습을 윤수가 보았다는 서술이 있다. 따라서 윤수가 딸을 죽였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서술이 작중에 있었고,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내용을 작가가 시간이 지나고 해설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적으로 이 소설의 진짜 문제는, 작가가 정말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파적인 클리셰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론을 주장하는 작품에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작중 중요한 사형수는 항상 천인공노할 죽어 마땅한 흉악범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말 못한 사정이 있는 사형으로 단죄되기에는 뭔가 참작할 면도 있는데, 그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불쌍한 사형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실제 사형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열하고 악질적인 자들이다. 즉, 이 작품은 사형제 존치에 대해 법리적, 윤리적 잣대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같은 진부한 클리셰와 감성팔이를 동원하여 독자들을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로 데드 맨 워킹(1996)이 있는데, 이쪽은 수녀와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사형제 자체에 대한 고뇌를 훨씬 객관적인 시선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6. 기타
문유정이 성격이 그렇게 비뚤어진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15살 때 사촌오빠[5]에게 강간을 당한 것과, 믿었던 엄마가 자신을 위로하거나 가해자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2차 가해를 저지른 것 때문이었다.
엄마는 일단 강간을 당하고 울며 돌아온 딸에게 "여자애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라는 반응을 보이고, 유정이 억울함에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울부짖는데도 적반하장으로 싸대기를 때리는 것으로 응수한다. 마지막 장에서 이 상황과 엄마의 대처를 통해 강간 피해자가 일부에게 사회적으로 어떤 인식을 받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피해자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를 고발하기도 하였다.
유정이 큰오빠에게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유정의 어머니는 "유정이가 나쁜 꿈을 꿨나 보다."라거나 "짓궂은 장난을 당한 것뿐인데 저런다. 쟤 대체 왜 저런다니?"라면서, 유정이 강간당한 사실 자체를 아예 없던 일로 취급해 버렸다.
덕분에 유정의 큰오빠는 작품이 끝날 무렵이 돼서야 유정이 당한 일이 강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6] 그제서야 가해자에 대해 분노하고 유정에게 "몰라줘서 미안했다", "소송이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사과한다. 하지만 이미 유정에게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들어봤자 아주 조금 위로가 된 것이 고작이고, 상처를 다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봤자 번듯한 직업과 사회적 지위가 있고 가정이 있는 가해자 사촌오빠보다,[7] 정신병력과 자살시도 경력이 있는 (정신이 불안정한) 유정이 훨씬 불리하며, 오히려 유정이 무고죄로 몰릴 가능성이 높음을 유정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8] 게다가 마지막까지 큰오빠는 진심으로 유정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유정의 큰오빠가 유정에게 "너 대체 몇 살이야?"라고 다그치자, 유정이 "15살."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유정의 실제 나이는 30살이지만, 유정의 인생이 그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사다.
당시 유정의 집은 그 사촌오빠의 집으로부터 많은 금전적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유정이 당한 일을 항의하면 지원이 끊길까봐 알아서 긴 거라는 암시가 나온다. 결국 돈 때문에 딸의 고통을 외면한 것. 그리고 유정의 회상을 보면, 그 강간 사건 이전에도 엄마 자체가 유정이를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 막장부모였던 것 같다.
다만 원작 소설에서는 "문유성[9] 그놈보다 엄마가 더 미웠다"라고 언급하면서 2차 가해가 강간 자체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음이 분명히 언급되지만, 어째서인지 영화판에서는 강간 피해자는 당연히 그렇게 매도되어야 하는 것처럼 나온다.(결말부의 그 장면이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 버리고, 유정 본인도 엄마가 자신의 강간 사실을 없던 일로 매도해 버린 것에 대해 원망하는 대사가 마지막 장면의 한 마디밖에 없다.)
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준 범죄자를 진심으로 용서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니 당사자도 아니면서 피해자에게 함부로 용서를 강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양쪽 주인공 모두의 에피소드에서 띄우고 있다. 윤수의 경우 피해자 유가족(어머니)이 '가해자를 용서해보자'는 마음을 먹고서 교도소로 직접 떡까지 싸들고 왔다가, 막상 윤수의 얼굴을 직접 보자 이성을 잃으며 "왜 그랬니? 이 찢어죽일 놈아!"라며 절규하고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돌아가버린다.[10] 유정의 경우 엄마한테 저렇게 처참하게 배신을 당하고 그나마 안식을 찾고자 신앙에 기대 매달렸는데 사제들마저 "용서해라"는 속 편하고 무책임한 말로 일관해 오히려 더 상처를 줬다고 회상된다. 한 술 더 떠서, 가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의지가 전혀 갖춰져있지 않은데 그래도 용서해보겠다고 일방적으로 용서를 선언한 결과 피해자만 호구가 되어 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품 막바지 부분에서 큰맘을 먹은 유정은 엄마에게 찾아가 "엄마를 용서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정작 엄마는 "누가 누구를 용서해?"라며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여준다. 반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유정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를 완전히 망각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얘가 이제는 대체 왜 이러냐"며,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울부짖어 댄다. 결국 유정에게 남은 것은 환멸뿐이다.[11] 영화 <밀양>과 비슷한 주제의식이다.
"<우행시>의 문유정은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로 볼 수 있다"는 정신과 전문의(교수)의 견해가 있었다. 관련기사 사실, 강간당한 경험을 밝히지만 어머니에게 되려 꾸중을 듣고 자학적으로 바뀌는 일이나, 작중에서 유정이 종종 보이는 충동적인 자살 시도나 자해 등등은 경계선 성격장애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보이고 있다.
[1] 성목요일. 부활절 전의 목요일을 뜻하는데, 최후의 만찬과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을 기념하여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치른다. 작중에서 유정과 윤수가 만나는 날도 매주 목요일.[2] 출처: 위키백과.[3] 집안, 재산, 학력, 능력 등등[4] 엔젤하트, 창천의 권 등이 연재된 잡지다.[5] 유정과는 나이차이가 많아, 이미 결혼도 하고 자식까지 있는 사람이었다.[6] 그런데 이 큰오빠라는 사람도 이상한 게, 엄마가 없고 여동생이랑 둘만 있을 때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는데, 15년 동안이나 그런 걸 시도도 해보지 않고 엄마의 말만 듣고 여동생을 이상한 애 취급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다소 억지스러운지라,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나름 옥의 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7] 성범죄자가 무조건 사회부적응자 찌질이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얼마나 점잖은 사람인데,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 역시 절대적인 것은 없다. 미투 운동으로 지목된 가해자만 봐도 유명 예술인이 부지기수였고, 현직 광역단체장이자 유력 대권주자(!)까지 있었으니까.[8] 무엇보다 증명이 어렵다. 15년이 지난 이상 증거가 남아있을리도 만무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술뿐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엄마의 증언뿐인데, 묘사를 보면 이 엄마라는 작자가 할 리 만무하다. 설령 증언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죄를 입증하기엔 너무 부족하다.[9] 문유정을 강간한 사촌오빠. 소설판에서 나오는 다른 친척들의 이름을 보면 이 집안은 문유@ 라는 항렬자를 갖고 있는데, 영화판에서는 어째서인지 뜬금없이 강간범 이름이 '정민석'으로 바뀌어 나온다.[10] 하지만 문 모니카 수녀는 돌아가는 길에 "이 이상의 용서는 없어요, 나라도 그렇게는 못 할 거예요"라며 차갑게 얼어붙은 그녀를 위로한다. 떠나기 전 마지막에 '꼭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있어라!'고 말한 것도 그렇고 진심으로 용서를 하려 노력하긴 한 듯. 그러나 결코 쉽지 않았다.[11] 그나마 영화판에선 저 정도로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적반하장까진 아니다. 최소한 자기가 지은 죄는 기억했는지, 유정의 말에 아무 말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