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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4:18:36

유재일

파일:Yoojaeil_.jpg
<colbgcolor=#f5f5f5,#2d2f34> 출생 1975년 2월 21일 ([age(1975-02-21)]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학력 서울이태원초등학교 (졸업)
선린중학교 (졸업)
오산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 93 /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외교안보학 / 석사과정 중퇴)
현직 한국대전략연구소 대표
유재일 아트스튜디오[1] 대표
대안연대[2] 사무처장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플랫폼 현황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유재일
구독자
35.7만 명[기준]
조회수 122,752,629회
링크 본채널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시사교양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0분 브리핑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SOOP 아이콘.svg[4]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소개2. 생애3. 정파적 성향
3.1. 2019년 이후3.2. 이슈파이터
4. 논평의 특징
4.1. 전문성4.2.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능력4.3. 정치 공작에 대한 이해, 혐오, 폭로
5. 주요 활동과 논평6. 비판과 논란7. 소속 정당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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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우파 유튜버.

본래 정의당 당원이었으나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로 탈당했다. 유재일 자신이 '메갈리아 사태' 때문에 정의당을 나왔다고 밝혔다.

원래 학원 사업을 접은 뒤 자신에게 논술 지도를 받던 학생에게 여러 사회 현상과 역사, 문학 등 시사 상식을 설명하는 영상을 찍어 올려 보존할 목적으로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다. 2015년에도 영상을 올렸었다. 물론 이때는 유튜버로서의 정체성은 없었기에 학생과의 대화를 그대로 찍어서 올렸을 뿐 시청자에게 말하는 영상은 없었다. 그러다 메갈리아 사건 이후 일반 시청자들에게 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영상도 같이 올리는 유튜브로 바꾸기 시작했고, 최순실 태블릿 사건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에 매우 활발하게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19대 대선 이후, 정치 조직 활동가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당내 친노 성향 대중을 기반으로 지자체 행정이 원활히 집행될 수 있도록 대중적 정파 조직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았다. 친노 대중 조직이 변질되면서 관련 활동은 중단했으며 페미니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 당당위와 접촉, 청년 정치 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는 운동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2020년에는 현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활동가와 지식인을 모아서 시민단체를 형성 스스로 말하기를 친미 좌파 노선을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상식적 우파와도 연대를 지속하겠다고 하였다. 다만 현 시점에서 우파로 전향을 선언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없던 말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이후 그를 중심으로 미래대안행동이란 시민단체가 조직되게 되었는데 참여연대 출신으로 삼성 저승사자로 유명한 김경률 회계사, 금융사기 전문 이대순 변호사와 같은 좌파 진영의 굵직굵직한 인물은 물론이고 여명숙이나 김소연 같은, 이념보다는 일을 중심으로 보는 우파 인물들까지 포섭해서 중간 지대를 만들었다.[5]

유튜브 시작 초기 친 문재인 성향 구독자를 바탕으로 채널이 급성장하였다. 그러다가 2019년 9월, 조국 교수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반대하며 친문 진영과 갈등이 생기면서 민주당탈당하였고 해당 진영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고 있었다가 이듬해 우파로의 전향을 선언하였다.

2019년 현재 개인 유튜브 채널을 주 활동 무대로 삼고 SNS 중에선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활동 중이다. 과거 운영했던 채널은 다음과 같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표적인 친윤 유튜버로 발돋움했다. 2022년 1월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민의힘 소속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지 2년 4개월 만에 국민의힘에 정식으로 입당한 것이다. 그리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24년 2월 극우 정당인 자유통일당 정책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에서 시작하여 자유통일당으로까지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 정치적 성향이 180도 뒤바뀌게 되었다.

2. 생애

선린중학교 재학 시절 서장훈과 중학교 1학년 때 잠시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서장훈은 원래 당시 국민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야구부를 하려고 선린중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안가 휘문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종목을 바꾸고 농구선수가 되었다. 다만 유재일 본인은 서장훈이 본인을 기억할 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서장훈 본인이 과거에 방송에서도 직접 말한 바 있듯이 선린중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 안 되어 너무 금방 스카웃되어 전학을 갔기 때문.

한국외대 93학번으로 재학하던 시절 PD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라고 말한다. PD 교육만 받은건 아니고 NL에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결코 운동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PD 학생운동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조직을 인수한 후 컴퓨터 동아리로 재편하였다. 후배들과 게임을 하게 된 일화를 통해 스스로를 운동권 마지막 세대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을 중퇴하였다. 대학원생 시절 갑자기 교수가 불러서 운영체제가 도스였던 시절 컴퓨터로 다량의 통계 수치를 입력하는 걸 시켜서 며칠 내내 고생하며 일을 마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직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연구실로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대학생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교수의 친아들이었고 유재일이 고생해서 끝마친 일은 바로 교수 친아들의 논문 작성을 위한 무료 봉사였다. 그동안 교수의 수발을 들면서 분노가 쌓이고 쌓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모든 게 허망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본인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공부를 때려치고 레드 얼럿,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그리고 때마침 출시한 스타크래프트 등 컴퓨터 게임에 심취하다가 군에 입대하게 됐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훗날 조국의 딸인 조민의 입시 의혹을 목도하면서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빼도박도 못할 교수의 친자식 특혜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하여 개인적인 정보 조사 및 취재를 통해 확신을 갖고 조국 반대 진영으로 돌아서게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했다. 운영하던 학원 이름은 Übermensch(위버멘쉬)였다. Übermensch는 독일어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Overman'의 개념. 당시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 중 계속 연락이 닿는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 찾아와 유재일과 함께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할 때가 있다. 주로 유재일에게 한국 정치판에 대해 배우는 형식이다. 그중 한 제자는 유재일이 학원 사업을 접은 이후에도 스스로 찾아와 대학 진학까지 계속 지도받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2015년말에서 2016년초에 유재일 유튜브 초기 영상에 나왔던 제자.

정치적인 경험 외에, 과거의 사적인 일들에 대해 상세히 밝히지는 않으나, 가족 관계는 밝혔다. 육남매의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이라 친형과 동생은 없으나 친누나가 많고, 조카도 많다. 매형들 중 한 분이 조국일가 펀드의혹 사건에 보도된 관계자 중 1명에게 과거 사기를 당했었고, 조국아들 얘기가 나왔을때는 자신의 조카 중 한명이 조지워싱턴대학교를 합격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학원을 접은 이후,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던 듯하다. 어떤 회사의 이사였다는 언급도 했었다. 본인이 유튜브로 사업하기로 한 뒤 회사를 나온 듯. 영상 관련 전공자로 추정되는 '영길'이라는 제자는 졸업 후 유재일의 법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원이 되었고, 유튜브 라이브에도 보조를 하고 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후, 모친과 누님만 있던 상황 중, 물려받은 빌라를 이태원동외국인 상대로 운영하다, 2000년대 중반쯤에 처분했다.(유튜브 방송 중 밝힘.). 그 이후의 10년 정도가 학원일을 한 시간이었다.

3. 정파적 성향

계파로 보면 친노 성향이었으며, 참여계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친유시민 성향이었고 유시민이 정치에서 은퇴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두 사람을 노무현이 추구했던 대중 정치, 시민정 치의 후계자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재일은 자신을 공화주의자라 언급했다.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 성향치고 친미, 반중 성향이 강했다. 그러다 현 시점에서는 우파로 전향했기에 전형적인 보수 우파 성향이다. 2023년에는 '유시민이 똑똑하다는 것은 좌파의 가스라이팅이다'라며 친 이재명 행보를 보이는 유시민을 비판 및 비난하기도 했다.

20~30대부터 자타공인 친 노무현, 친 유시민 성향이었고 유시민에 대한 강한 정치적 호감 때문에 정의당 당원으로 있었다. 2016년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 이전까지는 정의당의 평범한 참여계 당원이었을 뿐,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적은 없었다.

해당 사태 때 정의당 자유게시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당원들 중 한 명이었으나 당지도부가 미적지근하게 대응한 것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이때부터 '지식인들이고 언론이고 믿을 수 없다. 답답하니 차라리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유튜브에서 정치평론을 시작하였다. 민주당을 향해 자정적 의견을 내기 때문에 특정 인사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게다가 해당 진영 금기 중 하나인 페미니즘 이슈를 건드렸기 때문에 그를 인정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당직자들도 있다.

통합진보당을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종북 이념에 대해 주사파들의 실상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재학시절 PD 계열이 외대에서 철수한 뒤, 해당 조직을 컴퓨터 동아리로 재편하여 후배들과 게임을 하며 즐기는 와중, PD가 철수했다는 사실을 인지못한 NL계 운동권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각목들고 와서 협박한 사건이 그것이었다.

당시 NL 주사파는 유재일이 PD를 재건했다고 여겼고, 동아리는 유재일 본인의 친화력으로 꽤 성장했던 상태였다. 이 때 유재일은 역으로 안기부에 신고한다 하여 물리적 충돌 없이 컴퓨터 동아리 해산으로 끝났다. 때 마침 터진 민주민족혁명당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전부 감옥에 갔는데, 그쪽 조직과 대립했으나 군 정보기관 조사까지 받은 전력이 있었다. NL과는 동아리 각목질 사건 이전까지 나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딪힌 인연 덕분인지 경기동부연합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한총련연세대 점거 사태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사건 등을 통해 주사파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면서 운동권이 성장 동력을 잃고 정치권으로 진출해 자리잡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운동권 내부의 학벌 카르텔로 인해 차별을 겪기도 했고, 정당의 평당원으로 있으면서 주사파들의 조직인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등의 배타적 계파 싸움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접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제 경험과 전공인 정치학을 기반으로, 정당 내부 갈등을 다룰 때는 정파 투쟁 관점의 분석을 동반한다. 한국 정치권 내부에서 정파 간 갈등구조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런 이유로 민주당 안팎 다수를 구성하는 일명 386세대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냉소적으로 본다. 특히 학생운동권 출신 386세대 정치인들의 엘리트주의와 대중을 동원수단으로 보고 비선조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박가분, 박훈과 함께 진보 계열 정치평론가 중에서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세력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정의당에서 탈당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 내의 여성주의가 저소득층, 비정규직 여성의 인권 보호 문제 등을 전혀 다루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정의당은 메갈 관련 사건으로 메갈당이라는 멸칭을 얻었다.

그러면서 엘리트주의와 정파 싸움에 매몰된 행태를 비판했다. 또 호적제 철폐 이후 당내 페미니즘 활동에 대해서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본다. 여성주의의 가장 큰 숙원 사업이었던 호적제 철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진 조직이 원래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도 불필요하게 유지되며, 남녀평등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워마드와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파시스트로 본다. 워마드의 순직 하사 비하 사건에 대해 언급없는 정치권을 향해 비판하며 19대 대선 이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페미니스트들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표창원 의원에게 《더러운 잠》 관련으로 당직 정지를 먹이는데 영향을 준 여성 의원들에게도 여성주의를 앞세워서 공격하는 비겁한 행위를 했다고 분개했다.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표창원은 이후 친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 이후 특정 사건에 대해 여성계와 여성 정치인들의 대응이 정파적이고 선택적이었음을 지적하며, 이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3.1. 2019년 이후

위의 신상정보에 오류가 많다. 정의당 쪽 경력은 매체인 신동아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성 정치인도 아닌 평범한 시민에게 '원조 친노'라는 명칭을 붙인 것 자체가 올바른 명명이 아니며, 따라서 의도적인 것이다.

MBC 100분 토론 중, 홍준표유시민에게 해당 인터뷰 기사를 언급한 바 있다. 지상파 라디오 정도만 출연했던 유재일이 최초로 지상파 TV에서 공적으로 언급된 사건이다. 물론 홍준표는 원조 친노라는 말을 계속 강조하며, 유재일을 친노 계파 출신 무명 정치인 정도로 오해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며 유시민에게 누군지 아냐고 물은 정황상 유재일을 잘 모르고 있었고, 유시민은 유재일에 대해 "사적으로는 전혀 모르지만, 유튜브하시는 분이라는 것만 안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한일 무역 분쟁 이슈부터 평론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부의 수장인 문재인을 비롯한 몇몇 인물에 대해서는 침묵 또는 성역화하며 이에 벗어나는 발언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내부적 문제에 대해서는 정권 초기부터 비판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반일을 촉구하며 외교 정책에까지 반영하기 시작하자 문재인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특히 국제 외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현실주의 외교를 지향해야 하며 현 정부의 민족주의에 호응해주는 국제 강국은 없음을 피력했다. (참고 정보)

일제강점기에 대한 평가에서 본인과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들을 것과, 거를 것을 구분지으면서 대화를 통한 이해를 추구했다. 이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나타나는데, 유재일은 모든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나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위안부 20만 명설, 근로정신대와의 비구분, 일본의 보상을 받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파적으로 배제하는 시민운동가들의 이중성, 위안부 평화비 제작 의도와 비용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다.

이러던 중,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파동을 겪으면서 지지자들과 의견 대립을 겪는다.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조국 사태 한 달 전만 해도 유재일은 조국을 지지해왔다. 초기 조국자녀 입시 비리 의혹 보도 때만 해도 유재일은 조국의 과거 SNS 정도만 지적하고 '조국 이 상황에서 장관 되고 검찰 개혁 제대로 못하면 정권 망한다'며 나름 판단 보류를 하려 했다.

그러다가 사모 펀드 보도를 기점으로 조국 지지를 철회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과 갈등이 초래되었다. 사건의 초기에는 지켜보고자 하였으나 언론과 본인의 휴민트 조사를 통해 나름의 전말을 파악한 후, 조국법무부장관 임명이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의 채널을 구독하던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유재일이 조국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온갖 편법과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산을 세습하는 인물의 정치적 행보를 지지할 수 없음을 밝혔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집권 전부터 펀드 사기를 치는 양아치들과 얽혀 장난질을 했다는 점에서 이미 조국이라는 인물의 품성과 능력에 대해서는 더 왈가왈부할 것도 없음을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 조적조라며 '몰랐으면 무능, 알았다면 범인'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6,000명 가량 구독자 수가 줄기도 했다. 몇몇 이들은 유재일이 주간 박종진 촬영 중, 다른 진영의 논객 박종진, 이준석, 조대원의 영향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 유재일 본인의 논조는 일관적이다. 주간 박종진의 다른 패널들 의견에 일방적으로 동조하지도 않는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절대 민주당 탈당은 없다. 일반 당원으로 10년 뒤에는 당대표가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버티던 유재일이었다. 그러나 점점 사건 조사가 진행되면서 얽힌 인물들의 거짓수와 정체가 드러나고, 특히 유시민김어준조국에 대해서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심경에 큰 변화를 겪은 듯하다. 거기에 조금은 다를 것이라 믿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문자, 카톡, 전화 공세를 가했다. 당원 중 한 명이 전화를 해서 '유튜브 한 달만 쉬시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재일은 2019년 9월 19일에 민주당 탈당을 선언하면서 정의당에 이어서 민주당과도 결별하게 되었다. 과거 386세대의 정치인들을 향해 어느 부분에 있어선 중도적인 입장으로 비판해왔는데 이렇게 선을 긋게 되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예견된 부분이기도 하다. 애초에 음모론을 시도때도 없이 남발하면서 윤지오 사건이 수면 위에 드러남에도 의도적으로 팬덤 정치를 지향하는 김어준, 게임 드립을 치며 시세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짐을 증명한데다 이미 과거에 이석기와 트러블이 있었던 유시민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던 인물이었다.

유재일은 유시민통진당 시절 정치사를 설명하며 이석기경기동부연합이 부정선거로 당권을 강탈했지만 유시민참여계 역시 깨끗한 게 아님을 설명한 바 있다. 나중에 통진당 부정선거사태에서 포렌식 전문가로 참여해 조사한 김인성 교수를 통해서 알게 된 뒤로는 통진당 부정선거는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유시민계가 저지른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유재일은 유시민한테 속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재일이 문제가 가장 많다고 비판하던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이었다. 심상정의 지속적인 오판과 노회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사실상 NL 운동권의 놀이터가 된 정의당이 아닌 정권을 잡고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민주당에 더 가열찬 비판을 해온 것. 줄곧 가진 자산을 다 날려먹는 행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한 것을 보면 유재일의 무당파 선언 또한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이나 우리공화당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는 보수 우파로 전향하였기에 국민의힘 성향이다.

민주당 탈당 후에는 반 민주당, 반 문재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본인이 기존에 지지했던 토지공개념 같은 진보적 경제 정책도 같이 버린 것이 아니었으나 우파로 전향한 현재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동안 전향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문, 반 민주당 목소리를 내왔으나 총선 이후 이에 한계를 느꼈는지 결국 우파 노선으로 전향했다.

2019년 9월 30일자 방송에서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을 향해 훗날 좌파 패잔병들을 데리고 여러분들을 대적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6] 이 때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진보 인사에게 응원을 받은 바 있다고 한다.

10월 13일 있었던 류석춘 교수의 전태일이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유재일이 비판한 영상(비공개 상태). 해당 강의 영상 막바지에 민주당의 주도권을 잡은 586 강남 좌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마무리하는데 민주당을 위시한 지금의 기득권인 586 운동권 세대를 향해 반기를 들었을 뿐, 그의 정책적 관점이 변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 따지자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은 해체해야 한다고 맹렬히 비난한 자유한국당김세연 의원 같은 케이스.

2020년 연초부터 잠시 친유계와 부쩍 친해진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 일요시사, 매일신문 프레스18 등에서 이준석과 함께 패널로 참여하며 친분을 쌓기도 했다.

2020년에 자신의 스팩트럼을 살펴보면 유럽 기준으로 우파지만 절대로 우파로 넘어갈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자기가 말하는 메세지가 우파로 넘어가는 순간 그 힘을 잃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기는 문재인 당선의 원죄가 있고 이들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의 폭주에 이용당했기 때문에 계속 좌파에 남아서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으나, 2020년 5~6월 중 우파로 전향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해당 발언이 담긴 영상 자료는 작성 시점에서 비공개로 처리된 상태라서 다시 조회할 수가 없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노무현 지지자였던 자신이 문재인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를 비판하는 세력을 받아들일 줄 알았고 노사모는 의견이 다르다고 왕따시키지 않았던 반면 그 후신인 친문 세력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탄압했고, 노무현 지지자로서 그의 친구였던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전혀 달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2021년에는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 후보를 적극 지지 및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친유와 이준석 당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준석을 '준석이'라고 부른다.

우파의 길을 거듭 부르짖고, 윤석열, 한동훈이 철저한 우파가 아니라고 비판하더니, 결국 2024년 2월 25일 자유통일당 정책위원장이 되었다. # 보수의 승리를 위해서는, 우파, 기독교, 의사 세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이 가까워오자 정치 유튜버인지 의사들 대변하는 유튜버인지 헷갈릴 정도의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 의과대학 정원 대폭 확대 지침을 반대하는 정도를 넘어 2024년 의료정책 추진 반대 집단행동이야말로 민주화 운동, 구국의 결단이라는 식으로("(전공의) 여러분이 패배하고 이 나라를 등지면 그럼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도 끝입니다.") 주장했다.

의사들을 지지하고 의대 증원에 반대하여 의사들의 환호를 받았으나, 정작 대한의사협회는 자유통일당이 아니라 개혁신당에 러브콜을 보냈다. #

호언한 것과 달리 자유통일당은 결국 1석도 얻지 못했고, 유재일은 이 결과에 대해 침묵했다. 결국, 유재일은 한동안 동영상을 올리지 않았고, 보수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꼈는지 자유통일당을 탈당했다. 다행히 요즘은 다시 동영상을 재개했고, 현재 진보/보수 양쪽을 까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7]

3.2. 이슈파이터

(이 표현은 그가 KBS의 김용민 라이브에 등장했을 때 김용민에 의해서 인용되기도 했고 신동아에서도 인용되었다.)

자유한국당이나 극우세력, 종편, 조중동 등에서 제기하는 각종 정치적 공격에 대해 거의 실시간으로 악의적인 왜곡과 오류를 잡아내고 대응논리를 제시하여 방어와 역공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정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에 유튜브 채널의 특성을 활용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이슈파이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순발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진보 진영의 다른 어떤 유명 정치평론가들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본인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내용에 의하면 발군의 순발력은 사실 사전에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가능한 듯하다. 평상시에 각종 언론 매체와 자신의 정치권 및 언론 인맥을 통한 끊임없는 사전 취재를 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거나 보수 쪽에서 왜곡하고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들은 주의깊게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 경과를 살핀다고. 그가 그렇게 주목했던 사건들 중에서 실제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에 그가 사전에 취재하고 축적해 둔 구체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미리 준비해 둔 팩트폭력과 대응 논리로 재빨리 보수 매체의 공격에 대응하고 반격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기 혼자서 여러 세력들이 생산하는 이슈를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고 힘에 부치는지 민주당 공식 채널인 씀에 이슈 파이팅 5분대기조를 4교대로 만들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의 이런 준비성과 순발력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SBS를 비롯한 언론과 야당에게 맹폭을 당하고 있을 때에 손혜원 의원을 맹공하던 나경원 의원의 부동산 투자 내역을 추적하여 밝히면서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한편, 언론에게는 국회의원 부동산 관계 자료 전수 조사를 요구했다. 실제로 이 무렵 이후로 손혜원 의원에 대해 야당과 언론의 공격은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이해관계 충돌로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청문회에서 남편의 주식 투자 문제로 야당 전체에게서 맹공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아예 직접 나경원 의원의 대장동 부동산 매입지 현지로 출동해서 나경원을 맹공했다. '나도 이미선 부부 주식투자 짜증나긴 한데, 니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이 영상은 주된 공격 대상이 나경원이긴 하지만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맹렬히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는 깐족의 마스터피스.[8]

그리고 유재일 자신도 자신이 그들의 공격으로 죽는 상황이 되면, 실명이고 뭐고 다 까발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일명 핵폭탄. 2019년 시점에선 진보 지지자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내용을 마구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죽을 땐 죽더라도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남기고 죽겠다는 의미에서 진영 논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에는 그 동안 축적한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민주당과 청와대의 이너써클들을 비롯한 친노 친문 진영에 속하는 인물들의 어두운 부분을 사정없이 맹공하고 있다. 이후 윤석열 지지와 동시에 국민의힘에 입당함으로써 민주당과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그러나 친윤 세력 특유의 비열함, 저급함과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책들로 인해 점점 회의감을 느껴 결국, 국민의힘을 탈당해 자유통일당에 입당했다. 물론 자유통일당에 입당한 후, 전광훈 세력 특유의 내로남불, 의사들의 지지 못끌어냄 등으로 결국 보수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끼고 탈당했다. 이후, 진보 보수 양쪽을 비판하고 있다.[9]

4. 논평의 특징

4.1. 전문성

유튜브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눈에 두드러지는 정치적 활동이 없었으면서도 현재 정치평론가로서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는 그의 출신 대학과 전공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대학원 과정을 밟다 중퇴해서 석사 학위는 없다. 정치덕후 경력 20년 이상의 내공을 쌓는 과정에서 이러한 그의 배경이 학문적인 측면과 인맥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다른 비전문가 계열의 정치 유튜버들을 압도하는 정보를 가졌던 이유는 독서량의 힘이 크다. 자신은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학생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1학년 때부터 학교도서관에서 사회주의 전문 서적과 논문에 대한 독서량을 늘려갔다고 했으며, 나이가 들어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된 뒤에도 독서량은 어느정도 유지했다고 했으며, 성실한 독서량에 대해서는 어느 유튜버에게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과격 진보 세력(특히 과거의 외대 NL이나 386 세대)을 깔 때 다른 것도 까지만, '니들은 선배랍시고 거만 떨기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해라. 나는 그래도 학교다닐 때 신입생일 때부터 학교강의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책 이것저것 다 찾아서 정말 열심히 읽었다. 막상 당시에 그책들 대여한 기록들 보니까 책 빌려간 사람들도 별로 없더라. 니들 니들이 학생 운동하는 사상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도 깊게 안 했지?'라며 깠을 정도.

한 영상에서는 정치 유튜브를 새로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조언 중 하나로 "일단 정치 및 사회에 대한 전문적인 책은 무조건 많이 읽으셔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동아시아, 미국, 유럽의 정치사, 특히 경제와 깊게 연계된 정치사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특출나게 돋보이며, 개인의 경험으로 인한 정치적 호기심이 생겼을 때 끝까지 파고들어 조사하는 능력도 상당해서, 모든 분야는 아니지만 본인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특정 세계사적 사건들이나 한국정치사 사건들에 한해서는 여러 사회과학자들 논문에다가 과거 언론자료들, 나아가 휴민트 정보까지 두루 섭렵하여 진짜 교수 수준으로 깊게 알고 있는 경우가 있을 정도.

라이브를 거의 안하던 유튜브 초기 시절 영상들을 보면 20세기 초중반의 해외 정치 이슈나 대중이 주목을 안 했거나 보도가 적었던 근대 한국 이슈들에 대해서,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상당한 지식을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전문 독서량 유지와 장기간 다양한 비주류 언론 보도 정보까지 찾아 섭렵하는 것에 게을러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연달아 말하고는 했다. 그 내용과 관련된 전문 서적과 논문까지 함께 소개하는건 덤.

자기 서재에서 유튜브 녹화를 자주했기에, 말하던 중에 책장에서 그 책들이나 논문을 꺼내다가 보여주곤 했다. 속독에도 재능이 있는지 본인 말로는 날 잡고 독서만 하기로 한 날엔 하루에 500쪽씩 읽었다고 한다. 정치경제 전문서적을 기준으로 하면 엄청난 양이다.

민감한 정치권 내부 정보도 상당한 수준으로 입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 때의 그의 지인들 중에서 정당의 당료,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사 직원 등 직접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현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통해 비교적 정치권 내부의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리개 본격적으로 정치 평론을 시작한 이후 인간 관계 파탄에 대해 푸념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가장 먼저 문제가 생겼던 건 연애사로 유튜브로 인지도가 갓 조금 높아질 무렵 당시의 여자친구가 방송하는 걸 크게 반대하는 바람에 의견 조율이 안 되어 헤어졌다고 한다. 당시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도 지나가는 말로도 했고 SNS에도 짧게 올렸는데, 그가 여자친구를 애칭으로 '마누라'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어 오해를 샀다.

'마누라가 최근에 제가 방송한다는 걸 알고 너무 싫어해서, 몇 번 싸우다가 결국 얼마전에 헤어졌네요'라고 말하고 정치 얘기로 다시 넘어가니 이혼으로 오해받을 수 밖에. 유투브 시작 초기 1년 정도의 방송에서는 10년 전, 20년 전 연애사의 여자친구들 이야기를 잠깐 할 때도 마누라로 호칭하곤 했으나, 결혼해본 적이 없던 그가 유부남이나 이혼남 등으로 유입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몇 번 받은 후에는 오해를 피하려고 그렇게 부르지 않게 되었다.

특히나 현재 대한민국 민주, 진보계 정치계의 가장 두터운 현업 정치가들이 깔린 운동권 386과 그 밑세대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일명 왕산 조직이라고 불리는 자들을 통해 직접 얻은 현장 경험이 남다르다.

국회 내부에서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동영상을 찍었는데(비공개 영상),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웃픈 썰 속에 풍부한 인사이더 정보가 녹아 있다.

4.2.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능력

위에서 언급된 전공자로서의 능력과 거기서 발휘되는 비평가로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끊임없이 강의를 통해서 정치, 경제,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 또한 유재일의 장점이다. 이를테면 정치 비평이라는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마구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용어나 사실 관계를 풀이해서 기초적인 정보를 전달하려는 유튜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마디로 특정 정치인을 욕하거나, 정책에 대한 인상 비평, 혹은 언론과 특정 정당의 주장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등 깊이가 얕은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 그러나 유재일은 기본적인 용어 하나하나까지 풀이해가면서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디테일하게 풀어서 설명하면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관해서 진보 진영 주류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 다수와도 대립하고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보를 막론한 다른 매체에서 접하기 힘든,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씁쓸한 부분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논하고, 또 정치인을 욕하지만, 정작 현실 정치와 시민 참여의 방법을 논하는 사람은 그만큼 드물며, 모두가 감정의 배설구로서 정치 담론을 써먹고 있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직업 여하를 떠나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연결된 현실 정치라는 분야 자체가 실제로는 공교육/사교육에서 거의 외면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3. 정치 공작에 대한 이해, 혐오, 폭로

인터넷 상의 여러 시사 정치 관련 방송들과 비교했을 때 유재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현실 정치의 구체적인 모습인 정당 내부의 정파와 계파/당파의 정치 활동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정당 내부, 특히 민주당이나 진보 계열 정당에 엄연히 존재하는 정파와 계파, 당파, 혈연, 학연, 지연 등의 각종 인연에 따른 친분관계와 계파 내에서 주고받는 이해관계에 따른 차이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에서 일어나는 정치권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런 정파, 계파, 당파적 차이에서 오는 협조·타협·갈등·경쟁·적대감 등을 통해서 설명한다. 범진보 진영의 시사 관련 콘텐츠에서 이러한 내부 정파나 계파의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대중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태도와 발언이 이런 설명을 통해 좀 더 잘 이해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모두까기 성격이 강하긴 한데, 정치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처럼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서 무조건 정치인을 욕하거나 정치인들에게 한없이 이상적인 수준의 순수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정외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정치를 도덕적 이상주의로 접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의 비노, 비문에 대한 친문 입장의 적대적 태도와는 별개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사람들이 다 자기와 똑같은 줄 안다"라는 비판을 하며 비노, 비문 세력이 생겨나는 이유를 이들에게 챙겨줄 것을 챙겨주지 않아서 생긴 서운함이라 규정했다. 그 증거로 '정치' 일반에 대한 그의 현실주의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는 동영상이 올라왔으나 2020년 1월 이후 비공개 처리되었다.

즉, 정당 내부의 정파와 계파의 존재와 갈등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현실 정치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실제로 본인의 정파성에 대해 과거엔 친 유시민, 현재 대선 후보로 문재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정치 평론을 했다.

계파 간의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더티 플레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이 정책과 비전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공학과 공작을 통해 정적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일상화된 한국의 정치에 대해 통탄한다. 평소에는 멀쩡했던 진보 개혁 진영 인물들이 선거 때만 되면 눈이 뒤집히는 계파 정치의 양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이런 스탠스는 2018년 지방선거에 들어서면서 친문에게조차 공격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재명과 전해철의 경선에서 전해철 의원의 경선 전략이 매우 잘못되어 있고 이재명을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지지선언을 하는 선에서 끝을 내었지만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소위 극문이라고 불리는 문 팬층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에 유재일은 경선에는 승복하자고 하고 친문을 당내에서 고립시키는 행위를 중단하며 대승적 차원에서 지방선거 승리에 집중하자고 요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팬 사이에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렇게나 계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던 유재일이 보인 행보는 기본적인 눈치도 없는 짓이었다. 당시 드루킹 재판으로 인해 친문 쪽은 누군가, 특히 영향력 있는 스피커가 달라붙는 그림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자신이 전해철에게 실망했다며 순식간에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던 이재명을 지지하는 등 자신도 눈이 뒤집혀 뒤통수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해찬의 당대표 당선으로 친문 고립은 사실이 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과 민평련이 이인영을 밀면서 이해찬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유재일은 친문인 표창원, 양향자, 손혜원 등을 향한 비문, 민평련의 노골적인 정치공학적 견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격식을 갖추고 설명하기보다는 게임에서 나오는 용어를 통해서 젊은 층이 직관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감정적인 용어나 욕까지 섞어 쓰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의 유튜브 채널의 시청자는 대부분 평균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주된 시청자가 30대 이상이며 30~50대에 다수가 분포한다. 2002년에 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 정도 연령층의 친노 성향 야권 지지자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시사 정치 채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계파에 대한 지식을 대중적으로 알린 가치는 있으나 심도가 꽤 낮은 것도 사실인데, 유재일이 직접 계파의 중심 내지는 주류에 서 본 경험이 없을뿐더러 계파의 중심에 있던 정치인들과 토론을 했을 때 여러가지로 잘못된 소스를 가지고 와서 지적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5. 주요 활동과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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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판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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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국민참여당|
파일:국민참여당 로고타입.svg
]]
2010–2011 입당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2012 합당[10]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2 탈당[11]


파일:진보정의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2–2013 창당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2013–2016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6– 2017 탈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7–2019 입당[12]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9–2021 탈당[1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1–2024 입당[14]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4 탈당[15]

[[자유통일당|
파일:자유통일당 로고타입.svg
]]
2024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4 탈당

8. 기타



[1] 그가 세운 IT 벤처기업. 목표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제작이긴 하지만 현 시점에선 유재일의 1인 기획사로 운영되고 있다.[2] 구 미래대안행동. 과거 진보·민주당계 인사였던 김경율 회계사(前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오세라비 작가, 여명숙 박사, 김소연 변호사 등이 민주당계의 실망과 함께 전향하며 발족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기준] 2024년 1월 24일[4] 2018년 5월 25일 유튜브 라이브 중 작은 송출 문제로 아프리카TV에 임시 채널을 만들었다. 문제 해결 이후에도 동시 송출을 하고 있다.[5] 결과적으로 이 단체는 차츰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보수 성향 시민단체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6] 지금은 국민의힘 소속이라 좌파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7] 물론 보수 성향을 버린 것은 아니며 아직도 스스로의 가치관은 보수고, 양당세력은 다 거기거 거기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8] 이렇게 나경원을 맹공했던 유재일은 결국 나경원과 훗날 한솥밥을 먹게된다. 정치가 왜 생물인지를 여실히 잘 보여준 케이스.[9] 그렇다고 중도로 전향한 것은 아니며 우파적인 내용을 올리고 있다.[10] 민주노동당과 신설 합당.[11]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2]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13]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이후 이 시기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 선언하기도 하였다.[14] 추천인을 이준석으로 기재하였다. 이후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15]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통일당 당직 수행을 위한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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