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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3 17:22:37

이순(북위)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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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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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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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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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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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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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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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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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북위의 인물
李順 | 이순
시호 선왕(宣王)
작호 평극자(平棘子)→ 평극후(平棘侯)
→ 고평공(高平公)
고평왕(高平王)
이(李)
이름 순(順)
덕정(德正)
생몰 ? ~ 442년 12월
부친 이계(李系)
형제자매 3남 중 장남
출신 조군(趙郡) 평극현(平棘縣)
아내 형씨(邢氏)
자녀 4남 2녀

1. 개요2. 생애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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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평극남 이계(李系)의 아들.

2. 생애

이순의 아버지 이계(李系)는 후연의 성무제 모용수를 섬기면서 산기시랑(散騎侍郎)과 동무성현령(東武城縣令)을 지냈으며, 능력과 명성이 있었다. 도무제 탁발규가 중원을 평정한 후, 이계를 평극현령(平棘縣令)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이계는 나이가 들어 집에서 생을 마쳤으며, 사후에 녕삭장군(寧朔將軍)•조군태수(趙郡太守)•평극남(平棘男)으로 추증되었다.

이순은 경서와 사서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재능과 계략이 있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신서 연간(414년 ~ 416년)에 중서박사(中書博士)가 되었고, 이어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전임되었다.

시광 원년(424년) 8월, 유연의 흘승개가한이 북위를 공격하여 옛 도읍 성락(盛樂)을 점령하였다. 태무제 탁발도가 유연군을 토벌하러 때, 이순도 종군하여 운중(雲中)에서 흘승개가한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순은 계책과 공로로 후군장군(後軍將軍)에 임명되고, 평극자(平棘子)의 작위를 받았으며, 분위장군(奮威將軍)의 직책이 더해졌다.

시광 3년(426년) 9월, 태무제가 북하 정벌을 결정한 후, 최호에게 물었다.
"짐이 이전에 북방을 정벌할 때, 이순이 몇 가지 계책을 올렸는데, 이는 실로 경략과 큰 지략에 부합하였다. 이제 그에게 선봉을 총괄하게 하려고 하는데, 경(卿)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호가 대답하였다.
"이순의 지혜는 여러 업무를 두루 감당할 만하여, 진실로 성상(聖上)의 뜻과 같습니다. 다만, 신(臣)은 그의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어, 그의 행실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는 성품이 지나치게 과감하여 물러가고 나아가는 일을 전적으로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태무제는 그만두었다. 당초 최호의 동생이 이순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또 조카를 이순의 딸과 결혼시켰다. 비록 두 집안이 혼인으로 맺어졌으나, 최호는 이순을 경시하였고, 이순 역시 그를 복종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서로 은밀히 의심하며 꺼려, 최호는 이순을 헐뜯었다.

시광 3년(426년) 11월, 태무제가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얼어붙은 황하를 건너 북하의 도읍인 통만성(統萬城)을 습격하였다. 북위군은 통만성에 이르러 북하의 황제 혁련창이 이끄는 군대를 격파하였고, 이순은 공로로 주요한 위치에 올라 좌군장군(左軍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시광 4년(427년) 6월, 태무제가 재차 통만성을 다시 정벌할 때, 이순은 전군장군(前軍將軍)으로 승진하여 병권을 맡았다. 혁련창이 성 밖으로 나와 싸움을 걸었을 때, 이순은 병사들을 지휘하여 그의 좌군(左軍)을 격파하였다. 혁련창이 대패하여 도주하고 북위군이 통만성을 점령한 뒤, 태무제는 여러 장수들에게 진귀한 보물과 물품을 하사했으나, 이순이 이를 굳게 사양하고 단지 책 수천 권만을 받아가니, 태무제가 이를 좋게 여겼다.

시광 4년(427년) 8월, 태무제가 수도 평성(平城)으로 돌아와 논공행상을 진행할 때, 이순을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으로 임명하고, 노비 15호와 비단 1,000필을 하사하였다.

신가 3년(430년) 12월, 이순은 태무제가 북하의 잔당을 모아 할거하던 혁련창의 동생 혁련정을 평량(平涼)에서 공격하는 데 참여하였다. 평량이 함락되면서 삼진(三秦)이 평정되자, 이순은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승진하였고, 작위는 후(侯)로 승격되었으며, 정로장군(征虜將軍)의 직책이 더해졌다. 이후 다시 승진하여 사부상서(四部尚書)에 올랐고, 태무제로부터 매우 총애와 예우를 받았다.

신가 4년(431년) 9월, 북량의 하서왕 저거몽손이 태무제에게 사신을 보내며 칭신하자, 태무제는 사람을 선발하여 사신으로 파견하고자 하였다. 이때 최호가 말했다.
"저거몽손은 변방의 우두머리로서 하우(河右)에서 복종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만약 먼 지방과의 왕래를 원활히 하고, 모든 변경 지역을 통합하려면, 청렴하고 덕망 있는 중신(重臣)에게 조서를 받들어 그를 칭찬하고 위로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서(尚書) 이순이 바로 적임자입니다."
태무제가 말했다.
"이순은 납언대신(納言大臣)으로서, 본래 이러한 사신 역할에 먼저 나서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만약 저거몽손이 직접 옥과 비단을 가지고 입조하여 짐에게 알현한다면, 그때는 또 무엇으로 그를 더 높일 수 있겠는가?"
최호가 대답하였다.
"형정이 오(吳)나라에 사신을 갔을 때에도 위(魏)나라의 태상(太常)이었습니다. 일이 적합하다면, 높은 지위를 꺼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의 행차도 어찌 오왕(吳王)이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겠습니까?"
태무제가 이를 따랐고, 이순을 태상(太常)으로 임명하여 저거몽손에게 양왕(涼王) 책봉의 조서를 전하게 하였다. 이후 이순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태무제는 그를 사지절(使持節)•도독진·옹·양·익4주제군사(都督秦雍梁益四州諸軍事)•녕서장군(寧西將軍)•개부(開府)•장안진도대장(長安鎮都大將)으로 임명하고, 고평공(高平公)으로 진작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순은 다시 조정으로 소환되어 사부상서로 전임되었고, 산기상시의 직책이 추가로 더해졌다.

연화 원년(432년) 12월, 이순은 다시 북량에 사신으로 갔다. 이때 저거몽손은 중병교랑 양정(楊定)을 보내 이순에게 말했다.
"나이가 많아 병이 잦고, 오래된 질환이 발작하여 허리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절을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3 ~ 5일쯤 지나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순이 말했다.
"왕(王)의 노령은 조정에서도 알고 있으나, 왕께서 신하로서의 예를 다해야 하는 별도의 조서가 있습니다. 어찌 스스로 편히 여기며 상사(上使)를 만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음 날, 저거몽손은 이순을 초대하여 뜰에 이르게 하였으나, 저거몽손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책상에 기대어 전혀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순은 단정한 태도로 엄숙히 크게 말했다.
"이 노인이 이렇게까지 무례할 줄은 몰랐다! 지금 나라가 망할 상황을 돌보지 않고 감히 천지(天地)를 능멸하다니. 혼백은 이미 떠났으니, 무슨 이유로 그를 만나겠는가?"
그리고는 절(節)을 움켜쥐고 나가려 하였다. 저거몽손은 다시 양정을 보내 이순을 붙잡으며 말했다.
"태상(太常)께서 이미 나의 노쇠한 병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조정에서 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서가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스스로 편히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태상께서 '그대가 절하거나 꿇어앉지 않으면서 명령을 받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소신(小臣)의 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이순은 더욱 분노하며 말했다.
"제환공(齊桓公)은 아홉 번 제후들을 모아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주왕(周王)이 고기를 하사하며 말하기를 '백구(伯舅)는 절하지 않아도 된다' 하였으나, 환공은 신하의 예를 받들어 몸을 낮추어 절하며 받았습니다. 지금 그대가 비록 공로와 명성이 크다 하나, 조정에 대한 환공의 노력만은 못합니다. 또한 비록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긴다 하나, 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서는 없었습니다. 만약 스스로 거만해져 이러한 태도를 지속한다면, 이는 재앙을 부르는 길이지, 오래도록 평안을 꾀하는 계책이 아닙니다. 만약 조정이 크게 진노하여 그대를 멸망시킨다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거몽손이 말했다.
"태상(太常)께서 옛날의 빛나는 사례로 나를 교훈하시고, 천위(天威)로 나를 두렵게 하셨으니, 감히 경외하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공경히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이에 저거몽손은 절을 올리고 엎드려 예를 다하였다. 예를 마치고 나서 저거몽손이 말했다.
"덕(德)에 의지하는 자는 흥하고, 힘에 의지하는 자는 망합니다. 조정은 근래 여러 차례 정벌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이제 마땅히 이 백성들을 이치에 따라 다스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치세(治世)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오로지 정벌만을 추구한다면, 항상 승리할 수 있을지는 두렵습니다."
이순이 답하였다.
"옛날 태조(太祖)께서 굳건한 기틀을 마련하시어 구하(區夏)를 차지하셨고, 태종(太宗)께서 그 계통을 이어받아 왕업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상(聖上)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사해(四海)를 평정하려는 뜻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자주 출동시키며 친히 바람과 서리를 무릅쓰시고, 삼진(三秦)에서 혁련(赫連)을 멸망시키고, 막북(漠北)에서 연연(蠕蠕)을 격퇴하셨습니다. 영토를 넓히고 변방을 개척하며, 벤 적의 머리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베어진 시체와 잘린 귀는 곳곳에서 산을 이루었습니다. 폭정과 잔혹함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제하며, 위엄은 팔황(八荒)에 떨치고 명성은 구역(九域)에 퍼졌습니다.

예로부터 병력을 운용한 영광스러운 사례가 오늘날처럼 융성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 지방의 변방 백성들조차도 발돋움하며 손을 들어 환영하고, 옷깃을 여미며 무릎을 꿇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천병(天兵)이 사방에 임하여 덕을 드러내고 죄를 벌하였으니, 어찌 힘에만 의존한다고 하겠습니까? 성왕(聖王)이 병력을 사용할 때, 남만(南蠻)을 정벌하면 북적(北狄)이 원망하고, 서융(西戎)을 토벌하면 동이(東夷)가 한탄하는 법입니다. 천자(天子)께서 어찌 이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저거몽손이 말했다.
"과연 그대의 말이 참이라면, 양토(涼土)의 백성들 또한 위(魏) 황제께서 멀리서 찾아오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서둘러 역마를 동원하여 경고를 보내고, 밤낮으로 쉬지 않는 것입니까? 보건대, 그대가 말한 것은 아마도 허황된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순이 대답하였다.
"묘족(苗族)의 백성들은 제순(帝舜)을 배반하고 폭군에게 충성하였고, 유후(有扈)는 후계(後啟)를 거역하고 반역 주군을 따랐습니다. 이는 모두 가까운 지역에서 위협을 받고 흉포한 세력에 억눌렸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한 일은 있어 왔으며, 어찌 양주(涼州)의 백성들만 그러하겠습니까?"'

이순이 사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태무제가 그에게 저거몽손과의 대화 내용과 그의 정치와 교화의 잘잘못에 대해 물었다. 이순이 대답하였다.
"저거몽손은 하우(河右) 지방에서 30여 년 동안 권세를 독점하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체로 기회와 변화를 깨달을 줄 알았습니다. 또한, 변방의 외진 곳을 안정시키고 모아들여 먼 지역의 사람들도 상당히 두려워하며 복종하고 있습니다. 비록 후손에게 계책을 물려줄 수는 없겠으나, 그 자신은 일생을 무난히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해에는 10월에 담무참(曇無懺)을 보내겠다고 상주하였으나, 신이 그를 맞이하러 갔을 때 이미 본래의 의도와 어긋나 있었습니다. 이는 불충(不忠)하고 불신(不信)한 행위로, 이로 인해 더 심해졌습니다. 예(禮)는 몸을 실어주는 수레요, 공경(敬)은 행실의 근본입니다. 예와 공경이 없는 자가 오래도록 복록을 누린 예는 없습니다. 신이 보기에 저거몽손의 국운은 더 이상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태무제가 다시 물었다.
"만약 경의 말과 같다면, 저거몽손의 영향력은 멀리까지 미칠 수 없으며, 그의 자식이 반드시 가업을 계승하겠지만, 그의 계승 이후에는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는 뜻인가?"
이순이 대답하였다.
"신이 대략 그의 자식들을 보았으나, 모두 재능이 출중하지 않아 한 구석을 지키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듣기로는 돈황태수(敦煌太守) 저거목건이 기질과 성품이 대체로 잘 형성되어 있으며, 만약 저거몽손의 뒤를 이을 자라면 반드시 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아버지에 비해 못하다는 것이 모두의 평가입니다. 이는 아마도 성명(聖明)을 돕기 위한 하늘의 안배일 것입니다."
태무제가 말했다.
"짐은 지금 동쪽에서의 일을 처리하느라 서쪽을 돌볼 여유가 없으니, 경의 말대로라면 3 ~ 5년 정도 서쪽 정벌을 미루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전의 계획을 멈추고 이후를 도모하겠노라."
이순은 북량에 사신으로 총 열두 번이나 다녀왔으며, 태무제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저거몽손은 여러 차례 이순과 함께 유람하고 연회를 즐겼으나, 종종 무례하고 교만한 말을 하였다. 저거몽손은 이순이 동쪽으로 돌아가 이를 조정에 알릴까 두려워 금과 보물을 이순의 품에 넣어주었고, 이로 인해 저거몽손의 죄와 허물은 조정에 전달되지 않았다.

연화 2년(433년) 4월, 양왕 저거몽손이 병사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태무제는 이순에게 말했다.
"경이 말한 대로 저거몽손이 죽었으니, 이제 그 말이 증명되었다. 또한 저거목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 한 예측도 어찌 그리 정확한가! 짐이 양주(涼州)를 정복하는 것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에 태무제는 이순에게 비단 천 필과 좋은 말 한 필을 하사하고, 관직을 올려 안서장군(安西將軍)으로 삼았다. 황제의 이순에 대한 총애는 더욱 두터워졌으며, 정사(政事)의 크고 작은 일에 모두 관여하게 하였다. 평소 이순을 싫어하던 최호는 이를 꺼려, 태무제에게 이순이 저거몽손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은밀히 고하였으나, 태무제는 이를 믿지 않았다.

연화 2년(433년) 5월, 이순은 다시 북량에 사신으로 가서 저거목건을 양왕에 책봉한다는 조서를 전해주고 돌아왔다.

태연 3년(437년) 12월, 이순은 시중 고필과 북량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저거목건의 시신(侍臣)들에게 의복을 전하고, 저거목건에게는 북량의 세자 저거봉단(沮渠封壇)을 북위 조정에 입조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저거목건은 세자 저거봉단을 보내 북위로 가게 하였다. 이순 등이 돌아오자, 태무제가 말했다.
"예전에 경과 은밀히 논의하며 먼 장래를 기약하였으나, 지난 몇 년간 동쪽을 정벌하느라 서쪽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시간만 흘러가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화룡(和龍)이 평정되고, 세 방면에 아무 일도 없으니, 갑옷을 수리하고 병력을 정비하여 하우(河右)를 가리켜 만 리를 소탕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겠는가. 경은 오랜 세월 다녀오며 흥망성쇠를 깊이 살펴보았으니, 짐이 금년에 군대를 출동시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순이 대답하였다.
"신이 일찍이 보고한 바와 같이 사사로이 생각하건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였고, 아직 안정과 휴식을 취하지 못하였으니, 자주 군대를 움직여 피로를 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해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태무제는 이 말을 받아들였다.

태연 5년(439년) 6월, 조정에서 북량 정벌을 논의할 때, 이순은 양주 지역이 물과 풀이 부족하니 원정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벌을 주장하는 최호와 조정에서 논쟁이 벌어졌고, 최호는 끝까지 정벌이 마땅하다고 고집하였다. 태무제는 결국 최호의 의견을 채택하여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출격하였다.

태연 5년(439년) 8월, 태무제의 군대가 고장(姑臧)에 이르렀을 때, 물과 풀이 매우 풍부하였다. 이에 태무제는 후방에 남아서 수도를 지키고 있는 태자 탁발황에게 편지를 보내 이 일을 언급하며, 이순을 꽤나 원망하였다.

태연 5년(439년) 10월, 저거목건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도로 돌아온 태무제는 최호에게 말했다.
"경이 예전에 한 말이 이제 과연 입증되었소."
최호가 대답하였다.
"신이 말씀드린 바는 사실과 허구를 막론하고 모두 이와 같은 부류입니다."
당초 저거몽손에게는 서역(西域)의 승려 담무참(曇無讖)이 있었는데, 담무참은 약간의 방술(方術)을 부릴 줄 알았다. 태무제는 이순에게 명하여 저거몽손으로 하여금 그를 수도로 보내게 하였다. 그러나 이순은 저거몽손에게서 금품을 받고, 그가 담무참을 암살하는 것을 묵인하였다. 태무제가 북량을 정복한 후, 이 사실을 듣고 이순을 의심하였다.

태평진군 3년(442년) 12월, 돈황을 점거하고 있던 이보가 투항하면서 양주가 완전히 평정된 뒤, 태무제는 이순에게 신하들을 차례로 품계에 따라 나누어 작위를 하사하게 하였으나, 이순은 이때에도 뇌물을 받아 등급을 공정하지 않게 매겼다. 양주 사람 서걸(徐桀)이 이 사실을 폭로하였고, 최호는 이를 비난하며 말했다.
"이순은 이전에 저거목건 부자(父子)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았고, 늘 양주에는 물과 풀이 없어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고장에 이르렀을 때, 물과 풀이 풍부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속임수가 이와 같아 나라 일을 거의 그르칠 뻔했습니다. 이렇게 불충한데도 오히려 이순은 신이 폐하께 참언했다고 말하였습니다."
태무제는 크게 분노하여 결국 이순을 평성 서쪽에서 처형하였다.

이순이 사망한 후 몇 년이 지나, 그의 종부제(從父弟) 이효백(李孝伯)이 태무제에게 신임을 받아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최호가 처형되었을 때, 태무제는 크게 분노하며 이효백에게 말했다.
"경의 종형(從兄, 이순)이 비록 나라를 그르쳤으나, 짐은 그를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최호의 참언과 헐뜯음 때문에 짐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경의 종형을 죽인 자는 바로 최호이다."
그리고 황흥 초기에 이르러, 이순의 아들 이부 등이 권세와 총애를 누리게 되었다. 이에 헌문제 탁발홍은 이순을 추증하여 시중(侍中)•진서대장군(鎮西大將軍)•태위공(太尉公)으로 삼고, 고평왕(高平王)으로 추봉하였다. 시호는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또한 그의 부인 형씨(邢氏)를 '효비(孝妃)'로 추존하였다. 하지만 이부가 훗날 처형되어 멸족되면서 다시 작위가 모두 삭탈당했다.

3. 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