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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2:29:17

이은석(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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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석
Lee Eunseok
파일:59011_69643_5255[1].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1976년 8월 29일 ([age(1976-08-29)]세)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現 경기도 과천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시스템정보공학[1] / 제적)
가족 아버지(1940 ~ 2000. 05. 21)
어머니(1950 ~ 2000. 05. 21)
(1974년생)
병역 공군 병장 제대 (병 520기)
종교 불명[2]
혐의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처벌 무기징역[3]

1. 개요2. 이은석의 성장 배경
2.1. 부모2.2. 가정폭력·학교폭력2.3. 대학 입학 및 군복무 전후2.4. 이은석과 형2.5. 사건 직전
3. 사건 발생4. 재판5. 기타6. 유사 사례7. 외부 링크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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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버지가 나를 때리고 구박하고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때리고 나서라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어요.
이은석, 법정에서

2000년경기도 과천시에서 친부모를 살해하고 토막내 유기한 범인으로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한국의 존속살인 사건 중 심각한 아동 학대집단괴롭힘, 군대와 사회에서의 멸시 등이 낳은 범죄 사례의 교본이라는 점에서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다.

1994년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인 박한상과 묶여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부모를 죽인 점만 같을 뿐 금전을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박한상과는 그 원인과 의도에 있어 차이가 분명하다. 이은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박한상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가정과 학교, 군대까지 그가 거쳐온 대부분의 과정에서 피해를 입어온 이은석은 가해자가 된 피해자에 가까우며 절대로 박한상과 똑같은 패륜아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학대 속에서도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만 했고 학교에서도 학교폭력 피해도 겪었으며 이후 군대 내에서도 괴롭힘을 당하는 등 세상 사람들까지도 그를 냉대하고 괴롭히기만 했다. 더 일찍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너무 참고 참다가 폭발해서 된 것이지, 참은 게 용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인지 범죄자라고 질타하고 욕설을 날리기는 커녕 동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이은석의 형도 동생의 범행에 대해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며 그의 심정을 이해해 줬으며, 심지어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훈구 교수가 쓴 이은석의 방대한 일기와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에서는 미국 같은 경우였다면 정당방위로 판결될지도 모른다며 이은석의 '무죄'까지 주장할 정도였고, 실제로도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이었으면 무죄나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4][5][6] 물론 그의 부모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마귀들이었다 하더라도 이은석의 범죄 행위 자체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학교폭력에서도 해방되고 군 복무까지 마치고 전역하였으나, 결국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은석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형은 독립해서 나갔으며, 부모는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은석은 독립하지 못한 채 단절된 생활을 계속하였으며 살해하기 직전 이은석은 부모에게 지금까지 받았던 상처를 얘기하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부모는 무시하며 오히려 이은석에게 욕을 하며 그의 잘못으로만 일관했다. 이은석은 이에 대한 충격으로 엿새 동안 방 밖에 나오지 않으며 은둔하다가 결국엔 분노가 폭발하여 자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7]

2. 이은석의 성장 배경

2.1. 부모

이은석은 1976년 8월 29일 해군사관학교(19기)를 졸업한 해병대 장교(최종 계급은 중령)[8] 출신의 대기업 부장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가정주부 어머니[9]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정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었고, 이은석 자신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에 진학했으니 겉보기에는 일류 가정환경에 능력까지 출중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속속들이 썩어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군인, 그것도 해병대 출신이자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부하 장병들을 다루는 것처럼 어린 두 아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고 해병대 장교로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했으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10]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11]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않는 등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과 함께 결벽증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해병대 중령 출신으로 군에서는 장군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대신 예편 후 꽤 괜찮은 기업의 간부로 취업해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긴 했다. 뿐만 아니라 이은석의 아버지는 오랜 군 생활 때문에 집에는 가끔식 들르는 정도였음에도 '자식 양육은 엄마가 할 일이다'라는 생각을 품는 등 자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은석의 아버지의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군에서의 출세 좌절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고 한다.[12]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0살 연하였는데,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데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였으며[13] 늘 욕구불만에 따른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 히스테릭 증상이 심했다.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이은석의 어머니는 '기독교, 신학교, 대학교 및 중간 이상의 생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상식 이하의 폭력적 행위'를 행하는 사람이었는데[14] 어릴 적부터 신학대학원 등의 잦은 종교적 활동 등으로 집을 자주 비웠고, 요리나 청소 등의 집안일도 게을리하며 본인이 다른 곳에 나갈 때면 자식들에게 집안일을 떠넘겼다. 그리고 자기보다 월등한 사람은 질투하고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은 멸시하는 소위 말하는 강약약강 성격이었으며 대인관계는 극히 폐쇄적이라 친척과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은석의 어머니는 이은석이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도 신학교 생활을 핑계삼아 바쁘고 힘들다며 불만을 해소했으며 부모-자식간에 예를 지킬 것을 강요했고 효행 관련 기사를 보면 뻔뻔하게도 '내 팔자' 타령을 했으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 자식들의 생일들은 없는 날 취급하면서 어버이날과 본인의 생일에는 자식들에게 선물을 강요했다고 한다.[15]

군 생활 특유의 잦은 타지 출장과 훈련 외박, 적은 봉급, 성격 차이가 겹쳐 부부 사이는 결혼 초부터 삐걱댔다고 한다.[16]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각방을 쓰고 있었고[17] 한 번 부부 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두세달 동안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않고 밥도 자기 방에서 혼자만 먹었으며 서로 말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 싸움의 여파가 겨우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그 기간이 무려 1달 이상이라면 같이 사는 자식들의 심정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18]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단순히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한 지붕 밑에서 살기가 힘들 정도로 사이가 파탄나서 말이 부부지 남보다 못한 상태였는데, 1999년 11월에 쓴 황씨의 수첩에서는 남편에 대해 "저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며 사탄과 친한 자, 악의 업보다."라고 저주하는 내용이 나올 정도였다.[출처] 어이없게도 황씨가 남편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이은석과 그 형이 보는 황씨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자식에게는 어머니라는 가면을 쓴 악마이며 망언, 폭언, 폭력을 즐기는 자였으니... 거기다가 이은석의 부모는 서로간에 불화가 생기면 자식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화를 풀었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 같이 상처를 주는 말까지 했다.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이은석의 어머니가 해병대 장교인 이은석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는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처럼 영부인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는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사례로 인해 군에서의 출세가 곧 사회에서의 출세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시대였기 때문에 아내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출처] 하지만, 남편은 한국에서는 육방부화로 인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대한민국 해군 출신이었다. 해병대는 5.16 군사정변에 동참했던 덕분에 박정희 빽으로 잘 나간 적도 있었으나, 1975년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흡수 해체[21]됨과 동시에 좋은 시절도 금방 끝났으며 성공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운 좋게 대령 이상으로 진급해 윗사람 눈에 들어 정계 입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애초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해군에 예속되어 있으며[22] 해병대사령관중장에 불과한 엄청난 핸디캡이 있는 데다 굳이 육군과 해병대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계급부터 밀리고 들어갔으므로 육군 출신들을 이길 순 없었다. 결국, 현실감각이 얼마나 없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결국 기대와는 달리 남편이 장군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전역하는 바람에 아내는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 버렸고,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이후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아들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리고 집착했다고 한다.

이은석 부모의 성장환경 또한 특기할 만하다. 이은석의 어머니는 그 시대에 흔치 않은 외동딸이었는데 자식 교육에 집착하는 엄격한 홀어머니 밑에서 스파르타식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은석의 아버지 또한 본인의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형제들만 편애한다는 컴플렉스가 있었으며 애정 없는 부모와 형제간의 경쟁 속에서 출세를 통해 본인의 자존감을 세우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들은 정확히 본인들이 받고 자란 그대로의 교육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울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애정 없이 부부생활을 하며 자신들이 받은 교육과 환경을 고스란히 물려주었으니 이은석과 그 형이 받았을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폐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양쪽 부모 둘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의심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이은석 사건을 본 한 네티즌은 만약 이은석 부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되었다면 한국은 최악의 시기를 맞이 했을 거라며 이은석 부모가 이은석 군에게 한 행동은 어떤 경우라도 정당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은석 부모는 막장 부모의 상징이 되었다.

2.2. 가정폭력·학교폭력

이은석의 부모는 양쪽 모두 자식들, 특히 차남인 이은석을 항상 증오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와 헛소리, 그리고 폭언을 자주 퍼부었다.[23] 그래서 이은석은 어릴 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으며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했다. 그나마 이은석의 형인 첫째 아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으나[24] 둘째 아들 은석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를 가했다.

실제로 이은석은 신체적, 정신적 학대 양쪽을 모두 당했는데 먼저 이은석은 유치원생 시절에 신발끈을 못 묶는다고[25] 심한 체벌을 받았고 유치원을 다닐 적에는 시계 보는 법을 맞으면서 배웠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모에게서 다리를 피멍까지 들 정도로 맞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26] 입 안에 밥을 가득 집어넣고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하게 한 일을 겪은 적도 있었으며 만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을 잡아뜯긴 적까지 있었다. 게다가 이은석은 전화 메모를 제대로 적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귀를 맞기도 했으며, 이은석의 부모는 이은석에게 “차라리 나가 버려라”, "나가 죽는 게 좋겠다.", "싹수가 노랗다" 따위의 막말을 쏟아내면서 생일도 전혀 챙겨주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은석은 초등학생 시절에도 아동 학대를 당하고 있었지만[27] 중학교 시절에는 부모의 학대가 절정에 이르러 거의 쓰레기 같은 자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즉, 이은석은 상술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에 더 심한 학대를 당한 셈이었다. 그 일례로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이은석의 어머니는 이은석과 새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물건을 집어던지고 주워 오라며 컵을 깨고 형을 쟁반으로 찍었다고 하며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늦게까지 공부하다 무의식적으로 잠이 든 후 깨어나자 이를 본 이은석의 어머니가 이은석을 폭행한 후 "너 같은 놈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집안 청소나 해라"라는 폭언을 남겼고 이 때문에 충격을 받은 이은석은 한강에서 투신자살할 마음까지 먹었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늘 아들을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일 정도의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를 못 하면 당연히 혼나고 아무리 잘 하더라도 결코 칭찬받지 못 했다. 오히려 왜 더 잘 하지 못 하냐며 혼이 났다.[28] 이은석이 어렸을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방망이와 유리조각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29]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구박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리고 거기에 폭력도 따라왔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무릎을 꿇린 뒤 항상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 물론 정말로 회개해야 할 사람은 본인들이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성격이 이런 데다 키까지 작아 만만하게 보인 나머지 호구 취급을 받으며 놀림받았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학생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학생을 증오했는지 사건 이후에도 "언젠가는 그 놈을 죽여 버릴 거다"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당시 키 180cm에 몸무게가 100kg을 넘는 학생이 이은석을 원숭이 따위의 모욕적인 멸칭으로 부르며 장난감 취급하고 이게 퍼지는 바람에 이은석을 잘 모르는 아이들조차 그를 '원숭이'라고 놀려 댔다고 한다. 일부러 옆자리로 와서 하루종일 놓아주지 않고 괴롭히기도 하며 반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놀리는 등 심하게 괴롭혔다고 한다.[30] 이런 모멸감은 특히 정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리고 8월 29일 국치일에 태어났다는 것을 트집 잡아[31] 놀려대기도 했다. 게다가 이 학생들은 운동신경이 둔한 이은석에게 억지로 운동을 시켜 이은석이 헛발질하고 공을 놓치는 모습을 보며 비웃어댄 것은 물론, 이은석의 물건과 음식을 뺏거나 이은석이 좋아하는 가수도 비난하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급우는 이은석에게 '우리는 의형제'라며 물건을 자기한테 꼬박꼬박 갖다 바치라는 혈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이은석은 어쩔 수 없이 혈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 급우 때문에 다른 친구들마저 자신을 별명으로 부르고 무시했으며 특히 여자아이들이 심하게 무시해서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면 아무리 부모님과 사이가 원만하고 활발한 성격의 아이일지라도 점차 성격이 어두워지고 폐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때 저런 일을 겪게 되면 말이다.

또 부모는 이은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락도 싸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급식을 하는 시절이 아니라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들은 도시락을 2개씩(점심과 저녁) 갖고 다녀야 했는데, 이은석의 부모는 도시락을 안 싸 주고 항상 돈을 주며 김밥이나 을 사서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32] 혼자 틀어박힌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된 게 영화 감상과 게임이었는데, 그가 감명 깊게 본 것은 택시 드라이버로 그의 일생과 비슷한 영화이다.

사실 사춘기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고 또래 집단에게 큰 영향을 받는 시기이기에 학교에서의 급우 관계가 정말 중요한데 이은석이 만약 정상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더라도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받으며 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친구가 한둘이라도 있었다면 형처럼 친구의 집을 방문하거나 혹은 친구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정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을 것이며, 형처럼 대놓고 부모와 대립하지는 못하더라도 조용히 자립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학교에서도 극심한 상처를 받은 판국에 집의 부모마저 살갑지 않다 못해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성격이니, 어디에서도 그 상처를 치료받지 못한 이은석의 분노가 결국 극단적인 방향으로 터져 버렸다. 괜히 책 제목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가 아니다. 실제로 이은석은 법정에서 "부모님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했어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남들은 하나도 견디기 힘든 가정폭력학교폭력을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겪었으니 성격 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은석이 당했던 가정폭력의 수준이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데, 동시에 이처럼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은석은 체포된 후 학창 시절에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칼로 찔러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 가해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정운선 소아정신과 교수는 "압력솥에 압력이 꽉 차면 언젠가는 터져 버리지만, 공기를 조금씩 빼 주면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을 방송에서 한 적이 있는데, 이은석이 억눌러 왔던 분노의 압력솥에는 단순히 부모의 학대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학창 시절 동급생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역시 압력솥에 가득 담겨 있다가 부모까지 못 살게 구니까 터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가정에서의 압력을 학교에서 빼주지도 못 하고, 학교에서의 압력을 가정에서 빼주지도 못 하고, 불은 2배로 붙어 있고, 증기가 빠져나갈 곳은 없었던 셈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하며, 그 뒤로는 딱히 동창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군대까지 전역한 지 한참 지나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악화되어 살인까지 한 뒤에 뜬금없이 학창 시절의 가해자를 언급하며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한 것만 봐도 그에 대한 분노 지수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자칫해서 부모를 죽인 뒤에 체포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동창들을 우연히라도 만났다면 그 동창들에게도 이은석의 부모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이은석이 폭력 영화를 많이 봤다며 이것과 연관시킨 언론도 있었는데 정운선 교수의 해석을 빌리자면 '오히려 진작에 분노가 터졌을 이은석이 영화로 폭력 욕구를 조금씩 빼내며 버틴 것'에 가깝다. 사실 이은석은 진작에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나마도 위안을 주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를 보면서 버텨 오다가 터진 것이지, 멀쩡하던 이은석이 이유 없이 폭력 영화를 보고 사이코패스가 되어 부모를 살해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영화나 게임이나 종교나 술에 광적으로 빠져드는 사람을 보면 현실 도피 차원에서 현실이 너무 괴롭기에 잊으려고 의지하다가 중독되는 것이지, 가정과 사회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느닷없이 사이비 종교에 집착하며 빠져들거나 하루종일 술만 마시면서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드는 경우는 드물다.

이은석이 활동했던 PC 통신 영화동호회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은석이는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평도 아주 잘 썼다. 통신 모임에서 운영위원을 할 정도면 열심히 활동했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는데, 정작 이은석은 오프 모임에서는 비교적 말수가 적었다고 했다. 보다 못한 한 친구가 MT 때 돌려가며 하고 싶은 말을 적는 종이에다 딴에는 위로랍시고 "사람을 사랑하십쇼. 여자를 사랑하십쇼"라는 말을 적어 주기도 했다는데, 이은석은 쪽지를 보고 "사람이고 여자고 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누구를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아무리 악의가 없었다 한들 상대의 상황을 하나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식의 장난스런 말은 오히려 부작용이 되기 쉽다.

2.3. 대학 입학 및 군복무 전후

그나마 학업 성적은 우수했고[33] 상기한 대로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에 진학했다. # 사실 이은석은 수능 성적만 따지면 서울대를 노려도 충분히 들어갈 정도였지만, 대학별고사를 추가로 치르는 것이 싫어서 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는 특차 제도가 없었기에 정시로만 가야 했으며[34] 고려대는 수능으로만 뽑는 특차 제도가 있었기에 그냥 그대로 간 것이다. 당연히 특차 합격의 평균 수능 점수는 정시보다 높았는데, 특차로 무난히 합격할 정도였다면 이은석의 수능 점수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말이 된다.[35] 그러나 서울대의 대학별고사는 수능보다 훨씬 어려운 시험이었다. 사방으로 고립되어 당장 자기 코가 석 자인 이은석의 상황으로는 대학별고사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서울대에 지원했다가 대학별고사를 망치고 낙방했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36]

한편으로 이는 그간 부모의 괴롭힘 때문에 원치 않음에도 억지로 죽어라 해 온 공부를 더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은석은 대학 입학 후 공부에 손을 놔 버렸고, 성적도 그 우등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떨어졌다.[37] 게다가 부모는 이은석이 서울대학교에 반드시 가기를 원하였고 고려대도 명문대였음에도 자식을 단 한 번도 칭찬해 준 적 없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전혀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 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한 자식이라며 "너처럼 멍청한 자식은 필요없으니 나가 죽으라"는 식의 폭언을 일삼았다.[38] 만약 이은석이 서울대에 합격했더라도 부모가 칭찬한다거나 만족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왜 의대 등을 못갔느냐", "수석을 못 했느냐" 혹은 "전 과목 A+를 못 받았느냐", "장학금을 못 탔느냐"는 식으로 또 다른 것을 꼬투리 잡아서 갈궜을 수도 있다.

공군 으로 입대한 후에도 어두운 성격 탓에 기수열외급 대우를 받아,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의 1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 광경을 목격한 선임들이 오히려 이은석만 나무랄 정도였다.[39]

하지만 부모는 아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장교라는 직업상 1달에 1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 체 만 체 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이라는 등의 말로 쏘아붙였다. 심지어 그가 군대에 가 있는 3년 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40]

그나마 다행히 복무 기간을 다 채우고 전역했으나[41] 전역한 후에도 부모의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 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같은 놈은 사회생활 못 한다.", "너같은 자식 필요 없다." 따위의 상처를 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살았다.

2.4. 이은석과 형

이은석에게는 두 살 위의 형이 있다. 이 형은 동생과 달리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다녔으나, 의외로 부모에게 나름 편애를 받았다. 형은 과격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지속되는 학대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반항하면서 충돌하곤 했다.[42] 부모는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형은 그런 방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발산했기 때문에 동생에 비해 악감정을 덜 쌓은 편이며, 그랬기에 존속살해라는 상황까지 가지 않은 것이다.[43]

그러나 이은석의 형이라고 해서 이은석보다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형은 어디까지나 한 성깔 해서 악담을 들으면 참지 않고 맞서는 성미였기 때문에 부모가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워서 스스로 충돌의 여지를 줄인 것일 뿐, 그도 결국 받을 구박은 다 받으며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은석의 형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의 부모님이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고 놀라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친구네 부모님은 방을 함께 쓰는데 우리 집은 왜 따로 쓰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부모는 뭔가 뜨끔했는지 그 이후로 한동안은 같은 방을 사용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결국 얼마 못 가서 죽을 때까지 각방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이은석의 어머니는 형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혼한다'는 말을 이은석의 형 앞에서도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은 물론, “누구 때문에 이혼 못하는 줄 아느냐? 다 너희들 때문이다”고 말해 어린 자식들에게 항상 마음의 짐을 지웠다고 증언했다.

반대로 이은석은 소심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인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갈등은 적게 일으키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훨씬 컸다. 지속되는 학대에 형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간 후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 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44]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 일로 이은석은 안 그래도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인데[45]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니[46]가 또 호되게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한 적극적인 반항이었다.[47]

이 때 "왜 형과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냐?"며 그 동안 속에 쌓아 둔 감정을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정신병원에 갔다 오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48]

2.5. 사건 직전

그리고 사건 직전인 2000년 5월 11일,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호되게 야단치기 시작하자[49] 이은석은 폭발하여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50]는 식으로 멸시하고 모욕을 줄 뿐이었고, 이은석은 그제서야 부모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51]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 이은석은 무려 엿새 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등은 부모의 외출 및 수면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밖에 부모가 있어서 화장실 가기도 싫었던 상황에는 소변 볼 때 빈 철제 약상자를 요강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부모가 이런 이은석을 보고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은석이 밤에 몰래 나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던 어머니가 의외로 식탁에 먹을 것을 챙겨놓긴 했다. 또한 아버지도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주기 전에 살해당하는 바람에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배려를 한다 해도 그동안 저질러 왔던 학대가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니며, 정말로 자식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면 그들은 편지 따위가 아니라 이은석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어야 한다. 그랬으면 이은석도 본인 입으로 말했듯 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이고, 최소한 살인극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훈구 교수의 설명대로 편지가 전달되었다고 해도 상황 개선에 별로 도움은 안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면 공개된 편지의 내용을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는 일이 바빴고, 내 자식들이 알아서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잘 하고 있겠지 싶어서, 가정에 별로 신경을 못 썼다"고 잘못을 인정하는 듯 쓰다가 중간부터 적반하장으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그 정도 혼도 못내고 때리지도 못하냐, 그건 폭력도 아니다. 세상에 어디 그정도도 안 하고 사는 사람 있는지 밖에 나가서 사람들 일일이 잡고 물어봐라'고 나오며 '너는 네 부모들을 뭐라고 하기 전에 네 자신이 잘못된 점은 생각도 하지 않느냐. 지금 이렇게 부모 잘잘못을 갖고 대드는 네 버릇 없는 행동에 평소 부모 눈에 거슬리던 네 자신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걸 하나도 안 듣고 여전히 그대로 행동하는 건 반항이냐 배짱이냐?'[52] 이런 식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저 편지가 전달되었다면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먼저 죽임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시간 내 쓸 정도라면 일단 아들과 최소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기에 이 편지를 받았다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왜냐하면 원래 이은석의 최대 분노 대상은 어머니였고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53]. 실제로 먼저 살해한 건 어머니였으며,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잠에서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상황이 두려워 아버지도 살해해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은석의 부모는 각방을 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한동안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은석은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으나, 일단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 가서 죽여 버렸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버지는 바로 살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방으로 돌아와 이성을 차리다 보니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벌어질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니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분노와 복수심보다는 사건 은폐 목적에 더 가까웠다.

다만 아버지가 가정에 무관심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이은석과 아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던 데다 그 당시에는 이른바 사랑의 매 운운하며 과한 폭행조차 훈육이라며 미화되었고, 군대에서는 구타가 용인되던 시절이었기에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아이들을 어머니가 때려봐야 뭘 얼마나 때렸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은석이 "어머니나 아버지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3. 사건 발생

2000년 5월 21일 새벽, 당시 24세였던 이은석은 양주[54]를 통째로 비워 버린 다음 어머니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어머니를 망치로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직접적인 원흉이 가장 컸으니 본인도 모르게 먼저 손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날이 밝아 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볼 것을 걱정과 불안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했다. 둘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수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 내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뒤처리를 했다. 시체를 오븐에 넣어 태우려고도 했으나,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토막 살해한 것은 보복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무서워서 그랬다. 없던 일로 만들고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시체만 없어진다면 무서움이 사라지리라 믿었다. 시체에 칼을 대니 정해진 듯 자동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보고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때 제정신이 아닌 짐승이었기 때문이다.[55]
이은석의 인터뷰
이후 시신은 청소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사체의 지문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하였다. 경찰의 가택수사 과정에서 집에 있던 이은석이 검거되었다. 사건 직후 경찰서 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의 반응인데, 부모의 사망과 동생의 체포 소식을 듣고는 부모를 살해한 동생을 오히려 원망하기는커녕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공범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물론 동생이 잘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당시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공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아무리 친동생이라고 해도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보면 같은 집에 살아오면서 함께 멸시와 폭력을 당하던 가운데 그의 형도 역시 느낀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고 속으로는 동생의 상처들과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준 듯하다.

이 두 형제 간의 우애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형이 동생을 많이 지켜 줘서 이은석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인데, 그 형이 대학교 입학 후 독립해 집을 떠나자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완전히 없어졌기에 그나마 버텼던 스트레스들이 폭발해 토막 살인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의 형은 사건 이후 동생의 감형에 힘쓰기 위해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 만약 형이 나가지 않았다면 계속 버텼을지도 모를 일.[56]

형은 이은석의 항소심 법정에 출석하여 "우리의 부모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갖는 만큼의 애정만 우리에게 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생을 변호했다. 이 한 마디에 법정 방청석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친밀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친부모자식 관계가 완전히 남남에 철저하게 업무 관계로 만나 서로의 이해 관계만을 따지는 사회생활과 비교해도 더 못난[57] 정도라니, 이 가정의 황폐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은석의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그를 두둔했는데,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은석이의 몸을 보면 언제나 피멍 투성이였다"고 말하며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정황을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들은 이은석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범행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정 폭력이 있었고 이에 설득력을 주었다. 당장 피해자의 친자식이었던 형부터가 자기 부모를 살해한 가해자인 동생을 옹호할 정도이다 보니 이를 단순히 변명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검거된 뒤 형과 면회하기를 거부했던 이은석은 2000년 5월 26일 형과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면회를 마치고 나온 형은 “동생이 사형만 면한다면 평생 뒷바라지하겠다. 친구가 되겠다”라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고, 형과 대화를 끝낸 이은석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더 이상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하고 그제서야 두려움에 떨며 ‘후회한다’는 말만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위에 링크된 KBS와 MBC 보도에서 입장차가 드러났는데, KBS에서는 '인륜의 실종'에 초점을 맞춘 반면 MBC 측은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에 초점을 두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선 제3자 또한 범죄자들이 범죄까지 이르게 된 상황과 사정을 철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그 상황을 줄여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득이고 옳은 것이다. 물론 아동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 다 부모를 죽이는 것은 아니고 존속살해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문 일이긴 하다. 극악한 살인마조차 인권이 보장되어 사형이 사실상 폐지된 판국에 아동 학대를 한 부모들은 죽여도 정당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감형을 해 주는 경우가 있다. 즉, 살인이라고 다 일괄적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아동 학대가 발단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존속살해 범죄로 그칠 게 아니라 아동 학대 방지 교육의 대표 사례로 적극 알려져 이런 비극은 막아야 한다. 단순히 '아동 학대를 하면 부모를 죽일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동 학대를 하면 아이에게 끔찍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은석과 똑같이 막장 부모들로 인한 피해자이자 동시에 어쨌든 자신의 친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가해자인 이은석을 향해 "내 동생이 저지른 짓은 범죄가 맞지만, 우리 부모 같은 사람 밑에서 언젠가 어떻게든 벌어질 일이었고 나는 그런 선택을 했던 내 동생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의 형이 직접 말할 정도로 그의 가정 환경은 지독하게 피폐했으며 이은석의 급우 중에도 그의 가정폭력에 대해 증언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재판정에서도 그 점을 참작해 원래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무기징역으로 한 단계 감형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은석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행한 이유는 이들도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장 환경을 살펴보면 기막힌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중학생 때 아버지(이은석의 외할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훨씬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소설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맞았을 정도였다.[58][59] 그리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고 자신은 본 체 만 체 하는[60]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 밑에서 엄청나게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으며, 성격이 놀랄 만큼 이은석과 유사했다.[61][62] 자신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은석 사건은 남녀 양 쪽 모두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자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비정상적인 인격을 가지게 된 이들이 부모가 되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더 나아가 한 사람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가정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극단적인 아동 학대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63]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동 학대나 불행한 가정에서 지낸 사람이 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아니며 이은석의 부모의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었다면 올바른 부모로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64] 그러나 마음가짐이 미숙했던 그들은 결국 과거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아이들에게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증오했던 부모와 같은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이은석의 형은 스스로 도망쳐서 살 길을 찾았지만 이은석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패륜아에 중범죄자가 되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으며[65] 부모들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낳은 친자식의 손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이후 시신마저 토막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최후를 맞았다.[66]

4. 재판

이후 재판에 회부된 이은석에게 법원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이후 1년 뒤인 2001년 2심은 "그 동안 당해온 가정폭력을 참작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age(2001-01-01)]년째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사형이 거의 사문화되어 어지간해서는 무기징역으로 대체하는 시절이 아니라 사형이 매우 적극적으로 내려지던 2000년대 초반[67]이니까 존속살인범, 그것도 양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는데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가정폭력이 감형 사유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68]

당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황산성과 최용근이다. 황산성은 이전에 패륜아 박한상에게 크게 데였던 적이 있었지만 이은석의 변호를 맡아 끝까지 수임했다. 이은석의 변호사는 이은석은 고등법원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야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이은석의 형과 어머니가 다니던 성당에 다니던 사람들, 신부와 수녀들과 정진석 추기경까지 이은석의 감형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한 결과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가장 극악한 살인으로 취급되는 존속살인, 심지어 토막살인에 시체 유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시 시대상을 봤을 때 대단한 선처였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겠으나 그런 가정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결코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보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즉 뒤늦게나마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는 결과로서 그나마 다행인 판결로 보일 수도 있다.[69]

불행 중 다행으로 보이는 것은 형이 동생 편을 들어주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토막 살인이라 하더라도 사건이 벌어진 지 20여 년 이후인 2020년대의 관점에서 볼 경우 이은석이 부모에게 당한 수준을 생각하면 무기징역도 가혹하고 징역 10년 이하로 형량을 조정하든가 심하면 정당방위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로 부모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긴 하지만 이은석이 당한 학대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2014년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정된 만큼 2010년대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라면 국민 여론과 더불어 이은석도 무기징역보다는 10~20년 내외의[70] 죄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설령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이후 복역 중 가석방을 받았을 수도 있다.[71]

어쨌든 이 사건은 부모의 차별과 아동 학대로 인한 피해가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동 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다 군대식이나 스파르타식 강압적 교육이 훗날 집안의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임을 알 수 있다.

5. 기타

6. 유사 사례

7.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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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경영공학부.[2] 감옥에서 수녀가 그의 말동무가 되어 준 적이 있어 가톨릭으로 추정되기도 하나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형은 사건 당시에는 가톨릭 신자였다.[3] 다만 정상 참작되어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이었다. 물론 90년대 후반에 사형 집행이 중지된 후 10년 이상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아 사실상 받는 형은 비슷하며 구속 이후 20년이 지나 가석방 심사가 가능하다. 다만 그의 가석방 검토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4] 물론 실제로는 정당방위가 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이은석은 당시 군대까지 제대하고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어엿한 성인이었다는 점, 당시 부모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게 아니라 자고 있어서 저항할 능력이 없는 부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살해했다는 점, 게다가 범행 이후 자수하지 않고 시신 훼손으로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법적으로 무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비해 유교적 정서가 훨씬 강했던 2000년에 부모 살해범이 사형을 선고받지 않고 이례적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법원에서도 이은석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최대한 정상참작을 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미국은 무조건 아동학대에 대해 민감하게 처벌한다는 고정관념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5] 이러한 생각을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사례로 제니퍼 판 사건이 있는데, 이은석처럼 자녀의 출세에 과도하게 집착한 부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부모를 살해한 존속살인 사건이라는 점이 비슷하다(단, 이 쪽은 어머니는 사망했으나 아버지는 미수로 그쳤다). 헌데 한국보다 아동학대 부분에서 훨씬 적극적일 법도 한 캐나다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법원은 무려 최소 25년 간 가석방 불가 무기징역이라는 매우 가혹한 형벌을 선고하였고, 제니퍼는 이후 2023년 재심을 요청했으나 법원은 아버지를 편들며 제니퍼의 재심 요청을 기각하였으며, 이로 인해 캐나다 내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다.[6] 캐나다와 미국의 국민 정서 자체는 아동학대에 훨씬 엄격한게 맞고 제니퍼 사건에서도 일반 대중은 그녀에게 동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법에 기반한 판결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은석이건 제니퍼건 중형을 피할 수는 없다. 캐나다의 경우 정당방위는 '방위 수단이 합리적이고 상황에 적합할 경우' 성립되는데, 제니퍼의 부모는 그녀를 학대하긴 했어도 목숨을 위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정당방위 여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제니퍼는 우발적인 살인도 아니고 청부암살자를 고용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즉 부모가 폭력을 휘두른 것은 인정하되, 성인이 확고한 살의를 품고 살인을 한 것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란 것.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여기서도 '합리적인 위력(reasonable force)'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살인까지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것은 무리이다. 이은석의 경우 부모의 학대가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는 것은 당연히 인정되었겠지만,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 정도이지 성인이 자고 있는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 무죄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게 판결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라고 치면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만약 이은석이 부모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면 부모의 학대가 그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정되고, 그가 휘두른 폭력이 정도냐에 따라 '합리적인 위력 행사'로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7]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존속살해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김보은 양 사건과 비슷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심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김보은은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렸다. 의붓아버지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던 적이 이미 있었고 "이 나라 경찰은 모두 내 손아귀에 있다"며 틈만 나면 겁을 주어 도망쳐 볼 엄두도 못 낼 만큼 엄청난 공포심에 완전히 세뇌되어 있었다. 이은석이 이와 유사한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증언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김보은이 이은석과 달리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최종 선고받은 사실을 통해 두 사건 당사자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참고로 2심 재판부에서 선고 당시 이은석에 대해 '정신감정, 심리분석 결과와 성장과정 등을 종합해 보면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 피해의식 등으로 인해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라고 밝힌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8] 원래의 꿈은 서울대학교 진학이었지만 입시에 낙방하면서 군인의 길을 갔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였고 무공을 2번 세워 무공훈장까지 받았다고 하며 중령이라 아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자식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만... 참고로 박한상의 부모도 박한상의 고향이자 그의 아버지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지장리 선영에 안장되었다.#[9]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10살 연상이었다.[10]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자수성가를 하려면 뛰어난 능력이 받쳐줘야 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도가 너무 지나친 수준이 아닌 이상에야 큰 문제는 안 된다. 문제는 이은석의 아버지가 바로 그 '너무 지나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11] 군인 시절에 3달 만에 집에 들어오고도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본 척 만 척 했다고.[12] 종합해보면 이은석의 아버지란 작자는 겉으로는 원칙주의자였지만 그 원칙의 기준이 전후사정을 아무리 따져봐도 지극히 당시 해병대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거기에 더해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 원칙이 한없이 관대하며 남이 자기 기준에 맞춰주기를 바라는 심보가 날카롭기로는 면도날 이상으로 날카롭기에 비유가 가능한 인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해병대가 똥군기가 가득하다지만 그래도 영관급에서 더 높이 진급을 하려면 주변과도 돈독한 모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도 있다.[13] 참조. 이런 성격 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아는 척과 있는 척을 많이 해서(즉 허영심이 강한 성격)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14] 특히 그녀가 자식을 야단칠 때는 이웃집에 다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며 굵은 몽둥이로 온몸을 때렸다고 한다.[15] 종합해보면 이은석의 어머니란 작자는 종교의 가르침을 모조리 어기고 있어 전후사정을 신학대학원에서 파악했다면 진즉 제적 처분을 받아 마땅한 즉 "아무리 악할지라도 모름지기 부모란 좋은 것을 자식들에게 주는 법이거늘"이란 꾸짖음이 어울리는 인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16] 부부는 중매로 만나서 결혼했다고 한다.[17] 이 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국민학교 2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부모님이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부부가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당연하게도 그 친구는 자기 부모님이 같은 방을 쓰는 것을 보고 놀라는 이은석의 형을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고 하는데, 이은석의 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가정이 뭔가 비정상적인 곳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부모의 악랄한 행동에 대항해 충돌하면서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18] 게다가 좀 컸을 때야 그러려니 하거나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마음도 여리고 상처받기 훨씬 쉽다. 이 때문에 부부가 이혼 소송을 하거나 상담을 받을 때 자녀를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는 무조건 듣게 된다.[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출처] [21] 해병대가 해군으로 흡수되었고, 해군에는 보병 병과가 생겨났는데 해군에서 보병이란 바로 해병대였다. 1987년에 해병대가 다시 독립이 되었음에도 해군 예하에 있는 점은 현재 진행형이다.[22] 이 때문에 나머지 3군 참모총장 이취임식에 국방장관이 주관하는데 반해 해병대사령관 이취임식은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한다.[23] 즉 잘못된 행동을 훈육(훈계)한다고 그런 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미워서 학대한 것이라 봐야 한다.[24] 그렇다고 이은석의 형이 학대를 안 당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형은 동생에 비해 부모의 학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부모가 덜 건드렸다는 것에 가깝다.[25] 유치원생이면 소근육이 발달하지 못해 신발끈을 묶는 등 섬세한 일을 잘 수행하지 못 한다. 거기다 설령 잘 할 수 있는 나이라 한들 신발끈 좀 못 묶는 것이 체벌을 당할 일은 아니다. 바둑기사 이창호가 훈련소 시절(!)에 신발끈 못맨다고 조교한테 한소리 들었다. 그래서 조교가 똑딱이 군화를 만들어주었다. 이창호는 어린시절 머리를 혼자 못감고 신발끈도 잘 못묶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창호가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창호 부모님은 굉장히 온화하신 편이다. 이창호 아버지는 이창호에게 시합이 있는 날에는 부담을 주지않으려고 했다. 이런걸 보면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창호가 만약에 학대받으면서 컸다면 지금의 이창호가 없었을 것이다.[26] 다행히도 던진 젓가락에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 그렇다고 빨리 먹으면 천천히 먹으라고 갈궜을 게 안 봐도 비디오다.[27] 실제로 이은석은 초등학생 시절 집을 "묘지"라고까지 불렀을 정도였다.[28] 그래도 뭔가를 못 하면 일정 확률로 혼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상대가 아무리 잘해도 결코 칭찬 없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질타만 하고 끝내는 것은 엄연히 배은망덕에 해당한다.[29] 이은석은 어머니에 대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잘난 사람들에게는 열등감을 가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30] 이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서로 키도 비슷하고 해서 장난도 치고 놀았던 사이라고 한다. 이랬던 급우가 어째서인지 이은석의 학교 생활마저 망가뜨린 괴물로 변했다.[31] 이것도 웃긴 것이, 한국에만 해도 8월 29일에 태어난 사람이 과연 한둘이겠는가? 당장 백범 김구는 정확히 100년 전 이은석과 같은 날에 태어났고 만해 한용운은 97년 전에 태어났다. 음력으로는 손기정도 이 날에 태어났다. 어처구니 없는 논리, 글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트집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하고 상대방의 생일에 대한 엄연한 모욕이며 치욕이다. 실제로는 국경일(삼일절, 한글날, 개천절 등.)이나 기념일이나(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국군의 날 등.) 타인의 기일 같은 날과 생일이 우연히 겹친다는 이유들로 놀림당하거나 비웃거나 말 도 안되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32] 물론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도저히 도시락을 싸 줄 상황이 안 되어 밥값을 대신 주는 부모도 있긴 하나, 자식들도 어지간한 철이 있으면 부모가 너무 바빠서 밥을 못 싸주는 건지 아니면 밥 싸주기도 귀찮아서 그러는 건지 다 안다. 사실 이은석의 부모의 행적을 보면 아예 돈조차 주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33] 사실 이은석이 당한 가정폭력학교폭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저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것이 기적일 정도다. 어머니가 엄청나게 성적을 가지고 괴롭혀 댔고 성적이 떨어지면 정말 죽어라고 시달릴 것이 두려우니 필사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학교 때는 시험 기간에 늦은 밤까지 공부하다 깜박 졸았는데 그 장면을 어머니에게 들켜 심하게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사람의 뇌는 긴장이 적당 수준으로 완화되었을 때 잘 작동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평범한 환경에서였다면 더 잘 했을지도. 그것도 96-97 수능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95 수능에서 이 성적이다.[34] 즉, 수능 외에도 본고사로 불리우는 대학별고사와 면접이 필요했다.[35] 당시 초창기(94~97) 수능은 다른 종류의 시험에 비해 암기력 등 노력보다는 타고난 지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실제로 이은석의 아이큐는 138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36] 달리 보면 대입에 실패해 돌아올 부모의 끔찍한 학대가 두려워 '안전빵'으로 지원한 게 고대였다는 소리니 그가 얼마나 우수한 학생이었는지 볼 수 있다.[37] 그래도 범행 전까지도 영문과로의 전과 준비를 가족들 모르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학업에 아예 뜻을 접었던 건 아닌 듯 하다. 전과를 결심한 이유는 "산업공학과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수업을 따라갈 자신도 없어서"였다고 하지만.[38] 다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는데도 등록금은 대줬다.[39] 요새는 이렇게 1달정도 차이가 나는 케이스는 보통 상병정도 되면 서로 형동생이나 친구처럼 지낸다. 심지어 생활관도 동기제라서 같은 방에 배정되기도 한다.[40] 물론 집이 부대에서 지나치게 멀다든지, 형편이 어려워 365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회 갈 시간을 낼 수 없는 등 특별한 사정 때문에 면회를 가지 못하는 부모 자체는 많이 있다. 부모가 군인인 경우에는 해당 부대에 영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보통은 본인도 사정을 알기 때문에 면회를 안 온다고 불평하는 일은 없고 어쩔 수 없이 전화로 목소리라도 듣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볼 때 조금이라도 챙겨주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이 이은석의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아니고 직업적으로 그렇게 바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은석은 이 일로도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다. 인터뷰에서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26개월 군 생활을 한 형한테는 자주 면회를 다녔지만, 30개월 군대 생활을 한 나에게는 단 한 차례도 면회를 안 올 정도로 멸시했다.'는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면 군 생활을 아무 일 없이 끝내고 만기전역한 것부터가 기적인 수준이다.[41] 우습게도 이은석은 이런 처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군대 시절을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했던 때로 기억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때가 바로 군대 시절이었다.”라나...[42]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그나마 교우관계라도 원만했기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었고, 친구 집에 놀러간 것을 계기로 본인의 집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깨달았다. 이은석 또한 형처럼 본인의 집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 계기가 생기기라도 했다면 형과 함께 부모에게 대항하며 내성적인 성격에서 활발한 성격으로 변할 수 도 있었고, 학교폭력과 군대 하극상들을 겪지 않았을 수 도 있었으며, 부모를 살해하기는 커녕, 형처럼 독립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43] 그리고 독립하자 아파트를 장만해 주려 하거나 전술했듯 군 생활 중에 면회도 가 주는 등 이은석보다는 편애했다. 장남 버프에 부모한테 할 말은 하며 싸울 땐 싸우는 성미가 오히려 군인인 아버지와 사회적 야망이 있었던 어머니의 구미에 맞았을 수 있다. 아니면 후술하듯 괄괄한 성격이어서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 그랬거나. 실제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자식이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항하거나 따지면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44] 시사저널의 인터뷰를 보면 이은석의 형이 본격적으로 따로 살기 시작한 것은 사건 1년 전인 1999년으로 보인다.[45] 다만 이은석은 이훈구 교수와의 면회에서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 비용을 대출받은 것 자체가 섭섭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부모나 형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으면 나중에 형이 취직했을 때 직장에서 보조를 받는 데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46] 아파트가 어땠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 하고 어물거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47] 반항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저 조용한 반항일 뿐이었고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군대까지 다녀온 다 큰 성인이 되었으니 유년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48] 사실 이 상황에서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며 되려 자녀를 다그치는 대응을 하는 부모들은 전문가의 개입이 없으면 정말 개선의 여지가 없다. 자녀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 대신 훈육하고 통제할 욕심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모와 소통이 없었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반증인데 이를 모르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부모였다면 이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이 정도면 부모가 될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니, 부모가 될 자격을 따지기 전에 이런 식의 태도는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어떠한 인간관계라 하더라도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이들은 평소 대인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부부관계는 최악에 가족관계가 양쪽 모두 좋지 않았고 어머니의 경우 전술했듯 성격 문제로 따돌림을 당했다. 오히려 이렇게 인간관계가 파탄나고 무너졌으니 아들에게 보상심리가 배로 작동했고, 그렇게 그 아들을 보상심리 창출용 도구로 사용했다. 종합하자면 이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들을 자신들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본 적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욕구를 위한 도구로만,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그러나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궁극의 인물상을 조각해내기 위한 재료로만 취급한 것이다.[49] 아버지는 "사내 놈이 그렇게 옹졸해서 어디다 쓰냐, 너 그렇게 하면 사회 생활 못한다"는 망언이나 쏟아냈다고 한다.[50] 그러나 당연히도 이은석의 부모는 이은석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이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부모인 본인들은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했으면서, 자식이 알아서 그때그때 자기 심정을 말해주길 바라는 건 좋은 부모의 모습이 아니다. 만약 이은석이 부모의 말대로 그때그때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했으면, 오히려 형처럼 그때그때 호되게 혼나는 악순환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때그때 불만을 표출한다고 감싸주었다면 이은석의 형도 집을 나가는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51] 사실 이은석은 대학교 1학년 때 생전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항했는데, 이때 이은석이 벌벌 떨면서 "쓰러질 것 같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래 기절해버려"라는 말까지 남겼다고 한다. 이후 이은석은 바로 이날까지 부모에게 단 한 번도 반항하지 못했다.[52]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이런다. 자식의 분노를 얼마나 더 키우냐 덜 키우냐의 차이일 뿐, 이런 적반하장은 매우 흔하다.[53] 실제로 이은석은 위에 서술되어 있듯 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라 집에 들어오는 일이 얼마 없어 학대 횟수가 어머니에 비해 비교적 적었으며, 그만큼 이은석이 어머니하고 많이 지내고 학대를 아버지에게보다 더 많이 당해 왔기에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클 수밖에 없긴 했다.[54]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 보관해 오던 양주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토록 아꼈던 양주였던 만큼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자, 동시에 '어차피 죽을 사람에게 이런 건 필요 없겠지.'라며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55] 경찰청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인 신민섭 서울대 교수는 이러한 이은석의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이 두렵지 않았다"는 말에 대해 일종의 정신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고 평한다.[56] "독립할 때 동생도 같이 데리고 나가지 그랬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물론 형 본인도 그런 생각은 했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형이 집을 나갈 때는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이은석은 만 18세도 되지 않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였다. 현실적으로 20살에서 21살 정도에 자취할 집을 구하고 집세나 관리비, 식비와 같은 경제적 여건을 해결하기 시작할 텐데 이제 막 독립해서 사회로 나온 20~21살 대학생은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판국이다. 설령 이은석이 아르바이트 등의 경제 활동을 하려고 해도 미성년자는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한데(무조건 부모만 동의가 가능하며 형제 등의 가족은 권한이 없다), 이은석의 부모 상태를 생각하면 동의해 줬을 리도 없다. 또한 보통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고 1~2년 정도(빠르면 한 학기) 지나면 군대에 가야 하는데, 형이 집을 나오면서 이은석을 데리고 나왔고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대학생활을 한다고 한들 형이 군대에 가 버리고 나면 다시 2년 동안 이은석은 자신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같이 살 수밖에 없다.[57] 아무리 세간에 똥군기가 심하다고 소문난 집단을 가더라도 저 정도로 사람을 극단적으로 괴롭히지는 않는다. 사실상 가정판 임병장 사건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며, 어쩌면 가족 관계이기 때문에 임병장 사건보다 더 잔혹하고 슬픈 사건일 수 있다. 최소한 직장 상사는 퇴사하면, 학교 동급생들은 졸업하면, 군대 선임은 전역하면 다시 안 볼 사이가 되지만 부모는 그럴 수 있을까? 말로는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느니 뭐니 해도 실제 법 규정상 호적에서 혈연을 지우는 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동급생, 학교 교사, 직장 상사, 군대 선임, 동아리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부모에게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것의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58] 이 외할머니라는 사람은 훗날 이은석의 가족과 한 집에 살면서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이은석의 어머니의 성격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59] 이은석의 어머니도 이은석의 가방에서 동화책을 발견하자 야단을 쳤다고 한다. 가히 학대의 대물림이라 할 만하다.[60] 큰아들은 사업하다가 실패해 집안을 말아먹을 지경이 됐는데도 절대 혼내지 않고 감싸주기만 하는데, 다른 자식에게는 그런 애정을 보이지 않고 무조건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부양해야 할 것 아니냐'며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한다.[61] 이런 뒷배경 때문에 이은석의 집에는 단 한 번도 친척들이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 이후 이은석의 형이 사형만은 막아 보려고 구명 운동을 할 때도 다른 친척들은 도와주지 않고 멸시하고 비난하였으며 이은석의 형을 도와준 곳은 천주교 쪽 종교단체였다.[62] 또한 아버지가 큰형만 편애하고 자신을 홀대했듯 자신도 자신의 자식 중 장남만 편애하고 차남인 이은석은 본 체 만 체 했다고 한다.[63] 실제로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동 학대는 30%가 심리적으로 유전된다고 한다.[64]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은 부모가 사이가 나쁘다 못해 서로 바람을 피울 정도로 갈라져 있었고 이후 이혼으로 쫓겨난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못 가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이후 빅토리아 여왕을 돕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애처가, 좋은 아버지가 되었다.[65] 만에 하나 감형되든 사면되든 해서 나온다고 해도 이미 전과자, 살인자 딱지가 그에게 남아 있다. 사회가 그가 당했던 가정폭력을 정상참작해서 충분한 배려를 해 준다고 해도 본인 역시도 망가졌던 정신을 제대로 치유하기란 힘들 뿐더러 존속살해에 시신 유기까지 저질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상적 사회 생활을 해내기도 힘들 것이다. 단, 복역한 지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모범수 가석방은 가능하다.[66] 하지만 그 이은석의 부모를 희대의 성격파탄자로 만든 진정한 원흉인 조부모 세대와 친척들은 제대로 된 대가라곤 거의 치르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된 일이니 평판이 저하된 것이 대가의 전부다. 적어도 자기 자식들한테 영원히 비밀을 지키는 것은 힘들 것이고, 자식들이 부모들이 한 일을 알고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면 부모로서 뒤늦게라도 반성해야 함이 옳다.[67] 단, 사형 선고만 계속되었을 뿐 사형 집행 자체는 20세기였던 1997년 12월 30일에 했던 것이 마지막이고 이후 한국에서는 [age(1997-12-30)]년째 사형 집행을 하고 있지 않다. 지금도 한국에는 수십 명의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당하지 않고 감옥에 살고 있다. 늙어서 자연사하거나 자살하는 사형수가 나올 정도.[68]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모범수나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 복역한 지 20년이 지나 가석방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69] 한 마디로 최악의 막장 가정에서 자랐으니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어려운 현실인데(당장 상술한 학교나 군대에서 왕따를 당한 일화를 생각해 보자), 무기징역이 보호조치로 보일 정도로 큰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만큼 씁쓸함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70] 그보다 더 적은 형량을 받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71] 물론 이론상으로는 가석방이 되어 석방이 된다 해도 망가진 인격으로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교도소에 계속 수감하는 것이 나은 상태다.[72] 이 글을 보면 얼마나 그가 고통과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가 갈 정도이다.[73] 2013년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으로 단행본화.[74] 동시에 자신의 부정적이고 추한 면모를 그 사람들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며 수치심을 토로한다.[75] 인간이 가장 먼저 사회성을 배우는 곳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회이고, 대부분 그 사회는 가정이다.[76] 이 사건의 범인의 아버지는 이은석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이가 아내에게 아동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고 밝히면서 자식을 이해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아내의 성향을 알면서 왜 아들을 집에 두고 나갔느냐는 등의 비판은 피할 수 없었고 그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