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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2:08:52

제7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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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명칭(올림픽)이 같은 부대에 대한 내용은 올림픽부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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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보병사단
第七十二步兵師團
The 72nd Infantry Division
파일:제72보병사단 부대마크.svg
<colbgcolor=#120882><colcolor=#feef00> 국가대표 동원사단
최강의 동원 지원으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올림픽부대!
창설일 1981년 9월 25일(제72훈련단)
1987년 4월 1일(제72보병사단)
상징명칭 올림픽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동원전력사령부
경례구호 충성
규모 사단
역할 동원준비태세 완비 및 전시 투입
사단장 준장 우성제(3사 27기)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3.2. 제200보병여단 오봉산3.3. 제201보병여단 독수리3.4. 제202보병여단 맹호3.5. 포병여단 불사조
4. 출신인물
4.1. 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미래동원사단개편5.3. 동원훈련장5.4. 올림픽회관5.5. 송추방위5.6. 사단가5.7. 미디어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육군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제72보병사단. 상징명칭은 올림픽부대경례구호충성.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하고 있다.

2. 상세

대한민국 육군보병 사단. 1981년에 수도군단 예하 제72훈련단으로 창설되어, 1983년 제1군단으로 배속변경되어 제72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소속이다.

상비사단이 아닌 동원사단으로 예비군훈련이 주 임무이며, 전시 동원예비군으로 완편되는 부대이다.

창설 당시의 부대 별칭은 오봉산부대였으나, 부대 병력들이 1988 서울 올림픽을 지원하면서[1] 노태우 前 대통령이 직접 올림픽 부대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올림픽이 끝난 후 더 이상은 국내외 체육행사와 큰 연관이 없지만, 올림픽 부대라는 명칭은 사단 안팎을 가리지 않고 널리 통용된다.[2]

사단사령부의 위치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다. 하지만 보통 말하는 양주 생활권하고는 거리가 멀다. 송추 끝자락에 있기 때문. 오히려 서울특별시 은평구와 도로로 일직선상에 있으며 구파발·연신내에서 자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라서 서울 생활권이다. 특히 근래 들어 구파발 지역이 크게 발달하여 도심과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3]

경례 구호는 육군 범용[4]충성[5]이며 부대마크가늠자가늠쇠를 나타내며 숫자 72를 상징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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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보병사단 예하부대
제200보병여단 제201보병여단 제202보병여단
포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과거 송추방위사령부에 대한 내용은 송추방위 문서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200보병여단 오봉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200보병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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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201보병여단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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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202보병여단 맹호

사단 창설과 같이 사령부내에 있으면서 동원훈련장에 1개대대가 주둔하면서 관리하다가 신막사를 지으면서 연대 전체가 동원훈련장으로 이동하여 현재 주둔하고 있다. 여단중에 유일하게 독립 주둔지를 가지고 있는 부대이다.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202보병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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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불사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72보병사단 포병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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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신인물

4.1. 사단장

역대 제72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한상민 예) 준장 육종 16기 사단장
00대 탁수용 예) 준장 육사 14기 사단장
06대 김종헌 예) 준장 육사 18기 사단장
07대 이병달 예) 소장 육사 20기 사단장
13대 박민순 예) 준장 육사 28기 사단장
14대 000 예) 준장 사단장
15대 박종왕 예) 준장 육사 32기 사단장
16대 000 예) 준장 사단장
17대 이재욱 예) 준장 육사 32기 사단장
18대 정종진 예) 준장 육사 34기 제7보병연대장
19대 이홍기 예) 준장 육사 35기 사단장
20대 조정환 예) 준장 3사 15기 사단장
21대 신태경 예) 준장 육사 38기 제203특공여단
22대 이규학 예) 준장 육사 39기 수도포병여단
23대 류정열 예) 준장 육사 41기 사단장 #
24대 박문식 예) 준장 육사 43기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7]
대리 김순철 예) 대령 육사 43기 사단장 [8]
25대 김종태 예) 준장 육사 44기 제103보병여단장 [9] #
26대 김경봉 예)준장 3사 24기 사단장, 前 제203특공여단 [10]
27대 신상범 예) 준장 육사 46기 사단장, 前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28대 민인기 예) 준장 육사 46기 사단장, 前 제27보병사단
29대 우성제 준장 3사 27기 現 사단장, 前 제1공수특전여단 [11]
*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5.1. 근무환경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BBS_201507020516495360.jpg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BBS_201512170429202640.jpg
2015년, 72사단 전차중대의 M48A3K. 출처 2015년 12월, 72사단 전차대대의 M48A5K 출처
201, 202연대의 경우, 1개 중대의 인원이 한 손으로 셀 수 있고 간부의 비중이 높다. 사단 주둔지는 물론이고 탄약고, 치장물자창고, 제202보병여단이 관리하는 예비군훈련장 등 각종 시설이 오라지게 넓기 때문에(…) 청소하고, 제초하고, 나르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느라 죽어나기 십상인 전형적인 동원사단.

각종 훈련 위주의 200연대는 인원수나 편성이 달랐다. 중대 기준 120여 명 정도의 방위병으로 완편 구성되었고, 현역병은 5~8명 정도 배정되는 형태. 1990년대 초반까지는 훈련 위주로 운영되는 전력화 연대라서 동원 관련 업무는 주업무가 아니라 가끔 지원하는 수준이었다. 사격(소총 및 주특기 사격)과 진지보수는 물론, 90% 이상이 방위병만으로 구성된 부대로서는 이례적으로 상비사단과 동일하게 정규 훈련을 시행했다. 이후, 방위병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1995년부터는 전형적인 동원사단으로 변했다.

사단 주둔지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사단 정문을 나가 바로 앞의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서울 버스 704번을 타고 바로 구파발역, 연신내역서울역까지 향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차가 막히지 않는 아침의 출타 시간을 기준으로 각각 30-40분, 1시간 정도. 위수 지역은 서울 전역이다.

2019년 8월 국내 최초로 보병사단 중에서 시원스쿨과 MOU를 맺었다. 또한 카페, 노래방, VR체험장, PC방, 전자다트 게임장, 힐링존(안마의자), 스튜디오(포토존), 버스킹공연장 등 총 8종류의 문화공간으로 구성된 군 복합 문화시설인 '올림픽 문화 콤플렉스'를 개관하여 국내 유일의 복합 문화시설을 자체 운영 중인 사단이기도 했다.

5.2. 미래동원사단개편

2015년 11월 30일,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래동원사단 개편의 마지막 부대가 되었다. 본 개편의 특징을 나열하자면, 병사 숫자를 대폭 감축해 간부 비율을 높인 점, 전차가 대대급으로 증편되고 보병연대 예하에 포병대가 창설된 점, 정보감시자산을 갖춘 정보대대가 직할부대로 창설되고 화생방장비도 증가한 점, 기존 정비·보수대대를 통합해 군수지원대대를 창설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관련 뉴스

원래 일반 연대는 기본 10명에, 본부중대나 포 중대는 몇 명씩 더 있었으며 대대가 약 55명 정도였다. 이때는 그나마 중대마다 10명이라도 있어서 근무나 작업량을 어찌저찌 버텼다면, 2010년 말의 개편으로 차기동원사단이 되면서 다른 동원사단 대비 적은 현역병을 보유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일반 보병대대 기준 TO가 50명이 넘었으나, 개편 직후 22명선(...)이 되었다. 한 중대당 인원이 4~5명 정도에 불과하다. 중대가 아니라 전우조지, 이건!

이후 인력문제를 감안하여 동원 물자 창고를 컨테이너화 하고 지게차를 운영한다. 이때 새로 지은 동원 물자 창고의 크기는 웬만한 물류센터 뺨치는 크기로 두돈반이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개편 이후 근무와 작업에 대해 강도가 많이 오른다. 허구한 날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자를 열어서 숫자를 파악하고 상태를 확인하는데... 이때쯤이면 내가 군대를 온 건지 물류기업에서 알바하고 있는지 상당히 헷갈린다. 동원사단을 전역하면 박스 테이프칠과 적재의 달인이 되어 전역한다.

이후 언제부턴가 대대본부는 5명, 그 외 중대는 4명씩으로 개편되어 병과 간부 다 합쳐서 1개 대대가 30명이 간신히 넘는 상태가 된다. 또한 연대마다 수송부가 별개로 존재했으나 부대개편 이후 수송부 인원 대부분이 전출+남은 인원은 사단 수송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1호차 운전병마저 없어졌다. 편제가 너무 줄어들어서 차량관리나 배차운용면에서 비효율이 커지다보니 사단의 모든 수송 주특기 인원들을 한 중대에 때려넣어 버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병이 부족한 실정이므로, 사단 수송부의 배차현황을 보면 레토나나 민수승합차에 연대 간부직접운전자 열 몇 명을 줄줄이 달아놓고 자기들끼리 하루 종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방임해버린다. 간부직접운전자의 확대가 향후 군의 수송지원작전방향이기도 하며, 일차적으로 말단 1호차 운전병 편제를 죄다 예비군으로 돌려버린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후 간부직접운전자의 군트럭, 노부스와 5톤 메가트럭까지 단독운행이 가능해졌다. 간부가 하기 싫어하니까 문제지...

다음으로 급상승한 근무 강도의 정도를 설명하자면,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병력이 반토막난 당시, 당장에 근무부터 전과 다르게 빈도수가 와장창 증가하여 "초소를 갔다오니 하루가 끝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당장 인원은 반토막이 났는데 해야 할 근무와 작업거리는 반으로 줄지 않았기 때문으로, 병장이라도 말년휴가 갔다 와서 전역전날 복귀 혹은 주말만 부대에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각종 작업에 끌려나가는 건 예사. 진지공사까지 갈 것도 없이 제초/제설 작업을 한 번 하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

사단 특성상 인원이 적고 물자를 관리하기 때문에 허리가 박살나는 인원이 상당히 많다. 물자 중에는 피복 장구류도 있지만, 골때리는 몇몇 무기들은 무게 단위가 100kg을 쉽게 넘어간다. 이 무기들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보면 나의 허리도 상태가 영 아니게 된다. 그리고 다들 몸이 좋아진다

어떤 대대는 혹한기 훈련 시 초소 근무를 모두 말년병장에게 돌리고, 3시간 근무 3시간 휴식 체제로 단 두 팀만으로 돌린 적이 있다. 단 소등 상태의 생활관을 이용하게는 해줬다. 딱히 위로는 되지 않는다

전역에 따른 인수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은 당연지사. 개편 이후로 간부, 일반병사 할 것 없이 여러 임무의 겸직은 암묵적으로 일상화 되었다. 중대 통신병이 공석이면 기관총수가 P999K를 매고 심지어 모 연대에선 연대장이 중대에 표창을 수여하는데 중대장이 공석이어서 병장이 대신 수령받은 경우도 있었다. 중대 지휘관이 병장?? 또한 한 명의 행정병이 작전, 교육, 정보, 인사, 보급 업무에다가 상황근무 중 통신병 역할까지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생활의 꽃인 휴가에 관해서는, 개편 전에도 한 중대에서 4명 이상 휴가를 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한 중대 5인 이하로 편제가 개편되고 나서는 2명도 불가능하다. 인원이 20~25명인 대대에서 3~4명만 동시에 휴가를 나가도 부대 운용이 삐그덕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니 웬만한 경우 아니면 단체 외박이나 단체 휴가는 꿈도 못 꾼다.[15] 일단 사람이 없으니 포상휴가와 외박이 굉장히 귀하다. 휴가 나갈 일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일정 문제로 짤리는 경우가 많아서 위병소를 나가기 전까진 안심을 못한다. 이래저래 힘든 점이 많은 개편이다. 비슷한 일이 60, 66, 73, 75동원사단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고 만다

5.3. 동원훈련장

동원훈련장은 202여단 주둔지 내에 위치 하고 있다. 부곡리 예비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위치해있다. 72사단 내에서 유일하게 사단 본부가 아닌 영외에 주둔한 202여단과 부지를 공유하며, 침상형 생활관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는 깔끔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5.4. 올림픽회관

올림픽회관
올림픽會館
Olympics Hall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북한산로 966-8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5.5. 송추방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금곡방위[16]와 함께 유명했던 송추방위가 속해있던 사단이다. 일명 '송추방위사령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송추방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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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사단가

화랑의 후예들이 여기 모여서
총칼을 굳게 잡고 전기를 닦아
수도권 수호위해 신명을 바친 우리는
떨쳐나설 무적의 용사
나아가자 진군이다 싸워 이기자
그 이름 길이 빛날 72사단

오봉산 정기받아 일어선 우리
송추천 맑은 물에 기량을 닦아
겨레와 나라수호 신명을 걸고
역경을 헤쳐가는 무적의 용사
나아가자 진군이다 싸워 이기자
그 이름 길이 빛날 72사단

5.7. 미디어




6. 사건사고

파일:external/www.ilbe.com/e00007506a4d107f946f82eb989529e0.jpg
제72동원사단 버스 정류장

7. 여담


[1] 개/폐회식에서 매스 게임에 2,500여 명의 방위병력을 투입하였다.[2] 사단 역사관에는 1988 서울 올림픽 당시에 고싸움을 재현하는 매스 게임에 사용했던 '고'가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3]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송추IC에서 빠지면 바로 앞이 부대 정문이다.[4] 군대 전체로 따지면 범용은 필승이다.[5] 과거 상급부대였던 제1군단의 경례구호가 충성이었다. 제72동원사단이 제1군단 예하에 있던 시간이 30년 이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했을지도?[6] M48A5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부곡리에 주둔했으나 부대개편으로 제30기갑여단 예하 51전차대대에서 더불어 살고 있다.[7]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되었다.[8] 부사단장으로 사단장 직무대리를 맡았다.[9] 장병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 부대 내에서 OCC라고 부르는 복합 문화 시설을 처음 만든 장본인이다.[10] 재임 중 부실급식 논란이 터지면서 당시 202여단 동원훈련장에 격리되어 있던 휴가 장병들에게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실제 당시 평소 급식 수준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반찬이 후하게 나오고 급식 편성이 되어 있지도 않은 메뉴가 나오면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1] 72사단은 1군단 작계 지역내에 있는데, 우성제 사단장은 과거 1군단 참모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12] 이 외에도 9사단장, 1군 참모장, 3사관학교장, 1군단장, 군수사령관을 지냈다.[13] 이 외에도 32사단장, 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을 지냈다.[14] 전두환의 3남이다.[15] 전체 인원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대대 내 모든 중대가 일순간 20% 씩의 공백이 생기는 것.[16] 금곡방위는 제73동원사단에 속해있었다.[17] 해당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엔 남아도는 건장한 청년들을 이렇게라도 활용했다.[18] 이건 사망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변명이다. 집에서 출근하는 방위병이 새벽까지 축구를 봤는지 술을 마셨는지 알 수가 없다. 신병들만 죽었는데, 신병들이 전입 1달도 안 되어서 첫 훈련에 술마시고 3박 4일 훈련을 뛴다는 게 말이 될까? 그때만 해도 구타가 심했는데 신병이 술마시고 출근을 했을까? 다만 사건 전날 고인은 훈련 때문에 일찍 자고 정상 출근했다는 증언도 있어 교차검증이 필요하다.[19] 소금을 나눠주지 않아서, 제1군단 헌병대 조사 직전에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너희는 소금을 받은 거야" 라고 거짓증언을 강요했다.[20] 운전병 진술에 따르면 건너편에서 어거지로 들어왔다고 한다.[21] 2021년 현재는 2018년 말 신축한 열정드림빌, 행복드림빌, 희망드림빌 3개의 건물을 막사로 201여단, 포병여단, 직할대가 주둔하고 있어 거주환경이 이전에 비해 환골탈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현재는 구 의무대 위치에 군수지원대대 보급중대가 보급중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푸른거탑을 촬영했던 건물들은 직할대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