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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21:19:13

조앤 리버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조앤 리버스
Joan Rivers
파일:0_15314087.jpg
본명 조운 앨릭잰드러 몰런스키[1]
Joan Alexandra Molinsky
출생 1933년 6월 8일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사망 2014년 9월 4일 (향년 81세)
뉴욕주 맨해튼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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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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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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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직업 코미디언, 배우
활동 1959년 ~ 2014년
배우자 제임스 생어(1955년 결혼, 무효)
에드거 로젠버그(1965년 결혼~1987년 사별)
자녀 딸 멜리사 리버스(1968년생)

1. 개요2. 위상3. 활동
3.1. 초창기3.2. 심야토크쇼3.3. 외모 조롱 컨텐츠3.4. 그외 주요 활동
4. 사망5. 어록6. 출연 영화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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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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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미디언, 배우.

2. 위상

미국의 여성 코미디 진행자 중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1968년에 데뷔해 남성의 영역으로 통하던 심야 토크쇼 시장에서 특유의 신랄한 입담과 거침없는 질문으로 단번에 인기를 끌었다. '임신'이라는 단어를 뱉으면 안 돼서 '작은 발들이 곧 집 바닥을 통통 거릴 예정이에요'라고 말해야만 했던 시절에 직설적 발화로 금기를 전부 넘나들었다. 빠른 머리회전으로 어떤 화제가 나오든 즉각 받아쳤는데, 그 속도감이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줬다. 이를 위해 리버스는 평소 69,000개[2]에 달하는 농담을 준비하고 암기하고 있었다.

'나 이 얘기 좀 해도 돼요?(Can We Talk?)'라는 말과 함께 빠르게 새 화제로 전환하곤 했는데 리버스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선정적인 얘기나 유명인들을 향한 악담에 관객들이 심하다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고, 정신들 차려요!(Oh, grow up!)라며 자신의 말은 가감없는 진실일 뿐이니 제발 좀 깨닫고 받아들이라고 다그치는 것도 고정 멘트다.

60년대의 실험적인 스탠드업 코미디 흐름에 속한다. 무대 위의 페르소나와 무대 밖 인격에 차이가 없는 자기고백형 신진 코미디언들의 대두 속에 리버스가 있었다.

3. 활동

3.1. 초창기

1933년 6월 8일 미국 뉴욕 출생. 유대인이다.

처음엔 맨해튼스트립 클럽에서 Pepper January: Comedy with Spice라는 공연으로 시작했다. 잭 파(Jack Paar)의 투나잇 쇼(Tonight Show) 출연 기회를 두 번 잡아 두 번 다 망쳤다. 한 번은 부모님이 속한 컨트리 클럽에서 공연을 엉망으로 망쳐 부모님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리버스의 공연 도중에 식당을 통해 뒷문으로 도망쳤다. 남의 개그를 훔쳤다가 걸려서 에이전트들 기피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돈이 떨어지면서 호텔 방값을 안 내고 튀게 됐다. 한땐 심지어 노숙자였다.

결국 리버스는 부모님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1961년 시카고세컨 시티에서 리타(Rita)라는 자전적인 캐릭터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리버스 안에서 독창성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리타'는 못생겨서 안 팔리는 바람에 자기 동네에서 홀로 독신으로 남아 나이만 먹어가고 있어 자존감이 낮고 자포자기한 여성이었다. 리버스는 유부남이랑 바람 피운 이야기, 게이 친구 필리스(Mr. Phyllis)에 관한 잡담 따윌 거침없이 해댔고, 마무리 멘트는 "저는 조앤 리버스였고요, 이제 꺼질게요"였다.

리버스는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가 그리니치 빌리지의 듀플렉스(Duplex) 같은 클럽에서 공연을 돌기 시작했다. 하루는 공연을 또 완전히 망쳤는데, 리버스가 존경하던 레니 브루스[3]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네가 옳고, 관객들이 틀렸어." 리버스는 이 쪽지를 브래지어 안쪽에 항상 부적처럼 차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리버스는 빌 코스비, 우디 앨런, 모트 살[4]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 받고 있었다.

3.2. 심야토크쇼

리버스는 자니 카슨NBC 투나잇 쇼에 1965년 2월 17일 처음 출연했다. 평생 쇼에 여성 코미디언은 무조건 배제했던 여성차별적인 성향의 카슨으로서는 특별하게 베푼 자비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카슨은 리버스를 코미디언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방송작가'라고만 했다. 게다가 배정 받은 시간은 소위 '죽음의 시간대'라고 불리는,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다행히 카슨의 마음에 든 리버스는 그의 쇼에 자주 나오면서 명성을 얻었다. 소위 잽(jap)이라 불리던, '물질적으로 부족한 거 없이 자란 중산층 출신의 유대계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오히려 강조하기 위해 진주 목걸이를 차고 드레스를 차려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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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슨은 리버스가 1969년 잠시 도전했다 실패한 낮 시간대 토크쇼 "That Show with Joan Rivers"의 첫 번째 게스트 스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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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슨의 후계자로 남성 코미디언만 열 명이 거론되고 있던 시점에서 리버스가 카슨의 심야토크쇼를 이어받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리버스는 다음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1986년 폭스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심야토크쇼 "The Late Show, Starring Joan Rivers"를 만들기로 한다. 이걸 알게 된 카슨은 리버스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카슨은 리버스가 감히 자신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려든 것에 분노했다. 또한 리버스가 이를 자신에게서 끝까지 철저히 숨겨, 제3자로부터 이 소식을 처음 들어야했다는 사실도 용서하지 못했다.

쇼는 실패였다. 리버스는 해당 쇼를 겨우 2시즌 진행한 끝에 쫓겨났고, 리버스의 자리는 아세니오 홀과 로스 셰이퍼(Ross Shafer)가 채웠다. 카슨은 리버스를 자신의 쇼에서 영구히 출연 금지 시켰고, 카슨의 후계자 제이 레노코난 오브라이언[5]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리버스를 부르지 않았다. 이 암묵적 룰을 해금하고 리버스가 사망하기 반 년 전 게스트로 초청한 사람이 지미 팰런이었다.

쇼의 프로듀서였던 남편 에드거 로젠버그와 리버스는 같이 해고된 직후 헤어졌고, 3개월 뒤 로젠버그는 자살했다. 얄궂게도 로젠버그는 바로 카슨이 소개 시켜줬던 남자였다. 리버스는 남편이 해고된 후 세간의 시선에 수치심을 느껴 자살한 거라고 주장했다. 딸 멜리사와의 대화도 단절됐다. 이 시기에 고급백화점 버그도프 굿맨[6]의 보석 판매상 마크 홉킨슨(Mark Hopkinson)과 가깝게 지내던 중 그가 에이즈[7] 걸려 죽어가자 매장에서 일부러 소동을 피워 홉킨슨이 백화점 직원들의 케어를 받게 했고, 서로의 비통함을 공유하며 의지했는데, 이 실화는 "조앤 리버스와 버그도프 굿맨(Joan Rivers and Bergdorf Goodman)"이라는 2인극 대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89년 궤도를 수정하고 낮 시간으로 옮겨 "Joan Rivers Show"를 만들었다. 900편을 넘게 찍으며 나름 장수했다.

3.3. 외모 조롱 컨텐츠

딸 멜리사와 함께 헐리우드 행사장 레드카펫 인터뷰를 하나의 쇼로 만든 선구자다. 레드카펫에 도착한 연예계 종사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머리 모양, 복장, 체형, 성형, 체중 등을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혹독하게 평가했다.

1994년 E! 채널에서 시작했고 나중엔 TV Guide 채널로 옮겼다. 'E! Live from the Red Carpet'이나 'Fashion Police'(2002-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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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를 할 때나 쇼크쇼에서도 타인의 외모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정치인 존 워너와 결혼한 뒤 우울증에서 기인한 폭식증으로 살이 쪘을 때 이를 지속적으로 비아냥거린 일이 제일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 아무도 감히 살쪘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길래" 자신이 나섰다고 했다. 대표적인 발언들은 다음과 같다:

"테일러의 범퍼스티커 문구는 '고래를 살려두세요'인데, 그 밑엔 작은 글씨가 써있어요. '후식으로 먹게.'" "정말 창피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리즈 테일러를 씨월드에 데려간 적이 있어요.[8] 범고래 섀무[9]가 물에서 튀어오르니까 나한테 물어보는 거에요. "저거 야채도 곁들여서 줘?" "테일러의 턱 밑 살의 주름은 중국 전화번호부보다도 많아요." "테일러는 전자렌지 앞에 서서 '빨리!'라고 소리 지를 유일한 여자에요."

테일러는 공통된 친구에게 '리버스의 말은 내 삶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요지의 발언만 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1985년 LA의 유명식당 Spago에서 열린 아동학대 피해자를 위한 자선행사에서 리버스를 처음 만난 테일러가 평범하게 웃으며 대해주고 나중엔 함께 사진까지 찍었을 땐 엄청난 언론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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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는 한편으론 테일러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주변에 감추지 못했는데, 리버스가 이 만남 이후 테일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 데 실패한 게 알려지자 또 한 번 크게 기사가 나기도 했다.

2015년 딸 멜리사 리버스가 조앤 리버스의 펜트하우스를 팔면서 발견한 조앤 리버스의 노트엔 테일러의 체중 증가를 조롱하기 위해 준비했던 농담이 850개나 남아있었다.

요요현상을 자주 겪던 커스티 앨리도 먹잇감이었다. 오프라 윈프리 역시 리버스의 사후에 생방송에서 사전 합의 없이 자신을 뚱뚱하다고 지적하는 리버스 때문에 매우 당황했다고 털어놓았다.

레나 던햄에겐 "어떻게 (그 몸매로)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을 수가 있냐"며 "비만해져서 당뇨에 걸려 손가락을 다 잃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보그에 나갈 정도로 자신이 남들 눈에 예쁜지 안 예쁜지 신경 쓰는 위선자"면서 "예뻐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잘못됐다"고. 조앤 리버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건 엄마들이 하는 제일 위험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 완벽한 몸을 가진 제인 폰다도 남편들이 바람을 폈는데," "뚱뚱한 여자애들이 정신을 안 차리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날씬한 스타들은 이목구비를 구체적으로 비하했다. 안젤리나 졸리에 대해선 '그 미련해보이는 큰 입술'이라고 지칭했다. 졸리는 딸 멜리사와 서로의 집을 오갈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미인 스타들에게 무조건 멍청하다는 프레임을 씌워 비웃는 것도 주요 레퍼토리였다. 시대를 풍미한 금발 미인 보 데렉(Bo Derek)에 대해선 "신은 공평해서 미모를 주면 지성을 빼앗아간다는 이론의 산증인"이라며 "쌍둥이 여동생 생일까지 까먹을 여자"라고 했다.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Christie Brinkley)를 두고는 "(머리를 금발로 만들려고 탈색을 할 때 쓰는) 과산화수소를 망가뜨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브링클리는 천연 금발이었다.

즉, 외모에 문제가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조롱하겠지만 외모로 깔 게 없다면 백치로 몰아가겠다는 가불기를 걸어버린 것이다.

멜리사 리버스는 "어머니가 일부러 상처 주려고 농담한 적은 없고, 당사자나 가족들이 상처 받은 게 확인되면 즉각 레퍼토리에서 뺐다"고 두둔했다. 실제로 윌리 넬슨의 자녀들이 항의했을 때 넬슨을 레퍼토리에서 뺀 적이 있다. 그러나 캐시 베이츠는 몸무게를 공격하는 농담을[10] 듣고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유명세로 돈 벌고 있으면 이 정도는 좀 참으라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리버스가 외모로 공격하는 대상에는 본인도 빠질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못생겼으니까 누가 내 사진을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프로그램[11]에 보냈어요. 리플리는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며 되돌려 보냈죠." 리버스는 자신은 "태어나서 예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어렸을 땐 머리 리본을 단 풍선처럼 생겼"다고 회고했다. "내가 태어날 때 받아낸 의사는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내 궁둥짝 한 번 쳐다본 다음에 '쌍둥이에요!'라고 소리 쳤다니까요." 어떻게든 그런 외모를 개선하기 위해 수백 번의 성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리버스가 타인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공격을 멈추지 못한 건 자신과는 달리 스스로의 약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있다.LA타임즈 사실 이런 자기 혐오적 농담은 미국 여성 코미디언 업계의 오랜 관습이기도 하다.

리버스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외모"이며, 그게 남자(결혼)와 돈을 얻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교육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기 공연장엔 남자가 별로 없고, 부자와 결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일반 가정주부들이 제일 많이 찾아와 가장 열광하곤 한다"고 책에 썼다. 그러나 공연 녹화 영상에서 비춰주는 관객석을 보면 성비는 늘 반반이었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같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논조가 깔려있음에도 여성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된 이유는 "리버스의 농담이 질투, 두려움, 혐오, 남보다 못하다는 불안처럼 일반 여성들에게 금기시된 감정을 분출할 수 있게 해주는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또한 리버스는 물질주의 숭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요즘식 미국 중산층 주부의 원본이기에 공감을 샀을지도 모른다고.더 뉴요커

한편으론 "리버스의 샌드백이 되는 건 업계에서 그만큼 성공했다는 훈장"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대중이 리버스의 농담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농담 대상이 된 유명인이 대중문화계의 시대정신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베니티 페어

딸 멜리사는 리버스가 "부유한 사람들을 긁어모으는 수집가"였다고 평했다.

다만 스타들의 외모와 패션을 신랄하게 비하하는 쇼 자체는 리버스 고유의 창안이 아니다. 이를 연례 행사로 승화시켰던 최초의 인물은 미스터 블랙웰[12]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게이 디자이너[13] 리처드 셀저(Richard Selzer)로, 그가 진행한 첫 최악의 드레스 발표회가 언론을 탄 건 1964년의 일이다. 블랙웰은 여성스타들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리버스와 마찬가지로 외모에 자신이 없어 전신성형을 감행했다. 여성혐오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14], 진지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했지만 실패했다는 점도 리버스와 같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주 타겟으로 삼아 체중 증가를 공격한 것마저도 일치한다. 실제로 블랙웰은 인터뷰에서 리버스가 자신를 도용했다고 말한 바 있다.

리버스와 블랙웰은 스타들이 무난한 옷만 택하도록 몰아가 모두의 착장이 균질화 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3.4. 그외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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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망

2014년 8월 성대 수술을 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생명유지장치를 달고도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을 한 채, 인조 밍크 담요를 덮고 뮤지컬 오클라호마를 듣고 있었다. 다음달인 9월 4일(현지시간)에 사망하였다.

5. 어록

외모가 다죠. 중요한 건 얼굴이에요. 남자들은 여자한테 지성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 안 써요. 남자들이 여자 치마 속에 손을 넣고 (손을 위로 쑤셔넣는 시늉을 하며) 이러는 게 도서관 회원카드를 찾으려고 그러는 거겠어요?[15][16]
(폐경을 했더니) 어제 갑자기 몸이 확 더워지는 거에요.[17] 그래서 자궁에 넣어놨던 피임기구가 녹아버렸어요.
(딸 멜리사 리버스가 플레이보이로부터 상반신 탈의 표지 모델을 제안 받고 거절했던 일을 얘기하며) 정신 없는 X이에요. 누가 그 정도 거액을 준다 그러면 아예 밑을 까서 X지까지 보여줘야지!

자신에게 성적 매력이 없다거나 남편과 섹스리스로 지내는 사실 같은 걸 농담 소재로 삼곤 했다.
난 가슴이랄 게 전혀 없어요. 남편 앞에 발가벗고 서서 (가슴을 흔드는 시늉을 하며) '뭐 닮았어?'라고 했을 때 '아침밥 팬케이크.'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18]
사람은 자기랑 정반대인 사람한테 끌린다고 하잖아요? 그게 사실이라면 난 돌리 파튼[19]이랑 결혼했어야돼요.
어젯밤에 남편한테 섹스할 때 제일 선호하는 몸 위치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옆집이래요.
요즘 우리집에서 쓰는 피임법은 (남편 앞에서) 내가 다 벗은 다음 불을 그냥 켜두는 거에요.
섹시한 속옷을 사봤어요. 당연하다는듯이 선물 포장을 해서 주더라고요.
(가슴골이 굉장하다고 칭찬하자) 무릎에서부터 죄다 끌어모았어요
산부인과에 안 간지 4년 됐어요. 갈 필요가 없죠. 차가 그냥 차고에 계속 처박혀있는데 정비소 가는 사람 봤어요?
난 산부인과 의사론 남자를 선호해요. 더 익숙하거든요. 딱 내가 집에 있을 때랑 똑같아서요. '내가 다 벗고 있는데도 무관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
강간마가 날 보더니 그랬어요. 우린 그냥 친구하자고.

성형수술을 350번 가량 한 걸로 유명한데 이 소재로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성형을 700번 넘게 했다고 숫자를 부풀려서 떠들고 다녔다.
성형수술[20]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은 터퍼웨어[21]에 기증돼야돼요.
쌍둥이 자매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면 성형수술을 안 한 지금 내 모습이 어땠을지 알 수 있었을 거 아니에요.
바그다드보다 더 많은 재건이 내 얼굴 위에서 이뤄졌죠.

6. 출연 영화

<rowcolor=#ffffff> 연도 작품 비고
1968애증의 세월단역
1984머펫, 뉴욕을 점령하다조연
1987스페이스볼조연
1993퍼블릭 에네미조연
1998나폴레옹조연
2000속삭임: 코끼리 이야기조연
더 인턴조연
2004대통령의 딸단역
2008에브리 리틀 스텝 - 코러스 라인조연
2010조앤 리버스: 어 피스 오브 워크(Joan Rivers: A Piece of Work)조연[22]
2013스캐터 마이 애쉬즈 앳 버그도프스주연[23]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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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선 조앤으로 굳어져있지만 조운이 맞는 발음이다.[2] 사망시 기준[3] Lenny Bruce. 깜둥이(nigger), 유대계잡놈들(kike) 같은 금기시된 언어들마저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존경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다. 리버스는 이런 충격적인 발언들이 오히려 일종의 정신 정화 작용을 하는 건강한 유머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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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rt Sa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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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만 코난은 1995년레이트 나잇을 진행할 때 그녀를 게스트로 맞이한 바 있다. 거기에 코난은 제이 레노와 NBC의 일방적인 행패로 인해 투나잇 쇼를 겨우 7개월 밖에 진행하지 않았기에 코난이 계속 진행했다면 불렀을 지도 모른다.[6] Bergdorf Goodman. 유명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이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7] 당시엔 "게이병"으로 더 잘 알려져있었다.[8] 물론 그런 적이 없다.[9] Shamu. 60년대 씨월드 돌고래쇼의 간판스타였다. 1대 섀무가 죽은 뒤 씨월드는 다른 범고래들로 쇼를 이어나갔다.[10] "캐시 베이츠만 승선하지 않았더라면 타이타닉이 침몰할 일은 없었다"고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베이츠는 이기주의로 넘쳐나는 배 안에서 누구에게나 예의를 갖추고 끝까지 인도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캐릭터로 나왔다. 물론 베이츠 전엔 케이트 윈슬렛이 이 농담의 희생자였다. 윈슬렛이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자 "타이타닉은 윈슬렛의 그 팔뚝 때문에 가라앉은 거"라고 했다.[11] Ripley’s Believe It or Not[12] Mr. Blackwell. 1922~2008.[13] 제대로 된 옷이 아니라 변기 커버 같은 걸로 흥했다.[14] 왜 여성의 외모만 평가하고 공격하냐고 기자들이 묻자 남성에겐 그렇게 할 흥미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15] 자신도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처럼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며.[16] 2009년에 낸 성형 가이드북 제목은 아예 "남자들은 멍청하고... 큰 가슴을 좋아해"였다. 참고로 리버스는 임신 가이드북도 낸 적이 있다.[17] 이런 열감은 폐경기 증후군 중의 하나다.[18] 1982년에 한 농담이다. 나중에 성형했다.[19] 가슴이 큰 걸로 유명하다.[20] plastic(플라스틱) surgery[21] Tupperware. 플라스틱 등을 소재로 하는 밀폐용기를 만드는 회사다.[22] 본인 역으로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23] 본인 역으로 출연한 두번째 다큐멘터리이며 최초이자 최후의 주연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