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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9:12:52

휴정(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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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의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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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윗첨자의 경우에는 독립적인 열전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해당 인물의 열전 속에서 함께 설명되는 인물들이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ea-Joseon-Seosan_Daesa-02.jpg
법명 <colbgcolor=white,#191919>휴정(休靜)
출생 1520년 3월 26일
조선 평안도 안주목
(現 평안남도 안주시)
사망 1604년 1월 23일 (향년 83세)
조선 평안도 묘향산 원적암
본관 완산 최씨
속명 최여신(崔汝信)
아명 최운학(崔雲鶴)
운학(雲鶴)
청허(淸虛),서산(西山)
별칭 백화도인(白華道人), 서산대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 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1. 개요2. 생애3. 저서4. 제자5. 기타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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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생각하고 꾀하던 모든 것들
紅爐一點雪(홍노일점설) 화롯불에 떨어진 흰 눈 한 송이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진흙으로 만든 황소가 물 위로 가고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대지와 허공이 꺼져버렸네
임종게(臨終偈).
조선승려. '서산대사'라는 별호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1520년 평안도 안주에서 최세창(崔世昌)의 아들로 태어나 1538년 출가하여 1540년 계(戒)를 받았다. 1549년 승과에 급제하고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7년만에 그런 벼슬은 승려된 자의 본분이 아니라고 하며 관두고 금강산 백화암으로 들어가 수행하였고 다시 묘향산 금강굴에 가서 성속이 분리되지 않는 참됨의 가치와 그 길을 추구하였다.

이후 제자들을 길러 내었는데 제자 중 유명한 사람으로 사명당이 있었다. 사명대사는 묘향산까지 찾아와 서산대사를 시험하려고 "여기 오다가 고운 한 마리를 잡았는데 대사님한테 드려야 할지 놓아주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장난치듯 말했는데 서산대사는 "나는 대사께서 소승을 찾아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을 텐데 밖에 나가 마중을 해야 될지 안으로 모셔 들여와야 될지 몰라서 망설이는 중이오."라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에 사명대사는 무릎을 끓으며 그날로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당시 묘향산에 있었다. 서산대사는 승병을 일으켜 제자 사명당 등과 왜군을 물리치려 노력하였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팔십세년전거아 팔십세후아시거).”라는 시를 적어 사명당과 처영(處英, ? ~ ?)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는데 나이 85세, 법랍 67세였다. 다비한 사리는 묘향산 보현사, 안심사와 해남 대흥사에 나누어 각각 부도를 세웠다.

당취(혹은 땡추)를 이끌었다는 야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야사이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 것.
명종실록 14권, 명종 8년 6월 9일 갑신 1번째기사에서 "사간원에서 문장과 과거의 절목에 관해 아뢰다">에 휴정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윤춘년(尹春年)이라는 선비가 "내가 근래에 정진(精進=불도(佛道)를 닦아 게을리 하지 않는 것)한 공부가 깊어서 방안에 광채가 있고 입속에서 향기가 난다."하며 휴정에게 입김을 불었는데 입냄새가 너무 심해서 휴정이 참다 못해 "이것은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마장(魔障=어떠한 일에 마가 끼어드는 일)이라는 것인데 당신이 신비한 빛과 특이한 향기를 지녔다 해도 별로 귀할 것이 없습니다."하고 말했고 이후 두 사람은 절교했다고 한다. 두고두고 윤춘년을 비난과 비웃을때 쓰였다.
嘗語山僧休靜曰: "吾近來精進功深, 室中有光, 口稟生香。" 噓氣觸靜, 靜不堪其麤穢之臭曰: "此禪家所謂魔障也。 大人雖有神光、異香, 不足貴也。" 春年遂與靜絶, 聞者笑之。 其在玉堂與諸僚談經, 至《孟子》 "充實而有光輝之爲大。" 問曰: "此言光輝豈眞有耶?" 春年曰: "學問之人, 有光輝可見。" 呵呵大笑, 若自許者。 其人之鬼怪類此

실록 원문

윤춘년은 실록에서 평가가 좋지 않은 인물인데 윤원형에게 붙어서 그의 형 윤원로의 추문을 들춰내 고발한 공으로 반열을 뛰어넘어 고관이 되었고 그 때문에 아부하는 선비들이 줄을 이루었으며 아는 것이 많다고 뻐기고 다녔다고 한다. 실록의 사관은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좋고 책도 많이 읽은 사람이기는 한데 학문이 편벽되고 논변은 시끄러웠으며 겉으로는 청렴하고 삼가는 태도를 꾸미지만 속으로는 출세할 생각밖에 없었다."하고 평가했다. 윤원형이 몰락하자 윤춘년 역시 몰락해 시골로 쫓겨나 말년에 정신이 나가서 무당 굿이나 찾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주색잡기나 뇌물 수수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3. 저서

4. 제자

5. 기타

6. 대중매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