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건 주 출신으로, 이스턴 미시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드래프트에 나와 전체 461번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지명을 받았다. 지명된 후 피츠버그 산하 마이너와 다저스 산하 마이너에서 10년간 뛰었으나 메이저에는 올라오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통산 671경기 출장에 타율 .251을 기록하였다.
은퇴 후 1981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2년 짐 릴랜드 감독이 이끄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불펜코치로 선임되어 1993년 시즌까지 활동하였다. 1993년 시즌 이후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아트 하우(Art Howe)가 해임되자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휴스턴은 3시즌 연속 2위를 마크하면서 번번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해 1996년 시즌 후 그는 휴스턴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이 후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감독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으나, 애너하임에서도 처음 두 시즌을 2위로 마치면서 개인 통산 5년 연속 PO탈락을 맛보았고, 1999년 시즌에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제자리 꼴찌로 추락하고, 몇몇 선수들의 항명파동까지 터지는 최악의 흑역사를 남기며 29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자진 사임했다.[1]
2010년 시즌에는 뉴욕 메츠 마이너 코디네이터로 일하였고, 2010년 11월 23일 메츠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년 9월 27일 클럽 옵션이 실행되었고, 2013년 9월 메츠와 2년 연장계약을 맺었다. 2014년 12월 23일 기준 메츠에서의 성적은 304승 344패 승률 .469.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꽤 좋지 않은 편. 전술 구상 자체가 뛰어나지 않다는 평이 많으며 무엇보다 혹사 논란이 상당한 편이다. 맷 하비의 토미 존 수술을 비롯해 카를로스 토레스의 13-14시즌 혹사와 15시즌 폭망에 대한 책임이 적잖다는 여론은 물론, 2015년에도 마무리 쥬리스 파밀리아를 2014년 이래로 정규시즌, 포스트시즌을 안 가리고 엄청나게 굴려댄다고 큰 비판을 받았다.[2] 결국 디비전 시리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거의 매경기 등판에 2이닝, 1+이닝 세이브를 했던 파밀리아는 월드시리즈에서 3블론이라는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5차전처럼 수비수의 실책으로 망한 경기도 있지만 콜린스 감독 역시 6점차에서도 파밀리아를 내보내는 등 패배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오릭스에서도 취임 직후부터 팀 내 주축 타자들이 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 등번호 1번을 고토 미츠타카에게서 가져가[3] 팬들의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은 것에 더해 시범경기에서 홈런을 친 야수[4]를 다른 선수를 봐야 한다며 2군으로 내려서 터피 로즈가 강력히 항의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6시즌 들어서는 부상이 있는 노아 신더가드와 스티븐 마츠를 혹사시키고 있어 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그러고도 8월 6일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 신더가드를 112개나 던지게 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8월 9일(현지시간 기준) 애리조나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을 달고 뛰는 스티븐 마츠를 6이닝 동안 무려 120개나 던지게 했다. 그러고 팀은 지니 까임도 2배. 8월 12일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9:0 대패를 당한 후 한 기사에서 '선수들이 열정이 없다.'라며 깠다.
팀성적이 바닥이었던 8월에는 경질설까지 돌았었으나 9월 이후 성적이 반등하면서 와일드카드에 진출하였다. 팬들 역시 '사람은 나름 됨됨이가 훌륭한데 제발 혹사만 좀...'이라는 반응. 2017년에는 부상으로 망가진 팀을 이끌면서 고생 중이신데, 시즌 종료 후 감독 자리에서 은퇴를 할 예정이다. 나이도 적지 않아서 이제는 노후를 보내시려는 듯. 내년 시즌에는 샌디 앨더슨 단장 보좌역을 담당하게 된다. 후임 감독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용병으로도 한국에 잘 알려진 미키 캘러웨이가 선임되었다.
[1] 콜린스의 자진 사임 후엔 훗날시카고 컵스의 감독으로써 염소의 저주를 종결지은 조 매든 벤치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후임 감독으로 에인절스의 첫 우승을 이끌게 되는 마이크 소시아가 취임했다.[2] 애초에 이 사람 별명이 Drill Sergeant. 훈련교관이라는 뜻으로 하트만 상사의 그 보직 맞다. 이는 그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3] 고토는 콜린스의 퇴단 후인 2009년에 다시 등번호를 1번으로 바꿨다.[4] 히라시타 코지. 현재는 히가시오사카시에서 유소년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