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前 대주그룹 회장 허재호 許宰晧 | Huh Jae-ho | |
<colbgcolor=#0047AB> 출생 | 1942년 8월 18일 ([age(1942-08-18)]세) |
전라남도 광양군 진상면 금이리 (現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금이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뉴질랜드| ]][[틀:국기| ]][[틀:국기| ]] 오클랜드 |
직업 | 기업인 |
전직 | 체신부 우정국 연구개발계 건우설비[1] 대표이사 대주그룹 회장 광주일보 회장 뉴질랜드 KNCC Ltd. 고문 |
학력 | 광주공업고등학교 (졸업 / 9회) 한양대학교 (기계공학 / 학사) 한양대학교 (냉동학 / 석사) |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전역 |
부모 | 아버지 허진명(1919~1997), 어머니[2] |
형제자매 | 9남매 중 장남 여동생 허부경[3] |
배우자 | 이정순(1946~2013) 황OO[4](사실혼) 김OO[5](사실혼) |
자녀 | 슬하 3남 5녀[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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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주그룹의 창립자이자 전 회장.2. 생애
2.1. 유년, 청년기
1942년 8월 전라남도 광양군 진상면 금이리 이천마을에서 태어났다.허재호 회장은 9남매 중 장남이며 아버지인 허진명씨는 법조인으로, 전주지법 정읍지원과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판사로 근무했고 후에 광주지법 순천지원과 목포지원의 지원장까지 역임하여 전라도에서만 판사로 37년간 일한 향판(鄕判)으로,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도 활동하였다.[7] 그래서 아버지는 장남인 허재호 회장도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릴 때부터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발명가가 되기위해 광주공고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때 집안에서 크게 반대했고 아버지 눈 밖에 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8] 이후 한양대에 진학해서도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이후 1967년부터 체신부 우정국 연구개발계에서 일했으나 그만두고 건설·하도급·감리회사 등 7곳을 옮겨다니며 실무경험을 쌓고 인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1969년에 장인어른[9]으로부터 200만원을 빌려 회사를 차렸고 첫 사업은 건물 냉·난방 설비 도급공사였다. 성실하게 일하며 회사를 키워나가 건물 냉·난방 설비 도급업체 중 전국 1위로 키워냈지만 항상 을의 입장에 서야하는 도급업체의 한계를 느끼고 1981년에 업종을 변경했다.
2.2. 대주(大洲)의 시작
1981년 5월에 대주종합건설을 설립하여 건설업에 뛰어 들었다. 대주는 허재호 회장의 사업 수완과 지역내 부친의 영향력, 처가의 자금지원 등으로 나날히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광주·전남지역에 아파트를 그야말로 쏟아내면서 엄청난 돈을 쓸어담았고 대주건설의 몸집도 크게 불어났다. 1994년에는 건설사 도급순위 전국 52위의 1군 업체로 도약했고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이 되었다. 특히 당시 9:1의 경쟁률을 뚫고 광주지역 민영방송 사업자로 선정되어 광주방송(KBC)를 설립하고 방송사 사주로 군림하면서 지역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고 1995년에는 대주건설의 상장과 서울로 본사 이전을 추진하면서 2000년까지 국내 50대 그룹에 진입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직접 밝혔다. #그러나 허 회장의 포부가 무색하게도 후술할 불법대출사건과 그간 쌓여왔던 아파트 미분양, 무리했던 사업확장 등이 화근이 되어 불과 몇달만인 95년도 하반기부터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고 허재호 회장의 대주 왕국은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나산그룹에 대주건설과 광주방송을 넘기고[10] 계열사들도 정리하는 것으로 위기를 일단락시켰다. 하지만 허재호 회장은 위기에 굴하지 않고 재기를 노렸다. 대주건설과 광주방송 매각대금 및 담보자산 등을 합쳐 약 1,000억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시 재기를 노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얼마 못 가 97년도 외환위기가 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쓰러질 때 대주는 그 돈으로 버텨낼 수 있었고 추후 수도권 진출을 위한 종잣돈이 되었다.
2.3. 대주(大洲)의 전성기, 그리고 몰락
2000년대에 들어서 허회장과 대주는 아파트 건설사업을 통해 전성기를 찍었다. 하지만 건설에만 치중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나섰다. 첫번째 인수업체는 전남 담양군에 위치한 두림제지라는 부도난 제지업체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손해보험사인 대한화재, 그리고 전남 해남군에 위치한 중소규모 조선소인 대한조선을 인수하게 된다. 허 회장은 “기업은 세 발로 버텨야 안전하다“며 대주그룹의 주력 업종을 건설·제조·금융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제조, 즉 조선업에 거의 ‘올인’ 하기로 하며 대한조선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다.하지만 2007년 허 회장이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대주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동시에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갔던 대한조선은 이익을 내긴 커녕 조선업 불황기가 닥치면서 밑 빠진 독처럼 대주그룹 전반에 자금경색을 일으켰고, 엎친데덮친격으로 대주건설 앞에는 미분양 아파트와 PF채무보증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허재호 회장의 대주그룹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은행연합회에서 발표한 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대주건설이 퇴출, 대한조선은 워크아웃이 확정되면서 대주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 와중에 허재호 회장은 탈세와 횡령 혐의가 인정되어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구속은 면하게 되자 뉴질랜드로 도피했고 곧이어 영주권까지 취득했다. 비록 징역형은 피했지만 거액의 벌금과 미납세금을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않아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허 회장은 아들 명의로 뉴질랜드에서 KNCC라는 회사를 차려 피오레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여 아파트를 지어왔으나 2023년 11월 뉴질랜드 법원에서 최종 부도처리되었다.
3. 논란
3.1. 불법대출 사건
계열사인 동양상호신용금고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출자자 임에도 무려 336억원을 불법으로 대출 받은 것이 발각되어 1995년 검찰에 고발당했고, 그 여파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기 시작하면서 대주건설이 자금난에 빠졌고 나산그룹에 대주건설과 광주방송을 넘기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3.2.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황제노역 사건
자세한 내용은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황제노역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여담
- 자금난을 겪고 퇴출당하기 전까지 대주건설은 광주·전남권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고 지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건설회사였다.[11] 특히 당시 건설업계에서 허재호 회장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창업한 광주 중소 건설사들의 창업배경을 들여다 보면 원래는 대주건설에 입사하여 허 회장 밑에서 일하다가 대주그룹 해체 이후 직접 회사를 차렸다는 사람이 꽤 많다.
- 허재호 회장은 여성 편력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내연녀 황 씨와 관련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황 씨는 과거 보험설계사, 외판원을 하다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허 회장과 만나 인연을 맺었고 급격하게 관계가 깊어지면서 아예 따로 살림을 차려 황 씨외 같이 살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HH레저’, ‘HH개발’ 등 회사까지 차려줬는데, 사명인 HH도 서로의 성 이니셜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허 회장이 탈세 및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는 등 함께 타격을 받았고 대주그룹이 무너지고 나서는 허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 그러나 황 씨는 현재 허 회장과의 관계를 부정하며 자신이 대표로 있는 HH개발이 소유한 골프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 허 회장의 내연녀는 황 씨 외에도 2~3명이 더 있다고 하며 이들 사이에서 가진 자식도 7~8명이나 된다고 알려졌다.
[1] ‘전남설비’라는 얘기도 있다.[2] 허 회장이 초등학교 2~3학년이던 무렵에 사망했다고 한다.[3] 現 교정위원중앙협의회 명예회장이며 한국건설 정철준 회장의 부인이기도 하다.[4] HH레저·HH개발 사내이사, 담양 레이나CC 대표[5] 현재 뉴질랜드에서 허재호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 장녀와 차녀는 본부인 이정순씨 사이에서 둔 자녀들이며, 첫번째 사실혼 부인인 황씨 사이에는 2남 2녀를 두었고 현재 뉴질랜드에서 함께 사는 두번째 사실혼 부인과도 1남 1녀를 두었다고 알려진다. 이 밖에 더 있다는 말도 있다.[7] 대대로 법조인 집안이라는 말도 있다.[8] 후에 허 회장이 사업가로서 성공하여 큰 돈을 벌게 되자 인정해줬다고 한다.[9] 전직 광양시장이라고 하며 간척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10] 이때 실 소유주가 나산이 아니고 대신그룹이며 나산을 앞세워 위장인수했다는 의혹이 국회에서 제기되었고 이후에 사실로 밝혀졌다. 참고로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이 유명 가수 출신 최희준이었다.[11] 현재 광주출신 건설사 중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호반건설과 중흥건설도 그때 당시 대주건설 앞에서는 그저 후발주자였을 뿐이었고 아파트 분양할때도 대주가 훨씬 선호도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