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황제 皇帝 | Emperor | |
하위 문서 | <colbgcolor=#fff,#1f2023>지역별 존재 양상(한자문화권 · 유럽) · 참칭 황제 |
관련 틀 | 군주의 호칭 |
1. 한자문화권
자세한 내용은 황제/한자문화권 문서 참고하십시오.2. 유럽
자세한 내용은 황제/유럽 문서 참고하십시오.3. 남아시아
마우리아 제국 초대 황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
- 삼라트
베다 시대부터 등장하는 황제 칭호는 '삼라트(Samrat)'.[1]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를 최초의 통일 제국 황제로 본다. 남아시아에서 처음 등장한 황제 칭호이지만 기원후부터는 다른 칭호들에 밀려 잘 보이지 않게 된다.
- 차크라바르틴
찬트라굽타의 손자 아소카가 '차크라바르틴(전륜성왕)' 칭호도 사용한 이후 차크라바르틴은 삼라트의 별칭이 되었으며, 팔라바 왕조, 촐라 제국,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차크라바르틴을 자칭했다.[2]
동아시아의 청나라에서도 청 황제의 권위를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와 몽골에 과시하기 위해 전륜성왕 칭호를 사용했다.
- 라자디라자/마하라자디라자[3]
그 후 마하라자[4] 및 라자[5] 칭호를 쓰는 북인도, 데칸, 벵골의 여러 왕조가 난립했는데, 힌두 제국인 굽타 왕조에선 찬드라굽타 1세[6] 시대부터 왕중왕에 해당하는 '마하라자디라자'를 사용했다.
한편 인도와 같은 남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네팔은 굽타 제국을 모방해서 마하라자디라자 칭호를 사용했으며, 국내에 여러 번국을 두고 라자들을 책봉했다.[7]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자국을 네팔 왕국이라 칭하면서 자국 군주를 각국 언어에서 왕에 대응되는 단어로 번역했고, 2008년 마지막 군주가 퇴위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파디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진입해오면서 술탄이란 칭호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무굴 제국은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샤(왕)를 격상한 파디샤나 샤한샤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무굴 황제들은 미르자라는 칭호를 쓰기도 했는데, 이는 페르시아어로 아미르의 아들이라는 뜻의 amirzadeh가 변형된 것으로 아미르 티무르의 후손이란 의미에서 쓴 것이지 황제격과는 관련이 없다.
- 영국령 인도 황제[8]
영국이 인도[9] 전역을 정복하고 인도 제국을 수립했을 때는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게 되었는데,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공식적으로 인도의 황제 칭호는 소멸했다.
4. 중동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초대 왕중왕 키루스 2세 |
- 왕중왕[10]
동아시아의 황제와 유럽의 임페라토르(imperator)에 비견될 만한 지위로는 고대 서아시아의 왕중왕(王中王, king of kings)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국가 군주들을 평정한 앗시리아 제국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으며, 사용 시기로 따지면 황제격 칭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이후 서아시아 일대를 1100여 년간 지배한 이란계 제국들(아케메네스 왕조,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모두 군주의 기본 호칭으로 왕중왕을 쓰면서 로마의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에 맞먹는 황제격의 칭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사산 왕조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이후 중세 서아시아에서는 이슬람식 군주 칭호가 더 널리 쓰여 왕중왕이라는 칭호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근세에 들어 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부활시킨 사파비 왕조 시대부터 이란의 왕중왕이라는 표현이 다시 쓰이기 시작했고, 팔레비 왕조 시절에 '샤한샤(왕중왕)'의 공식적인 번역을 황제로 정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팔라비 왕조가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왕중왕 칭호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파디샤
페르시아어 칭호 중에는 파디샤(pad-e shah, padishah)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왕(shah)들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역시 왕보다 한 단계 높은 황제격의 칭호이다. 이란 본토와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근세 오스만 제국과 무굴 제국의 군주들이 군주의 기본 칭호로 이 파디샤를 썼다.
- 술탄 중의 술탄[11]
술탄이라는 단어는 그냥 지배자 정도의 의미라서, 일반적으로 왕과 동격으로 보긴 하지만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술탄은 도시 몇 개나 지방 하나 정도를 다스리는 소국의 군주일 수도 있고, 여러 지방과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의 군주일 수도 있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은 군주의 격을 한 단계 올린다는 의미에서 왕중왕의 술탄 버전인 '술탄 중의 술탄'이라는 칭호를 썼지만, 이는 오스만 제국에서만 쓰인 특수한 경우이며 상술했듯 오스만 황제들은 술탄보다는 파디샤라는 칭호를 더 많이 썼다. 다른 대부분의 거대 이슬람 국가들(셀주크 왕조, 아이유브 왕조, 이집트 맘루크 왕조 등)은 그냥 술탄, 혹은 大 술탄 정도의 칭호를 썼다. '술탄 중의 술탄' 칭호는 델리 술탄국, 벵골 술탄국, 오스만 제국에서 쓰였다.
5. 유라시아 유목제국
몽골 제국 초대 대칸 칭기즈 칸 |
- 카간[12]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초원의 튀르크, 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은 중국식의 왕이라는 칭호 대신에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칭호를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흉노는 선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카간이라는 칭호는 비공식적으로는 3세기경 선비족이 먼저 사용했고, 공식적으로는 탁발부의 압력에서 벗어난 유연의 구두상벌가한 욱구려사륜이 최초로 사용했다. 북위를 다룬 역사서 위서(魏書)에서 유연 제국을 설명하면서 가한(카간)을 중국어로 황제로 번역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13] 또한 유연을 무너트리고 강력한 제국을 세운 돌궐이 카간의 칭호를 사용한다.
본래 칸과 카간은 유목민족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말로 동일한 의미로 쓰였으나 몽골 제국이 등장하고 오고타이 대부터 여러 칸이 난립하면서 칸 위에 카간내지는 대칸이라는 존재를 새로 두게 되어 카간은 중화권의 황제와 같은 의미로 변하게 된다. 다만 이후로도 몽골의 최고 지도자에게도 종종 칸이라는 명칭이 쓰인 것을 보면 칸은 부족의 우두머리와 몽골족 전체의 우두머리를 모두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몽골 제국이 중국 전토를 장악하면서 몽골의 대칸이 원나라 황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대칸 지위 대신 중국의 황제가 된 것은 아니고 둘 다 겸하고 있었다.[14] 이후 원나라가 주원장에 의해 북원으로 쪼그라들어 다시 내몽골 고원으로 쫓겨나고(북원) 이후 중국식 원 황제 지위는 포기하고 대칸 지위만 이어지다[15] 훗날 청나라가 내몽골을 정벌한 이후 청나라 황제가 대대로 몽골 대칸의 지위도 세습하였다.[16]
그리고 투르크계가 세운 오스만 제국도 페르시아어인 파디샤와 함께 '하칸'[17] 칭호를 사용했다. 예를 들면 술탄 술레이만 한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아랍식과 투르크식 군주 칭호를 같이 썼고 유럽 국가를 상대할 때에는 과거 동로마 황제의 계승자란 의미로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도 자칭했다.
6.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느구서 너거스트[18]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는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가 폐위되기 전까지 황제를 모시는 제국이었다. 악숨 왕국의 군주 칭호였던 '느구스(왕)'를 격상한 '느구서 너거스트(왕중왕)'가 황제로 번역되는 칭호이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을 전설적 조상으로 한 솔로몬 왕조가 해당 칭호를 사용했는데, 단순히 칭호만 높인 게 아니라 황통(皇統)이 3000년간 이어져 왔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메넬리크 1세는 악숨 왕국 시절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솔로몬 왕조는 악숨 왕국이 멸망하고 300여년이 지난 1270년에 예쿠노 암라크가 역성혁명을 통해 자그웨 왕조를 타도하고 수립한 왕조이므로, 3천년 황통설은 예쿠노 암라크 황제 또는 그 후임 황제들이 자그웨 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유일하고 적법한 에티오피아의 황통이라 주장하기 위해 만든 신화라는 설이 유력하다.
- 중앙아프리카 황제[19]
20세기에 들어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장 베델 보카사가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제국을 선포한 적이 있었으나, 보카사 본인이 황족 혈통을 타고나거나 기존에 있던 제국을 승계한 것도 아니므로 정통성은 전혀 없었고, 폭정을 펼치다가 1대만에 망해서 현지에서도 흑역사로 간주되고 있다.
7. 아메리카
- 우에이 틀라토아니
아즈텍 제국의 군주 칭호 '우에이 틀라토아니'[20]도 보통 황제로 번역되어 불린다.
잉카 제국의 군주 칭호 '사파 잉카'와는 황제로 번역되는 아메리카 고유 칭호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서로 근원이 다른 별개의 칭호이다.
- 사파 잉카
잉카 제국의 군주 칭호 '사파 잉카'[21]도 보통 황제로 번역되어 불린다.
아즈텍 제국의 군주 칭호 '우에이 틀라토아니'와는 황제로 번역되는 아메리카 고유 칭호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서로 근원이 다른 별개의 칭호이다.
- 19세기 여러 아메리카의 황제국[22]
19세기에는미합중국아이티 제국, 멕시코 제국, 브라질 제국이 유럽식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제국을 선포했는데, 20세기 이전에 모두 폐지되었다.
8. 종교권
- 교황
바티칸 시국의 군주는 한자문화권에서는 皇(황) 글자가 들어가는 교황(敎皇)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는 한자문화권 한정으로, 라틴어 명칭 Papa(영어로는 Pope)는 황제와 관련 없다. 다만 로마 황제가 가진 칭호 중 하나였던 폰티펙스 막시무스도 교황의 칭호로 쓰이고 있다.
- 칼리파
이슬람 문화권의 칼리파와 술탄은 보통 칼리파를 술탄의 상위 군주로 보고 황제와 왕의 관계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칼리파가 명목상 술탄의 상위 군주이긴 하지만, 이미 10세기부터 정치적 실권을 상실하여 세속 군주들의 종교적 권위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교황에 더 가까울 것이다. 칼리파가 세속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초창기에는 술탄이 세속 군주의 칭호로 쓰이지 않았다. 칼리파의 지방 통제력이 무너진 뒤 사실상 독립 세력화된 지방 군주들이 명목상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인 칼리파의 권위를 존중하되, 그를 대신하여 실권을 가지고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왕(아랍어로 말리크, 혹은 페르시아어로 샤)을 쓰지 않고 대신 쓰기 시작한 호칭이 술탄이다.
[1] 'raj(왕)'을 격상한 'samraj'의 주격 단수 형태.[2] 촐라 군주는 '차크라바르티갈(Chakravartigal)'로 불렸는데, 이는 차크라바르틴의 다른 형태였다.[3] 왕중왕의 산스크리트어 형태[4] 서양의 King에 비견되는 칭호인데, 마하에 '크다' 또는 '위대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서 '대왕'으로 직역되기도 한다.[5] '라자'와 '마하라자' 둘 다 왕을 의미하지만; '라자'는 '번왕(藩王)', '마하라자'는 '대왕' 정도의 차이다.[6]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는 다른 인물이다.[7] 작위 요구자/아시아 문서 참고.[8] 영국령 인도 제국은 남아시아 고유의 칭호가 아닌 유럽식 황제 칭호를 가져다 썼다.[9] 그 당시의 인도는 지금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까지 포함하는 지명으로 쓰였다.[10] 페르시아어 형태는 '샤한샤'이고 언어에 따라서 표기가 다 다르다.[11] 왕중왕의 술탄 버전[12] '가한(可汗)', '대칸(大汗)', '하칸(خاقان)'이라고도 하는데, 이것들은 발음이나 표기가 다를 뿐 모두 카간을 가리키는 동일한 칭호이다.[13] 위서(魏書) 권103 열전 제91 연연(蠕蠕)조 중 "'가한'은 마치 위나라의 말로는 '황제'와 같다.(「可汗」猶魏言皇帝也。)"[14] 그러나 몽케가 사망한 이후 쿠빌라이와 아릭부카가 카안 자리를 두고 다투면서 서방의 汗國들은 자체적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쿠빌라이가 카안자리에 올랐음에도 서방은 그 통치에서 벗어났기에 카안의 통치력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에케 몽골 울루스의 통치자라는 관념만 유지될 수 있었다.[15] 영락제가 북원의 잔당들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때려대면서 실질적인 힘을 모두 잃어버렸고, 이후에는 보르지긴 혈통의 인물을 초원세력가가 옹립하는 것으로 명맥만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다얀 칸이 초원을 다시 재통일하면서 부흥의 기초를 마련하였다.[16] 청의 중국통일 이후 청나라의 황제는 중국의 황제, 몽골의 대칸, 만주의 한(han) 그리고 강희제 이후에는 티베트 불교의 보호자 칭호까지 겸하게 된다.[17] 카간의 오스만어 변형[18] 왕중왕의 암하라어 형태[19] 아프리카 고유의 칭호가 아닌 유럽식 황제 칭호를 그대로 썼다.[20] 나와틀어 왕 칭호인 '틀라토아니'를 격상한 칭호.[21] 케추아어 왕 칭호인 '카팍'을 격상한 칭호.[22] 아메리카 고유의 칭호가 아닌 유럽식 황제 칭호를 그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