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Meta Platforms
1. 개요
Meta Platforms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2. 2000년대
- 2004년 1월: 페이스북 서비스 개발 시작.
- 2004년 2월: 서비스 공식 출시.[1]
- 2004년 6월: 실리콘밸리로 이주.[2][3]
- 2004년 6월: 피터 틸로부터 시드 투자 유치.[4]
- 2004년 9월: 담벼락 기능 추가.[5]
- 2004년 12월: 사용자 100만명 돌파.[6]
- 2005년 3월: 시리즈A 펀딩 투자 유치.[7]
- 2005년 8월: 20만 달러에 facebook.com 도메인 구입
- 2005년 9월: the를 빼고 Facebook으로 사명 변경.[8]
- 2005년 10월: 사진 기능 추가.
- 2006년 4월: 피처폰 용으로 모바일 런칭.
- 2006년 6월: 야후의 10억 달러 인수 제안 거절.
- 2006년 8월: API 외부 공개.
- 2006년 9월: 뉴스피드 기능 추가로 광고 수익 모델 다각화, 가입 제한을 해제하여 대학생 대상을 넘어 서비스 확대.
- 2007년 5월: 페이스북 플랫폼 런칭으로 소셜 그래프 공유, 서드파티앱 지원 확대로 소셜게임 등장.[9]
- 2007년 6월: 비디오 기능 추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분 1.6%를 2억 4,000만 달러에 투자.
- 2007년 11월: 클릭 당 지급 방식의 경매형 맞춤 광고 시스템 도입, 페이지(기업 프로필) 기능 추가.
- 2008년 3월: 구글에서 광고 수익 모델을 구축한 셰릴 샌드버그를 COO로 채용.[10]
- 2008년 4월: 채팅 기능 추가.
- 2008년 5월: 커넥트(로그인 API) 기능 추가.[11]
- 2008년 6월: 트위터를 5억 달러에 인수하는 건에 실패하며 자사 뉴스피드에 상태 표시 담벼락 기능을 추가하여 트위터 기능을 모방한다.[12]
- 2008년 7월: iOS 앱 런칭
- 2008년 8월: MAU 1억 명 돌파.
- 2009년 2월: 프렌드피드라는 기업을 4,750만 달러[13]에 인수하며 좋아요 기능 추가, MAU 2억 명 돌파. 또한 각국 유저들의 크라우드소싱 번역 방식을 통해 미국을 넘어 해외에 진출한다.
3. 2010년대
- 2010년 7월: MAU 5억 명 돌파. 구글 검색 엔진 노출도를 위해 노출 범위를 친구 한정에서 전체로 변경한다.
- 2010년 8월: 장소 기능 추가.[14]
- 2010년 10월: 그룹 기능 추가.
- 2010년 11월: 850만 달러에 FB.com 도메인 구입.
- 2011년 4월: 오리건 데이터센터 오픈.
- 2011년 9월: 앱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분리.[15]
- 2012년 3월: HTML5 기반의 페이스웹을 폐기하고 코드를 새로 짠 뒤, 네이티브 앱을 제작하여 모바일에 본격적으로 진출.[16]
- 2012년 4월: 10억 달러로 인스타그램 인수.[17]
- 2012년 5월: 나스닥에 1,040억 달러 규모로 상장, 160억 달러 투자 유치.[18]
- 2012년 10월: MAU 10억 명 돌파.[19]
- 2013년 2월: 인스타그램 MAU 1억 명 돌파.
- 2013년 6월: 인스타그램 비디오 기능 추가.
- 2013년 8월: internet.org 서비스 출시.[20]
- 2013년 9월: 얀 르쿤 교수를 필두로 뉴욕에 FAIR(Facebook AI Lab) 설립 선언.[21]
- 2013년 10월: 10억 달러에 스냅챗 인수 제안 실패.[22]
- 2013년 12월: 인스타그램 DM 기능 출시.
- 2014년 2월: 190억 달러에 왓츠앱 인수.
- 2014년 3월: 20억 달러에 오큘러스 인수.
- 2015년 3월: 메신저 플랫폼 런칭.
- 2015년 4월: 메신저 비디오 기능 런칭.
- 2015년 8월 : 인스타그램 광고 도입.
- 2015년 12월: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 추가.
- 2016년 3월: 오큘러스 리프트 출시.
- 2016년 4월: 왓츠앱 종단간 암호화 메신저 기능 추가.
- 2016년 5월: 왓츠앱 PC앱 추가,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승리.[23]
- 2016년 7월: 페이스북 메신저 MAU 10억 돌파.
- 2016년 8월: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 추가.
- 2016년 9월: PyTorch 프레임워크 런칭.
- 2016년 10월: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 워크플레이스 기능 출시.
-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승리.[24]
- 2017년 3월: 페이스북 스토리 기능 추가.
- 2017년 6월: MAU 20억 명 돌파, 마크 저커버그의 전미 경청 투어 시작.[25]
- 2017년 8월: 인스타그램 쇼핑 기능 추가, 페이스북 워치(VOD) 기능 추가.
- 2017년 11월: 페이스북 메신저 키즈 런칭.
- 2018년 1월: 왓츠앱 비즈니스 런칭.
- 2018년 3월: 내부자 크리스 와일리의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고발.
- 2018년 4월: 마크 저커버그의 청문회 시작.
- 2018년 5월: 커뮤니티 스탠다드(불허가 컨텐츠 가이드라인) 규정.[26]
- 2018년 6월: 인스타그램 MAU 10억 명 돌파.
- 2018년 10월: Portal 출시.
- 2019년 3월: 모든 앱 통합 선언[27]
- 2019년 6월: Libra라는 지불 시스템 발표.[28]
- 2019년 7월: FCC에 50억 달러 벌금 징벌 판결.
- 2019년 9월: 오큘러스 퀘스트 출시, 5억 달러에 CTRL LABS 인수로 BCI 업계 진출.
- 2019년 11월: 페이스북 페이 출시.
4. 2020년대
- 2020년 5월: 페이스북 샵, Novi 출시.
- 2020년 6월: 왓츠앱 페이먼츠 기능 추가.
- 2020년 8월: 인스타그램 릴스 기능 추가.
- 2020년 12월: Libra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Diem 프로젝트로 규모 축소.
- 2021년 4월: 애플의 iOS 14.5 발표.[29]
- 2021년 8월: Horizon Workroom 출시.
- 2021년 10월: 프랜시스 하우겐[30] 2023년에는 페이스북 내부 폭로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의 내부자 고발 및 Meta로 사명 변경.[31]
- 2021년 12월: 북미지역 Horizon Worlds 출시.
- 2022년 1월: 오큘러스를 메타 퀘스트로 통폐합.
- 2022년 1월 : 디엠(리브라) 프로젝트를 실버게이트에 2억 달러로 매각.
- 2022년 6월: 셰릴 샌드버그 퇴사.
- 2022년 7월: 창사 이후 최초로 매출 감소.[32]
- 2022년 7월 : 동년도 9월까지 Novi 사업 철수 발표.
- 2022년 11월: 창립 이래 최초로 대규모 인력 13%(11,000 명) 해고.
- 2023년 2월: LLaMA-1 언어모델 공개.
- 2023년 4월: 추가로 인력 10,000명 2차 해고.
- 2023년 5월 : Giphy 강제 매각[33]
- 2023년 5월 : 자사 첫 인공지능 가속기인 MTIA v1 공개.
- 2023년 7월: 탈중앙화 기반 텍스트 소셜 앱인 스레드 출시.
- 2023년 7월 : LLaMA-2 공개.
- 2023년 8월 : 언어 번역모델 Seemless M4T 공개.
- 2023년 10월 : 메타 퀘스트 3 출시.
- 2023년 12월 : IBM과 함께 AI 얼라이언스 출범 발표.#[34]
- 2024년 2월 : 창사 이래 최초로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주당 0.5달러 수준이며, 연간 50억달러 규모다. 또한 5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발표하면서 주가가 20.32% 급등하여 시가총액 1조 달러를 재돌파했다.[35]
- 2024년 4월 : 신규 MTIA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 칩 공개.#
- 2024년 4월 : LLaMA-3 공개.
[1] 하버드 대학교 이메일로만 가입이 가능했으나, 2월 28일 컬럼비아 대학교 진출을 시작으로 곧 주변 대학교에도 진출했다. 이 당시에도 공동창업자들은 페이스북이 기존의 일반적 프로젝트와는 달랐음을 인식했음에도 중퇴를 결심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착실하고 천천히 프로젝트를 넓혀갈 겸 사용자 보안을 위해 수작업으로 대학 별 별도의 폐쇄적 네트워크를 일일이 적용시킬 겸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이러한 사업 확장 방식이 20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상당한 브랜딩이 되어 그들을 충실한 코어유저로 사로잡을 수 있었으며 쿨한 이미지가 생기며 마이스페이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2] 저커버그 외에 에두아르두 사베린과 크리스 휴즈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공동창업자와 인턴 활동을 위해 근처로 함께한 애덤 디엔젤로는 1학년의 학부생 인턴 2명을 데리고 여름 방학동안 이곳에 주택을 임대한 뒤 전업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얼마 뒤 숀 파커로 주택 생활을 함께하게 되었다.[3] 한편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중퇴를 결정하고 페이스북에 인생을 걸려는 결정을 했던 공동창업자는 저커버그 포함 전무했기 때문에 실패를 대비하여 디엔젤로 주도로 와이어호그라는 파일 공유 및 원격 파일 접근 프로그램 프로젝트도 동시에 구상했다고 한다. 사실상 Dropbox에 앞선 클라우드 서비스의 시초 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파이어호그는 AOL 메신저의 뒤떨어진 공유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2004년 10월에는 법인까지 설립하였으나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프로젝트를 접었다.[4] 페이스북 지분 7%로 전환이 가능한 50만 달러 규모 전환사채 방식의 조건부 투자였으며, 틸은 가입자 대비 DAU 지표가 무려 80%에 육박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냅스터의 공동 창업자 숀 파커가 투자를 유치했으며 리드 호프먼과 마크 핑커스도 각각 3만 7,500달러씩의 소액을 투자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웹사이트 내 배너광고로 수익을 올리고 있었으나 서버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택도 없는 금액이어서 저커버그의 부모님과 에두아르두 사베린의 돈으로 충당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5] 공동창업자들은 여름방학이 끝난 이 시기부터 로스앨토스의 주택에다 새로운 사무실을 마련하고 서버를 전문 업체인 에퀴닉스로 옮기며 전업으로 페이스북에 집중한다. 반면 크리스 휴스와 애덤 디엔젤로는 학교로 돌아갔으며 에두아르두 사베린의 지분 축소 및 퇴출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6] 앞선 틸의 50만 달러 투자는 12월까지 사용자 150만명을 돌파한다는 조건 하에 진행된 전환사채 형식이었으나, 틸은 그대로 전환사채를 지분으로 전환시켰다.[7] 해당 라운드에서 엑셀이라는 벤처캐피털이 1,3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지분 12%를 취득했다. 자금을 조달한 이후 로스앨토스의 주택 생활에서 벗어나 2층 규모의 정식적인 오피스에 입주했다.[8]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숀 파커는 좌천되었다.[9] Zynga라는 대형 소셜게임 업체가 이를 통해 성장했고 페이스북은 플랫폼 수수료로 매출 30%를 받아간다. 다만 어도비 플래시가 HTML5의 등장으로 인해 쇠락하고 아이폰의 등장으로 주요 플랫폼이 웹에서 모바일로 옮겨지자 페이스북 플랫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저커버그는 iOS와 안드로이드에게 주도권을 내준 것을 페이스북 창업 이후 가장 후회되는 일로 뽑은 바 있다. 2020년대 메타버스 산업에 빠르게 진출하여 플랫폼 선점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10] 셰릴이 합류한 이후에는 흩어진 사옥을 통합한 뒤 마크 저커버그는 제품 출시에 집중하고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셰릴이 총괄하는 양강 구도로 흐르게 된다.[11] 이로 인해 타 플랫폼의 데이터까지 손쉽게 얻어가며 향후 자사 AI엔진 구축에 큰 구심점 역할을 한다.[12] 페이스북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트위터 딜 이후로 위협적인 회사를 발견하면 재빠르게 인수를 제안하고, 인수가 먹히지 않으면 서비스를 카피하는 방식으로 소셜 미디어 제국을 구축한다. 전자에는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이 있고, 후자에는 트위터를 비롯하여 스냅챗을 모방한 스토리 기능, 틱톡을 모방한 릴스 기능, 클럽하우스를 모방한 오디오 룸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13] 현금 1,500만 달러와 주식교환 3,250만 달러.[14] 포스퀘어의 GPS 기능을 모방하여 출시했다.[15] 당시 왓츠앱과 애플이 아이메세지에 밀려 힘을 쓰고 있지 못했다.[16] 모바일 시대는 페이스북의 큰 1차 위기였다. PC와 다르게 스크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배너광고를 넣기 힘들어 수익이 급감했다. 따라서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주도로 페이스북폰과 운영체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했으나, 내부 반대로 인해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규모를 축소시켰고 결과는 폭망이었다. 이로 인해 모바일 주도권을 구글과 애플에 넘겨준다.[17] 훗날 저커버그와 당시 CFO 사이의 이메일을 통해 구체적인 인수 배경이 알려졌다.#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의 매출이 제로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잠재적 경쟁자 제거와 더불어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과의 서비스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매우 높게 샀다고 한다. 당시 페이스북은 비교적 모바일 생태계에 취약한 편이었는데, 인스타그램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성장한 서비스였다. 또한 이미 인스타그램이 개척한 새로운 방식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팔로업하는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구글+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오버밸류라고 평가받던 금액에 인수를 진행한 것이다.[18] 당시 기준으로 나스닥 역사상 최대 규모 상장이었으며, 엔젠투자자였던 피터 틸은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했다.[19] 현재에도 주요 매출원인 뉴스피드 게시물형 광고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며 모바일 수익화에 성공하고 만년 적자를 벗어난다.[20]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보급 사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적게 잡아먹는 페이스북 라이트앱을 개발하였고 현지 통신사 제휴로 스마트폰 기본 기능을 페이스북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자사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이들로부터 대량의 데이터 확보에 성공하여 맞춤화 광고 알고리즘 구축에 큰 도음이 되었다. 다만 드론 인터넷, 위성 인터넷 사업에는 실패하여 마냥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21] 얀 르쿤은 딥러닝을 부활시켜 AI붐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 이 연구소에서는 상용 목적보다는 논문과 기반기술 개발에 집중하였다. 생성형 인공지능, 컴퓨터 비전, 랭킹 알고리즘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 2021년에 MetaAI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2] 향후 30억 달러까지 제안을 높혔음에도 최종 실패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2016년에 스토리 기능을 그대로 따라해, 스냅챗은 2017년 이후로 성장세가 제대로 꺽이며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게 된다.[23] 그는 페이스북 가짜뉴스 바이럴을 악용하며 언론을 장악하여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고 이것을 기점으로 페이스북 내의 가짜뉴스는 커다란 문제점으로 떠오른다.[24] 언더독이었던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과는 달리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게팅 광고를 저비용 고효율로 진행하였고, 러시아 공작원이 조작한 가짜 뉴스를 퍼뜨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집단에게는 투표를 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결국 대선에서 승리하였고, 향후 2016년 선거는 타겟팅 광고계의 바이블급으로 평가받게 된다. 페이스북과 저커버그는 이 선거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을 계기로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되고 악의 축, 빌런 취급을 받게 된다.[25] 가짜뉴스 확산, 프라이버시 이슈, 데이터 유출, 무책임경영 등의 악재로 인해 기업 평판이 극악으로 치닺자 타개의 일환으로 투어를 실시했다.[26] 저커버그는 일론 머스크처럼 극도로 표현의 자유주의를 중요시하던 인물이었으나, 이를 기점으로 자사 프라이버시 제한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거듭된 비판을 타개해나가기 위해 애쓴다.[27] 메신저와 왓츠앱은 광고 모델이 빈약하여 수입이 없는 대신 수집 가능한 데이터가 넘쳐났고, 이를 이용하여 앱간 연동으로 간접적 수익화 모델을 구축한다.[28] 향후 미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대폭 축소되는 데 이어 사업이 중단된다.[29] 앱추적 선택 여부 기능이 추가되어 페이스북을 비롯한 서드파티 앱들은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져, 맞춤 광고 알고리즘 구축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광고주들이 떨어져나간다.[30] 입사 전부터 소셜 미디어로 인해 급진주의에 빠진 친구들로 인해 비판적인 시각을 키워왔다. 이후 2019년 페이스북에 입사했으나, 페이스북의 행태에 거부감을 느끼며 내부 통신망을 뒤져 각종 파일을 취합한 뒤 월스트리트저널을 시작으로 각종 언론사와 접촉하며 폭로를 이어갔다.[31] 10월 28일 오큘러스 플랫폼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례행사 <커넥트 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사명 변경을 알렸다.[32] iOS 14.5, 틱톡의 급부상, 메타버스 사업부 적자 심화, 경기 둔화로 인한 광고 매출 감소 등으로 인해 고점 대비 주가가 1/4 수준으로 빠졌다.[33] GIF 검색엔진 기업이다. 2020년에 4억 달러로 인수했으나, 영국 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단돈 5,300만 달러에 재매각.[34] 인텔, AMD, 오라클, 예일 대학교 등 50여 곳의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했다. 오픈소스 방식으로 업계 선두인 OpenAI와 구글에 대항하는 듯한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35] 2021년 3분기 이후 10분기여만에 다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달 22일 NVIDIA가 16.4%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일간 2,700억 달러 상승하기 전까지 역대 미국증시 일간 최대 시가총액 증가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