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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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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알렉산드로스 3세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소크라테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리스토텔레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플라톤 페리클레스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콘스탄티노스 카라테오도리 멜리나 메르쿠리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니코스 카잔차키스
16위17위18위19위20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호메로스 마노스 하지타키스 레오니다스 1세 히포크라테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피타고라스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마리아 칼라스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26위27위28위29위30위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엘 그레코 콘스탄티노스 11세 요르기오스 세페리스 리가스 페레오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아리스 벨루키티오스 요안니스 메탁사스 니코스 갈리스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코스 데모크리토스
36위37위38위39위40위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 야니스 마크리야니스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야니스 리트오스
41위42위43위44위45위
테미스토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투키디데스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 파블로스 멜라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아테네의 크리스토둘로스 아타나시오스 디아코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디미트리 나노풀로스 무명용사
51위52위53위54위55위
페이디아스 아리스토파네스 코스티스 팔라마스 에톨리아의 코스마스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소포클레스 니코스 벨로야니스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니콜라오스 마르지오리스
61위62위63위64위65위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에피쿠로스 알렉산드로스 파파디아만티스 오톤
66위67위68위69위70위
반젤리스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아이스퀼로스 바실리오스 2세
71위72위73위74위75위
콘스탄티누스 1세 이온 드라구미스 코스타스 시미티스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76위77위78위79위80위
테오 앙겔로풀로스 니코스 실루리스 스텔리오스 카잔티디스 차릴로스 플로라키스 에우리피데스
81위82위83위84위85위
카롤로스 코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라키스 라조폴로스 헤로도토스 다나시스 벤고스
86위87위88위89위90위
헬레네 글리카츠아흐와일러 카티나 팍시누 알리키 부지욱라키 마르코스 밤바카리스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91위92위93위94위95위
바실리스 치차니스 피로스 디마스 마노스 로조스 마노리스 글레조스 엘레나 무잘라
96위97위98위99위100위
필리포스 2세 디미트리스 혼 라스카리나 부불리나 탈레스 프락시텔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음악상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고어
(페임)
반젤리스
(불의 전차)
존 윌리엄스
(E.T.)
<colbgcolor=#000><colcolor=#fff> 반젤리스
Βαγγέλης | Vangelis
[1]
파일:external/www.elsew.com/vangel3.jpg
본명 에방겔로스 오디세아스 파파타나시우
Ευάγγελος Οδυσσέας Παπαθανασίου
Evángelos Odysséas Papathanassíou
출생 1943년 3월 29일
그리스국 아그리아
사망 2022년 5월 17일 (향년 79세)
프랑스 파리
국적
[[그리스|]][[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
장르 일렉트로닉 뮤직, 앰비언트, 실험음악, 클래식, 프로그레시브 록, 뉴에이지
악기 피아노, 건반 악기, 드럼, 타악기
활동 1963년 ~ 2022년

1. 개요2. 생애3. 활동
3.1. 밴드 활동
3.1.1. 포밍스 활동기3.1.2.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활동기
3.1.2.1.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음반
3.2. 솔로 활동
4. 이모저모
4.1. 이름4.2. 유명인들의 인용4.3. 존 앤더슨과의 관계와 합작 앨범4.4. 뉴에이지 음악가?4.5. 추상화가로서의 반젤리스
5. 대표곡

[clearfix]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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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성기 시절의 모습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 음악가.

2. 생애

반젤리스는 주로 연주곡과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직접 연주를 하였다. 기나긴 경력 동안 많은 작곡을 뽐내 왔기 때문에 '반젤리스는 어느 장르에 속하는 아티스트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반젤리스가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신디사이저를 아름답게 활용한 음악을 선보여 프로그레시브 록, 스페이스 록, 앰비언트 뮤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음악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자음악의 선율 각각의 아름다움을 잘 터치하는 음악가로 유명하며 블레이드 러너1492, 불의 전차 등의 영화음악 및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그 백미를 보여주었다.

반젤리스는 1943년 3월 29일에 그리스의 볼로스(Βόλος, Volos) 근처 작은 마을인 아그리아(Αγριά, Agria)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6살 때 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선보였으며, 키보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살 무렵, 그는 ‘포밍스’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엄청난 보이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25살 무렵, 파리에서 고향 친구 데미스 루소스와 루카스 시데라스와 만나고 함께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를 결성하여 유럽에서 큰 히트를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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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접어들면서 그룹은 해산되었고, 이후로 반젤리스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솔로 활동은 각각 1970년에 처음으로 개인 명의의 첫 앨범과 첫 사운드 트랙인 ‘Sex Power’의 발매와 본격적인 솔로 활동으로는 1973년 발매된 정규 앨범 ‘Earth’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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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는 런던으로 떠나 그곳에서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황금기였던 ‘Nemo 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Nemo 스튜디오’ 기간 동안, 지금도 유명한 여러 앨범과 사운드트랙을 작곡했고, 특히 1982년 5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불의 전차가 아카데미 작품상, 아카데미 음악상, 아카데미 각본상,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하면서 반젤리스의 입지와 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사운드 트랙과 영화 1492의 사운드 트랙도 그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87년에 런던을 떠난 반젤리스는 아테네, 로마, 파리를 거치면서 작곡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외에도 NASA의 Mars odyssey 미션을 기념하기 위한 Mythodea 콘서트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의 축하 공연에 담당한다거나 여러 국제 행사에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고전 오페라의 연출이나 연주를 도맡아 각개의 싱글을 내놓는 활동도 했다. 그외에도 반젤리스는 음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미술, 조각 작품 등이 유명하다.

2022년 5월 17일 (파리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확진돼 치료를 받던 중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79세. ##[2]

3. 활동

3.1. 밴드 활동

3.1.1. 포밍스 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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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포크락 밴드 포밍스에 소속된 시절의 반젤리스(맨 왼쪽) 이때부터 수염이 크고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꿈을 키우던 십대 시절, 반젤리스는 자신들이 직접 작사 및 작곡을 한 음악으로 해외에서 히트를 친 학교 밴드에 합류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 밴드는 Forminx라는 이름으로 바꿨고, 북그리스의 한지방인 테살로니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의 첫 앨범인 ‘예로니코 양카’는 1965년에 수십만장 가량이 팔렸고 포밍스는 그리스에 자신들을 어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 팝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고, 비잔틴풍의 전통 음악과 모던한 락 사운드를 결합한 희귀한 밴드였기 때문에 그리스 락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음악성뿐만 아니라, 인기도 정비례하게 상승하여 그리스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인기의 절정에서 밴드는 해체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큐 감독이 테살로니키에서 데뷔한 포밍스를 주제로 한 다큐를 만든답시고 김칫국을 엄청나게 들이마셨는데, 제작팀간의 불화로 다른 감독에게 위임이 되고 말았다.

결국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고 발표 또한 되지 않았다. 영화의 본래 목적은 포밍스의 국내외의 성공을 홍보함으로써 해외 투어까지 기획이 되어있었는데, 아 망했어요 이 사건으로 더이상 인기의 지속은 이어지지 않았고 마침내 1965년 인기와 성공의 절정에서 해체하게 된 것이었다. 돈과 이권 다툼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이 피해를 받게 된 사례다.

포밍스 해체 이후로도, 반젤리스는 스튜디오에서 다른 아티스트들을 도와주는 작곡 활동과 연주 참여에 집중했는데, 1967년 반젤리스는 여성 가수 조이(Zoe Kouroukli)와 가수 조지 로마노스(George Romanos)와 같은 여러 그리스인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연주곡을 주기도 했다.

포밍스의 짧은 성공은 그리스의 언더 그라운드 씬과 젊은 그리스의 아티스트들에게 뜨거운 열정과 서양의 로큰롤리듬 앤 블루스를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주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반젤리스의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시절 음악에 매우 잘 녹아들어 나온다.

3.1.2.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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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데미스 루소스, 루카스 시데라스, 반젤리스.

포밍스 해체 이후, 스튜디오에서 동료 가수들의 일을 돕던 반젤리스는 1968년에 만난 음악적 동료 보컬 데미스 루소스, 드러머 루카스 시데라스와 함께 그리스가 아닌 해외에서 성공을 해보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파리에 남게 된 그들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라는 록밴드를 결성하였고 반젤리스는 밴드의 키보드 주자로 음악 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이 밴드는 본국 그리스 외에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그외의 유럽 국가들에서도 나름 인기를 얻은 인기 밴드가 되었다. 그들의 음악적 성향은 그당시 인기있던 사이키델릭 록에 그리스의 민속 음악 스타일을 섞은 뒤 다소 복잡한 구성의 드라마틱한 악곡 구조를 추구한, 유럽의 지역적 특색이 강한 프로그레시브 록에 속한다.

그들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이용해 싱글 Rain and Tears를 발표하여 큰 히트[3]를 쳤다. 이는 유럽 각국의 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큰 성공을 이뤘다. 이후로 그들은 총 세개의 앨범을 내놓았는데, 이 모두 유럽의 앨범 차트에서도 성공했다. 이들의 음악은 국내에서도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이나 It's 5 O'Clock 같은 애절한 발라드들이 올드팝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도 반젤리스는 끊임없이 음악에서의 자신의 실험적인 방향을 계속해서 제시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컨셉 앨범 666으로 유명해진다. 이 앨범 이후로 그룹이 와해되고 데미스 루소스가 1972년에 솔로 활동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해체되었지만 반젤리스와 데미스 루소스 모두 각자의 솔로 활동을 하면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4]
3.1.2.1.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음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음반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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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솔로 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반젤리스/음반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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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모저모

4.1. 이름

실제 본명은 Evangelos Odysseas Papathanassiou가 맞으며 약자로 Vangelis라고 불린다. 외국 활동 초창기에는 Vangelis Papathanassiou였으나, 너무 길고 어려워서 Vangelis로 활동한다.

반젤리스의 이름은 뜻이 네 개 있는데, 'Evangelos'의 '-angelos'는 가져오는 자, 'Ev-'는 긍정적이며 무조건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Papathanassiou 또한 'Papa-'는 수도자, 사제를 의미하고, '-thanassiou'는 본래 그리스어인 'thanassis'로 불멸을 의미한다.

반젤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에서 많이 쓰이는 이름인데, 'G' 철자는 'J'가 아닌 'G'로 발음이 되므로 방겔리스가 적절하다. 참고로 강세는 'gel'에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아티스트, 과학자, 운동 선수, 정치인 등등 유명인들도 '방겔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아티스트들과 혼동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몇몇 아티스트들은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이목을 끌고자 마케팅을 벌인 사람도 있었다.

4.2. 유명인들의 인용

'전 스팅, 반젤리스, 나인 인치 네일스말고도 다른 아티스트도 좋아합니다.'
오스카 수상 영화 작곡가 한스 짐머,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
'전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 그이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우린 둘 다 라틴의 피를 가지고 있지만 그이가 더 교향곡의 색깔을 갖고 있어요. 반면, 저의 새 앨범에서는 당신(인터뷰 진행자)도 알아볼 수 있듯이 제가 미니멀리스트적이죠.'
프랑스에 신디사이저 연주가 장 미셸 자르, 포르투갈 잡지 'Promusica'(1997)에 반젤리스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
...(중략)...'훌륭한 신서사이저 스코어가 있고, 위대한 교향곡 스코어가 있지요. 우리(탠저린 드림)의 작업들과는 별개로, 반젤리스와 (한스) 짐머 또한 두 가지 방향 모두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영상과 어울릴 수 있는지를 멋지게 보여주었습니다.'
독일 일렉트로닉 밴드 탠저린 드림의 리더 에드가 프로이제, 'Keyboard magazine'(January 1996)에서 반젤리스를 언급하며.
'전 그 사람을 크게 존경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이의 팬이었습니다. 그이는 매우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그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이며 독창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저 자신과 반젤리스 둘 다 그리스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식 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유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서로 친구가 있지만 말이죠. 제가 듣기로 반젤리스가 상당히 닫혀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는 음악을 통해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 작곡가 야니, 'iO Page'와의 인터뷰(1996)에서 반젤리스를 언급하며.
'반젤리스는 실제로 제 앨범인 'Velocity of Love'에서 몇몇 연주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입니다. 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왔어요. 그의 음악은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서 제가 많이 좋아하죠.'
여성 신디사이저 아티스트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 스페인 라디오 방송국인 '3'에서 반젤리스에 대한 의견을 언급하며.

4.3. 존 앤더슨과의 관계와 합작 앨범

파일:external/www.elsew.com/vanenjon.jpg

이미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시절부터 그의 키보드 연주력은 전세계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보컬이자 리더 존 앤더슨은 탈퇴한 릭 웨이크먼 대신 반젤리스를 키보디스트로 영입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을 계기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때의 인연으로 반젤리스의 불후의 앨범인 'Heaven And Hell'의 중간 트랙의 보컬을 맡게 되었다. 이후 앤더슨이 예스 밴드 내에서의 분란으로 축출당하고 반젤리스와 같이 활동하며 존 앤 반젤리스란 듀오 그룹을 만들어 몇장의 앨범을 내었다.[5][6]

그래서 존 앤 반젤리스의 음악은 예스란 밴드의 굴레를 벗어던져서인지 예스 때의 음악보다 훨씬 더 청아하고 담백해지고 지금의 뉴에이지에 가까운 음악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게 반젤리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밑의 설명에서 반젤리스가 동방정교도이면서도 뉴에이지 스타일 음악의 대표 주자가 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4.4. 뉴에이지 음악가?

뉴에이지 음악가로 손꼽혀서인지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그의 음악을 문제시하는 곳도 꽤 된다. 물론 대다수 그리스인이 그러듯 동방정교회 신자로서 기독교인인 그는 이런 뉴에이지 운운거리는 말에 굉장히 불쾌하게 여긴다. 그의 이름은 복음을 뜻하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다.


위 영상에서 보다시피, 데미스 루소스의 아들의 (동방정교회식) 세례식에 반젤리스를 포함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시절 멤버들과 루소스의 지인들이 모두 참석하여 아이를 축복해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7]

4.5. 추상화가로서의 반젤리스

파일:external/www.vangelismovements.com/VangelisPaintingsBookPage015B.jpg

그림 실력이 비범하며 꽤 출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추상적인 음악적 사상에 기반한 추상화가 대다수인데, 이는 프랑스의 서정추학 화가 조르주 마티외(George Mathieu)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1971년에 음악과 추상화를 조합한 공연을 다큐로 찍은 적이 있었다.

그의 그림은 여기서 자세히 볼 수 있다.


5. 대표곡



2002 한일 월드컵의 개막식 음악으로 선보인 월드컵 공식 주제곡 〈Anthem〉을 작곡했다. 특히 이 곡은 우리나라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가 연주에 참여하여[8]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곡으로 평가받으나, 원곡보다는 핀란드의 뮤지션 JS16에 의해 트랜스로 리믹스된 JS Radio Edit 버전이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들에게 더 익숙할 것이다.

조선중앙TV가 방영한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기록 영화에서 김정은이 사열을 받으러 가는 도중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

KBS의 교양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불의 전차' 테마곡.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우승자가 결정될 때 배경음악으로 썼다. 2012 런던 올림픽의 오프닝곡이기도 하며, 올림픽 당시 로완 앳킨슨미스터 빈으로 분장해 이 노래를 연주하며 라이브 퍼포먼스 및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 '1492 콜럼버스' OST. 참고로 이 음악의 가사는 반젤리스가 실존하지 않는 언어로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해석이 있을 리가 없다.[9] 이 음악은 거대한 건축물 등을 보도할 때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가끔 몇몇 다큐멘터리나 뉴스 등에서 바다나 큰 강 등에 송전탑이 줄줄히 늘어선 송전선로나 큰 철탑 등을 건설한 소식을 보도하면서 그 위용을 보여주는 씬에서 많이 사용하는 배경음악이 바로 이 음악이다. 그래서 큰 송전탑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이나 거대한 송신탑을 보면 자연스레 이 음악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 삼성에서 밀레니엄 프론티어라는 슬로건을 걸고 내보낸 CF에서도 이 음악이 BGM으로 삽입되었다.


블레이드 러너 엔딩 크레딧 BGM.


키친아트 냄비 광고 음악으로 유명했던 휌(Hymn 또는 Hymne)이나[10][11][12],


일본에서 만든 영화 '남극 이야기'(헐리우드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게 바로 '에이트 빌로우')의 메인 테마도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자주 소개한 그의 명곡이다.


칼 세이건코스모스(다큐멘터리) 오디오판에서, 세이건의 나지막이 우주와 자연의 대한 찬사와 경탄을 읊조릴 때 삽입된 반젤리스의 또다른 명곡. 코스모스 1화에서, 우주의 해안이란 제목으로 1980년대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주며 우수어린 눈빛으로 우주에 대한 찬사를 읊은 음유시인 세이건에 대한 영원한 헌정곡이자 우주에 대한 감사의 곡.


당장 문화재를 발굴하러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 이 곡의 이름은 Voices로, 수 많은 사람들이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담아냈다고 한다. 이 곡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곡인데, 여러 광고의 삽입곡으로 쓰였다.[13]


[1] 반젤리스는 잘못된 음역으로, 그리스어나 영어에서는 '반겔리스'에 가깝게 읽는다.[2]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국내의 주요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에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려는 뜻으로 반젤리스가 작곡한 음악의 신청이 쇄도했다.[3] 과거 우리나라 라디오 황금기(8090)에 자주 나왔다.[4] 파바로티를 연상시키는 비대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살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이 가득한 특유의 목소리로 유명한 데미스 루소스는 이후 'Follow me' 같은 인기곡을 히트시키며 솔로 가수로도 꽤 성공했고, 해산 이후로도 자신의 과거 동료들과 음악적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재결성의 움직임도 있었는데, 1977년 데미스 루소스가 자신의 솔로 앨범 'Magic' 제작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하지 않겠냐는 권유에 반젤리스는 혼쾌히 동의하였고 제작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결성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결국 없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5] 존 앤더슨은 예스에서 심오하고 고상한 자신의 정신세계를 록음악으로 표출하기 위해 인도까지 직접 찾아가 요기들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사람이고, 그렇게 탄생한 예스의 음악은 마이크 올드필드의 음악과 함께 뉴에이지 음악의 초창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6] 물론 영향을 주었다는 것 뿐이지 예스의 음악 = 뉴에이지 이건 절대 아니다. 예스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할 수 있다.[7] 참고로 데미스 루소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의 집시계 그리스인이다. 부모 모두 역시 그리스 국적의 집시인인데 본래는 이집트 국적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수에즈 전쟁으로 살 곳을 잃자, 그리스로 피난을 갔다.[8] 일본의 태고(太鼓) 연주단 KODO와 협연하였다.[9] 다나 위너가 부른 버전은 영어로 되어 있다.[10] 롯데 마가렛트 광고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다.[11] 대선주조 그랑쥬아 와인 광고에도 쓰인 적이 있다.[12] TBN부산교통방송 캠페인 BGM으로도 쓰인 적이 있다.[13] 대표적으로 대전MBC에서 백제 문화에 대한 캠페인을 할 때 많이 쓰였다. 2002년에는 삼성그룹 기업 광고에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