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왕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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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5b356> 고구려의 태자 고조다 | 高助多 | |||
<colbgcolor=#000000> 출생 (음력) | 412년 전후 | ||
고구려 국내성 | |||
사망 (음력) | 491년 이전[1] (향년 70대 추정) | ||
고구려 평양성 | |||
묘지 | 미상 | ||
재위기간 (음력) | 고구려의 태자 | ||
412년 이후[2] ~ 491년 이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c5b356> 본관 | 횡성 고씨 | |
휘 | 조다(助多) / 공(共)?[3] | ||
부왕 | 장수왕 | ||
배우자 | 고나운의 모후 | ||
자녀 | 태손 고나운 | ||
작위 | 태자(太子) | ||
고추대가(古鄒大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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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의 태자. 장수왕의 아들이자 문자명왕의 아버지. 아버지가[4] 너무 오래 사는 바람에 왕위를 잇지 못하고 사망한 인물.2. 생애
고추대가(古鄒大加)[5] 벼슬을 지냈는데, 하필이면 아버지인 장수왕이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바람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왕위를 잇지 못했다. 심지어 조다 역시 기록상 70세를 넘겨 당대 기준으로 장수한 인물이었다. 다만, 장수왕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추대가로서 장수왕 재위 후반기에는 실질적인 국정업무를 대행했을 수도 있다.끝내 장수왕이 97세로 승하하자 이미 세상을 떠난 조다를 대신하여 조다의 아들인 나운이 왕위를 이었는데, 그가 바로 문자명왕이다.[6]
조다의 행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충주 고구려비이다. 내용을 보면 신라와 외교를 맡은 고구려 태자 공(共)이 보이는데, 충주 고구려비를 세운 장소인 국원성을 방문한 적이 있는 듯하며, 태자 공은 신라 매금과 함께 꿇어앉았다거나 그에게 적추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태자 공이 고추가 조다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태자 공(共)의 직책이 대고추가(大古鄒加)로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충주 고구려비의 성립연대를 광개토대왕 혹은 문자명왕 대로 보는 견해도 있어서 확정짓기는 어렵다.
3. 여담
"한심하다"는 뜻을 가진 비속어인 쪼다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 스펀지 101회 방송분에서 소개한 적이 있고 이를 정설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나,[7] 왕족, 그것도 그냥 왕족이 아니라 국본인 왕태자의 이름을 백성들이 마음대로 내뱉는다는 건 어렵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피휘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삼국시대 당시에는 중국 풍습이었던 피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8] 고구려 사람들이 조다라는 이름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진 않았을 것이다.또한 당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백제, 신라에서는 충분히 조다를 두고 조롱을 하고도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족의 이름을 한심하다는 의미의 속어로 쓴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고, 설령 당시 고구려에서 그런 의미의 속어가 돌았다 해도 공공연하게 쓰일 순 없었을 텐데 어떻게 1500년의 세월을 지나 살아남았을지는... 무엇보다 현대음이 '조다'이지만, 당장 17-19세기 때만 해도 발음이 전혀 달라지는데 15세기 이전의 발음과 같다고 할 순 없다.(*tɕota 정도가 된다.) 충주 고구려비에서 그의 이름을 공(共)으로 표기했기에 조다라는 이름은 그의 음차가 될 것이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9]에 의하면 장수왕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고, 1960년대 불량배들이 누구를 골려줄 때 "쫘 버려라"라는 은어에서 유래되었거나 "쫀다"라는 동사가 명사화된 걸 정설로 보고 있다고 한다.
바다 건너에 있는 영국에도 비슷하게 엘리자베스 2세가 너무 장수해서 칠순이 넘도록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있는 찰스 왕세자가 있었으나 2022년에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면서 73세가 되어서야 물려받았다. 근데 즉위하시자마자 얼마 안 되어서 암투병중이시다.
사실 이 분야의 압권은 따로 있다. 바로 프랑스 왕 루이 14세. 장수왕과 마찬가지로 70년 넘게 재위하다가 그랑 도팽 루이뿐만 아니라 프티 도팽 루이까지 모두 왕보다 먼저 죽어서 증손자가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루이 15세다. 다만 루이 14세는 4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장수왕보다는 훨씬 이른 나이인 76세에 사망했다.[10] 또 루이 14세의 아들 그랑 도팽 루이와 손자 프티 도팽 루이는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것이기에 본인도 장수했으나 아버지가 너무 오래 살아서(...) 먼저 사망한 고조다와는 상황이 좀 다른 편.[11] 그 뒤를 이은 루이 15세의 경우도 아들 루이 페르디낭이 먼저 죽고 손자 루이 16세가 그 뒤를 이었다.
4. 둘러보기
고구려 왕실의 계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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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자명왕 즉위 시점.[2] 아버지 장수왕의 즉위 시점.[3] 충주 고구려비에 기록된 태자의 이름. 해당 비문은 일반적으로 장수왕 재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4] 장수왕이 97세까지 살았는데 당대 평균 수명이 4~50살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오래 산 것이다. 당장 광개토대왕이 38세에 죽었는데, 비석 내용에 너무 일찍 죽었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장수왕이 엄청 장수한 건 사실이다.[5] 왕족 가운데서도 최상위의 호칭으로 고구려가 졸본성-국내성의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성장하면서 합병한 세력들의 호칭들을 왕 아래에 일원화시키면서 등장했고 태자가 겸직했다. 태자라는 공식 직위와는 또 별도로 붙는 타이틀로서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비슷하게 볼 수 있다.[6] 그래서인지 삼국사기 장수왕 본기에서는 안 나오고 문자왕본기에 나온다.[7] EBSi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교사 이다지도 이게 사실이라고 얘기했었다.[8] 하지만 중국은 한반도 삼국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피휘를 심하게 했었다.[9]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의 그 사람 맞다.[10] 물론 어디까지나 장수왕과 비교해서 이른 나이지 그 당시에 76세까지 살았으면 충분히 장수한 거 맞다. 다만 그보다도 1000년이나 이전에 100세 가까이 산 장수왕이 괴물일 뿐.[11] 또한 스웨덴 왕조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도 고조다처럼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하고, 외아들 칼 16세 구스타프가 왕위를 이어받은 사례가 있다. 다만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의 경우 왕세손 시절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할아버지 구스타프 5세와 아버지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장수왕처럼 90세 이상으로 장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