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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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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색정당(具色政黨, Bloc party, Satellite party)은 일당제에서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는 작은 정당이다. 보통 이들은 현실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고, 심지어는 그럴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체제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한편 특정 계층의 이익을 약간 대변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구색정당은 흔히 우당(友黨), 위성정당(衛星政黨)이라고도 하며, '2중대', '사쿠라', '멀티' 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2. 상세

일당독재 체제 구축 이전부터 활동하던 기존의 정치 단체를 구색정당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이나 북한도 괜히 의도적으로 정당을 만든게 아니라 기존에 활동하던 정당이나 정치 단체를 자신의 우당으로 만든 것뿐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 구색정당 목록 참고.

일당제 국가에서 '우리도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관제야당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이 그 예인데 이들은 집권당과의 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냥 껍데기만 있는 정당이다. 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이 야당 총재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당시 민주한국당 총재였던 유치송이 "저희 야당"이라는 말을 하자, 전두환이 "우리나라에 야당이 어디 있습니까. 1당, 2당, 3당이지"라고 일갈했고, 이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2중대'라는 표현이다.[1]

정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일정 부분 야당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는 자유화/민주화의 분위기가 불자 개혁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보통은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가 실제로 정착하게 되면 사라진다. 실제로 대만의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자유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사실상 연구회 수준으로 몰락하였다. 제5공화국의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역시 정치활동의 자유가 확대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신한민주당(신민당) 돌풍이 불면서 몰락하였다.

기성 정당에 비해 세력이 매우 약해서 정권을 아직 잡을 힘이 없는 '군소 정당'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복수 정당제 민주주의에선 이 군소 정당에게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당연히 보장한다. 가령 사실상의 양당제인 미국에는 민주당, 공화당 외에도 녹색당, 자유당 등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당연히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거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권리 등이 있다. 인민의 종, 앙 마르슈!, 열린우리당, 국민의당 등 신생 정당이 선거에서 일정 지지층을 획득하거나 정권을 잡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영국 같은 경우 보수당노동당이 양당체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데, 원래 노동당 대신 자유당이 그 위치였고 노동당은 군소 정당이었다가 자유당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유럽 옛 공산주의들 국가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폴란드, 동독이 만들었으며[2], 현재는 북한, 중국 등이 운영한다. 과거엔 공산주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헝가리 등이 위성정당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3. 사례

3.1. 아시아

3.1.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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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북한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30px><tablebordercolor=#024fa2><tablebgcolor=#024fa2> 파일:최고인민회의 CI.svg북한 최고인민회의
원내 구성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여당
[[조선로동당|파일:조선로동당_로고.svg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607석
]]
우당
파일:조선사회민주당 로고.png
파일:사민당 흰.png

50석
파일:궁을 문양(흰색).png
파일:천청당 흰.png

22석
파일:조총련 글씨.png
6석
무소속
2석
재적
687석
}}}}}}}}}

북한에서는 우당(友黨)이라는 표현을 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정당들도 최고인민회의의 의석을 일부(전체 687석 중 78석) 점하고 있다. 모두 조선로동당과 함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맹돼있으며 공동으로 선거 후보를 공천한다.

하지만 북한 정치에서 이들은 어떤 차별성도 보이지 않는다. 성명서도 대부분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것뿐이다. 지역조직도 50년대 말부터 거의 와해되었다가 80년대부터 북한 언론에 평양시당과 일부 도(道)당이 다시 언급되는 등 몇몇 도당조직이 복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962년 선거 까지는 북한에서 민주독립당, 조선불교도연맹, 동로인민당, 건민인민연합, 인민공화당, 근로인민당이 우당으로 존재하였으나, 차례로 없어지면서 북조선민주당, 천도교청우당, 민주독립당, 근로인민당 4당 체제가 되었고, 근로인민당 중앙위원장 김원봉이 숙청당하고 민주독립당 중앙위원장 홍명희가 사망하는 등 더 이상 내세울 월북 정치인들도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차례로 폐지되어 조선사회민주당으로 개편한 북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 2개 당만 남았다. 70년대에 조선로동당 독주 체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이 두 당도 중앙위원장만 명목상 대의원에 선출시키는 등 몰락의 길을 걸었으나 대남 전략 차원상 이들에게 좀 더 지분을 주게 되면서 과거보다는 세력이 좀 커졌다. 물론 조선로동당이 허용하는 보여주기성 지분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남북교류 당시 민주노동당 간부 등 이들을 방문한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보석세공공장 등 일부 기업을 소유·경영하면서 지역경제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 그리고 원내의 모든 종교단체가 연합한 종교총회까지 모두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해당 종교가 주류인 국가의 대외 사절단으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

3.1.3. 중국

중국중국 대륙(본토)의 경우 지배 정당인 중국 공산당 이외에도 '다당 합작(多黨合作/多党合作)'이라는 명목으로 민주당파(民主黨派/民主党派, United Front)라고 불리는 8개의 정당이 있고 실제로 정국 건국초기에 이들이 중국공산당의 비판세력으로 야당노릇을 할 때도 있었지만 반우파 투쟁과 문화대혁명으로 타격을 크게 입으며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나서는 조직이 복구되었지만 공산당 동의 없이는 기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무늬만 정당이 되었다. 차라리 공산당 내 비공식 파벌들이 사실상의 여당야당 노릇을 한다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명칭 약칭
한글 번체자 간화자 한글 번체자 간화자
영문 영문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中國國民黨革命委員會 中国国民党革命委员会 민혁 民革
Revolutionary Committee of the Chinese Kuomintang RCCK
중국민주동맹 中國民主同盟 中国民主同盟 민맹 民盟
China Democratic League CDL
중국민주건국회 中國民主建國會 中国民主建国会 민건 民建
China Democratic National Construction Association CDNCA
중국민주촉진회 中國民主促進會 中国民主促进会 민진 民進 民进
China Association for Promoting Democracy CAPD
중국농공민주당 中國農工民主黨 中国农工民主党 농공당 農工黨 农工党
Chinese Peasants' and Workers' Democratic Party CPWDP
중국치공당 中國致公黨 中国致公党 치공당 致公黨 致公党
China Zhi Gong Party[4] CZGP
구삼학사 九三學社 九三学社 구삼 九三
Jiu San Society[5] JSS
대만 민주 자치 동맹 台灣民主自治同盟[6] 台湾民主自治同盟 대맹 台盟[7]
Taiwan Democratic Self-Government League TDSGL

그런데 중국 민주당이라는 신생 정당이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 전자우편 등으로 지지와 세력을 얻어가자 위협을 느낀 중국 공산당이 해산시키고 금순공정을 만든 일도 있었다. 한편 2013년에는 실각한 보시라이를 지지하며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지헌당(中國至憲黨/中国至宪党)이 창당됐다. 지헌당 측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 체계를 인정한다면서 구색정당 행세를 하는 식으로 불법화를 피하려 했지만 당연히 중국 정부는 얄짤 없었다.

3.1.4. 시리아

국가진보전선이 바트당과 밑의 바트당에 종속적인 역할의 소수의 당들을 통솔하는 조직이다. 전통적으로, 합법 정당은 아사드 정권의 아랍 사회주의아랍 내셔널리즘, 범아랍주의 노선을 따라야 했다. 최근에, 정당들은 더 이상 법적 인정을 받기 위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러한 정당 중 하나인 시리아 사회민족당은 합법화되어 NPF에 가입했다. 이것은 사회주의아랍 내셔널리즘이 아닌 다른 정당들이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소수민족[8]에 기반을 둔 정당은 계속 억압받고 있으며, 이슬람주의 정당은 여전히 불법이다.

3.1.5. 베트남

베트남은 일당 독재체제이지만 통일 후 한때는 구색정당을 만든 적이 있었다. 모두 민주 공화국 당시부터 있던 당들이었다.

3.1.6. 대만


1928년 중국 국민당북양정부를 타도하면서 생성된 국민정부삼민주의 이념의 [ 군정 => 훈정 => 헌정 ] 논리를 바탕으로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여당/무소속/직업단체의 직선으로 선출한 '제헌' 국민대회1946년에 소집했으며, 중화민국 헌법을 반포하면서 다당제 헌정으로 전환했는데, 1947년여당/야당/무소속/직업단체의 직선으로 선출해 소집한 '행헌' 국민대회/'행헌' 입법원/'행헌' 감찰원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참정을 거부하면서 중국 국민당(大)/중국 청년당(中)/중국 민주 사회당(小)의 여대야소를 자연스럽게 연출했으니, 장제스의 책략으로 '3당 훈정'을 형성했다. 여기서 '3당 훈정'은 강력한 총통제와 3개 정당의 연립내각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형식적인 헌정(憲政)과 실질적인 훈정(訓政)을 동시에 추구하는 1946년 체제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1946년장제스는 3당 훈정의 막후 공작을 추진하면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의 정치인들을 차례로 초청하여 최고위급 관직에 등용을 약속했고, 곧이어 3당 훈정의 여당으로 변신한 중국 국민당과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의 정치인들은 연립내각여당으로서 중앙정부의 장차관으로 출세했지만, 그들의 표밭은 어디까지나 중국 대륙대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1949년부터 1950년까지 국공내전의 패전으로 중화민국중국 대륙의 99%를 상실하면서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지지세력의 99%를 잃어버렸다. 중화민국의 중앙정부가 타이베이로 천도하면서 3대 정당들의 본부도 타이완 섬으로 이전했다.

원래 타이완 섬에서는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장제스 정권이 총력전을 명분으로 야당의 창당을 금지한 덕택에 역설적으로 기사회생한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 사회당은 중국 국민당의 협찬으로 토착인 무소속 정치인들을 포섭하면서 외성인의 표밭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민대회/입법원/감찰원/성의회/현의회에서 모든 의석을 모두 상실해 연구회 수준의 야당으로 전락했다. 애초부터 국민당의 자금지원으로 버텼던 군소정당인데다가 본성인의 표밭으로 승승장구하는 민주진보당이 온나라의 곳곳에서 버티는 마당에 외성인들의 대다수가 중국 국민당의 노선을 지지하면서 외성인의 야당들은 아무런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3.1.7. 캄보디아

3.1.8. 투르크메니스탄

3.2. 유럽

3.2.1.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멸망)

3.2.2. 동독 (멸망)


다만 동독 기민련의 경우 구색정당이라고 보기 어렵고 통상적인 야당이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이유도 1990년 동독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이 승리해서 집권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으로 치면 북한 내 민주화 세력들이 정권을 잡은 수준의 사건인데, 구색정당이었으면 그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동독 기민련의 선거 승리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여파로 인해 사회주의통일당일당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했기에 가능했지, 그 전의 선거에서는 항상 사회주의통일당이 할당해 준 의석만 받고 활동하는 관제야당의 역할에 충실했다. 따라서 1989년 이전까지의 동독 기민련은 관제야당으로 보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3.2.3. 소련 (멸망)

3.2.4. 폴란드 인민 공화국 (멸망)

3.2.5.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멸망)


[1] 훗날 5공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모두 한 편이고, 오직 북한의 조선로동당 등만이 반대편, 즉 야당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도 야당을 우당이라 한다는 걸 생각하면...[2] 모든 공산국가에 구색정당이 있는건 아니다. 소련, 베트남 등은 구색정당이 없다.(다만 베트남은 1988년 이전까지는 존재하긴 했다.)[3] 남조선천도교청우당은 남한의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도 참여해 0.13%의 득표를 했다. 천도교청우당은 따지고보면 남북한의 선거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정당인 셈.[4] China Party for Public Interest으로 옮기기도 한다.[5] Jiusan Society, September 3 Society로 옮기기도 한다.[6] 본래 '대만'의 번체자가 臺灣이므로 臺灣民主自治同盟으로 적기도 한다. 중국어 정체자(번체자)에서는 臺와 台가 혼용된다.[7] 번체자의 경우 臺灣民主自治同盟을 줄여 臺盟으로 쓰기도 한다.[8] 쿠르드족, 아시리아인[9] 물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에 분당된 것이라 당시에는 중국민주동맹도 공산당의 구색정당은 아니었다.[10] 제2총리는 인민당의 훈 센이 맡아서 총리직을 2명이 나눠가지는 형태였다.[11] 집권당인 불가리아 공산당과 함께 유이한 합법 정당이었다.[12] 1989년 다당제 개혁으로 소련 공산당 이외의 정당 창당이 합법화되면서 생긴 소련 최초의 야당이지만, 창당 과정에 공산당이 개입해서 사실상 관제야당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8월 쿠데타라는 자폭을 저지르고 해산당하는 바람에 진짜 야당이 되었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 자유민주당으로 계승되었다.[13] 폴란드 인민당의 전신으로 농본주의를 표방했다.[14] 민주화 이후 기독교민주연합과 합당하여 기독교민주연합-체코슬로바키아 인민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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