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iki style="text-shadow: 1px 0px #020102, 0px 1px #020102, -1px 0px #020102, 0px -1px #020102, 1px 1px #020102, 1px -1px #020102, -1px -1px #020102, -1px 1px #020102; color: #ffffff; display: inline-block" I'm Dating {{{#!wiki style="text-shadow: 1px 1px 0px #d1d1d1, 2px 2px 4px #fbdbdb; color: #e85d55; display: inline-block" | |
<nopad> | |
장르 | 바디 스내처, 에로그로, 컬트 피카레스크, 패러노멀 로맨스[1] |
작가 | 네코즈킨 (猫頭巾, Nekozukin) |
연재처 | Twitter[2] → 𝕏[3] | pixiv |
연재 기간 | • 2022. 04. 12. ~ 연재 중 (트위터)[4] • 2022. 04. 21. ~ 연재 중 (픽시브)[5] |
관련 사이트 | (작가 트위터) (연재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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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それにしても「この」女、お前みたいないい奴を振るなんて、随分と人を見る目がなかったらしい。 그나저나 「이」 여자, 너처럼 착한 녀석을 차버리다니, 어지간히도 사람 보는 눈이 없었나 보네. いっそおれに食われて良かったというものだ。 ━━お前もそう思うだろう? 차라리 나한테 먹혀서 다행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사실상 본 작품의 표지 역할을 겸하는 제1화에서 주인공을 향한 괴물의 대사. |
'''[[일본어|
'''[[일본어 로마자 표기법|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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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일본어 로마자 표기법|
로마자 표기
]] Boku no Suki datta Onna wo Kui Koroshi Narikawatta Bakemono to Tsukiatteiru.[6]Boku no Suki datta Onna o Kuikoroshi Narikawatta Bakemono to Tsukiatteiru.'''로 표기되기도 한다.]'''[[영어|
영어 표기
]] I'm Dating a Monster Who Devoured the Woman I Loved and Replaced Her.[7]I'm Dating a Monster Who Ate the Woman I Loved and Replaced Her. 혹은 Dating The Monster That Ate And Replaced The Woman I Liked.'''로 표기되기도 한다.]일본의 남성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인 네코즈킨의 웹코믹 시리즈.
2. 연재 현황
2022년 4월 12일부터 작가의 트위터 및 픽시브에 비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다.[8]2.1. Twitter(𝕏) 연재분 (2022. 04. 12.~)
<rowcolor=#000> 연도 | 일자 | 제목 | 링크 |
2022년 | 4월 12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 | 1화 |
4월 1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② | 2화 | |
4월 17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③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④ | 3화 4화 | |
4월 2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⑤ | 5화 | |
5월 3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⑥ | 6화 | |
5월 08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⑦ | 7화 | |
5월 9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⑧ | 8화 | |
6월 8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⑨ | 9화 | |
7월 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⑩ | 10화 | |
7월 2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⑪ | 11화 | |
8월 8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⑫ | 12화 | |
8월 16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⑬ | 13화 | |
9월 13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⑭ | 14화 | |
2023년 | 12월 11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⑮ | 15화 |
12월 18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⑯ | 16화 | |
12월 31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⑰ | 17화 | |
미정 | - |
2.2. pixiv 연재분 (2022. 04. 21.~)[9]
<rowcolor=#000> 연도 | 일자 | 제목 | 비고[10] |
2022년 | 4월 21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R18)[11] | [12] |
5월 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R-18G)[13] | [14] | |
5월 21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⓪[15] | [16] | |
7월 13일 | バケモノさんに聞いてみよう![17] | [18] | |
8월 1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R-18[19] | [20] | |
2023년 | 12월 31일 | 性の六時間。[21] | [22] |
미정 | - |
2.3. 기타 연재분 (2022. 12. 26.~)[23]
<rowcolor=#000> 연도 | 일자 | 제목 | 링크 |
2022년 | 12월 26일 | さっき初めてこんな風習があることを知ったバケモノ。[24] | ▶ |
2024년 | 1월 4일 | バケモノと鬼太郎観に行った。[25] | ▶ |
2025년 | 1월 14일 | 僕の好きだった女を食い殺し成り代わったバケモノと付き合っている。【初詣回】[26] | ▶ |
미정 | - |
3. 특징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도발적인 제목과, 평범한 인간인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했던 소녀를 흉내내는 식인괴물과 연인 관계를 맺는다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괴물이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를 모방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점에서 서정적인 전개 속에 엄습하는 심리적 긴장감이 작품의 주요한 매력 중 하나이며, 작가는 이러한 인간과 인간의 형상을 한 비인간적 존재 간의 위태로운 관계를 몽환적인 공포와 심리적 혼란이 얽혀 있는 서사를 통해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묘사하여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끄는 한편, 인간의 정체성과 사랑의 본질, 인간의 이기심과 광기어린 집착, 연민과 공포 사이의 양가감정, 그리고 관계의 역설적 측면을 재조명하고 이를 독자들이 다각도로 탐구해 볼 수 있도록 했다.[27]
자세한 내용은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특징 문서 참고하십시오.
3.1. 의의
본 만화는 표면적으로는 특이한 로맨스를 다룬 오락 만화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의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점이 의의라고 할 수 있겠으며, 독자들에게 저마다 자유로이 열린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자 한 의도인지,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나 작품의 화두를 명시하여 방향성을 특정짓진 않았으나, 작중 묘사나 후기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넌지시 비추는 인간의 존재성과 감정(사랑)이 지닌 본질적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고찰, '사랑과 욕망은 윤리를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딜레마에 기반한 관계의 복잡성 등 철학적인 탐구거리가 될 많은 함의들이 작품에 내포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28]
사실 이 작품의 매력은 장르의 예술적 관점에서 탁월하고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론 설정이나 묘사가 그만큼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공감 대신 혐오감을 줄 수도 있으며, 감정적, 심리적 해석들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야말로 본 작품이 함의한 화두의 무게를 증명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불편한 심리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도 작가가 의도한 일종의 감정적 충격 전달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상기 단락에 간략히 소개한 주제의식을 하단의 문단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 이 작품의 매력은 장르의 예술적 관점에서 탁월하고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론 설정이나 묘사가 그만큼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공감 대신 혐오감을 줄 수도 있으며, 감정적, 심리적 해석들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야말로 본 작품이 함의한 화두의 무게를 증명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불편한 심리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도 작가가 의도한 일종의 감정적 충격 전달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상기 단락에 간략히 소개한 주제의식을 하단의 문단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3.1.1. 인간과 비인간의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가
▲ 인간(연인)과 비인간(포식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괴물 |
*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괴물은 인간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인간 사회가 본능적으로 배척할 수밖에 없는 타자성(他者性)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괴물은 기존 인간의 육체를 강탈하여 감쪽같이 둔갑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겉모습만 놓고 본다면 본래의 인간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형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이며, 인간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 즉 감정이나 의식, 사회적 관계 등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이른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위치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괴물이 주인공과 연인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 사회의 문화를 학습하며,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무엇을 인간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다.
가령 괴물이 단순히 인간의 외형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의식, 혹은 흔히 영혼이라 불리는 비물질적, 추상적 개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게 한다. 더 나아가 인간성이라는 것이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학습과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 있는 특성인지에 대한 탐구가 작품 전반에 걸쳐 암시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괴물이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괴물은 단순히 인간의 언어를 따라하거나 외적인 형태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하며, 연인과 같은 다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미안해.", "즐거워." 등의 감정 표현을 스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기계적 출력이나 피상적인 모방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괴물이 진정으로 감정을 내면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괴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괴물이 인간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괴물은 인간성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표현하고 체화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단순히 '인간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괴물을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간주할 수 있는가?
▲ 높은 학습 의욕을 보이는 괴물 |
작가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대신 독자들에게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작품이 다루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괴물이 인간 사회에 적응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성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불변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도 있는 유동적인 개념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의문을 보다 확장하여, 인간성의 정의가 생물학적 특성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교육,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될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인공이 괴물을 거부하지 않고 한 집에서 동거하며, 직접 인간 사회의 지식을 가르치는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플롯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생존이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공생 관계를 넘어 괴물에게 인간성을 학습시키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자, 작품이 궁극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본질을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즉 인간성을 단순한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변화하고 학습될 수 있는 사회적 특성으로 이해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이 단순히 괴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독특한 서사를 구축하는 이유는, 괴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괴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본질적 차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찰하게 된다.
* 괴물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특성이 단순한 기만이나 위장 전략이 아니라면, 우리는 괴물을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과 괴물을 나누는 경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만약 괴물을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독자들이 단순히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는 곧 본 작품이 괴물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피상적 주제를 넘어,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탐구하는 본질적인 서사임을 시사한다.* 만약 괴물을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무엇인가?
- 사랑과 정체성의 복잡성
이 작품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요소를 넘어, 정체성과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로 기능한다. 주인공과 괴물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연애 서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복잡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의 성질뿐만 아니라, 사랑이 개인의 정체성과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변형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우선 주인공이 크나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괴물을 자신의 곁에 두려는 이유가, 단지 괴물이 차지한 짝사랑의 육체가 지닌 성적 매력 때문인지, 아니면 괴물이라는 제3의 인격체 자체가 지닌 어떤 독특한 매력이나 감정 때문인지, 어쩌면 둘 다인지, 또 괴물과의 관계를 통해 짝사랑했던 소녀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괴물 자체를 새로운 개체로 인식하고 별개의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공개되지 않으나, 어쨌든 주인공은 이루지 못했던 짝사랑과의 연결고리를 괴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어가려 한다.
작중에서 주인공의 내면 전시는 철저히 배제된 채, 오로지 행위와 관계의 흐름을 통해 암묵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주인공의 감정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혹은 정체성에 대한 방황인지조차도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 자체가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키며, 작품이 단순한 인간과 괴물의 관계를 넘어, 사랑과 정체성이 서로를 규정하고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를 탐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주인공은 과거를 완전히 놓지 못하면서도, 현재의 관계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 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곧 사랑이란 감정이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나 기존의 기억과 연관된 것인지, 혹은 그 이상의 감정적 연결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진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랑이란 감정이 대상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며 변화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특히,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던 원래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무언가'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는 꽤나 철학적이다. 더 나아가 단순한 집착과 진정한 애정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주인공이 괴물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대체물에 대한 애착인지, 아니면 독립된 새로운 존재로서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조차도 쉽게 규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체성과 사랑의 모순된 관계는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심도깊게 탐구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생존의 방편으로 기능하는 '가짜 인간성' - 사랑과 정체성의 상호작용('가짜 인간성'과 '진짜 인간성')
작품은 사랑과 정체성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괴물의 인간성 형성 과정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괴물은 처음에는 단순히 생존과 위장을 위해 인간성을 피상적으로 흉내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가짜 인간성'에서 벗어나 점차 '진짜 인간성'을 형성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는 주인공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감정적 교류를 넘어,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요소임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제7화에서 괴물이 주인공의 짝사랑이었던 그녀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며, 철저히 딸의 목소리와 말투를 모방하여 기만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때 괴물은 살가운 어투와 다정한 말씨로 자신이 딸인 척 행동하지만, 정작 그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괴물의 무표정은 곧 감정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표면적인 모방으로서의 가짜 인간성을 상징한다. 즉 괴물은 인간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외형적으로는 인간성을 갖춘 듯 보이지만, 그 근본적인 동기는 철저히 생존 전략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정적 교류나 인간성과는 거리가 멀다. - 괴물의 애정이 주는 새로운 관점
이 작품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인간을 본래 먹잇감으로 인식하는 존재가 특정 인간에게만 예외적으로 깊은 애정을 보인다는 설정이다. 이는 단순히 독자들의 판타지를 만족하는 감상적인 서사 구조를 넘어,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그리고 서사적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강렬한 서사적 장치로 작용한다. 괴물이 주인공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유대감을 넘어선, 어떤 목적이나 대가 없이도 지속되는 맹목적인 애정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없는 사랑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정의하는 사랑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관점에서 사랑은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사랑은 번식 본능, 유전자 전달, 그리고 성적 쾌락을 기반으로 형성된 감정의 연장선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본작에서 묘사되는 괴물과 주인공의 관계는 그러한 기존의 정의를 철저히 초월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괴물은 인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과 생식 기능을 공유할 수도 없으며, 나아가 성적인 감각조차 결여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주인공에게서 어떠한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며 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
이는 곧 괴물의 사랑이 철저하게 생물학적, 쾌락적 동기에서 분리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만약 사랑이 단순히 종족 보존과 번식 본능에 기인한 감정이라면, 애초에 번식 기능이 없는 괴물에게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괴물은 분명히 사랑을 경험하며, 그것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즉, 본작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유전적 목적이나 육체적 쾌락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며, 사랑이란 감정이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특히 괴물의 애정이 독특한 이유는, 그것이 괴물의 생존이나 이익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에 있다. 괴물은 인간을 포식 대상으로 삼는 존재로, 본래 인간과의 관계를 형성할 필요조차 없는 생태적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주인공의 곁에 머무르며,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고자 한다.
괴물의 애정은 자신의 생존에도, 종족 보존에도, 육체적 즐거움에도, 그밖에 어떤 실리적 이득에도 부합하지 않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감정이다. 일반적으로 감정적 관계는 어느 정도의 이해득실과 맞물려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괴물은 그러한 이익 계산 없이 오직 주인공을 위한 감정을 품고, 그 감정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더욱이, 괴물의 사랑이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 언행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괴물은 주인공과의 대화에서 철저히 주인공의 감정과 행복을 우선시하며, 스스로의 감정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보인다. 괴물의 대사는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 자신을 상대에게 종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괴물의 애정은 기존의 사랑 개념에서 볼 수 있는 소유욕, 질투, 번식 본능, 성적 욕망 등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순수한 형태에 가까우며, 이는 사랑이 필연적으로 어떤 조건과 목적을 전제해야만 존재하는 감정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괴물의 감정은 철저히 자기희생적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헌신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곧 사랑이 필연적으로 생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며, 독자들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숙고할 기회를 제공한다. - 특히 제11화에서 괴물이 인간 사회를 견학한다는 명목으로 주인공과의 데이트를 원한다는 묘사는, 사랑의 예외성을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괴물이 본능적으로 인간의 욕망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주인공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쇼핑을 하고, 영화관을 가는 등 주인공과의 교감은 괴물의 생존 관점에서는 하등 의미 없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스스로 그러한 활동을 원하고, 주인공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 한다. 이러한 행동은 괴물의 애정이 철저히 감정적 교감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준다.
만약 괴물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주인공을 필요로 했다면, 이러한 소모적인 활동에 구태여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괴물은 그러한 현실적인 필요와는 무관하게, 그저 주인공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순수한 욕망을 드러낸다. 즉 괴물은 생물학적 본능과 무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감정적 애착을 경험하며, 이를 스스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가진다. 이러한 설정은 사랑이 단순히 생물학적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조건적이고, 초월적인 감정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독자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의 근원과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 '진짜 인간성' 발현의 순간 |
하지만 제10화에서는 괴물이 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이다. 만약 괴물이 단순히 인간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성을 '연기'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 타인을 보호하려는 행동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즉, 이 시점에서 괴물은 더 이상 위장을 위한 인간성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의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감정적 유대를 기반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괴물이 보이는 순수한 이타성, 즉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타인을 지키려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나 인간성을 가장한 계산된 행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요소이며, 이는 곧 괴물이 점차 '진짜 인간성'을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도의적 책임감과 감정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자발적인 희생인데, 괴물이 이러한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단순한 포식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인간성이었던 것이, 주인공과의 관계를 통해 점차 실질적인 감정적 교류를 바탕으로 한 인간성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괴물이 단순히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가진 생명체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은 더 이상 완전히 인간도, 완전히 괴물도 아닌[29] 전혀 새로운 존재이며,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주인공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감정적 상호작용이었다. 결국 사랑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감정적 요소가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과 인간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며, 이는 곧 인간성이란 것이 선천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 속에서 학습되고 형성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시각과 연결된다.
이처럼, 본 작품은 단순히 괴물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랑이란 감정이 정체성과 인간성의 형성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사랑의 본질과 인간됨의 의미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사랑의 예외성을 드러내는 장면 |
결론적으로 괴물이 주인공을 향해 보이는 애정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본능적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철학적 탐구이다. 이 작품은 본능적 욕구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가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애정을 형성할 수 있다면, 사랑이란 감정은 단순히 생물학적 필요를 넘어선, 더욱 근본적이고 순수한 감정의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도록 만든다.
▲ 응축된 감정적 서사가 폭발하는 순간 |
* 결핍과 불완전함으로 완성되는 애틋한 서사
이 작품의 매력은 괴물과 주인공 간의 서사가 결핍과 불완전함을 통해 더욱 애틋하게 완성된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에서는 상대방과의 감정적, 육체적 교감을 통해 결핍을 채우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본작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완전히 깨진다.
여기서 괴물과 주인공의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필연적인 한계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극적인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괴물은 본래 인간이 아니며, 인간이 누리는 감각적 기쁨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도 없다. 또한 번식, 생존, 육체적 쾌락이라는 일반적인 연애의 필수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을 표현하려 한다. 이는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으로 결핍된 사랑,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더 순수한 사랑을 그려낸다.
괴물의 모든 대사는 짧고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복합적인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넌 어때? 기분 좋아? 즐거워?"라는 짧은 질문조차도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괴물이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주인공을 통해 대리 경험하려는 태도이자, 자신의 불완전함을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상대방의 행복을 우선시하려는 배려심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절대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상대방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동시에 자신의 불완전함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의 결과인 것이다.
주인공은 괴물과의 관계를 통해 감각적 만족과 정서적 교류를 동시에 추구하려 하지만, 괴물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친밀한 교감과 정서적 유대감이 괴물에게는 선천적으로 결핍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단절로 작용한다. 그러나 괴물 역시 주인공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유지하고자 하며, 자신이 줄 수 없는 것들을 자각한 채, 그것을 보완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러한 관계의 불균형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과 괴물 사이의 육체적 관계에서다. 괴물은 선천적으로 인간과 같은 신체적 감각을 지니지 않았기에, 성적인 접촉에서 어떠한 감각적 쾌락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괴물은 마치 감정이 제거된 정물처럼, 그저 침대에 얌전히 드러누워 주인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괴물의 '무반응'이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괴물은 비록 신체적으로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지만, 주인공이 바란다면 그의 취향에 맞춰 원하는 반응을 해 줄 의향이 있다'고 언급했다.[30]
이 장면이 지닌 의미는 단순한 육체적 관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괴물이 주인공을 사랑하는 방식이 인간과 다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하다. 괴물은 주인공과 감정을 나누고 싶지만,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느끼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상대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일종의 연기를 선택한다. 주인공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조율하는 괴물의 태도는 단순한 희생이나 타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괴물과 주인공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인간과 괴물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기인한 감정적 공백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전하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더 깊은 애틋함을 자아낸다. 괴물은 주인공과 완벽한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본 작품이 특이한 로맨스를 넘어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층적인 본질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적 비대칭성이 초래하는 공허함과 안타까움은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괴물은 스스로의 결핍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특히 괴물은 단순히 주인공을 향한 집착적인 감정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려 한다. 이는 굉장히 독특한 사랑의 형태로, 자신이 직접적으로 감각적인 기쁨을 느끼거나, 관계의 성취를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통해 대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의 사랑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주인공은 괴물과의 관계 속에서 감각적으로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면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즉 괴물은 주인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괴물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공허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감정적 불균형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적 긴장감을 형성하며, 독자들에게 괴물과 주인공의 관계가 단순한 애정 관계를 넘어, 더 복잡한 심리적 구조를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괴물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괴물과 주인공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행복이다. 괴물은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에 완전히 동화될 수도 없으며, 인간의 도덕 규범 속에서 공존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 관계는 결코 영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며, 독자들은 이를 자각하면서도 그 '순간의 행복'을 지켜보며 더욱 깊은 감정적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 특히, 괴물의 대사는 이러한 관계의 필연적인 유한성을 함축하는 핵심적인 표현이다.[31] 이 말 속에는 오늘은 다행히 행복할 수 있었지만, 이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른다는 불안함이 녹아 있다. 작가가 직접 괴물과 주인공의 관계를 외줄타기와도 같은 위태로운 삶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이들이 누리는 행복이 결코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극도로 위태롭고, 불완전하며,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관계임을 시사한다.
괴물은 사랑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려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 행복이 결국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내다볼 수 있기에, 괴물의 저 미소는 더없이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슬픈 장면으로 다가온다. 고로 괴물이 보여주는 미소는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괴물의 본질적 결핍과 현재의 순간적 행복이 충돌하는 지점이며, 사랑의 순수함과 동시에 그 사랑이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비극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괴물은 주인공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인간성을 경험하며,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하지만, 그 관계는 결국 괴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존재론적 한계 속에서 끝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괴물의 미소에서 감동뿐만 아니라, 이 관계가 가진 모든 복잡성과 모순, 그리고 궁극적인 비극성을 직감하며, 깊은 연민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32] 결론적으로, 괴물과 주인공의 사랑은 완전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그래서 더욱 깊은 감정적 반향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괴물이 주인공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해당 회차가 팬들 사이에서 '작품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연인 간의 데이트라는 표면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상기한 바와 같이 본 작품이 그간 쌓아온 감정적 서사가 응축되어 폭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 작품의 클라이맥스로서, 작가가 이룩한 가장 큰 서사적 성취 중 하나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3.1.2. 뒤틀린 사랑의 미학
▲ 윤리와 욕망의 충돌 |
* 독자와 주인공의 공감과 윤리적 딜레마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금기와 욕망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심도있게 다루며, 이를 통해 사랑의 한계와 가치를 시험하고자 한다. 본 작품에서 주인공이 괴물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윤리적 관점에서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데, 주인공이 괴물을 위해 동족을 포식시켜 주는 데 가담하면서 겪는 내적 갈등과 혼란은 독자들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자극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한없이 복잡하고, 때로는 기괴하면서, 자기파괴적인 형태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매우 날카롭게 파고든다. 특히 짝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다른 존재와 패덕(悖德)적인 관계를 맺는 심리적 고뇌를 감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위 상황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욕망과 죄의식이 한데 뒤섞인 뒤틀린 감정이다. 즉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억지스러운 자기합리화와인 것과 동시에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서로 교차하며 형성된 일종의 심리적 굴레이며, 그렇기에 주인공은 자신이 갈망하던 짝사랑이 현실로 이뤄졌음에도 마치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극심한 자괴감과 배덕감을 느낀다.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이상적 관계가 괴물과의 범죄적인 거래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그야말로 모순과 뒤틀림의 극치를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없이 순수할 수 있는 동시에 이처럼 왜곡되고 어둡게 변질될 수도 있다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독자들에게 섬뜩한 여운과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주인공이 그녀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현재의 괴물과 겹쳐 보는 묘사는 본작의 백미(白眉)로서, 독자들이 그가 느끼는 끔찍한 죄책감과 기묘한 만족감을 동시에 체감하도록 한다. 본디 생전의 그녀는 주인공에게 무관심했던 것을 넘어 매도하던 존재였으나, 그녀의 몸을 빼앗은 괴물은 그녀의 모습으로 사랑을 준다. 이는 분명히 주인공이 갈망했던 이상향이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죽음을 묵인하고, 괴물의 인육 공급자 노릇을 하게 되면서 주인공 자신의 양심과 도덕성(인간성)을 포기했다.
"━무슨 일이지, 그렇게 멍하니. ···어쩐지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군."이라는 괴물의 대사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비추는 역할을 하며, 그의 내면적 충돌을 가장 극대화시킨 순간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괴물을 멍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은유되듯이 주인공은 이 기묘한 거래에 대한 부조리함을 깨닫고 있지만, 이미 그것에 너무나도 깊숙이 얽혀 있는 자신을 뿌리칠 수도, 그렇다고 순수히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모든 요소가 혼재된 주인공의 심리 상태는 그야말로 한없이 복잡하다. 그가 자신의 욕망이 이뤄진 꿈 같은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이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범죄의 선상 위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연출은 본 작품이 인간 심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건드리는 드라마로 자리잡게 하는 요소다.
그가 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더욱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요소가 바로, 주인공이 아무 말 없이 보름달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서사의 맥락을 고려하면 보름달은 결코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며,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이 관계의 불안정성을 암시하기도 하고, 혹은 차마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은유하는 장치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보름달은 광기를 상징하기도 하며, 이는 주인공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음을(인간성의 상실을) 상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도덕적 타락과 인간적 연약함의 혼재는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이 작품이 특이한 로맨스를 다룬 오락 만화에서 벗어나, 철학적 깊이를 가지는 이유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을 치밀하게 조형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철학적 작품으로 기능하며, 그 깊이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 해당 화두를 괴물의 도덕성과 연관지었을 때, 괴물은 본능적으로 인간을 포식하고, 그 육체를 차지하는 비인간적 존재로서, 인간 사회의 도덕적 기준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악'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괴물이 인간을 포식한 직후, 온몸에 피칠갑을 한 모습으로 주인공 앞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러한 본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괴물이 언제든 주인공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한 포식자이며, 주인공은 그런 공포 속에서도 '인간적 감정과 포식 본능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괴물을 믿으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괴물의 본성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괴물을 일차원적인 포식자로만 그리는 대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그 존재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형한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수차례 강조한 바, 괴물은 결코 주인공에게 인간성의 상실을 강요하거나 타락시키려는 존재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행동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즉 괴물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면서도, 그 외의 영역에서는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성격을 지닌다. 이 점에서 괴물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본능과 이성 사이에 놓인 복합적인 존재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다.
괴물은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존재지만 주인공은 단순한 먹잇감이 아니라 소중한 존재로 대하며,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거나, 순수한 감사의 표시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헌신적인 파트너로 그려진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괴물의 치명적인 존재적 간극을 느끼면서도 위협적인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괴물의 행동을 인간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괴물의 태도는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인간적으로 동정을 살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며, 독자가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괴물을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정보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괴물은 자신의 생존 방식이 스스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본능적으로 결정된 것임을 씁쓸하게 받아들인다. 괴물은 자신의 생존 방식이 인간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위 장면은 그러한 괴물의 존재론적 고뇌가 반영된 것이다.
이렇듯 괴물에게 식인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 행위이다. 인간을 잡아먹지만 그 행위에 악의적인 동기가 있지는 않으며, 인간이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을 포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원리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괴물은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그것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서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독자들 역시 괴물에게 식인이 양분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며, '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중심적 가치관에서 보면 식인은 명백한 범죄지만, 괴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생존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들은 괴물을 평가할 때, 인간 중심적인 도덕관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설정은 인간성과 도덕의 경계를 시험하는 요소들 중 하나로 작용하며, 독자들로부터 우리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도덕이란 과연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의 관습적인 산물에 불과한 것인지와 같은 깊은 철학적 고뇌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괴물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독자들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괴물의 중립적인 태도, 주인공을 향한 헌신 등은 괴물을 보다 인간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 결과, 독자들은 점점 괴물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되며,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라는 핵심적인 주제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괴물은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존재지만 주인공은 단순한 먹잇감이 아니라 소중한 존재로 대하며,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거나, 순수한 감사의 표시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헌신적인 파트너로 그려진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괴물의 치명적인 존재적 간극을 느끼면서도 위협적인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괴물의 행동을 인간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괴물의 태도는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인간적으로 동정을 살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며, 독자가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괴물을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정보로 작용한다.
▲ 본성과 이성의 경계 |
이렇듯 괴물에게 식인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 행위이다. 인간을 잡아먹지만 그 행위에 악의적인 동기가 있지는 않으며, 인간이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을 포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원리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괴물은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그것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서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독자들 역시 괴물에게 식인이 양분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며, '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중심적 가치관에서 보면 식인은 명백한 범죄지만, 괴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생존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들은 괴물을 평가할 때, 인간 중심적인 도덕관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설정은 인간성과 도덕의 경계를 시험하는 요소들 중 하나로 작용하며, 독자들로부터 우리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도덕이란 과연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의 관습적인 산물에 불과한 것인지와 같은 깊은 철학적 고뇌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괴물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독자들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괴물의 중립적인 태도, 주인공을 향한 헌신 등은 괴물을 보다 인간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 결과, 독자들은 점점 괴물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되며,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라는 핵심적인 주제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 여기에 원래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괴물은 나를 사랑한다는 역설적인 대조는 원래 그녀의 결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괴물이라는 존재에 진정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여 주인공과 동일한 딜레마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원래의 그녀와의 관계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만족과 위안을 괴물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주인공이 괴물과의 관계에 더욱 집착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동기를 부여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괴물은 원래의 그녀의 몸을 통해 그녀가 주인공에게 남긴 상처를 대신 보듬어주는 '복수자' 겸 '구원자'로 기능함으로써, 이 점도 역시 주인공과 괴물 간의 관계에 얽힌 윤리적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독자가 처음에는 괴물과의 관계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시선에 점점 동화되어가며 그의 감정에 이른바 '설득당하는' 것이다.
* 이것의 연장선에서 화면 구도상 본 작품에서 독자는 단순한 '감상자'나 '타자', 즉 본작의 공간과 유리된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작품 속 주인공 그 자체이며, 모든 상황을 직접 목격하는 주인공의 눈을 빌림으로써 그의 감정적 분열과 내면적 갈등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독자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가장 사적인 순간, 즉 주인공의 깊은 내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엿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게 만들어 마치 주인공과 똑같은 딜레마에 빠진 듯한 착각을 독자가 간접적으로 체험('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떨까?')해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본작이 외형 묘사에 제약이 따르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대신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는 1인칭 시점 화면 구도를 내내 고수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즉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시각을 빌려 바라본 독자들에게는 괴물이 단순한 '악'이나 '타자'로 보이지 않으며,[33] 이는 곧 괴물과의 관계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고,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을 보다 심층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자연히 독자로 하여금 이성적 판단을 강요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몰입하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선택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논리로만 비평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 장면은 주인공에게 있어 원래 짝사랑녀에 대한 미련과 상처(동경과 증오의 양가감정),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감정적 공백을 메워 주는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이끌림과, 괴물의 본질에 따른 죄책감이 한데 뒤섞이며 독자들의 감정적 몰입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으로써, 이와 같은 심리적 내러티브는 독자들에게 사랑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34] 이는 다시 상기한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다.
* 고로 괴물이 비록 원래의 그녀를 먹어치우고 불완전하게 흉내내고 있는 존재이나, 원래의 그녀보다 더 다정하고, 헌신적이며, 주인공의 행복에 기뻐한다면, 또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독자와 주인공 모두 괴물에게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주인공은 '진짜 그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괴물이 구현한 이상화된 환영(幻影)에 자기위안을 삼고 있는 것일 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35] 괴물에게 형언할 수 없는 무언의 이끌림과 애정을 느끼고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36] 이 괴물의 인간적인 진정성과 주인공의 인간적인 나약함 간의 낭만적 연결은 독자가 주인공의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몹시 인간적인 선택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력을 부여하며, 작품 특유의 애수적인 서정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 따라서 본작이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독자들의 애틋하고 서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에 대한 감정을 날것의 느낌 그대로 변태적이리만치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과 고뇌를 집요하게 파헤치기 때문으로,[37] 그 결과로 독자는 식인괴물과의 뒤틀린 사랑이라는 광기어리고 금기적인 소재 속에서도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틀로는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미감(美感)을 형성한 본작이 고어물의 탈을 쓴 엄연한 순애물로 여겨지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즉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시각을 빌려 바라본 독자들에게는 괴물이 단순한 '악'이나 '타자'로 보이지 않으며,[33] 이는 곧 괴물과의 관계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고,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을 보다 심층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자연히 독자로 하여금 이성적 판단을 강요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몰입하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선택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논리로만 비평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 장면은 주인공에게 있어 원래 짝사랑녀에 대한 미련과 상처(동경과 증오의 양가감정),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감정적 공백을 메워 주는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이끌림과, 괴물의 본질에 따른 죄책감이 한데 뒤섞이며 독자들의 감정적 몰입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으로써, 이와 같은 심리적 내러티브는 독자들에게 사랑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34] 이는 다시 상기한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다.
* 고로 괴물이 비록 원래의 그녀를 먹어치우고 불완전하게 흉내내고 있는 존재이나, 원래의 그녀보다 더 다정하고, 헌신적이며, 주인공의 행복에 기뻐한다면, 또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독자와 주인공 모두 괴물에게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주인공은 '진짜 그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괴물이 구현한 이상화된 환영(幻影)에 자기위안을 삼고 있는 것일 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35] 괴물에게 형언할 수 없는 무언의 이끌림과 애정을 느끼고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36] 이 괴물의 인간적인 진정성과 주인공의 인간적인 나약함 간의 낭만적 연결은 독자가 주인공의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몹시 인간적인 선택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력을 부여하며, 작품 특유의 애수적인 서정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 따라서 본작이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독자들의 애틋하고 서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에 대한 감정을 날것의 느낌 그대로 변태적이리만치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과 고뇌를 집요하게 파헤치기 때문으로,[37] 그 결과로 독자는 식인괴물과의 뒤틀린 사랑이라는 광기어리고 금기적인 소재 속에서도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틀로는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미감(美感)을 형성한 본작이 고어물의 탈을 쓴 엄연한 순애물로 여겨지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새해맞이 참배에서 주인공의 건강을 기원하는 괴물 |
* 감정적 설득과 심리적 납득의 정점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을 사랑이 지닌 순수한 본질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인공과 괴물의 관계가 비윤리적이고 뒤틀린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감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가를 역설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위 장면을 통해서도 사랑이 결코 도덕적 올바름이나 관계적 정당성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때로는 가장 뒤틀린 상황 속에서도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작가의 견해를 재차 인정하게 된다. 괴물이 인간의 도덕적 규범을 따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감정을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바로 그 순간, 독자들은 이들의 관계가 도덕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알고, 또 괴물이 원래 소녀를 먹어치운 존재임을 잊지 못하지만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정성과 따뜻함만큼은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즉 괴물이 보여주는 따뜻한 면모는 도덕적 비난을 무력화시키고, 윤리적 고뇌를 무디게 하거나 혹은 잠시 잊게 할 만큼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에,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도덕적 틀에 얽매여 평가될 필요는 없으며, 그렇기에 이 관계 역시도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이른바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슴으로는 납득하게 되는 상황적 아이러니를 경험함으로써, 작품이 주는 몹시도 서정적이고 역설적인 설득에 어느덧 납득당해버리는 것이다.
* 흔히들 사랑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라 하듯이,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마냥 옳거나 그르다고 재단하지 않으며, 그런 만큼 괴물과의 사랑을 이어가는 주인공의 행동은 독자들에게 도덕적 판단을 쉬이 내리기 어렵게 하는 혼란을 안겨준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혼란을 단순히 감정적 불편함이나 불쾌함으로만 남겨두지도 않는다. 즉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과 괴물이 표하는 사랑의 진정성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주인공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록 유도한다. 괴물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이 사랑이 지닌 복잡한 아름다움에 주목하면서 좀 더 깊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감정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려고 하는데, 이들의 사랑도 비록 뒤틀렸을지언정 나름 응원받을 가치가 있음을 역설하며, 독자들에게 머리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마음으로 느껴보라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화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순수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괴물은 본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초기 회차에서 알 수 있듯이 괴물은 처음에는 주인공을 단순히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지해야 할 '수단적 인간'으로 여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와의 교감을 통해 괴물은 진정한 감정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점점 변화한다. 이 변화는 특히 상단의 새해맞이 참배에서의 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38] 해당 회차에서 괴물이 자신의 안위 대신 주인공의 행복과 건강을 우선적으로 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존 본능에 지배되던 과거와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모습으로,[39] 이는 주인공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며, 자연히 주인공에게 괴물은 곧 자신에게 짝사랑한 소녀의 '왜곡된 대체재'가 아닌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해당 관계가 이상화된 환영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기에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와 동력을 제공해 준다. 주인공을 위해 숙연히 기도하는 저 장면에서, 독자들 역시 괴물이 자신의 본능을 넘어선 사고를 하는 성장한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며, 또한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괴물은 정말로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 갈등을 초월한 감정적 울림을 선사함과 동시에 괴물이 인간을 먹는 존재라는 본질만 제외하고 본다면,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작품의 전반적인 논지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 괴물이 주인공을 진심으로 위하는 순간, 독자들은 이 관계가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상기한 바 이 관계가 도덕적 규범 속에서 결코 영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기에, 괴물이 주는 따뜻함이 더 큰 비극적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곧 끝나버릴 유한성은 둘의 관계가 단순한 파괴적 로맨스가 아닌, '시간적으로 제한된 순수한 감정의 교류'로 느껴지게끔 만들며, 이는 그만큼 독자들에게 뒤틀렸지만 아름다운 사랑으로 와닿게 된다.
* 괴물이 주인공을 진심으로 위하는 순간, 독자들은 이 관계가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상기한 바 이 관계가 도덕적 규범 속에서 결코 영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기에, 괴물이 주는 따뜻함이 더 큰 비극적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곧 끝나버릴 유한성은 둘의 관계가 단순한 파괴적 로맨스가 아닌, '시간적으로 제한된 순수한 감정의 교류'로 느껴지게끔 만들며, 이는 그만큼 독자들에게 뒤틀렸지만 아름다운 사랑으로 와닿게 된다.
3.1.3. "아름다운" 식인괴물이 던지는 메시지
▲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❸ |
* 시각적 요소에서 오는 양가적 감정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몹시 흥미로이 다가오는 점은 위 단락들에서 서술된 바 감정의 모순됨과 이중성으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윤리적 판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뒤틀린 관계의 매력을 극한까지 부각시킨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괴물이 지닌 인간의 심미 기준에 부합하는 고혹적인 아름다움 또한 독자들의 심리적 경계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고, 본능적 공포와 친숙함 사이의 양가감정을 형성하며, 연인 관계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뇌해 보게끔 만드는 데 일조한다. 괴물이 지닌 인간적 매력에 사로잡혀 범죄를 방조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가진 도덕적 기준이 이상적인 감각적 아름다움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표현한 위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미소녀'의 형상을 한 괴물이란 설정이 단순한 남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걸 넘어, 인간의 심리적 경계를 시험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 수긍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들과는 다른 외모와 행동양식을 지닌 이질적 존재를 '괴물'이라 정의하며, 그 괴물은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멀리하려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 존재가 인간의 심미적 기준에 매우 부합하는 미형을 하고 있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야 할 공포는 억제되고, 대신 친근함과 호기심, 심지어 애정의 감정이 틈입할 여지마저 남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볼 때, 이성적 판단 이전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며, 그 앞에서 인간은 쉽게 방심하고, 심지어 그 존재를 긍정할 이유를 찾으려 들기도 한다. 그 순간 인간의 심리적 방어기제는 해제되어 흔들리기 시작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른가?'를 고민하기보다, '이 관계를 어떻게 하면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인위적인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즉 인간의 심미안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신뢰와 애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아름다움이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에게 적용될 때, 복잡한 심리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곧 선(善)'이라는 선입견이 붕괴하고, 그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에게 매혹을 느끼는 순간, 인간의 심리적 경계는 붕괴해버리는 것이다. 즉 본 만화는 주인공과 괴물의 관계를 통해 '미'라는 요소가 인간의 이성(심리적 방어기제)과 윤리적 판단을 어떻게 흐트러뜨릴 수 있는지를 실험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3.2. 전망
본 작품은 바디 스내처 장르의 기본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유명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답습해 온 클리셰에 매몰되지 않고, 작가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더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일반적으로 바디 스내처 서사는 외계 생명체, 이형(異形)의 존재, 초자연적인 개체 등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인간의 신체 혹은 자아를 빼앗거나 대체하는 방식으로 사회 속에 침투하는 이야기 구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오랫동안 SF, 호러, 판타지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져 온 스테디셀러적 소재로서, 수많은 작품들이 이러한 설정을 차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러한 서사를 공포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서스펜스 구조 혹은 이종존재 간의 극적인 대립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반면, 본 작품은 그러한 전형적인 바디 스내처 서사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적 양가성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독특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단순히 이종존재가 인간 사회에 스며든다는 기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형의 존재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대체하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인가?', '원래의 인간을 대체한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란 어디에서 형성되는가?'와 같은 심도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기존 바디 스내처 계열의 작품들과 본 작품을 명확하게 구별짓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괴물의 본질을 완벽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강한 윤리적 갈등을 유발한다. 이는 단순히 괴물이 인간을 대체했다는 설정을 넘어, 대체된 존재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인간의 심리적 변천 과정을 면밀히 탐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며,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기존 바디 스내처 작품들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바디 스내처 및 이종존재와의 사랑 이야기가 SF 및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다뤄지는 익숙한 소재라고는 하나, 본 작품만큼 치밀한 감정적 설득에 집중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이 가진 독창성은 팬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단순히 잔혹한 설정과 충격적인 전개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설득력을 동반한 감정적 몰입 요소로서 자리잡고 있다.
물론, 본 작품이 가진 독창적인 요소와 서사적 깊이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가 지닌 특유의 잔혹성과 도덕적 충격 요소로 인해 독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특정 장면들은 일반적인 도덕적 기준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괴물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듯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어,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관계 미화'라며 질색하는 독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서사를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며, 인간의 감정은 윤리적 판단을 초월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매력을 느낀 독자들 역시 상당수에 달한다.
하지만 본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관심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현재까지 서적화나 미디어 믹스화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연재 중기부터 이미 작품의 인기가 점차 상승하면서 출판사나 웹진을 통한 정식 연재를 희망하는 팬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음에도, 작가는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창작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본 작품의 작가는 동인 활동에 주력하는 프리랜서로서 독립적인 창작 환경을 중요시하며, 거대 자본이나 출판사의 개입 없이 자유로운 작업을 지속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인디 만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동시에 작품이 보다 널리 퍼지고 대중적으로 소비될 기회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현재까지도 묵묵부답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는 작품을 단순히 대중적 소비를 위한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인지, 혹은 향후 창작 방향에 변화가 생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본 작품이 상업적인 미디어 믹스 과정에 들어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들은 여전히 본작의 정식 연재(프로 연재) 및 미디어 믹스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작가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본 작품이 하나의 인디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독자층에게 다가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작품의 전개 방향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무낙시스・무낙소스》(2018) |
質問ですけど、このシリーズの完結は何話で予定しています? 질문입니다만, 이 시리즈의 완결은 몇 화로 예정하고 있으신가요? • 어느 독자의 코멘트. はっきりと何話っていうのはまだ。終わり方はもう決まってるので、描きたいシチュエーションを一通り出し切ったら、という感じですね。 아직 몇 화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려보고 싶은 상황을 얼추 다 그려내고 나면, 그런 느낌이에요. • 작가의 답변. # |
▲ 《데포르메 낙서를 해 봤다》(2024)[46] | ▲ 《새해 첫 그림》(2025)[47] |
3.2.1. 결말에 대한 추측
작가는 14화의 댓글을 통해 본 작품이 이미 종반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50] 이는 독자들 사이에서 작품의 전개 방향과 결말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오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데, 특히 본 작품이 비정기적으로 연재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차기 화가 언제 공개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결말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 것인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현재까지의 연재 속도를 고려해 볼 때, 새로운 화가 올라오는 주기가 다소 느릿한 편이며, 그로 인해 독자들은 향후의 전개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가가 이전부터 일관되게 강조해 온 작품의 핵심 테마, 즉 공존할 수 없는 이종 간의 사랑이 초래하는 배덕적이고 비극적인 운명을 고려했을 때, 해피 엔딩의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14화의 댓글을 살펴보면, 해피 엔딩을 바라는 독자들의 기대에 대해 작가는 뚜렷하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51]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할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작품이 보여준 전개 방식과 테마를 고려했을 때, 이는 결말이 마냥 밝고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한 독자가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든다는 댓글을 남겼을 때, 작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부정을 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독자가 주인공에게 괴물은 단순한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슬픈 결말이 될까 봐 걱정된다는 의견을 남겼을 때, 작가는 식인괴물은 결코 인간과 공존할 수 없다고 답변하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강조했다.[52]
이러한 일련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본 작품의 결말이 새드 엔딩 혹은 배드 엔딩의 형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물론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이 바뀌어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까지의 서사 흐름과 작가의 직접적인 발언을 고려하면, 이미 결말에 대한 기본적인 플롯 구상은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개된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뚜렷한 외부적 위협이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는 지속적으로 불안과 음울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불길한 기류와 연결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 같은 긴장감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작품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주인공이 점차 타락하면서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피카레스크 서사의 전형적인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서정적 로맨스가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적 부패와 타락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필연적인 대가를 탐구하는 이야기임을 다시금 시사한다.
▲ 오미쿠지에서 중길(中吉)을 뽑은 괴물[53] |
중길은 일반적으로 해석하기에 따라 그다지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좋은 운세라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길흉을 의미하는 결과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적 연출이라기보다는, 작품 전체의 결말을 암시하는 하나의 상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주인공과 괴물의 관계는 일시적으로는 행복해 보일 수 있으나, 그 결말은 완전한 비극도 아니고, 완전한 행복도 아닌, 중길이라는 애매한 운세처럼 불확실하고도 씁쓸한 형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해피 엔딩이나 배드 엔딩을 넘어, 보다 복합적인 감정선을 남기는 결말이 될 것임을 시사하며, 그로 인해 독자들이 느끼게 될 감정적 충격 또한 더욱 강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본 작품은 현재까지의 전개와 작가의 반응, 그리고 이야기에서 어렴풋이 감지되는 불길한 징조들,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비극적 정서와 같은 여러 서사적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결말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과 괴물이 맞이할 운명은 결코 평온하거나 온전한 형태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4. 등장인물
4.1. 주인공/나
자세한 내용은 주인공(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문서 참고하십시오.4.2. 괴물/괴물 씨/괴물 쨩
자세한 내용은 괴물(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문서 참고하십시오.4.3. 그녀/이 여자
자세한 내용은 그녀(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문서 참고하십시오.5. 설정
자세한 내용은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설정 문서 참고하십시오.6. 기타
- 노벨피아에 연재되었던 성인 웹소설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내 아내는 괴물이다》[54]는 본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55]
- 설정과 플롯, 캐릭터를 차용한 것 외에도 일부 회차에선 해당 만화 속 대사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있어 팬들 사이에선 본작의 아류작 내지 팬픽으로 여겨지기도 하나, 그 대신 저쪽은 원작에 해당하는 본작이 비정기 단편 만화라는 한계성으로 인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던 등장인물들[56]의 내면 심리 묘사를 공들여 표현하여 개성을 챙겼다. 특히 주인공을 곁에서 세심히 챙기는 괴물의 감정선 변화를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력이 탁월하여 순애 요소가 원작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국내에선 원작보다 저 웹소설 쪽을 먼저 접해본 뒤 역으로 본 만화에 유입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
- 인간을 의태하는 식인 괴물과 인간이 서로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된다는 점, 주인공은 애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우직하리만치 그녀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도덕적 딜레마에 시달린다는 점 등은 《케모노즈메》의 모모타 토시히코 & 카미츠키 유카 커플을 연상케 한다. 저쪽도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식인 괴물과 인간 간의 비극적인 사랑 및 딜레마를 성인지향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본작과 유사점이 많다.
- 《내 여자친구가 괴물이었다》, 《패러사이트 시리즈》와 공통점이 무척 많다. 세 작품 모두 트위터 및 픽시브에서 비정기 연재된 웹코믹인 것도 동일.
- 《패러사이트 시리즈》의 경우 저쪽도 연인 행세와 성관계를 대가로 인간을 의태하는 식인 괴물의 포식 활동을 묵인 및 방조하는 종범을 자처한 주인공을 1인칭 시점을 통해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호러, 고어적인 묘사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일 뿐, 인간과 괴물 간의 순애적 교감이 사실상 주가 되는 본작과는 달리, 저쪽은 반대로 연애 요소보다는 고어 지수를 대폭 상승시켜 독자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 자체가 주가 되며, 바디 호러적 묘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 또한 《패러사이트 시리즈》의 프로토타입 격 만화인 《나밖에 모르는 그녀의 비밀》[57]의 괴물은 자신의 정체와 범행에 대해 함구해주기만 한다면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었다며, 성관계를 범행에 가담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기브 앤 테이크 형식의 사무적 관계로서 번식수단으로 여기기만 할 뿐 딱히 주인공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본작의 순한맛(《내 여자친구가 괴물이었다》)과 매운맛(《패러사이트 시리즈》) 버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내 여자친구가 괴물이었다》의 경우, 일반적인 바디 스내처 계열 고어 장르치곤 작풍도 얌전하고 순애 지수는 가장 높아서 비교적 수수한 편이며,[58] 《패러사이트 시리즈》는 반대로 셋 중에서 순애 지수는 가장 낮고 고어 지수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딱 중간에 위치한 본작이 적정선의 순애 요소와 고어 요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취한 균형잡힌 작풍을 지니고 있다. 이는 본작이 세 작품들 가운데 인지도가 제일 높은 것과도 다소 연관이 있어 보인다.
- 일각에서는 인간의 상식이 배제된 채 맹목적인 호감을 표해 오는 인외의 존재를 여자친구로 두고 있다는 유사성을 이유로 레딧발 밈 《수많은 별들 너머에서 온 여친》이 연상된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 현재까지 𝕏(구 Twitter)와 pixiv에서 연재가 되었으나, 작가가 2024년 10월 19일부로 Bluesky 계정을 개설함으로써 연재처가 변경 혹은 추가될 가능성이 생겼다.
▲ “이 「종」을 먹어치워라!”
この[ruby(「種」, ruby=シュ)]を食い殺せだ! - 특징 문단에 전술하였듯 본작이 《기생수》의 설정과 대사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고려하면,[59] 작가가 제목을 구상할 때 타미야 료코의 상징적인 대사[60]도 일부 참고한 듯하다.
6.1. 친척뻘 작품들
-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
- 《내 여자친구가 괴물이었다》[63]
- 《히카루가 죽은 여름》[64]
- 《패러사이트 시리즈》
- 《그와 식인귀의 일상》
- 《모독에 관하여.》
- 《동거하는 점액》[65]
- 《사야의 노래》[66]
- 《모래 위의 1DK》
- 《괴물아기》
- 《이형쨩 데이즈》
- 《이름 없는 괴물》
- 《내 여자친구는》
- 《우리 엄마》
- 《나를 먹고 싶은, 괴물》
- 《재앙이 날 사랑한다》
- 《인간을 먹는 꽃》
- 《달빛의 침략자》
[1] 하위 장르로 크리처(몬무스), 호러(바디 호러), 고어, 범죄, 순애, 일상, 성인, POV 요소를 포함한다.[2] 최초 업로드 기준. 1화~14화. (2022. 04. 12. ~ 2022. 09. 13.)[3] 15화~현재. (2023. 12. 11. ~ 현재)[4] 연재 개시일로부터 [age(2022-04-12)]주년. ([dday(2022-04-12)]일)[5] 연재 개시일로부터 [age(2022-04-21)]주년. ([dday(2022-04-21)]일)[6] 해당 표기가 일반적이나 번역주체에 따라[7] 해당 표기가 일반적이나 번역주체에 따라[8] 현재는 작가의 대표작이자 인기작이라 할 수 있는 시리즈로, 본래 후속 예정이 없는 단편 완결성 일러스트에 가까웠으나 독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첫 회차 게시 이틀 뒤인 2022년 4월 14일에 업로드 된 제2화째부터 제목 말미에 기호가 붙으면서 장기 시리즈화 되었다.[9] 본편에 해당하는 트위터 연재분의 사이사이 시점을 다루고 있다. 트위터 연재분과는 달리 본격 성인 태그가 붙은 만큼 직접적인 성행위와 적나라한 식인 묘사 등 팬서비스 성격의 고수위 에피소드를 주로 게시한다.[10] 에피소드의 부제목.[11] 작중 시간상으로 트위터 연재분 4~5화 사이 시점이다. 팬들은 사실상 4.5화로 취급한다.[12] 나만 특별 취급해 주는 식인 괴물 주세요.(僕のことだけ特別扱いしてくれる人食いのバケモノください。)[13] (Rated 18 + Gore). 작중 시간상으로 9화에서 두달 전 시점이다.[14] (주인공을) 배려해 줄줄 아는 녀석.(気遣いができるやつ。)[15] 업로드순으론 9회차지만, 작중 시간상으론 첫 회차에 해당된다.[16] 괴물과의 첫만남.(バケモノとのはじめまして。)[17] 괴물 씨에게 물어 보자![18] 본편에서 아마 마지막까지 이야기되지 않을 것 같은 설정을 Q&A 형식으로 괴물에게 물어보는 시리즈, 그 첫 번째 질문입니다!(本編で恐らく最後までロクに語られることもなさそうな設定をQ&A形式でバケモノに答えてもらうシリーズ、第一問目です!)[19] 정확한 시간대는 불명이나, 괴물의 대사로 미뤄보아 주인공과 괴물이 첫 성관계를 가졌던 본편 4~5화 시점 기준으로 시간이 다소 흐른 뒤의 상황으로 보인다.[20] 야한 걸 하기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エッチなことし始めたその後の話。)[21] 성(섹스)의 6시간. 12월 24일 오후 9시부터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오전 3시까지의 6시간을 말한다. 1년중 성관계를 하는 사람(연인)이 가장 많은 시간대를 일컫는 용어. 시간대상 크리스마스 당일인 본편 17화에서 며칠 전 시점이다.[22] 몇 번 더 자면 크리스마스.(もういくつ寝るとクリスマス。)[23] 타이틀 말미에 넘버링이 붙지 않는 외전에 해당되며, 본편과 마찬가지로 Twitter에 비정기로 연재된다. 진지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본편과는 달리 비교적 밝은 내용인 점이 특징.[24] 이런 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방금 전에 처음 알게 된 괴물.[25] 괴물과 함께 키타로 보러 갔다.[26]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새해맞이 참배 편】[27] 하단의 특징, 의의 문단에서 자세히 후술하지만, 본 작품은 일반적인 연애물과는 확연히 다른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인해 다소 혐오스럽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순 있으나, 주인공과 괴물 사이의 복잡한 감정선과 관계의 발전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상기한 주제들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독자의 감정 이입을 돕는 작가만의 감성적인 그림체와 연출 방식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시키며, 전반적으로 본 작품은 독특한 설정과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통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일반적으로 접해보기 힘든 매우 기묘하고 생경한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8] 당장 제목에서부터 탐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이 암시가 되어 있다.[29]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며, 괴물이지만 괴물은 아닌.[30] "목석 상태예요. 다만 「나」가 원한다면 그런 연기도 한 번쯤 해줄 수 있다는 친절한 마음씨를 품고 있는 것 같네요."(マグロ状態ですね。ただ『僕』が望むならそういう演技のひとつもしてやろうかという親切心はある様子です。)[31] "오늘은 참 운이 좋았다."(今日は実にラッキーだった。)[32] 월광에 반사된 괴물의 눈동자가 이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장면에 애수를 더한다.[33] 역설적이게도 괴물은 현실적 한계로 이루지 못했던 주인공의 이상(짝사랑)을 뒤틀린 형태로나마 이뤄준 은인으로서,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악보다는 오히려 선에 더 근접한 존재이다.[34] 앞서 말한 사랑과 욕망은 윤리를 초월할 수 있는가, 사랑과 윤리의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사랑과 윤리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능할까?" 또 "상대가 짝사랑했던 사람의 자아와 육신을 강제로 침탈하여 대체한 존재라면, 그리고 자신이 그 침탈 행위를 간접적으로 용인했다면, 그 사랑은 여전히 정당한가?" 등등.[35] 이러한 관계성의 파괴와 재구성에 대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괴물이 피상적으론 그녀의 존재성을 완벽하게 대체했지만, 근본적으론 서로 동일하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점에 집중하게끔 하여 왠지 모를 공포감과 공허함을 자아내게 한다. 주인공은 괴물에게 그녀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그런 그녀의 죽음을 외면하고 묵인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괴물임을 알면서도 느껴지는 묘한 끌림 사이에서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괴물을 멍하니 응시하는 모습과 보름달을 비추는 컷은 이러한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은유적으로 더욱 부각시킨다. 따라서 괴물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주인공의 선택은 어쩌면 이러한 죄책감과 고독에 기반한 심리적 타협일 수도 있을 것이다.[36] 비록 괴물이 주인공에게 보여주는 애정은 인간이 보편적인 연인 사이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다소 어긋나 있고 서툰 일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에' 독자들이 주인공과 괴물 간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고 낭만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주인공의 시각에서 괴물의 애정을 체감시킴으로써 독자와 주인공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해 주는 효과도 낸다.[37] 이 기괴한 이야기의 근간에는 짝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못했다는 상실감과, 그것을 어떻게든 이루고자 발악하는 절실한 갈망이 혼합되어 있다. 주인공이 인간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거스르고 자신의 인간성마저 버려가면서까지, 또 괴물의 본질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관계를 유지하려는 광기서린 행위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극단의 선택이야말로 인간 내면의 가장 솔직하고 절실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즉 그녀를 얻지 못했지만, 그녀와 비슷한(특별하지만 불완전한) 존재와 함께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인간의 깊은 애착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것이 변질되고 왜곡된 형태(집착)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38]
"음? 내 소원? 너의 건강."(ん? 願い事? お前の健康。)[39] 이러한 괴물의 변화는 16화에서 어느 정도 암시가 되어 있긴 했다.[40] 원제는 《불쾌한 작품 총집편【무낙시스・무낙소스】》(胸糞作品総集編【ムナクシス・ムナクソス】).[41] 원제는 《夜中にちょっとアレな先輩がほんとアレな動画を送ってくる話。》.[42] DL판(온라인 다운로드/디지털 전용), 전자 1,000엔, 후자 500엔.[43] 관련 트윗 1 관련 트윗 2 판매처(BOOTH)[44] 단 이는 픽시브 산하 동인샵인 BOOTH에 등록된 개인 출품작 한정이며, 다수의 작가진이 특정 테마의 단일 작품에 공동 참여하여 출품하는 형식의 합동지(合同誌, 공동지)는 2024년 현재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45] 일례로 14화에서 15화가 올라오기까지의 간극이 장장 15개월이 걸렸는데, 이는 작가가 연재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가정이 있는 가장으로서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으로, 따라서 연재 주기가 긴 것은 생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여가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만화를 연재하는 까닭인 것으로 보인다.[46] デフォルメ絵らくがきしてみた 원본 링크[47] 新年初描き 원본 링크[48] 모두 괴짜 속성이 있으며, 또한 작가의 신비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탓인지 히로인들 모두 '대학 동창', '여사친'(女友達)(상단 좌측 인물), '선배'(상단 우측 인물), '후배'(하단 좌측 인물)로 지칭되기만 할 뿐, 본작의 괴물(하단 우측 인물)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이름이 없다.[49] "요즘 그림 그리는 게 뜸해졌지만, 저도 괴물을 무척 좋아하니까 또 그리도록 할게요‼︎"(ここのところお絵描き滞りがちですが、僕もバケモノのこと大好きなのでまた描きます‼︎)[50] "감사합니다!! 인제 종반,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もう終盤、最後までお付き合いください!) #[51] "어떻게 될까요... 이 녀석들에게 있어서 해피 엔딩은 인류 사회에 있어선 해피 엔딩이 아닐 테니 말이죠..."(どうなることやら… こいつらにとってのハッピーは人類にハッピーじゃないですからね…) #[52] "착한 녀석이긴 하지만, 인류라는 종과 공존할 수는 없는 존재니까요···"(いい奴だけど、致命的に人類種と折り合いがつかないですからねぇ···)[53] "중길. 당첨인 건가, 이건?"(中吉. 当たりなのか, コレは?)[54]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에서 등장인물들의 설정을 일부 개변한 사실상의 리메이크에 해당한다.[55]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의 연재 시작일은 2022년 4월 12일,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가 동년 8월 9일, 《내 아내는 괴물이다》는 2024년 6월 11일.[56] 각기 대응되는 캐릭터들은 다음과 같다. 괴물(모티브) ↔️ 윤성하, 김현옥 친구의 기생 생물 | 주인공(모티브) ↔️ 김현옥, 김현옥의 친구.[57] 원제는 僕しか知らない彼女のひみつ.[58] 세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성인 태그가 붙지 않았다.[59] 한국에서 《괴물 여자친구》, 《괴물여친》이란 약칭 외에도 간혹 《기생수 여자친구》 혹은 《기생수 여친》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작품 곳곳에서 《기생수》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는 까닭인 것으로 추측된다.[60] "파리나 거미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나는 법을 알고, 실을 뽑을 줄 알지. 어째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파리도 거미도 그저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인 거야.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듣고 있는 거지. 내가 인간의 뇌를 빼앗은 순간, 하나의 명령이 내려왔다. '이 「종」을 먹어치워라!' 라고."
- 《기생수》 제1권 8화 중.[61] "1000일❗️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니.... 괴물과도 오랜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올해야말로 분발해서 계속 그려야겠어요...‼️"(1000日❗️もうそんなに経っていたなんて…。バケモノとも長い付き合いになってきました。今年こそ頑張って続きを描いてやらねば…‼️) 링크[62] 뒤이어 동년 1월 16일, 픽시브 연재분 역시도 1,000일을 달성했다.[63] 인간을 의태하는 괴물을 여자친구로 사귀고 있다는 것, 히로인이 한때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였다는 것, 순애 요소가 부각되는 일상물이라는 것, 주인공과 히로인 둘 모두 고등학생 신분이라는 것, 히로인인 괴물이 매우 온순하고 친절한 성격인 것, 히로인의 본 모습이 거대 괴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등등. 또한 두 작품의 괴물들 모두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음에도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는 주인공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나름대로 보답하려 애쓰며, 게다가 작중에서 의태 중인 원래 몸의 주인이 품행이 불량한 비행 청소년이었으나, 괴물이 몸을 차지한 현재 시점에서는 주변인들로부터 모범생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하다. 게다가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히로인을 전혀 혐오하지 않는 무던한 면이 있으며, 우연히 인적이 드문 곳에서 괴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64] 두 작품 모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과 그 괴물을 순전히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받아들인 인간 간의 불안한 우정(사랑)을 위태롭게 지속하는 것에서 나오는 기묘하면서도 애틋한 감성이 있다. 게다가 괴물이 인간(주인공의 동급생)을 의태하며 주인공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서,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주인공만큼은 해치는 것을 원치 않는 '특별 취급'을 해 주고 있으며, 주인공 역시 그런 괴물에게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기억 속 생전의 모습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꾸역꾸역 함께 지낸다는 것도 공통점. 또 괴물이 주인공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며, 그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에 비일상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주인공들의 심리적 고뇌를 심화시키며, 애인의 모습을 한 괴물과 함께한다는 독특한 서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심오한 여운을 자아낸다.[65]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이의 욕망과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괴물의 영향으로 점점 인간성을 잃고 타인을 물건처럼 대하는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공통분모가 있으며, 또한 별 볼 일 없는 하류인생을 사는 주인공 입장에선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사랑을 얻지 못했을) 범접할 수 없는 여성의 육체를 제3의 인격체가 차지해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허락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극한의 성적 일탈감과 방종을 부추긴다는 점도 공통점이다.[66]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현실(이성)보다는 사랑(비이성)을 선택했고, 그 사랑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인간성을 버렸으며, 이로 인해 인류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은 개인의 이기적인 만족감을 위해 식인괴물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민폐를 여실히 끼치고 다녔다는 점, 괴물은 그런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이 서로 일맥상통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커플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더없이 애틋한 비련의 순애 이야기지만, 인류 사회에 있어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식인귀 한 마리와, 연애 한 번 해보겠다고 인류를 등지며 살인에 적극 동조하는 파렴치한 범죄자로 치부될 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즉 주인공의 시점과 타인의 시점 간 낙차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이며, 게다가 양 작품의 히로인이 매우 높은 학습 의욕과 지성을 지닌 고지능 생명체이긴 하나, 인간의 논리나 정서가 통하지 않아 인간의 관점에서는 꽤나 잔혹한 행동을 아무 스스럼없이 곧잘 한다는 점도 동일. 게다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로 첫 만남을 가졌지만, 이후 서로를 의지하는 기묘한 상리공생 관계를 이루면서 점차 호감을 쌓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음? 내 소원? 너의 건강."(ん? 願い事? お前の健康。)[39] 이러한 괴물의 변화는 16화에서 어느 정도 암시가 되어 있긴 했다.[40] 원제는 《불쾌한 작품 총집편【무낙시스・무낙소스】》(胸糞作品総集編【ムナクシス・ムナクソス】).[41] 원제는 《夜中にちょっとアレな先輩がほんとアレな動画を送ってくる話。》.[42] DL판(온라인 다운로드/디지털 전용), 전자 1,000엔, 후자 500엔.[43] 관련 트윗 1 관련 트윗 2 판매처(BOOTH)[44] 단 이는 픽시브 산하 동인샵인 BOOTH에 등록된 개인 출품작 한정이며, 다수의 작가진이 특정 테마의 단일 작품에 공동 참여하여 출품하는 형식의 합동지(合同誌, 공동지)는 2024년 현재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45] 일례로 14화에서 15화가 올라오기까지의 간극이 장장 15개월이 걸렸는데, 이는 작가가 연재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가정이 있는 가장으로서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으로, 따라서 연재 주기가 긴 것은 생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여가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만화를 연재하는 까닭인 것으로 보인다.[46] デフォルメ絵らくがきしてみた 원본 링크[47] 新年初描き 원본 링크[48] 모두 괴짜 속성이 있으며, 또한 작가의 신비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탓인지 히로인들 모두 '대학 동창', '여사친'(女友達)(상단 좌측 인물), '선배'(상단 우측 인물), '후배'(하단 좌측 인물)로 지칭되기만 할 뿐, 본작의 괴물(하단 우측 인물)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이름이 없다.[49] "요즘 그림 그리는 게 뜸해졌지만, 저도 괴물을 무척 좋아하니까 또 그리도록 할게요‼︎"(ここのところお絵描き滞りがちですが、僕もバケモノのこと大好きなのでまた描きます‼︎)[50] "감사합니다!! 인제 종반,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もう終盤、最後までお付き合いください!) #[51] "어떻게 될까요... 이 녀석들에게 있어서 해피 엔딩은 인류 사회에 있어선 해피 엔딩이 아닐 테니 말이죠..."(どうなることやら… こいつらにとってのハッピーは人類にハッピーじゃないですからね…) #[52] "착한 녀석이긴 하지만, 인류라는 종과 공존할 수는 없는 존재니까요···"(いい奴だけど、致命的に人類種と折り合いがつかないですからねぇ···)[53] "중길. 당첨인 건가, 이건?"(中吉. 当たりなのか, コレは?)[54]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에서 등장인물들의 설정을 일부 개변한 사실상의 리메이크에 해당한다.[55]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의 연재 시작일은 2022년 4월 12일, 《내 여자친구는 괴물이다》가 동년 8월 9일, 《내 아내는 괴물이다》는 2024년 6월 11일.[56] 각기 대응되는 캐릭터들은 다음과 같다. 괴물(모티브) ↔️ 윤성하, 김현옥 친구의 기생 생물 | 주인공(모티브) ↔️ 김현옥, 김현옥의 친구.[57] 원제는 僕しか知らない彼女のひみつ.[58] 세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성인 태그가 붙지 않았다.[59] 한국에서 《괴물 여자친구》, 《괴물여친》이란 약칭 외에도 간혹 《기생수 여자친구》 혹은 《기생수 여친》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작품 곳곳에서 《기생수》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는 까닭인 것으로 추측된다.[60] "파리나 거미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나는 법을 알고, 실을 뽑을 줄 알지. 어째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파리도 거미도 그저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인 거야.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듣고 있는 거지. 내가 인간의 뇌를 빼앗은 순간, 하나의 명령이 내려왔다. '이 「종」을 먹어치워라!' 라고."
- 《기생수》 제1권 8화 중.[61] "1000일❗️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니.... 괴물과도 오랜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올해야말로 분발해서 계속 그려야겠어요...‼️"(1000日❗️もうそんなに経っていたなんて…。バケモノとも長い付き合いになってきました。今年こそ頑張って続きを描いてやらねば…‼️) 링크[62] 뒤이어 동년 1월 16일, 픽시브 연재분 역시도 1,000일을 달성했다.[63] 인간을 의태하는 괴물을 여자친구로 사귀고 있다는 것, 히로인이 한때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였다는 것, 순애 요소가 부각되는 일상물이라는 것, 주인공과 히로인 둘 모두 고등학생 신분이라는 것, 히로인인 괴물이 매우 온순하고 친절한 성격인 것, 히로인의 본 모습이 거대 괴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등등. 또한 두 작품의 괴물들 모두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음에도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는 주인공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나름대로 보답하려 애쓰며, 게다가 작중에서 의태 중인 원래 몸의 주인이 품행이 불량한 비행 청소년이었으나, 괴물이 몸을 차지한 현재 시점에서는 주변인들로부터 모범생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하다. 게다가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히로인을 전혀 혐오하지 않는 무던한 면이 있으며, 우연히 인적이 드문 곳에서 괴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64] 두 작품 모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과 그 괴물을 순전히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받아들인 인간 간의 불안한 우정(사랑)을 위태롭게 지속하는 것에서 나오는 기묘하면서도 애틋한 감성이 있다. 게다가 괴물이 인간(주인공의 동급생)을 의태하며 주인공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서,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주인공만큼은 해치는 것을 원치 않는 '특별 취급'을 해 주고 있으며, 주인공 역시 그런 괴물에게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기억 속 생전의 모습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꾸역꾸역 함께 지낸다는 것도 공통점. 또 괴물이 주인공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며, 그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에 비일상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주인공들의 심리적 고뇌를 심화시키며, 애인의 모습을 한 괴물과 함께한다는 독특한 서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심오한 여운을 자아낸다.[65]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이의 욕망과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괴물의 영향으로 점점 인간성을 잃고 타인을 물건처럼 대하는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공통분모가 있으며, 또한 별 볼 일 없는 하류인생을 사는 주인공 입장에선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사랑을 얻지 못했을) 범접할 수 없는 여성의 육체를 제3의 인격체가 차지해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허락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극한의 성적 일탈감과 방종을 부추긴다는 점도 공통점이다.[66]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현실(이성)보다는 사랑(비이성)을 선택했고, 그 사랑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인간성을 버렸으며, 이로 인해 인류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은 개인의 이기적인 만족감을 위해 식인괴물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민폐를 여실히 끼치고 다녔다는 점, 괴물은 그런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이 서로 일맥상통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커플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더없이 애틋한 비련의 순애 이야기지만, 인류 사회에 있어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식인귀 한 마리와, 연애 한 번 해보겠다고 인류를 등지며 살인에 적극 동조하는 파렴치한 범죄자로 치부될 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즉 주인공의 시점과 타인의 시점 간 낙차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이며, 게다가 양 작품의 히로인이 매우 높은 학습 의욕과 지성을 지닌 고지능 생명체이긴 하나, 인간의 논리나 정서가 통하지 않아 인간의 관점에서는 꽤나 잔혹한 행동을 아무 스스럼없이 곧잘 한다는 점도 동일. 게다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로 첫 만남을 가졌지만, 이후 서로를 의지하는 기묘한 상리공생 관계를 이루면서 점차 호감을 쌓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