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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착공 | 1986년 10월 21일 |
준공 | 2003년 |
주소 | 강원도 김화군 상판리 |
본 댐으로 형성된 임남호의 모습이다.[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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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에 있는 높이 121.5m, 폭 710m의 중력댐이다. 북한강 상류를 막아 건설하였다. 평화의 댐에서 더 올라가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넘어가면 나온다.대한민국에서는 금강산댐이라 부르지만,[4] 임남댐을 혼용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임남댐[5]이라 부른다. 이 문서에서는 금강산댐으로 통일해서 표기한다.
1986년 봄 대동강 갑문공사에 동원되었던 북한군 병력 15만 명이 금강산 쪽으로 이동하였고, 4월 8일에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에서 최고인민회의가 금강산발전소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으며, 10월 21일에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금강산댐은 17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3년에 완공되었다.
그래도 평화의 댐이 없던 1980년대만 해도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고, 팔당댐이 방류를 한다고 해도 서울 잠수교가 잠기는 정도에 그쳤다.
2. 수공 설
자세한 내용은 평화의 댐 문서 참고하십시오.그런데 1986년 10월 30일[6],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이 19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금강산 근처에 금강산 댐을 지어서 터뜨려서 200억톤 규모의 수공(水攻)을 하려 한다는 발표를 했다.[7] 여의도 63빌딩 중간부(3분의 1이며 20층 높이)까지 물이 들어차는 모형이 공개되자 대한민국은 그대로 공포에 휩싸였고[8] 이후 한국에서는 금강산댐 건설 규탄대회 국민성금[9]과 정부 예산 등을 조달하여 평화의 댐을 부랴부랴 지어 1988년에 1차 완공이 이루어졌다.
평화의 댐 1단계 완공 이후에 1993년 2월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두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정감사를 대대적으로 벌였고, 이 과정에서 5공 핵심인사이자 실세인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주도하에 이 댐의 스펙이 과장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3. 여담
이 댐이 지어지면서 북한 행정구역상 창도군 중심지를 비롯한 대부분이 수몰되어버렸다.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김화군 통구면, 창도면, 임남면, 그리고 양구군 수입면에 해당된다. 통구면[10], 임남면, 수입면은 면소재지까지 잠겨버렸고, 창도면 쪽의 면소재지는 간신히 수몰을 면했다. 그래서 창도군의 중심지는 좀더 북쪽에 있는 지점(광복 당시 회양군 회양면 신안 일대)으로 옮겨가야 했다. 또한 해당 구간을 지나가다가 일부 폐선된 금강산선의 흔적이 수몰되면서 지워지고야 말았다.비록 민통선 평화의 댐 아래의 사람들에겐 북한의 무단방류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평화의 댐 상류 민통선 위 북한강 인근에서 근무하는 육군 장병들은 군생활 내내 해당 댐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수 있다.[11] 장마철에 임남댐이 수위조절을 위해 방류를 시작하면, 강 옆에 바로 붙어있는 저지대 육군 초소나 단위제대는 잠길수도 있고 실제로 잠긴 적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축선의 GOP/GP(그중에서도 전망이 좋은 소초)에서 근무한다면 경계근무 서면서 이 댐을 실컷 볼 수 있다. 다만 날씨가 어느 정도 맑아야 보인다. 북쪽으로는 금강산댐, 남쪽으로는 평화의 댐이 보이는 게 경치가 정말 좋다.
부실공사에다 댐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남북통일이 되면 안전성 문제로 철거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상당히 큰 시가지였던 창도면과 서울-금강산 라인의 통구면을 다 물에 말아먹었기 때문에 철거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원래 지역의 주 축선인 김화-금성-창도-회양 중 창도면 소재지 지역을 빼면 전부 수몰을 면했기에 춘천에서 인제와 양구 가는 길목을 틀어막아버린 소양강댐에 비하면 타격이 적기도 할 뿐더러,[12] 댐 하나를 건설할때 드는 엄청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고려할때 기왕 지어놓은 댐을 보수하여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현시점에선 막연한 추측이다.
2018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이 금강산댐의 공동 활용의 방안이 떠올랐다.[13] 금강산댐에서 방류하는 물을 기존의 북한강 쪽으로 되돌려서 북한강 수계의 수자원과 수력발전소들의 발전량을 확보하고, 그 대신 남한에서 전력과 비료 등을 북한에게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4. 관련 문서
[1] 대한민국에서만 표기[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만 표기[3] 큰 지도로 볼 경우 아랫쪽 파로호와 소양호를 비교하여 엄청난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상으론 대략 둘을 합쳐놓은 크기다.[4] 다만 건설 당시에만 그렇고, 면 이름도 임남면인데다가 평화의 댐 물문화관에서도 임남댐이라 부르는 등 혼용돼서 쓰인다.[5] '림남댐'이 아니다. 김화군 임남면의 한자가 '任南'인데, 任의 원음이 '림'이 아닌 '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통천군 임남면이 림남면이다.[6] 이 때 건국대학교에서 전두환 정권을 반대하는 단체의 결성식을 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는 사건이 있었고,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금강산댐에 쏠린 사이 시위는 다음날인 31일 1525명 연행, 1289명 구속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진압되었다.[7] 발표 당일에는 특집프로그램까지 방영되었는데 생방송이 아니라 발표가 있기 전에 미리 제작하고 발표 당일에 방송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웃음거리가 되기 좋은 얘기지만, 그 당시의 북한은 충분히 그런 짓을 할 만한 또라이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였다. 더군다나 그 땐 북한이 남한을 뒤흔들기 위해서 자신들의 우방국의 성지급 장소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멀쩡한 민항기까지 폭파시키던 시대였다. 실제로 2016년에는 두만강의 댐들이 불안해지니까 새벽에 주민들에게 어떠한 통보도 없이 수문을 열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8]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난 규탄대회 영상을 보면 당시의 극심한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재향군인회를 포함한 단체가 참석한 규탄대회 영상, 전국 각지 주민의 규탄대회 영상, 학생 규탄대회 영상)[9] 어린이들은 물론 교도소의 죄수들과 심지어 해외교포들한테까지도 성금을 걷었다.[10] 특히 통구면은 면의 대부분이 수몰되어 통일되더라도 사실상 저수지 물을 빼내거나, 아니면 댐을 폭파시켜버리지 않는 이상 사실상 소멸될 정도로 심각하게 수몰되었다.(...)[11] 비록 금강산댐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임진강 황강댐의 물을 북한이 통지도 없이 무단으로 방류해 2009년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12] 통구와 옛 양구 수입면 지역이 수몰되며 금성과 창도에서 내금강으로 넘어가는 단발령 교통로가 막히긴 했다.[13] [단독] 금강산댐 물길 터서 북한강 수자원 복구한다